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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Author: 무구
단미는 오후 내내 자기 아파트에서 생활용품을 정리했다.

오정란의 전화를 받고는 막 건물 밖으로 나와 근처 칼국숫집에서 간단히 저녁을 먹을 생각이었다.

매일 늦게 들어오는 일 중독자인 호건이 오늘은 집에 일찍 들어와서 저녁을 먹을 줄 몰랐다.

통화를 마친 단미는 곧장 루아힐로 돌아갔다.

집에 도착하자 식탁 쪽에 앉아 있는 호건이 바로 눈에 들어왔다.

‘일부러 일찍 왔네.’

‘이혼 얘기를 빨리 끝내고 싶은 모양이지.’

단미는 그렇게 생각하며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오정란이 음식을 내오려 하자 먼저 말했다.

“이모님, 저희 이야기부터 할게요. 식사는 나중에 주세요.”

오정란은 단미가 좋아하는 반찬을 들고 서 있다가 당황한 얼굴로 호건을 바라봤다.

호건은 단미를 한 번 본 뒤 오정란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먼저 자리를 비우라는 뜻이었다.

식탁에 둘만 남자 단미는 바로 본론을 꺼냈다.

“내일 아침 가정법원에 갈까?”

호건의 얼굴에 의아함이 스쳤다. 미간을 좁힌 채 말했다.

“윤성산업에 해율만 사업을 줬는데도 부족해?”

단미가 황당한 눈으로 쳐다봤다.

“무슨 말이야?”

‘이혼 이야기를 하는데 웬 프로젝트?’

“친환경 에너지 사업은 윤성산업에 줄 수 없어. 대신 해율만 복합개발에서 손해 보지 않게 해 줄 수는 있어.”

“그게 지금 무슨 뜻인데?”

단미는 몇 초간 생각하다가 그의 오해를 알아챘다.

“설마... 내가 윤성산업을 친환경 에너지 사업에 넣어 달라고 이혼으로 협박하는 줄 알았어?”

호건은 대답하지 않은 채 단미를 바라보며 부정하지 않았다.

단미는 기가 막혀 웃음이 나왔다.

“결혼할 때 나는 분명히 말했어. 윤성산업을 특별히 챙기지 않아도 된다고. 회사 일은 회사 원칙대로 하라고.”

“윤성산업이 프로젝트를 따든 못 따든 나랑 상관없어.”

단미는 숨을 고르고 다시 분명히 말했다.

“내가 이혼하려는 이유는 더 이상 당신한테 시간도 마음도 낭비하고 싶지 않아서야.”

호건은 단미의 얼굴을 오래 바라봤다. 검은 눈이 깊게 가라앉았다.

“이혼하고 나서 윤성산업이 JF그룹 도움을 하나도 못 받아도, 그래도 이혼하겠다는 거야?”

“응.”

단미는 눈을 피하지 않았다. 목소리는 단호했다.

“난 이혼할 거야.”

윤성산업이 앞으로 잘되든 무너지든 단미에게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애초에 단미는 친정인 윤씨 집안을 위해 호건과 결혼하지 않았다.

자신은 결혼 안에서 사랑을 찾았는데, 호건은 이 관계를 끝까지 이해관계로만 본다는 사실이 퍽 우스웠다.

한쪽은 마음을 믿었고 다른 쪽은 계산을 믿었다. 처음부터 같은 결말을 바라보기 어려운 관계였다.

호건의 눈에는 읽기 어려운 감정이 어른거렸지만 얼굴은 여전히 무표정했다.

“네가 그렇게 정했다면 원하는 대로 하지.”

그 말을 끝으로 호건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큰 체격이 옆을 지나갈 때 단미가 물었다.

“그럼 내일 아침 바로 가정법원 갈 거지?”

호건이 옆에서 잠깐 멈췄다.

“그래.”

호건은 뒤돌아보지 않고 계단을 올라갔다.

식탁에 혼자 남은 단미도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멀어지는 발소리만 가만히 들었다.

조금 뒤 오정란이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사모님, 대표님은 식사 안 하세요?”

단미는 빠르게 표정을 정리하고 웃어 보였다.

“아마요. 워낙 바쁜 사람이잖아요.”

‘지금쯤 또 서재에 박혀 일하겠지.’

“그럼 사모님 식사부터 차려 드리고, 대표님 건 나중에 준비할까요?”

“저도 아직 배 안 고파요.”

단미는 고개를 저으며 부드럽게 말했다.

“신경 쓰지 마세요.”

단미도 자리에서 일어나 위층으로 올라갔다.

오정란은 뒷모습을 바라보다 걱정스러운 한숨을 내쉬었다.

‘오랜만에 두 분이 같이 저녁을 먹나 했는데...’

‘대체 무슨 일이 생겨 이렇게 틀어진 걸까?’

...

주방을 정리하고 나온 오정란은 거실에 놓인 선물 상자를 발견했다.

호건이 귀가하며 가져온 물건이었다.

상자를 들고 바로 위층 서재로 가 문을 두드렸다.

“들어와.”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호건은 책상 앞에서 막 담배를 재떨이에 눌러 끄고 있었다.

재떨이 안의 담배꽁초를 본 오정란은 침울한 호건의 표정을 슬쩍 살폈다.

단미가 담배 냄새를 싫어해서 호건은 집 안 다른 곳에서는 절대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

서재에서 늦게까지 일하다 스트레스가 심한 날에나 한두 개비 피운 흔적을 본 것이 전부였다.

그런데 오늘은 달랐다.

‘그 짧은 사이에 몇 개를 피운 거야?’

‘아까 식탁에서 사모님이 무슨 말을 했길래 대표님이 저렇게 힘들어하지?’

호건이 물었다.

“무슨 일이에요?”

오정란이 정신을 차렸다.

“아, 대표님. 거실에 두고 가신 물건이 있어서 가져왔어요.”

호건은 그제야 오정란이 들고 있는 상자를 봤다. 눈빛이 어두워졌다.

“책상에 둬요.”

“네.”

오정란은 상자를 내려놓은 뒤 또 슬쩍 호건을 살폈다.

할 말이 있어 보이자 호건이 물었다.

“또 뭐 있어요?”

오정란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사모님은 안방으로 올라가셨어요.”

호건이 이해하지 못한 표정으로 봤다.

“그래서요?”

오정란은 답답하다는 듯 조심스럽게 권했다.

“그 선물, 사모님께 드리려고 사신 거잖아요. 지금 직접 가져가시면 좋을 것 같아서요.”

부부가 싸워도 같은 방에서 얼굴을 맞대다 보면 풀리는 법이다. 선물까지 들고 들어가 달래면 오늘 밤 안에 화해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다.

호건의 눈썹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지금이 좋다고?’

‘내일 이혼 신청하러 가는데 선물을 주면 무슨 의미가 되지?’

‘이혼 축하 선물이라도 되나?’

오정란은 호건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더 권하지 않았다.

“대표님, 그럼 전 나가 볼게요.”

“그래요.”

오정란이 나간 뒤 호건은 한동안 선물 상자를 바라봤다. 결국 손을 뻗어 집어 든 뒤 책상 서랍 깊숙이 넣었다.

그날 밤 호건은 서재를 나오지 않았다.

안방에 혼자 남은 단미 역시 밤새 쉽게 잠들지 못했다.

...

다음 날, 단미는 평소보다 일찍 일어났다.

옅게 화장하고 가장 좋아하는 원피스를 골라 단정하게 차려입었다.

새 삶을 맞는 날만큼은 멀쩡한 모습이 되고 싶었다.

아직 8시도 되지 않았는데 호건은 이미 1층 다이닝룸에 앉아 있었다.

발소리를 들은 호건이 돌아봤다. 단미의 차림을 본 시선이 잠시 멈췄다.

단미는 그의 시선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걸어오며 손에 든 서류를 꼼꼼히 확인했다.

신분증과 필요한 서류를 모두 챙긴 걸 확인한 뒤에 고개를 들었다.

“가자.”

지금 출발하면 가정법원 업무 시작 시각에 맞출 수 있었다.

호건은 단미에게서 시선을 거두었다.

“아침부터 먹어.”

단미가 뭐라고 하려던 때 오정란이 아침상을 가져왔다.

잠깐 생각한 단미는 결국 자리에 앉았다.

‘마지막으로 함께 먹는 식사쯤은 괜찮겠지.’

깔끔하게 끝내고 각자 갈 길을 가면 된다.

오정란은 상을 차린 뒤 자리를 비웠다.

식탁에는 둘만 남았다.

단미는 맞은편에서 조용하고 반듯하게 식사하는 남자를 바라봤다.

얼굴 하나는 정말 잘생겼다는 생각이 새삼스럽게 들었다.

짙은 눈썹과 선명한 눈매, 고개를 숙일 때 더 또렷해지는 높은 콧대까지 흠잡을 데가 없었다.

말수가 적고 표정 변화도 거의 없었지만, 정제된 인상과 깊게 가라앉은 분위기가 사람의 시선을 끌었다.

낮에 호건의 모습은 늘 흐트러짐이 없었다. 셔츠 단추는 목 끝까지 단정하게 잠겨 있었고, 절제된 모습이 오히려 묘하게 관능적이었다.

언제나 차분하고 무심한 표정이었다.

조금 뒤 이혼 절차를 밟으러 가는 날에도 호건은 평소와 다름없었다. 중요한 계약 일정 하나 처리하러 가는 사람처럼 잔잔해서, 그에게는 이혼조차 별일 아닌 것처럼 보였다.

단미는 문득 궁금해졌다.

‘지호건 같은 남자는 정말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하지만 곧 스스로 생각을 끊었다. 쓸데없는 상상에 마음을 쓰고 싶지 않았다.

호건이 좋아하는 사람과 어떻게 지내든 이제 단미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이혼이 끝나면 이제 두 사람은 아무 사이도 아니다.

단미가 그린 미래에는 호건과 다시 만날 일도, 서로의 삶이 얽힐 일도 거의 없었다.

각자 자기 자리에서 잘 살아가는 것... 그것이 이 결혼의 마지막이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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