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위지헌이 먼저 손을 내밀었다.
월령의 앞에.
검고 긴 손가락, 검을 쥐는 사람의 굳은살, 차갑지만 흔들리지 않는 손. 놓쳐 버린 손이 다시 놓여 있었다.
월령은 그 손을 바라보았다.
잡아도 되는가.
한때 그녀는 위명서의 손을 잡고 죽음으로 갔다. 이번에 위지헌의 손을 잡으면 어디로 가게 될까.
구원일까, 더 깊은 불길일까.
하지만 이미 선택했다.
월령은 천천히 손을 올렸다. 손끝이 닿는 순간, 위지헌의 손이 그녀를 단단히 붙잡았다.
뜨거웠다.
그 밤 마지막으로 닿았던 그 손처럼. 그는 필요 이상으로 오래 잡고 있었다.
그러나 조급함은 없었다.
손가락 하나가 월령의 손등을 가만히 눌렀다. 도망을 막는 듯도 했고, 살아 있는지 확인하는 듯도 했다.
월령은 제 숨이 너무 가까이 들릴까 봐 입술을 다물었다. 위지헌은 그녀가 휘청이지 않을 만큼만 붙들고, 스스로 설 수 있게 되자 천천히 놓았다.
붙잡을 수 있으면서도, 그는 당장 가두지 않았다.
"삼황자의 그늘을 피해, 내 그림자에 들겠다."
그가 말했다.
"그것도 이유 중 하나입니다."
"내 이름을 앞에 세우고."
"전하께서 허락하신다면요."
말끝이 뜻밖에 부드러웠다.
허락을 구하는 사람처럼.
위지헌의 눈이 그 짧은 말끝에 머물렀다.
"허락하지 않으면."
"다른 방법을 찾겠습니다."
"다른 길의 끝도 붉은 담인가."
그의 눈빛이 어두워졌다.
"아닙니다."
대답은 즉시 나왔다.
너무 빨랐는지 월령은 스스로 놀라, 조금 더 낮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그곳으로는 가지 않겠습니다."
위지헌의 시선이 그녀의 얼굴을 훑었다.
"않겠다."
그가 낮게 되뇌었다.
"긴 말보다 낫군."
월령은 그를 올려다보았다.
위지헌은 웃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눈 안쪽에는, 높은 단 아래서 보았던 감정의 아주 희미한 그림자가 있었다. 분노인지, 안도인지, 오래 묻어 둔 집착인지 알 수 없는 어두운 빛.
"좋다."
그가 말했다.
"그럼 짧게 묶어."
월령의 숨이 풀렸다.
그러나 다음 말에 다시 굳었다.
"대신."
위지헌은 조금 더 가까이 다가왔다. 월령의 등 뒤에는 측백나무가 있었다.
한 걸음만 더 물러나면 닿을 거리였다. 그러나 위지헌은 끝내 그녀를 나무에 몰아붙이지 않았다.
딱 한 뼘을 남겼다.
빠져나갈 수는 있으나, 빠져나가고 싶다면 먼저 선택해야 하는 거리.
"내 이름은 반만 쓰는 물건이 아니다."
그의 목소리가 낮게 내려앉았다. 월령의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접을 생각이면 지금 접어라."
"전하."
"그리고 심월령."
그의 시선이 그녀를 붙잡았다.
"이번에는."
세상이 조용해졌다.
봄빛도, 먼 연회의 소리도, 청아가 멀리서 숨을 멈추는 기척도 모두 사라졌다. 위지헌은 아주 낮게 말했다.
"내 손을 놓지 마라."
월령은 움직이지 못했다.
이번에는.
그는 분명 그렇게 말했다.
명령처럼 들렸으나, 안쪽에는 아주 낮은 부탁이 있었다. 마치 지난번에는 그녀가 다른 손을 잡았다는 것을 아는 사람처럼.
마치 그 선택의 끝에서 자신이 너무 늦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처럼. 월령의 손끝에는 아직 위지헌의 온기가 남아 있었다.
측백나무의 높은 그늘에서, 기윤은 아주 조용히 눈을 내리깔았다. 그의 시선은 한순간, 두 사람이 놓은 손 사이의 빈틈에 닿았다가 사라졌다.
듣지 않은 사람처럼.
그러나 들은 사람처럼.
월령은 마침내 깨달았다.
그는 처음 내민 손을 말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이미 한 번, 놓쳐 버린 손의 온도를 묻고 있었다.
그러나 그 깨달음을 입에 올릴 수는 없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아직 건널 수 없는 한 해의 강이 흘렀고 — 그가 무엇을 기억하는지, 그녀가 무엇을 기억하는지, 둘 중 누구도 먼저 물을 수 없었다.
다만 한 뼘의 거리를 두고, 같은 온기를 나눠 쥔 채로, 두 사람은 그렇게 봄볕 아래 서 있었다.
월령은 손을 빼지 않았다.
위지헌도 끝내, 그 한 뼘을 좁히지 않았다.
위지헌이 도성에 든 것은, 살구가 마지막 잎을 떨구기 사흘 전이었다.봄 안이었다.북문으로 든 군은 조정에 승전을 아뢰고, 병부에 군을 넘겼다. 절차를 마치는 데 반나절이 걸렸다. 그 반나절 동안, 그의 눈은 한 번도 왕부 쪽으로 가지 않았다. 절차 앞에서는 절차만 보는 사람이었다.넉 달을 걷어 온 승전보다, 그 반나절 뒤의 저녁이 그에게는 더 길었다.절차가 다 끝난 저녁에야, 그는 말머리를 왕부로 돌렸다.*왕부의 살구나무 아래에, 월령이 서 있었다.지난겨울 심가의 마당에서 그를 기다리던 것처럼, 이번에는 왕부의 마당에서 기다렸다. 다만 이번에는, 심가의 딸이 아니라 이 집의 안주인으로.대문 밖에서 말발굽 소리가 멎었다.월령은 이번에는, 돌아보았다.전장의 흙이 밴 걸음이 마당으로 들었다. 검은 갑주 위에 북의 먼지가 앉아 있었고, 왼팔은 아직 천에 묶여 있었다.월령의 눈이, 그 묶인 팔에 잠깐 멎었다."…다치셨네요.""얕다.""얕지 않아 보여요."위지헌의 입가가 조금 움직였다.서신에 적지 않은 것을, 그녀는 얼굴을 보자마자 알아보았다.*위지헌이 손을 폈다.그 손바닥에, 흰 바둑돌이 있었다. 북의 겨울을 함께 건너온 돌이었다.월령도 손을 폈다. 그녀의 손바닥에는, 겨우내 왕부를 지킨 검은 돌이 있었다.두 돌이, 한 손바닥 위에서 다시 만났다."봄을 세었느냐."위지헌이 물었다."세었어요."월령이 낮게 답했다."봄만 센 게 아니라, 다른 것도 세었어요."그녀는 '연'의 실을 어디까지 걷었는지 아직 다 말하지 않았다. 다만, 북과 남의 이름이 한 명부에 있었다는 것과, 그 실의 바깥 매듭이 풀렸다는 것만 짧게 옮겼다.위지헌은 그 말을 들으며, 그녀 손 위의 검은 돌을 오래 보았다.문밖에서 그녀가 나오기를 기다리던 사람이, 이번에는 그녀가 홀로 세운 겨울을 돌아와 마주하고 있었다.*"얼굴은, 아직 못 보았어요."월령이 말했다."바깥 매듭은 풀었는데, '연'은 얼굴을 보이기 전에 물러났어요.""쫓지 않았느냐."
석중은, 강무진이 둔 자리에서 사흘을 보냈다.달아날 수 없는 자리였다. 그러나 옥은 아니었다. 밥이 나왔고, 물이 나왔다. 잡은 것도 놓은 것도 아닌 자리에서, 석중은 제가 무엇에 걸렸는지 아직 다 알지 못했다.강무진은 그를 해치지 않았다. 묶어 두지도 않았다. 다만, 나갈 문마다 사람을 두었다. 달아나려 하면 잡히고, 가만히 있으면 밥이 나오는 자리였다. 그런 자리에 오래 두면, 억센 자도 제풀에 말이 많아졌다.사흘째, 월령이 그 앞에 섰다.*석중은 월령을 알아보지 못했다.당연했다. 이번 생에, 두 사람은 처음 마주 앉는 것이었다. 그에게 월령은 왕부의 안주인일 뿐이었다. 제가 밤에 담을 넘어 든 집의 여주인.그러나 월령은, 그 얼굴을 알았다.전생의 마지막 봄, 그녀의 팔을 붙들어 냉궁으로 끌고 간 억센 힘이 그 얼굴에 있었다. 지금 그 얼굴은, 붙들 힘을 잃고 사흘 굶은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미워할 얼굴이었다. 그러나 미워할 죄를, 이 얼굴은 아직 짓지 않았다.두 생을 건너온 미움이었다. 그 미움을 이 얼굴에 쏟는 것은 쉬웠다. 그러나 쏟아 봐야, 이 얼굴은 제가 무엇으로 미움을 사는지도 몰랐다. 짓지 않은 죄를 묻는 것은, 전생을 이 생에 들이붓는 일이었다.월령은 그 미움을 소매 안에 도로 접었다. 미움보다 먼저 셀 것이, 이 얼굴 뒤에 있었다.*"너는, 왜 남의 밤을 그려 파는 일을 했느냐."월령이 물었다.석중은 한참 입을 다물었다가, 낮게 말했다."…빚이 있었습니다.""누구의 빚이지.""제 것이 아니라, 아우의 것입니다. 아우가 상단에 진 빚을, 제가 대신 일로 갚고 있었습니다."월령은 그 말을 오래 들었다.마 어멈과 같은 사람이었다. 남의 빚에 목이 매인 사람. '연'은 늘 그런 목을 사서 손발로 썼다. 죄를 짓게 하는 것이 아니라, 목이 매인 사람을 골라 죄의 곁에 세우는 것이었다.전생에 그녀를 끌고 간 손도, 어쩌면 그렇게 매인 손이었을지 몰랐다.그렇게 생각하니, 전생의 그 밤이 조금 다르게 보였다. 그녀
황후의 손에 그 명부가 놓인 지 며칠 뒤, 궁 안에서 조용한 움직임이 있었다.큰 소리는 없었다. 다만, 동쪽 처소의 차를 맡던 채운 상궁이 어느 날 아침 자리에서 물러났다. 병을 얻어 궁 밖 친정으로 나간다는, 조용한 물러남이었다.밤에 표를 떼고 나가던 가마도, 그 뒤로 나가지 않았다.큰 벌은 없었다. 채운 상궁은 죄인이 되어 끌려간 것이 아니라, 병을 핑계로 조용히 궁을 나갔다. 궁 안의 누구도 그 물러남이 무엇 때문인지 크게 묻지 않았다. 시끄럽게 묻는 것 자체가, 실의 안쪽을 놀라게 하는 일이었다.*같은 무렵, 금군의 교위 하나가 궁문 수직에서 빠졌다.방준이었다. 밤 가마의 문을 열어 주던 손이었다. 그가 어느 날 변방의 수자리로 발령이 났다. 죄를 물어 내친 것이 아니라, 조용히 자리를 옮긴 것이었다.죄를 묻지 않은 것은, 죄를 덮은 것이 아니었다. 아직 잡지 않은 실의 끝을 놀라게 하지 않으려는 것이었다.월령은 그 움직임을 멀리서 읽었다.황후의 손 위에 놓인 명부가, 황제의 눈에 닿은 것이었다. 그리고 황제는 시끄럽게 걷지 않았다. 소리 없이, 실의 바깥 매듭 둘을 풀었다.*경화제는 그 봄 내내, 무대에 오르지 않았다.다만 순검을 반쯤 예부에 나누어 둔 것도, 채운 상궁이 조용히 물러난 것도, 방준이 변방으로 옮겨 간 것도—모두 어전의 침묵 아래에서 이루어졌다.보고도 서두르지 않는 눈이었다. 그 눈이, 섭정왕이 북을 걷는 동안 남의 그늘을 함께 세고 있었다.석중은 왕부의 어둠에 걸렸고, 채운 상궁은 궁을 나갔고, 방준은 변방으로 옮겨 갔다. 세 매듭이 사흘 사이에 조용히 풀렸다. 큰 소리 하나 없이.시끄러운 벌은 저잣거리에 이야깃거리를 남겼으나, 조용한 걷음은 아무 이야기도 남기지 않았다. 이야기가 남지 않아야, 실을 쥔 자가 어디까지 잘렸는지 가늠하지 못했다.월령은 그것을 뒤늦게 알았다.홀로 세는 줄 알았던 겨울을, 어전의 침묵도 함께 세고 있었다. 비워 둔 결재 칸은, 게으름이 아니라 눈이었다. 순검을 반쯤 남긴 것
북의 마지막 두 골짜기는, 하루 사이를 두고 되찾았다.흑령은 셈을 가르치던 자를 잃은 뒤로, 담 쌓는 법을 잊은 것처럼 무너졌다. 붓을 쥔 손 하나가 빠지자, 창을 쥔 자들이 다시 겨울의 저들로 돌아갔다.위지헌은 그 무너짐을 보며, 도성의 검은 돌을 세는 사람을 떠올렸다.북의 그림자를 걷은 것은 그의 칼이었으나, 그 그림자의 실을 남에서 잡아당긴 것은 그녀였다. 붓을 쥔 자를 잡아 남으로 보낸 뒤로, 저들의 셈이 눈에 띄게 흐트러졌다.두 사람이 각자의 자리에서, 같은 실을 당기고 있었다.위지헌은 그 실을 북에서 다 끊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다. 붓을 쥔 자 하나를 잡았을 뿐, 그 자를 부린 손은 남에 있었다. 북의 창은 걷을 수 있어도, 남의 그늘은 그의 칼이 닿지 않는 자리에 있었다.그 자리는, 검은 돌을 세는 사람의 자리였다. 그는 그 사람을 믿었다. 믿는 것 말고, 북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되찾은 국경에, 북문군의 깃발이 다시 섰다.심도윤이 그 깃발 아래 섰다. 갑주 위의 마른 피가, 이번에는 승전의 피였다."돌아가십시오."노장이 말했다."남은 것은 저희가 지킵니다. 저하께서 도성을 비운 지, 이미 봄이 반이 넘었습니다."위지헌은 남쪽 하늘을 보았다.봄 안에 돌아가겠다고, 그는 떠나며 약조했다. 그 봄이 이제, 열흘 남짓 남아 있었다.열흘. 도성까지의 길이 이레였다. 서두르면, 사흘의 여유가 있었다. 그 사흘을 그는, 도성의 봄에 쓰고 싶었다."…돌아가겠습니다."심도윤은 사위의 얼굴에서, 도성으로 향하는 마음을 보았다. 딸을 그 마음에 맡긴 아비였다. 노장은 더 붙잡지 않았다. 다만, 사위의 묶인 왼팔을 한 번 보았다."…그 팔은, 도성에 가서 제대로 보이십시오.""그러겠습니다."전장의 인사는, 그 한마디로 족했다.*떠나기 전날 밤, 위지헌은 마지막 서신을 적었다.이번에는, 두 줄이었다.'북의 봄을 걷었다. 이제, 남의 봄으로 간다.'그 아래, 한 줄을 더 적었다.'돌아가면, 세지 못한 봄을 함
석중은, 그 밤 왕부의 어둠 속에서 붙들렸다.소리는 크지 않았다. 강무진의 걸음이 빨랐고, 담 위에 남았던 하나는 어둠 속으로 달아났다. 달아나게 두었다. 하나가 잡히고 하나가 놓이면, '연'은 왕부가 무엇을 잡았는지 반만 알았다. 반만 아는 두려움이, 다 아는 두려움보다 오래갔다.월령은 석중을 왕부의 옥에 가두지 않았다.순검 없는 왕부가 사람을 잡아 가두면, 그것이 흠이 되었다. 대신 강무진이 그를 보이지 않는 자리에 두었다. 잡은 것도 놓은 것도 아닌 자리였다.석중을 어떻게 할지는, 아직 정하지 않았다. 다만 그가 왕부의 어둠에 걸린 것을 '연'이 다 알지 못하게, 강무진은 그의 자취를 지웠다. 밤에 담을 넘은 자 하나가 돌아오지 않으면, '연'은 그가 잡혔는지 달아나다 죽었는지 알 수 없었다. 알 수 없는 침묵이, 저쪽을 조바심 나게 했다.*석중의 품에서 나온 명부를, 월령은 북에서 온 명부 곁에 놓았다.두 명부는 같은 붉은 실로 묶여 있었다. 하나는 북의 흑령 진막에서, 하나는 도성 왕부의 마당에서 나왔다. 같은 명부의 이름들이, 국경의 이쪽과 저쪽에서 같은 봄에 나왔다.이만하면, 실의 그림은 다 보였다. 그러나 그림을 보는 것과, 그림을 걷어 내는 것은 달랐다.방준은 금군이었다. 금군은 황제의 군이었다. 채운 상궁은 궁 안의 손이었고, 궁 안의 손은 황후와 황제의 것이었다.월령이 손댈 수 없는 자리에, 실의 끝이 매여 있었다.섭정왕이 도성에 있었다면, 그 자리는 그의 순검이 볼 자리였다. 그러나 순검은 반쯤 예부로 돌아가 있었고, 섭정왕은 북에 있었다. 왕부의 안주인이 금군의 교위를 잡겠다 나서면, 그것이 도리어 왕부의 흠이 되었다.월령은 제가 걸을 수 없는 자리를 분명히 알았다. 걸을 수 없는 자리를 아는 것도, 하나의 셈이었다.*이튿날, 월령은 황후에게 뵙기를 청했다.봄꽃 구경도, 다회도 아니었다. 섭정왕비가 황후에게 따로 아뢸 것이 있다는, 조용한 청이었다.황후는 그 청을 받았다.월령은 두 명부를 황후 앞에 놓았다
미끼를 놓은 지 나흘째 밤, 왕부의 담을 넘는 자가 있었다.달이 얇은 밤이었다. 왕부의 등불은, 안채 서쪽의 한 방에만 오래 밝혀져 있었다. 지킬 것이 그 방에 있는 것처럼.담을 넘은 자는, 그 불빛을 향해 움직였다.왕부의 밤은 고요했다. 지난 여러 밤 그러했듯, 안채 서쪽의 방 하나만 불이 켜져 있었다. 나머지 창은 다 어두웠다.그 어둠은, 강무진이 만든 어둠이었다. 호위를 물린 어둠이었다. 넘어온 자에게는, 지키는 자가 없는 밤으로 보였을 것이었다.*강무진은 그 밤을 기다리고 있었다.미끼를 문 손이 어디로 드는지를 보려면, 막지 말고 들여야 했다. 그는 왕부의 호위를 안 보이는 자리로 물리고, 담과 그 방 사이의 어둠에 몸을 낮췄다.넘어온 자는 둘이었다.하나는 담 위에 남아 밖을 살폈고, 하나는 마당을 가로질렀다. 걸음이 익숙했다. 왕부의 마당 구석구석을 아는 걸음이었다.바늘로 눌린 밤을 그려 보낸 사람이 아니면, 그렇게 익숙할 수 없는 걸음이었다.마 어멈이 그려 보낸 왕부의 밤이, 이 걸음을 여기까지 데려왔다.가짜 밤을 사 간 자들이, 그 가짜 밤을 믿고 진짜 담을 넘었다. 왕부가 그려 판 어둠 속으로, 저들이 제 발로 걸어 들어왔다. 숨었다고 여긴 자리가, 실은 다 보이는 자리였다.*마당을 가로지른 자가, 밝혀진 방의 문 앞에 섰다.그리고, 갓을 벗었다.강무진은 그 얼굴을 어둠 속에서 보았다.석중이었다.석중이 방문에 손을 대는 순간, 강무진은 움직이지 않았다. 밀서를 찾는 손을 잡는 것으로는, 실의 한 점만 끊길 뿐이었다.그가 기다린 것은, 석중이 아니었다.석중을 잡는 것은, 실의 한 점을 끊는 일이었다. 강무진이 기다린 것은, 석중이 그 방 안에서 무엇을 하는가였다. 빈 함을 열고 무엇을 찾는지, 아니면 그 자리에서 다른 누구에게 무엇을 남기는지. 한 점을 잡기보다, 그 점이 어느 점과 이어지는지를 보는 것이 먼저였다.*석중이 방 안으로 들었다.방 안에는, 밀서 대신 빈 함 하나가 촛불 아래 놓여 있었다. 붉
아침빛은 얇았다.밤새 창을 열어 두었기 때문인지 방 안에는 향이 남아 있지 않았다. 연꽃 향도, 난향도, 사람의 판단을 늦추던 희미한 쓴내도 모두 빠져나가고 없었다.대신 창가에는 말린 살구꽃 한 줌이 놓여 있었다.누가 두고 갔는지는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청아는 그것을 보자마자 얼굴이 묘하게 굳었다. 웃음을 참는 얼굴과 울음을 참는 얼굴이 이상하게 닮을 수 있다는 것을, 월령은 그때 처음 알았다."왕부에서 보낸 거예요."청아는 아주 작게 말했다.왕부.그 두 글자만으로도 방 안의 공기가 다시 낮아지는 듯했다. 월령은
심가의 아침은 낮은 소리들로 가득했다.지하 창고가 비었다는 말은 아직 누구의 입에서도 크게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물동이가 평소보다 조심스럽게 내려앉고, 회랑을 쓸던 하인의 빗자루가 같은 자리에서 두 번 멈추고, 부엌의 계집종들이 죽 솥을 젓다 말고 서로의 눈을 피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큰 집의 소문은 늘 사람보다 먼저 일어난다.쌀을 씻는 물소리,말에게 여물을 붓는 소리,행랑채 문고리가 바람도 없는데 달그락거리는 소리.그 작은 것들이 밤사이 심가에 무엇이 지나갔는지 먼저 알렸다.안에서 잠긴 문.끊어지지 않은 밧줄.
이번에는.내 손을 놓지 마라.위지헌의 말은 한참 동안 측백나무 잎 사이에 머물렀다.봄빛은 잘게 부서져 내려왔고, 먼 연회장의 웃음소리는 얇은 비단 몇 겹 너머에서 들리는 것처럼 흐렸다.월령은 대답을 고르지 못했다.놓지 않겠다고 말할 수는 있었다.다시는 다른 손을 잡지 않겠다고도 말할 수 있었다.심가를 살리겠다고,당신을 이용하겠다고,당신이 무엇을 알고 있는지 반드시 알아내겠다고.그리고 아주 작은 목소리로는,당신을 믿고 싶다고도 말할 수 있었다.모두 참이었다.그래서 어느 하나도 먼저 꺼낼 수 없었다.말은 입
해시가 가까워질 무렵, 남쪽 연못에는 안개가 내려앉았다.봄밤의 안개는 사람을 해치지 않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얇고 희어서, 손을 뻗으면 손바닥 위에서 곧장 풀어질 듯했다.그러나 그 안에 오래 서 있으면 숨이 조금씩 낮아졌다.물 위의 달도,버드나무 아래 그림자도,멀리 별채 처마에 걸린 등불도 한 겹씩 지워졌다.소리가 먼저 숨었다.벌레 우는 소리는 물가의 돌 틈으로 잦아들었고, 회랑 아래 고인 밤공기는 젖은 약재처럼 싸늘했다.월령은 회랑의 어둠 속에 서 있었다.흰 장삼 위에 짙은 남색 겉옷을 걸쳤다. 밤 안으로 스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