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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부서진 유리성 — 엇갈린 그림자

Author: Olivetree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0-24 08:59:04

짝—!

두꺼운 하드보드지로 제작된 드라마 홍보용 포스터가 거실 대리석 바닥에 부딪히며 날카로운 파열음을 냈다. 바닥으로 미끄러진 포스터 위에는 극 중 상대 남자 배우와 애절한 눈빛을 주고받고 있는 루나의 얼굴이 인쇄되어 있었다.

"누구 좋으라고 그딴 천박한 멜로 눈빛을 흘려? 네가 지금 애 둘 딸린 유부녀라는 걸 잊었어?"

거실 소파에 다리를 꼬고 앉은 다니엘이 넥타이를 거칠게 풀어 헤치며 소리쳤다. 퇴근 후 술을 마시고 들어왔는지, 그의 주변으로 불쾌한 양주 냄새가 진동했다.

현관에 막 들어서다 날아온 포스터에 발등을 맞은 루나는 아픔을 삼키며 조용히 허리를 숙여 포스터를 주워 들었다. 새벽까지 이어진 지방 촬영 때문에 온몸이 솜뭉치처럼 무거웠지만, 그녀는 내색조차 하지 못했다.

"여보, 드라마 포스터 촬영이잖아요. 대본에 있는 컨셉대로 찍은 것뿐이에요. 오늘 촬영이 조금 늦어져서 피곤한데, 우리 내일 이야기하면 안 될까요?"

"내일? 하, 기가 막혀서. 이제는 내가 하는 말이 잔소리로 들린다 이거지? 옛날에 친정집에 돈이나 빼돌리던 주제에, 이제 얼굴 팔아서 돈 좀 번다고 남편이 아주 우습게 보이나 봐?"

다니엘이 비아냥거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과거 결혼 초창기만 해도 이 집안의 절대적인 '갑'은 다니엘이었다.

생활비 명목으로 던져주는 몇백만 원으로 루나의 숨통을 쥐락펴락하며 우월감을 느끼던 그였다. 그러나 루나가 톱배우 반열에 오르고, 회당 출연료와 CF 모델료로 자신이 평생 만져보지도 못할 수십억 원의 돈을 벌어들이자 다니엘은 극심한 자격지심에 사로잡혔다.

자신이 타는 최고급 외제 차도, 지금 발을 딛고 서 있는 한강 뷰의 80평대 하이엔드 아파트도 전부 루나의 이름으로 된 것들이었다.

밖에서는 '톱스타 루나의 남편'이라며 부러움 섞인 시선을 받았지만, 그럴수록 다니엘은 집 안에서 루나를 더욱 가혹하게 짓밟음으로써 자신의 알량한 자존심을 채웠다.

"내가 언제 당신을 우습게 봤다고 그래요. 출연료 들어오는 계좌도, 부동산 관리도 전부 당신한테 맡겼잖아요. 내가 뭘 더 어떻게 해야 마음이 풀리겠어요?"

"시끄러워! 밖에서 딴 놈들이랑 몸 섞는 시늉이나 하고 다니는 여자랑 한 방 쓰는 것 자체가 역겨우니까, 내 방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마."

다니엘은 이미 3년 전부터 일방적으로 각방을 선언한 상태였다. 사사건건 말도 안 되는 트집을 잡아 루나를 정신적으로 몰아세웠고, 루나가 조금이라도 반박하려 들면 '아이들 앞에서 큰소리 내고 싶냐'며 협박 아닌 협박을 일삼았다.

쾅!

안방 문을 부서져라 닫고 들어가는 다니엘의 뒷모습을 보며, 루나는 거실 한복판에 우두커니 서서 마른세수를 했다. 화려한 여배우의 삶 이면에 숨겨진 자신의 현실은 이토록 초라하고 차가웠다.

다음 날 오전, 다음 작품 대본 리딩을 위해 이동하는 밴 안에서 루나는 창밖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운전석 옆자리에 앉아 스케줄 표를 정리하던 매니저 진아가 백미러로 루나의 창백한 안색을 살피더니 결국 폭발하듯 태블릿을 내려놓았다.

"야, 한루나. 어젯밤에 그 인간이 또 지랄했지?"

"진아야, 운전하시는 실장님 계셔. 말 좀 곱게 해……."

"실장님도 알 거 다 아셔! 아유, 속 터져 진짜!"

진아가 뒷좌석으로 몸을 휙 돌려 앉으며 가슴을 쳤다. 속상함에 진아의 눈시울이 금세 붉어졌다.

"루나야, 내 말 좀 들어. 제발 그 인간이랑 이혼해. 네가 밤잠 못 자고 링거 맞아가면서 벌어다 주는 돈으로 명품 휘감고 호의호식하면서, 정작 너한테는 정서적 학대나 일삼는 거 난 더 이상 눈 뜨고 못 봐주겠어!"

"진아야……."

"네가 뭐가 아쉬워서 그딴 대접을 받고 살아? 지금 대한민국에서 너 모셔가려고 줄 선 데가 몇 군데고, 너 좋다고 대시하는 재벌가며 톱스타들이 트럭으로 줄을 섰는데! 대체 왜 그 쓰레기 같은 놈 밑에서 죄인처럼 사냐고!"

진아의 눈물 섞인 성토에 루나는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휴대폰 화면을 켜자, 배경 화면 속에서 해맑게 웃고 있는 일곱 살 아들과 다섯 살 딸의 얼굴이 떠올랐다.

"애들이 있잖아, 진아야."

"……."

"내가 어릴 때 부모님이 매일 싸우는 거 보면서 얼마나 무서웠는지 너도 알잖아. 난 내 아이들에게만큼은 절대로 깨진 가정을 물려주고 싶지 않아. 애들이 아빠를 얼마나 좋아하는데…… 나 하나만 참으면 우리 애들은 아무 상처 없이 자랄 수 있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두 아이. 아이들에게만큼은 온전한 울타리를 지켜주고 싶었다. 그것이 어미로서 할 수 있는 유일한 희생이라 믿었기에, 루나는 오늘도 가슴속 피멍을 컨실러로 두껍게 가린 채 카메라 앞에서 세상 가장 완벽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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