登入“누군지 물어봐도 되냐.”
넥사이드(Nexide)를 설립하고 딱 1년째 되던 날, 유일하게 믿는 친구이자 전무인 '강석현'이 처음으로 물었다.
솔직히 그동안 묻지 않았던 게 이상할 정도였다.전국 단위로 안면인식 프로그램을 돌리며, 오직 한 사람만을 찾는 데 혈안이 되어 있었으니까.
“왜 이제서야 묻냐.”
“중요한 사람인 건 충분히 알았고. 도대체 뭔데 이래.”잠시 숨을 고르던 준호가 무언가를 결심한 듯 무겁게 입을 열었다.
“미안해 죽겠는 사람.”
“뭐...?” “넥사이드를 세운 유일한 이유.”그 말은 결코 농담이 아니었다. 신준호가 그런 말을 농담처럼 던질 성격이 아니라는걸, 석현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준호는 대학 시절부터 유독 AI를 기반으로 한 프로그램에 집착했다. 단순한 집착이 아니었다. 거의 광적이었다.
유행처럼 뜨고 지는 기술이 아니라 찾아내는 기술. 데이터를 축적하고, 패턴을 읽고, 사라진 흔적을 복원하는 알고리즘에만 관심을 보였다.
그래서 그가 AI 회사를 설립했을 때, 대학 동기들은 물론 교수님들까지 누구 하나 놀라지 않았다.
당연히, 마땅히 차릴 줄 알았다는 말들의 연속이었다.
“넌 항상 사람보다 기록을 믿었지.”
“기록은 거짓말을 안 하니까.”사람은 숨기고, 잊고, 부인하지만 데이터는 남는다. 지워졌다고 생각한 흔적조차 어딘가에는 반드시 잔존한다는걸, 준호는 남들보다 일찍 알아버렸다.
그래서 넥사이드는 미래를 예측하는 회사명을 가졌지만, 사실은 과거를 되찾는 명분에서부터 시작됐다.
“찾으면? 찾고 나면 그다음은?”
“사과할 거야.” “미친놈. 사과 하나 하겠다고 그 날고 기는 인재들로 팀을 꾸려?” “그러니까. 그 사과 하나가 참 어렵다.”서버실 너머 기계음이 일정한 리듬을 냈다. 멈추지 않는 계산, 쉼 없는 기록이 꼭 신준호 같았다.
어쩌면 진작부터 알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이 회사는 성공을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 끝내 하지 못한 말 하나를 향해 움직이고 있다는걸.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곁에 남고 싶었다.
전해지는 진심이 애틋해서. 그 마음이 애달파서. 무엇보다 그런 감정들이 거짓이 아니라는 게, 너무도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석현이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한 채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80%. 딱 80%가 넘는 데이터가 안 나오네.”
“혹시 내 기억이 틀린 걸까. 아니면 설마...”평소와 달리 무력함이 담긴 준호의 말에, 석현이 오히려 버럭 목소리를 높였다.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요즘은 그냥... 세상에 없는 사람한테 목을 매고 있는 건가 싶네.”그도 그럴 것이, 애초부터 비교 데이터는 오직 준호의 기억에 의존한 이미지였다.
마땅한 사진 하나 남아 있지 않던 아이. 기록도, 공식 문서도 없는 유령 같은 존재.
그런 아이를 찾겠다는 발상 자체가 처음부터 무모했던 걸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본 건, 열네 살의 얼굴. 그 이후의 시간은 전부 공백이었다.
준호는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해 기억 속에 남은 마지막 모습을 이미지로 복원했고, 그 위에 열 살의 시간을 겹쳐 스물넷의 얼굴을 AI로 구현했다.
물론 가능성은 있었다. 이론적으로는.
하지만 일치로 뜬 데이터는 늘 80%를 넘지 못했다. 40%만 넘어도 직접 찾아가 확인을 한 게 수백 번.
직접 마주한 타깃들은 늘 닮아있었지만 아니었다. 잠시의 착각조차 허락하지 않는 그저 그런 평범한 얼굴들.
그렇게 영이에게는 매 순간 닿지 못했다.
“나이도 어리고 아픈 곳도 없었다며. 찾아보자. 찾을 수 있어.”
준호는 대답 대신 모니터를 응시했다. 그래프와 수치들은 지겨울 정도로 일정한 패턴을 내고 있었다.
“프로그램 세팅 좀 바꾸자.”
“말해.” “웃는 이미지는 빼. 그래야 정확도가 높아질 거야.”그건 사실 오래전부터 정해두던 답이었다. 평생을 갇혀있던 유영. 늘 웃을 일이 없었던 아이.
그런 영이가 지금 와서 환하게 웃을 수 있을 거란 기대는 처음부터 하지 않았다.
다만, 그러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미지를 구현했을 뿐.
그날 이후, 넥사이드의 TF팀은 오직 표정을 지운 얼굴들을 기준으로 다시 계산을 시작했다.
조금 더 차갑게. 조금 더 정확하게.
감정이 배제된 얼굴. 웃지도, 울지도 않는 중립의 표정만이 매일매일 스크린 위를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그 매일이 반복되던 어느 날.
“대, 대표님...!”
회의실을 가득 채운 스크린 앞, TF팀 직원 하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얼마나 놀랐는지 의자가 뒤로 쭉 밀려나며 바닥을 긁었다.
그날 밤, 부모님의 침실에서는 무거운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다. “준호 때문에 걱정이에요. 한동안 지하실은 쳐다도 안 보더니, 갑자기 또 왜 저러는지...”“사내자식이 쓸데없이 마음이 약해.”“이대로는 안 되겠어요. 너무 불안하다고요.”“불안?”“생각해 봐요. 다른 사람 미래는 다 보면서, 우리 준호 미래만 안 보인다잖아요. 그것도 소름이 끼친다고요.”태호가 고개를 끄덕였다.영이의 능력은 틀림없었다. 그간 영이가 보고, 느끼고, 전해온 수많은 이들의 미래는 단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었다. 하지만 왜 아들의 미래만 보이지 않는 걸까. 그 역시도 그 부분이 가장 의문이긴 했다. “지금이라도 지하실 출입 금지 시켜요. 네?” “이랬다가 저랬다가. 규칙이 변하면 애들이 뭘 보고 배우겠어?”“그럼 어떡해요? 이제 와서 어떡하냐고요!”“영이도 많이 컸고, 혼자 지낼 곳을 좀 알아봐야겠어.”숙경의 표정이 순식간에 밝아졌다.이런 말을 예상한 건 아니었는데. 드디어 이 집에서 내보낸다고? 드디어 그 꼴을 보지 않아도 된다고? 벌써부터 해방감이 몰려들었다.“정말요? 정말이에요?”“어디 조용한 데 두고, 요긴하게 써먹어야지.”“참나, 무슨 신당이라도 차려줄 심산이에요?”“수준 낮은 무당들이랑은 급이 달라. 급이.”“하긴, 그 덕에 엄마 수술 시기는 딱 좋긴 했어요.”영이의 말을 들은 숙경은 일이 터지기 전,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을 찾았다.조금만 더 늦었으면 뇌혈관이 터졌을 거라는 충격적인 소견.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아이가 미운 건 어쩔 수 없었다.***그날 이후 딱 한 달. 한 달 뒤에 영이가 사라졌다. 아직 제대로 용서받지도 못했는데, 고작 복숭아 젤리만 사다 준 게 다였는데. 아무런 예고도, 인사도 없이 그렇게 영이를 떠나보냈다.처음엔 화가 났다. 그다음엔 자책했다. 마지막엔 입을 꾹 닫아 버렸다. 집안에서 대화는커녕 가족들과 마주 앉아 식사조차 하질 않았다. 아니, 못했다. 자꾸만 구역질이 올라왔다. 지하실 문은 그날 이후
노트를 펼쳐둔 채, 영이의 손을 잡았다. “미안해. 꺼지라고 한 것도, 소름 끼친다고 한 것도. 오빠가 다 미안해.”너무 늦은 사과였다. 이제 와서 하는 사과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었지만, 이거라도 하지 않으면 숨이 턱 막혀버릴 것 같았다.“앞으로는 자주 올게. 사과도 갖다 줄게. 그러니까 아프지 마.”손가락이 꿈틀하고 움직였다.그 작은 반응 하나도 곱절에 곱절을 더한 것처럼 마음이 미어졌다.***아침 해가 떠오르고, 보람이의 목소리가 집안 가득 울려 퍼졌다. “엄마! 아빠! 오빠 미쳤나 봐!”그 소리에 잠에서 깬 준호는 곧바로 손을 뻗어 영이의 이마부터 짚어보았다.다행히 열은 내려가 있었고, 숨결도 고르게 안정돼 있었다. “열 내렸네. 다행이다.”평온은 잠시였다.아침 식사를 가지고 지하실을 내려왔던 보람이는 영이의 침대 옆에 웅크려 잠이 든 준호를 보고야 말았고, 그 사실은 이미 부모님의 귀에 들어가고 말았으니까. “신준호.”아버지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더 낮고 단단했다. 준호는 그제야 몸을 일으켰다.어깨가 뻐근했다. 밤새도록 불편한 자세로 곁을 지켰다는 증거였다.“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지?”“열이 심해서요. 밤새 떨어지질 않아서요.”“그래서 간호를 했다? 신태호의 아들 신준호가?”어머니 역시 황급히 들이닥쳤다. “준호야! 너 제정신이니? 누가 너더러 간호 따위나 하라고 했어?”“언제는 도와주라면서요.”“이게 지금 도움이야? 어머, 저 물수건 좀 봐...”숙경은 베개 옆에 높인 물수건을 홱 채가듯 들어 올렸고, 태호의 시선은 준호에게서 한시도 떨어지지 않았다. “필요 이상으로 관여하지 마라. 경고다.”“예. 그러시겠죠.”“나가.”준호는 지하실을 나가며 다시 한번 영이를 바라보았다.이 난리 통에도 잠이 든 듯 보였지만, 그래도 열은 내렸으니까. 그 사실 하나로 발걸음을 뗐다. 계단을 올라오자 보람이가 소파에 앉아 준호를 노려보았다.“정신 나갔지? 열네 살이면, 알 거 다 아는 나이 아니야?”“입
아니라는 말에 안도는 했지만, 그럼 내가 영이한테 한 행동은? 그동안 괜히 잘 해줬다. 괜히 정이 들었다. 차라리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 편할 것 같았다. 그래서 더더욱 지하실에 내려가지 않았다. 어느덧 시간은 흘러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고, 혼자만의 규칙은 마치 스스로를 지키는 행동처럼 보였다. 하지만 실제로 지켜진 건 영이의 고독이었다.영이는 지독한 고독을 느끼면서도, 자신을 찾아와 미래를 묻는 이들을 마주했다. 다른 이들과 달리, 김혁도 의원은 늘 빈손이 아니었다. 사리사욕은 채우면서도 지하실에 갇힌 영이가 안쓰러웠는지, 빵이나 과자, 인기 있는 소설책을 사 오곤 했다.“그래서, 보좌관이 그런 통화를 했단 소리지?”“네. 의원님을 욕해요. 법인 카드 내역서를 복사해뒀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했어요.”두 사람의 대화를 지켜보던 태호가 고개를 끄덕였다.“아무래도 치우셔야겠습니다.”“믿을 인간이 이렇게 없어서 원.”“이 아이가 있지 않습니까.”그저 필요에만 의한 존재. 영이는 그 모든 시간들을 견디며 배웠다. 사람의 마음은 하나같이 다르다. 그리고 누군가를 위한 마음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기도 한다.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문득문득, 어린 시절 준호와 대화를 놔두던 노트를 펼쳐보곤 했다. 연필로 쓴 글씨. 삐뚤어진 질문들. 이상하게 눈물이 났다. 오빠를 못 본 지 몇 개월이 지난 걸까. 6개월? 10개월? 아니면 1년? 한 번도 날짜를 센 적은 없었다. 그저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그러다 오늘은 애태우던 마음이 정리가 됐다. “오빠는 이제 내가 미운 거야... 소름이 끼칠 만큼.”***며칠 뒤 저녁, 보람이의 목소리가 집 안을 갈랐다.“엄마! 유영 쟤 이상해!”주방에서 접시를 놓던 소리가 잠시 멈췄다.“뭐가 또.”“침대에 누워서 대답도 안 해. 땀이 엄청 나!”“내버려둬.”접시 소리는 다시 이어졌지만,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준호가 소파에서 일어났다. “땀이 난다고?”“어.”“엄마.”“내버려두라니까?
준호가 웃었다. 영이도 다른 아이들처럼 딱딱하게 성 붙이는 걸 싫어하는구나.아, 성이라는 게 없던가? 상관없지 뭐.“그럼 앞으로도 그렇게 부를게. 영아.” 영이도 웃었다. 입꼬리가 아니라 눈이 먼저 풀렸다. 그 작은 반응이 준호의 가슴을 찔렀다.이 아이는 이름 하나에도 이렇게 조심스러운데. 너무도 조심스러워, 열두 살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문밖을 나서보는 아이.그동안 나는 뭘 했던가. 꽃향기 하나 맡게 해주지 못한 내가, 지금 이 모습을 보고 뿌듯해할 자격이 있을까.생각보다 기분이 별로였다. 웃음은 났지만 오래가지 않았다.***그날 밤, 가족들이 귀가하자마자 준호는 보람이의 방문을 벌컥 열었다. “신보람, 제정신이냐?”“또 뭐?”“두 번 다신 영이 손에 장난질하지 마. 못돼 처먹어가지고.”잔뜩 날이 선 말에 보람이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고는 팔짱을 끼고 코앞까지 다가와 작게 속삭였다.“왜? 이제 나 말고, 걔 오빠 노릇이라도 하게?”“안돼?”“근데 이상하지 않아? 가족도 아닌데 저렇게 키워주는 이유 말이야.”“개소리하지 말고, 다시는 괴롭히지 말라고.”보람이의 웃음은 아이답지 않은, 너무도 께름칙한 웃음이었다.“내가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유영 쟤. 아무래도 아빠 딸 같아.” “...뭐?”“잘 생각해 봐. 그러니까 엄마는 쟤 이름만 들으면 치를 떨지.”“소설을 쓰세요. 소설을.”아무렇지 않은 척 방으로 돌아왔지만, 그 말이 머릿속을 자꾸만 헤집었다. 맞다. 아버지와 달리 어머니는 처음부터 영이를 싫어했다. 이유를 묻지 않아도 늘 표정이, 분위기가 먼저 변했다. 혹시나 보람이의 말이 맞다면, 정말로 아버지가 밖에서 낳아온 딸이라면..?더는 챙겨야 할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우리 가족을 불행하게 만드는 존재다. 한참 예민하고 감수성이 풍부한 고등학생. 보람이의 말은 시간이 흐를수록 준호의 마음에 또렷하게 자리 잡았다. 그때부터 불면증이 찾아왔고, 지하실에 내려가는 횟수는 눈에 띄게 줄었다. 지하실에 영이
영이를 외면했던 시간이 있었다. 아무것도 몰랐던 어린 시절엔 영이가 좋았다.지하실에 있는 비밀친구.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비밀친구의 존재는 드러났지만, 갑갑한 지하실은 오히려 숨통이 트이는 공간이었다.하지만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을수록 달라졌다.평범하지 않은 특별한 아이, 다른 사람의 미래는 보지만 자신의 미래는 보지 못하는 아이. 그리고 그 아이로 인해 어머니는 늘 힘들어하셨다. 부모님이 다투는 이유도 늘 그 아이 때문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 오늘따라 가족들이 모두 외출을 나섰다. 아버지의 중장 진급을 축하한다며 친인척들이 모이는 저녁 식사 자리. 준호는 머리가 아프다는 핑계로 따라나서지 않았다. 어머니는 오늘도 영이 탓을 했다.“하여간 쓸데없는 기지배라니까. 우리 아들 아픈 것도 모르는 게.”“엄마, 왜 또 영이한테 그러세요.”“왜 너만 안 보이냐고 너만! 기분 나쁘고 께름칙해.”“됐어요. 그만 열 내시고 다녀오세요.”문이 닫히고 집 안이 순식간에 조용해지자, 준호는 거리낌 없이 지하실로 향했다.사실 오늘은 영이를 데리고 바깥공기를 쐬게 해줄 요량이었다.“영아, 오빠랑 잠깐 나가자.”“안 돼요.”“아무도 없어. 정원에만 나갔다 오자. 딱 거기까지만.”영이의 손이 책 위에서 멈추던 순간, 평소와 다른 손가락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손톱을 넘어 살까지 덕지덕지 발린 색색의 매니큐어. 그 불쾌한 모습을 보자마자 손목을 붙잡아 들어 올렸다. “이게 뭐야.”“...”“신보람 짓이지.”“예쁘게 해준다고 했어요...”“네 눈에는 이게 예뻐 보여? 이 미친 기지배가 진짜.”보람이는 늘 그랬다. 어릴 때부터 영악했고, 영이의 위에서 군림했다. 눈치가 빤해 대놓고 괴롭히진 않았지만, 이런 식으로 못살게 굴었다. 머리카락을 잘라 놓은 적도, 베개 위에 껌을 붙여둔 적도 있었다. 열세 살인 아이에게 열다섯의 아이가 하는 못된 행동들. 심지어 누구 하나 그 행동을 말리지 않았다는 것. 그게 가장 화가 나는 지
숨이 걸렸다. 손이 바르르 떨렸다.지금 당장 출발해도 최소 30분. 이 날씨에, 이 추위에 30분이나 밖에서 떨게 할 순 없었다. 경호원 새끼들은 뭘 하는 거지? 아니, 그 관리자 자식은 대체 뭘 하는 거지?생각이 엉키며 판단이 흐려졌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방법은 하나뿐이었다.결국 핸드폰을 들었다.수화기 너머,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또 그 아이 일이냐.”준호가 먼저 전화를 거는 일은 극히 드물었기에, 신태호는 전화를 받자마자 불쾌함을 드러냈다.“네. 지금 영이가 테라스에 혼자 있어요. 아무래도 문이 열리질 않는 모양입니다.”귓가에 들리는 한숨소리와 혀를 차는 소리.“다 보고 있던 게야. 다 보고 있었어...”“빨리 영이부터요, 제발요……!”뚝, 전화가 끊겼다.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테라스 문이 열렸다. 경호원은 바닥에 주저앉은 영이를 그대로 안아 올려 침실로 향했다. “왜 안 부르셨습니까.”“설명하기 싫어서요.”“아시잖습니까. 자꾸 이러시면 저희가 곤란합니다.”“죄송합니다…….”자꾸? 이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단 소리야? 그때였다. CCTV 화면이 지직거리며 경고 문구가 떠올랐다. - 접근 권한이 제한되었습니다.이제야 영이를 지켜보고 있던 걸 안 아버지가 손을 쓴 모양새였다.하지만 어림없었다. 준호의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서 빠르게 움직였다.차단은 급했고, 그래서 허술했다. 접근 경로를 끊는 대신 로그를 지우는 데 집중한 흔적. 키보드 소리가 빨라질수록 한 줄, 두 줄. 경고 창이 깜빡였다.- 권한 복구 중…….급한 불은 껐지만, 지체하지 않았다.영이가 침대에 누워 잠이 든 걸 확인하고는, 그는 곧장 TF 팀 사무실로 향했다.사무실 문이 열리는 순간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CCTV 해킹을 알아챘어. 지금부터는 다른 방법으로 접근해야 해.”“사용됐던 기록부터 전부 폐기하겠습니다.”“VPN부터 다시 따고, 나머지 인원은 이민 갔다는 소유주 연락처부터 확보해.”묵묵히 듣고 있던 석현이 키보
한참을 멍하니 서 있던 중, 어둑한 숲길을 따라 석현이 다가왔다. 발걸음은 빨랐고, 목소리엔 걱정이 한가득 배어 있었다.“벌써 만났어? 영이 씨는?”“석현아.”“뭔데 또!”준호가 고개를 들어 집 쪽을 바라봤다. “여기 있는 카메라, 전부 해킹 좀 해야겠다.”“지금?”“어. 일단 이 집이 먼저 눈을 잃어야 해. 그게 순서야.”석현은 목 끝까지 올라오는 욕설을 삼켰다.당연히 그건 준호를 향한 게 아니었다. 사람 하나를 산속에 가둬 둔, 이름 모를 누군가를 향한 것이었다.“딱 봐도 여섯 대는 될 것 같은데.”“사각지
- 똑, 똑. 현실로 정신을 되돌려 놓듯, 단정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준호는 손바닥으로 두 눈을 지그시 누르고 자세를 고쳐 앉았다. “네.”집무실 문이 열리고, 아버지 신태호가 들어섰다.오늘따라 시선이 어깨로 갔다. 견장 위에 반짝이는 별 세 개. 괜히 눈살이 찌푸려졌다.“자꾸 말없이 오시면, 직원들이 불편해한다니까요.”“군에서나 그렇지 뭐. 여기 커피가 꽤 맛있어.” 준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아버지를 따라 소파에 앉았다.테이블 위엔 헤이즐넛 향이 가득한 커피 두 잔이 놓였고, 태호가 커피향을 음미하
여전히 가슴팍에도 닿지도 않는 키, 연갈색의 눈동자와 길게 내려온 속눈썹, 밤인데도 도드라지는 새하얀 피부와 오똑한 콧날까지.AI도, 수치도 필요 없는 날것 그대로의 확신이었다.“영아.”“누구... 세요?”숨이 목구멍에서 걸려버렸다. 역시나 알아보지 못하는구나.십 년이란 세월은 준호의 체격을, 인상을, 표정을 참 많이도 바꿔놓았다. “나야. 신준호. 준호 오빠.”그 이름을 듣자마자 영이의 얼굴이 굳더니, 곧바로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다.마치 보면 안 될 사람을 마주한 것처럼, 눈동자가 보란 듯이 흔들렸다.“유영!
“뭐지?”“8... 88% 입니다!”놀라움이 담긴 말과 함께, 스크린 화면에는 단 하나의 사진이 떠올랐다.좌측 상단을 보아하니, 회사 소유의 드론이 어젯밤 11시경. 찰나에 찍은 사진 같았다. 가로등 하나에 의존한 여자는 무언가를 품 안에 안고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표정은 없었고 품 안에 끌어안은 건 얇은 책인지 종이인지 알아차리기 힘들었다.준호 역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스크린을 바라보는 눈빛. 그 눈빛이 사정없이 흔들렸다. 88%.그 수치는 우연으로 넘길 수 있는 영역도 아니었지만, 화면 속의 여자는 분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