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오빠 부모님만 오빠를 어렵게 키웠나요? 우리 부모님도 날 몹시 어렵게 키워왔다고요. 그런데 왜 나만 참으라고 해요? 어머님은 날 키우신 적도 없고, 사사건건 나와 하예진을 비교하며 내가 그 여자보다 못하다고 말씀하시는데, 그래도 참아야 하는 거예요?”“...”“매일 내 앞에서 내가 형편없다는 둥, 밥도 안 하고 항상 배달시킨다는 둥 잔소리하시며 하예진 타령만 하시는데, 나도 평소에 바쁘단 말이에요. 어머님은 집에서 한가하게 계시면서 밥 한때 안 차리고, 온종일 바쁘게 일하다 온 나한테만 밥을 하라는데, 이거 너무한 거 아니에요? 처음 당신 집에 갔을 때, 어머님과 형님께서 너무 잘해주셔서 난 하예진이 고부 관계를 잘 처리하지 못한 줄로만 알았어요. 알고 보니 어머님과 형님이 연기하신 거예요. 난 그것도 모르고... 내가 하예진과는 다를 줄 알았거든요.”애인의 신분과 마누라의 신분이 대우가 이 정도로 다를 줄이야.“그리고 오빠도 예전에는 내 말이라면 다 들어줬잖아요, 지금은요?”주형인은 얼른 마누라를 달래며 말했다.“지금도 마찬가지야, 현주 네 말이라면 이거지. 나 예전에 예진이랑 더치페이하며 살았어. 우빈의 분유를 사는데 50만 원이 든다면 난 25만 원만 줬거든. 하지만 현주 넌 달라. 네가 시집오자마자 내 돈 다 너에게 맡겼잖아, 부동산 등기부에도 네 이름 올렸고. 난 정말 현주 너한테 일편단심이야.”혼인 신고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결혼식도 안 치르지 또 이혼할 수는 없는 일이니, 마누라를 달랠 수밖에.게다가 자기보다 어리고 연약한 마누라가 아직 질리지는 않았다.마음속으로 후회가 들기도 하였지만, 감히 서현주에게 말하지는 못했다.그는 늘 자신과 하예진의 이혼 대가가 너무 크다고 생각했으니.새 결혼생활이 이럴 줄 알았더라면 이혼하지 않았을 텐데, 안타깝게도 하예진은 그가 바람을 피웠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바로 이혼을 요구했고, 그에게 추호의 기회도 주지 않았다.그의 형편없는 생활에 비해 하예진은 이혼 후, 오히려 더 나은
악을 쓰고 하예진에게서 주형인을 빼앗은 이상, 이 길이 아무리 험난해도 그녀는 계속하여 걸어갈 생각이었다.웃음거리가 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하예진이 그녀에게 이게 다 벌 받아 그런 거라고 말하는 꼴을 보고 싶지 않았다.“인제 그만 자, 정한이가 네 아들도 아니고. 누나는 이미 잠들었을지도 몰라, 외숙모인 네가 오히려 무서워서 잠 못 이룬다면 말이 돼?”주형인은 서현주를 껴안고 다시 하품했다.“졸려 죽겠어.”‘내가 잠 못 자는 게 정한이 때문이 아니라고요.’그녀는 자신의 스킨케어와 색조 화장품을 마음대로 가지고 장난치는 임정한이 미웠다. 그때 임정한이 유괴된 걸 본 그녀는 그저 놀라기만 했을 뿐, 전혀 걱정이 들지 않았다. 마음속 한편에는 심지어 통쾌하기까지 했다.마음이 착한 하예정 자매가 사람을 시켜 임정한을 구했으니 말이지.‘나라면 절대 구하지 않았을 거야. 정한이가 유괴되면 주서인도 앞으로는 날뛰지 못하겠지?’주형인은 곧 다시 잠들었다.진실을 말할 수 없었던 서현주는 혼자 참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얼마나 지났을까, 겨우 잠이 든 서현주는 악몽에 시달렸다. 우빈이가 나쁜 사람에게 상처를 입어 다리가 부러진 채로 거리에 내동댕이쳐져 구걸하는 꿈을 꾸었고, 또 자신의 친정 식구들이 모두 죽어 시체가 줄지어 있는 꿈도 꾸었다....꽈르릉!천둥소리와 함께 봄비가 내리기 시작했다.천둥소리에 잠이 깬 하예정은 날이 밝은 걸 보고 아예 침대에서 일어났다.그녀가 일어나자, 전태윤도 따라 일어났다.“여보, 좀 더 자요, 어젯밤에 늦게 들어오셨잖아요. 먼저 가서 아침밥을 하고 다시 와서 부를게요.”그녀는 창가로 다가가 커튼을 열고 밖을 내다보았는데,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자 바로 커튼을 다시 치며 남편을 향해 말했다.“비가 아직 그치지 않았으니, 조금 더 자요. 오늘은 조깅하기 글렀어요.”늦게 귀가하여 정말 피곤했던 전태윤은 다시 침대에 쓰러져 눕더니 이불을 잡아당겨 머리까지 푹 뒤덮었다. 모처럼 늦잠을 잘 기회가 생겼다.그가 다시
할머니도 그저 한번 말해봤을 뿐, 더는 입을 열지 않았다.“여보, 밸런타인데이에 나한테 준 차도 숙희 이모에게 함께 가져오라고 해요. 차가 없어서 너무 불편하네요.”“알았어.”전태윤은 빙그레 웃으며 응낙했다.저번 밸런타인데이에 아내에게 주려 한 선물이 드디어 쓸모 있게 됐다.“예정아, 잘한다. 남자가 돈을 버는 것은 다 여자를 위해 쓰기 위한 거니, 네가 많이 쓸수록 남자는 더 즐거워하며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거야. 네가 쓰지 않으면 그 돈들은 그저 숫자에 불과해, 아무리 많이 벌어봤자 전혀 성취감이 없을 거다.”“할머니, 저는 돈이 부족하지 않아요.”전태윤은 평소 생각만 나면 생활용 카드에 돈을 넣는다.그녀는 자신의 예금은 이것저것에 거의 다 써버렸지만, 그가 준 돈은 아무리 써도 다 쓸 수 없었다.게다가 그녀도 돈을 함부로 쓰는 사람이 아니다.현재 그녀의 모든 옷과 신발, 그리고 이제는 스킨케어와 색조 화장품도 모두 전태윤이 도맡았다.그 때문에 현재 아무것도 부족하지 않은 그녀는 매번 쇼핑하러 가면 무엇을 사야 할지 모른다.“할머니, 제가 전 재산을 다 주려 했는데 예정이가 거절했어요.”그러자 할머니는 웃으며 하예정이 멍청하다고 말했다. 전태윤의 모든 재산을 물려받기만 하면 관성의 여자 갑부가 될 수 있을 텐데. 서점을 차리니, 프로젝트에 투자하니 할 것도 없이 전태윤의 돈을 착취하기만 하면 아주 편히 살 수 있을 텐데 말이다.‘역시 내 친할머니야!’아침 식사 후, 전태윤 부부는 먼저 하예진의 가게에 우빈이를 데려다 주러 갔고, 그 후 전태윤은 아내를 서점까지 바래다 준 후 비로소 출근했다.그와 동시에, 여씨 별장에서는.여씨 사모님이 한창 여운초를 가리키며 욕설을 퍼붓고 있었다.여운초는 엄마의 욕설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담담하게 아침 식사를 한 후, 수저를 들고 부엌으로 들어가 씻었다.그녀는 매일 흰죽이나 빵으로 아침 식사를 간단하게 해결했다.여씨 일가에도 요리사가 있지만, 요리사가 준비한 영양가 있는 아침 식사는
“여보, 우리 빨리 운별이 구해내요. 우리 아가가 언제 이런 고생을 해봤겠어요?”여씨 사모님의 눈에는 막내딸밖에 보이지 않았다. 현재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아들도 이처럼은 걱정하지 않는 듯 했다.현재 학교 기숙사에 살고 있는 아들은 고등학교 3학년 학생으로서 한 달에 한 번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아들은 딸보다 훨씬 더 철이 들어 여씨 사모님은 매달 아들의 교내 식사 카드에 돈을 넣어주기만 하면 되었다. 유일하게 그녀의 마음에 걸리는 것은 아들이 여운초를 너무 챙긴다는 것이다.아들이 집에 있을 땐 여씨 사모님은 아들과 싸우지 않기 위해 되도록 온화한 태도로 여운초를 대하곤 한다.“운별이는 보름만 버티면 돼, 보름만 지나면 바로 나오니까 우리가 현재 걱정해야 할 것은 전씨 사모님이 고소하느냐 마냐야. 또 사과하러 가야 하게 생겼어.”소중한 딸이 사고를 치자 여 대표도 조급한 건 마찬가지지만, 딸을 건져내려는 생각뿐인 아내와는 달리 고려해야 할 것이 많았다.“우리가 사과하지 않은 게 아니잖아요, 운초에게 그쪽 가게에 가서 대신 사정하라고 했는데, 다 소용없었어요. 그년, 우리 운별을 가둬두려고 마음먹은 거예요. 지금 15일 구금되는 것도 마음이 아파 죽겠는데, 만약 또 고소당하기라도 한다면...”여씨 사모님은 말하면서 눈이 빨개졌다.그러자 잠자코 듣고 있던 여 대표가 말했다.“정말 그렇게 된다면 운별에게 최고의 변호사를 선임해 가벼운 판결을 받아내는 수밖에. 이번 일은 운별이가 잘못했어, 자칫하단 무거운 판결을 받을지도 몰라. 당신도 요즘 좀 조심해, 아무 짓도 하지 마. 어제 관성동물원에서 전씨 사모님의 외조카가 하마터면 유괴당할 뻔했다던데, 이 일 당신이 지시한건 아니겠지?”아내에 대해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여 대표는 거듭 당부했다.“당신 절대 경거망동하지 마, 운별이가 지금 어떻게 됐는지 잘 봐봐. 여기는 관성이야. 관성은 전씨, 성씨와 소씨, 그리고 노씨 가문의 천하지. 그들 4대 가문이 손을 잡으면 우린 바로 끝장이야.”여씨 사모
그녀는 차 쪽을 향해 쳐다보며 차를 세운 사람이 누구인지 보려고 애썼지만, 안타깝게도 눈앞은 여전히 캄캄했고, 약간의 실루엣이 보이긴 하였지만, 그걸로 누구인지 분별하는 건 불가능했다.조금만 애쓰면 보일 것만 같은데 어떻게 해도 보이지 않으니...“매일 걸어서 가게에 가나요?”이때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씨 가문 둘째 도련님의 목소리였다.전이진은 하예정에게 불려 여운초를 꽃가게로 바래다준 후, 여운초가 감사를 표하고 이름을 묻자, 형님처럼 신분을 숨기지 않고 바로 자기가 전씨 가문의 둘째인 전이진이라고 알려줬다.“이진 씨.”그녀는 얼굴에 예의적인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넸다.“혹시 집에 운전기사가 따로 없는 거예요?”“여씨 가문이야 당연히 운전기사가 있죠. 다만 저에게 없을 뿐이에요.”전이진은 마음이 착잡했다. 할머니가 골라주신 아내는 장님인 데다가 가엾게도 부모의 사랑도 못 받고 있었다.“타요, 가게까지 바래다줄게요.”하지만 그녀는 꿈쩍도 하지 않고 서서 그에게 물었다.“이진 씨는 왜 여기 계신 거죠?”“내가 이곳에도 별장을 하나 사놓은 게 최근에야 생각이 나서 잠시 와 머물고 있거든요.”“이진 씨는 정말 많은 집을 소유하고 계시네요.”여씨 일가가 살고 있는 이 지역은 관성에서도 유명한데 주로 부자들이 이곳에 집을 사놓고 산다.“적지는 않죠. 어떤 집은 산 뒤 별로 살아본 적이 없어 생각나면 며칠 와서 묵고, 기억나지 않으면 그냥 놔뒀다가 집값이 오를 때 팔아버리곤 해요. 자, 타세요. 비가 와서 버스 기다리기 힘들어요.”전이진은 여운초를 차에 태웠다.“마침 가게에 가서 꽃 살 생각이었거든요.”그녀는 조금 망설이다가 결국 그의 차에 탔다.그와는 겨우 두세 번밖에 만난 적이 없고, 그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른다.전씨 가문의 도련님들이 모두 잘생겼다고 하니 틀림없이 잘생긴 남자일 것이다.여운초는 앞을 더듬으며 차에 다가가 차 문을 연 다음, 자리에 앉은 후 우산을 모아 발 옆에 세워뒀다.“안전벨트 해요.”곁에서
전이진이 그녀를 힐끗 쳐다보았다.“여운초 씨는 보이지 않으니, 버스가 지나가도 모르겠는데요.”“마음씨 착한 경비원 아저씨들이 매일 버스를 세워서 제가 오르도록 도와주고 계세요.”그는 입을 다물었다.두 사람은 아직 서로에 대해 잘 모른다.전이진은 원래 이렇게 빨리 행동할 생각이 없었는데, 형수에게 놀림을 당하고 나서 형과 형수의 웃음거리가 되지 않기 위해 적극적으로 그녀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하지만 할머니께서 가장 기본적인 자료만 주셨기 때문에 그녀에 대해 아는 것이 너무 적었다.서로 잘 모르면 화제가 없는 법이다.그는 묵묵히 차를 몰았고, 그녀는 말없이 차 안의 음악을 듣기만 하였다.좀 지나 차가 꽃가게 앞에 도착했다.“운초 씨 가게에 도착했어요.”전이진의 말이 끝나자, 여운초는 안전벨트를 풀고 허리를 굽혀 자신의 우산을 집어 든 다음, 손으로 더듬으면서 차 문을 열고 조심스럽게 차에서 내려 우산을 펼쳐 들었다.하지만 남의 차를 타고 온 탓에 그녀는 자신이 어느 방향에 서 있는지 몰라서 우산을 쓴 채로 잠깐 멍하니 서 있었다.시각장애인의 생활방식은 일반적으로 변하지 않는데 자신이 익숙한 곳에서는 자유롭게 행동하지만, 패턴이 바뀌면 방향을 찾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평소에 버스를 타고 출근하는 여운초는 근처 정류장에서 내리면 어느 방향으로, 몇 걸음 걸어야 하는지 잘 기억하고 있는데 보통 오차가 없었다.오늘은 전이진이 차를 어디에 주차했는지 알 수 없어 차에서 내린 후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혼란스러웠다.좀 지나 마음을 진정시킨 여운초는 조심스럽게 앞으로 걸어가다가 한 사람과 부딪혔다.“죄송해요, 죄송해요.”그녀는 서둘러 사과했다.“오른쪽으로 돌아서 앞으로 가시면 가게 앞이에요.”전이진이 친절하게 여운초에게 방향을 알려주었다. 방금 부딪힌 사람은 다름 아닌 차를 에돌아서 그녀와 함께 가게로 들어가려던 전이진이였다.방향을 잘못 짚은 여운초는 곧장 앞으로 가다가 전이진과 부딪쳤던 거다. 만약 그녀가 그와 부딪히지 않고 계속 앞
“이런 일을 막힘없이 하는 걸 보면 운초 씨가 보지 못한다는 것이 믿기지 않아요.”여운초는 나무막대를 제자리에 놓고 담담하게 말했다.“손에 익으면 자연히 능숙해져요. 꽃가게를 연 지도 몇 년 됐고, 매일 똑같은 일을 하고 있으니, 감각만으로도 잘할 수 있어요.”문을 연 후 그녀는 지팡이를 내려놓고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화분을 능숙하게 밖으로 옮기기 시작했다.“이진 씨는 오늘 무슨 꽃을 사시게요? 천천히 둘러보세요.”전이진도 더 이상 구경만 하지 않고 그녀를 도와 화분들을 꽃가게 문 앞으로 모두 옮겼다.화분마다 꽃 이름이 새겨진 작은 나무 패쪽이 붙어있었다. 여운초는 손으로 나무 패쪽에 새겨진 글씨를 만져보면 손님이 어떤 꽃을 골랐는지 알 수 있다.“보이지 않아서, 장사하기 불편하시겠어요.”“불편해도 해야죠.”여운초의 어조는 항상 담담하고 부드럽다.전이진은 그녀를 찬찬히 훑어보았다. 정교한 이목구비를 가진 그녀는 큼직한 선글라스 때문에 손바닥만 한 얼굴이 더 작아 보였다.분명히 재벌 집 딸인데 너무도 평범한 삶을 살고 있다. 게다가 그녀는 가게를 열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다고 한다.여씨 일가에서 설마 생활비마저도 안 주는 건가?“여씨 사모님이 친엄마가 맞아요?”전이진이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잠자코 있던 여운초가 대답했다.“오히려 친엄마가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친엄마가 맞아요.”“친엄마인데 그렇게 못되게 굴어요?”여씨 가문의 큰따님은 총애받지 못할 뿐 아니라 하인보다도 못한 투명 인간 대우를 받는다는 것을 인근 별장 사람들 모두가 알고 있다.전이진이 사람을 시켜 일부러 알아보지 않아도, 여운초가 박대를 받고 있다는 소문을 들을 수 있었다.전기 주전자와 찻주전자가 놓여 있는 테이블로 다가간 여운초는 전기 주전자를 들고 안방으로 들어가 물을 받아 끓이기 시작했다.“운초 씨, 차를 안 끓여도 괜찮아요, 저는 차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여운초가 무엇을 하려는지 알아챈 전이진이 한마디 했다.그녀는 손동작을
남동생이 여운초에게 잘해주는 것이 꼴 보기 싫었던 여운별은 엄마더러 남동생을 초등학교 때부터 기숙 학교에 보내게 하여 집에 있는 시간을 줄였다.그래도 남동생은 여전히 큰누나에게 잘해준다.여운초보다 9살 연하인 남동생은 당시 기숙사에 있었던 탓에 큰누나가 아픈 걸 몰랐었다. 그는 지금까지도 큰누나를 병원에 보내도록 부모님을 독촉하였다면 큰누나가 실명하지 않았을 거라며 자책하고 있다.그 집에서 여운초는 남동생에게서만 가족의 따뜻함을 느꼈다.그녀가 담담한 말투로 가슴 아픈 말을 내뱉자 전이진의 마음도 저도 모르게 아파 났다.아마 그는 처음부터 할머니가 골라준 짝인 그녀를 자기 여자로 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고생 끝에 낙이 올 거예요.”전이진이 온화한 목소리로 말하자 여운초가 그를 향해 웃었다.“이진 씨, 저를 불쌍하게 여기실 필요 없어요. 여태 저를 어떻게 대하였든지 어쨌거나 지금까지 키워주신 분이잖아요.”비록 그들한테 죽임을 당할 뻔했지만...“사고 싶은 꽃은 고르셨나요?”여운초가 화제를 바꾸었다.그녀는 익숙하지도 않은 전이진과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 않았다.“내가 운초 씨를 가게에 모셔 왔으니, 운초 씨가 나한테 꽃다발을 선물로 주는 건 어때요?”“...”진이진이 꽃다발을 선물로 달라고 할 줄은 몰랐다.이성에게 꽃다발을 선물한 적이 없는 여운초는 잠깐 망설이다가 꽃다발을 만들려고 꽃을 고르기 시작했다.“붉은 장미꽃과 안개꽃을 섞어 꽃다발을 만들어주세요.”“이진 씨, 제가 선물로 드리는 꽃다발에 장미꽃은 어울리지 않아요.”“형수님이 장미꽃다발을 사서 형에게 드렸는데, 형이 내 앞에서 어찌나 자랑하던지.”“이진 씨도 나한테서 장미꽃다발을 선물 받았다고 자랑하시려고요?”“왜, 안 돼요?”그녀는 그의 와이프 후보이고, 앞으로 십중팔구 그와 결혼할 것이다.와이프 될 사람이 남편에게 장미꽃다발을 선물하면 라이벌을 물리치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다.전씨 가문 둘째 도련님을 연모하는 아가씨들도 적지 않게 있었지만, 그도 큰형
“할머니, 제가 뭐가 똑똑해요, 전 진짜 멍청해요. 할머니야말로 대단하신 분이죠.”전이혁은 할머니께 아부하는 멘트를 던졌다.하지만 그것이 단순히 아부라고 할 수 없는 게, 할머니는 정말 대단한 인물이었다. 남들이 보기엔 전씨 가문 자손들은 이미 충분히 뛰어난 사람이었지만 그래도 할머니의 손바닥 안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할머니는 마치 삼장법사였고 자손들은 손오공 같은 존재로 손오공이 아무리 강해도 삼장법사 앞에선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할머니, 저 진짜 꼼수 같은 거 부리지 않아요.”“그건 네 사정이고. 어떻게 하든 네 마음대로 해. 할머니는 이미 너에게 신붓감을 골라줬고, 대시하든 포기하든 그것 역시 너에게 달린 일이야. 1년이면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줬다고 생각한다.”“하지만 한 가지 경고할게. 지금까지 우리 전씨 가문에는 일편단심인 남자만 있었을 뿐 양다리를 걸치는 남자는 없었어. 네가 전씨 가문의 가풍을 망가뜨리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전이혁은 최대한 얼굴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알겠어요, 할머니. 저 이제 운전해야 해요. 도착해서 또 이야기 나눠요.”“그래, 운전 조심하고.”할머니는 전이혁에게 안전을 당부하고 전화를 끊었다.전화를 끊은 뒤, 할머니는 곧장 양씨 아저씨에게 전화를 걸었다.“양 집사, 내 생선은?”할머니는 자신이 잡은 생선을 혹시 다른 사람이 먹을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양씨 아저씨는 웃으며 대답했다.“어르신께서 구운 생선은 냄새가 정말 좋아요. 아무도 어르신의 생선을 뺏어 먹으려 하지 않으니 안심하세요.”그들 몇몇 자식들 따라 직원 숙소에서 지내는 할머니들은 전씨 할머니가 좋은 분인 걸 알고 함께 수다도 떨고 낚시도 하지만 전씨 가문의 중심인 전씨 할머니의 권위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그들은 전씨 할머니의 물건을 건드리는 일은 없었다. 혹시나 건드렸다가 이곳에서 일하는 자식들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었으니까.서원 리조트의 모든 직원은 훌륭한 대우와 복지를 받고 있었다. 산기슭에 지어진 숙소는 혼자인
두 사람은 함께 아침을 먹은 후, 방을 나섰다.그러자 집사는 전태윤이 다음에 올 때 묵을 수 있도록 스위트룸을 원래 상태로 정리하기 시작했다.도아영은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서 다시 잠을 청했다.전이혁은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었고, 할머니가 전화를 받자 물었다.“할머니, 지금 어디 계세요?”“리조트에 있어. 무슨 일이야? 할머니 보고 싶어? 그렇다면 와서 할머니랑 같이 밥 한 끼 먹자.”그러더니 할머니는 한 마디 덧붙였다.“지금 생선이 막 익었어. 냄새 진짜 좋다.”전이혁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침부터 생선 구워 드세요?”“너한테 말한 거 아니야. 친구들이랑 얘기 중이었어. 아침부터 생선 구우면 안 돼? 그리고 지금 아침도 아니잖아. 아홉 시도 넘었네, 해가 중천에 뜨려고 하고 있어.”“오늘 날씨도 풀렸고, 할머니는 친구들이랑 낚시 갔다가 지금은 잡은 생선 구워 먹고 있어. 소풍하는 느낌이라 꽤 괜찮아.”전이혁은 그 모습이 쉽게 그려졌다. 산 아래에는 맑은 시냇물이 흐르고 있었고 물 아래에는 물고기와 새우들이 헤엄치고 있었다.할머니는 가끔 몇몇 직원들의 어머니들과 함께 낚시하곤 했었다. 냇가에는 큰 나무 한 그루 있었는데 그 아래에는 돌로 된 테이블이 몇 개 있어 할머니의 한마디면 집사는 바비큐 그릴을 가져와 그들이 직접 구워 먹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할머니가 말하길, 그들은 먹는 것보다는 굽는 과정을 더 즐겼다. 비록 직원이 구워줄 수도 있었지만, 그들은 다른 사람이 구워주는 건 맛이 없다며 투덜대기도 했었다. 그리고 그들은 다 먹지 못할 때면 남은 건 직원들에게 나눠주기도 했었다.서원 리조트의 직원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할머니는 권위를 내세우며 직원들에게 막 대하지 않고 옆집 할머니처럼 따뜻하게 대해준다는 사실을.“할머니, 생선 더 잡아서 구워주세요. 저 지금 갈게요.”전이혁은 결심한 듯 할머니에게 진실을 털어놓으러 갈 생각이었다.“네가 와서 직접 잡아. 손질까지 하면 할머니가 구워줄게.”그러더니 할머니는 전이혁에게 물었다.“
“여긴 호텔 맞고, 당연히 아영 씨가 묵던 방일 수가 없죠. 어제 아영 씨가 취해서 방에 데려다줬는데 눕자마자 토하더라고요. 침대랑 바닥까지 모두 엉망이 돼서 어쩔 수 없이 다른 방으로 옮겼어요.”전이혁은 다시 자리에 앉더니 도아영에게 말했다.“아영 씨 술 취하면 정말 감당하기 힘들어요. 앞으로 술 좀 줄이는 게 좋을 것 같네요.”도아영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입을 뗐다.“제가 전이혁 씨랑 함께 많이 마신 건 알겠는데 그 뒤로는 기억이 하나도 안 나네요. 그런데 그 술 진짜 맛있었어요. 제가 해주시로 돌아갈 때 한 박스만 챙겨줘요. 기분 안 좋을 때 집에서 한두 잔 마시려고요.”“아영 씨가 그 정도로 술이 부족하진 않을 텐데요?”전이혁은 도아영의 집에 좋은 술이 부족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그는 도아영의 말이 전혀 믿기지 않았다.“맞아요. 술이 부족한 건 아니에요. 하지만 전이혁 씨가 준 술은 부족하죠.”전이혁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그래요. 아영 씨가 돌아갈 때 한 박스 챙겨줄게요. 그리고 관성 특산물도 좀 챙길 테니 같이 가져가요. 어찌 되었든 먼 길 왔는데 헛걸음하게 하면 안 되니까요.”도아영은 웃으며 대답했다.“맞아요. 헛걸음하게 만들면 안 되죠.”그러더니 그녀는 전이혁의 옆으로 다가가 소파에 기대어 앉았다.“전이혁 씨, 여기 꿀 있어요? 머리가 아파서 그러는데 저 꿀물 좀 타 주면 안 돼요?”“아까는 참을 만하다면서요?”전이혁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일단 세수 좀 하고요. 그리고 타 줄게요. 아영 씨도 세수해요.”“목욕할 거면 아영 씨 방에 가서 해요. 여긴 우리 형이 자주 묵는 스위트룸인데, 아영 씨니까 형이 허락한 거지, 다른 사람이었으면 형수님이 부탁해도 절대 안 된다고 했을 거예요.”전이혁의 큰형과 형수님은 도아영이 할머니께서 정해준 자신의 신붓감이라는 걸 알고,이미 도아영을 가족이나 다름없이 생각하고 있었다.어젯밤, 전이혁이 그런 말을 했을 때 도아영은 살짝 기분이 상했었다. 하지만
전이혁은 얼른 도아영을 부축하더니 살짝 귀찮다는 듯이 물었다.“아영 씨, 또 왜 그래요?”“저... 화장실... ”도아영은 눈이 풀린 채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화장실 가고 싶어요?”도아영은 비틀거리며 제대로 걷기도 힘든 상태였고 전이혁의 표정은 점점 굳어지기 시작했다. 도아영을 혼자 화장실에 가게 둘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남자인 자신이 부축해서 데려가는 것도 난감한 일이었다.도아영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비틀거리며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전이혁은 급히 그녀를 부축하며 다시 한번 물었다.“혼자 괜찮겠어요?”도아영은 묵묵부답이었다. 그녀는 이미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이 누군지도 모를 정도로 심하게 취해 있었다.도아영의 상태를 보아하니 전이혁은 어쩔 수 없이 그녀를 부축해 화장실로 데려가야 했다. 전이혁은 가면서도 입으로는 끊임없이 투덜거렸다.그는 도아영을 화장실로 들여보내고 도망치듯 밖으로 뛰어나왔다.전이혁은 도아영이 나올 때까지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10분이 넘도록 나오지 않았고, 노크를 해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 결국, 전이혁은 걱정된 마음에 문을 살짝 열어 안을 들여다봤지만 무슨 일인지 도아영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어? 어디 간 거야?’전이혁은 의심스러운 마음에 문을 활짝 열고 들어가 보았다. 그 결과, 도아영은 화장실 문 옆 벽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그러니 문틈 사이로 도아영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었다.“이 여자 진짜!”도아영의 모습을 보자, 전이혁은 앞으로 절대 그녀에게 술을 많이 마시게 하지 않으리라고 결심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전이혁은 앞으로 자신이 도아영과 함께 밥을 먹게 된다면 그녀에게 술을 마시지 못하게 할 생각이었다. 자신 말고는 도아영이 다른 누구와 함께 얼마나 마시든, 그건 전이혁이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전이혁은 안으로 들어가 도아영을 안고 나온 뒤, 그녀를 침대에 눕혔다.그는 원래 방으로 돌아가 쉴 예정이었지만, 도아영의 상태를 보아하니 도저히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결국 그날 저녁,
한편 호텔에서 도아영을 돌보던 전이혁은 전창빈의 메시지를 확인하더니 단독으로 그에게 음성 메시지로 물었다.[너 그 먼 곳까지 가서 가정 요리사를 하려고?]전창빈은 소파에 앉아 답장을 보냈다.[안 될 건 없지? 선우씨 가문의 가정 요리사 자리는 도전적이잖아. 내가 합격할 수 있을지 시험해 보고 싶었어. 다행히도 형 동생이 모든 경쟁자를 물리쳤지 뭐야. 난관을 하나둘씩 돌파했어.]전이혁이 회답했다.[요리사 하나 뽑는 걸 대통령 선거처럼 하는구먼. 얼마나 있을 계획이야? 설날도 얼마 안 남았는데 명절에는 안 오려고?]전창빈이 답장했다.[설날에는 아마 못 갈 것 같아. 여기 주인이 날 해고하면 그때나 갈 수는 있겠는지.]전이혁이 피식 웃었다.[네 실력으로는 해고당할 리가 없잖아. 네가 주인을 해고하는 게 더 말이 되겠다. 이해가 안 가. 왜 그 먼 곳까지 가려고 한 거야? 넌 사업도 있는데... 어디서 요리하든 다 마찬가지일 텐데 굳이 몇천 리나 떨어진 곳까지 갈 필요가 있나? 거기 추울 텐데 너 괜찮겠어?]전창빈이 대답했다.[우리 추위를 못 타본 것도 아니고. 형도 할머니에 의해 눈이 수북이 쌓인 산으로 버려지지 않았어? 내 얘긴 그만하고... 형은 어때? 우리 미래의 형수님께 구애하기 시작했어?]‘난 벌써 움직이고 있는데 형이 아직도 움직이지 않는다면... 내가 나중에 민아 씨와 함께 할머니께 인사를 드리러 갈 때 형은 대체 어쩌려고?’전창빈은 속으로 생각했다.전씨 할머니의 지팡이가 전창빈의 등짝을 때리지 않는다면 해가 서쪽에 뜨는 거나 다름없을 것이다.[말도 마라. 정말 귀찮아. 큰형수님이 오늘 저녁에 우리한테 밥 사주셨어.]전창빈이 웃으며 회답했다.[하하! 괴로웠겠네.][내 말이. 할머니께서 나에게 정해주신 그 여자분이 큰형수님을 찾아가 하소연했더니 큰형수님이 우리 두 사람에게 밥을 사주신 거 있지.][형이 우리 형수님한테 무슨 짓이라도 했어?][아직 너의 형수님이 아니거든!]전이혁은 전창빈의 호칭을 정정했다. 그는 도아영과
“저는 앞으로 큰아가씨의 평가에 근거해서 요리 방법을 조정해 나갈 거예요. 그렇게 해야만 실력을 키울 수 있을 테니까요. 제가 만드는 모든 요리를 큰아가씨께서 만족해하시면 제가 여기에서 졸업할 수 있겠네요.”강진은 웃으며 대답했다.“그렇게 되면 큰아가씨께서 당신을 놓아주지 않을걸요.”‘평생 선우민아 씨를 위해 요리해 드리는 건 기쁜 일이지.'이 말을 입 밖으로 내뱉고 싶었지만 전창빈은 꾹 참았다. 이런 말은 입 밖에 내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내면 오해를 살 수 있으니까. 설령 전창빈이 선우민아에게 애정 공세를 하는 것이 두 번째 목표라고 해도 이런 생각을 드러내서는 절대로 안 된다.선우민아가 가업을 운영한다는 건 그녀가 매우 유능한 인물이라는 증거다. 이렇게 강한 강한 여성은 쉽게 넘볼 수 없는 상대이다.전호영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는 너무 힘들어서 하예정의 도움을 받은 끝에야 지름길을 택할 수 있었고 고현의 마음을 얻었다.강진은 그 말이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걸 깨닫고는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전창빈 씨, 오늘 오후 내내 바쁘셨는데 일찍 쉬세요. 내일 아침 큰아가씨를 위해 아침식사를 준비해야 합니다. 가장 일찍 아침을 드시는 분은 큰아가씨와 민기 도련님입니다. 민기 도련님은 학교에 가야 해서 일찍 식사하시고 큰아가씨는 매일 민기 도련님을 학교에 데려다주신 후 회사에 가시니까 두 분은 늘 함께 식사하시는 편이에요. 하여 아침 7시쯤이면 큰아가씨와 민기 도련님의 아침을 준비하시면 됩니다. 다른 분들의 아침은 9시 이후에 준비하시면 돼요.”전창빈이 말을 건넸다.“그 시간대면 아침과 점심을 함께 드시는 거네요.”“어르신과 사모님은 그렇죠. 점심 무렵에 일어나셨다가 식사 후에는 외출하셔서 저녁에야 돌아오세요. 때로는 안 오시기도 하는데, 그럴 땐 제가 미리 알려드릴게요. 안 오시는 날은 창빈 씨가 쉬는 거나 마찬가지죠. 그냥 자신의 배만 채우시면 돼요.”여기에서는 사실상 선우민아 자매만 아침을 먹는 셈이다.“큰아
동생 선우정아가 어이없어하는 모습을 보며 선우민아는 미소를 지었다.“알았어. 지금은 네가 전창빈 씨를 좋아하지 않는다 치더라도 앞으로 어떻게 될진 모르는 일이니까. 앞으로 매일 여기 와서 식사해. 전창빈 씨와 접촉할 기회도 많아져야 그에 대해 더 잘 알게 될 거 아니야. 만약 그가 정말 괜찮은 사람이라면 거리가 멀어도 너희 부모님께서도 어쩔 수 없이 동의하실 거야. 혹은 전창빈 씨에게 우리 지역에서 사업을 하게 하고 여기서 집을 사도록 하든가.”선우정아는 또 벙어리가 되어버렸다.선우민아가 이렇게 말하는 걸 보니 선우정아는 앞으로는 감히 그 집에 밥 먹으러 가기도 어려울 것 같다고 여겼다.선우민아가 자꾸 자신이 전창빈을 좋아한다고 오해하고 있지 않는가.전창빈은 미래의 아내는 지금 미래 처제가 자기를 좋아한다고 오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전이혁은 강진을 따라 숙소로 돌아갔다. 강진은 웃으며 축하의 말을 전했다.“전창빈 씨, 이제 우리는 동료가 되었군요. 오래 함께 일했으면 좋겠습니다.”선우씨 가문의 여러 집안이 같은 대저택 안에서 함께 살고 있었지만 집안마다 독립된 공간이 있었다.선우민아의 요리사는 자주 교체되는 편이었기에 강진 역시 1년 정도는 함께 일할 사람을 원했다.요리사와 친해지기도 전에 퇴직하는 경우가 너무 많았다.전창빈도 웃으며 말을 이었다.“저도 집사님과 오래 함께 일하고 싶습니다. 앞으로 제가 요리들을 더 연구해서 큰아가씨께서 제 요리만 먹고 싶어 하도록 해야겠네요.”“큰아가씨께서 창빈 씨 요리만 고집하게 만들면 정말 대단한 거예요. 요리 대회에 나가면 ‘요리의 신'이라는 칭호를 받을 수 있을 만큼요.”선우민아의 입맛을 사로잡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전창빈은 웃으며 말했다.“‘요리의 신' 같은 건 관심 없어요. 저는 단지 제 요리 실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서 손님들을 만족시키고 싶을 뿐이죠.”전창빈은 그가 고용한 요리사들에게는 항상 조언을 해주곤 한다. 본인이 잘 배워야 현재 이끌고 있는 요리사들도
선우민아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저런 사업을 가진 사람을 네가 정말 좋아한다면 작은아버지와 숙모도 반대하지 않으실 거야. 다만 전창빈 씨가 관성 사람이라 우리랑 거리가 너무 멀어. 작은아버지와 숙모는 네가 먼 곳으로 시집가는 걸 아쉬워할 수도 있을 거야.”선우정아는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언니! 제가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어요? 저는 정말 그런 마음 없단 말이에요. 오히려 저는 그분이 언니랑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우리 자매 일곱 명 중 언니가 맏이라 당연히 언니가 먼저 시집가야죠. 제가 언니를 앞지를 순 없잖아요.”착각인지 정말 본 건지, 선우정아는 전창빈이 선우민아를 바라보는 눈빛에서 특별한 시선이 느껴졌다.그리고 전창빈은 사실 정말로 선우민아를 위해 온 거였다.아니, 정확히는 선우민아의 까다로운 입맛을 만족시켜주기 위해 온 것이다. 그녀를 만족시킬 수 있다면 다른 손님들도 분명히 만족시킬 수 있을 테니까.선우정아는 생각했다. 선우민아처럼 입맛이 까다로운 사람은 많지 않을 거라고.선우민아는 손을 뻗어 동생의 볼을 살짝 꼬집으며 말했다.“우리 나이 차이도 얼마 안 나잖아. 게다가 사촌 자매이기도 하기 때문에 네가 나보다 먼저 시집간다고 해도 전혀 문제가 안 되거든. 나는 당분간 시집갈 생각 없어. 만약 고려한다 해도 이 지역의 사람일 거야. 생각해봐, 민기와 민수는 아직 몇 살밖에 안 됐는데 애들이 커서 사업을 이어받을 수 있을 때까지 적어도 20년은 더 기다려야 되잖아. 이 20년 동안 우리 자매는 계속 회사를 떠받쳐야 해. 만약 우리가 먼 곳으로 시집가면, 누가 회사를 이끌겠어? 셋째와 넷째에게 그런 능력이 있는지 지켜봐야 할 거야 아니야.”셋째 동생과 넷째 동생도 이제 성인이 되어 사업을 배우기 시작했지만 아직은 거대한 가업을 떠받칠 능력이 되지 못했다.하여 선우민아는 자연스레 먼 곳으로 시집갈 생각이 없었다. 시집을 간다 해도 A시의 남자에게 시집갈 것이다. 그래야 시집가서도 친정 회사를 계속 관리할 수 있으니까.앞으로 선우민기
전창빈이 말했다.“행동으로 보여드리죠.”선우정아는 눈썹을 치켜들며 웃었다.“전이혁 씨는 정말 자신만만하신가 봐요.”선우민아는 선우정아를 한 번 흘겨보더니 전창빈에게 물었다.“그럼 언제부터 출근 가능하세요?”“이 자리를 위해 온 만큼 언제든지 가능합니다.”선우민아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럼 내일부터 정식으로 출근하세요. 강 집사님께서 이미 숙소를 준비해 뒀을 테고 월급은 내일부터 계산됩니다. 한 달의 수습 기간이 있고 수습 기간 중 급여는 일당으로 지급됩니다. 공짜로 일을 시키진 않을 거예요.“누구든 마찬가지로 하루 일하면 하루 급여를 계산해 주었다.“집사님께서 어제 이미 숙소를 준비해 주셨습니다. 급여는 어떻게 계산되든 상관없습니다. 전 도전을 위해 온 거지 월급을 위해 온 게 아니니까요.”전이혁은 돈이 부족한 게 아니었다. 아내만 부족할 뿐...“좋아요. 지금은 숙소로 가서 쉬세요. 우리 집에서의 하루 세끼 준비 시간은 집사님께서 알려주실 거예요. 아침을 제외한 점심과 저녁 식사 준비 시간은 변함없어요.”선우씨 가문의 사람들 아침 식사는 각자 일어나는 시간이 다르기 때문에 딱히 정해진 시간이 없었다.전창빈이 대답했다.“알겠습니다. 집사님께 여쭤보겠습니다.”그는 다시 모두에게 고개를 끄덕인 뒤 자리를 떠났다.전창빈이 떠나자 선우민아도 일어서서 가족들에게 말했다.“저는 아직 처리할 일이 있어서 나가봐야 할 것 같아요. 민기한테는 주말에 데리고 나가주겠다고 전해주세요.”선우민기는 그녀보다 스무 살이나 어렸기 때문에 남동생을 아들처럼 키웠다.선우민기는 선우민아를 무서워하면서도 잘 따랐다.선우정아도 그녀의 언니를 따라 일어섰다.“저도 일 보러 갈게요.”한경주가 딸에게 당부했다.“접대할 때 술 너무 많이 마시지 마. 몸에 해로워.”“엄마,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5년 전의 제가 아닌걸요.”선우민아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회사를 막 이어받았을 때 그녀는 많은 사람에게 괴롭힘을 당했다. 그땐 위엄도, 경험도 없었고 회사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