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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03화

Author: 주 한잔
이천은 모든 기력을 쏟아부은 듯 간신히 한마디를 내뱉었다.

이진의 눈시울은 이미 붉게 타올랐고, 맺혀 있던 눈물이 금방이라도 쏟아질 듯 일렁였다. 곁에서 지켜보던 주익선은 애간장이 타 어쩔 줄 몰라 하며, 그저 그녀의 머리를 자기 품에 기대게 하고는 부드럽게 다독이며 위로할 뿐이었다.

이진이 목이 멘 소리로 물었다.

“오라버니, 어젯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고요!”

설령 아바마마와 어마마마께서 돌아가셨다 한들, 사람이 가신 자리에는 흔적이 남고 기러기가 지나간 자리에는 소리라도 남아야 하는 법 아닌가.

모든 이의 시선이 이천에게 쏠렸다. 그제야 이천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어젯밤, 진 도사가 장소검을 데리고 흠천감에 난입하였다. 내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진 도사와 외삼촌께서 도법으로 맞붙어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격전이 벌어지고 있었지. 외삼촌께서는 과거 부작용으로 도술을 거의 잃으셨던 터라, 그동안 쌓아온 도력만으로는 그 진 도사를 막아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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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제2418화

    소 대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알았습니다. 그럼 제가 소 대인께 잘 말씀드려보겠습니다.”“고맙네. 부디 좋게 말씀해 주시게. 이 은혜는 말로 다 못할 것이네.”“별말씀을요. 다 잘될 것이니 걱정 마십시오.”소 대장은 지도를 챙겨 소항의 방으로 돌아갔다. 그는 지도 위 마을 중심가에서 뚝 떨어진 곳을 가리키며 보고했다. “그들이 집을 짓겠다고 고른 땅이 여기입니다. 황무지를 더 많이 개간하고 싶다더군요. 속으로는 아마 먹고사는 문제만 해결되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소항은 미간을 찌푸린 채 그들이 선택한 위치를 유심히 살폈다. 조금이라도 야심이나 능력이 있는 자라면 저잣거리 근처에 자리를 잡으려 했을 텐데, 이토록 궁벽한 곳을 택하다니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아니면 다른 꿍꿍이라도 있는 것인가?'“단지 그곳이 개간할 땅이 넓고 지세가 평탄하다는 이유뿐이더냐?”소항이 물었다. 소 대장이 답했다. “예, 그런 듯 보였습니다.”소항은 여전히 미간을 찌푸린 채 나직이 지시했다. “그들이 집을 어떻게 짓든 네가 하나하나 잘 살펴주거라. 열흘 뒤, 왕 부인의 약이 효과가 있든 없든 우리는 무조건 관저로 돌아가야 한다. 설날 연회 준비를 서둘러야 하니까.”“예, 명심하겠습니다.”집터를 정하는 일은 단 하루 만에 끝났다. 소 대장은 인부들을 수배해 주었고, 공사비는 영남에서 통용되는 화폐가 마땅치 않아 상운국에서 가져온 은자와 진주, 비취 등으로 충당했다.용강한과 이육진 등은 마치 연극이라도 하듯 각자의 전 재산을 내놓았고, 이를 합쳐 자신들이 머물 저택을 짓는 데 쏟아부었다. 이후 며칠 동안 이육진과 용강한 등은 직접 현장으로 나가 공사 상황을 감독했다.그사이 소우연과 이진은 객줏집에 머물며 소항의 흉터를 지울 연고를 조제하거나 들판으로 나가 약초를 캤다.그렇게 며칠이 흐르자 날씨는 눈에 띄게 추워졌다. 어느 날 아침, 객잔 창밖으로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기 시작했다. 경성의 눈은 바닥에 닿아도 잘 녹지 않는 단단한 질

  •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제2417화

    “그리해주시니 고맙습니다, 소 대인.”용강한은 말을 마치며 자리에서 일어나 소항에게 깊숙이 허리를 숙여 보였다. 소항은 입가에 옅은 미소를 띠었으나 눈빛만은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예법에 밝은 이 상운국의 탐관오리를 가만히 응시하던 소항은 묘한 기분에 휩싸였다. 실력만 확실하다면 누구든 기회를 줄 용의는 충분했다.용강한이 물러간 뒤, 소항은 소 대장에게 그들이 정착할 만한 곳을 알아보라고 따로 일렀다. 소 대장은 즉시 용강한을 찾아가 정착지에 대해 물었다. 용강한은 본래 목적지가 따로 없었으나 이곳의 번화한 풍경이 마음에 든다며, 이곳에 터를 잡고 싶다는 뜻을 분명히 전했다.소 대장은 지자체를 관리하는 관리들을 불러 모아 그들이 직접 후보지를 고를 수 있게 배려했다. 용강한은 몇 군데를 눈여겨보더니 소 대장에게 말했다. “다른 이들이 모두 도착하면 의중을 물어 최종적으로 결정하겠네.““저잣거리 양 끝이나 객주 근처라도 원하신다면 소 대인께서 허락하실 겁니다. 이 대인처럼 귀한 인재를 얻는 것은 소 대인께도 드문 행운이니까요.”소 대장의 말에 용강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네. 내 신중히 고민해 보지.”정착지 선정 문제는 잠시 뒤로 미뤄졌다. 약초를 캐러 나갔던 소우연, 이진, 주익선 세 사람이 돌아오자마자 소 대장은 소우연을 소항의 방으로 안내했다. 소 대장은 소우연에게 소항의 얼굴과 팔에 남은 해묵은 흉터들을 치료해달라고 단도직입적으로 청했다.소우연은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 소항의 얼굴에 난 흉터는 그리 심한 편이 아니었으나, 팔에 남은 상처는 육안으로 보기에도 상당히 깊고 험악했다. 일전에 용강한이 귀띔했듯, 소항은 임설을 치료하기 전 자신의 몸을 빌려 그녀의 의술을 직접 검증해 보려는 모양이었다.소우연은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소항에게 답했다. “소 대인께서 이 첩을 믿어주신다면 기꺼이 힘을 보태겠습니다.”“그리해주면 좋겠구려. 곧 계주부의 관저로 돌아가야 하니 서둘러주시오.”“예, 곧장 준비하여 다시 들겠습니다.”“알

  •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제2416화

    소항은 따뜻한 찻잔을 받쳐 들었다. 이 계절의 찻물에서 피어오르는 김은 마치 운무처럼 서서히 흩어졌다.그가 차를 한 모금 가볍게 머금었을 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 대장이 직접 나가 문을 열더니, 이내 안으로 들어와 보고했다. “대인, 이 대인께서 뵙기를 청합니다.”“우리 식구나 다름없는데 그리 격식을 차릴 것 없다. 어서 모셔라.”“예.”소 대장이 몸을 돌려 문밖에 서 있던 용강한을 방 안으로 안내했다. 소항 역시 찻잔을 든 채 바깥방으로 걸어 나왔다. 그는 용강한을 보자 약간 의외라는 듯 물었다. “이 대인, 오늘 어찌 오셨습니까?”용강한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으나, 무슨 일로 왔는지는 곧장 입을 떼지 않았다. 소 대장이 차를 올리고 물러나자 소항이 먼저 말을 건넸다. “이 대인, 이제 외인도 없으니 편히 말씀해 보십시오.”소항의 권유에 용강한은 자리에 앉았다. “고맙습니다, 소 대인.”용강한이 입을 열기도 전에 소항이 먼저 화제를 꺼냈다. “이 대인, 지난번에 말씀하시기를 왕 부인의 친가가 전조의 어의 명가라 하지 않으셨습니까?”“그렇습니다.”“전에 왕 부인께서 약초 몇 가지를 구하던데, 이 대인의 흉터를 지워주기 위함이라 들었소이다만.”용강한은 소매를 걷어 올리며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사실 이 정도 흉터는 아무것도 아니지요. 허나 제 부인이 말하기를, 제가 글을 읽는 선비인데 몸에 이런 흉이 있는 것이 마음 쓰인다고 하더군요.”“보아하니 부부 금슬이 참으로 돈독하시구려.”용강한은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금슬이 좋은 것은 사실이었으나, 여기까지 오는 길은 참으로 험난했고 모든 것이 운명의 장난 같아 씁쓸함이 남았다. 소항이 허허롭게 웃으며 말했다. “이 험한 세상에 살아남아 장차 마음 가는 대로 살 수만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최상의 운수 아니겠소이까?”그는 '장차' 마음 가는 대로 살게 될 날을 언급했다. 용강한은 속으로 헛웃음이 났지만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소 대인 말이

  •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제2415화

    소항은 소 대장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그는 주먹을 꽉 쥐었다. 이 일은 확실히 처리가 까다로웠다. 자칫 임설이 오해라도 한다면, 연경 한 명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여인들을 줄줄이 제 방으로 밀어 넣을지도 모를 일이었다.“대인, 차라리 왕 부인에게 대인을 먼저 치료하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이곳에서 시간을 좀 더 보내며 경과를 지켜본 뒤, 흉터가 회복되면 그때 마님을 치료하게 하시지요. 만약 효과가 없다 해도 그리 큰 손해는 아니지 않습니까?”소 대장이 제안하자 소항은 미간을 찌푸렸다. 나쁘지 않은 방법이었다. 어차피 사내대장부인 자신이야 흉터가 고쳐지든 말든 그리 상관없는 일이었으니 말이다.“만약 이 대인의 흉터가…”소항은 말을 내뱉다 말고 고개를 저었다. 이 대인의 흉터가 나을 때까지 기다리려면 대체 얼마나 더 걸린단 말인가. 게다가 소 대장의 말대로 이 대인의 팔에 난 가벼운 상처와, 자신들 부부의 몸에 새겨진 깊은 흉터는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이 대인의 것은 새 상처라 볼 수 있지만, 자신들 부부의 흉터는 이미 수년의 세월이 흐른 뒤였다. 그것을 이제 와서 깨끗이 고친다는 것은 그야말로 천담설화 같은 이야기였다.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임설이 데려온 연경 때문인지, 아니면 새로운 의술사를 만난 덕분인지 묘한 기대감이 생겼다. 이 대인의 말에 따르면 왕 부인의 친가는 전조의 어의 집안이라 하지 않았던가. 전조의 어의라면 세월이 아무리 흘렀어도 일반 의원들보다는 훨씬 뛰어난 실력을 갖추었을 터였다.소 대장은 주인의 고뇌와 속내를 이미 꿰뚫어 보고 있었다.“대인, 시간을 지체할 필요 없습니다. 이 대인의 상처는 새것이라 회복될 수 있다 쳐도, 대인과 마님의 흉터는 오래된 것입니다. 차라리 왕 부인에게 곧장 대인을 치료하게 하여 시간을 아끼시는 게 좋겠습니다.”소 대장이 덧붙였다.“또한, 대인께서 저들을 거두어주지 않으시면 저들이 무엇이 되겠습니까? 대인의 문객이나 상빈이 되는 것은 저들에게 영광일 것이요, 대인의 흉터를

  •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제2414화

    이육진의 서슬 퍼런 분노를 마주하자, 소우연은 한순간 정말이지 그 기세에 압도되어 버릴 뻔했다. “아닙니다, 그런 것이 절대 아닙니다.”“그럼 무엇이란 말이냐!”이육진이 순식간에 그녀를 품으로 끌어당겨 안았다. 그러고는 귓가에 낮게 속삭였다. “진정으로 서운해하지 말거라.”“저, 저는 결코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없습니다.”“보름이 되어야 그 자에게 갈 수 있거늘, 그리도 참기가 힘들었더냐?”“아닙니다. 그저 예전에 그분이 아니었다면 우리 가족 모두가 뇌경에서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저 약을 지어드려 손의 흉터라도 없애드리고 싶었을 뿐입니다.”소우연은 애절한 진심을 담아 말을 이었다. “서방님, 제게 어찌 이리 과한 정을 주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서방님은 참으로 좋은 분이세요. 서방님이 아니었다면 제가 어찌 존재했겠어요… 아마 유배 길의 원혼이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지요.”말을 마친 소우연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녀는 감정이 북받친 듯 이육진을 꽉 껴안았다. 이번 생에 이육진 같은 남자를 만난 것은 평생의 복이었다. 용강한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육진과 용강한, 두 사람에게 이토록 넘치는 사랑을 받다니 자신은 참으로 복이 많은 사람이었다.이육진은 서둘러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며 낮게 말했다. “크흠, 좋소! 부인, 제발 울지 마시오. 그대가 울면 내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소. 내가 잘못했소, 그런 말을 하는 게 아니었는데… 앞으로, 앞으로 그대 마음속에 내 자리가 손톱만큼이라도 남아 있다면 다시는 이런 망언을 내뱉지 않겠소.”소우연은 이육진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는 그녀가 연기에 깊이 몰입했음을 알아차린 듯했다. 눈앞의 남자는 깊은 눈동자에 애틋함을 가득 담고 있었다. 입가에는 옅은 미소를 띤 채, 이내 그녀의 입술에 진하게 입을 맞추었다.한참이 지나서야 이육진은 소우연을 놓아주었다. 그는 소 대장이 이미 자리를 떠났음을 눈치챘다. “연아, 네가 허튼 생각을 하는 것은 절대 용납지 않을 것이다. 허니 그런 생각은 하지도

  •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제2413화

    소우연이 입술을 지그시 깨문 채 그를 바라보다가 엷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그해에 제가 장수 목걸이를 드렸기 때문인가요?”“그뿐만이 아니란다.” 소우연이 그를 뚫어지게 응시하며 진지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럼 무엇 때문인가요?”“네 골수까지 새겨진 선함 때문이다. 원한이 하늘을 찌를 듯한 순간에도, 너는 단 한 번도 무고한 이를 해친 적이 없었지.” “전…”“너는 참으로 귀한 사람이야. 폐하께서 네게 마음을 준 것 역시, 네 그 선함 때문이었겠지.”툭.어디선가 무언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리더니, 곧 병풍 뒤에서 이육진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저 선함 때문만은 아니다.”맞잡고 있던 소우연과 용강한의 손이 황급히 떨어졌다. 이육진은 못 본 척 시선을 돌렸다. 어차피 지금 세 사람의 상황은 서로 눈뜬장님 노릇을 하지 않으면 심장이 버텨낼 재간이 없었기 때문이었다.소우연이 헛기침을 하며 분위기를 수습했다. “여긴 어찌 오셨습니까?”“현장을 덮치러 왔지. 아직 보름이 되지 않았는데, 넌 정녕 내 사람이라는 것을 잊었느냐?” 이육진이 서늘한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용강한은 그저 빙그레 미소 지을 뿐, 크게 개의치 않았다. 지금 이들이 벌이는 모든 일은 소항을 낚기 위한 정교한 덫이었고, 이육진이 이 방까지 찾아온 것 역시 계획의 일부였기 때문이다.“선함 말고 또 무엇이 있는지 저도 참 궁금하군요.” 용강한이 넌지시 묻자, 이육진이 답했다.“당연히 목숨을 구해주었으니 몸으로 갚으라는 뜻이지요.” 용강한은 할 말을 잃었고, 소우연 역시 어이가 없다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이육진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내가 그저 그대의 미모에 혹했기 때문입니다. 내 마음에 충실했을 뿐이지요. 그대의 얼굴이야말로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생김새이니 말이오.”소우연이 얼굴을 붉히며 그를 밀어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좀 마세요.” 혹여나 벽 너머로 듣는 귀가 있을까 봐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다들 이리 대담해도 된단 말인가. 하지만 이육

  •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제348화

    ”네가 나를 구했다고?”피식 웃던 이육진이 소우희를 빤히 쳐다보았다.“그래, 어디 계속 얘기해보거라.”그는 눈앞에 있는 이 여자가 어디까지 뻔뻔하게 굴 수 있는지 한번 보고 싶었다.한편, 소우희는 냉랭하고 차가운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이육진을 보며 순간 긴장하기 시작했다.“소, 소인이 5년 전에 남강에서 태자 저하를 구했단 말입니다. 그러니 소인은 태자 저하의 생명의 은인이지요.”“그래? 그럼 옥패는 어디 있는 것이냐?”이육진은 자신의 물건을 되찾기 위해 최대한 꾹 참고 있었다.소우희는 재빨리 품에서 옥패를 꺼내

  •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제263화

    ’평춘왕이 소우연에게 살려달라고 소리라도 지르면 모든 일이 수포로 돌아가는 거잖아?’소우희는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당황한 그녀는 이내 춘화에게 마취약을 준비해 오라고 했고 물 한 잔으로 그 약을 평춘왕에게 먹이려고 했다.“마시라고! 늙어 빠진 병신 주제에 살려달라고 하고 싶어? 꿈도 꾸지 마!”손에 물 잔을 든 소우희는 다른 한 손으로 평춘왕의 입을 힘껏 벌렸지만 힘이 부족해서 도무지 혼자 먹일 수가 없었다.“춘화야, 이리 와서 이 늙은이를 꽉 잡아!”겁에 질린 채 멍하니 서있던 춘화는 소우희의 부름에 그제야 정신

  •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제281화

    소우희는 혜주에게 말했다.“내 몸에 약 좀 발라주렴.”유 의원이 준 약은 효과가 그리 크진 않았지만 그래도 가려움을 조금이나마 덜어주었다. 지금으로선 어쩔 수 없이 이것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혜주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렇게 혜주는 소우희의 몸에 정성껏 약을 바르기 시작했다.혜주는 한때 매끄럽고 깨끗했던 소우희의 피부가 온통 긁힌 자국으로 뒤덮인 모습을 보고 마음이 무거웠다. 특히 긁힌 부위에 가느다란 핏줄들이 마치 피부를 뚫고 나오려는 듯 희미하게 비치고 있었다.혜주가 깜짝 놀라 몸을 떨자 소우희도 덩달아 자신의 몸을 내

  •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제248화

    “연아, 준비되었느냐?”침대 끝에 앉은 이육진이 고개를 숙여 소우연을 쳐다보며 물었다.소우연은 머리를 들고 그런 이육진을 바라보았다. 은은한 어둠 속에서도 이육진의 아우라가 선명하게 보였다.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이 어디 있단 말인가!소우연은 이내 얼굴이 빨개졌다.이육진은 아무 대꾸도 없는 소우연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자연스럽게 옷을 벗더니 이불 안으로 들어갔다.그러다가 소우연의 손이 이육진의 매끈한 살결에 닿았고 그때부터 그녀의 심장이 미친듯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천장을 바라보며 반듯하게 누워있던 이육진은 숨을 크게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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