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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Autor: 꽃샘바람
강아연의 손이 허공에 잠깐 머물렀다. 팔꿈치가 단단한 바닥에 부딪힌 순간 밀려온 통증에 저도 모르게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하지만 성준서는 걱정하는 기색이라곤 전혀 없이 그녀를 차갑게 내려다보았다.

과다 출혈까지 겪으면서 겨우 낳은 아이가 바닥에 쓰러져 고통스러워하는 엄마를 보고도 이토록 무심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심장을 칼로 도려내는 듯한 아픔에 강아연은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다.

지금 이 순간에야 성준서의 이목구비만 그녀와 조금 닮았을 뿐 다른 건 모두 아빠 성규연을 똑 닮았다는 걸 느꼈다. 차갑고 무정한 모습이 실로 판박이였다.

강아연의 눈시울이 저도 모르게 붉어졌다. 갑자기 세상이 빙글빙글 돌더니 눈앞이 캄캄해졌다.

결국 정신을 잃고 쓰러지고 말았다.

도우미가 구급차를 불러 강아연을 병원으로 옮겼다.

...

다시 눈을 떴을 때 지독한 소독약 냄새가 코를 찔렀다.

“위장 기능 이상으로 인한 급성 위염입니다.”

의사가 진단을 내리면서 식단에 신경을 쓰고 스트레스를 받지 않게 조심하라고 했다.

강아연이 창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사모님, 대표님께 전화드릴까요?”

도우미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사실 도우미는 전화할 용기가 없었다. 성규연이 강아연에게 마음이 없다는 걸 성씨 가문 사람들 모두가 알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성씨 가문의 안주인인데 알리지 않는다는 것도 말이 안 되었다.

“아니요. 괜찮아요. 조금만 쉬면 나아질 거예요.”

강아연이 애써 미소를 지어 보였다.

“여기 있지 말고 집에 가서 쉬세요.”

애써 강한 척하는 모습에 도우미는 달리 방법이 없다는 듯 고개를 젓고는 병실을 나섰다.

병실에 강아연 혼자만 남게 되었다.

그녀가 누워서 쉬려던 그때 문 앞에 어린아이가 나타났는데 바로 성준서였다.

“준서야.”

성준서가 갑자기 나타날 거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다. 하지만 조금 전 성준서가 망설임 없이 그녀를 피하고 또 극심한 고통으로 몸부림치는 걸 빤히 보면서도 가만히 있던 모습이 떠오르자 마음이 복잡해졌다.

순간 아이가 멀게 느껴졌고 그녀에게 관심도 없는 듯했다.

“엄마.”

성준서가 갑자기 맑고 앳된 목소리로 불렀다. 그 부름에 강아연의 마음속 응어리가 눈 녹듯 녹아내렸고 창백했던 얼굴에도 미소가 번졌다.

“엄마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마.”

강아연은 다정하게 위로하면서 사랑스러운 아들을 안으려 했다.

성준서가 어릴 적부터 성씨 가문에서 엄격한 교육을 받으며 자랐기에 표현에 서툴 뿐 마음속으로는 엄마를 걱정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여 성규연이 아무리 그녀를 싫어해도 성준서를 위해서라면 모든 걸 참아낼 수 있었다.

나중에 성규연이 강아연과 이혼하고 심소연과 재혼해서 아들이 새엄마의 손에서 힘들어하는 일이 절대 있어선 안 되었다.

재벌가에서 벌어지는 상속권 싸움을 그녀가 모를 리 없었다. 그녀는 그저 아들을 지키고 싶었다.

그 생각에 성준서를 향한 강아연의 눈빛이 더욱 따뜻해졌다.

그런데 강아연이 성준서의 어깨를 잡으려던 그때 성준서가 말했다.

“엄마, 아빠랑 이혼하면 안 돼요?”

성준서가 빤히 올려다보면서 진지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 순간 손을 뻗은 강아연은 저도 모르게 멈칫했다.

‘준서의 눈에도 나랑 규연 씨의 결혼 생활이 파국에 이르렀다는 게 보이나? 이렇게 어린 애가 어쩌다가 이런 생각을 하는 거지?’

강아연은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다정하게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그저 아이가 불안한 마음에 묻는 말이라 생각하여 더욱 부드럽게 다독였다.

“무서워하지 마, 준서야. 엄마는 아빠랑 이혼 안 해...”

“그런데 엄마가 아빠랑 이혼 안 하면 소연 이모가 내 엄마가 될 수 없잖아요.”

그 말에 강아연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뭐라고?”

차라리 잘못 들었기를 바랐다. 성준서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왔다는 게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성준서가 다시 한번 못을 박았다.

“엄마가 아빠랑 이혼했으면 좋겠어요. 그럼 소연 이모가 아빠랑 결혼해서 내 엄마가 될 수 있잖아요.”

어린아이의 말이라면 맑고 순수해야 마땅하지만 지금 이 순간은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강아연의 심장을 깊숙이 파고들었다.

“심소연이 네 엄마가 되면 그럼 엄마는?”

강아연이 물었다. 흥분한 감정을 극도로 억누른 탓에 목소리가 다 떨렸다.

친아들이 다른 여자를 엄마로 삼고 싶어 하다니.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성준서는 고개를 숙이고 손가락을 꼼지락거릴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또다시 전의 과묵한 모습으로 돌아갔다.

아이의 반응을 살피던 강아연은 문득 이런 의심이 스쳤다.

‘아니야. 준서가 절대 아무 이유 없이 이런 말을 할 리가 없어.’

강아연이 성준서의 어깨를 덥석 잡고 걱정스러운 얼굴로 캐물었다.

“준서야, 엄마한테 말해봐. 혹시 누가 너한테 이렇게 말하라고 시켰어?”

성준서가 계속 입을 열지 않자 강아연의 얼굴이 더욱 일그러졌다.

“대체 누가 널 협박했어? 엄마한테 말해봐.”

아이가 여전히 입도 뻥긋하지 않아 점점 초조해진 나머지 언성이 높아졌다.

“말 좀 하라고...”

성준서가 울음을 터뜨리더니 큰 소리로 떼를 쓰기 시작했다.

“엄마 너무 무서워요. 흑흑... 엄마 미워요. 엄마 말고 소연 이모한테 갈래요. 난 소연 이모가 좋아요...”

강아연은 순간 말을 잇지 못했다.

“강아연, 지금 뭐 하는 거야?”

누군가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화들짝 놀란 강아연이 고개를 돌려보니 성규연이 병실 문 앞에 떡하니 서 있었다. 강아연의 두 눈에 의문이 스쳤다.

‘이 시간이면 심소연한테 갔을 텐데 왜 여기 있지? 혹시 날 보러 왔나?’

강아연이 의아한 눈빛으로 성규연을 올려다보았다.

하지만 다음 순간 심소연이 성규연의 뒤에서 나타나더니 걱정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강아연 씨, 괜찮아요?”

강아연의 눈빛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역시 내가 괜한 생각을 했네. 규연 씨가 심소연을 버리고 올 만큼 내가 더 중요할 리가 없지.’

성준서는 성규연을 보자마자 엉엉 울면서 달려가더니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소리쳤다.

“아빠, 엄마가 너무 무서워요. 엄마는 나쁜 여자예요. 소연 이모가 내 엄마가 됐으면 좋겠어요...”

한 마디 한 마디가 가늘고 날카로운 은침처럼 강아연의 심장을 쿡쿡 찔러 숨 쉬는 것조차 고통스러웠다.

“성준서.”

성규연이 얼굴을 찌푸린 채 화를 내면서 호통쳤다.

“소란 피우지 마. 이런 버르장머리는 어디서 배웠어?”

성준서는 겁을 먹고 순식간에 입을 다물었다. 붉어진 눈으로 훌쩍거리는 모습이 참으로 가여웠다.

“규연아, 준서가 아직 어려서 뭘 잘 몰라서 그러는데 왜 애한테 소리를 지르고 그래.”

성규연의 이름을 부르는 심소연의 말투가 다정하기 그지없었다. 그녀는 곧바로 성준서에게 손을 내밀었다.

“준서야, 무서워하지 말고 이모 옆으로 와.”

“성준서!”

강아연도 다급하게 아들을 부르면서 손을 내밀었다.

“엄마한테 와.”

사실 남편은 심소연에게 양보할 수 있었다. 하지만 피를 나눈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이렇게 쉽게 다른 여자를 엄마로 받아들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강아연은 도무지 믿을 수 없어 간절한 눈빛으로 성준서를 쳐다보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성준서는 강아연과 심소연을 번갈아 보다가 결국 심소연에게로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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Último capítulo

  • 나를 버린 그들에게   제100화

    “선생님...”강아연의 눈가가 순간 뜨거워졌다.“꽃꽂이 예술과 관련해서 궁금한 거 있으면 언제든 나한테 연락해. 내가 바빠서 시간이 없다고 하면 그냥 물러나? 언제 시간이 있냐고 끝까지 따져야지. 그렇게 낯을 가리고는 무슨 큰일을 하겠다고 그래?”임지우는 여전히 쏘아붙이듯 잔소리를 던졌다.강아연은 그 말에 쑥스럽고 미안해 고개를 숙이며 정중하게 말했다.“네, 명심할게요, 선생님. 고마워요.”“고맙다는 말은 아직 이른 거야. 진짜 성과를 보여줬을 때 고마워해도 안 늦어.”임지우는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그만하자. 난 일이 있어서 먼저 가봐야겠어.”마침 엘리베이터가 도착하며 문이 열렸다.그 순간, 성규연이 방에서 나왔고 엘리베이터 앞의 임지우와 강아연 일행을 발견했다.임지우 역시 성규연을 발견했지만 흘긋 한 번 보고는 이내 시선을 거두며 강아연을 바라보았다.“참, 네가 별로 듣고 싶지 않아도 한마디는 꼭 해야겠네.”강아연은 그 말에 고개를 다시 들었다.“그런 쓰레기 같은 놈을 곁에 둬서 뭐 하게? 고이 모셔놓고 절이라도 하려고?”임지우가 가차 없이 쏘아붙이자 강아연은 당황해 말문이 막혔다.그 사이 임지우는 엘리베이터에 탑승했고 문은 천천히 닫혔다.하유리는 처음에는 임지우의 말뜻을 잘 몰랐지만 아까 방에서 임지우가 했던 말들과 연결해 보자 순간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임지우의 유일한 제자가 강아연이란 사실을 하유리는 알고 있었다.그렇다면 아까 했던 제자 얘기가 진짜 강아연의 이야기였을 가능성이 컸다.하유리는 갑자기 임지우가 성규연에게 그 남자를 어떻게 평가하냐고 돌직구를 날리던 장면을 떠올렸고 순간 입을 틀어막으며 강아연을 가리켰다.“아연아, 너, 너랑 성규연 대표랑... 너희 둘이...”‘그렇다면 강아연이 언급했던 이혼 준비 중인 남편이 바로 미래 그룹 대포인 성규연이었단 말인가?’게다가 아까 그 방 안에 있던 모든 사람이 성규연과 심소연이 커플이거나 부부일 거라고 추측했었다.그런데 사실은 강아연이 성규연의 아내였고 그 심

  • 나를 버린 그들에게   제9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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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를 버린 그들에게   제98화

    “맞아요, 그 남자는 여전히 그렇게 쓰레기 노릇을 하고 있나요?”서지원도 호기심이 생긴 듯 임지우에게 물었었다.서지원은 이런 남의 뒷얘기를 듣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었다.“그 남자가 여전히 쓰레기인지는 잘 모르겠네요.”임지우는 가볍게 주위를 쓱 둘러보더니 나중에는 성규연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물었다.“성 대표님은 그 남자가 쓰레기라고 생각하세요?”그 말이 떨어지자 현장의 분위기가 순간 얼어붙었다.다들 임지우가 성규연에게 그런 질문을 던질 줄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임지우의 질문을 보니 성 대표가 이 일과 관련이 있을 수도 있었다.심소연은 그 질문을 듣자마자 미간을 살짝 찌푸리더니 뭔가 떠오른 듯 번쩍 고개를 돌려 강아연을 바라봤다.그러고는 이내 강아연이 오늘 그 꽃꽂이 예술 작업실 여사장과 함께 들어왔다는 걸 기억해 냈다.‘그렇다면 강아연이 바로 그 녹비홍수 작품을 제작한 장본인이란 말인가? 설마 강아연이 임지우의 제자란 말인가? 그럼 아까 임지우가 한 얘기는 전부 날 돌려 깐 거였어?’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심소연의 표정이 급격히 변했다.하지만 심소연은 이내 눈빛에 잔잔한 비웃음을 담은 채 침착함을 되찾았다.강아연 따위가 임지우의 단 하나뿐인 제자라는 건 절대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성규연은 별다른 반응 없이 식사용 냅킨으로 입을 닦고는 담담하게 대답했다.“잘 모르겠네요.”그 대답은 아무런 감정 기복도 없이 평범해서 별다른 의미가 느껴지지 않았다.“그래요?”임지우가 슬쩍 웃었다.“그냥 궁금해서 물어본 거였어요. 괜히 신경 쓰지 마세요, 성 대표님. 꼭 본인 얘기라고 생각하실 필요 없어요.”임지우의 마지막 한마디에는 묘한 뉘앙스가 실려 있었다.하지만 성규연은 여전히 태연했고 고개만 살짝 끄덕였다.“그리고 심소연 씨가 제 제자가 되고 싶다는 얘기 말인데요.”임지우는 다시 심소연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웃었다.“심소연 씨는 워낙 똑똑하니까 뭐든 빨리 배울 수 있을 거예요. 같이 작업할 수 있다면 그것

  • 나를 버린 그들에게   제97화

    심소연은 본래 여러 가지 타이틀을 획득한 인물이었다.완벽한 이미지를 철저히 쌓아 올려 어떤 자리에 나가도 물 만난 물고기처럼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타입이었다.이번엔 국내 꽃꽂이 예술 시장의 공백을 포착하고 이 분야에서 첫 주자가 되기 위해 보다 깊은 이해를 쌓으려는 듯 보였다.그리고 만약 심소연이 국내 꽃꽂이 예술 명인의 제자라는 타이틀까지 더해진다면 이후 이 업계에서 입지도 훨씬 수월해질 것이다.그래서 심소연은 지금 임지우의 대답을 기대하고 있었다.어차피 성규연의 체면을 봐서라도 임지우가 거절하지는 못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다른 사람들도 하나같이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두 사람의 대화를 지켜보고 있었다.소문에 따르면 임지우는 제자를 받는 기준이 매우 엄격해서 웬만한 사람은 제자로 두지 않고 지금까지 단 한 명밖에 두지 않았다고 했다.그런데 그 유일한 제자도 존재감이 희박해 공식적인 자리에 모습을 드러낸 적도 없어 세간에서 임지우가 이미 그 제자를 내친 게 아니냐는 소문도 돌고 있었다.이런 상황에서 이번에 심소연이 성공적으로 제자로 임지우의 슬하에 들어간다면 심소연은 임지우의 유일한 제자가 되는 셈이었다.하지만 임지우는 기대가 가득한 심소연의 눈빛을 마주 보면서 성급하게 답을 내놓지 않고 빙그레 웃으며 입을 열었다.“심소연 씨나 여기 계신 분들도 다 아시겠지만 저는 이미 제자가 하나 있어요.”그 말에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왜냐하면 임지우가 공식 석상에서 본인의 제자를 직접 언급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그 아이는 재능이 뛰어나고 감각도 남달랐죠. 제작한 작품은 항상 탁월한 예술적 감각이 묻어 있었고요. 그래서 첫 대회 출전에서 좋은 성과를 내기도 했어요.”임지우의 목소리는 어느새 애정과 동경이 가득한 뉘앙스로 변해 있었다.“이 바닥 사람들과 저는 꽃꽂이 예술 쪽에서 제 제자의 잠재력이 무궁무진하다고 봤어요. 언젠가는 저를 능가해 제가 이를 수 없는 경지에 오를 거라고 생각할 정도로요. 근데 아쉽게도...”임지우의

  • 나를 버린 그들에게   제96화

    “황 대표님, 과찬이세요.”심소연은 웃으며 잔을 들었다.성규연 역시 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제가 보건대 심소연 씨는 진짜 대단한 것 같아요. 젊은 나이에 이 정도 기획력이면 업계의 모범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죠.”“그러니까요. 들은 소문이 있는데 심소연 씨는 성 대표님과 같은 대학 출신이라던데요? 거긴 세계 최상위 명문 대학이 아닌가요? 말 그대로 살아 있는 전설이죠.”“다들 과찬이세요.”심소연은 겸손하게 웃으며 성규연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저랑 성 대표님은 동갑이지만 성 대표님은 저보다 1년 먼저 대학 과정을 수료하셨거든요. 성 대표님은 저한테 늘 닿고 싶은 목표 같은 존재예요.”정점에서 만난 엘리트 두 명이라니, 이보다 더 로맨틱한 스토리가 있을 리 없었다.순간 다들 두 사람이 더 잘 어울리는 것 같다고 공감하기 시작했다.심소연 정도는 돼야 최상급 클래스의 성규연에게 어울리는 여자라고 자신 있게 나설 수 있을 것이다.이 분위기를 타고 사람들은 성규연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앞다투어 심소연을 추켜세웠다.“심소연 씨도 정말 훌륭하시죠. 성 대표님과 완전 천생연분이에요.”“맞아요, 찰떡궁합 그 자체죠.”“그나저나 심소연 씨 다음 기획도 꽃꽂이를 주제로 한다면서요? 슬쩍 방향을 좀 알려줄 수 있을까요?”누군가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묻자 하유리 역시 귀가 쫑긋했다.꽃꽂이라면 하유리의 작업실과도 딱 맞는 분야였다.이번 기회에 심소연과 미래 그룹이라는 두 거물과 계속 협력한다면 그야말로 하유리의 작업실을 세상에 알리는 절호의 기회였다.“그건 말이죠...”심소연은 임지우 쪽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웃었다.“사실 제가 꽃꽂이 예술에 관심은 많았지만 어떻게 입문해야 할지 잘 몰랐어요. 그래서 다음 달에 임 선생님의 일정을 여쭤보고 임 선생님을 스승으로 모시고 싶다는 계획이 있거든요.”이 말이 떨어지자마자 하유리의 얼굴빛이 살짝 달라졌다.하유리가 임지우의 스케줄을 맞추려고 모든 수단을 다 썼는데 심소연은 가볍게 한마디만 해서 임지우를

  • 나를 버린 그들에게   제95화

    “그만하세요.”성규연이 덤덤한 말투로 대화에 끼어들어 그 어설픈 기싸움에 쐐기를 박았다.떠들던 사람들도 더는 캐묻지 않고 입을 닫았지만 눈치 빠른 사람들은 속으로 다들 같은 생각을 했다.“저건 누가 봐도 성 대표님이 심소연 씨를 보호해 주는 거잖아.”“맞아, 공개하진 않았지만 그게 오히려 더 확실한 보호지.”이건 딱 봐도 이번 전시가 성규연 덕분에 심소연이 성공적으로 기획했다는 소리가 안 나오게 하려는 의도였다.“보나 마나 심소연 씨는 미래의 대표님 사모님이겠네. 거의 확정이야.”심소연은 고개를 살짝 숙였고 눈빛에는 알 수 없는 뿌듯함이 스쳤다.서지원은 주변의 그런 분위기를 묵묵히 듣고 있다가 옆에 앉은 강아연을 흘끗 바라봤다.강아연은 여전히 아무런 감정도 드러내지 않았고 간간이 옆자리 사람들과 무난하게 대화를 주고받았는데 두 사람의 대화에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였다.하지만 서지원은 그 무덤덤한 표정을 보다가 성규연과 심소연의 다정한 분위기가 떠올라 괜히 불편한 기분이 들었다.서지원은 메뉴판을 들어 강아연의 앞에 내밀며 퉁명스럽게 말했다.“먹고 싶은 거 있으면 고르세요.”서지원이 자발적으로 메뉴를 넘긴 게 의외였는지 강아연은 고개를 갸웃했다.“괜찮아요. 음식을 이미 많이 시켰잖아요.”강아연은 웃으며 서지원의 호의를 거절했다.이미 30가지가 넘는 요리가 쭉 적혀 있었으니 굳이 더 시킬 필요도 없었다.게다가 며칠 아팠던 탓에 강아연은 지금 죽 한 그릇 정도밖에 못 넘길 기분이었다.그런데 다음 순간, 서지원이 직원에게 말했다.“죽 하나 더 주세요. 되도록 부드럽게 오래 끓인 걸로요.”“네, 알겠습니다.”직원이 공손히 고개를 끄덕였다.서지원을 바라보는 강아연의 눈빛에 놀람과 의아함이 섞였다.서지원이 어떻게 강아연이 죽을 먹고 싶다는 걸 알아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더군다나 서지원의 이런 행동은 평소 강아연에게 보여줬던 차가운 태도와는 영 딴판이었다.하지만 강아연은 곧 쓸데없는 생각을 접었다.이 죽은 강아연을 위해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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