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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기시감

Autor: 6jay
last update Fecha de publicación: 2026-08-29 22:10:05

온실 입구를 가르는 다급한 외침에 우진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엄마!"

아이는 체스 말을 내려놓고 가느다란 링거대를 덜컹거리며 입구 쪽으로 종종걸음 쳐 달려갔다. 도현이 흠칫하며 급히 몸을 돌렸다.

하지만 입구 쪽으로 몰려든 보호자들과 의료진들의 인파에 가려, 아이를 와락 품에 안는 여자의 얼굴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오직 눈물에 젖은 채 아이의 작은 어깨를 토닥이는 가녀린 뒷모습만이 찰나의 순간 스쳐 지나갔을 뿐이었다.

여자는 아이를 안아 들고 소아 병동 엘리베이터 안으로 사라졌다. 도현은 닫힌 문을 바라봤다. 자신과 닮은 눈매, 몇 수 앞을 보는 습관, 독한 향을 바로 알아챈 예민한 후각까지 자꾸 마음에 걸렸다.

'단순한 우연이 아니야.'

도현의 입술이 바싹 말라붙었다. 그는 즉시 코트 안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비서실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정 실장."

- 예, 총수님.

"방금 1층 온실에 있던 502호 환아. 결연 신청서에 포함된 진료정보 열람 동의 범위 안에서 자료를 확인해. 3분 안에."

- 바로 확인하여 보고드리겠습니다.

***

12층 총수 집무실. 도현은 데스크 위에 도착한 보안 승인 차트를 뚫어지게 응시했다.

[환아 기본 정보]

- 성명: 한우진 (만 네 살)

- 진단명: 급성 면역 이상 및 중증 골수 억제

- 특이 혈액형: Rh 음성 AB형 (초희귀 혈액)

- 가족력 및 특이 소견: 복숭아 단백질 및 일부 향료 성분에 중증 과민 반응 의심

차트를 내리던 도현의 손이 멈췄다. Rh 음성 AB형의 초희귀 혈액. 그리고 극소량의 복숭아 단백질에도 기도가 붓는 중증 과민 반응. 차씨 집안에서 여러 차례 나타났고, 도현 자신도 어릴 적 같은 증상으로 응급실에 실려 간 적이 있었다. 5년 전 기억이 차례로 떠올랐다.

'선천성 무정자증. 넌 아이를 가질 수 없어.'

친모 강 여사가 들이밀었던 병원장 직인의 진단서. 그리고 오유라가 건넸던 스위트룸 출입 사진들. 그때는 의심하지 않았던 자료들이 처음으로 수상해 보였다. 도현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차트 하단의 보호자 인적 사항으로 시선을 내렸다.

[보호자 및 결연 신청인]

- 성명: 한서연 (28세)

- 직업: 메디컬 임상 코디네이터 (전 한국신약개발연구소 수석연구원)

- 신청 프로그램: 선진재단 난치성 환아 VIP 결연 및 희귀 혈액 긴급 지원

한서연. 화면 위에 적힌 세 글자를 확인하는 순간, 도현의 손에 쥐어져 있던 묵직한 크리스털 펜이 뚝 소리를 내며 두 동강 났다. 자신이 5년 전 폭우 속에 내던졌던 여자. 딴 놈의 씨를 품었다며 뺨을 치고 저주를 퍼부었던 바로 그 여자였다.

그녀의 아이가 자신과 닮은 얼굴과 같은 혈액형을 가진 채 병실에 누워 있었다.

태블릿 한쪽에는 긴급지원 결재 화면이 떠 있었다. 도현은 서명란을 열었다가 닫았다. 아이 치료와 친자 의심은 별개였지만, 그 사실을 인정하는 손이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도현은 화면 오른쪽의 열람 기록을 확인했다. 결연 신청 과정에서 보호자가 동의한 범위가 표시돼 있었지만, 더 깊은 자료는 당사자 허락 없이는 열 수 없었다.

그는 한서연이라는 이름을 오래 바라보다 정 실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일 면담 전까지 5년 전 내 진료 원본과 당시 담당자 명단을 준비해. 서연이나 아이 기록은 더 건드리지 마."

내일 오전 10시, 본관 7층 VIP 면담실. 아이 지원부터 처리해야 한다는 이성은 분명했지만, '무정자증'이라 적힌 진단서가 머릿속에서 자꾸 되살아났다. 도현은 부러진 펜 대신 새 만년필을 꺼내 놓고도 오래 손을 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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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 실장이 조심스럽게 태블릿에 금속 USB를 연결하자, 5년 전 10월 14일 자정 무렵의 녹음 파일이 재생되었다. 치지직- 하는 기계음 뒤편으로, 도현에게는 32년간 너무도 익숙했던 차갑고 오만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친모 강 여사의 목소리였다.- 강 여사 음성: "선진의료원 원장이지?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 한서연 아버지, 지금 당장 선진그룹 명의 치료비 지원 전액 중단하고 산소호흡기 떼어내라."- 병원장 음성: "사모님, 그 노인네는 폐부전이라 산소호흡기를 떼면 30분도 못 버티고 질식사합니다! 이건 살인입니다!"- 강 여사 음성: "누가 들으면 큰일 날 소리를 하네. 어디서 굴러먹던 천박한 고아 사기꾼 년이 감히 내 아들 도현이 발목을 잡아? 아비 목숨줄부터 끊어놔야 그년도 두 번 다시 선진가 근처에 얼씬 못 하지. 잔말 말고 당장 스위치 내려!"통화가 끊긴 뒤에도 아무도 말을 하지 못했다. 강 여사는 서연을 내쫓기 위해 치료 중단을 직접 지시했다. 실제 사망 인과는 감정이 필요했지만, 의도가 무엇이었는지는 녹취만으로도 분명했다."어머니가…… 정말 이 말을 했다고?"도현은 의자 등받이를 짚었다. 다리에 힘이 풀려 한동안 서 있지 못했다. 자신이 가문의 질서라 믿고 따랐던 사람은 한 생명을 거래 수단처럼 다뤘다. 서연이 왜 자신을 ‘살인자의 피’라고 불렀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자신은 서연의 말을 듣지 않았고, 집안에서 벌어진 일을 확인할 기회도 외면한 사람이었다.'서연아…… 우진아…….'도현은 우진에게 남은 시간이 12시간도 안 된다는 보고를 다시 봤다. 아이의 골수 억제와 출혈 위험이 계속 커지고 있었다. 아이를 살리기 위해 자신이 적합 공여자인지 확인하고, 가능한 모든 의료 절차에 응하는 것부터 해야 했다. 도현은 유전자 결과지와 녹취록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제가 적합 공여자인지 바로 검사해 주십시오. 의료진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절차는 전부 받겠습니다."정 실장은 녹취 원본과 중환자실 전자의무기록을 나란히 띄웠다. 통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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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날 버린 재벌이 지 아들인줄 모르고 입양한댄다   제17화: 미국 본토 특송

    선진그룹 전용기가 태평양 상공을 가르며 미국 서부의 검사기관을 향해 비행하고 있었다. 비행기 내부 보안 보관함에는 우진과 도현의 구강 면봉이 담긴 멸균 봉투 두 개가 이중 봉인돼 있었다.기장은 도착 예정 시각을 다시 계산했고, 보안 담당자는 운송 용기의 온도와 봉인 번호를 매시간 기록했다. 같은 시각, 선진의료원 12층 총수 집무실.도현은 밤새 복구된 5년 전 비뇨기과 서버 로그를 모니터에 띄워놓고 있었다. 외부 디지털 포렌식 업체와 그룹 보안팀이 원본 백업 파일을 교차 확인했다."총수님, 5년 전 데이터 복구 및 원본 로그 매칭 완료되었습니다."보안팀장의 떨리는 목소리와 함께 모니터 화면 중앙에 붉은색 경고 박스가 떠올랐다.[5년 전 10월 14일 21:30 - 비뇨기과 진단명 강제 변경 포렌식 로그]- 원본 기록: 정액 검사 지표 최상위 정상 (활동성 89%, 정자 수 기준치 대폭 상회, 가임력 우수)- 위조 수정본: 선천성 무정자증 (Azoospermia, 영구 불임)- 접속 IP·VPN 인증 토큰·계정 로그인 기록: 오유라 개인 소유 논현동 펜트하우스 회선로그 시각은 도현이 진단서를 받아 들기 3시간 전이었다. 누군가 원본 진단명을 바꾼 흔적이 명확히 남아 있었다.'내 인생과 서연이의 삶을 이렇게 망가뜨렸다고?'5년 전 서연이 빗속에서 했던 말이 떠올랐다.서연을 제 손으로 내쳤다는 사실이 숨통을 조였다. 아버지의 죽음에 자신과 집안이 어떻게 얽혔는지도 이제 확인해야 했다. 한편, 5층 502호 격리 병실.우진의 산소포화도는 가까스로 유지되고 있었지만, 골수 억제로 떨어진 혈소판 수치는 위험 한계치를 향해 내려가고 있었다. 이제 남은 시간은 채 24시간도 되지 않았다.해외 공여망에서는 세 후보 중 두 명이 항체 불일치로 제외됐고

  • 날 버린 재벌이 지 아들인줄 모르고 입양한댄다   제16화: 비서의 비밀 지령

    서연은 우진의 공여 적합 검사를 먼저 진행한다는 조건으로 최소 시료 채취에 동의했다. 간호사는 우진과 도현의 구강 면봉을 각각 봉인하고, 친자 확인은 비공식 참고용이라는 문구를 동의서에 적었다. 도현은 두 봉투의 라벨과 채취 간호사 이름, 동의서 번호까지 인계서에 적힌 것을 확인한 뒤 502호 병실을 나왔다."정 실장."도현의 부름에 5층 복도 끝에서 대기하던 비서실장이 신속하게 다가와 허리를 깊게 숙였다."예, 총수님."도현은 두 개의 밀봉 봉투를 정 실장에게 건넸다."이 시료, 지금 당장 김포공항에 대기 중인 전용기로 미국의 CLIA·AABB 인증 유전자 검사기관에 직송해."도현의 목소리는 차가웠지만 끝이 미세하게 떨렸다."이건 비공식 참고검사다. 개인정보 접근을 최소화하고 결과는 별도 보안 문서로 관리해. 24시간 긴급 분석을 요청하고, 공식 친자확인은 서연의 동의를 받아 다시 진행한다.""즉시 처리하겠습니다."정 실장이 서류 봉투를 품에 넣으며 나직하게 보고를 이어갔다."그리고 총수님, 지시하신 대로 5년 전 총수님의 비뇨기과 불임 진료 차트를 작성했던 당시 당직의 김진수 과장의 금융 거래와 출입국 기록을 추적했습니다."도현의 표정이 굳었다."결과는?""김 과장은 5년 전 그날 밤, 오유라의 외가 소유 페이퍼컴퍼니로부터 스위스 비밀 계좌로 거액의 자금을 송금받은 직후 곧바로 스위스 제네바로 도피했습니다. 현재 현지 고급 빌라에 은신 중인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김진수의 계좌와 도피 시점만으로도 진단서가 조작됐을 가능성은 뚜렷했다. 아직 자백과 원본이 필요했지만, 우연이라고 보기 어려운 정황이었다.도현이 스마트폰을 세게 움켜쥐자 금이 간 액정 모서리가 손바닥을 베었다. 그는 피가 번지는 줄도 모르고 화면만 보고 있었다. 5년

  • 날 버린 재벌이 지 아들인줄 모르고 입양한댄다   제15화: 복숭아 알레르기

    모니터 경보음이 연달아 울렸다."산소포화도 74%! 기도 부종이 빠르게 진행됩니다!"우진은 목을 움켜쥔 채 숨을 제대로 들이쉬지 못했다. 유라가 붙잡았던 손목의 두드러기가 팔과 목으로 빠르게 번졌다.급성 아나필락시스였다. 서연이 복숭아 향 핸드크림을 가리키자 당직 교수도 곧바로 원인을 알아챘다."에피네프린 0.15mg 근육주사. 산소 올리고 삽관 세트 준비하세요."간호사가 우진의 체중과 처방을 확인한 뒤 허벅지에 주사했다. 투여 시각은 오후 5시 42분으로 기록됐다. 다른 간호사는 5분 간격으로 혈압과 산소포화도를 재고, 반응이 부족할 경우를 대비해 2차 투여량과 삽관 장비를 준비했다.서연은 아이의 턱을 살짝 들어 기도를 확보하고 이름을 계속 불렀다."우진아, 엄마 목소리 들리지? 천천히 숨 쉬어."두드러기가 더 번지는 속도가 조금씩 느려졌다."아이의 이 극단적인 과민 반응은 일반적인 알레르기가 아닙니다."응급 처치를 마친 교수가 차트를 넘기며 굳은 표정으로 서연과 도현을 향해 덧붙였다."검사 전 단정할 수는 없지만 복숭아 LTP 단백질에 대한 중증 과민 반응으로 보입니다. 가족력이 있으면 어린 나이에도 심하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직계 가족 중 같은 병력이 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도현이 먼저 입을 열었다."제가 일곱 살 때 같은 증상으로 삽관했습니다. 아버지와 할아버지도 복숭아 알레르기가 있었습니다."교수는 도현과 우진을 번갈아 본 뒤 차트에 가족력을 기록했다."그렇다면 유전성 소인이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친족 공여 적합 검사도 서두르겠습니다. 다만 가족력이 친자관계를 확정하는 것은 아니므로 검사는 별도로 봐야 합니다."도현은 일곱 살 때 응급실에 실려 갔던 기억을 떠올렸다. Rh 음성 AB형과 닮은 얼굴에 같은 가족력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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