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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Autor: 주임
last update Fecha de publicación: 2026-09-16 21:00:17

무슨 물, 일까.

이것은 긴장감에 온몸에 들어갔던 힘이 살며시 풀리며 괜히 입맛까지 다시게 했다.

가슴을 녹이며 퍼져나가는 따스함은 이 세계에서는 다시 느낄 수 없는 것이었다.

“후후.”

라리아는 버려진 짐승같이 날카롭던 아르텐시아의 눈빛이 조금 풀리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금방 다시 돌아온 그녀는 덩달아 좋아진 기분에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그 물을 다 마시면 저 옆에 문으로 들어가서 몸을 씻고 쉬어.”

그리고는 아르텐시아가 들고 있는 컵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마침 많은 비가 내려서 다행이었어. 물을 많이 얻을 수 있었으니.”

라리아는 경작마저 어려운 땅이라며 혀를 찼던 과거를 잊은 모양인지 연신 미소를 띠며 말했다.

“물 걱정은 하지 말고 씻어도 돼.”

그녀는 아르텐시아가 조심스럽게 건네는 컵을 촛불 옆에 내려놓았다.

대신 낡은 수건 한 장을 다시 쥐여줬다.

“어서, 물이 따듯할 때 씻어.”

“….”

“나오면 물 한잔 더 줄게.”

아르텐시아가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섰다.

하지만 움직이지는 못했다.

라리아는 그 모습을 보고도 놀라지 않았다.

그저 넓은 갈대숲에 버려져 길을 잃은 작은 손님을 발견한 것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

“그렇지, 내 욕실을 쓰는 건 처음일 테니 오늘은 내가 알려줄게.”

그래서였을까.

그녀는 이번에도 아르텐시아를 지나쳐 먼저 욕실로 향했다.

조금 전 자신의 집으로 향했을 때처럼, 아르텐시아가 자신을 따라오길 바라며.

라리아의 손에는 어느새 자신을 많이 닮았던 딸의 옷가지가 들려 있었다.

‘세상에….’

신비로운 색의 머리카락이었다.

라리아는 살아생전 이런 색의 머리카락을 가진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세계 곳곳으로 사라졌다는 현자들이라면 모르겠지만, 본 적이 없으니 비교할 수 없었다.

구름이 태양 빛을 받아 은은하게 빛나고 그 위에 맑은 하늘색이 투영되어 보이는 것 같았다.

라리아는 답답했다.

이 신비로운 색을 자신이 알고 있는 단어들만으로는 설명할 길이 없었다.

먼지와 흙이 묻어 있던 머리카락이 물로 헹구어질 때마다 다르게 보였다.

게다가 당장 땅에서 솟았다고 해도 믿을 몰골을 하던 이가 먼지를 덜어내니 미모가 상상 이상이었다.

작은 얼굴에 오목조목 들어가 있는 눈과 코는 조화롭기가 아름답다는 말로밖에 표현이 되지 않았고 깊고 푸른 눈동자는 보석만큼 빛이 났다.

‘생각보다 키도 크고.’

그리고 가까이서 마주한 이는 이 세계의 여인들보다 큰 라리아와 비슷할 정도로 키가 컸다.

늘씬한 팔다리는 그녀를 가녀려 보이게 만들었지만 탄탄한 몸매는 마냥 그렇게 보이지 않도록 했다.

이런 이가 어찌하여 이런 몰골로 돌아다니고 있었을까.

라리아는 마침내 몸을 다 씻고 멀뚱히 앉아있는 정수리를 보며 그저 고개를 저어냈다.

처음. 욕실에 들어와 옷이라고 할 수도 없는 천 쪼가리에 손을 댔을 때가 생각난 덕분이었다.

[감히! 손 떼!]

언젠가 숲에서 만난 짐승과 같은 반응이었다.

손을 대길 거부하고 경계가 짙은 기색이 딱 맞아떨어졌다.

그래서 생각을 털어냈다.

이이는 어떤 사연이 있겠구나.

나는 그저 연민으로 자비를 베풀자.

야무진 손으로 정체를 알 수 없는 손님의 머리카락을 말리며 그리 털어냈다.

머리카락은 생각보다 길고 풍성해 말리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어느새 밤이 깊었고 사위는 조용했다.

라리아는 부랴부랴 아르텐시아를 침실로 안내했다.

약속대로 따듯하게 데운 물 한잔을 더 주고 낡았지만 포근한 잠자리에 그녀를 눕혔다.

“오늘은 여기서 자도록 해.”

“…….”

아르텐시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날이 밝으면 자신의 자취를 지우고 이곳을 떠날 작정이었다.

잠을 잘 수도 없었다.

이 늙은 인간이 갑자기 어떻게 돌변할지 알 수 없었으니까.

그래서 라리아를 무시하고 눈을 감았다.

대화를 하고 싶지 않다는 표현이었으나 라리아는 다르게 받아들였다.

“아가, 잠이 오지 않으면 자장가라도 불러 줄까?”

그녀는 이제 아르텐시아를 확실히 길을 잃은 누군가의 아이로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아가? 나는 아가가 아니다.”

“그럼, 뭔데?”

아르텐시아가 기가 막혀 눈을 떴다.

“…….”

“그럼 이름을 알려줄래?”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침구 속에서 무언가를 찾기위해 손을 더듬었다.

“이름이라도 알려주면 아가라고 부를 일이 없을 텐데.”

“그런 거 없어.”

하지만 아르텐시아는 자신의 이름을 말하는데 포기했다.

이 세계에 자신의 이름을 말할 순 없었다.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무언가를 던지는 성난 군중의 얼굴이 머릿속 어딘가를 스쳐 지나갔다.

“그런 거, 없어.‘

여신은 눈을 꼭 감았다.

여전히 대화하고 싶지 않았다.

‘이름 따위 필요 없잖아.’

경외와 경배, 숭배와 찬미를 담아 자신을 우러러보던 인간들이 연호하던 그 이름은 이제 불러줄 이가 없었다.

“그래, 그럼.”

아르텐시아는 침구 속에서 에테르를 꼭 쥐며 라리아가 포기의 숨을 내뱉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그녀에게 낯선 안도를 느끼게 했다.

절로 손에 힘이 들어갈 정도로.

얼마나 힘을 주었는지 날카롭고 잘 벼려진 에테르의 조각이 여린 손바닥에 자국을 남겼다.

그대로 그녀는 라리아가 나가길 기다렸다.

잠시나마 에테르와 둘만 있고 싶었다.

“그렇다면 자장가는 들어야겠구나.”

“…뭐?”

하지만 라리아는 나가지 않았다.

대신 바람에 흩날려 떨어진 꽃잎 같은 아르텐시아의 머리카락을 넘겨주며 자리를 지켰다.

그녀가 가져온 작은 촛불이 방안을 은은하게 비추며 라리아의 흥얼거림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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