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5화

Author: 꽃샘바람
강씨 가문이 몰락하기 전 강아연은 외동딸로 아버지 강명우 청장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부족함 없이 자랐고 괴롭힘이라곤 당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성규연과 결혼한 후에는 도우미 취급을 받았고 이젠 이런 곳에 팔려온 신세가 되었다.

‘안 돼, 절대 안 돼.’

“난 성규연 씨의 아내야. 감히 날 건드렸다간 규연 씨가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야.”

강아연이 큰소리로 외쳤다.

이제 와서 그녀가 기댈 수 있는 건 성규연의 이름뿐이었다. 그의 이름에 겁을 먹고 풀어주길 바랐다.

“성씨 가문의 사모님이라고?”

여자는 우스갯소리라도 들은 듯 웃기 시작했다.

“네까짓 게 사모님이면 난 영부인이야. 성 대표가 아직 미혼이라는 건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인데 뻔뻔스럽게 성 대표의 아내라고?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야?”

강아연은 변명하고 싶었지만 한마디도 할 수가 없었다.

성규연은 한 번도 그녀의 신분을 공개한 적이 없었고 심지어 그들의 결혼조차 세상에 드러나서는 안 되는 비밀인 것처럼 꽁꽁 숨겼다. 하여 그녀가 성규연의 아내라는 걸 아무도 믿지 않았다.

여자가 갑자기 의미심장한 말을 덧붙였다.

“솔직히 말해서 실컷 가지고 놀다 질린 애인을 우리 가게에 판 돈 많은 사람들이 엄청 많아. 자기 출셋길을 닦으려고 그러는 거거든. 어쩌면 너를 이곳에 팔아넘긴 것도 네 남자의 뜻일지 몰라.”

그 말에 강아연은 벼락이라도 맞은 듯 휘청거리면서 하마터면 쓰러질 뻔했다.

‘그럴 리 없어. 규연 씨는 절대 그러지 않을 거야. 날 싫어하긴 해도 그래도 내가 준서 엄마인데... 게다가 나랑 잠자리할 때면 진심이었단 말이야. 나한테 이렇게까지 무정할 리가 없어...’

하지만 흉터남이 했던 말이 그녀의 귓가에 맴돌았다.

“윗분이 우리 마음대로 하래.”

강아연은 손톱이 살갗에 박힐 정도로 주먹을 꽉 쥐었다.

“빨리 옷 갈아입어. VIP 손님이 기다리고 있다고.”

여자는 짜증을 내면서 강아연의 옷깃을 잡아 일으켰다.

“싫어!”

강아연은 어디서 그런 힘이 솟아났는지 여자를 밀쳐내고 룸에서 뛰쳐나갔다.

“빌어먹을 년이! 거기 서.”

여자가 날카롭게 소리치며 뒤쫓아왔다.

강아연은 이곳을 벗어나려고 미친 듯이 달렸다.

그리고 성규연에게 묻고 싶었다. 이 모든 게 정말 그의 뜻인지, 그녀를 이렇게까지 미워하는지 말이다.

한참 달리고 나니 점점 지쳐갔다. 실수로 넘어진 바람에 무릎이 퉁퉁 부어올랐다. 고통이 밀려와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가 몸을 일으키려고 발버둥 쳤다.

“규연아, 이거 먹어봐...”

바로 그때 눈앞에 있는 방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는데 심소연의 목소리였다.

그렇다면 그녀가 말한 성규연이...

강아연은 간절한 눈빛으로 문 틈새를 쳐다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좁은 틈새 사이로 성규연의 잘생긴 모습이 보였다.

그녀의 두 눈이 반짝이더니 손을 들어 문을 열려 했다.

“이모, 이제부터 연이 엄마라고 불러도 돼요?”

성준서의 앳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연이 엄마? 연이?’

강아연은 벼락이라도 맞은 듯 온몸이 굳어버렸다.

‘소연이, 아연이, 연이...’

그러니까 그동안 밤마다 성규연이 애타게 불렀던 이름은 바로 심소연이었던 것이다.

결국 자신은 그의 닿을 수 없는 첫사랑을 대신해 욕망을 해소하던, 그저 하찮은 대용품에 불과했을 뿐이었다.

‘벌써 엄마라고 부르고 싶은 거야? 내가 죽든 말든 아예 신경도 안 쓰는구나.’

그 순간 온몸에 힘이 쭉 빠져 들어 올렸던 손이 바닥에 툭 떨어졌다.

“당연히 되지. 준서가 부르고 싶은 대로 불러.”

심소연이 달콤하게 웃더니 성규연을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

“규연아, 아연 씨가 벌써 하루나 안 들어왔어.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니겠지?”

“왜 걔 얘기를 꺼내고 그래.”

성규연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의 말투는 산 정상에 녹지 않고 쌓인 만년설처럼 차갑기 그지없었다.

“걔가 죽든 말든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아...”

‘죽든 말든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고...’

강아연은 이젠 쓴웃음조차 지어지지 않았다. 눈물이 두 볼을 타고 흘러내려 손등에 툭 떨어졌다.

바로 그때 뒤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직도 도망치려고? 당장 끌어내.”

강아연은 재빨리 손을 뻗어 방 문을 열려 했다. 하지만 겨우 1mm밖에 열지 못했는데 발목이 붙잡혀 뒤로 질질 끌려가고 말았다.

그녀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규연... 으읍.”

말이 끝나기도 전에 누군가 그녀의 입을 틀어막고 복도 모퉁이로 끌고 갔다.

“빌어먹을 년.”

뺨을 후려치는 소리와 함께 강렬한 통증이 몰려왔다.

“VIP 손님을 방해했다간 절대 가만두지 않아.”

따귀를 맞아 강아연의 얼굴이 옆으로 돌아갔고 입가에도 붉은 핏자국이 번졌다.

그때 방 문이 갑자기 열리더니 성규연이 걸어 나왔다. 누군가 그를 부르는 소리를 들은 모양이었다.

강아연이 미친 듯이 몸부림치면서 소리를 질렀지만 이름을 제대로 부를 수가 없었다.

여자가 재빨리 나서서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대표님. 새로 온 애가 철이 없어서 소란을 피웠네요.”

성규연의 안색이 별로 좋지 않았다.

“그런 애를 왜 데리고 있어요? 그냥 처리해버려요.”

강아연은 목이 바짝 말라 아무 소리도 낼 수 없었다.

짝하는 소리와 함께 또 한 번 뺨을 맞은 그녀는 힘없이 바닥에 쓰러졌다. 멀리서 성준서가 심소연의 손을 잡고 방에서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아빠, 소연 엄마랑 같이 집에 가요.”

심소연의 하얀 얼굴이 빨개지더니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강아연은 세 사람이 함께 서 있는 모습을 무표정하게 쳐다보았다. 한 폭의 따뜻한 그림 같았다.

“봤어? 저분이 바로 성 대표님의 진짜 와이프셔. 아무것도 아닌 게 감히 사모님을 사칭해?”

그러고는 또다시 강아연의 뺨을 후려갈겼다. 천둥소리는 그녀의 10년 짝사랑과 5년 결혼 생활이 얼마나 터무니없고 가소로웠는지 알려주는 듯했다.

강아연은 오늘에 이르러서야 깨달았다. 성규연은 그녀를 미워하고 혐오하는 걸 넘어 없애버리고 싶어 한다는 것을. 그래야 그토록 갈망하던 첫사랑과 다시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있으니까.

그리고 그녀는 늘 필요 없는 존재였다.

밖에 빗줄기가 거세게 쏟아지고 있었다. 창문에 부딪히는 빗소리는 강아연의 뺨을 때리는 소리와 같았다. 고통이 온몸으로 번져나갔지만 마음의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규연 씨...”

강아연은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 힘겹게 입을 열었다. 목소리가 하도 낮아서 바람에 흩날려 사라질 정도였다.

귓가에 그들의 초라하기 짝이 없는 결혼식에서 목사가 그녀에게 물었던 말이 맴돌았다.

“강아연 씨, 성규연 씨와 결혼하여 평생 성규연 씨만을 사랑하며 살겠습니까?”

“네.”

한때 그녀가 성규연에게 품었던 사랑은 이젠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이미 만신창이가 된 그녀의 심장에 꽂혔다.

“이젠 규연 씨를 사랑하지 않을 거예요.”

우르릉 쾅쾅.

하늘에서 천둥이 쳤다.

강아연의 시야가 점점 흐릿해지고 의식이 혼미해지던 바로 그 순간.

“강아연!”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는데 약간의 다급함도 섞여 있었다. 그리고 그 목소리는 성규연의 목소리 같았다.

‘난 정말 구제 불능이야. 이 와중에 환청까지 들리다니.’

강아연은 입가에 피를 묻힌 채로 스스로를 비웃고는 완전히 쓰러졌다. 그런데 그녀를 받아준 건 차갑고 딱딱한 바닥이 아니라 따뜻한 품이었다.

한때는 그녀가 그렇게 안기고 싶어 했지만 지금은 밀어내려는 그 품.

...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Comments (1)
goodnovel comment avatar
Jo Jo
ㅋㅋ 작가가 ㅡ연ㅡ들어가는 이름 좋아하나보네!! ㅡㅡㅎㅎ아님 ,이름 생각하는것도 귀찮던가! ㅡ소연, 아연,성규연..
VIEW ALL COMMENTS

Latest chapter

  • 나를 버린 그들에게   제168화

    “자기야, 넌 늙지 않았어.”박경준은 부드러운 뺨을 꼬집었다.“겨우 스물일곱이잖아. 한창 예쁠 나이야.”“다른 여자들에게도 이렇게 해?”정도희가 갑자기 물었다. 목소리에는 감정이 드러나지 않았다.박경준은 잠시 멈췄다.“다른 여자들?”‘그 여자들이 기쁘게 해 주면 다 자기라고 불러?’정도희는 마음속으로만 물었다. 괜히 상처받을 말을 듣고 싶지 않아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뜨거웠던 뺨은 정신을 차리자 천천히 식었다. 그녀는 손을 뻗어 그를 밀어내며 재촉했다.“왜 아직도 안 움직여?”하지만 박경준은 입꼬리만 올릴 뿐 산처럼 몸 위를 누른 채 꼼짝하지 않았다. 귓가에 몸을 숙여 얇은 입술로 속삭였다.“조금 더 오래 있어야 성공 확률이 높아지지.”정도희는 할 말을 잃었다.박경준은 그녀가 자신의 아이를 낳게 하는 일에 몹시 집착하는 듯했다.예전에는 늘 피임했고, 일이 끝난 뒤에도 흔적을 깨끗이 정리했다. 자신에게 골칫거리를 남기지 않으려 무척 조심스러웠다.하지만 그날 밤 정도희가 그의 요구를 받아들인 뒤로 모든 것이 달라졌다.그는 더는 어떤 피임도 하지 않았다. 매번 성공 가능성을 높인다며 더 오래 함께 있으려 했다.성공에 도움이 된다는 다양한 자세를 찾아보고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 썼다.지금 정도희의 허리 아래에 받쳐 둔 베개도 박경준이 놓은 것이었다.‘그렇게 아이를 원하는 걸까?’정도희는 복잡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녀는 다시 아이를 갖기 어려웠다.그래서 그의 조건을 받아들인 것이었다.그가 원하는 대로 협조할 뿐 결과가 어떻게 되는지는 자신의 책임이 아니었다.박경준이 한 번 자신의 마음을 속였으니 자신도 그를 한 번 이용하는 셈이었다. 공평했다.그래도 상황이 달라질까 걱정돼 한마디 물었다.“성규연이 아연이 행방을 물어본 적 있어?”박경준의 표정이 미묘해졌다.물론 물었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니었다.성규연의 힘으로 강아연이 연성에 왔다는 사실을 알아내지 못할 리 없었다.박경준이 계속 일부러 감추

  • 나를 버린 그들에게   제167화

    “당연히 아니야.”정도희는 빈틈없는 얼굴로 웃었다.“내가 약속을 어길 사람처럼 보여? 아직 임신하지 않았으니 임신한 뒤에 일을 그만둬도 늦지 않잖아.”“내 능력을 의심하는 거야?”박경준이 눈을 가늘게 떴다.정도희는 어떻게 생각이 갑자기 그쪽으로 튀었는지 몰라 멈칫했다.박경준은 그 침묵을 긍정으로 받아들이고, 손을 뻗어 뺨을 꼬집으며 작게 웃었다.“내가 얼마나 효율적인지 확실히 알려 주지.”신호가 초록색으로 바뀌자 시선을 돌리고 가속 페달을 밟았다. 차는 화살처럼 튀어 나갔다.아파트에 도착해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집에 들어가기도 전에 박경준이 손목을 잡아 끌어당기더니 턱을 들어 올리고 고개를 숙여 입술을 덮쳤다.“읏...”정도희의 눈에 놀란 빛이 스쳤지만 곧 그의 입맞춤에 응했다.분위기는 갈수록 뜨거워졌다. 거세고 끈질긴 입맞춤에 숨이 막혔다. 아직 문 앞이라는 걸 깨달은 정도희는 그의 가슴을 밀며 간신히 숨을 골랐다.“먼저... 들어가.”“정도희, 한 층에 한 집뿐인데 뭘 부끄러워해?”박경준은 대수롭지 않게 다시 입술을 덮치려 했다.“그래도 안 돼!”정도희는 얼굴을 돌렸다. 흰 뺨이 살짝 붉어졌다.“서 있으면 불편해.”박경준은 입꼬리를 당겼다.“유난스럽기는.”그는 한 손으로 그녀의 턱을 잡고 다른 손으로 문을 열었다.지문 인식 잠금장치가 풀리자 정도희를 현관 안으로 밀어 넣고 문을 쾅 닫았다.정도희는 곁눈질로 집 안을 훑었다.검은색과 흰색, 회색으로 꾸민 집은 간결하면서도 고급스러웠다.박경준이 그녀를 집으로 데려온 건 처음이었다.수납장 위에 립스틱 하나가 놓여 있는 거로 보아, 다른 여자도 집에 데려왔던 모양이었다.정도희의 눈에 복잡한 빛이 스쳤다.“딴생각은 왜 해?”박경준은 거슬리는 안경을 벗으며 그녀의 단추를 풀어 시선을 자신에게 돌렸다.정도희는 눈앞의 남자에게 다시 시선을 맞췄다.잘생긴 얼굴은 부드럽고 온화해 보였지만 언제나 속을 알 수 없었다.자신이 그에게 어떤 존재인지 몰랐다. 박경준도 말

  • 나를 버린 그들에게   제166화

    정도희가 이번 작품 촬영을 마친 뒤 가장 편안한 순간이었다.그러나 멀지 않은 곳에 세워진 검은 벤틀리를 발견하는 순간, 내려놓았던 마음이 다시 긴장했다. 강아연의 팔을 안은 손에도 힘이 들어갔다.“왜 그래?”강아연이 걸음을 멈추고 의아하게 물었다.“아연아, 갑자기 처리하지 않은 일이 떠올랐어. 얼른 다녀와야 할 것 같아.”정도희의 목소리는 조금 부자연스러웠다.하지만 강아연은 정말 급한 일이 생겼다고 생각했다. 정도희의 직업 특성상 일정이 갑자기 생길 때도 있었다.“그럼 다녀와. 리아의 사인펜은 내가 사 갈게.”“그리고 리아를 집에 데려가 줄래?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해 줘.”정도희는 강아연의 손을 잡고 진지하게 말했다.“사생팬 중에는 무서운 사람도 있잖아. 내가 딸이 있다는 걸 알게 되면...”“걱정하지 마. 알아.”강아연이 고개를 끄덕였다.“조금 있다가 리아를 집으로 데려가 돌볼게. 밖에 못 나가게 하고.”그 아파트는 병원보다도 보안이 훨씬 철저했다.“고마워, 아연아.”정도희는 말을 마치고 몸을 돌렸다. 벤틀리 주인의 시선을 최대한 멀리 끌어내려고 병원과 반대 방향으로 걸었다.나중에는 거의 달리기 시작했다.하지만 두 다리로 네 바퀴를 이길 수는 없었다. 검은 벤틀리가 곁을 빠르게 스쳐 가더니 방향을 틀어 바로 앞을 가로막았다.운전석 창문이 반쯤 내려가며 잘생긴 얼굴이 드러났다. 은테 안경을 쓴 모습은 점잖고 부드러워, 우아한 선비 같은 분위기였다.하지만 정도희만은 잘 알았다. 반듯하게 다린 정장 아래 얼마나 단단한 근육이 숨겨져 있는지, 예의 바른 겉모습 안에 사람을 괴롭히기 좋아하는 마음이 얼마나 깊이 감춰져 있는지를.“나를 보자마자 도망쳐?”박경준이 눈을 들어 그녀를 바라봤다. 안경알 위로 차가운 빛이 스쳤다.“내가 그렇게 무서워? 양심도 없는 정 톱스타님.”정도희는 자신도 모르게 한 걸음 물러났다. 하지만 뒤쪽은 병원이었다. 그쪽으로 가 박경준까지 병원으로 끌고 갈 수는 없었다.그녀는 숨을 내쉬고 매혹적으로

  • 나를 버린 그들에게   제165화

    강아연 자신도 놀라웠다. 아이가 있다는 걸 몰랐을 때는 임신 반응이 그렇게 심했는데, 사실을 알고 난 뒤에는 점점 줄었다. 특히 경성을 떠난 뒤로는 거의 사라졌다.성준서를 임신했을 때는 세상이 뒤집힐 만큼 토했다. 입덧이 너무 심해 몇 번이나 병원에 입원했고, 특히 임신 후반에는 아이가 배 속에서 집이라도 무너뜨릴 듯 날뛰었다.임신 7개월 이후에는 거의 침대에서 지내며 걸어 다니지도 못했다.그에 비하면 이번 아이는 훨씬 얌전했다. 조용하고 차분한 게 여자아이 같았다.정도희도 같은 생각이었다. 자신이 정리아를 임신했을 때도 거의 고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정도희는 강아연의 배를 보며 웃었다.“아이도 엄마가 힘든 걸 아나 봐.”잠시 멈췄다가 아무렇지 않은 척 가까이 다가가 물었다.“이렇게 얌전하고 천사 같은 아이인데 정말 포기할 거야?”아무리 자연스럽게 말하려 해도 강아연은 곧바로 눈치챘다.“엄마가 나를 설득해 달라고 했지?”들킨 정도희는 더 돌려 말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응. 이모는 네가 계속 혼자 외롭게 지내는 걸 원하지 않으셔. 이 아이와 네가 만난 것도 인연이잖아.”강아연은 어머니가 바라는 마음을 잘 알았다. 앞으로 기댈 가족이 생기고, 아이 덕분에 상처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는 것이다.“하지만...”강아연은 갈등 어린 눈으로 마음속 걱정을 털어놨다.“같은 일을 또 겪을까 봐 무서워.”이 아이도 두 번째 성준서가 되어 가슴을 찢어 놓을까 두려웠다.“그럴 리가 없잖아!”정도희가 곧바로 부인했다.“성준서는 어릴 때부터 성씨 집안의 영향을 너무 많이 받았어. 네 시어머니가 평소에도 아이 앞에서 둘 사이를 계속 이간질했을지 몰라. 그래서 너와 멀어진 거겠지. 이번 아이를 처음부터 네 곁에서 키우면 결과는 분명 달라.”강아연도 그 사실을 알았다. 당시에는 성규연을 사랑했기에 반항할 용기도 힘도 없었고 서영란의 결정에 복종할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지금은 힘이 부족하더라도 성규연에게 아무 감정이 남지 않았다. 더는 부당한 대우를

  • 나를 버린 그들에게   제164화

    비릿한 피 냄새가 진동했다. 붉은 연꽃과 차가운 칼날이 동시에 피어난 듯했다.통증은 욕망에 불을 붙이는 가장 강한 도화선이었다. 한순간에 남자의 본성 깊이 잠든 살기까지 모조리 깨웠다.“강. 아. 연.”그는 이름을 몇 번이고 되뇌었다. 세 글자를 씹어 삼키듯 불렀다. 쓰라린 맛에 심장 끝이 떨리는데도 눈에는 집착이 점점 짙어졌다.강아연을 향한 집착이었다.“네가 어디로 숨든, 나 성규연은 끝까지 쫓아갈 거야. 절대로... 절대로 널 놓아주지 않아!”...“에취...”연성에서 꽃꽂이를 하던 강아연이 갑자기 재채기하고 손으로 입을 가렸다.“왜 그래? 감기 걸렸어?”주정애가 걱정하며 휴지를 한 장 뽑아 건넸다.“아니에요. 누가 제 생각을 하나 봐요.”강아연은 웃으며 휴지를 받고 가볍게 농담했다.“맞혔어요!”아이의 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강아연이 익숙한 목소리라고 생각한 순간, 병실 문이 열렸다. 작고 귀여운 여자아이가 멋진 펑크스타일 가죽 치마를 입고 들어와 신나게 외쳤다.“아연 엄마!”강아연의 눈이 반짝였다. 하던 일을 곧장 내려놓고 몸을 낮춰 두 팔을 벌렸다.“리아야!”정리아는 쪼르르 달려와 강아연의 품에 안겼다.뒤이어 들어온 정도희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리아야, 조심하라고 했잖아. 아연 엄마는 지금 몸을 함부로 움직이면 안 돼.”정리아는 얼른 조금 물러났다. 어린 목소리에는 걱정이 가득했다.“아연 엄마, 미안해요. 너무 오래 못 봐서 보고 싶었어요.”“괜찮아.”강아연은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쓰다듬고 정도희에게 입술을 삐죽였다.“아이 하나가 안긴다고 얼마나 다치겠어? 너무 긴장하지 마.”“그래도 조심해야지.”정도희는 대수롭지 않게 넘기지 않았다.“이미 수술을 예약했어도 받기 전까지는 주의해야 해.”주정애도 고개를 끄덕였다.“도희 말이 맞아. 몸이 제일 중요하니 친구 말을 들어.”“네, 알았어요.”강아연은 웃으며 대답하고 장난감을 가져와 정리아와 놀았다.정도희는 주정애와 강아연에게 줄 건강식품도 가져왔

  • 나를 버린 그들에게   제163화

    강아연의 얼굴을 싸늘하게 바라보며 그 웃음이 유난히 거슬린다고 생각했다.그녀를 혐오스러운 눈으로 바라봤다.그리고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강아연, 목적을 이뤘으니 기쁘겠네?”그 말에 강아연의 웃음이 서서히 사라지고 얼굴이 하얗게 질리는 걸 보면서도 우스울 만큼 통쾌한 복수심까지 느꼈다.그녀의 기쁨을 함께 느끼지 못했으니 자신의 분노라도 강아연에게 떠넘기려 했다.이제야 성규연은 당시 자신이 얼마나 나쁘고 어리석었는지 깨달았다.죄 없는 사람을 자신과 같은 깊은 나락으로 끌어내리려고 그런 상처뿐인 말을 했다.결국 강아연의 가슴에 꽂았던 말들은 모두 부메랑이 되어 자신의 심장에 되돌아와 박혔다.성규연은 참을 수 없는 통증에 가슴을 움켜쥐었다.몸이 비틀거리며 거의 서 있지 못 할 뻔했다.휴대전화가 바닥에 무겁게 떨어졌다.“성 대표님!”진 비서가 급히 그를 부축했다.“괜찮으세요? 사내 의사를 부를까요?”성규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진 비서의 손을 뿌리치고 한 손으로 책상을 짚어 간신히 몸을 지탱했다. 시선은 책상 위 꽃병에 꽂힌 탐스러운 장미에 고정돼 있었다.진 비서가 피로를 덜어 주겠다며 가져다 놓은 꽃이었다.꽃은 아름다웠다. 바라보는 것만으로 기분이 맑아지고 사람의 얼굴까지 환하게 만들어 줄 듯했다. 하지만 지금은 성규연의 안색을 더욱 어둡고 무섭게 보이게 할 뿐이었다.진 비서는 손을 뻗고도 감히 그에게 닿지 못했다. 초조함과 걱정에 다리만 떨며 불렀다.“성 대표님...”다음 순간, 성규연이 갑자기 손을 뻗어 꽃병 안의 장미 한 다발을 움켜쥐었다.쌓여 있던 서류가 와르르 무너지고 장미가 크게 흔들리며 꽃잎 두 장이 떨어졌다.성규연은 오른손으로 아픈 심장을 누르고 왼손에는 장미를 힘껏 쥐었다.줄기의 가시가 하나하나 손바닥을 깊이 파고들었다. 피부가 찢어지며 순식간에 피가 쏟아졌다.진 비서가 눈을 크게 떴다.“성 대표님!”피는 장미 줄기를 따라 흘러 투명한 꽃병 속 물까지 붉게 물들였다.하지만 성규연은 통증을 느끼

More Chapters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