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ICIAR SESIÓN탁-!
노마님의 지팡이가 방바닥을 매섭게 내리쳤다. 떨어진 옥색 비단 댕기를 지팡이 끝으로 가리키는 노마님의 손길이 분노로 파들파들 떨리고 있었다.
"이것이 대체 무엇이냐!"
노마님의 서슬 퍼런 일갈이 사랑채 안방을 뒤흔들었다.
"일국의 종이품 예조참판이 기거하는 청렴한 사랑채 안방에, 어찌 천한 계집의 댕기 나부랭이가 뒹굴고 있단 말이냐!"
도진은 등줄기에 얼음물을 끼얹은 듯 몸을 굳혔다. 어젯밤 연화의 머리칼을 풀어헤치며 침상 밑으로 떨어진 댕기였다.
"어, 어머니…… 저것은……."
"여종들은 뭣들 하느냐! 당장 저 벽장 농 문을 열어젖혀라!"노마님의 불호령에 건장한 침모들과 여종들이 벽장을 향해 달려들었다.
"안 됩니다! 어머니, 멈추십시오!"
도진이 가로막으려 했으나, 덜컥하는 소리와 함께 농 문이
인적이 완전히 끊긴 창경궁 후원 뒤편의 외딴 언덕배기 정자. 가을 단풍잎이 붉게 물들어 정자 주변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었다. 도진은 연화를 정자 안쪽 깊숙한 기둥 뒤편으로 거칠게 밀어 넣고는,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하아…… 하악…… 읏!"남자의 안색은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고, 관복 대신 입은 남색 도포 앞섶은 터지기 직전의 풍선처럼 흉측하게 솟구쳐 있었다. 저잣거리에서 한량 놈들이 연화의 손목을 잡았을 때 치솟았던 맹렬한 분노와 질투. 그 뜨거운 감정이 도진의 단전에 갇혀 있던 환양술의 마기를 건드려, 대낮 야외에서 최악의 발작을 일으킨 것이었다."나, 나으리…… 숨이 넘어가시겠습니다! 어서 진정하십시오!""진정이…… 될 것 같으냐! 그놈들이…… 네 손목을 붙잡고 놓지 않으니…… 흣! 배가 터질 것 같단 말이다!"도진이 가슴을 쥐어뜯으며 툇마루 기둥을 부여잡고 허물어졌다. 연화는 도진의 눈에 고인 눈물과 원망 섞인 눈빛을 보며 기가 차면서도 웃음이 삐져나왔다.도진은 말문이 막혀 고개를 돌렸다. 연화의 손목에 남은 자국이 눈에 밟혔다. 그녀를 나무랄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뒤늦게 따라나섰다는 초조함이 목소리를 거칠게 만들었다."……네가 다친 줄 알았다."연화는 한숨을 내쉬고 도진을 똑바로 쳐다보았다."저는 괜찮아요. 나으리야말로 숨부터 고르십시오. 제 걱정이라면서 이렇게 쓰러지시면, 제가 더 놀라지 않겠어요!""시끄럽다……! 어서…… 어서 손을…… 하으윽!"도진의 허벅지가 경련하듯 덜덜 떨렸다. 가랑이 사이의 거대한 흉물이 펄펄 끓는 맥동으로 도포 원
노마님의 폭풍 같은 기습이 지나간 후, 참판 댁은 가까스로 평온을 되찾았다. 아들의 처절한 읍소와 가슴팍의 끔찍한 흉터를 직접 확인한 노마님은, 결국 한숨을 내쉬며 연화의 존재를 묵인하기로 했다. 다만, 흉물의 기운을 완벽히 다스리기 위해서는 특수한 보음(補陰) 약재가 시급했다."나으리, 단전의 화기를 완전히 식히려면 '천년자하거'와 '설산백련'이라는 희귀 약재가 꼭 필요합니다. 종로 저잣거리 뒷골목 큰 약방에 가서 구해오겠습니다.""안 된다. 네가 어찌 홀로 저잣거리를 나간단 말이냐. 좌참찬의 밀정들이 널 노리고 있을 터인데……."도진이 미간을 찌푸리며 손목을 잡았으나, 연화는 씩씩하게 웃어 보였다."여염집 처자 복장으로 삿갓을 깊게 눌러쓰면 아무도 모릅니다. 환자인 나으리가 나가시는 게 훨씬 위험해요. 은괴 5냥만 쥐여 주십시오."결국 연화는 도진의 만류를 뿌리치고 종로 저잣거리로 향했다. 하지만 도진은 사랑채 서재에 앉아 서책을 펼쳐 들고도 도무지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머릿속에는 온통 연화의 가녀린 뒷모습과, 대나무 숲에서 스산하게 들려왔던 밀정의 휘파람 소리만이 맴돌았다.그녀의 뽀얀 얼굴과 당돌하게 웃던 눈망울이 아른거려, 가슴이 불에 덴 듯 안절부절못하고 피가 바짝바짝 말라 들어갔다.'빌어먹을……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구나.'도진은 관복을 벗어던지고 수수한 남색 도포로 갈아입고 넓은 흑립(黑笠)을 푹 눌러쓴 채, 홀로 저잣거리로 뛰쳐나갔다. 정오의 종로 운종가(雲從街)는 물건을 사고파는 상인들과 구경꾼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도진은 인파 속에서 옥색 치마를 입고 약재 보따리를 품에 안은 연화를 단숨에 찾아냈다.그녀가 약방을 나와 한양천 변 다리를 건너려던 찰나였다."어이, 거기 곱상한 처자! 삿갓 밑으로 보이는 턱선이 아주 기가 막히는구려
탁-!노마님의 지팡이가 방바닥을 매섭게 내리쳤다. 떨어진 옥색 비단 댕기를 지팡이 끝으로 가리키는 노마님의 손길이 분노로 파들파들 떨리고 있었다."이것이 대체 무엇이냐!"노마님의 서슬 퍼런 일갈이 사랑채 안방을 뒤흔들었다."일국의 종이품 예조참판이 기거하는 청렴한 사랑채 안방에, 어찌 천한 계집의 댕기 나부랭이가 뒹굴고 있단 말이냐!"도진은 등줄기에 얼음물을 끼얹은 듯 몸을 굳혔다. 어젯밤 연화의 머리칼을 풀어헤치며 침상 밑으로 떨어진 댕기였다."어, 어머니…… 저것은…….""여종들은 뭣들 하느냐! 당장 저 벽장 농 문을 열어젖혀라!"노마님의 불호령에 건장한 침모들과 여종들이 벽장을 향해 달려들었다."안 됩니다! 어머니, 멈추십시오!"도진이 가로막으려 했으나, 덜컥하는 소리와 함께 농 문이 활짝 열려버렸다. 이불 더미 사이에서 웅크리고 있던 연화가 마침내 모습을 드러냈다. 어둠 속에서 기어 나온 연화는 모시 저고리의 옷고름이 비뚤어져 있었고, 백옥 같은 쇄골 언저리가 살짝 드러나 있었다.더욱이 밤새 도진의 격렬한 입맞춤을 받아낸 붉은 입술은 물기를 머금은 채 통통하게 부르터 있어, 한눈에 보아도 방금 전까지 뜨거운 정사를 치른 태가 완연했다."세상에…… 부처님 맙소사!"노마님이 뒷목을 잡으며 휘청거렸다."사당동 암의원에서 침모로 들였다던 그 천한 계집이 아니더냐!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참판의 침소에 기어들어 음란한 수작을 부려!"노마님의 눈에서 살기 어린 불꽃이 튀었다."여종들은 당장 저 계집을 뜰로 끌어내라! 멍석말이를 하여 뼈를 분질러 놓고, 관아에 음란죄로 고발하여 당장 주리를 틀게 하겠다!"여종들이 우르르 달려들어 연화의 가녀린 팔을 거칠
그다음 날 이른 아침의 차가운 이슬이 북촌 가회동 참판 댁 사랑채 기와지붕을 촉촉이 적시고 있었다. 사랑채 안방 안쪽은 밖의 쌀쌀한 날씨와는 전혀 딴판으로, 은은하고 농밀한 열기로 훈훈하게 젖어 있었다. 비단 이불 아래에서 도진은 연화를 제 품에 가둔 채 뒤늦게 화들짝 놀라 눈을 떴다.평생 묘시(卯時, 오전 5~7시)에 칼같이 일어나 의관을 정제하던 결벽증 선비가, 평소와 달리 아침 햇살이 방 안에 들 때까지 늦잠을 잔 것이었다."으음……."도진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고 있던 연화가 부스스 눈을 비비며 남자의 쇄골에 콧등을 부볐다. 그 나른하고 야릇한 숨결이 닿는 순간, 도진의 가랑이 사이에서 잠자던 흉물이 또다시 움찔거리며 고개를 쳐들려 했다."일, 일어나거라! 날이 밝았다…… 하인들이 보기라도 하면……!"도진이 귀밑까지 새빨개져 연화의 어깨를 밀어내려던 바로 그 찰나였다.쿵, 쿵-!"도진아! 안에 있느냐?"사랑채 뜰을 울리는 엄격하고 묵직한 여인의 목소리가 창호지 문을 뚫고 날아들었다. 도진의 온몸에 벼락이 내리꽂혔다.노마님.도진의 생모이자, 참판 댁의 규율과 사대부의 가도를 엄격하게 관장하는 정경부인 박씨였다."어, 어머니……?!"평소 노마님은 아들의 청렴과 결백을 누구보다 자랑스럽게 여겨, 침소를 살피는 일도 하인들에게 맡기던 분이었다. 도진은 익숙한 목소리를 듣고도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제 품에는 아직 연화가 누워 있었다.그런 노마님이 아침 댓바람부터 여종들과 행랑아범들을 거느리고 사랑채 문턱을 직접 밟은 것이었다. 아들의 환후가 심상치 않다는 흉흉한 소문에, 하인에게 안부를 묻는 것만으로는 마음을 놓을 수 없었던 터였다."간밤에 네가 미열이 심하여
좌참찬 윤자명.그 더러운 이름 석 자가 연화의 붉은 입술 사이로 흘러나오는 순간, 도진의 온몸에 소름이 돋아났다. 모든 의문의 조각들이 단숨에 하나로 맞춰지고 있었다. 5년 전, 강태수 의관의 목숨을 건 시술 덕에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던 자신.그리고 그 의관의 억울한 누명 뒤편에 도사리고 있던 좌참찬의 검은 음모. 도진은 연화의 작은 손을 내려다보았다. 사당동 뒷골목 음습한 암의원에서 천대받으며 억척스럽게 약재를 다듬고 침을 놓던 처자.그녀가 쥐어짜듯 벌어들인 은괴들은 사치나 유흥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폐인이 되어 누워 있는 아비의 탕약값과 목숨을 부지하기 위한 피눈물 나는 생존의 대가였다. 그 가녀린 어깨 위에 얹혔을 모진 풍파와 세월의 무게가, 도진의 가슴 한구석을 송곳으로 찌르듯 후벼 팠다.체통만을 따지며 쌀쌀맞게 굴었던 지난날의 자신이 한없이 부끄럽고 미안해졌다."바보 같은 계집……."도진의 입술 사이로 낮고 거친 탄식이 새어 나왔다. 연화가 눈물을 훔치며 붉어진 눈으로 도진을 흘겨보았다."예, 바보 맞습니다. 아비의 원수를 알고도 아무것도 못 하고 그저 목숨 부지하겠다고 나으리 양물이나 주무르고 있었으니 바보 천치지요.""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니다!"도진이 불쑥 손을 뻗어 연화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평소의 결벽증 선비라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거칠고 박력 있는 손길이었다."나으리……?"놀란 연화의 뺨 위로, 도진의 기다란 손가락이 가만히 닿았다. 남자는 비단 소매로 연화의 눈가에 고인 굵은 눈물방울을 아주 조심스럽고 다정하게 닦아내기 시작했다. 도진의 흑요석 같은 눈동자 속에서, 일찍이 본 적 없는 맹렬한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너의 부친은 충의로운 의관이었고, 내 목숨을 살려준 은인이다. 죄인은 오직 좌참찬 그 간교한 흉도
새벽안개가 서서히 걷히고, 은은한 아침 햇살이 창호지를 비추었다. 연화는 도진의 단단한 품속에 갇힌 채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밤새 폭풍 같은 접치를 치르고 탈진한 예조참판은, 여전히 연화의 허리를 꽉 끌어안은 채 곤히 잠들어 있었다.평소의 서슬 퍼런 위엄은 온데간데없었다. 땀에 젖은 속눈썹을 파르르 떨며 색색 숨을 쉬는 도진은, 어리광을 부리는 철없는 사내 같았다. 연화는 픽 웃음을 흘리며 남자의 곤히 잠든 얼굴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평소에는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처럼 냉랭하던 사대부가, 제 품에 안겨 안식을 찾는 모습이 묘하게 가슴을 간질였다. 연화는 살포시 손을 뻗어 남자의 벌어진 옷섶 사이를 살폈다. 도진의 왼쪽 쇄골 아래, 심장 부근에 선명하게 새겨진 붉고 거친 흉터.단순한 칼자국이 아니었다. 독기를 빼내기 위해 불에 달군 침을 수십 차례 찔러 넣고 살점을 도려낸 끔찍한 시술의 흔적이었다.스륵-.연화의 서늘한 손끝이 흉터 위를 조심스럽게 쓸어내리자, 도진이 미간을 찌푸리며 서서히 눈을 떴다."으음……."도진은 제 품 안에 안겨 있는 연화의 얼굴을 마주하자마자, 소스라치게 놀라 상체를 벌떡 일으키려 했다. 그러나 팔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도로 홑청 위로 몸이 기울었다."너, 네가 왜 내 품에……!""나으리께서 밤새 저를 질식사시킬 기세로 끌어안고 주무셔놓고 누굴 탓하십니까?"도진의 얼굴이 단숨에 홍당무처럼 붉어졌다. 어젯밤 한 이불 아래에서 벌어졌던 그 낯뜨거운 정염의 기억들이 벼락처럼 머릿속을 스쳤다. 연화는 붉어진 도진의 얼굴 대신, 그의 가슴팍 흉터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이 흉터…… 5년 전, 궁중에서 일어났던 '단오 독살 미수 사건' 때 생긴 것이지요?"도진의 서늘한 눈매가 일순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