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ICIAR SESIÓN태주의 목소리는 평소와 같았다.그게 조금 얄미웠다.서경은 수첩을 펴놓고 월요일 심의에 관해 들었다. 학생 지원도 아직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었다.“그럼 지금은 제가 더 볼 건 없죠?”“네. 자료가 오면 공유하겠습니다.”통화가 끝날 것 같았다. 서경은 수첩을 덮었다가 다시 폈다. 조금 전까지 그와 입술을 맞대고 있었는데, 전화에서는 다시 처음 만난 대표와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그런데요.”그녀가 불렀다.“오늘 산 책은요?”태주가 잠깐 말을 멈췄다.“차에 두었습니다. 아직 못 읽었습니다.”“저는 수첩 펴봤어요.”“첫 칸에 무엇을 적으셨습니까?”서경은 비어 있는 칸을 손가락으로 쓸었다.“아직 아무것도요.”날짜보다 그의 이름을 먼저 적을까 망설이던 참이었다.태주가 낮게 웃었다.“나는 이미 오늘을 너무 많이 생각해서요.”서경의 손이 멎었다.“그런 목소리는 아닌데요.”“어떤 목소리여야 합니까?”그 질문에 대답을 못 했다. 무슨 말을 바라서 붙잡았는지 들킨 기분이었다. 서경이 침대 가장자리에 앉자 천이 작게 쓸렸다.“지금도 조금 떨리면 좋겠어요.”말해놓고 얼굴을 손으로 가렸다. 전화여서 다행이었다.태주는 바로 답하지 않았다. 저편에서 차 문 닫히는 소리가 났다. 누군가와 인사를 하는 짧은 목소리 뒤에 다시 그만 남았다.“방금 집에 들어왔습니다.&rdquo
두 사람은 오후에 만났다.차를 타고 어딘가로 이동하는 대신, 서경이 골라둔 작은 책방 앞에서 기다렸다. 태주는 늘 입던 정장 위에 코트를 걸쳤지만 넥타이는 매지 않았다.서경이 그를 보고 웃었다.“쉬는 날도 그렇게 입어요?”“이 정도면 많이 편하게 입은 겁니다.”“그럼 저는 오늘 귀한 걸 보는 거네요.”태주는 그녀의 셔츠 소매를 보다가 시선을 올렸다.“저도 그렇습니다.”서경은 대꾸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옷을 칭찬하는 말이라고 하기에는 그가 자신을 보는 시간이 조금 길었다.책방에는 책과 문구가 함께 놓여 있었다. 태주는 진열대 사이에서 몸을 옆으로 돌려야 했다. 서경이 먼저 안쪽으로 들어가 작은 수첩을 집었다.“새해 일정 적으려고요.”그녀가 날짜가 인쇄된 면을 넘겼다. 아직 아무 약속도 적히지 않은 칸들이 이어졌다.태주가 옆의 가벼운 수첩을 들어보았다.“두 권이 별로 차이 없군요.”“태주 씨 손에 들면 그렇겠죠.”서경이 두 권을 받아 비교했다.그녀가 작은 수첩을 골라 계산했다. 태주는 얇은 소설책을 한 권 샀다. 서경이 무슨 내용이냐고 묻자 아직 모르겠다고 답했다.“첫 문장이 마음에 들어서요.”“끝까지 마음에 안 들면요?”“그럼 끝이 마음에 안 들었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서경은 나중에 물어보려고 책 제목을 기억해두었다.***늦은 점심을 먹는 동안 서경은 태주가 파를 골라내는 것을 보았다.“그거 안 좋아해요?&rd
출입구로 향하던 복도에서 직원이 잠시 옆쪽에 기다려달라고 했다.다른 통로에서 사람들이 들어오고 있었다. 서경은 처음에는 보지 않았다. 벽에 붙은 안내를 읽으며 몸을 비켜섰다.“서경아.”그 목소리에 목덜미가 먼저 굳었다.시우가 수사관들과 함께 들어오다가 그녀를 알아보았다. 몇 걸음 사이였지만 직원이 곧바로 두 사람 사이로 옮겨 섰다. 정 변호사도 서경 곁에 붙었다.시우는 소리치지 않았다.“잠깐만. 나 좀 봐.”서경은 고개를 들었다. 그의 코트가 눈에 들어왔다. 겨울이 오면 늘 그녀가 솔로 먼지를 털어주던 옷이었다. 어깨에 밝은 실밥이 하나 붙어 있었다.오른손이 물병에서 떨어졌다. 저 실밥 하나만 떼어주면 그가 조금 덜 초라해질 것 같았다. 그 생각이 드는 순간 서경은 입술을 깨물었다. 아직도 그의 얼굴부터 정리해주려는 자신이 있었다.그녀는 들었던 손으로 자기 가방끈을 잡았다. 손가락을 펴고 다시 쥐었다. 몇 걸음 앞의 코트는 그대로 두었다.“네가 오해한 부분이 있어. 내가 설명할게.”시우가 한 걸음 옮기려 하자 수사관이 이동해야 한다고 말했다.“잠깐이면 됩니다. 제가 오래 돌본 사람이에요.”직원은 서경을 대신 그 앞으로 보내지 않았다. 시우의 앞을 막은 채 이동할 통로를 다시 가리켰다. 그의 설명으로 길이 열리지 않았다. 서경은 그 모습을 본 뒤에야 코트 어깨에서 눈을 뗐다.“서경 씨, 이쪽으로 가시죠.”정 변호사가 출입구 쪽을 가리켰다.시우가 서경의 이름을 다시 불렀다.“너는 내 말을 들어야지.”그녀는 물병을 가방에 넣고 돌아섰다.“저는 나가겠습니다.
서경은 면담을 끝내겠다고 말했다.정 변호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우 쪽 변호인도 더 붙잡을 수는 없다고 낮게 말했다. 시우는 그 말을 듣지 않은 얼굴로 서경을 보았다.“내가 입 열면 너도 곤란해져.”그가 말했다.서경은 가방끈을 쥔 채 멈췄다.“네가 직접 쓴 서류도 있고, 네가 결제한 것도 있어. 받았던 돈 전부 확인받게 될 거야. 그때도 지금처럼 남의 도움만 믿고 버틸 수 있을까?”“제가 한 일은 조사에서 말씀드리고 있어요.”“조사받는 게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몰라서 그래. 한 번 시작하면 네 인생이 다 끌려나와.”서경의 배 안쪽이 차게 굳었다. 질문받고 나온 뒤 밤새 다른 대답을 생각했던 날도 있었다.그녀는 그래도 가방을 내려놓지 않았다.“무섭지만 받고 있어요.”서경은 손잡이에서 미끄러진 가방끈을 다시 당겼다.“시우 씨한테 안 무섭다고 말하려고 버티는 게 아니에요. 무서워도 돌아가지는 않을 거예요.”시우가 말을 잃었다.그녀는 돌아서 문으로 갔다. 시우의 의자가 뒤에서 밀렸다. 정 변호사가 곁으로 옮겨서고 상대 변호인이 시우를 불렀다.아무도 서경의 팔을 잡지 못했다.복도에 나오자 무릎이 조금 떨렸다. 서경은 벽에 손을 대고 숨을 골랐다. 변호사가 괜찮으냐고 묻자 고개를 저었다.“괜찮지는 않아요. 그래도 나왔어요.”가방 속 사진 모서리가 옆구리에 닿았다. 시우에게 돌아가지 않아도 아버지 사진을 가져올 수 있었다.그녀는 엘리베이터 버튼을 왼손으로 눌렀다.***태주는 사무실 근처의 카페에서 기다렸다.그
입장문은 다음 날 오전 대리인을 통해 전달하기로 했다.서경은 마지막 문장을 다시 읽었다. 그래도 아이들 얼굴은 붙이지 않았다.옷을 갈아입으려 할 때 정 변호사에게 전화가 왔다. 시우 측에서 개인 물품 인계와 함께 마지막 면담을 요청했다는 내용이었다. 서경의 대리인과 시우의 변호인이 모두 동석하는 자리도 받아들이겠다고 했다.“응하셔야 할 의무는 없습니다.”변호사가 말했다.서경은 탁자 위 연주 사진을 보았다. 오래된 원본 사진과 개인 편지 일부가 아직 시우 쪽에 남아 있었다. 그걸 핑계로 부른다는 것을 알았다.“물건만 받을 수도 있죠?”“네.”그녀는 잠시 생각했다.그가 마지막으로 어떤 부탁을 하는지, 자기 대답을 남기고 싶었다.“시간을 정해주세요. 길게는 안 듣겠습니다.”서경이 말했다.“제가 끝내겠다고 하면 그 자리에서 나올 수 있게요.”태주에게는 내일 이야기하겠다는 메시지를 보냈다.서경은 사진을 뒤집어 아버지 글씨가 위로 오게 놓았다.그리고 시우가 부탁할 말보다, 자신이 하지 않을 대답을 먼저 생각했다.***목요일 오후, 시우는 서경이 들어오자 일어났다. 화요일에 전달된 그녀의 입장문이 그의 서류철 맨 위에 놓여 있었다.버릇처럼 팔을 조금 벌렸다가, 그녀가 정 변호사 옆자리에 앉는 것을 보고 내렸다. 탁자에는 서경의 코트와 개인 사진이 담긴 상자가 있었다. 시우 쪽 변호인이 물품 목록을 내밀었다.먼저 상자 안을 확인했다.사진 뒷면의 아버지 글씨, 대학 시절에 받은 편지, 겨울 코트. 업무 서류는 별도 목록으로 구분했다. 서경은 확인한 개인 물품에 대해서만 서명했다.
“얼굴을 가리면 되는 문제일까요?”서경이 물었다.기획안에는 과거 병실과 현재 생활을 대비하고, 어머니와 학생들도 촬영하겠다고 적혀 있었다.서경은 그 줄에서 손을 멈췄다.“엄마하고 아이들이 왜 나와야 하죠?”“아직 준 자료는 없습니다. 원치 않는 촬영은 빼죠.”서경은 화면 속 사진을 보았다. 병실의 이불이 내려가 있었고 시우의 손이 어깨에 얹혀 있었다. 사진을 보면 소매 끝만 당기던 손이 먼저 떠올랐다. 이불을 올려달라고 입으로 말했는지까지는 이제 확실하지 않았다. 사진 속에는 다정한 손만 남아 있었다. 서경은 어깨를 움츠렸다. 난방이 켜진 사무실인데도 그날의 찬 등이 돌아왔다.“저쪽 말만 나가면 사람들이 다 믿겠죠?”그녀가 물었다.“반론을 전할 방법은 있습니다. 인터뷰 전체에 응해야만 하는 건 아닙니다.”기획안에는 잘 살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자는 말도 있었다. 서경은 아픈 손을 주무르다 그 줄을 그었다.“말은 하고 싶어요. 제가 받은 것까지 없었다고는 안 할 거고요.”그녀는 출력물을 자기 쪽으로 당겼다.“하지만 엄마 방에 카메라를 들이고 싶지는 않아요.”***11월 23일 월요일 저녁이 되어도 첫 문장이 나오지 않았다.저는 피해자입니다.서경은 썼다가 지웠다. 손 사진과 오늘의 잔액까지 붙여야 할 것 같았다.그녀는 다시 썼다.과거 생활비와 어머니의 치료비를 지원받은 사실은 있습니다.문장이 화면에 남았다. 저쪽에서 좋아할 말부터 쓴 것 같아 손을 멈췄다. 그렇지만 없었던 일로 만들 수는 없었다.다음 줄에는 김채린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