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우연은 본능적으로 이육진을 뒤따르며 씩씩거렸다.“그건 분명한 억지입니다. 말도 안 되지 않습니까? 정연은 지금 저 안에서 출산의 고통을 견디고 있는데 굳이 저와 이런 일로 다투셔야겠습니까? 아참, 내가 왜 따라왔지? 산실 앞에서 기다리고 있어야 하는데.”말을 하던 소우연은 산실 앞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이에 이육진은 그녀를 덥석 잡고는 간석이 준비한 의자에 조심스럽게 앉혔다.“연아, 조금 멀어서 그렇지 여기 있어도 다 보인다. 네가 산실 앞을 막고 있으면 따듯한 물을 나르는 사람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겠느냐? 그러다가 누군가가 너와 실수로 부딪치기라도 하면 그자가 무사할 것 같으냐?”이육진의 말에 소우연은 입을 꾹 다물었다.“연아, 나중에 네가 출산할 때 나도 네 곁을 지키고 싶어. 허락해줄 수 있지? 진우도 들어갔는데 왜 나는 안 된다는 것이냐? 내가 진우보다 못하다는 것이냐? 그게 아니라면 정연이 가장 의지하고 믿는 사람은 진우라서 진우는 들어갈 수 있고 연이 네가 가장 믿고 의지하는 사람은 내가 아니어서 날 못 들어가게 하는 것이냐?”이육진은 소우연의 손을 꼭 잡은 채 옆에 앉아 계속 구구절절 얘기하고 있었다.소우연은 참다 못해 그런 이육진을 노려보며 조용하라고 눈치를 줬다.안 그래도 산실 안에 있는 정연이 걱정돼서 미칠 지경인데 오늘따라 이 남자가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화를 내려고 입을 뻥긋하던 소우연은 엄숙하고 진지하게 말을 하면서도 잔뜩 서러운 표정으로 짓고 있는 이육진을 보자 그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이육진은 소우연이 지금 이 순간 너무 지나치게 긴장하고 걱정할까 봐 일부러 그녀의 주의를 돌리려고 계속 말을 걸고 있었던 것이었다.소우연은 이육진의 손을 꼭 잡으며 한숨을 살짝 내쉬었다.“부군의 마음을 알겠습니다. 하지만 산실에 들어갈 생각은 하지도 마십시오.”정연이 무슨 생각으로 진우를 산실에 들였는지는 모르지만 소우연은 절대 허락할 생각이 없었다.이육진은 지금도 소우연을 충분히 아끼고 사랑해주고 있는데 굳이 산실에 들어
이영에게 걸상을 꺼내 준 용강한은 돌아서서 서재로 향했다. 그리고 조금 뒤, 붓과 먹을 들고 돌아왔다.이에 이영이 환하게 웃으며 용강한을 반겼다.“역시 숙부가 최고예요. 어마마마께서는 가끔 숙부가 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사람이라고 얘기하는데 아무래도 어마마마 말씀이 맞는 것 같습니다.”용강한은 그런 이영의 이마를 톡 쳤다.“그리 아첨하듯이 칭찬하지 마십시오.”이영의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용강한은 마음이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그러다가 가끔 이런 삶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사소한 일과 소중한 사람들이 그의 삶에 나타나지 않았다면 용강한의 일생은 매우 무미건조하고 누군가를 위해 노력해야겠다는 원동력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사실 용강한의 마음가짐으로는 더 이상 수행에 적합하지 않았다.어쩌면 전생에 소우연을 살리기 위해 모든 것을 건 순간부터 용강한은 이미 평범한 한 인간이 되었을지도 모른다.한편, 용강한의 말에 이영은 다시 입을 삐죽 내밀었다.“숙부께서는 또 영이에게 무섭게 대하고 있습니다. 영이 너무 서러워서 눈물이 납니다.”이영의 울먹이는 모습을 보며 용강한은 한숨을 살짝 내쉬었다. 이 아이의 성격은 대체 누구를 닮았단 말인가?이영은 생김새가 이육진을 닮았지만 성격은 소우연을 전혀 닮지 않은 것 같았다.용강한이 지금까지 봐온 소우연은 철이 일찍 들고 누구보다 순수한 아이였다. 그녀는 절대 이영처럼 이렇게 막무가내로 화를 내거나 억지를 부리지 않았다.“숙부…”눈물을 글썽이는 이영을 이대로 달래주지 않는다면 바로 울음을 터트릴 것 같았다.“그래요. 마음대로 칭찬하세요.”한편.소우연과 이육진은 진우 장군 저택에 들어서자마자 정연의 힘겨운 신음소리를 듣게 되었다.소우연은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옆에 서있는 하인들 중 한 명에게 물었다.“어젯밤부터 진통이 시작되었다고 하지 않았느냐?”소우연에게 잡힌 하인은 상대방이 누구인지 확실하게 알지 못했지만 소우연 옆에 서있는 기품 넘치는 이육진을 보고는 서둘러 대답했다.“저희 마님
”아바마마께서는 어마마마와 함께 출궁하셨습니다. 회임하신 어마마마께서 혼자 밖에 나가면 위험한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고 걱정이 된다고 하셨습니다.”들고 있던 상주서를 평상에 올려놓은 이영은 이내 고개를 들어 용강한을 쳐다보았다.“아바마마께서 공주님께 이리로 오라고 하신 겁니까?”용강한의 물음에 이영이 고개를 끄덕였다.“네.”이육진은 이영에게 숙부를 찾아가면 숙부가 상주서를 처리하는 것을 도와줄 거라고 했다.“왜 정태부에게는 가지 않으신 겁니까?”“정태부와 초운이는 오늘 쉬는 날이라 궐내에 없습니다.”입술을 살짝 오므린 이영은 잔뜩 서러운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그리고 아바마마께서는 이 상주서들을 절대 아무한테도 보여주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 상대가 정태부나 초운이라고 해도 절대 안 된다고 했습니다.”정태부도 안 되는데 용강한 그에게는 마음대로 보여줘도 된단 말인가?이 나라가 이육진의 것이지 용강한의 것이 아니지 않는가!이마를 꾹꾹 누르던 용강한은 결국 웃음을 터트렸다. ‘평생 황제와 황후에게 잡혀 살 운명이군!’몇 년이 더 지나서 이영과 심초운이 호신술을 어느 정도 익히고 나면 용강한은 도관에 가서 수행하면서 남은 인생을 편하게 보낼 생각이었다.하지만 지금 상황으로 보면 이육진은 그때 가서도 어떻게든 용강한의 마지막 남은 가치까지 탈탈 털어서 이용하려고 할 것만 같았다.“안 됩니다. 궁으로 돌아가십시오.”용강한은 최대한 온화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절대 함부로 시작을 끊고 싶지 않았다.오늘 용강한이 이영을 도와준다면 앞으로 계속, 그리고 시시때때로 도와줘야 할 텐데 그럼 언제 도관에 가서 수행을 할 수 있단 말인가!“왜요?”한편, 용강한의 말에 이영은 커다란 눈망울에 눈물이 글썽였다.“숙부, 이제 영이가 싫어진 거예요? 아바마마께서는 분명 숙부가 나를 가장 아끼고 예뻐한다고 하셨습니다. 만약… 만약 숙부가 날 도와주지 않으면 난 이 많은 상주서들을 혼자서 절대 처리하지 못할 겁니다. 그럼 아바마마께서는 심이를 잡아갈
속이 많이 편해졌다는 이육진의 말에 소우연은 얼른 고기 몇 점을 그의 그릇에 덜어주었다.어느새 그릇에 잔뜩 쌓인 반찬을 쳐다보던 이육진은 고개를 들어 소우연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이에 소우연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얼른 드십시오. 전하께서 요즘 심각하게 여위었습니다.”“그래?”이육진도 평소에 거울을 자주 보는데 자신이 살이 빠졌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고기는 거의 먹지 않았지만 그래도 끼니마다 밥 두 그릇씩 먹었는데 살이 빠질 리가 있을까?“그럼요. 전하께서 스스로 모르시는 겁니다.”회임은 소우연이 했는데 고생은 전부 이육진이 하고 있었다. 소우연이 회임한 탓에 이육진이 입덧이 심하다는 얘기를 누가 믿기나 할까?한편, 이육진은 눈썹을 살짝 치켜들었다. 나중에 장 태의가 피임약을 조제해내면 소우연은 다시는 출산의 고통을 겪지 않아도 된다.이런 생각에 이육진은 다시 기분이 좋아졌다.“그래, 연이 네 말이 맞아. 난 살이 조금 빠졌을 뿐인데 연이 너는 매일 이렇게 무거운 몸을 끌고 다녀야 하지 않느냐? 나중에 출산의 고통도 견뎌야 하고. 내가 참 미안하다.”이육진의 말에 소우연은 참다 못해 웃음을 터트렸다. 그녀는 살면서 이육진과 같은 남자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다른 집안에서는 아이를 더 많이 낳지 못해서 안달인데 왕실 가문인 이육진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소우연은 이육진이 그녀를 소중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뱃속에 있는 이 아이를 출산하면 소우연도 더 이상 아이를 가지고 싶지 않았다.아이를 많이 낳을수록 아이들에게 나눠지는 사랑은 그만큼 적어지게 된다. 그녀의 사랑도 결국 유한한 거니까.그럴 바에는 차라리 아이 두어 명만 낳고 충분히 예뻐하고 더욱 많은 사랑과 정성으로 잘 키우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렇게 시간은 빠르게 흘러 어느덧 7월이 되었다.소우연이 흠천감 대문에 발을 들인 순간, 용강한이 그녀를 반기며 말했다.“마마께서는 오늘 저와 바둑을 두실 겨를이 없을 텐데요.”문 앞에
“전하, 이 약은 독성이 너무 강해서 완벽하게 조제하려면 시간이 조금 걸립니다.”장 태의의 말에 이육진이 물었다.“얼마나 오래 걸리는 것이오?”장 태의는 속으로 이런저런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이 약은 황제 입에 들어가는 약이기도 하고 대를 완전히 끊어버리는 약이기도 하기에 장 태의는 반드시 더욱더 신중해야 한다. 독성이 강한 약의 성분도 순하고 약한 것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현재 황후가 회임을 했기에 황제는 잠시 이 약을 쓸 일이 없을 것이다. 이 시기를 이용하여 황제에게 이 약을 소량으로 여러 번 먹인다면 피임 효과도 볼 수 있고 황제에게 후회할 시간도 충분히 줄 수 있다.“전하, 이 약은 일 년 내내 복용해야만 피임 효과를 확실하게 볼 수 있습니다.”장 태의가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일 년이라…”소우연은 섣달이나 정월 때쯤이면 아이를 출산하게 될 것이다.“그건 안 되오. 시간이 너무 길잖소.”잠시 고민하던 장 태의가 다시 말했다.“그럼… 최소한 8개월은 복용하셔야 합니다.”장 태의는 황후가 출산하고 나서 두 달 동안 몸조리할 시간까지 전부 계산해서 한 말이었다.이에 뭔가 생각에 잠겨 있던 이육진이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소. 그럼 지금 당장 조제하러 가시게.”“네, 전하.”“아참, 만에 하나 황후가 물으면…”이육진의 말이 시작되기도 전에 이 원사가 조심스럽게 말했다.“전하, 황후 마마께서는 의술이 매우 뛰어나십니다. 황후 마마께서는 그 약을 몇 번 보고 냄새만 맡아도 바로 눈치채실 겁니다.”이 원사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 이육진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의술이 뛰어난 소우연은 바로 알 수 있을 것이다.“그럼 황후에게 들키지 않게 조심하게 하시오!”이 원사와 장 태의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그들은 어전을 나서자마자 급하게 식은땀을 닦아냈다.“원사 대감, 이 약을… 정녕 전하께 드려도 된단 말입니까?”장 태의가 떨리는 목소리로 묻자 이 원사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그래도 조제해낼 수밖에 없지 않은가?”
이육진이 위압감 넘치는 눈빛으로 이 원사와 장 태의 두 사람을 쓱 쳐다보자 잔뜩 겁먹은 장 태의가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대꾸했다.“전하, 이런 약을 장기간 복용하시면 옥체에 되돌릴 수 없는 상해를 입게 될 것입니다. 그러다가 나중에 전하께서 다시 황자를 갖고 싶다고 해도 그러실 수 없습니다.”“짐의 사내대장부 기강만 죽지 않는다면, 그리고 그 약으로 인해 짐이 단명하지도 않는다면 걱정할 것도 없지 않소? 그러니 당장 약을 조제해 내시오! 이건 어명일세!”이육진이 미간을 확 찌푸리며 섬뜩한 표정으로 장 태의를 쳐다보자 겁에 질린 장 태의는 고개를 들지도 못했다.“장 태의, 이 원사, 왕을 기만하는 죄를 정녕 지으려고 그러는 것이오?”“전하… 부디 통촉하여 주시옵소서.”두 사람의 애원에도 이육진은 장 태의를 쳐다보며 말했다.“짐에게는 황자도 있고 이영 공주도 있소. 그리고 황후는 회임 중이기도 하고. 짐에게는 후손이 없는 것이 아니잖소! 더군다나 짐이 직접 불임약을 처방해달라고 하는데 누가 감히 두 사람의 죄를 묻을 수 있단 말이오!”잠시 침묵하던 이육진은 다시 입을 열었다.“짐은 자네들에게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기회를 주겠소.”이에 이 원사가 이마에 맺힌 땀을 쓱 닦으며 조심스럽게 말했다.“전하, 사실 태의원에 피임 탕약도 있고 피임 환약도 있습니다. 황후 마마께서 사후에 이 피임약들을 드셔도 충분히…”“아니되오!”이 원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육진이 딱 잘랐다.“황후는 쓴 약을 제일 싫어하는데 어찌 그런 약을 황후에게 먹일 수 있단 말이오! 짐은 지금 짐이 먹을 약을 구하는 것이지 황후에게 먹일 피임약을 구하는 게 아니란 말이오!”황제의 굳건한 의지에 이 원사도 더는 황제를 설득할 방법이 없었다. 약을 조제해내지 못하면 황제는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이 원사는 결국 장 태의를 쳐다보며 말했다.“장 태의 가문에서 대대로 내려온 불임약 처방전이 꽤 위력이 강하다고 들었소. 혹 그 약을 조금 순하게 조제해서 나중에 전하께서 생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