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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다시 불러

Autor: 케사르
last update Fecha de publicación: 2026-09-03 06:04:02

휴대폰 화면에는 마지막 문장이 그대로 떠 있었다.

[거기서는 제대로 불러.]

해원은 화면을 끄고 휴대폰을 엎어놓았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수저를 들었다. 국을 뜨고, 삼키고, 다시 내려놓았다. 평소와 같은 동작을 틀리지 않는 데만 신경 썼다.

맞은편에 앉은 태헌은 차명우의 말을 들으며 가끔 짧게 대답할 뿐이었다.

해원을 보고 있지도 않았다.

그래서 더 신경이 쓰였다.

“집이 넓어서 나도 아직 헷갈리더라.“

수경이 웃으며 말했다.

“아까 방을 잘못 찾아서 한참 헤맸어. 해원이는 더하겠다.”

“동관은 처음 오면 찾기 어렵습니다.”

태헌의 입에서 나온 말에 해원의 손끝이 멈췄다.

동관.

휴대폰에 적혀 있던 것과 같은 장소였다.

차명우가 대수롭지 않게 태헌을 보았다.

“태헌아, 네가 해원이한테 집 좀 보여줘라. 앞으로 자주 올 텐데 길은 알아둬야지.”

“그러죠.”

태헌은 기다렸다는 기색조차 보이지 않았다. 냅킨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을 뿐이었다.

“가시죠, 윤해원 씨.”

수경이 작게 웃었다.

“이제 곧 오빠가 될 사람인데 아직도 윤해원 씨가 뭐니.”

태헌은 그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해원도 웃지 못했다.

식탁 아래 놓아둔 휴대폰을 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태헌은 먼저 식당을 나섰다.

양측 부모가 지켜보는 동안, 해원은 태헌과 한 걸음 거리를 두고 계단을 올랐다.

계단을 오르는 내내 그는 돌아보지 않았다.

동관으로 이어지는 복도에 들어서자 아래층의 대화 소리가 멀어졌다. 해원은 저도 모르게 걸음을 늦췄다.

태헌이 계단참에서 멈췄다.

“늦었어.”

목소리가 달라져 있었다.

식탁에서 차명우에게 대답하던 공손한 말투가 아니었다.

해원은 주위를 살핀 뒤 그에게 다가갔다. 태헌은 다시 걷기 시작했다. 복도 가장 안쪽에 있는 문을 열고 들어가며 말했다.

“들어와.”

짙은 나무로 마감된 서재였다. 책상과 소파, 벽면을 가득 채운 책장 외에는 눈에 띄는 것이 없었다.

해원이 안으로 들어서자 문이 닫혔다.

철컥.

문이 맞물리는 소리뿐이었다. 잠금장치가 돌아가는 소리는 나지 않았다.

그 사실을 확인하고서야 해원은 태헌을 돌아보았다.

“이 집에서까지 이럴 생각이에요?”

“이 집이라서 확인하는 거야.”

“뭘요?”

“네가 역할을 헷갈리는지.”

“제가 헷갈린 게 아니잖아요.”

해원은 손에 쥔 휴대폰을 더욱 세게 움켜쥐었다.

“알고 있었어요?”

태헌의 눈이 가늘어졌다.

“무엇을.”

“우리 엄마하고 차 회장님이 결혼한다는 거요.”

해원은 그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내가 그 계약서에 서명하기 전부터 알고 있었냐고요.”

태헌은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놀라지도, 불쾌해하지도 않았다. 그저 해원의 질문을 이미 예상했다는 듯 바라볼 뿐이었다.

“지금 네가 확인해야 할 건 그게 아닐 텐데.”

“제겐 중요해요.”

“그래도 계약은 바뀌지 않아.”

“안 바뀌는 게 아니라, 제가 바꾸지 못하는 거겠죠.”

태헌의 입가에 아주 희미한 기색이 스쳤다. 웃음이라고 하기에는 짧았다.

“계산은 여전히 빠르네.”

그가 해원에게 다가왔다.

한 걸음.

해원은 물러나지 않았다.

그가 다시 한 걸음 다가왔다. 이제는 고개를 조금 들어야 눈을 마주칠 수 있었다.

“그럼 계산해 봐.”

낮은 목소리가 해원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문 밖에는 우리 부모가 있고, 이 안에는 너와 나뿐이야.”

“…….”

“문 밖에서 나를 뭐라고 부르든 상관없어.”

태헌이 해원의 손에서 휴대폰을 빼내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하지만 둘만 있을 때 부르기로 한 이름은 따로 있지.”

해원의 입술이 굳게 다물렸다.

“다시 불러.”

목 안이 바싹 말랐다.

해원은 닫힌 문을 한 번 바라보았다. 손만 뻗으면 열 수 있는 거리였다.

그러나 움직이지 않았다.

천천히 시선을 돌려 태헌을 올려다보았다.

“주인님.”

태헌은 잠시 해원을 내려다보았다.

“그래.”

그 한마디로 확인은 끝났다.

태헌이 풀어 둔 넥타이 끝을 손가락으로 들어 올렸다.

“빼.”

해원의 시선이 그의 손끝을 따라갔다.

“여기서요?”

“여기라서 못 할 이유가 있나?”

없었다.

문밖에 부모가 있다는 사실은 계약을 없애주지 않았다. 오히려 조금 전 식탁에서 그를 오빠라고 불렀던 기억만 더 선명하게 만들었다.

해원은 태헌에게 다가갔다.

넥타이는 이미 느슨하게 풀려 있었다. 해원이 검은 실크의 한쪽 끝을 잡아당기자, 천이 셔츠 깃 아래에서 천천히 빠져나왔다. 손등이 단추 하나가 열린 깃에 스쳤다.

태헌은 도와주지 않았다. 해원이 넥타이를 완전히 빼내는 동안 줄곧 그녀의 얼굴만 바라보았다.

가까이 서니 그의 숨소리까지 들렸다.

해원은 빼낸 넥타이를 손에 쥔 채 물었다.

“됐습니까?”

“아래에서는 잘하던데.”

“뭘요?”

“오빠.”

손안의 넥타이가 조금 미끄러졌다.

“필요한 연기였어요.”

“여기서도 해봐.”

해원이 즉시 고개를 들었다.

“싫어요.”

침묵이 떨어졌다.

태헌은 화를 내지 않았다. 해원이 쥐고 있는 넥타이를 한번 내려다봤을 뿐이었다.

“그래.”

그가 순순히 받아들이자 오히려 해원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건 싫다고 하는군.”

“싫으니까요.”

“그럼 다른 걸 하지.”

태헌의 시선이 해원의 입술로 내려갔다.

“키스.“

해원은 움직이지 않았다.

몇 초 전보다 두 사람 사이의 거리가 더 가까워진 것 같았다.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았는데 호흡이 막혔다.

해원은 빼낸 넥타이를 손안에 말아 쥐었다.

“거절하면 계약 위반입니까?”

“아니.”

대답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키스는 계약 조건이 아니야.”

“그런데 왜 명령하세요?”

“계약 밖에서도 네가 내 말을 듣는지 확인하려고.”

해원은 닫힌 문을 보았다.

손을 뻗으면 닿는 거리였다. 잠겨 있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싫으면 나가.”

태헌은 그녀를 붙잡지 않았다.

다가오지도 않았다.

그저 해원이 어느 쪽을 선택하는지 기다렸다.

지금 문을 열고 나가도 빚은 늘어나지 않는다. 계약 기간이 연장되는 것도, 다른 불이익이 생기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남아 있을 이유도 없었다.

해원은 다시 태헌을 보았다.

단추 하나가 열린 셔츠 깃과 그 위로 드러난 목선이 시야에 들어왔다.

태헌은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

해원이 한 걸음 다가갔다.

한 손에는 그의 넥타이를 쥔 채, 다른 손으로 셔츠 앞자락을 잡았다. 발끝을 들고 입술을 맞췄다.

입술이 닿는 순간에도 태헌은 손대지 않았다.

짧게 닿았다가 떨어지는 입맞춤이었다.

해원은 곧바로 몸을 물리려 했다.

그 순간 태헌의 손이 해원의 목덜미를 감쌌다.

다른 손은 허리를 끌어당겼다. 한 번에 거리가 사라졌다. 해원의 등이 책상 가장자리에 닿았다.

이번에는 태헌이 고개를 숙였다.

조금 전 해원이 건넨 입맞춤과는 달랐다. 기다려주지도, 망설이지도 않았다. 맞닿은 입술이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해원은 밀어내는 대신 그의 셔츠를 움켜쥐었다. 손안에 쥐고 있던 넥타이가 손목에 느슨하게 감겼다.

손안에서 구겨지는 천의 감촉이 선명했다.

바로 아래층에는 엄마가 있었다. 몇 분 전까지 자신이 오빠라고 불렀던 남자의 넥타이가 지금은 제 손목에 걸려 있었다.

그 사실을 떠올릴수록 머릿속이 하얘졌다.

태헌의 손이 허리를 더욱 단단히 끌어당겼다.

그때 재킷 주머니 안에서 진동이 울렸다.

해원의 몸이 굳었다.

태헌은 즉시 입술을 떼고 손을 놓았다.

“받아.”

해원은 숨을 고르며 휴대폰을 꺼냈다.

화면에 뜬 이름은 엄마였다.

태헌이 바로 앞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해원은 한 번 목을 가다듬은 뒤 통화 버튼을 눌렀다.

“응, 엄마.”

—집은 잘 보고 있어? 너무 오래 걸려서.

수경의 목소리가 들리는 순간, 해원은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다시 깨달았다.

“응. 다 봤어.”

—태헌이가 잘 알려줘?

해원의 시선이 태헌에게 닿았다.

검은 넥타이는 아직 해원의 손목에 걸려 있었고, 태헌의 셔츠 깃은 흐트러져 있었다. 입술에는 조금 전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응.”

해원은 그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오빠가 잘 알려주고 있어.”

통화를 끝내자 태헌이 손을 내밀었다. 해원은 반사적으로 휴대폰을 건넸다.

그는 화면이 꺼진 것을 확인한 뒤 다시 돌려주었다.

“그 호칭.”

태헌이 엄지로 해원의 입술 끝을 천천히 훑었다.

“문 밖에서만 써.”

해원은 그의 손을 피하지 않았다.

“곧 오빠가 될 사람은 맞잖아요.”

“문 밖에서만.”

태헌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여기서는 아니야.”

태헌의 손이 입술에서 떨어졌다.

“넥타이.”

해원은 제 손목을 내려다보았다. 검은 실크가 한 바퀴 느슨하게 감겨 있었다.

그것을 풀어 태헌에게 건넸다.

태헌은 넥타이를 목에 다시 걸었다. 매듭을 완전히 조이지 않고, 처음 식탁에 앉아 있던 때처럼 느슨하게 두었다. 단추 하나가 열린 셔츠 깃도 그대로였다.

해원이 말했다.

“본인부터 제대로 정리하는 게 좋겠는데요.”

태헌의 눈썹이 조금 올라갔다.

해원이 손가락으로 제 입술을 가리켰다.

“남아 있어요.”

태헌은 엄지로 제 입술을 한번 문질렀다. 손끝에 묻은 흔적을 확인하고 손수건으로 닦아냈다.

그가 이번에는 해원에게 손을 뻗었다.

“가만히 있어.”

손가락이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겼다. 재킷 깃을 바로잡고, 구겨진 부분을 손바닥으로 천천히 눌렀다.

조금 전까지 허리를 움켜쥐었던 손이었다.

같은 손이 이제는 아무 일도 없었던 사람처럼 흔적을 지우고 있었다.

태헌이 책상 위에 놓인 검은 휴대폰을 집어 해원에게 건넸다.

“내려가면 티 내지 마.”

해원은 휴대폰을 받아 재킷 주머니에 넣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그녀가 태헌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계약 때문에 엄마 인생까지 망칠 생각은 없으니까.”

“알면 됐어.”

태헌은 더 말하지 않고 문을 열었다.

먼저 나가라는 뜻이었다.

해원은 열린 문 앞에 잠시 서 있었다. 조금 전에도 같은 문을 열고 나갈 수 있었다.

그때는 나가지 않았다.

이번에는 태헌을 지나 복도로 나갔다.

계단을 내려가는 동안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래층의 대화 소리가 가까워지자 태헌의 걸음이 한 박자 느려졌다.

해원이 그의 옆에 서자 다시 걷기 시작했다.

거실로 돌아온 순간, 태헌의 얼굴에서는 조금 전의 기색이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차명우가 두 사람을 보며 물었다.

“집은 다 둘러봤나?”

“네.”

해원이 대답하자 태헌이 옆에서 덧붙였다.

“동관과 이층만 안내했습니다.”

말투도 다시 공손해져 있었다.

태헌이 해원을 돌아보았다.

“집은 마음에 들었습니까?”

해원은 그의 느슨한 넥타이를 한번 내려다봤다.

“네. 잘 봤어요.”

입가에 옅은 미소를 만든 뒤, 한마디를 덧붙였다.

“오빠.”

태헌의 시선이 해원의 얼굴에 멈췄다.

문 밖에서만 쓰라고 했다.

그러니 지금은 아무 문제도 없었다.

“잘됐다.”

아무것도 모르는 수경이 해원의 손을 잡았다.

“사실 엄마가 부탁할 게 하나 있어.”

“뭔데?”

“나 다음 주부터 여기 들어와 지내기로 했어. 결혼식 준비도 해야 하고, 미리 정리할 것도 많아서.”

수경이 잠시 망설이다 말을 이었다.

“너도 결혼식까지만 같이 있어주면 안 될까?”

“여기서?”

“응. 육 주만.”

수경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엄마가 이런 집에서 혼자 시작하려니까 조금 겁이 나서 그래.”

해원은 곧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차명우가 부드럽게 말했다.

“방은 얼마든지 있어요. 해원 양이 불편하지 않도록 준비할 거에요.“

그때 재킷 주머니 안에서 짧은 진동이 두 번 울렸다.

해원은 검은 휴대폰을 꺼냈다.

[거절해도 돼.]

곧이어 두 번째 메시지가 도착했다.

[거주까지는 계약 조건에 없으니까.]

해원은 화면에서 시선을 들었다.

태헌은 맞은편 소파에 앉아 있었다. 휴대폰을 내려놓은 그의 얼굴에서는 어떤 뜻도 읽을 수 없었다.

강요하지 않겠다는 말이었다.

이 집에 들어오라고 명령할 수도 있었는데 그러지 않았다.

해원은 휴대폰을 엎어놓았다.

“응.”

수경의 손을 마주 잡았다.

“그럴게.”

태헌의 시선이 올라왔다.

해원은 그를 보지 않고 말을 끝냈다.

“결혼식까지 여기 있을게.”

이번에는 그의 명령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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