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책임?]그가 꺼낸 단어의 복합적인 의미…그 여러 가지 해석 중, 그녀의 무의식은 제일 먼저 비겁한 자신의 변명을 선택했다.“실수였다고… 지금 그렇게 말하고 싶은 건가요, 선배?”다이닝 테이블의 정적을 깨고 유진의 입술 사이로 자신도 모르게 울컥 화가 난 듯한 날카로운 목소리가 튀어나왔다.귓가가 뜨겁게 달아올랐다.[바보같이 왜 화가 나는 건데? 애초에 계산적으로 원나잇을 원한 건 나였잖아. 선배를 도구로 이용해 놓고… 대체 무슨 자격으로 서운해하는 거야? 난 도대체 그에게서 뭘 기대한 거니?]자신조차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모순된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유진은 뺨이 터질 것처럼 화끈거렸다.무안함과 비참함이 한꺼번에 몰려와 도저히 마주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유진은 자신의 나약한 바닥을 감추기 위해 의자를 거칠게 밀며 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걱정 마세요. 난 정말 상관없으니까… 전 그럼… 이만 가볼게요.”도망치듯 급하게 걸어나가는 유진의 발걸음 위로 요스케의 낮고 가라앉은 음성이 와닿았다.“아직 내 얘기… 안 끝났어.”그의 묵직한 어조에 유진은 잠시 자리에 얼어붙은 듯 머뭇거리다가 이내 자리에 엉거주춤 다시 앉았다.그러나 유진을 억지로 앉혀놓은 요스케는 정작 아무런 말도 꺼내지 않았다.깊은 정적이 주방을 무겁게 짓눌렀다.사실 요스케는 지금 그 어떤 단어 하나도 쉽게 내뱉을 수가 없었다.아무런 생각도, 계산도 없이 무심코 꺼낸 무거운 말 한마디에…상처 입은 유진이 자신의 시야 밖으로 영영 도망쳐 버릴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에... 그는 어느 때보다 신중하고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그의 시선이 유진의 가늘게 떨리는 손가락 끝에 머물렀다.“실수 맞아. 미안해…”한참의 지독한 침묵 끝에 그가 힘겹게 꺼낸 말은 뜻밖에도 담백한 사과였다.순간 유진은 가슴 한구석이 텅 빈 것처럼 허무해졌다.비겁하게 자신이 먼저 건넸어야 할 그 당연한 사과를,요스케가 먼저 선수를 쳐 자기 자신을 탓하며 말하고 있었다.유진은 일부러
쏴아아──.거칠게 몸을 씻어내던 물줄기가 멈추고 욕실 문이 조용히 열렸다.“조금 더 자고 일어날래? 피곤할 텐데.”샤워를 마치고 축축한 물기를 머금은 채 나온 유진을 바라보며 요스케가 나직한 목소리로 물었다.그의 시선은 밤새 뜨겁게 달아오르고 다시 자신으로 인해 붉게 흔들렸을 유진의 가녀린 어깨에 부드럽게 머물렀다.유진은 그의 다정한 온기가 묻어나는 시선을 차마 똑바로 마주하지 못한 채 가만히 고개를 내저었다.이 어색하고도 아슬아슬 한 공간에서,그의 옆에 더 누워있다가는 심장이 미련하게 녹아내려 버릴 것만 같았다.“그럼… 아침 먹으러 가자.”요스케는 더는 강요하지 않았다.대신 유진의 가느다란 손을 자신의 커다란 손 안에 가만히 쥐고 모텔 방을 빠져나왔다.빗방울이 가늘어진 아침의 서늘한 공기가 두 사람의 뺨을 스쳤다.요스케는 그 좁고 음습한 모텔 골목을 빠져나오자마자,마치 유진을 세상의 시선으로부터 숨기듯 품에 감싸 안듯 걸었다.그리고 잠시 후, 길 가 모퉁이에 주차된 자신의 차의 조수석에 그녀를 조심스럽게 태웠다.부드러운 엔진음과 함께 잠시 서행하던 차는 얼마 지나지 않아 익숙한 순라길의 고즈넉한 한옥 앞 주차 공간에 매끄럽게 멈춰 섰다.“올라가자.”시동을 끈 요스케가 먼저 내려 문을 열어주자,유진은 차 문손잡이를 잡은 채 잠시 머뭇거렸다.몇 시간 전, 선호의 상견례 시간에 맞춰 그에게 복수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요스케에게 몸을 던졌던 기억이 선명해 자꾸만 발걸음이 무거워졌다.하지만 요스케는 유진의 그 찰나의 망설임을 아는 척도 하지 않은 채,당연하다는 듯 그녀의 손을 다시 단단히 잡아끌어 자신의 집 안으로 이끌었다.“편하게 있어.”요스케는 유진을 다이닝 테이블 상석 의자에 조심스럽게 앉혔다.그리고 곧장 주방으로 향해 소매를 걷어 올리고 급하게 냉장고 안을 확인하기 시작했다.유진은 텅 빈 다이닝 테이블에 멍하니 앉아…어색한 공기 속에서 그가 자신을 위해 음식을 준비하는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넓은 등판과 단정
“나… 사실 좋아하는 오빠가 있어.”은은한 스탠드 조명 아래, 윤정의 집에서 열린 둘만의 파자마 파티.윤정이 잔뜩 수줍은 표정으로 두 뺨을 붉힌 채 가만히 고백을 털어놓았다.유진은 그 모습을 보며 침대 시트를 만지작거리다,이내 다 알고 있다는 듯이 그녀를 향해 장난스럽게 빙긋 미소를 띠며 은근히 놀려댔다.“뭐야… 너… 이미 눈치채고 다 알고 있었어?”윤정이 부끄러운 듯 쿠션을 꼬아 쥐며 툴툴거렸다.유진이 턱을 괴며 다정한 어조로 물었다.“그래서, 그 오빠에게 고백이라도 받아낸 거야?”“아니. 내가 먼저 고백했어.”“뭐? 진짜? 네가 먼저? 언제?”유진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평소 조심스럽던 윤정의 성격을 알기에 의외의 과감함이었다.“한 달 전쯤에… 도저히 안 되겠어서 마음을 확 털어놓았지.”“와, 대단하네. 그 오빠… 완전 놀랐겠는데? 그래서… 결론은 어떻게 됐어? 잘 된 거지?”유진이 진심으로 축하해 주려 다가앉자,윤정은 심장이 터질 것 같은 미소를 지으며 믿기지 않는 말을 뱉어냈다.“응. 그래서 나… 실은 며칠 전에 그 오빠한테 프로포즈 받았어. 결혼하자고 하더라.”“뭐? 컥, 컥컥……! 결, 결혼?!”유진은 사레가 들린 듯 거칠게 기침을 토해냈다.너무 놀라 가슴이 쿵쾅거렸다.아무리 서로 잘 아는 사이였다고 해도 이건 지나치게 성급했다.“아무리 그 사람을 3년이나 알고 지냈다고 해도, 제대로 된 연애 기간도 없이 곧바로 결혼이라니… 미쳤네, 진짜. 뭐가 이렇게 번개 불에 콩 볶아 먹듯 빨라? 난 정혁 오빠가 그렇게 앞뒤 안 재고 화끈하게 밀어붙이는 성격인 줄은 정말 몰랐다, 야.”유진이 당연하다는 듯 정혁의 이름을 꺼내자,윤정의 얼굴에서 수줍음이 가시고 어리둥절한 표정이 내려앉았다.“뭐? 정혁 오빠? … 그게 무슨 소리야, 유진아?”“어……?”순간적으로 교차한 윤정의 낯선 표정에,유진의 가슴 한구석에서 정체모를 거대한 불길함이 엄습해 왔다.서늘한 한기가 척추를 타고 올라왔다.“너 지금 무슨 오해를 한
오후 3시. 요스케와 만나기로 한 시간…유진은 시계의 똑딱거리며 지나가는 초침을 바라보며 초조했다.심장이 터질 듯 두근거렸다.오후 4시. 이미 약속 시각으로부터 한 시간이나 훌쩍 지나버린 때였다.갑자기 멀쩡하던 하늘이 짓빛으로 어두워졌다.그때 후두둑 소리를 내며 굵은 빗방울이 창문을 사정없이 두드리기 시작했다.유진은 잠시 멍한 눈으로 창밖의 빗줄기를 바라보다가…이내 무거운 한숨과 함께 우산을 챙겨 들고 약속 장소로 향했다.거칠게 쏟아지는 빗줄기 너머로 멀리서도 단번에 알아볼 수 있는 그의 훤칠한 실루엣이 보였다.비를 맞으며 묵묵히 서 있는 요스케의 모습을 확인한 순간…유진의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참을 수 없는 불편함과 미안함이 치밀어 올랐다.[조금이라도 늦게 된다면… 그냥 가라고 했잖아요… 내가 바란 건… 핑계였어…오늘 오후만 버틸 수 있게… 근데… 왜 아직 여기 있는데…]*대학로의 뒷골목의 작은 이자카야.유진은 터져 나오려는 울음을 삼키며 그가 기다리는 테이블로 돌아왔다.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기류는 비 오는 날의 공기보다 훨씬 더 무겁고 축축했다.유진은 결국 벼랑 끝에 선 심정으로 금기 같은 말을 툭 내뱉었다.“나랑 잘래요?”유진은 모텔로 들어갔고 그녀를 따라 요스케도 그 모텔로 들어갔다.그리고 요스케는 여전히 어색하게 방 중앙에 서 있었다.자신을 전혀 신경조차 쓰고 있지 않는 듯한 유진의 태도에 그는 여전히 망설였다.그럼에도 그는 결국 그녀가 자신에게 베푼 마지막 썩은 지푸라기를 붙잡을 수 밖에없었다.“들어와 주세요”유진은 아직 온전히 준비되지 않은 몸으로 요스케를 원했다.그녀의 눈빛에는 지독한 갈증과 자학적인 충동이 뒤섞여 있었다.요스케가 유진의 뺨을 감싸 안으며 그녀에게 키스하려 다가갔다.하지만 그녀는 그를 피해 고개를 돌렸다.유진의 거부…그는 비참했다. 그리고 낮고 갈라진 목소리로 속삭였다.“서두를 필요 없어. 그리고 지금… 하게 되면 네가 다쳐”“난… 괜찮아요. 그리고 거칠게 하고 싶어요.
화면 위로 초록색 알림창이 반짝였다.유진은 침대에 무력하게 누워 있다가 진동과 함께 휴대폰 화면에 들어온 톡 메시지를 가만히 확인했다.“몸은 좀 어때?”요스케였다.실험실에서 선호에게 강제로 끌려 나간 이후 그가 보낸 첫 메시지였다.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렸다.유진은 간신히 마음을 진정시키며 자판을 눌렀다.“괜찮아졌어요”답장을 보내기가 무섭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음 메시지가 화면을 채웠다.요스케 역시 휴대폰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있었다는 증거였다.“그때… 실험실… 남친이니?”예상했던 질문이었지만 활자로 마주한 순간 유진은 지레 겁을 먹고 말았다.선호와의 추악한 비밀과 뒤틀린 관계가 요스케에게 들통날까 봐…그로 인해 요스케마저 자신을 혐오하게 될까 봐 두려움이 앞섰다.유진은 본능적인 방어기제로 인해 평소보다 더 과장되고 크게 반응하며 톡을 보냈다.문장 끝에 느낌표까지 붙여가며 필사적으로 부정했다.“오빠에요. 오빠! 가족!”[오빠?]휴대폰 화면에 선명하게 찍힌 유진의 답장을 바라보며 요스케는 한쪽 눈썹을 슬며시 치켜올렸다.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 그의 잘생긴 미간 사이에 내려앉았다.머릿속에서 그날 유진을 낚아채듯 빼앗아 가던 남자의 강렬하고도 잔인했던 눈빛이 선명하게 되살아났다.요스케는 남자의 직감으로 확신할 수 있었다.그건 절대로 여동생을 걱정하는 눈빛이 아니었다.자신을 향해 살기를 뿜어내며 으르렁거리던 그 태도는… 강한 수컷의 눈빛 그 자체였다.유진을 품에 짓이기듯 끌어안고 겉으로 드러내던 그 지독하고도 압도적인 영역 표시.요스케가 혼란에 빠져 있을 때…유진에게서 다급함이 묻어나는 장문의 톡이 이어졌다.“그 날 오빠랑 싸우고 제가 새벽에 집을 나와서… 선배와 있었다고 오해했나봐요. 혹시 오빠가 실수 했어도 이해해 주세요”글자 너머로 전전긍긍하며 변명을 늘어놓는 유진의 모습이 눈에 선하게 그려졌다.요스케는 문득 예전에 유진이 통화 결에 읊조렸던 단어가 머릿속을 스쳤다.[아… 럭스 그룹 강선호이사…]요스케
열린 실험실 문틈으로 들어선 것은…다름 아닌 선호였다.순간 좁은 실험실의 공기가 얼어붙으며 두 남자의 시선이 공중에서 날카롭게 격돌했다.바로 어제 오후 정혁의 카페에서 만난 유진의 남자…선호는 그를 서늘하게 노려보며 세상이 무너질 듯한 질투를 뿜어냈다.그리고 그의 눈에 핏발이 섰다.그때 요스케의 등에 무력하게 업혀 있는 유진이 보였다.그는 이성을 잃고 달려들어 그녀의 가녀린 몸을 거칠고 난폭하게 빼앗았다.그리고 자신의 품에 안아 들었다.선호의 억센 악력에 짓눌려 유진의 나직한 신음을 뱉었다.하지만 선호에게는 그런 그녀의 아픔이 들리지 않는 듯했다.“뭡니까? 당신 누구야?”순간적으로 유진을 빼앗긴 요스케가 선호의 멱살을 틀어쥐었다.그의 커다란 덩치에서 뿜어져 나오는 위압감도 만만치 않았다.그러나 선호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요스케의 팔을 거칠게 뿌리쳤다.그리고 맹수와도 같은 살기를 띠며 경고하듯 요스케의 눈을 짓눌렸다.“서유진… 함부로 손 대지 마. 네 손에 찢겨 죽고 싶지 않으면…”그것은 단순한 허세나 협박이 아니었다.유진을 향한 비틀린 소유욕과 광기에서 비롯된 서늘하고 진득한 살의였다.선호는 여전히 뜨거운 열을 내뿜는 유진을 제 품에 부서질 듯 꼭 끌어안았다.그리고 요스케를 뒤로하고 실험실 밖으로 성큼성큼 나가버렸다.멀어지는 선호의 넓은 등 뒤로 유진의 힘없는 손이 허공에 잠시 늘어졌다가 툭 떨어졌다.남자의 너무도 강하고 잔인한 경고에…순간적으로 기가 죽은 요스케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자리에 멈춰 섰다.그리고 복도를 가로지르는 선호의 거친 발소리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요스케는 한동안 정신이 멍해진 채 굳어 있었다.뒤이어 해일 같은 비참함과 미치도록 더러운 기분이 그의 전신을 지배하기 시작했다.가슴속 깊은 곳에서 배신감의 불꽃이 이글거렸다.[너… 여태껏 남자 있으면서… 사람 감정 가지고 놀았던 거니?]요스케는 주먹을 너무 세게 쥔 나머지 손톱이 살을 파고들어 피가 배어 나올 것 같았다.어제 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