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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화

Author: 주임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9-20 23:00:18

***

평화란 무엇인가.

아르텐시아는 물었다.

지금, 바로 이곳.

그리고 스스로 대답했다.

아이작이 사라지고 빗물이 떨어지는 이 길 한가운데에 진정한 평화가 찾아왔다.

아르텐시아는 손을 들어 젖은 머리를 쓸어넘겼다.

짧은 머리카락을 타고 물방울이 떨어져 내렸다.

그녀는 다시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면서도 생각했다.

고요함은 곧 편안함과 같구나, 라고.

인간들의 작은 신앙심이 모여 그녀에게 어둠의 힘으로 발현된 것이 필연인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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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의 여신은 복수를 원한다   31화

    역시나 숲이었다.하지만 조금 전 텐죠우의 결계로 보았던 숲과는 차이가 있었다.발목 아래로 짧게 올라온 풀이 그러했고 이끼 낀 커다란 나무들이 그러했다.나무는 뿌리가 드러나 땅 위에 머물렀고 위에 가지는 하늘을 가릴 정도로 아무렇게나 뻗어 있었다.줄기가 나무를 타고 올라 기둥을 감아냈고 그 끝은 정돈되지 않은 잎들이 무성했다.버려진 숲.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세 번째 결계 인가.”아르텐시아는 이곳을 당연히 결계 속이라고 생각했다.총 세계의 결계 중 앞에 두 개가 사라졌으니까.그녀는 일단 걸었다.숲은 습하고 어두워 길 따위 존재하지 않았다.태양 빛은 고사하고 주변에 빛을 발하는 등나무 꽃이 없었다면 누구라도 길을 잃을 것이었다.아르텐시아는 한참을 걷고 쉬기를 반복했다.끈질기게 걷던 그녀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 것은 그 이후로도 몇 시간이 지나서였다.아르텐시아는 빛을 내는 풀밭의 가장자리에 앉아 무릎을 끌어안았다.유일하게 이 숲에서 나무나 꽃, 풀이나 빛이 없는 자리였다.그녀는 고요히 내려앉아 빛을 내는 풀을 살며시 매만졌다.“역시….”풀은 그녀의 손이 닿자 연기처럼 사라졌다가 다시 원상 복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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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론 스스로를 위한 것인지 시시를 위한 것인지 알 수 없었으나 썩 마음에 드는 꼴은 아니었다.이 공간은 허무하리만큼 온기와 평온함이 고여있었으니까.참으로 위선적이지 않은가.“정숙하고 온화했던 나를 짓밟아놓고 평화를 원하다니.”아르텐시아는 언젠가 마주했던 텐죠우의 세로로 길게 찢어진 짐승의 눈동자를 기억했다. [저 신관의 말이 맞습니다. 아미노의 방에서 나오시는 것을 제가 보았습니다.]그의 눈동자는 비정하고 무도했고. [이유는 알 수 없습니다. 제가 직접 본 것을 말할 뿐입니다.]그의 혀 또한 그랬다. [아르텐시아님. 변명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모두 뜻이 있어 행한 것 아닙니까.]단호하고 우직한 짐승은 애처로운 여신의 손을 지나쳐 그렇게 사라졌다.자신이 섬기던 여신의 말을 끝내 들어주지 않은 채로. [아미노가 그럴 리 없습니다.]잔인했던 텐죠우의 목소리가 귓속을 파고 들어 머리에 박히는 기분이 들었다.

  • 나의 여신은 복수를 원한다   29화

    ***평화란 무엇인가.아르텐시아는 물었다.지금, 바로 이곳.그리고 스스로 대답했다.아이작이 사라지고 빗물이 떨어지는 이 길 한가운데에 진정한 평화가 찾아왔다.아르텐시아는 손을 들어 젖은 머리를 쓸어넘겼다.짧은 머리카락을 타고 물방울이 떨어져 내렸다.그녀는 다시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면서도 생각했다.고요함은 곧 편안함과 같구나, 라고.인간들의 작은 신앙심이 모여 그녀에게 어둠의 힘으로 발현된 것이 필연인 것처럼.평화는 어둠이 공존할 때 비로소 가치가 완전해진다고 정의했다.그렇다면 어둠이란 무엇일까.언젠가 라리아는 어둠을 두고 무섭다고 표현했다.어둠의 가장자리에 서서 누구보다 밝게 빛나고 있었으면서.그녀는 항상 아르텐시아의 앞을 걸으며 빛을 비추고 길을 알려주었음에도 어둠의 무서움을 믿는다고 했다.아르텐시아는 라리아의 집 앞에 다다라 텃밭을 둘러 보기 위해 걸음을 멈췄다.그녀는 가지가 튼튼해진 올리브나무 아래 그림자를 봤다.그림자도 나무를 따라, 가지 부분이 튼튼하게 보였다.‘어쩌면 그럴지도 몰라.’그래, 어둠에게 무

  • 나의 여신은 복수를 원한다   28화

    아이작은 잠시 뺨을 스치는 바람이 느껴지지 않자 마지막으로 소리쳤다. “세 개의 결계 중 첫 번째와 두 번째를 조심하십시오! 텐죠우가 만든 것입니다!” 텐죠우. 짐승의 왕이며 현자였다.인간 외에 격을 갖춘 짐승을 보살피라는 여신의 명을 받은 자였다. 시시의 숲을 그가 지키고 있었다. 아르텐시아에게는 아직 힘든 상대였다. 아이작은 최대한 그녀의 곁으로 빨리 돌아와야겠다고 생각했다. 시시의 숲은 유일하게 아이작만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아르텐시아는 곧이곧대로 듣지 않았다. “숲을 지키는 짐승이라니. 눈물겨운 우정이구나.” 아이작은 아르텐시아의 커진 분노에 전신을 더욱 죄어오는 고통을 참아냈다. 그녀에게 죄악감과 죄책감을 느끼게 할 수는 없었으니까. “지키고 있다면 부수면 그만인 것을. 결계는 내가 모두 찢어낼 것이다.” 아이작은 모르지 않았다. 자신이 바다 깊은 곳에 처박히는 것보다 아르텐시아가 느끼는 절망과 분노의 고통이 더욱 클 것이라는 것을. “마치 너희의 앞으로 닥칠 운명처럼말이다.” 그러나 그것을 참아내고 대비한 것이 무색하게 그녀의 목소리가 주는 마음의 충격은 그 무게가 달라서. “아르텐시아님…!” 아이작은 결국 바다에 내던져지는 그 순간에 저도 모르게 아르텐시아를 향해 손을 뻗었다.

  • 나의 여신은 복수를 원한다   27화

    “아이작. 아미노의 옆에 서서 무슨 생각을 했지?” 잘 죽었다고 생각했나?사실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해 아쉬웠나? 인간을 그리도 믿더니 순진하고 순수하게 가는구나, 생각했나? 아르텐시아는 마치 악귀의 환영처럼 아이작의 머릿속을 헤집었다. “마지막에 내가 네게 손을 뻗었었지.” 그녀는 휘몰아치는 어둠의 안개에 휘어 감겨 후드가 벗겨져도 내버려 두었다. 천상의 색을 담은 머리카락이 짧게나마 나부꼈다. 아르텐시아는 갑자기 태양 빛이 드리운 듯 환하게 웃으며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안개의 파도가 넘실거리듯 그녀의 감정이 요동쳤다. “내가 그것만은 기억이 나지 않아. 어때? 내 손을 잡아 주었나?” 애처롭고 가여운 아르텐시아.순수하고 멍청했던 아르텐시아. 그녀는 에테르가 들어있는 주머니를 꼭 껴안았다. “손은, 제가…!”“아! 내가 뻗은 손을 잡았을 리 없지.” 마치 갓 태어나 사랑스러운 아이를 끌어 안 듯. 자신이 생각한 사실이 진실이라는 것을 한치도 의심하지 않는 투였다. “아미노가 새로이 재정비할 세계에서 살아남으려면 그의 뜻을 거스르는 짓을 할 순 없었을 테니. 안 그런가? 아미노의 현자여.”“아르텐시아!” 아르텐시아는 아이작의 경악한 얼굴에 그래도 염치는 있는 놈이구나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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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위는 조용했고 모두가 그녀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그렇게 크고 아름다운 하나의 세계가 만들어졌다.” 그때 저 멀리 작은 새가 지저귀는 소리가 들렸다. 새는 크게 날아 가볍게 그녀의 어깨에 앉았다. 아르텐시아는 형형한 눈빛으로 새를 보고 이어서 말했다. “여신은 환희에 가득 차 자신을 대신할 세계의 근본을 만들고 지혜를 가진 존재로 인정했다.” 새는 잠시 날개를 고르더니 날아가 버렸다. 그때 한 아이가 손을 들고 물었다. “혹시, 그게 에테르에요?”“그래.” 에테르, 에테르.당신의 이름을 인간이 불렀어.그렇게 사랑해 마지않던 인간이. 아르텐시아는 부활하여 처음으로 타인의 목소리로 에테르의 이름을 들은 것이 기뻤다. 정말 순수하게. “와아-.”“세상에….” 기쁜 마음이 얼굴에 다 보일 정도로. 그녀는 마침 드러나는 태양 빛을 받아 찬란하게 미소지었다. 그 미소는 이야기 속 천상에 산다는 여신의 것처럼 아름다웠다. 마을 인간들은 그녀가 얼굴을 다 드러내는 것을 처음 보았다. 심지어 웃는 얼굴은 더더욱 처음이었다. 아르텐시아는 이어서 말했다. “에테르는 탄생하여 세계를 구성하는 모든 것을 사랑했다. 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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