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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손도 안 댔는데

Author: 운디네J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0-07 21:45:42

“가까이 오라고 할 땐 언제고.”

시현이 한 발 다가가자 태윤이 이를 악물었다. 창살에 걸린 끈이 우드득 소리를 냈다.

“그대로.”

“그대로 서 있으라고? 아니면 그대로 더 오라고?”

“앞에 거.”

시현은 발을 멈췄다. 세탁소 작업실 바닥에 젖은 양말 한 짝이 떨어져 있었다. 밟을 뻔했다. 사람이 죽느냐 사느냐 하는 순간에도 남의 양말은 밟기 싫었다.

태윤의 손등에서 힘줄이 가라앉았다. 조금 전에는 손가락을 펴지도 못했는데 이제는 엄지를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하린이 문틀에 기대 물었다.

“원래 이렇게 왔다 갔다 해요?”

“아뇨.”

“시현 씨. 더 움직이지 말아요.”

시현이 태윤의 얼굴을 봤다. 붉은 눈에 비친 자기 얼굴이 너무 작았다. 저 안에서 자신을 알아보고 있는지도 확신할 수 없었다.

“내 이름.”

“윤시현.”

“내가 들고 있는 건.”

“쇠파이프.”

“잘못 대답하면 어디로 갈까.”

태윤이 그의 손을 보다가 입꼬리를 올렸다.

“그건 맞히기 싫은데.”

시현은 어깨에서 힘을 뺐다. 태윤이 그것까지 보고 있었다.

“걱정했어요?”

“창살 뜯길까 봐.”

“집주인도 아니면서.”

하린이 낮게 한숨을 쉬었다.

“대답 잘하는 건 알겠고. 숨은 좀 어때요?”

태윤은 괜찮다고 했다. 하린은 쉽게 믿지 않았다. 시현에게도 가까이 붙어 보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문을 열어 둔 채 태윤의 말과 움직임을 살폈다.

밖에서 서영이 물병을 떨어뜨렸다.

시현이 돌아서려 하자 태윤의 시선이 따라왔다. 발 하나를 문 쪽으로 옮기는 순간, 남자의 손이 다시 굳었다.

하린이 그것을 봤다.

“잠깐. 일부러 더 해 보진 말고.”

시현은 원래 자리로 돌아왔다. 태윤이 길게 숨을 내쉬었다.

손도 안 댔는데.

시현은 자기 손바닥을 내려다봤다. 거즈에 밴 피는 말라 있었다. 그것만 가리면 되는 일인지, 자신이 여기 서 있는 게 문제인지 알 수 없었다.

태윤이 말했다.

“나 때문에 여기 계속 서 있지는 말아요.”

“서 있는 값도 받을 건데.”

“그러면 좀 깎아 줘요. 가진 게 없습니다.”

시현은 끈 매듭을 확인한 뒤 작업대 모서리에 걸터앉았다. 나무가 허벅지 밑에서 삐걱거렸다.

“외상 돼.”

태윤은 한동안 대꾸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먼저 눈을 피했다.

서영이 물병을 들고 작업실로 들어왔다. 손목에 멍이 있었다. 그녀는 태윤과 눈이 마주치자 팔을 뒤로 숨겼다.

태윤이 먼저 말했다.

“아까 내가 잡아서 그렇습니다.”

“살려 주셨잖아요.”

“그래도 아픈 건 아픈 거니까.”

서영이 입술을 깨물었다. 그를 탓하기 어려워서 더 아픈 얼굴이었다. 하린이 그녀를 옆 의자에 앉혔다.

“물 천천히 마셔요. 기억나는 건 나중에 얘기하고.”

“점장님은 저한테 창고로 들어가라고 했어요.”

서영은 물을 마시지 않았다.

“손님한테 물리고도요. 나중에 문 두드리면 자기인지 확인하고 열라고. 근데 제가 먼저 이상해져서…….”

시현은 창고 문 밑으로 나왔던 손가락을 떠올렸다. 손톱 하나가 없었다. 서영이 문을 잡아당기다가 그렇게 된 걸까.

“지금 돌아가자는 말은 하지 마요.”

그가 말했다. 서영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갑자기 눈을 들었다.

“돌아갈 수는 있는 거죠?”

시현은 대답을 고르지 못했다. 태윤이 먼저 입을 열었다.

“길은 압니다. 사람이 몰리기 전에 움직이면.”

“누가 가겠대?”

시현이 쏘아보자 태윤은 시선을 내리지 않았다.

“사진 찍은 건 당신이잖아요.”

그는 짜증이 났다. 자기가 저질러 놓은 약속을 남이 기억하고 있어서.

하린이 시현의 가방을 열었다. 생수 반 병과 눅눅한 과자가 나왔다. 그녀는 과자 봉지를 네 몫으로 찢었다. 태윤의 것은 작업대 위에 놓았다.

“먹을 수 있어요?”

태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시현은 그의 손목 매듭을 풀되 창살에 걸린 끈은 남겨 두었다.

“앉아 있으면 닿고, 일어나면 못 닿게. 그 정도면 되지?”

“나보다 먼저 일어나지 마요.”

“아주 주문이 많네.”

태윤이 과자를 집었다. 시현은 괜히 먹는 모습을 끝까지 봤다. 남자가 부스러기를 손으로 받치자 비로소 자기 몫을 뜯었다.

서영이 빈 봉지를 접었다. 포장지 안쪽의 부스러기를 손끝으로 모으다가 자기 손톱을 보고 멈췄다. 없어진 손톱 자리였다.

시현은 모른 척 물병을 밀어 줬다. 돌아온 건 목소리뿐인가. 그 생각은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서영이 휴대전화를 켰다. 충전 단자에 금이 가 있었지만 화면은 살아 있었다. 저장해 둔 메시지를 읽던 손이 멈췄다.

“동생이……여기 간다고 했어요.”

그녀가 내민 화면에는 짧은 문장이 있었다.

누나 나 체육관 간다. 다 모이래. 충전도 해 준대.

시현은 위쪽의 전송 시각을 봤다. 이틀 전이었다. 하린이 장소를 확인했다.

“강서 체육관. 여기서 두 블록이면 돼요.”

그때 태윤의 과자 봉지가 멈췄다.

시현이 물었다.

“왜.”

태윤은 서영의 화면을 보고 있었다. 입가에 남았던 웃음이 사라졌다.

“거긴 들어가는 문하고 나오는 문이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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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를 물지 않는 좀비   9화. 치료 핑계는 하지 말고

    시현은 태윤의 얼굴을 똑바로 봤다.“내가 어디로 갔어?” “여기.” “그럼 나 봐. 아래 보지 말고.”태윤의 손이 서준의 어깨에서 움직였다. 시현은 자기 무릎으로 서준의 팔을 누르고 태윤의 옷깃을 잡았다.“혼자 둘 테니까 나가라는 말도 하지 마.”태윤이 눈을 감았다. 시현은 옷깃을 놓지 않았다. 태윤이 돌아보지 않는 동안 서영이 동생 이름을 불렀다. 하린은 손목을 댈 다른 끈을 찾았다.서준이 크게 몸을 뒤틀었다.시현의 손바닥이 바닥에 쓸렸다. 거즈가 벗겨졌다. 손을 빼려는데 서준의 얼굴이 돌아왔다. 턱 아래를 막은 손에 이가 닿았다.태윤이 서준의 몸을 돌렸다. 시현이 팔을 잡아 뺐다.아팠다. 이번에는 아까의 상처만 아픈 건지 알 수 없었다.하린이 새 거즈를 눌렀다. 시현은 손 대신 서준을 봤다. 바닥을 치던 발끝이 멈췄다.서영이 동생의 얼굴을 들여다봤다.“민서준.”그는 누나를 올려다봤다. 입술 안쪽에 피가 조금 묻어 있었다. 시현의 손바닥에서 난 피였다.“누나.”서영이 입을 막았다. 시현은 태윤을 봤다. 남자는 여전히 서준의 어깨를 누르고 있었다. 눈에서 붉은 기운이 조금씩 빠졌다.“손 힘 빼.”시현이 말하자 태윤은 그제야 서준을 놓았다.서준은 방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몰랐다. 자기 발목의 끈을 보고 얼굴을 찌푸렸다. 하린은 서영에게 동생 옆에 앉아 달라고 하고 시현의 손을 데리고 문 쪽으로 갔다.이번에는 시현도 아픈 걸 감추지 않았다.“이가 들어갔어요?” “상처 가장자리가 벌어졌어요. 아까랑 달라요. 씻고 봐야 해요.”태윤이 따라왔다. 하린은 두 사람을 번갈아 보더니 세면대가 있는 작은 방을 가리켰다.“같이 가요. 제가 금방 따라갈게요.”시현은 그 방 앞에서 멈췄다. 태윤이 물병을 열었다. 하린이 와서 손을 확인하는 동안 그는 문 가까이 서 있었다.“물린 자국은 지금 뚜렷하게 안 보여요. 그렇다고 괜찮다고 단정할 수는 없어요.”하린의 말에 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태윤은 그러지 못했다.“서준 씨는요.”시현

  • 나를 물지 않는 좀비   8화. 문을 여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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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를 물지 않는 좀비   7화. 먼저 가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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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를 물지 않는 좀비   6화. 갈아입고 나와요

    “일단 소리 지르지 마요.”하린이 계단 아래 빈 창고로 그들을 데려갔다. 농구공이 담긴 철망 카트 옆에 서영이 앉았다.“저 안 질렀어요.”시현이 말하자 하린은 태윤을 봤다.“이쪽이 먼저 나갈 것 같아서요.”태윤은 문 옆에 서 있었다. 오른손으로 손목의 검은 띠를 가리고 있었다.하린이 설명했다. 서준은 별도 격리실에 있었다. 감염 증상을 보인 지 이틀째지만 아직 말을 한다고 했다. 보호자 확인이 끝나면 담당자가 면회를 결정한다는 대답만 받았다.“그 담당자가 누군데.” “권도훈. 이곳 운영 책임자래요.”태윤이 문손잡이에서 손을 뗐다.시현은 그 작은 움직임을 봤다. 서영도 봤다.“아는 분이에요?”태윤은 잠시 서영을 마주 보지 못했다.“전에 같이 일했습니다.” “그럼 말해 주시면 안 돼요? 저 잠깐만 보면 돼요. 서준이한테 제가 살아 있다고.”태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시현은 그보다 먼저 하린에게 물었다.“물린 건 확실해요?” “제가 본 건 명단이에요. 아직 아무도 직접 못 봤어요.”서영이 고개를 숙였다. 시현은 그 앞에 쪼그려 앉았다.“사진 보냈다고 했죠. 그거 보여 줄 수 있어요?”사진 속 서준은 운동장 바닥에 앉아 손으로 브이를 만들고 있었다. 뒤로 흰 칸막이가 보였다. 칸막이에는 굵은 매직으로 7이라고 써 있었다.사진 아래에는 메시지가 하나 더 있었다.누나 나 기다려. 먼저 가지 마.시현은 휴대전화를 돌려줬다.“우리가 먼저 가는 일은 없어요.”하린이 그를 봤다. 시현은 모르는 척했다.문밖에서 자원봉사자가 수건과 옷을 내밀었다. 깨끗한 걸로 갈아입고 기다리라고 했다. 전기는 제한 중이고 물은 저수탱크에서 내려오니 아껴 써 달라는 말도 붙였다.시현은 옷을 받았다. 태윤의 왼쪽 소매에는 점장이 흘린 피가 말라붙어 있었다. 아직도 그 옷으로 사람 옆에 서 있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너도 갈아입어.”태윤이 계단 쪽을 보자 시현이 앞을 막았다.“하린 씨가 서영 씨랑 있을 거야. 사람 만나러 가는 거면 그 꼴부터 바꿔.

  • 나를 물지 않는 좀비   5화. 두 사람 사이

    “잡은 손은 놓고 얘기해 주시면 좋겠는데.”회색 조끼의 남자가 태윤을 봤다. 시현은 그제야 손목에 힘이 들어간 걸 느꼈다.“아는 사람이에요?”그가 묻자 태윤은 고개를 저었다.“얼굴은 처음 봅니다.”“조끼는 봤고?”남자의 웃음이 조금 줄었다.“안에서 무슨 일 있었나 본데, 지금 여기서 따질 시간은 없어요. 식수하고 충전 자리 있습니다. 걸을 수 있는 분은 따라오세요.”하린이 말했다.“안 걸을 수 있는 분은요?”“차로 데리러 옵니다.”“주차장에 한 분 있어요. 묶어 놨는데 다친 데부터 봐야 해요.”남자가 차 안을 들여다보고 수첩에 번호를 적었다. 서영이 그의 조끼를 잡았다.“민서준. 스무 살이에요. 이틀 전에 체육관으로 갔는데.”“이름으로 찾을 수 있어요. 저는 정욱이라고 합니다.”태윤은 여전히 시현의 손목을 쥐고 있었다. 시현이 손을 돌려 그의 엄지 밑을 눌렀다. 태윤이 놓았다.“도망가자는 거면 말로 해.”“서영 씨는 갈 겁니다.”“그러니까.”시현은 물병을 가방에 넣었다.“네가 아는 걸 안에서 알려 줘. 모르는 척하다가 끌고 나오지 말고.”태윤이 무언가 말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둘의 대화를 들은 정욱은 먼저 골목으로 들어갔다.체육관으로 가는 길에는 낡은 플라스틱 의자가 띄엄띄엄 놓여 있었다. 방향을 표시하는 종이가 등받이에 붙어 있었다. 종이에는 살아 있는 사람은 왼쪽이라고 적혀 있었다.시현은 오른쪽 골목을 봤다. 쓰레기봉투뿐이었다.“누가 저따위로 써 놨어.”정욱이 종이를 떼 주머니에 넣었다.“급하게 만들다 보니.”“급하면 그냥 화살표만 그려요.”하린이 그의 가방을 밀었다. 지금 싸우지 말라는 뜻이었다.체육관 정문 앞에는 사람 열댓 명이 줄을 서 있었다. 문 한쪽에 발전기 소리가 낮게 깔렸다. 안에서는 탁구대 두 개를 붙여 충전 케이블을 늘어놓았다. 몇몇 사람은 휴대전화를 손에 쥔 채 잠들어 있었다.서영이 처음으로 걸음을 빨리했다.“서준아.”대답은 없었다. 시현은 팔을 붙잡는 대신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

  • 나를 물지 않는 좀비   4화. 돌아온다고 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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