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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순서

Author: moominkiller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5-24 02:33:56

"그 사내, 황자의 사람으로 보더냐."

위지헌이 물었다.

"삼전하…라고 생각합니다."

월령은 또 너무 빨리 이름을 꺼냈음을 곧 깨달았다. 위지헌의 얼굴에는 놀란 기색이 없었다.

그 사실에 월령이 오히려 놀랐다. 측백나무 그늘 아래에서 기윤이 잠깐 눈을 내렸다.

왕야는 본래 남에게 속내를 보이지 않는 사람이었다 — 기척 없이 칼을 빼고, 거둘 때에도 표정을 남기지 않는. 그런 사람이 지금은 월령 앞에서만, 이미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굳이 감추지 않았다.

그 작은 틈을 알아본 것은 기윤뿐이었고, 월령은 보지 못했다.

"그 이름은 아직 올리지 말거라."

위지헌이 고개를 작게 저었다.

"증거를 가지고 있느냐?"

"아직…"

"그래서 나를 찾은 거군."

그가 낮게 받았다.

"황자의 이름은 아직 이르다. 칼끝이 그자에게 닿기 전에, 네게 먼저 돌아온다."

"알고도 올렸습니다."

월령은 손끝을 접었다.

"그러니 전하께 왔습니다."

스스로도 낯선 말끝이었다.

차갑게 세운 문장인데, 마지막 음절이 어린 날 무언가를 청하던 때처럼 조금 젖었다. 월령은 곧 입술을 다물었다.

"내 이름을 첫 수에 올릴 생각이군."

위지헌의 시선이 그녀의 소매에 닿았다 돌아왔다.

"그 값은 누가 치르지."

차가운 질문이었다.

그 밤의 마지막 고백을 들은 뒤라서인지, 그 말이 더 아팠다. 그는 그녀의 간청보다 먼저 허점을 보았다.

이름을 너무 일찍 꺼낸 것, 증거를 너무 쉽게 보이려 한 것, 숨은 눈을 먼저 세지 않은 것. 월령은 죽음의 냄새는 기억했으나, 기억과 판세는 달랐다.

그녀는 아직 수순을 알지 못했다. 월령은 천천히 무릎을 접으려 했다.

"그만."

위지헌의 목소리가 떨어졌다. 무릎이 돌바닥에 닿기 직전, 그의 손이 월령의 팔꿈치 아래를 받쳤다.

붙잡았다기보다, 멈춰 세웠다.

"바닥은 차다."

명령도 위로도 아니어서, 이상하게 더 아팠다.

"서서 말해. 무릎은 담보가 아니다."

그는 월령이 완전히 설 때까지 팔꿈치를 놓지 않았다.

동정도 예의도 아니었다.

그는 무릎을 꿇은 사람의 말이 얼마나 쉽게 남의 것이 되는지 알았고, 그녀가 헐값이 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믿지 않으셔도 됩니다."

월령은 낮게 말했다.

"대신 저를 쓰십시오."

"쓴다."

위지헌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다.

"전하께서도 삼전하를 견제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걸 네가 어찌 아나."

"황궁은 이미 갈라지고 있습니다. 태후와 삼전하, 전하의 북경군 사이에 심가가 놓였습니다. 제가 가진 단서는 전하께도 쓸모가 있을 거예요."

"언젠가."

위지헌의 눈이 어두워졌다.

"이미 금이 갔다."

월령은 숨을 멈췄다.

그녀가 먼 날의 균열이라 여긴 일을, 그는 오늘의 소리로 듣고 있었다.

"저는 심가를 지키고 싶습니다. 어머니를, 아버지를, 오라비를, 아란을 살리고 싶어요."

마지막 말은 생각보다 작게 나왔다. 그리고 그 뒤에 더 작은 이름들이 따라붙었다.

"은매와, 그 아이가 지키려던 사람들도요."

월령은 그제야 자신이 너무 많이 드러냈음을 알았다. 심가를 지키겠다는 말이 아니라, 제발 잃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먼저 새어 나와 버렸다.

"그 값으로."

"제가 아는 것을 드리겠습니다."

"많이 아나."

말할 수 없는 밤 하나만큼. 돌아갈 수 없는 길 하나만큼.

"생각하시는 것보다 많을 겁니다."

위지헌은 웃지 않았다.

"많음은 값이 아니다."

그가 말했다.

"순서가 값이지."

월령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 말이 정확했다.

그녀는 많은 것을 알았다.

그러나 무엇을 먼저 꺼내고, 무엇을 숨기고, 누구에게 어떤 이름을 맡겨야 하는지는 아직 서툴렀다. 위지헌은 그 서툰 곳만 정확히 보았다.

긴 침묵이 지나갔다.

그 사이 월령은 제 심장 소리를 들었다. 높은 단 아래에서 그가 늦었다고 말하던 순간.

그의 팔이 떨리던 감각.

끝내 잡지 못했던 손.

이번에는 내가 먼저 손을 내민다.

그 손이 칼이어도.

그 손이 감옥이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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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를 죽인 황제에게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315. 배 위의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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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를 죽인 황제에게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314. 식은 차

    아이의 경사가 반포된 뒤로, 황후 하문정은 내명부의 눈을 조용히 조였다.섭정왕비의 산실이 될 자리, 드나들 손, 올라올 음식. 그 모든 것에 황후의 눈이 닿았다. 며느리가 청한 방패를, 황후는 말없이 함께 들고 있었다.황후가 그 방패를 함께 든 데에는, 며느리의 곧음을 본 것 말고도 다른 까닭이 있었다. 그 까닭은, 곤원전의 오래된 어둠 속에 있었다.*밤에, 경화제가 곤원전에 들었다.오랜만의 걸음이었다. 요즘 황제의 밤은 청화각의 젊은 후궁 쪽으로 자주 기울었고, 곤원전의 등은 자주 홀로 꺼졌다.젊은 후궁의 웃음은 가볍고 밝았고, 곤원전의 침묵은 오래되고 무거웠다. 황제는 가벼운 쪽으로 자주 기울었으나, 무거운 쪽을 아주 버리지는 못했다.황후는 그 걸음을 반기지도, 내치지도 않았다. 식은 차를 새로 우리려 하자, 경화제가 손을 저었다."식은 대로 두어라. 오래 앉을 것은 아니다."*"지헌의 아이를, 지켜 주어 고맙소."경화제가 낮게 말했다."고마울 것 없습니다. 지킬 만한 것을 지키는 것뿐이니."황후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그러나 담담한 목소리 아래로, 오래된 것이 지나갔다.경화제도, 그것을 알았다.두 사람에게는, 지키지 못한 아이가 하나 있었다. 오래전, 첫아이였던 대황자. 그 아이를 잃은 뒤로, 두 사람 사이에는 메우지 못한 자리가 하나 생겼다.그 자리를, 두 사람은 각자의 방식으로 견뎠다. 황제는 아름다운 것을 넓게 사랑하는 것으로, 황후는 아무것도 사랑하지 않는 척하는 것으로. 사랑과 원망이, 한 자리에 오래 함께 살았다.*"…그 아이를 지키는 것이."황후가 낮게 말했다."제가 못 지킨 아이를, 뒤늦게 지키는 것 같아서요. 부질없는 마음인 줄 압니다."경화제는 그 말에, 오래 답하지 못했다.젊은 후궁의 웃음을 좋아하는 황제였다. 아름다운 것을 넓게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 곤원전에, 그가 오래 갚지 못한 빚 하나가 있다는 것도 그는 알았다.그가 식은 찻잔을 들었다. 차게 식은 차를, 그대로 한 모금 넘겼다

  • 나를 죽인 황제에게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14. 자리

    아침 햇살은 젖은 종이를 가장 먼저 찾아왔다.비가 그친 다음날의 빛은 맑았으나 따뜻하지는 않았다. 서원당 대청 앞마당에 길게 비껴든 볕은 아직 물기를 품은 돌바닥 위에서 희게 부서졌고, 처마 끝에 남은 마지막 물방울들은 가끔씩 떨어져 마른 소리를 냈다.청아는 낮은 평상 셋을 대청 아래에 나란히 놓았다.그 위에 흰 천을 깔고, 다시 그 위에 등초본을 베껴 쓸 때 받쳤던 흡지를 한 장씩 펼쳤다. 종이는 밤사이 눅어 가장자리가 아주 조금 말려 있었고, 먹이 스친 곳에는 흐릿한 그림자가 남았다."젖은 종이는 그냥 두면 곰팡이가 습니

  • 나를 죽인 황제에게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13. 매듭

    비가 그친 뒤의 새벽은 지나치게 맑았다.밤새 지붕을 두드리던 물소리가 멎자, 심가는 잠시 숨을 잃은 집처럼 조용해졌다. 처마 끝에는 아직 물방울이 매달려 있었고, 뜰 가운데 고인 얕은 물에는 회색 하늘이 얇게 비쳤다. 행랑채 쪽에서는 젖은 짚을 뒤집는 소리가 늦게 깨어났고, 부엌에서는 불씨를 살리려 부싯돌을 치는 소리가 두어 번 낮게 울렸다.비가 지나간 자리는 늘 사람보다 먼저 말을 했다.기와 밑에 떨어진 진흙, 담장 아래로 밀려온 풀씨, 회랑 끝에 비스듬히 남은 발자국. 맑은 날에는 누구의 것인지 묻지 않아도 될 흔적들이,

  • 나를 죽인 황제에게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12. 틈

    비는 밤새 그치지 않았다.새벽녘에는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물소리가 실을 감는 소리처럼 가늘게 이어졌다. 처음에는 한 방울씩, 곧이어 두 방울씩, 나중에는 어느 것이 먼저 떨어졌는지 구분하기 어려울 만큼 잦아졌다.심가의 아침은 젖은 냄새로 열렸다.행랑채 아이들은 짚신 밑창에 진흙을 묻힌 채 창고 앞을 오갔고, 부엌에서는 젖은 장작에 불을 붙이느라 연기가 낮게 깔렸다. 말린 생강은 다시 대청 안으로 들여졌고, 약방의 작은 종은 창포 묶음을 처마 아래에 걸며 연신 코를 훌쩍였다.비가 오는 날에는 집안의 틈이 먼저 보였다.기와가

  • 나를 죽인 황제에게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11. 실

    자녕궁에서는 아무 말도 오지 않았다.칭찬도 없었고, 꾸짖음도 없었다.완성본을 거두어 간 뒤 사흘이 지났으나 문상궁의 먹빛 소매는 다시 심가 문턱을 넘지 않았다. 동쪽 대문을 드나드는 것은 장작을 실은 수레와 포목점 심부름꾼, 약방의 어린 종뿐이었다.그런데도 심서윤은 매번 대문 쪽 소리가 날 때마다 고개를 들었다.처음에는 아주 작게였다.찻잔을 내려놓다가, 바느질하던 바늘끝을 멈추다가, 어머니 한씨가 부르는 말에 대답하려다 말고. 시간이 갈수록 그 작은 움직임은 몸에 남은 버릇처럼 굳어 갔다.기다림은 소리가 없었다.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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