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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버린 그들에게
나를 버린 그들에게
Author: 꽃샘바람

제1화

Author: 꽃샘바람
강아연은 생각했다. 짝사랑 10년에 결혼 생활 5년이면 성규연의 마음이 아무리 차가워도 조금씩 녹일 수 있을 거라고.

하지만 모두 그녀만의 착각이었다.

욕실에서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강아연이 침대 옆에 서 있던 그때 휴대폰에 사진 한 장이 도착했다.

사진 속 배경은 경성에서 가장 고급스러운 레스토랑이었다. 성규연이 어떤 여자와 마주 앉은 채 한없이 부드럽고 따뜻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그 여자는 강아연도 아는 사람이었다. 바로 성규연의 첫사랑이자 전 여자친구 심소연이었다.

지난달에 귀국했는데 돌아온 날 밤에 성규연은 강아연을 내팽개치고 그녀를 찾아갔다.

성규연에게 있어서 심소연이 하늘의 달과도 같은 존재라면 강아연은 새하얀 벽에 묻은 눈에 거슬리는 모기 피 같은 존재였다.

욕실 문이 열리더니 성규연이 샤워 가운을 걸치고 나왔다. 촉촉한 수증기가 공기 중에 퍼져 나갔다.

강아연이 휴대폰을 내려놓고 돌아선 그때 훤칠한 키의 성규연이 그녀에게로 다가오더니 그녀의 턱을 잡고 고개를 숙였다.

“웁...”

강아연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지만 성규연은 놓아줄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오히려 고통스러워하는 그녀의 모습을 즐기는 듯했다. 성규연은 그녀의 입술을 깨물고 허리를 감싸 안은 채 침대로 향했다.

“잠깐만요...”

강아연은 그의 가슴팍을 잡고 밀어내면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몸이 좀 안 좋아요.”

뭘 잘못 먹었는지 저녁 식사 후부터 위가 경련이 일어난 것처럼 아팠다.

하지만 성규연은 대수롭지 않게 코웃음을 치더니 그녀의 턱을 잡고 억지로 고개를 들게 했다.

“강아연, 5년 전부터 나한테 그렇게 매달리더니 이젠 밀당이라도 하겠다는 거야? 어디서 순진한 척이야?”

노골적인 조롱이 섞인 말투였다.

그 순간 강아연의 얼굴이 눈에 띄게 창백해졌다.

“그런 거 아니에요...”

하지만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성규연은 그녀를 침대에 내던졌다. 조금의 배려도 없이, 참을성도 없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강아연은 고통이 밀려와 얼굴이 저절로 찌푸려졌지만 이를 악물고 참는 수밖에 없었다.

성규연은 겉만 보면 참으로 점잖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그녀에게 조금의 배려도 없었고 오히려 일부러 복수라도 하는 것처럼 못살게 굴었다.

강아연은 고통을 참으면서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신이 심혈을 기울여 빚은 듯 뚜렷한 윤곽에 잘생긴 얼굴, 하지만 표정은 냉랭하기 그지없었다. 심지어 이런 상황에서도 조금의 부드러움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사진 속의 성규연은 심소연을 바라볼 때 한없이 다정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사실 그에게도 부드러운 면이 있었다. 다만 그 대상이 강아연이 아니었을 뿐.

지금 이 순간 성규연의 품속에서 따뜻하고 행복해야 할 텐데 강아연의 마음은 물에 젖어 부풀어 오른 스펀지처럼 답답했고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

강아연의 눈가에서 눈물이 한 방울 툭 떨어졌다.

“왜 울어?”

성규연은 무심하게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고는 몸을 일으켰다. 뒤처리를 마친 후 약을 그녀에게 건넸다.

강아연은 이불로 몸을 가린 채 일어나 앉아 약을 받았다. 피임했는데도 항상 조심 또 조심했다.

왜냐하면 5년 전에 강아연이 우연히 그의 아이를 가졌고 그 바람에 어쩔 수 없이 결혼한 것이었다.

두 사람이 결혼했다는 소식이 세상에 알려지진 않았지만 그 일로 심소연은 상처를 받고 해외로 떠나버렸다.

해서 성규연이 이토록 그녀를 미워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고서야 매번 죽일 듯이 괴롭힐 리가 있겠는가?

그가 건넨 약을 본 순간 강아연은 또 위가 아프기 시작했다.

“오늘은 안 먹으면 안 될까요?”

성규연은 아무 말 없이 물 한 잔을 건넸다. 그 의미는 더없이 명확했다.

강아연은 이를 악물고 물을 받았다. 약을 삼키자마자 성규연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알았어, 지금 갈게.”

성규연이 한결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대답하더니 곧장 외투를 집어 들었다.

이 늦은 시간에 그를 불러내고 또 그가 이렇게 다정하게 대할 수 있는 사람이 심소연 말고는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강아연은 모른 척하며 물었다.

“이 늦은 시간에 어디 가요?”

“너랑은 상관없어.”

성규연은 이 말만 남기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침실을 나섰다.

계단의 주황색 불빛 속에서 점점 멀어져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강아연은 시선을 늘어뜨렸다. 두 눈에 쓸쓸함이 스쳤다.

약을 먹어서인지 위가 다시 쥐어짜듯 아팠다. 더는 참을 수 없어 침대에 누워 몸을 웅크렸다.

몇 분 후 도우미가 방 문을 두드리며 물었다.

“사모님, 대표님과 도련님이 오늘 입으신 옷을 세탁실에 가져다 놓았는데 지금 빨 건가요, 아니면 내일에 빨 건가요?”

위를 움켜쥐고 한참을 진정한 후에야 강아연은 겨우 몸을 일으켰다.

“지금 빨게요.”

내일은 또 내일 할 일이 있으니까.

성규연은 다른 사람이 그의 옷을 만지는 걸 싫어했기 때문에 그의 셔츠 같은 건 항상 그녀가 직접 손으로 빨았다. 그리고 아들은 어릴 때부터 먼지 알레르기가 있어 옷 세탁에 더욱 신경을 써야 했다. 하여 도우미에게 맡기는 게 마음이 놓이지 않아 아들의 방도 매일 직접 청소했고 학용품, 그림책도 매일 꼼꼼하게 닦았다.

강아연은 아픈 몸을 이끌고 세탁실로 향했다. 그러다가 안에서 두 도우미가 수군거리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옷까지 직접 빨아야 하다니. 사모님은 재벌 사모님이라기보다는 그냥 도우미 같지 않아요?”

“쉿, 그런 말 함부로 하지 말아요. 잘리고 싶어서 그래요?”

“틀린 말도 아니잖아요...”

그런데 세탁실 문을 연 순간 문 앞에 강아연이 떡 하니 서 있는 걸 보았다. 도우미는 놀란 나머지 주저앉을 뻔했다.

“사... 사모님.”

도우미가 떨면서 말하자 강아연은 화를 내지 않고 나지막하게 말했다.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나가봐요.”

“알겠습니다.”

도우미는 연신 고개를 끄덕인 후 황급히 도망쳤다.

그들이 떠나고 나서야 강아연의 미소가 서서히 사라졌다. 시선을 늘어뜨리고 성규연의 옷이 담긴 빨래통으로 걸어가 셔츠를 집어 들었다.

성규연은 다른 사람의 손길을 극도로 싫어했다. 그런데 지금 그의 셔츠에 향긋하고 매혹적인 장미 향수 냄새가 연하게 풍겼다.

강아연은 평소 성씨 가문의 꽃들을 관리했다. 꽃향기가 섞이는 걸 막기 위해 진한 향수를 뿌리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건 심소연의 향수인 게 분명했다.

대체 얼마나 가까이 붙어있었기에 상대방의 향수 냄새가 배었을까?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강아연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리더니 마음을 진정하려고 숨을 깊게 내쉬었다.

그녀에게는 성규연 말고 아들도 있었다. 성규연이 그녀를 사랑하진 않아도 아들과는 핏줄로 이어진 사이였다.

그 생각에 강아연은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는 것 같았다. 아들을 위해서라도 안주인의 역할을 다해야 했다. 그래야 아들이 성씨 가문을 이을 정당한 후계자가 될 수 있으니까.

그런데 아들의 옷을 집어 들자마자 갑자기 속이 울렁거렸다. 입을 막고 황급히 화장실로 달려가 오늘 저녁에 먹은 음식을 모두 토해냈다.

토하고 나면 괜찮아질 줄 알았는데 계속 이어지는 극심한 통증에 거의 정신을 잃을 지경이었다. 마지막 힘을 짜내어 세면대 위에 놓인 유리컵을 밀어 떨어뜨렸다.

쨍그랑 소리에 성준서가 달려왔다.

성준서는 강아연과 성규연의 아들이자 5년 동안의 절망적인 결혼 생활을 버티게 해준 강아연의 유일한 희망이었다.

“준서야...”

강아연의 두 눈이 반짝이더니 성준서에게 손을 내밀었다.

‘준서가 아직 날 걱정하고 있어서 정말 다행이야.’

그런데 그녀의 손이 닿기 직전 성준서가 갑자기 뒷걸음질 치더니 그녀를 피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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