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

제3화

작가: 꽃샘바람
강아연은 평소 남에게 쉽게 마음을 열지 않는 성준서가 심소연에게 쪼르르 달려가 손을 잡고 피난처라도 찾은 것처럼 의지하는 모습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강아연에게 이렇게 의지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지금 이 순간 강아연은 마음이 산산이 부서지는 것만 같았다.

그녀의 낯빛이 점점 창백해지는 걸 본 성규연이 얼굴을 찌푸리고 물었다.

“갑자기 어디가 아픈 거야?”

그를 쳐다보는 강아연의 눈빛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도우미한테 준서가 병원에 왔다는 소리를 듣고 걱정돼서 왔는데 아픈 사람이 아연 씨일 줄은 몰랐어요.”

심소연은 아무렇지 않게 말을 꺼내면서 걱정스러운 얼굴로 강아연을 쳐다보았다.

“아연 씨, 괜찮은 거죠? 내가 남아서 간호해줄까요?”

“아프긴 뭐가 아파. 네가 직접 간호해줄 필요까진 없어.”

성규연이 무심하게 말했다.

강아연이 다시 고개를 숙였고 눈빛도 어두워졌다.

‘정말 구제 불능이야, 난. 규연 씨가 날 걱정해서 왔을 리가 없잖아.’

“규연아, 무슨 말을 그렇게 해? 아연 씨는 네 와이프야.”

심소연이 강아연을 보면서 진지하게 말했다.

“아연 씨, 오해하지 말아요. 규연이가 남을 걱정하는 게 서툴러서 그런 거니까. 전에 내가 아팠을 땐 옆에서 간호도 해주고 그랬어요...”

“괜찮아요, 난.”

강아연은 그녀와 성규연 사이의 달콤했던 과거를 듣고 싶지 않았다. 아무렇게 않은 척하려고 심호흡한 후 성규연에게 말했다.

“준서 잘 시간이니까 데리고 먼저 들어가요.”

성준서는 내일 성씨 가문의 본가로 가서 개인 수업을 받아야 했다. 성규연의 어머니는 성준서가 늦는 걸 가장 싫어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성규연의 어머니가 강아연을 싫어했기에 성준서에게도 더욱 혹독하게 대하는 것이었다.

성규연은 입술을 굳게 다문 채 강아연을 빤히 쳐다보았다. 성준서가 그의 바짓가랑이를 잡아당기면서 하품했다.

“아빠, 졸려요.”

“우리 준서 졸리구나? 그럼 아빠랑 이모랑 집에 가서 잘까?”

심소연이 아이의 앞에 쪼그리고 앉아 다정하게 말했다.

“네.”

성준서가 성규연의 손가락을 잡았다.

“가요, 아빠.”

성규연은 그제야 강아연에게서 시선을 거두었다. 강아연은 침대에 누운 다음 등을 돌렸다가 문이 다시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나서야 고개를 돌렸다.

문의 유리창을 통해 성준서가 한 손으로는 성규연을, 다른 한 손으로는 심소연을 잡고 걸어가는 모습을 보았다. 누가 봐도 그들이 완벽한 한 가족이었다. 그 완벽함은 그녀의 심장을 쿡쿡 찔렀다.

그들의 모습이 사라진 후 강아연은 얼굴을 닦았다. 손에 눈물이 촉촉하게 묻어 있었다.

연성의 밤은 꽤 쌀쌀했다. 강아연은 위가 계속 조금씩 아파 몸을 잔뜩 웅크린 자세로 누워야만 겨우 잠들 수 있었다.

다음 날 아침 도우미가 담백한 쌀죽과 반찬을 가져왔다. 입맛이 없었던 강아연은 두어 입만 먹고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사모님, 대표님께서 사모님이 다 드실 때까지 지켜보라고 하셨어요.”

도우미가 난처한 표정으로 좋게 타일렀다.

“그래야 빨리 낫지 않겠어요? 대표님께서도 사모님을 걱정하고 계세요.”

강아연이 힘없이 피식 웃었다.

‘날 걱정한다고? 그럴 리가.’

하지만 그녀는 더 이상 그런 것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왜냐하면 성준서가 자꾸만 걸렸기 때문이었다.

‘심소연이 돌아온 지 겨우 한 달밖에 안 됐는데 준서가 벌써 저렇게 따른다고? 대체 왜?’

바로 그때 그녀의 휴대폰에 메시지 한 통이 도착했다.

강아연은 성준서가 보낸 줄 알고 눈빛마저 밝아졌다. 그런데 메시지를 보낸 사람은 다름 아닌 심소연이었다.

짧은 동영상이었는데 영상 속에서 성규연이 식탁 앞에 앉아 태블릿 PC로 재정 보고서를 보고 있었고 성준서가 공중에 두 발을 흔들면서 그의 옆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심소연은 손수건으로 성준서의 손을 닦아주고 있었다.

그들의 모습은 더할 나위 없이 따뜻했지만 강아연은 몸과 마음 모두 차갑게 식어버렸다.

“준서야, 이모가 해준 아침 맛있었어?”

심소연이 웃으며 물었다.

“네. 맛있었어요.”

성준서가 환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그럼... 엄마가 해준 아침이랑 이모가 해준 아침 중에 누가 해준 게 더 맛있어?”

그러자 성준서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당연히 이모가 해준 게 더 맛있죠. 엄마는 맨날 내가 싫어하는 당근이랑 야채만 해주는데 이모는 안 그러잖아요. 이모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요.”

강아연은 스스로를 비웃었다.

성준서가 조산아로 태어난 바람에 어릴 때부터 몸이 약했다. 강아연은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도록 식단에 각별히 신경 썼고 심지어 영양사 자격증까지 취득하여 매일 다양한 음식으로 영양을 챙겨줬다.

그런데 그녀의 정성스러운 보살핌이 오히려 성준서의 미움을 사고 말았다.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일인가?

성준서는 심소연의 옷소매를 잡아당기면서 눈을 깜빡였다.

“이모, 여기 살면서 매일 아침 맛있는 거 해주면 안 돼요?”

“여기 살면서?”

심소연의 얼굴에 곤란한 기색이 스치더니 성규연의 눈치를 슬쩍 보았다.

“네. 그럼 나랑 아빠가 맨날 이모를 볼 수 있잖아요.”

성준서가 기대에 찬 얼굴로 심소연의 대답을 기다렸다. 영상은 심소연이 대답하려던 순간에 멈췄다.

강아연은 마음속에 커다란 돌덩이가 내려앉은 듯 숨쉬기조차 어려웠다.

심소연은 이제 그녀의 남편뿐만 아니라 아이까지 빼앗으려 했다. 이대로 내버려 뒀다간 그녀의 집까지 들어올 기세였다.

“안 돼...”

강아연은 위를 부여잡고 몸을 일으켰다.

‘무조건 막아야 해.’

그런데 병실 문을 연 순간 문 앞에 검은 마스크와 검은 모자를 눌러쓴 사람이 서 있었다.

강아연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상대가 재빨리 안으로 들어오더니 그녀의 입과 코를 틀어막았다.

“웁...”

화들짝 놀란 강아연이 두 눈을 크게 뜨고 버둥거렸지만 이내 의식을 잃고 말았다.

...

강아연이 다시 눈을 떴을 땐 해가 이미 밝아 있었다. 그곳은 병실이 아닌 폐공장이었다.

“깨어났어?”

얼굴에 칼자국이 난 남자가 다가오더니 코웃음을 쳤다.

“무슨 잠을 그렇게 오래 자? 꼬박 하루를 잤어, 너.”

‘하루나 잤다고?’

강아연은 무심결에 자신의 옷을 내려다보았다. 여전히 환자복이었는데 살짝 구겨졌을 뿐 여전히 단정했다.

흉터남이 싸늘하게 말했다.

“안 건드렸으니까 볼 거 없어. 위에서 널 건드리지 말라는 지시만 없었어도 멀쩡히 내버려 두지 않았을 텐데.”

‘위에서?’

강아연의 두 눈에 의혹이 스쳤다. 그러다가 눈앞의 날카로운 칼을 보고는 기겁했다.

“뭐... 뭐 하려는 거야?”

“그렇게 긴장할 거 없어. 우린 그냥 돈이 조금 필요할 뿐이야.”

다른 뚱뚱한 남자가 말했다.

“난... 돈 없어.”

강아연이 잔뜩 움츠리면서 경계했다.

아버지가 감옥에 가고 어머니가 병상에 누운 후로 여윳돈이 없었기에 성씨 가문 사모님이라는 신분을 지키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야만 성규연이 매달 어느 정도 돈을 주니까.

하지만 매번 수표를 받을 때마다 그녀는 자신이 너무도 비참하게 느껴졌다. 그 수표들은 성규연이 그녀를 욕구 해소용 도구로 사용한 뒤 주는 돈이었다.

강아연이 시선을 늘어뜨렸고 두 눈에 씁쓸함이 스쳤다.

받은 돈은 어머니의 병원비를 내는 카드에 전부 넣었다. 한꺼번에 병원비 삼 개월 치를 지급해서 얼마 남지도 않았다.

“없긴. 너 성씨 가문 사모님이잖아. 성씨 가문이 경성의 재벌이라 남편한테 돈이 많다는 거 알아.”

흉터남이 휴대폰을 그녀에게 던져주었다.

“당장 남편한테 전화해.”

사실 강아연은 전화하고 싶지 않았다. 하루 동안 실종되었는데도 성씨 가문에서는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그건 성규연이 그녀를 찾은 적도 없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찾지 않았다는 건 신경 쓰지 않는다는 뜻이고.

강아연이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이 납치범들이 왜 성규연에게 전화하라고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당장 전화하라고.”

흉터남이 칼을 들고 위협하면서 재촉했다.

“알았어. 전화할게.”

강아연은 어쩔 수 없이 부들부들 떨면서 성규연에게 전화를 걸었다.

사실 전화가 연결된 순간 아주 조금은 기대하고 있었다.

성규연이 그녀를 사랑하진 않아도 그래도 부부로 함께 살아온 정이 있어 나 몰라라 하진 않을 것이라고.

그런데 휴대폰 너머에서 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심소연의 목소리에 강아연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하지만 흉터남의 흉악한 눈빛을 본 순간 어쩔 수 없이 태연한 척 물었다.

“규연 씨는요? 급한 일이 있어서요...”

“아, 규연이요? 아직 안 일어났는데.”

이 작품을 무료로 읽으실 수 있습니다
QR 코드를 스캔하여 앱을 다운로드하세요

최신 챕터

  • 나를 버린 그들에게   제100화

    “선생님...”강아연의 눈가가 순간 뜨거워졌다.“꽃꽂이 예술과 관련해서 궁금한 거 있으면 언제든 나한테 연락해. 내가 바빠서 시간이 없다고 하면 그냥 물러나? 언제 시간이 있냐고 끝까지 따져야지. 그렇게 낯을 가리고는 무슨 큰일을 하겠다고 그래?”임지우는 여전히 쏘아붙이듯 잔소리를 던졌다.강아연은 그 말에 쑥스럽고 미안해 고개를 숙이며 정중하게 말했다.“네, 명심할게요, 선생님. 고마워요.”“고맙다는 말은 아직 이른 거야. 진짜 성과를 보여줬을 때 고마워해도 안 늦어.”임지우는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그만하자. 난 일이 있어서 먼저 가봐야겠어.”마침 엘리베이터가 도착하며 문이 열렸다.그 순간, 성규연이 방에서 나왔고 엘리베이터 앞의 임지우와 강아연 일행을 발견했다.임지우 역시 성규연을 발견했지만 흘긋 한 번 보고는 이내 시선을 거두며 강아연을 바라보았다.“참, 네가 별로 듣고 싶지 않아도 한마디는 꼭 해야겠네.”강아연은 그 말에 고개를 다시 들었다.“그런 쓰레기 같은 놈을 곁에 둬서 뭐 하게? 고이 모셔놓고 절이라도 하려고?”임지우가 가차 없이 쏘아붙이자 강아연은 당황해 말문이 막혔다.그 사이 임지우는 엘리베이터에 탑승했고 문은 천천히 닫혔다.하유리는 처음에는 임지우의 말뜻을 잘 몰랐지만 아까 방에서 임지우가 했던 말들과 연결해 보자 순간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임지우의 유일한 제자가 강아연이란 사실을 하유리는 알고 있었다.그렇다면 아까 했던 제자 얘기가 진짜 강아연의 이야기였을 가능성이 컸다.하유리는 갑자기 임지우가 성규연에게 그 남자를 어떻게 평가하냐고 돌직구를 날리던 장면을 떠올렸고 순간 입을 틀어막으며 강아연을 가리켰다.“아연아, 너, 너랑 성규연 대표랑... 너희 둘이...”‘그렇다면 강아연이 언급했던 이혼 준비 중인 남편이 바로 미래 그룹 대포인 성규연이었단 말인가?’게다가 아까 그 방 안에 있던 모든 사람이 성규연과 심소연이 커플이거나 부부일 거라고 추측했었다.그런데 사실은 강아연이 성규연의 아내였고 그 심

  • 나를 버린 그들에게   제99화

    다른 사람들도 모두 강아연 쪽을 바라보았다.임지우에게 직접 칭찬받고 작품에 대해 평가까지 받는 사람이라면 절대 보통 인물이 아닐 터였다.강아연을 그저 별 볼 일 없이 얼굴만 예쁜 꽃병쯤으로 여겼던 이들도 그제야 강아연이 바로 그 찬사를 받았던 전시 작품의 플로리스트라는 걸 깨닫고 놀라움과 감탄이 뒤섞인 눈빛으로 강아연을 바라보았다.강아연을 향한 무례한 시선은 점차 존중과 경외감으로 바뀌었다.그런 시선을 지켜본 심소연은 무릎 위에 얹은 손을 꼭 움켜쥐었다.본인에게는 돌직구로 경고성 멘트를 날리고 강아연에겐 직접 다가가서 칭찬까지 해주는 임지우를 보며 심소연의 눈동자 속엔 억울함과 질투가 서려 있었다.심소연은 성규연이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궁금해서 슬며시 성규연을 바라보았다.하지만 성규연은 강아연이 이 상황과 전혀 상관없는 사람이라는 듯 그녀를 무심하게 쳐다볼 뿐, 별다른 표정 변화가 없었다.그제야 심소연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하지만 심소연이 강아연을 바라보는 눈빛에는 여전히 불편한 기색이 감돌았다.한편, 강아연은 임지우의 평가를 들은 후, 복잡한 감정이 동공을 스쳤다.임지우가 자리를 떠나고 나서야 정신이 번쩍 든 강아연은 급히 일어나 조심스럽게 다른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밖으로 나가 임지우를 찾았다.하유리도 그 모습을 보고 재빨리 따라나섰다.그때, 임지우는 막 엘리베이터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선생님!”강아연이 숨을 헐떡이며 불렀다.임지우는 고개를 돌려 강아연과 하유리를 발견하고 미간을 찌푸리며 나무랐다.“몇 번을 말했어? 예술 업계의 사람은 여유와 절제가 기본이라고. 근데 5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덜렁거려? 너희 둘은 내 얼굴에 먹칠할 작정이야?”강아연과 하유리는 서로 눈을 마주치고 나란히 고개를 숙였다.두 사람은 임지우의 잔소리를 듣는 게 익숙한 듯 보였다.“그리고 너 말이야.”임지우가 하유리를 손가락질하며 말했다.“5년이나 지났는데도 넌 왜 여전히 그 모양 그 꼴이야? 입이 왜 그렇게 가벼워? 내 스케

  • 나를 버린 그들에게   제98화

    “맞아요, 그 남자는 여전히 그렇게 쓰레기 노릇을 하고 있나요?”서지원도 호기심이 생긴 듯 임지우에게 물었었다.서지원은 이런 남의 뒷얘기를 듣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었다.“그 남자가 여전히 쓰레기인지는 잘 모르겠네요.”임지우는 가볍게 주위를 쓱 둘러보더니 나중에는 성규연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물었다.“성 대표님은 그 남자가 쓰레기라고 생각하세요?”그 말이 떨어지자 현장의 분위기가 순간 얼어붙었다.다들 임지우가 성규연에게 그런 질문을 던질 줄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임지우의 질문을 보니 성 대표가 이 일과 관련이 있을 수도 있었다.심소연은 그 질문을 듣자마자 미간을 살짝 찌푸리더니 뭔가 떠오른 듯 번쩍 고개를 돌려 강아연을 바라봤다.그러고는 이내 강아연이 오늘 그 꽃꽂이 예술 작업실 여사장과 함께 들어왔다는 걸 기억해 냈다.‘그렇다면 강아연이 바로 그 녹비홍수 작품을 제작한 장본인이란 말인가? 설마 강아연이 임지우의 제자란 말인가? 그럼 아까 임지우가 한 얘기는 전부 날 돌려 깐 거였어?’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심소연의 표정이 급격히 변했다.하지만 심소연은 이내 눈빛에 잔잔한 비웃음을 담은 채 침착함을 되찾았다.강아연 따위가 임지우의 단 하나뿐인 제자라는 건 절대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성규연은 별다른 반응 없이 식사용 냅킨으로 입을 닦고는 담담하게 대답했다.“잘 모르겠네요.”그 대답은 아무런 감정 기복도 없이 평범해서 별다른 의미가 느껴지지 않았다.“그래요?”임지우가 슬쩍 웃었다.“그냥 궁금해서 물어본 거였어요. 괜히 신경 쓰지 마세요, 성 대표님. 꼭 본인 얘기라고 생각하실 필요 없어요.”임지우의 마지막 한마디에는 묘한 뉘앙스가 실려 있었다.하지만 성규연은 여전히 태연했고 고개만 살짝 끄덕였다.“그리고 심소연 씨가 제 제자가 되고 싶다는 얘기 말인데요.”임지우는 다시 심소연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웃었다.“심소연 씨는 워낙 똑똑하니까 뭐든 빨리 배울 수 있을 거예요. 같이 작업할 수 있다면 그것

  • 나를 버린 그들에게   제97화

    심소연은 본래 여러 가지 타이틀을 획득한 인물이었다.완벽한 이미지를 철저히 쌓아 올려 어떤 자리에 나가도 물 만난 물고기처럼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타입이었다.이번엔 국내 꽃꽂이 예술 시장의 공백을 포착하고 이 분야에서 첫 주자가 되기 위해 보다 깊은 이해를 쌓으려는 듯 보였다.그리고 만약 심소연이 국내 꽃꽂이 예술 명인의 제자라는 타이틀까지 더해진다면 이후 이 업계에서 입지도 훨씬 수월해질 것이다.그래서 심소연은 지금 임지우의 대답을 기대하고 있었다.어차피 성규연의 체면을 봐서라도 임지우가 거절하지는 못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다른 사람들도 하나같이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두 사람의 대화를 지켜보고 있었다.소문에 따르면 임지우는 제자를 받는 기준이 매우 엄격해서 웬만한 사람은 제자로 두지 않고 지금까지 단 한 명밖에 두지 않았다고 했다.그런데 그 유일한 제자도 존재감이 희박해 공식적인 자리에 모습을 드러낸 적도 없어 세간에서 임지우가 이미 그 제자를 내친 게 아니냐는 소문도 돌고 있었다.이런 상황에서 이번에 심소연이 성공적으로 제자로 임지우의 슬하에 들어간다면 심소연은 임지우의 유일한 제자가 되는 셈이었다.하지만 임지우는 기대가 가득한 심소연의 눈빛을 마주 보면서 성급하게 답을 내놓지 않고 빙그레 웃으며 입을 열었다.“심소연 씨나 여기 계신 분들도 다 아시겠지만 저는 이미 제자가 하나 있어요.”그 말에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왜냐하면 임지우가 공식 석상에서 본인의 제자를 직접 언급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그 아이는 재능이 뛰어나고 감각도 남달랐죠. 제작한 작품은 항상 탁월한 예술적 감각이 묻어 있었고요. 그래서 첫 대회 출전에서 좋은 성과를 내기도 했어요.”임지우의 목소리는 어느새 애정과 동경이 가득한 뉘앙스로 변해 있었다.“이 바닥 사람들과 저는 꽃꽂이 예술 쪽에서 제 제자의 잠재력이 무궁무진하다고 봤어요. 언젠가는 저를 능가해 제가 이를 수 없는 경지에 오를 거라고 생각할 정도로요. 근데 아쉽게도...”임지우의

  • 나를 버린 그들에게   제96화

    “황 대표님, 과찬이세요.”심소연은 웃으며 잔을 들었다.성규연 역시 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제가 보건대 심소연 씨는 진짜 대단한 것 같아요. 젊은 나이에 이 정도 기획력이면 업계의 모범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죠.”“그러니까요. 들은 소문이 있는데 심소연 씨는 성 대표님과 같은 대학 출신이라던데요? 거긴 세계 최상위 명문 대학이 아닌가요? 말 그대로 살아 있는 전설이죠.”“다들 과찬이세요.”심소연은 겸손하게 웃으며 성규연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저랑 성 대표님은 동갑이지만 성 대표님은 저보다 1년 먼저 대학 과정을 수료하셨거든요. 성 대표님은 저한테 늘 닿고 싶은 목표 같은 존재예요.”정점에서 만난 엘리트 두 명이라니, 이보다 더 로맨틱한 스토리가 있을 리 없었다.순간 다들 두 사람이 더 잘 어울리는 것 같다고 공감하기 시작했다.심소연 정도는 돼야 최상급 클래스의 성규연에게 어울리는 여자라고 자신 있게 나설 수 있을 것이다.이 분위기를 타고 사람들은 성규연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앞다투어 심소연을 추켜세웠다.“심소연 씨도 정말 훌륭하시죠. 성 대표님과 완전 천생연분이에요.”“맞아요, 찰떡궁합 그 자체죠.”“그나저나 심소연 씨 다음 기획도 꽃꽂이를 주제로 한다면서요? 슬쩍 방향을 좀 알려줄 수 있을까요?”누군가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묻자 하유리 역시 귀가 쫑긋했다.꽃꽂이라면 하유리의 작업실과도 딱 맞는 분야였다.이번 기회에 심소연과 미래 그룹이라는 두 거물과 계속 협력한다면 그야말로 하유리의 작업실을 세상에 알리는 절호의 기회였다.“그건 말이죠...”심소연은 임지우 쪽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웃었다.“사실 제가 꽃꽂이 예술에 관심은 많았지만 어떻게 입문해야 할지 잘 몰랐어요. 그래서 다음 달에 임 선생님의 일정을 여쭤보고 임 선생님을 스승으로 모시고 싶다는 계획이 있거든요.”이 말이 떨어지자마자 하유리의 얼굴빛이 살짝 달라졌다.하유리가 임지우의 스케줄을 맞추려고 모든 수단을 다 썼는데 심소연은 가볍게 한마디만 해서 임지우를

  • 나를 버린 그들에게   제95화

    “그만하세요.”성규연이 덤덤한 말투로 대화에 끼어들어 그 어설픈 기싸움에 쐐기를 박았다.떠들던 사람들도 더는 캐묻지 않고 입을 닫았지만 눈치 빠른 사람들은 속으로 다들 같은 생각을 했다.“저건 누가 봐도 성 대표님이 심소연 씨를 보호해 주는 거잖아.”“맞아, 공개하진 않았지만 그게 오히려 더 확실한 보호지.”이건 딱 봐도 이번 전시가 성규연 덕분에 심소연이 성공적으로 기획했다는 소리가 안 나오게 하려는 의도였다.“보나 마나 심소연 씨는 미래의 대표님 사모님이겠네. 거의 확정이야.”심소연은 고개를 살짝 숙였고 눈빛에는 알 수 없는 뿌듯함이 스쳤다.서지원은 주변의 그런 분위기를 묵묵히 듣고 있다가 옆에 앉은 강아연을 흘끗 바라봤다.강아연은 여전히 아무런 감정도 드러내지 않았고 간간이 옆자리 사람들과 무난하게 대화를 주고받았는데 두 사람의 대화에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였다.하지만 서지원은 그 무덤덤한 표정을 보다가 성규연과 심소연의 다정한 분위기가 떠올라 괜히 불편한 기분이 들었다.서지원은 메뉴판을 들어 강아연의 앞에 내밀며 퉁명스럽게 말했다.“먹고 싶은 거 있으면 고르세요.”서지원이 자발적으로 메뉴를 넘긴 게 의외였는지 강아연은 고개를 갸웃했다.“괜찮아요. 음식을 이미 많이 시켰잖아요.”강아연은 웃으며 서지원의 호의를 거절했다.이미 30가지가 넘는 요리가 쭉 적혀 있었으니 굳이 더 시킬 필요도 없었다.게다가 며칠 아팠던 탓에 강아연은 지금 죽 한 그릇 정도밖에 못 넘길 기분이었다.그런데 다음 순간, 서지원이 직원에게 말했다.“죽 하나 더 주세요. 되도록 부드럽게 오래 끓인 걸로요.”“네, 알겠습니다.”직원이 공손히 고개를 끄덕였다.서지원을 바라보는 강아연의 눈빛에 놀람과 의아함이 섞였다.서지원이 어떻게 강아연이 죽을 먹고 싶다는 걸 알아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더군다나 서지원의 이런 행동은 평소 강아연에게 보여줬던 차가운 태도와는 영 딴판이었다.하지만 강아연은 곧 쓸데없는 생각을 접었다.이 죽은 강아연을 위해 시

더보기
좋은 소설을 무료로 찾아 읽어보세요
GoodNovel 앱에서 수많은 인기 소설을 무료로 즐기세요! 마음에 드는 작품을 다운로드하고, 언제 어디서나 편하게 읽을 수 있습니다
앱에서 작품을 무료로 읽어보세요
앱에서 읽으려면 QR 코드를 스캔하세요.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