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ICIAR SESIÓN일주일 동안 차태헌은 해원을 한 번도 부르지 않았다. 대신 검은 휴대폰으로 짧은 지시만 세 번 보냈다. [입주는 월요일.] [차량은 오후 세 시에 도착해.] [육 주치만 챙겨.] 해원은 마지막 문장을 받은 뒤 캐리어 하나를 더 꺼냈다. 정말 필요한 것만 고르자 짐은 두 개로 끝났다. 옷과 화장품, 노트북, 업무 자료. 육 주 뒤 다시 나올 사람의 짐이었다. 월요일 오후 세 시 정각, 검은 세단이 해원의 집 앞에 도착했다. 기사가 캐리어를 트렁크에 싣는 동안 해원은 현관문을 잠갔다. 도어록이 닫히는 소리를 확인하고도 열쇠를 가방 안쪽에 넣지 않았다. 손에 쥔 채 차에 올랐다. 태원가 저택의 본관 현관에는 수경이 기다리고 있었다. “짐이 이것뿐이야?” 수경이 캐리어 두 개를 번갈아 보았다. “충분해.” “그래도 더 가져오지. 필요한 거 생길 때마다 가지러 가기도 번거롭잖아.” “회사 다니는 데 필요한 건 다 챙겼어.” 해원은 기사가 내려놓은 업무용 가방을 직접 들었다. 수경은 더 권하지 않았다. 대신 해원의 팔을 잡고 본관 안으로 이끌었다. “엄마는 본관에서 지낼 거야. 식당이랑 거실도 이쪽에 있고.” 두 사람은 본관 뒤편의 연결 통로를 지나 동관으로 향했다. “동관 이층은 태헌이가 쓰고 있어. 서재도 있고, 방도 있고.” 수경은 아무렇지 않게 덧붙였다. “해원이 네 방도 그쪽이야.” 해원의 걸음이 아주 잠깐 느려졌다. 계단을 오르자 길지 않은 복도가 나왔다. 관리 책임자가 오른쪽 방문을 열었다. “이쪽입니다.” 침실과 드레스룸, 작은 거실이 한 공간처럼 이어진 방이었다. 이미 필요한 가구와 침구가 전부 준비되어 있었다. 수경이 안으로 들어가며 말했다. “어때? 너무 호텔 같아서 불편하려나?” “괜찮아.” 해원은 방보다 복도 맞은편의 닫힌 문을 보았다. 수경이 그 시선을 따라갔다. “저기가 태헌이 방이래.” 그녀가 만족스러운 얼굴로 웃었다. “바로 앞이니까 엄마도 마음 놓이네. 필요한 거 있으면 오
휴대폰 화면에는 마지막 문장이 그대로 떠 있었다.[거기서는 제대로 불러.]해원은 화면을 끄고 휴대폰을 엎어놓았다.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수저를 들었다. 국을 뜨고, 삼키고, 다시 내려놓았다. 평소와 같은 동작을 틀리지 않는 데만 신경 썼다.맞은편에 앉은 태헌은 차명우의 말을 들으며 가끔 짧게 대답할 뿐이었다.해원을 보고 있지도 않았다.그래서 더 신경이 쓰였다.“집이 넓어서 나도 아직 헷갈리더라.“수경이 웃으며 말했다.“아까 방을 잘못 찾아서 한참 헤맸어. 해원이는 더하겠다.”“동관은 처음 오면 찾기 어렵습니다.”태헌의 입에서 나온 말에 해원의 손끝이 멈췄다.동관.휴대폰에 적혀 있던 것과 같은 장소였다.차명우가 대수롭지 않게 태헌을 보았다.“태헌아, 네가 해원이한테 집 좀 보여줘라. 앞으로 자주 올 텐데 길은 알아둬야지.”“그러죠.”태헌은 기다렸다는 기색조차 보이지 않았다. 냅킨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을 뿐이었다.“가시죠, 윤해원 씨.”수경이 작게 웃었다.“이제 곧 오빠가 될 사람인데 아직도 윤해원 씨가 뭐니.”태헌은 그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해원도 웃지 못했다.식탁 아래 놓아둔 휴대폰을 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태헌은 먼저 식당을 나섰다. 양측 부모가 지켜보는 동안, 해원은 태헌과 한 걸음 거리를 두고 계단을 올랐다.계단을 오르는 내내 그는 돌아보지 않았다.동관으로 이어지는 복도에 들어서자 아래층의 대화 소리가 멀어졌다. 해원은 저도 모르게 걸음을 늦췄다.태헌이 계단참에서 멈췄다.“늦었어.”목소리가 달라져 있었다.식탁에서 차명우에게 대답하던 공손한 말투가 아니었다.해원은 주위를 살핀 뒤 그에게 다가갔다. 태헌은 다시 걷기 시작했다. 복도 가장 안쪽에 있는 문을 열고 들어가며 말했다.“들어와.”짙은 나무로 마감된 서재였다. 책상과 소파, 벽면을 가득 채운 책장 외에는 눈에 띄는 것이 없었다.해원이 안으로 들어서자 문이 닫혔다.철컥.문이 맞물리는 소리뿐이었다. 잠금장치가 돌아가는 소리는 나지
“일 년이면 됩니다.”윤해원은 테이블 위의 숫자를 다시 보았다.12억 8천만 원.일 년 안에 갚으라는 뜻이라면 굳이 이 자리에 불러 앉힐 필요도 없었다. 한 달에 일억씩 모아도 모자라는 돈이었다.“분할 상환안을 말씀하시는 겁니까?”맞은편에 앉은 남자가 고개를 저었다.차태헌.태원그룹 전략기획본부장. 새로 채권을 인수한 태원에셋파트너스의 실질적인 결정권자이자, 경제면에서 몇 번이나 본 얼굴이었다.그런 남자가 일개 보증채무자를 직접 만나고 있었다.“아니.”해원은 다시 서류로 시선을 내렸다.채권양도 통지서.급여 및 예금채권 압류 예고.원금에 지연이자와 비용까지 합산된 최종 채무액.종이를 넘길 때마다 아버지가 남긴 회사의 마지막 흔적이 숫자로 바뀌었다. 태헌은 왜 보증을 섰느냐고 묻지도, 갚을 능력이 있느냐고 확인하지도 않았다. 이미 답을 전부 알고 있는 사람처럼 해원이 서류를 다 읽을 때까지 기다렸다.“그럼 일 년 안에 이 돈을 전부 갚으라는 뜻입니까?”“갚지 않아도 돼.”해원의 손이 멈췄다.태헌은 테이블 위의 서류가 아니라 해원을 보고 있었다.“일 년 동안 내 것이 되면.”낮고 평평한 목소리였다. 농담을 던진 사람의 얼굴이 아니었다.“끝나는 날 채권을 소멸시키지.”해원은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잘못 들었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되묻는다고 뜻이 달라질 말도 아니었다.“내 것이 된다는 게 무슨 뜻이죠?”“말 그대로.”“사람을 담보로 잡겠다는 겁니까?”“담보는 돌려받을 생각으로 잡는 거고.”태헌의 시선이 해원의 얼굴을 천천히 훑었다.“나는 일 년 동안 쓸 생각이야.”모욕감보다 먼저 계산이 움직였다.돈을 빌린 사람은 아버지였지만 보증서의 서명은 해원의 것이었다. 상속을 포기한다고 없어지는 빚이 아니었다. 개인회생을 신청하더라도 급여와 신용, 회사에 숨겨온 사정까지 전부 드러난다.그때 테이블 위에 뒤집어둔 휴대전화가 짧게 울렸다.엄마였다.[토요일 여섯 시야. 너무 격식 차리지는 말고.]곧 사진 한 장이 더 도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