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아리아의 시점
그는 그저 나를 바라보기만 했다.
흰 수건은 그의 허리에 낮게 걸려 있었고, 단단한 매듭 하나로 고정되어 있었다. 아직 그의 피부에는 물기가 남아 있었고, 물방울이 탄탄하게 다져진 가슴과 복부의 선을 따라 천천히 흘러내렸다. 젖은 머리카락은 뒤로 넘겨져 있었고, 그의 얼굴은 값비싸고 차가운 조각품처럼 보였다. 그는 움직이지도, 말하지도 않았다. 그저 이미 나를 자신의 것이라고 결정한 남자가 무언가를 바라보듯 나를 응시했다.
심장이 갈비뼈를 세차게 두드렸다.
“누구세요?” 내 목소리는 생각보다 가늘게 나왔다. “여기서 뭐 하는 거예요?”
그는 여전히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내 얼굴을 훑으며 광대뼈를 따라 짙어지고 있는 멍에 잠시 머물렀다가, 구겨진 옷차림과 침대에서 팔꿈치로 몸을 일으킨 내 모습으로 천천히 내려갔다. 침묵은 마치 방 안에 또 다른 존재가 있는 것처럼 길게 늘어졌다.
나는 침을 삼켰다.
“어떻게 여기 들어온 거예요?”
그제야 그가 대답했다. 그의 목소리는 낮고 거칠었으며, 굳이 목소리를 높이지 않아도 상대가 따르게 만들 것 같은 힘이 있었다.
“방이 연결되어 있어.”
그가 말했다.
“이 스위트룸은 비어 있다고 들었어.”
나는 욕실 문 쪽을 바라보다가 그제야 그 옆 벽에 설치된 두 번째 문을 발견했다. 아주 좁고 거의 눈에 띄지 않는 문이었다. 돈을 충분히 지불한 손님들을 위해 두 개의 VIP 객실을 연결해 놓은 문인 듯했다.
얼굴이 뜨거워졌다.
나는 너무 지쳐 있었고, 그저 눕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어서 이런 것조차 확인하지 않았던 것이다.
“저렴한 방을 달라고 했어요.” 나는 말했지만, 스스로도 그 말이 얼마나 무의미한지 알 수 있었다. “그들이 실수로 이 방을 준 것 같아요.”
그의 시선이 내가 침대 옆 탁자에 떨어뜨려 놓은 키 카드를 향했다가 다시 내 얼굴로 돌아왔다. 그의 눈빛에 읽기 힘든 무언가가 스쳤다.
“다쳤군.”
질문이 아니었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뺨을 만졌다. 손끝에 멍든 부위의 뜨겁고 욱신거리는 통증이 느껴졌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가 한 걸음 다가왔다.
움직임에 따라 수건이 살짝 흔들렸고, 나는 흰 천 아래로 사라지는 탄탄한 근육선을 바라보는 내 눈을 억지로 돌렸다. 다시 그의 얼굴에 시선을 고정했다.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지 않는데.”
그가 한 걸음 더 다가왔다.
두 사람 사이의 공기가 달라졌다. 호텔 비누의 깨끗한 향과 그 아래에 깔린 짙고 고급스러운 향이 그의 몸에서 느껴졌다. 내 맥박 소리가 귀 안에서 지나치게 크게 울렸다.
“옷 좀 입어요.”
나는 말했지만, 내 목소리에는 힘이 거의 없었다.
그가 침대 가장자리에서 멈췄다.
내가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면 그의 눈을 마주치기 위해 고개를 들어야 할 만큼 가까운 거리였다. 나는 움직이지 않았다.
“누가 네 얼굴을 그렇게 만들었는지 말해.”
조용하고 거의 부드러운 요구였다. 그래서 오히려 더 위험하게 느껴졌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상관없어요.”
“나한테는 상관있어.”
그 말이 생각보다 무겁게 가슴에 내려앉았다.
나는 이 남자를 알지도 못했다. 그에게 무언가를 말해야 할 이유도 없었다. 그런데도 그가 나를 바라보는 방식은—흔들림 없이,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마치 이미 그 답을 요구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듯한 시선은—진실을 내 목구멍까지 밀어 올렸다.
“한때 내가 믿었던 사람이에요.”
나는 결국 말했다.
“그게 전부예요.”
그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손을 뻗었다.
나는 피해야 했다. 하지만 그의 손가락이 멍의 가장자리를 스치는 동안 그대로 얼어붙어 있었다. 너무 가벼운 손길이라 거의 느껴지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그의 피부가 닿은 자리에서 뜨거운 감각이 퍼져 나갔다.
“그 남자는 다시는 너에게 손대지 못할 거야.”
그가 말했다.
이미 결정된 사실인 것처럼.
나는 짧고 날카롭게 웃었다.
“당신은 나를 알지도 못하잖아요.”
“충분히 알아.”
그의 손은 내 얼굴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엄지손가락이 아픈 부위를 피해 광대뼈의 선을 조심스럽게 따라갔다. 내 아랫배가 묘하게 조여 들었다. 멈추라고 말해야 했다.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나가야 했다.
하지만 나는 그대로 앉아 있었다.
숨이 지나치게 빨라졌다. 그리고 아직 그의 목을 따라 흘러내리고 있는 물방울을 바라보고 있었다.
“왜 그렇게 쳐다봐요?”
내가 물었다.
“어떻게?”
“뭔가를 결정하려는 사람처럼.”
그의 입꼬리가 아주 살짝 올라갔다. 완전한 미소는 아니었다.
“어쩌면 정말 결정하고 있는지도 모르지.”
우리 사이의 거리가 사라졌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그는 내 앞에 서 있었는데, 다음 순간 그의 무릎이 매트리스 위에 올라와 있었다. 그의 손은 내 뺨에서 머리카락으로 옮겨갔다.
그는 나를 잡아당기지 않았다. 그저 그곳에 손을 둔 채 내 얼굴을 들어 올려 내가 그의 눈을 피할 수 없게 했다.
“멈추라고 말해.”
그가 말했다.
나는 입을 열었다.
하지만 아무런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그가 나에게 입을 맞췄다.
부드럽지는 않았다.
처음에는 천천히, 그러나 곧 깊어졌다. 마치 우리가 같은 공간에 있었던 몇 분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나를 기다려온 사람처럼.
나는 그의 입술 사이에서 작은 소리를 냈고, 그는 낮은 숨소리로 대답했다. 그의 다른 손이 내 허리에 닿았다. 손가락이 셔츠 위로 퍼지며 나를 더 가까이 끌어당겼다.
마침내 그가 입술을 떼었을 때, 내 입술은 뜨겁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의 호흡도 전과 달라져 있었다.
“낯선 남자가 너에게 키스하게 두면 안 돼.”
그가 거칠어진 목소리로 말했다.
“먼저 키스한 건 당신이잖아요.”
“그리고 나를 막지 않은 건 너고.”
그가 다시 입을 맞췄다.
이번에는 더 강렬했다.
그가 몸을 지탱하려 몸을 숙이자 수건이 살짝 느슨해졌고, 맨살이 내 옷에 닿았다. 배신자처럼 움직이는 내 손이 그의 어깨로 올라갔다. 손바닥 아래로 단단한 근육이 느껴졌다. 샤워를 마친 직후라 아직 따뜻했다.
그가 만족스러운 듯 낮게 숨을 내쉬며 더 가까이 다가왔다. 키스는 더욱 깊어졌고, 나는 어느새 베개에 기대어 누워 있었으며 그는 내 위에서 자신의 무게를 조심스럽게 지탱하고 있었다.
질문은 여전히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어떻게 그가 연결된 방에 들어오게 된 걸까?
왜 그는 이미 내 입술을 알고 있는 사람처럼 나를 바라보는 걸까?
왜 내 몸은 이렇게 빠르게 그에게 반응하고 있는 걸까?
하지만 질문을 하나라도 떠올리려 할 때마다 그의 입술이 다시 나를 방해했다.
그는 내 입술 한쪽에 입을 맞추고, 턱선을 따라 내려갔다. 그리고 귀 아래의 민감한 곳에 가볍게 입술을 눌렀다.
그때마다 온몸으로 느린 열기가 퍼져 나갔다.
“떨고 있군.”
그가 피부에 입술을 가까이한 채 속삭였다.
“알아요.”
“두려워서?”
나는 한 번 고개를 저었다.
그의 손이 내 머리카락에서 목선을 따라 내려왔다. 그의 손끝이 빠르게 뛰는 내 맥박 위에 가볍게 머물렀다.
“아니요.”
내가 속삭였다.
“두려운 게 아니에요.”
그는 나를 바라볼 수 있을 만큼만 몸을 뒤로 물렸다.
수건은 더 느슨해져 있었다. 날카롭게 드러난 골반뼈와 흰 천 아래로 이어지는 짙은 체모가 보였다. 그의 눈빛은 전보다 훨씬 어두워져 있었다.
“나가라고 말해.”
그가 다시 말했다.
이번에는 훨씬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나는 말하지 않았다.
대신 손을 뻗어 그의 입술을 다시 내 입술로 끌어당겼다.
키스는 더욱 격렬해졌다. 그의 손이 내 셔츠 밑단을 찾아 안으로 들어왔고, 손바닥이 내 허리를 감쌌다. 엄지손가락이 가슴 아래쪽을 스치자 나도 모르게 그의 손길을 향해 몸을 움직였다.
그의 목에서 낮은 소리가 흘러나왔고, 그는 더 가까이 몸을 밀착했다.
마지막으로 제대로 생각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였다.
나는 한 남자를 피해 이 호텔에 왔는데, 어쩌다 다른 남자의 품에 들어와 버린 걸까.
그런데 그의 손가락이 더 위로 움직이는 순간, 더 이상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
나는 이미 몸이 젖어 있었다.
알렉산더의 시점나는 귀국한 지 고작 몇 시간밖에 되지 않았다.국제 출장이 연달아 이어지면서 하루하루가 공항과 회의실, 그리고 내 회사를 살려둘 수도 있고 그대로 가라앉힐 수도 있는 권력자들과의 신중하게 계산된 대화로 뒤섞여 버렸다.5천만 달러.그 숫자는 시간대를 넘나드는 내내 나를 따라다녔다. 대부분의 사람이라면 감당하지 못할 조건으로 빌린 돈이었다. 계약서에 남은 서명들은 마치 피로 쓴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나는 회사를 버티게 할 자본이 필요했다.앞으로 한 분기만 더 약해진다면 전체 구조가 공개적으로 무너지기 시작할 것이다. 아무도 우리가 얼마나 위태로운 상황에 놓여 있는지 몰랐다.이사회도.투자자들도.그리고 빅토리아는 더더욱 몰랐다.빅토리아.나는 거의 1년 전, 그녀의 출장 중에 결혼했다.그 결혼은 실용적인 선택이었다.그녀는 안정과 내가 가진 이름이 겉으로나마 제공할 수 있는 삶을 원했다. 나는 안정된 결혼생활이라는 이미지를 필요로 했다. 모든 것이 통제되고 있다는 사회적 연결과 조용한 증거가 필요했다. 그동안 나는 빚이 스캔들로 번지지 않도록 필사적으로 싸우고 있었다.우리는 대부분의 낯선 사람들보다도 적은 시간을 같은 도시에 머물렀다.전화.송금.가끔 주고받는 신중하게 작성된 메시지.그 정도면 충분했다.지금까지는.나는 마침내 집으로 돌아왔다.정확히 말하면 같은 주에 들어온 것이었다.비행기는 늦은 밤에 착륙했다. 도시 반대편까지 운전하기에는 너무 늦었고, 내가 돈을 내고 마련한 아파트로 돌아가 거의 알지도 못하는 아내와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의붓딸을 마주하기에도 늦은 시간이었다.내일이면 충분했다.오늘 밤 내게 필요한 건 침대와 몇 시간의 침묵뿐이었다.호텔은 마지막 순간에 내린 결정이었다.높은 층에 있는 조용하고 익명성 있는 스위트룸.나는 객실 번호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채 열쇠를 받아 곧장 위로 올라갔다. 옆방과 연결된 문은 내가 도착했을 때 내 쪽에서 잠겨 있었다. 습관처럼 한 번 확인한 뒤, 그 문이 존
아리아의 시점그는 그저 나를 바라보기만 했다.흰 수건은 그의 허리에 낮게 걸려 있었고, 단단한 매듭 하나로 고정되어 있었다. 아직 그의 피부에는 물기가 남아 있었고, 물방울이 탄탄하게 다져진 가슴과 복부의 선을 따라 천천히 흘러내렸다. 젖은 머리카락은 뒤로 넘겨져 있었고, 그의 얼굴은 값비싸고 차가운 조각품처럼 보였다. 그는 움직이지도, 말하지도 않았다. 그저 이미 나를 자신의 것이라고 결정한 남자가 무언가를 바라보듯 나를 응시했다.심장이 갈비뼈를 세차게 두드렸다.“누구세요?” 내 목소리는 생각보다 가늘게 나왔다. “여기서 뭐 하는 거예요?”그는 여전히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내 얼굴을 훑으며 광대뼈를 따라 짙어지고 있는 멍에 잠시 머물렀다가, 구겨진 옷차림과 침대에서 팔꿈치로 몸을 일으킨 내 모습으로 천천히 내려갔다. 침묵은 마치 방 안에 또 다른 존재가 있는 것처럼 길게 늘어졌다.나는 침을 삼켰다.“어떻게 여기 들어온 거예요?”그제야 그가 대답했다. 그의 목소리는 낮고 거칠었으며, 굳이 목소리를 높이지 않아도 상대가 따르게 만들 것 같은 힘이 있었다.“방이 연결되어 있어.”그가 말했다.“이 스위트룸은 비어 있다고 들었어.”나는 욕실 문 쪽을 바라보다가 그제야 그 옆 벽에 설치된 두 번째 문을 발견했다. 아주 좁고 거의 눈에 띄지 않는 문이었다. 돈을 충분히 지불한 손님들을 위해 두 개의 VIP 객실을 연결해 놓은 문인 듯했다.얼굴이 뜨거워졌다.나는 너무 지쳐 있었고, 그저 눕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어서 이런 것조차 확인하지 않았던 것이다.“저렴한 방을 달라고 했어요.” 나는 말했지만, 스스로도 그 말이 얼마나 무의미한지 알 수 있었다. “그들이 실수로 이 방을 준 것 같아요.”그의 시선이 내가 침대 옆 탁자에 떨어뜨려 놓은 키 카드를 향했다가 다시 내 얼굴로 돌아왔다. 그의 눈빛에 읽기 힘든 무언가가 스쳤다.“다쳤군.”질문이 아니었다.나는 무의식적으로 뺨을 만졌다. 손끝에 멍든 부위의 뜨겁고 욱신거리는 통증이 느껴졌
아리아 POV“당신이 나를 때렸어.”나는 에단을 바라보며 말했다.“우리가 몇 년을 함께했는데, 나를 때린 거야.”내 목소리는 낮고 차분하게 나왔지만, 그의 손이 닿았던 뺨은 여전히 화끈거렸다. 입가에는 피맛이 남아 있었다.에단은 알몸으로 서 있었고, 가슴은 너무 빠르게 오르내리고 있었다. 데릭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이미 바지를 다시 입고 있었다.아무도 말하지 않았다.아무도 죄책감을 보이지 않았다.우리 사이에 내려앉은 침묵은 오히려 그가 내 뺨을 때린 순간보다 더 무겁게 느껴졌다.나는 두 사람이 무슨 말을 찾기 전에 몸을 돌렸다.반지가 손가락에서 쉽게 빠졌다. 애초에 내 손가락에 제대로 맞지도 않았다. 늘 조금 헐거웠다. 마치 이 반지가 오래 머물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것처럼.나는 반지를 바닥에 떨어뜨렸다.몇 달 전 그가 내게 준 얇은 체인들과 목걸이도 함께 내려놓았다.나무 바닥에 금속이 부딪히며 내는 작은 소리만을 남긴 채 나는 아파트를 빠져나와 문을 닫았다.쾅 닫지는 않았다.그럴 힘조차 없었다.내 손은 떨리고 있었고, 얼굴 한쪽은 맥박이 뛰는 것에 맞춰 욱신거렸다.밖으로 나오자 밤공기가 아까보다 훨씬 차갑게 느껴졌다.나는 처음에는 아무런 목적지도 없이 걸었다. 그저 에단과 그 침대의 모습을 여전히 품고 있는 그 아파트에서 최대한 멀어지고 싶었다.몇 걸음마다 뺨을 만져보았다.피부가 찢어진 것은 아닐까 걱정했다.그렇지는 않았지만, 손바닥 아래에서 느껴지는 뜨거운 열기가 이미 멍이 들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사람들이 인도를 지나갔다.아무도 나를 두 번 바라보지 않았다.나는 그저 고개를 숙인 채 혼자 걷는 또 다른 여자일 뿐이었다.나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내 발은 가장 가까운 바를 향했다.그곳은 반쯤 비어 있었고, 조명은 어두웠으며 음악은 낮게 흘러나왔다. 누구도 다른 사람을 자세히 살펴보지 않는 그런 곳이었다.나는 카운터에 앉아 생각할 겨를도 없이 주문했다.사실 빅토리아와 함
아리아 POV“오늘 밤에는 집에 들어오길 바란다. 내일은 네 새아빠와 함께 그의 회사에서 일하게 될 테니까.”우리 아파트의 짧은 복도를 가로질러 들려오는 엄마의 목소리는 밝고 들떠 있었다. 특히 그가 관련된 이야기를 할 때만 드러나는 특유의 자부심이 묻어 있었다.나는 이미 가방을 어깨에 메고 현관문 앞에 서 있었다. 한 손은 여전히 차가운 금속 손잡이 위에 올려져 있었다.“네, 엄마.”나는 뒤돌아보지 않았다.빅토리아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는 이미 알고 있었다. 입가에 부드럽고 만족스러운 미소를 머금고, 자신이 석 달 전에 결혼한 남자 이야기를 할 때마다 눈을 반짝이는 모습.내가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남자.얼굴조차 상상할 수 없는 남자.빅토리아는 그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얼마나 성공한 사람인지, 얼마나 존경받는 사람인지, 얼마나 관대한 사람인지.매달 어김없이 그녀의 계좌로 돈이 들어왔다. 몇 년 동안 그녀가 포기하고 살아왔던 집세와 공과금, 그리고 자잘한 생활비까지 충당하고도 남을 만큼의 돈이었다. 우리 둘을 모두 먹여 살릴 수 있을 정도였다.그녀는 그의 이름을 마치 약속처럼 말했다.그가 소유한 회사는 요새와도 같다고 했다.그리고 내일이면 마침내 내가 그 요새 안으로 들어가게 될 거라고 했다.팁이나 늦은 시간까지 이어지는 아르바이트, 혹은 낯선 사람들의 얼마 안 되는 호의에 의존하지 않는 미래를 그곳에서 만들어갈 수 있을 거라고.나는 현관문을 열고 저녁 거리로 나섰다.밖의 공기는 따뜻하고 무거웠다. 피부에 끈적하게 달라붙는 그런 날씨였다.처음에는 딱히 목적지도 없이 걸었다. 그저 빅토리아의 목소리와 그녀가 내게 기대하는 것들의 무게에서 멀어지고 싶었다.내일이면 그를 만나게 된다.새아빠.몇 달 동안 우리 생활비를 대주면서도 유령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낯선 남자.한 번은 그의 사진을 보여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었다. 빅토리아는 그저 웃으며 말했다. 회사에 출근하기 시작하면 충분히 소개할 시간이 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