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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Penulis: 루에나
이혼 서류를 제출할 때 입고 있었던, 맞춤 회색 정장을 그대로 입고 있었다.

소파에 앉은 그의 자세는 늘 한결같았다.

느슨하면서도 냉담하고, 여유롭지만 차가웠다.

의사와 가볍게 잡담을 나누는 모습은, 방금 이혼한 사람이라곤 믿기 힘들 정도로 평온했다.

‘어떻게,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을 수 있지.’

강솔의 손끝이 저도 모르게 오므라들었다.

중현을 바라보는 눈에는 분명한 불쾌와 혐오가 담겨 있었다.

그때, 주치의인 주승현이 강솔을 보고 고개를 들었다.

“오셨군요.”

“네.”

짧게 대답하고 시선을 피했다.

“아까 전화로 얘기 들으셨죠?”

주승현은 서류를 한 장 내밀었다.

“이건 매달 지출되는 치료비 명세서입니다. 확인하시고, 문제가 없으면 서명해 주세요.”

강솔은 서류를 받아 들었다.

숫자를 본 순간, 숨이 턱 막혔다.

매달 몇 천만 원에 달하는 금액들.

예전 같으면 감당할 수 있겠지만, 지금은 불가능했다.

‘병원비... 혼자선 도저히 감당이 안 돼.’

의사가 그녀의 얼굴색을 살피더니, 또 다른 서류를 꺼냈다.

“부담스러우시면, 비용이 조금 낮은 이쪽 옵션도 있습니다.”

새 치료안은 조금 더 저렴하긴 했지만, 그마저도 매달 수백만 원이 필요했다.

강솔이 계속 서류만 들여다보고 있자, 의사는 곁눈질로 하중현을 바라봤다.

그가 아무 말없이 가볍게 눈짓을 하자, 의사가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잠깐 고민해 보시죠. 저는 다른 예약 환자가 있어서 잠깐...”

“네.”

강솔은 눈도 떼지 않은 채 짧게 대답했다.

의사가 나가며 문을 닫자, 조용한 공간에 두 사람의 숨소리만 들렸다.

“아무리 계산을 돌려 봐도 답이 안 나올 거야.”

중현이 먼저 입을 열었다.

늘 그렇듯, 담담하고 느긋한 톤이었다.

“당신 혼자로는 그 돈 감당 못 해. 특히 지금처럼 가진 게 아무것도 없는 상태라면.”

강솔의 시선이 날카로워졌다.

“그런 말을 지금 왜 해?”

“현실적인 얘기야.”

중현은 여유롭게 다리를 꼬며 말했다.

“집도 구해야 하고, 지안이도 네가 키운다며. 그 돈으론 둘 다 챙기기 힘들 걸.”

“하중현, 지금 하고 싶은 말이 뭐야?”

강솔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중현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바닥을 울리는 구두굽 소리가 묘하게 불편했다.

“이혼, 난 당신이 잠깐 감정적으로 그런 결정을 한 거라고 생각해.”

중현이 강솔 앞에 바짝 다가섰다.

“지금이라도 없던 일로 하면, 어머니 치료비는 내가 계속 내 줄게.”

“그리고 넌 여전히 내 아내야.”

“소아연은?”

강솔의 입술이 살짝 떨렸다.

“최대한 당신이랑 안 부딪히게 할게.”

중현의 눈빛엔 미안함도, 죄책감도 없었다.

“아연이 다시는 당신 앞에 나타나지 않도록 하겠어.”

“그럼... 난 당신의 그 세심한 배려에 내가 고마워해야겠네?”

입가에 비웃음이 번졌다.

“너도 알잖아.”

그는 담담하게, 마치 협상이라도 하듯 말했다.

“지금 네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넌 지금껏 경제적으로 별 어려움 없이 살아 왔어.”

“하지만 이제부터는 절약하고 아끼면서 살아야 할 텐데, 그게 쉽지 않단 말이지.”

강솔도 알고 있다.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늘 풍요롭게 살았다.

강씨 가문이 몰락하기 전까지.

집안에 변고가 생긴 뒤에는 곧바로 중현과 결혼했다.

결혼 후에는 남편의 카드를 마음껏 쓰면서, 한 번도 궁색하게 산 적이 없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지금 삶에 만족하고 살았을 것이다.

중현이 아연과 함께 하더라도, 절대 강솔을 나 몰라라 할 사람은 아니니까.

강솔이 원하는 건 다 들어줄 것이며, 예전과 똑같이 세심하고 따뜻하게 살필 것이다.

물질적인 것만 쫓으면서 사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강솔은 그런 사람이 아니다.

“자존심하고 존엄 따위가 밥 먹여줘?”

중현은 그녀의 속내를 읽은 듯, 덧붙였다.

“지금 직면한 현실은 네 생각한 것보다 훨씬 버겁고 힘들 거야.”

“그건 내 일이야.”

강솔이 날카롭게 잘라 말했다.

“당신은 그냥 당신 인생이나 잘 살아.”

“야, 강솔...”

그는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이었다.

“왜 이렇게까지 고집을 피우는 거야?”

“여보세요, 하 대표님...”

강솔은 처음으로 남편에게 존칭을 사용했다.

그건 예의가 아니라, 선 긋기였다.

“더 하실 말씀 없으면, 나가줄래? 나 의사 선생님이랑 할 얘기 있거든...”

말끝이 차갑게 떨어졌다.

강솔은 중현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중현은 끝까지 차분했다.

화를 내지도, 감정을 드러내지도 않았다.

그저 조용히, 아내를 바라봤다.

그 시선 속에서, 강솔의 마음속 방어선이 서서히 무너져 내렸다.

‘저 사람은 왜 저렇게 여유로울까?’

‘왜 나만, 이렇게 숨이 막히는 거야?’

손에 쥔 서류가 구겨질 정도로 꽉 움켜쥔 채, 강솔은 억지로 고개를 들었다.

중현의 눈을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이 싸움에서만큼은 절대 지고 싶지 않았다.

중현이 입을 열었다.

“생각할 시간 줄게. 1분.”

말투는 여전히 평온했다.

“1분 안에 마음을 바꾸면, 아무 일도 없었던 걸로 하겠어.”

“하지만 1분이 지나면... 넌 그냥 ‘강솔’이 되는 거야.”

“그때 가서 후회해도, 내가 다시 받아주지 않아.”

강솔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봤다.

협박해도, 이제는 두렵지도 않았다.

그렇게 1분 시간이 지나갔다.

“좋아.”

그는 무표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선택한 거야.”

쾅!

문이 닫히는 소리가 병실 안에 울렸다.

그 소리와 함께, 그녀의 심장도 내려앉았다.

‘이게... 진짜 끝이구나.’

강솔은 잠시 멍하니 서 있었다.

사랑했던 남자의 뒷모습이 이토록 낯설고 차가운 게, 믿기지 않았다.

결혼 생활 동안 늘 뜨거운 사랑으로만 함께한 건 아니었지만, 최소한 진지하고 애틋한 관계였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믿음조차 희미하게 흩어지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주치의가 들어왔다.

“강솔 씨.”

그녀는 얼른 자세를 고쳐 앉으며 말했다.

“선생님, 오늘 주신 치료안은 좀 더 검토해 보고, 내일쯤 다시 연락드려도 될까요?”

“그럼요.”

그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치료비 정산일 열흘 전까지는 결정해 주셔야 합니다.”

“네, 감사합니다.”

서류를 들고 병원을 나서는 강솔의 발걸음이 무거웠다.

‘이 돈을 어떻게 마련하지...’

병원 로고가 새겨진 대리석 벽을 무심히 쳐다봤다.

HS그룹 산하의 최고급 종합병원.

국내외 최고 의료진, 최고 장비.

그 모든 게 중현 덕분이었다.

‘병원을 옮기면, 엄마는 더 이상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하겠지.’

‘그렇다고... 그 인간에게 다시 손을 벌릴 순 없어.’

강솔의 유일한 가족, 이 세상에서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해 준 단 한 사람.

엄마만큼은 지켜야 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버스 창밖의 풍경이 흐릿하게 번졌다.

‘지안이한테는...어떻게 말해야 할까?’

지안은 어려서부터 영리했다.

동갑내기보다 훨씬 어른스러웠고, 엄마가 힘든 티를 내면 늘 먼저 눈치채던 아이였다.

그래서일까, 이번만큼은 왠지 말하는 게 내키지 않았다.

‘혹시 상처받지 않을까?’

하지만 그런 걱정은, 집의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산산조각이 났다.

거실.

거기엔 소아연이 있었다.

중현의 옆에 바짝 붙어 앉아, 그의 어깨에 머리를 살짝 기대고 있었다.

피가 거꾸로 솟았다.

“여긴, 그래도 당신하고 솔이가 사는 집이잖아.”

아연의 목소리는 조심스러운 듯했다.

“내가 여기 있는 건... 좀 그렇지 않아?”

“괜찮아.”

중현의 낮고 단단한 목소리가 들렸다.

“곧 이혼 절차도 끝나.”

“그래도... 혹시 강솔이 불편해하면...”

“그럴 일 없어.”

중현은 부드럽게 손으로 여자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조만간 자기가 이 집 안주인이 될 거야. 강솔은 곧 나갈 거야.”

아연은 눈을 들어 중현을 바라봤다.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

서로를 향한 눈빛. 누가 봐도 완벽한 연인 그 자체였다.

그 순간까지도 두 사람은 강솔이 문 앞에 서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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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난 결코 무너지지 않아   제542화

    “감사할 필요는 없어.”도현의 시선이 강 비서에게 머물렀다.“대신 중현이에게 HS그룹 대표이사 자리를 내놓으라고 전해주면 돼.”강 비서는 예의 바른 태도를 유지했다.“농담도 잘하십니다. 제 말 한마디로 그런 효과가 난다면 진작 대표님께 큰돈을 받아 내고 집에서 누워 쉬었을 겁니다.”“중현이가 그동안 저지른 실수나 허점을 나에게 알려줘도 돼.”“대표님은 일을 하면서 실수하지 않으십니다.”“강 비서, 월급을 두 배로 줄게. 내 쪽으로 와서 일하자.”“가능합니다.”도현의 눈에 뜻밖이라는 기색이 스쳤다. 이런 답이 나올 줄은 몰랐다.강 비서는 도현이 의아해하는 사이 나머지 말을 덧붙였다.“HS그룹 사람은 대표님이 전부 부릴 수 있습니다. 같은 일을 하고 월급을 두 배로 받는 셈이니, 진짜 저를 참 잘 챙겨 주시는 거죠.”도현이 낮게 웃었다.중현이 곁의 수석비서답게 만만한 사람이 아니었다....강솔은 도현의 차가 떠나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차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진 뒤에도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강솔아.”강정숙이 안으로 들어와 강솔을 불렀다.“엄마...”강솔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중현이 죽는 모습을 볼 수는 없었다. 증상이 가볍다면 도현이 직접 찾아오지 않았을 것이다.“저 J시 다녀오고 싶어요.”중현이 자신에게 잘해 주었던 시간도 잊지 못했고, 중현이 준 상처도 잊지 못했다.마찬가지로, 중현이 죽어 가는 것을 모른 척할 만큼 독해질 수도 없었다.“가고 싶으면 가.”강정숙은 강솔의 모든 결정을 존중했다.“지안이는 내가 볼게.”강솔은 아침도 먹지 않고 홍일과 함께 공항으로 향했다. 비행기에 오르기 전까지도 정신이 다른 곳에 가 있는 사람 같았다. 머릿속에는 도현이 했던 말만 가득했다.“조금 주무세요.”비행기에 오른 뒤 홍일이 말했다.“내리기 전에 깨워 드리겠습니다.”“괜찮아.”“하중현 대표님을 만나기도 전에 아가씨가 먼저 쓰러지는 건 원치 않으실 겁니다.”강솔은 핸드폰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 난 결코 무너지지 않아   제541화

    도현은 강솔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예전과 다름없이 단정하고 부드러운 분위기였다.“오랜만이에요.”“저와 지난 이야기나 하러 오신 건 아니겠죠.”강솔의 말투는 예전처럼 곧고 담백했다.“우리 엄마가 저를 찾으신다고 하셨어요. 무슨 일인가요?”도현이 물었다.“중현이가 쓰러진 건 알고 있어요?”“알고 있어요.”“돌아가서 중현이를 한번 보세요.”“우리는 이미 이혼했습니다.”강솔은 누구에게나 같은 말을 했다. 감정은 조금도 밖으로 드러내지 않았다.“찾아올 곳을 잘못 오셨어요.”“예전에 제가 강솔 씨와 거래를 이야기했을 때, 강솔 씨는 중현이 목숨만은 살려 두겠다고 약속했잖아요.”도현은 오래전 일을 꺼냈다. 말투는 느긋했고 여전히 온화했다.“그 약속을 지키게 하려고 왔어요.”“그때 우리는 스스로 떠났잖아요.”“맞아요.”“그러니 거래는 성립되지 않았죠.”“거래의 성립 여부는 제가 약속한 일을 지켰는지로 판단하는 거예요. 강솔 씨가 그 약속을 실제로 썼는지가 아니라요.”도현이 조용히 바로잡았다.“그 정도는 의강소프트웨어 대표인 강솔 씨도 아실 겁니다.”강솔은 알고 있었다.다만 도현의 목적이 그렇게 단순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도현이 갑자기 말했다.“중현이는 곧 죽을 것 같서요.”강솔의 눈동자가 작게 흔들렸다. 망설임 없이 말이 튀어나왔다.“그럴 리 없을 거예요.”“강솔 씨가 돌아가지 않으면 중현이는 설을 넘기지 못할 거예요.”도현은 매정할 만큼 담담하게 사실을 말했다.“두 사람이 이혼한 한 달 동안 중현이는 엉망으로 지냈고, 끼니마다 먹긴 했고 밤마다 제때 침대에 눕기는 했지만, 먹은 건 전부 토했고 잠은 거의 들지 못했어요.”강솔의 가슴이 조여들었다.도현이 강솔을 바라봤다.“중현이는 제대로 살아 보려고 했어요. 그런데 정신과 감정이 뜻대로 따라주지 않았어요.”도현이 이어 말했다.“중현이가 병원을 싫어한다는 건 강솔 씨도 잘 알고 있잖아요. 그런데도 가장 질색하던 정신건강의학과까지 찾아가서 수면제를 처방받았아요.”

  • 난 결코 무너지지 않아   제540화

    그 점에서... 강솔은 탁월했다.강솔은 누구보다 중현을 존중하고, 이해하고, 받아들였다. 강 비서가 줄곧 강솔을 중현에게 더없이 완벽한 아내감이라고 여겼던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어쨌든 제수씨도 잘못은 있어.” 시후는 말로 이기지 못하자 억지를 부렸다.“고 대표님은 먼저 돌아가 쉬십시오.” 강 비서가 권했다. “제가 대표님을 지키겠습니다. 깨어나시면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됐어.” 시후가 거절했다. “나도 같이 여기 있을게.”‘아내가 오지 않는다면, 친구라도 곁에 있어야 하잖아.’강 비서는 시후가 뜻을 굽히지 않자 더 말하지 않았다. 다만 중현이 계속 깊은 잠에 빠져 있는 것을 보고 강솔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사모님,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대표님은 쉬지 못해서 피로가 쌓인 것 같습니다. 고 대표님이 말한 것만큼 위중한 상태는 아닙니다.]강솔은 거의 바로 답했다. [네.]강 비서가 보냈다. [일찍 쉬십시오.]지난 5년처럼 예의 바르고 정중한 그 문장을 보며, 강솔은 옅은 입술을 살짝 다물었다.강솔은 화면 위에 몇 글자를 썼다. [왜 쓰러진 거예요?]결혼한 5년 동안 중현의 몸은 매우 건강했다. 건강검진 결과도 모두 정상 범위였다. 일이 바빠 가끔 밤을 새워도 별다른 문제는 없었다.쓰러졌다는 말은 중현과 어울리지 않았다.문장을 다 썼지만 다시 지웠다. 대신 다른 한 줄을 보냈다. [강 비서님도요.]강 비서는 마음이 복잡했다.이 짧은 한 마디면 강솔이 3초면 칠 수 있었다. 그런데 거의 20초가 걸렸다.‘사모님이 우리 대표님한테 진짜 아무 감정도 없으시다면...’‘내가 이 핸드폰을 씹어 삼킬 수도 있어!’...“아가씨.” 홍일은 외부인이 없을 때만 그렇게 불렀다.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대표님이라고 불렀다. “공항으로 가실 겁니까? 가실 거면 지금 항공권 예매하겠습니다.”강솔이 말했다. “안 가.”홍일은 강솔을 빤히 보며 객관적으로 말했다. “아가씨의 눈은 가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

  • 난 결코 무너지지 않아   제539화

    [제수씨, 어디예요?]시후의 말은 급했고, 평소보다 훨씬 빨랐다. “중현이가 쓰러졌어요. J시로 좀 와 줄 수 있어요?”강솔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중현 씨가 어떻게 됐는데요?”[실신해서 병원에 있어요.]시후는 최대한 상황을 분명하게 전하려 했다.강솔은 팽팽하게 굳었던 마음을 조금 내려놓았다.한 달 동안 강솔의 귓가에 중현 이름을 꺼낸 사람은 없었고, 중현도 연락하지 않았다.바쁜 업무와 매번 머리를 쥐어짜야 하는 접대 자리 때문에, 강솔은 업무 밖의 일을 생각할 틈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중현이 쓰러졌다는 말을 들었을 때, 심장이 먼저 반응했다.지안의 아빠에게 일이 생기길 바라지 않아서일지도 모른다.아니면 5년 동안의 감정이 너무 깊게 뿌리내렸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요즘 상태가 많이 안 좋았어요.] 시후는 병실 밖에서 창 너머로 침대 위의 남자를 바라봤다. 중현은 수척했고 기운이 없었다. [한 번만 와서 봐 줄 수 없어요?]강솔은 잠시 침묵한 뒤 말했다. “제가 의사는 아니잖아요. 제가 가서 본다고 달라지는 건 없어요.”시후는 다급해졌다. [와 보지도 않고 어떻게 알아요?]강솔은 대답하지 않았다.시후는 계속 설득했다. [그동안 중현이가 제수씨한테 잘한 것만 봐서라도 한 번 와 주세요. 깨어나면 바로 가도 돼요. 제발요.]“죄송해요.” 강솔은 흔들리는 마음을 눌러 거절했다. “저도 일이 많아서요. 이만 끊겠습니다.”[제수씨...]시후의 뒷말은 끊어진 통화 속으로 사라졌다.강솔은 핸드폰을 손에 쥔 채, 머릿속에서 여러 감정이 서로 부딪치는 것을 느꼈다.정말 심각한 상황이 아니라면 시후가 연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말한 그대로였다. 강솔은 의사가 아니었다. 가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두 사람은 더 엮이면 안 됐다.“고 대표님 전화입니다.” 홍일이 알려 주었다.강솔은 시선을 내렸다.핸드폰 화면에는 시후의 번호가 계속 떠올랐다.강솔은 한참 뒤 전화를 끊었다. 대신 문자 한 줄을 보냈다. [저는

  • 난 결코 무너지지 않아   제538화

    한 달 전, 강솔은 업무 중 생기는 자잘한 일을 도와줄 비서를 뽑으려고 했다. 그런데 채용 공고를 인사팀에 내기도 전에 홍일이 먼저 지원했다.그때 홍일이 이렇게 말했다. “제가 아가씨 비서 일을 맡겠습니다.”강솔이 물었다. “왜?”홍일이 답했다. “저는 하루 24시간 아가씨 곁에서 경호합니다. 비서 역할에도 가장 적합합니다.”“안 돼.” 강솔은 생각할 틈도 없이 거절했다. “너무 힘들어. 몸이 못 버텨.”홍일이 말했다. “버틸 수 있습니다. 급여만 두 배로 주시면 됩니다. 제 업무 능력이 걱정되시면 면접 절차를 밟아도 됩니다.”결국 홍일은 면접을 통과했다. 능력도 뛰어났다. 경호원 급여와 비서 급여를 모두 받게 되었다.이번 프로젝트를 따낸 데에도 홍일의 공이 적지 않았다.강솔은 접대 자리에서 말을 매끄럽게 이끌었고, 홍일은 술자리 전반전을 대신 버텨주었다.“직장인은 다 부족합니다.” 홍일은 강솔의 질문에 답했다. 눈빛은 지나치게 진지했다. “내기하시겠습니까?”“하죠.” 강솔은 망설이지 않았다.소담이 강솔에게 해 준 말이 있었다.상사에게 호감을 갖는 사람은 없다. 상사를 좋아하는 사람은 더더욱 없다.“아가씨.” 홍일이 다시 말했다.강솔은 의아해했다.홍일은 입술을 다물었다가 매우 진지하게 물었다. “보고만 받는 대표가 되고 싶으십니까?”강솔의 눈에 의문이 스쳤다.“지금 아가씨께서 진행하고 있는 이 프로젝트에 대해 저도 조금 압니다.” 홍일은 오직 돈을 향해 움직였다. “매달 아주 조금만 더 지급하시면, 아가씨와 다른 직원들도 편하고 여유로운 시간을 얻으실 수 있습니다.”강솔은 말이 막혔다.홍일은 자신의 효용을 설명했다. “프로젝트 전체 방안을 제가 정리해 드리겠습니다. 직원들이 훨씬 효율적으로 일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필요 없어.” 강솔은 곧장 거절했다. “제품기획 담당과 개발총괄이 처리할 거야.”“그분들 효율로는 전체 큰 틀을 잡는 데만 한 달은 걸립니다.” 홍일은 말투 하나 바꾸지 않았다

  • 난 결코 무너지지 않아   제537화

    “사과받겠습니다. 앞으로 일만 잘해 주세요.” 강솔은 문제 삼지 않았다. 사무실을 둘러보며 말했다. “제품기획 담당, 개발총괄, 각 파트 책임자는 회의실로 와 주세요.”“네.” 직원들이 일제히 답했다.“저희 팀장은 퇴사했습니다.”“저희도요.”방금 말했던 여직원과 강솔에게 사과한 남자가 입을 열었다.강솔은 곧 결정을 내렸다. “그럼 두 분이 지금 저를 따라 들어오세요.”두 사람이 답했다. “네.”지시를 마친 강솔은 자기 사무실로 들어갔다.의강소프트웨어는 설립된 지 10년이 넘은 회사였다. 이곳 직원들 대부분은 4년 이상 근무했고, 8년 가까이 일한 사람도 있었다.직원들은 이곳에 정이 들었다. 비록 작은 회사이긴 해도 복지와 대우가 나쁘지 않았다. 지나치게 경쟁을 강요하는 사회에서 의강소프트웨어는 그나마 사람답게 일할 수 있는 회사였다.다행히 첫걸음은 떼었다. 의강소프트웨어가 강솔의 손에서 완전히 무너지지는 않았다.그 뒤 내내 강솔은 직원들과 회의했다.강솔은 이번 달 프로젝트를 따내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의료 시스템의 각 프로젝트와 세부 사항을 꼼꼼히 익혀 두었다. 프로젝트를 가져온 뒤 직원들에게 엉뚱한 지시나 억지 조언을 하지 않기 위해서였다.회의는 4시간 동안 이어졌다.“내일부터 각 팀은 맡은 업무에 따라 진행합니다.”강솔은 마무리 말을 한 뒤, 사과했던 직원을 바라봤다.“HIS 시스템은 장유준 씨가 맡아 주세요. 문제 있습니까?”유준이 답했다. “없습니다.”지금 유준은 강솔을 진심으로 인정하고 있었다. 문제가 있을 리 없었다.강솔은 앞서 말했던 여직원을 바라봤다.“LIS 시스템은 서다은 씨가 맡아 주세요.”다은은 환하게 웃으며 답했다. “꼭 해내겠습니다!”“PACS 시스템, 구축, 테스트는 기존 업무 분담대로 진행합니다.”강솔의 시선이 남은 세 사람에게 닿았다. “문제가 생기면 바로 저와 제품기획 담당, 개발총괄에게 공유해 주세요.”“네.” 모두가 대답했다.“좋습니다.” 강솔은 시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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