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윤은 세 번 훑어본 후 묵묵히 자료를 원상 복귀해서 봉투에 넣고는 소지훈에게 건넸다. 그는 소지훈에게 감사의 뜻을 표했다.“서현주가 그 인간들에게 이용당할 줄은 몰랐어요.”전태윤이 차갑게 말했다.“나도 우리 누나가 이상하다고 말한 덕에 의심이 일었는데 정말 수상하더라고요. 서현주는 전에 주형인이 아이 보러 가는 것도 싫어했는데 이젠 선뜻 주형인과 함께 가고 우빈이를 달래기까지 하잖아요.”그들은 여태웅 부부가 한때 전태윤에게 저격당해서 그런 거로 의심할 뿐 서현주가 이용당할 줄은 아예 몰랐다.주씨 일가는 주우빈의 가족이니 아이한테 접근해도 굳이 의심을 사진 않는다.“상대의 타깃은 태윤 씨가 아니라 사모님이에요. 그런데 태윤 씨가 아내분께 경호원도 안배하고 또 태윤 씨 아내분이 주먹질을 하다 보니 태윤 씨 신분이 신분인지라 놈들이 대놓고 예정 씨를 저격하지 못한 것 같아요. 그래서 결국 조카를 이용하는 비겁한 수단을 썼죠. 우빈이는 예정 씨 손에 커서 이모 조카 사이가 남다를 거예요. 조카가 놈들 손에 잡히면 예정 씨는 단독으로 나오라고 해도 나갈 거예요.”소지훈은 일의 실마리가 풀리자 상대의 영악함에 다시 한번 놀랐다.“예정 씨 고향 식구들을 이용하면 되던 일도 망칠 것 같았나 보죠. 그래서 서현주를 이용한 거죠.”하예정의 고향 식구들은 인간쓰레기 인성이라 조금만 세력이 있는 사람을 봐도 쩔쩔맨다.가짜 하예정을 만들어 전씨 일가 사모님의 자리를 대체하려 했는데 허점투성이라 하예정에게 계획을 들키고 결국 전태윤이 망가뜨렸다.성형한 하소진은 큰 사촌 언니와 똑 닮아 형부가 잘못 알아보고 큰 소란이 일어났다. 두 자매는 원수처럼 등졌고 하소진은 마지못해 다시 성형했다.어찌 됐든 하씨네 사람들은 큰일을 못 한다.그런 인간들을 이용하는 건 일을 망치는 거나 다름없다.“이 사람들 자료는 내일 경찰 측에 제출할 겁니다. 나쁜 놈 잡는 건 경찰이 해야 할 일이죠. 다만 이 인간들이 워낙 교활해서 단번에 다 체포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태윤 씨,
“이참에 반년 쉬는 건 어때?”“반년 좋지. 그렇게 하는 거다.”소지훈이 웃으며 말했다.“차라리 출산휴가까지 쓰지 그래. 태윤 씨, 얘 그냥 결혼 휴가 두 달만 주면 돼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두 달이에요. 두 달 후에 회사 안 나오면 나한테 얘기해요. 내가 이놈 회사로 끌고 갈 테니.”“형, 대체 누가 형 동생인데.”“친동생도 인정사정없는 세월에 넌 심지어 사촌 동생이야.”“이젠 형도 날 안 도와주네.”물론 소정남도 농담일 뿐이다.결혼 휴가는 두 달로 충분하니까.심효진과 하예정이 동업한 창업 프로젝트도 한창 불티나게 진행 중이라 심효진의 머릿속엔 오직 투자에 성공하여 큰돈을 벌 생각이다.소지훈은 잔에 담긴 술을 다 마시고 전태윤에게 말했다.“태윤 씨, 시간이 늦었네요. 이만 돌아가서 쉬세요.”전태윤은 자리에서 일어나 재차 고마움을 표하고 소정남과 함께 집을 나섰다.몇 분 후 전태윤의 전용차가 소씨 일가 저택을 나섰다.밤이 점점 더 어두워진다.가장 어두운 이 순간을 거쳐 밝은 햇살이 곧 찾아올 것이다.해가 뜨고 새로운 하루가 시작됐다.하예정은 오늘 하루 휴식이라 아침 일찍 언니네 가게로 가서 일손을 거들었다.하루 토스트에 오니 조카가 걸상 두 개로 이어놓은 ‘미니 침대’에 누워 자고 있었다. 하예정은 안쓰러운 표정으로 언니에게 말했다.“언니 그냥 우빈이 데리고 우리 집으로 이사와. 그럼 아침 일찍 깨나도 우빈이가 더 잘 수 있잖아. 매일 아침 언니랑 함께 애가 너무 지쳐 보여. 한창 키 클 나이인데 잠이 부족하면 영향을 미친단 말이야.”하예진은 토스트 재료를 한창 정리하고 있었다. 아침에 가게로 와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종류대로 토스트 재료를 정리하는 일이다.“거기 가도 일찍 깨어나니 너희까지 방해돼. 우빈이랑 얘기해 볼게. 얘가 그리로 가겠다면 보내고 난 안 갈래.”그녀는 매일 아침 일찍 깨어나 아무리 조심해도 인기척 소리를 낼 수밖에 없다. 동생네 부부까지 방해하면 안 된다. 특히 제부 전태윤은 업무가 다망하여
“알았어.”동생이 먹고 싶다고 하니 하예진은 얼른 베이컨을 구웠다. 그녀도 베이컨을 싫어해 하예정의 토스트에만 베이컨을 듬뿍 놓았다.“다 됐어.”하예진은 동생에게 토스트를 가져가라고 했다.하예정은 하던 일을 멈추고 손을 깨끗이 씻고는 토스트를 가져왔다.두 자매는 나란히 식탁 앞에 앉았고 하예정이 습관대로 휴대폰을 꺼내 뉴스를 보며 토스트를 먹으려 했다.“음식 먹을 때 누가 휴대폰 보래? 얼른 집어넣어.”하예진은 그녀가 먹으면서 휴대폰을 만지는 걸 싫어했다.“뉴스 좀 보려던 것뿐이야.”하예정은 말은 이렇게 했지만 얌전히 휴대폰을 바지 주머니에 넣었다.“앞으론 밥 먹을 때 휴대폰 하지 마.”“알았어.”언니 앞에서 하예정은 꼼짝도 못 한다. 게다가 밥 먹을 때 휴대폰 보는 건 원래 좋은 습관이 아니다.“언니, 오늘 저녁에 정말 나랑 함께 연회 안 갈래?”“응, 안 가.”“언니, 나가서 바깥세상도 구경 좀 해.”하예진은 따끈따끈한 토스트를 먹으며 대답했다.“난 지금 세상 구경할 필요 없어. 아직 그런 단계에 오르지 못했어. 넌 달라. 넌 이젠 전씨 일가의 사모님이니 그런 모임에 적응해야 해.”하예정은 언니의 고집을 못 이겨 바로 포기했다.이모가 함께 가자고 해도 단호하게 거절하는 언니니까.“언니, 차 언제 온대?”어제 오후 하예진은 2천만 원 남짓의 차를 한 대 뽑았다. 성소현이 좀 더 비싼 거로 골라보라고 했지만 단호하게 거절하며 국산 차로 선택했다.“며칠 더 걸릴 거야.”“그렇구나.”두 자매가 얘기를 나누며 아침 먹을 때 노동명이 가게로 들어왔다.그는 이젠 가게의 두 점원보다 더 빨리 온다. 그가 도착한 후에야 점원들도 들어섰다.“대표님, 빨리 오셨네요.”하예진은 토스트를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나 노동명을 맞이했다.“오늘 쉬는 날 아니에요? 뭐 드실래요?”노동명은 먼저 하예정에게 인사하더니 하예진이 다 못 먹은 토스트를 보며 자상하게 말했다.“일단 토스트 마저 먹어. 맞아, 나 오늘 쉬는 날이야. 늘 먹던 대로
노동명과 하예정은 딱히 할 말이 없다.그녀가 있으니 노동명은 하예진과도 얘기 나누기 불편했다.노동명의 아침 메뉴까지 다 만든 후 손님들이 속속들이 들어왔고 다행히 다들 토스트를 주문하여 점원들이 알아서 서빙했다. 사장 하예진이 직접 나설 필요는 없었다.그녀는 자리에 앉아 다시 토스트를 먹기 시작했다.“동명 오빠.”앙칼진 목소리에 노동명의 식욕이 다 떨어졌다.하예진 자매는 유리창 너머로 아름다운 여인이 들어오는 걸 발견했다. 하예정은 손은경을 모르지만, 하예진은 사진으로 본 적이 있다. 사진보다 실물이 훨씬 더 예뻤고 노동명과 너무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었다.“은경 씨, 아침 드시려고요?”하예진이 토스트를 내려놓고 또 한 번 손님을 맞이했다.손은경은 노동명한테서 시선을 거두고 하예진을 넌지시 바라봤는데 몰래 숨어서 지켜볼 때보다 이렇게 마주 보니 훨씬 더 예뻤다.“여기 토스트가 맛있다고 소문났잖아요. 나도 오빠랑 같은 거로 주세요. 고마워요.”손은경은 노동명 앞으로 다가오더니 한정판 가방을 옆에 내려놓고 티슈 몇 장 뽑아서 의자를 깨끗이 닦은 후에야 자리에 앉았다.하예정이 빤히 쳐다보자 그녀는 활짝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안녕하세요, 예정 씨.”“네, 안녕하세요.”하예정은 상대가 누군지 모르지만 그녀가 선뜻 이름까지 부르니 인사할 수밖에 없었다.‘언니가 방금 이 미인분을 ‘은경 씨’라고 부르던데 대체 언제 알고 지낸 거지?’이경혜와 함께 많은 연회에 참석하며 부잣집 사모님과 따님들을 수없이 봐왔고 사람 보는 안목도 키웠지만 손은경을 본 순간 그녀야말로 진정한 재벌가 따님이란 걸 느꼈다. 제스처 하나하나에 아우라를 내뿜었으니까.“손은경이에요.”그녀가 먼저 자기소개를 했다.“안녕하세요, 은경 씨.”손은경은 가볍게 웃을 뿐 더는 하예정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줄곧 하예정과 친해지고 싶었지만 아직 어색한 사이이고 이런 장소에서는 가볍게 자기소개만 하여 상대에게 이름 석 자만 알리면 된다.나중에 만날 기회가 더 많을 테니까.노동명이
손은경도 화내진 않았다.두 사람은 일찌감치 알고 지냈지만 왕래가 드물어 그다지 친하지 않으니까.노동명이 그녀의 과거를 모르는 건 지극히 정상적인 일이다.“은경 씨, 토스트 다 됐어요.”하예진이 토스트를 들고 오더니 그녀 앞에 내려놓으며 미소 지었다.“천천히 드세요.”손은경도 웃음으로 받아쳤다.하예진은 제자리로 돌아와 앉았다.“언니, 언제 알게 된 분이야?”하예정이 나지막이 물었다.“노 사모님이 그날 지나가다가 가게로 와서 얘기 좀 나눴는데 나보고 은경 씨랑 동명 씨 이어주라고 하셨어. 사진도 보여줘서 은경 씨 바로 알아봤지.”하예진도 소리를 낮추고 조용히 대답했다.“두 사람 잘 어울리지? 은경 씨는 참 편한 느낌이 들어 재벌가 따님 같은 거만함이 없어.”하예정은 짙은 눈길로 언니를 쳐다보곤 계속 토스트를 먹었다.“어울리긴 해.”이모는 노씨 일가 사모님이 호락호락한 분이 아니라고 말씀하셨다.태윤 씨도 똑같은 말을 했었다.그런 윤미라가 며느릿감을 물색하고 두 사람을 부추기니 하예정도 다행이었다. 예진 언니가 괜히 말려들어 갈 일은 없으니까.“엄마.”우빈이가 깨어나 자리에 앉아서 습관처럼 엄마를 찾았다.하예정은 마침 토스트를 다 먹고 언니에게 말했다.“우빈의 아침은 내가 차릴게. 언니는 얼른 아침 먹고 가게 일 봐.”그녀는 조카를 번쩍 안았다.“이모.”금방 깬 아이는 비몽사몽이어서 하예정의 목을 끌어안고 그녀 어깨에 머리까지 파묻었다.“우빈이 쉬 마려워요.”하예정은 아이를 데리고 화장실로 들어갔다.나올 땐 우빈이 스스로 걸어 나왔다.노동명을 보더니 예의 바르게 인사했고 손은경은 처음 보는 얼굴이라 검은 눈동자를 반짝이며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결국 깍듯이 인사했다.“누나, 안녕하세요.”손은경은 웃으며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네가 우빈이구나. 너무 귀엽네. 누나는 손은경이야. 너희 동명 삼촌 친구야.”“안녕하세요, 은경 누나.”우빈이가 또다시 그녀에게 인사했다.아이는 쑥스러운지 하예진에게 쪼르르 달려갔다.
가게에서 분주한 시간을 보낼 때 전태윤은 푹 자고 일어나 눈도 못 뜬 채 몸을 기울이고 팔을 뻗어 아내를 끌어안으려 했는데 옆자리가 텅 비었다.그제야 눈 떠보니 아내가 집에 없었다.해가 중천이고 휴대폰을 들여다보니 벌써 아홉 시였다.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앉았다.아무리 주말이라 해도 이렇게까지 오래 자본 적은 없다.어젯밤에 너무 늦게 돌아와서 그런 걸까?전태윤은 부랴부랴 세수하고 옷을 갈아입었는데 일부러 하예정이 사준 옷으로 입었다.방문을 열자 숙희 아주머니가 고양이와 함께 나란히 소파에 앉아 TV를 보고 계셨다. 문 여는 소리에 아주머니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미소 지었다.“깨셨어요 도련님. 아침 준비해 드릴까요?”“벌써 아홉 시네요.”전태윤은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밖으로 나왔다.“그래도 아침은 드셔야죠. 사모님께서 신신당부하셨어요. 도련님 깨시면 무조건 아침 차려드리라고요.”“예정이는요? 언제 깨난 거죠? 언제 나갔대요?”전태윤은 기분이 살짝 언짢았다.주말에 집에서 휴식하는데 아내가 아침 일찍 가버렸으니. 그가 깨어날 때까지 기다려서 함께 아침 먹는 게 정상 아닌가?왠지 아내에게 버림받은 기분이 들었다.숙희 아주머니가 대답하기 전에 문이 벌컥 열리고 하예정이 돌아왔다.“깼어요 태윤 씨?”그녀는 안으로 들어오며 남편과 인사했는데 의외로 전태윤이 시큰둥한 얼굴로 몸을 홱 돌리고는 방에 돌아갔다.아침 댓바람부터 남편을 내팽개치고 나가더니 돌아와서 문 열자마자 또 이름을 부르다니, 남편이라고 해야지!아내에게 버림받아 기분이 썩 내키지 않았는데 인제 더 불쾌해져서 방에 돌아갔다.전태윤이 삐졌다.하예정은 이렇게까지 깊게 생각하진 못하고 어리둥절해서 아주머니께 물었다.“아주머니, 저이 왜 저런대요? 누가 잘못 건드렸어요?”숙희 아주머니는 전태윤이 문을 쾅 닫고 들어가는 걸 보더니 실소를 터트리며 대답했다.“사모님 때문에 삐지신 것 같네요.”“네?”하예정은 이해가 안 갔다.“난 아침 일찍 나가서 태윤 씨 심기를 건드릴 새도
하예정은 허리 숙여 고양이를 안아 올렸다.“사모님, 일단 도련님부터 달래보세요. 이제 막 깨어나 아침도 안 드셨어요.”숙희 아주머니도 도련님이 갑자기 삐질 땐 어쩔 바를 모른다.이리로 오지 않았다면 도련님이 이토록 속 좁은 모습도 전혀 모를 것이다.하예정은 고양이를 쓰다듬으며 아주머니께 물었다.“뭣 때문에 화났는지는 알아야 달래죠. 나 진짜 아무것도 안 했다고요.”아주머니가 나지막이 말했다.“아침 일찍 나가신 것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주말에 도련님이 집에서 쉬시니 사모님이 옆에 함께 있어 주길 바라셨나 봅니다.”“난 언니 가게 돌봐주러 간 건데. 오늘 주말이긴 해도 공장은 휴일이 없어요. 잔업 하러 나오는 사람들이 많아서 가게가 여전히 분주해요. 아침 일찍 나갔다가 지금도 일찍 돌아온 셈인데, 10시도 채 안 돼서 돌아왔잖아요.”전태윤이 이렇게 사소한 일로 삐질 줄이야, 하예정도 숙희 아주머니도 어이가 없었다.“일단 한번 들어가 볼게요.”제 남편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아는 하예정이기에 마지못해 고양이를 안고 문 앞으로 걸어갔다.문을 열고 방에 들어가고 나서야 아주머니는 고양이를 안고 들어가면 안 된다는 게 생각났다. 하지만 이미 늦어버렸다.‘도련님이 더 화내시겠네.’하예정은 고양이를 안고 안에 들어갔다. 전태윤은 문을 등지고 창가 쪽에 서 있었다.인기척을 들었지만 몸을 돌리지 않았고 하예정이 가까이 다가와서 나란히 창밖을 바라보며 물었다.“뭐 봐요?”전태윤은 고개를 갸웃거리고 그녀를 쳐다봤는데 옆에 고양이가 안겨있자 미간을 확 찌푸리고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여보.”하예정이 뒤따라갔다.“나 깨났을 때 당신 자고 있었어요. 평소에 일하느라 바쁜데 주말엔 늦잠 자게 놔두려고 안 깨운 거예요. 내가 뭐 이상한 데라도 갔나요. 언니 가게 가서 거들어준 것뿐인데. 당신 깬 줄 알고 얼른 돌아왔어요. 언니 가게는 여전히 바쁜데 당신이 깨나서 나 없다고 뭐라 할까 봐 부랴부랴 달려왔다고요.”하예정이 따라오며 해명했다.전태윤은 걸음을
“할머니께서 언제 돌아오실까요? 갑자기 생각나네요.”하예정은 할머니와 함께 생활했던 날들을 매우 그리워한다.“제가 알려드리기도 전에 사모님께서는 이미 문을 열고 들어가셨어요.”숙희 아주머니의 말에 그녀는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전 가서 손 좀 씻고 올게요.”그녀는 손을 두 번 씻은 후 다시 예전 그녀의 방으로 들어가 옷장에서 깨끗한 옷을 한 벌 꺼내 갈아입고 나서야 다시 안방으로 돌아왔다.“여보, 손도 두 번 씻고 옷도 갈아입었어요. 이제는 고양이 털이 아무 데도 없을 거예요.”그녀는 남편의 뒤로 다가가 손을 뻗어 그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여보, 미안해요, 방금 고양이를 안고 있다는 걸 깜빡했지 뭐예요. 난 얘네들이 정말 귀여워요, 특히 당신이 나한테 선물한 거잖아요. 당신이 선물한 거라면 난 다 좋아요. 당신도 내가 선물한 거라면 다 소중히 간직하잖아요, 나도 마찬가지예요.”전태윤은 여전히 머리를 돌리고 아내를 쳐다볼 생각이 없었다.“잠에서 깼는데 당신이 보이지 않아서 숙희 아주머니에게 물었더니 일찍 나갔다는 거야. 그때 버림받은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어. 그리고 금방 돌아왔을 때도, 여보가 아닌 내 이름을 불렀잖아.”“여보, 여보, 자기야. 이제 됐죠? 화내지 마요.”그녀는 그를 향해 몇 번이나 여보라고 불렀다.“그리고 당신도 몇 번이나 한밤중에 나갔잖아요. 난 당신이 나가서 무엇을 하는지도 모른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나는 당신한테 몇 번이나 버림받았는지 모르는 셈이네요. 하지만 나는 한 번도 당신한테 화를 내지 않았고, 나에 대한 사랑을 의심한 적도 없었어요.”“내가 괜히 화낸다는 거야?”그녀는 그의 허리에서 손을 떼더니 그의 앞으로 다가가 얼굴을 어루만지며 미소를 띠고 말했다.“아닌걸요?! 하지만 당신은 항상 자기 생각만 고려하고 있죠. 같은 일을 하면서도 내 생각은 고려 안 하네요. 내가 언제 당신이랑 정말로 따진 적이 있나요? 매번 갈등이 생긴 게 다 당신의 성격 때문이 아니었는지 잘 생각해 봐요.”“한밤중에 나간
한편 호텔에서 도아영을 돌보던 전이혁은 전창빈의 메시지를 확인하더니 단독으로 그에게 음성 메시지로 물었다.[너 그 먼 곳까지 가서 가정 요리사를 하려고?]전창빈은 소파에 앉아 답장을 보냈다.[안 될 건 없지? 선우씨 가문의 가정 요리사 자리는 도전적이잖아. 내가 합격할 수 있을지 시험해 보고 싶었어. 다행히도 형 동생이 모든 경쟁자를 물리쳤지 뭐야. 난관을 하나둘씩 돌파했어.]전이혁이 회답했다.[요리사 하나 뽑는 걸 대통령 선거처럼 하는구먼. 얼마나 있을 계획이야? 설날도 얼마 안 남았는데 명절에는 안 오려고?]전창빈이 답장했다.[설날에는 아마 못 갈 것 같아. 여기 주인이 날 해고하면 그때나 갈 수는 있겠는지.]전이혁이 피식 웃었다.[네 실력으로는 해고당할 리가 없잖아. 네가 주인을 해고하는 게 더 말이 되겠다. 이해가 안 가. 왜 그 먼 곳까지 가려고 한 거야? 넌 사업도 있는데... 어디서 요리하든 다 마찬가지일 텐데 굳이 몇천 리나 떨어진 곳까지 갈 필요가 있나? 거기 추울 텐데 너 괜찮겠어?]전창빈이 대답했다.[우리 추위를 못 타본 것도 아니고. 형도 할머니에 의해 눈이 수북이 쌓인 산으로 버려지지 않았어? 내 얘긴 그만하고... 형은 어때? 우리 미래의 형수님께 구애하기 시작했어?]‘난 벌써 움직이고 있는데 형이 아직도 움직이지 않는다면... 내가 나중에 민아 씨와 함께 할머니께 인사를 드리러 갈 때 형은 대체 어쩌려고?’전창빈은 속으로 생각했다.전씨 할머니의 지팡이가 전창빈의 등짝을 때리지 않는다면 해가 서쪽에 뜨는 거나 다름없을 것이다.[말도 마라. 정말 귀찮아. 큰형수님이 오늘 저녁에 우리한테 밥 사주셨어.]전창빈이 웃으며 회답했다.[하하! 괴로웠겠네.][내 말이. 할머니께서 나에게 정해주신 그 여자분이 큰형수님을 찾아가 하소연했더니 큰형수님이 우리 두 사람에게 밥을 사주신 거 있지.][형이 우리 형수님한테 무슨 짓이라도 했어?][아직 너의 형수님이 아니거든!]전이혁은 전창빈의 호칭을 정정했다. 그는 도아영과
“저는 앞으로 큰아가씨의 평가에 근거해서 요리 방법을 조정해 나갈 거예요. 그렇게 해야만 실력을 키울 수 있을 테니까요. 제가 만드는 모든 요리를 큰아가씨께서 만족해하시면 제가 여기에서 졸업할 수 있겠네요.”강진은 웃으며 대답했다.“그렇게 되면 큰아가씨께서 당신을 놓아주지 않을걸요.”‘평생 선우민아 씨를 위해 요리해 드리는 건 기쁜 일이지.'이 말을 입 밖으로 내뱉고 싶었지만 전창빈은 꾹 참았다. 이런 말은 입 밖에 내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내면 오해를 살 수 있으니까. 설령 전창빈이 선우민아에게 애정 공세를 하는 것이 두 번째 목표라고 해도 이런 생각을 드러내서는 절대로 안 된다.선우민아가 가업을 운영한다는 건 그녀가 매우 유능한 인물이라는 증거다. 이렇게 강한 강한 여성은 쉽게 넘볼 수 없는 상대이다.전호영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는 너무 힘들어서 하예정의 도움을 받은 끝에야 지름길을 택할 수 있었고 고현의 마음을 얻었다.강진은 그 말이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걸 깨닫고는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전창빈 씨, 오늘 오후 내내 바쁘셨는데 일찍 쉬세요. 내일 아침 큰아가씨를 위해 아침식사를 준비해야 합니다. 가장 일찍 아침을 드시는 분은 큰아가씨와 민기 도련님입니다. 민기 도련님은 학교에 가야 해서 일찍 식사하시고 큰아가씨는 매일 민기 도련님을 학교에 데려다주신 후 회사에 가시니까 두 분은 늘 함께 식사하시는 편이에요. 하여 아침 7시쯤이면 큰아가씨와 민기 도련님의 아침을 준비하시면 됩니다. 다른 분들의 아침은 9시 이후에 준비하시면 돼요.”전창빈이 말을 건넸다.“그 시간대면 아침과 점심을 함께 드시는 거네요.”“어르신과 사모님은 그렇죠. 점심 무렵에 일어나셨다가 식사 후에는 외출하셔서 저녁에야 돌아오세요. 때로는 안 오시기도 하는데, 그럴 땐 제가 미리 알려드릴게요. 안 오시는 날은 창빈 씨가 쉬는 거나 마찬가지죠. 그냥 자신의 배만 채우시면 돼요.”여기에서는 사실상 선우민아 자매만 아침을 먹는 셈이다.“큰아
동생 선우정아가 어이없어하는 모습을 보며 선우민아는 미소를 지었다.“알았어. 지금은 네가 전창빈 씨를 좋아하지 않는다 치더라도 앞으로 어떻게 될진 모르는 일이니까. 앞으로 매일 여기 와서 식사해. 전창빈 씨와 접촉할 기회도 많아져야 그에 대해 더 잘 알게 될 거 아니야. 만약 그가 정말 괜찮은 사람이라면 거리가 멀어도 너희 부모님께서도 어쩔 수 없이 동의하실 거야. 혹은 전창빈 씨에게 우리 지역에서 사업을 하게 하고 여기서 집을 사도록 하든가.”선우정아는 또 벙어리가 되어버렸다.선우민아가 이렇게 말하는 걸 보니 선우정아는 앞으로는 감히 그 집에 밥 먹으러 가기도 어려울 것 같다고 여겼다.선우민아가 자꾸 자신이 전창빈을 좋아한다고 오해하고 있지 않는가.전창빈은 미래의 아내는 지금 미래 처제가 자기를 좋아한다고 오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전이혁은 강진을 따라 숙소로 돌아갔다. 강진은 웃으며 축하의 말을 전했다.“전창빈 씨, 이제 우리는 동료가 되었군요. 오래 함께 일했으면 좋겠습니다.”선우씨 가문의 여러 집안이 같은 대저택 안에서 함께 살고 있었지만 집안마다 독립된 공간이 있었다.선우민아의 요리사는 자주 교체되는 편이었기에 강진 역시 1년 정도는 함께 일할 사람을 원했다.요리사와 친해지기도 전에 퇴직하는 경우가 너무 많았다.전창빈도 웃으며 말을 이었다.“저도 집사님과 오래 함께 일하고 싶습니다. 앞으로 제가 요리들을 더 연구해서 큰아가씨께서 제 요리만 먹고 싶어 하도록 해야겠네요.”“큰아가씨께서 창빈 씨 요리만 고집하게 만들면 정말 대단한 거예요. 요리 대회에 나가면 ‘요리의 신'이라는 칭호를 받을 수 있을 만큼요.”선우민아의 입맛을 사로잡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전창빈은 웃으며 말했다.“‘요리의 신' 같은 건 관심 없어요. 저는 단지 제 요리 실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서 손님들을 만족시키고 싶을 뿐이죠.”전창빈은 그가 고용한 요리사들에게는 항상 조언을 해주곤 한다. 본인이 잘 배워야 현재 이끌고 있는 요리사들도
선우민아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저런 사업을 가진 사람을 네가 정말 좋아한다면 작은아버지와 숙모도 반대하지 않으실 거야. 다만 전창빈 씨가 관성 사람이라 우리랑 거리가 너무 멀어. 작은아버지와 숙모는 네가 먼 곳으로 시집가는 걸 아쉬워할 수도 있을 거야.”선우정아는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언니! 제가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어요? 저는 정말 그런 마음 없단 말이에요. 오히려 저는 그분이 언니랑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우리 자매 일곱 명 중 언니가 맏이라 당연히 언니가 먼저 시집가야죠. 제가 언니를 앞지를 순 없잖아요.”착각인지 정말 본 건지, 선우정아는 전창빈이 선우민아를 바라보는 눈빛에서 특별한 시선이 느껴졌다.그리고 전창빈은 사실 정말로 선우민아를 위해 온 거였다.아니, 정확히는 선우민아의 까다로운 입맛을 만족시켜주기 위해 온 것이다. 그녀를 만족시킬 수 있다면 다른 손님들도 분명히 만족시킬 수 있을 테니까.선우정아는 생각했다. 선우민아처럼 입맛이 까다로운 사람은 많지 않을 거라고.선우민아는 손을 뻗어 동생의 볼을 살짝 꼬집으며 말했다.“우리 나이 차이도 얼마 안 나잖아. 게다가 사촌 자매이기도 하기 때문에 네가 나보다 먼저 시집간다고 해도 전혀 문제가 안 되거든. 나는 당분간 시집갈 생각 없어. 만약 고려한다 해도 이 지역의 사람일 거야. 생각해봐, 민기와 민수는 아직 몇 살밖에 안 됐는데 애들이 커서 사업을 이어받을 수 있을 때까지 적어도 20년은 더 기다려야 되잖아. 이 20년 동안 우리 자매는 계속 회사를 떠받쳐야 해. 만약 우리가 먼 곳으로 시집가면, 누가 회사를 이끌겠어? 셋째와 넷째에게 그런 능력이 있는지 지켜봐야 할 거야 아니야.”셋째 동생과 넷째 동생도 이제 성인이 되어 사업을 배우기 시작했지만 아직은 거대한 가업을 떠받칠 능력이 되지 못했다.하여 선우민아는 자연스레 먼 곳으로 시집갈 생각이 없었다. 시집을 간다 해도 A시의 남자에게 시집갈 것이다. 그래야 시집가서도 친정 회사를 계속 관리할 수 있으니까.앞으로 선우민기
전창빈이 말했다.“행동으로 보여드리죠.”선우정아는 눈썹을 치켜들며 웃었다.“전이혁 씨는 정말 자신만만하신가 봐요.”선우민아는 선우정아를 한 번 흘겨보더니 전창빈에게 물었다.“그럼 언제부터 출근 가능하세요?”“이 자리를 위해 온 만큼 언제든지 가능합니다.”선우민아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럼 내일부터 정식으로 출근하세요. 강 집사님께서 이미 숙소를 준비해 뒀을 테고 월급은 내일부터 계산됩니다. 한 달의 수습 기간이 있고 수습 기간 중 급여는 일당으로 지급됩니다. 공짜로 일을 시키진 않을 거예요.“누구든 마찬가지로 하루 일하면 하루 급여를 계산해 주었다.“집사님께서 어제 이미 숙소를 준비해 주셨습니다. 급여는 어떻게 계산되든 상관없습니다. 전 도전을 위해 온 거지 월급을 위해 온 게 아니니까요.”전이혁은 돈이 부족한 게 아니었다. 아내만 부족할 뿐...“좋아요. 지금은 숙소로 가서 쉬세요. 우리 집에서의 하루 세끼 준비 시간은 집사님께서 알려주실 거예요. 아침을 제외한 점심과 저녁 식사 준비 시간은 변함없어요.”선우씨 가문의 사람들 아침 식사는 각자 일어나는 시간이 다르기 때문에 딱히 정해진 시간이 없었다.전창빈이 대답했다.“알겠습니다. 집사님께 여쭤보겠습니다.”그는 다시 모두에게 고개를 끄덕인 뒤 자리를 떠났다.전창빈이 떠나자 선우민아도 일어서서 가족들에게 말했다.“저는 아직 처리할 일이 있어서 나가봐야 할 것 같아요. 민기한테는 주말에 데리고 나가주겠다고 전해주세요.”선우민기는 그녀보다 스무 살이나 어렸기 때문에 남동생을 아들처럼 키웠다.선우민기는 선우민아를 무서워하면서도 잘 따랐다.선우정아도 그녀의 언니를 따라 일어섰다.“저도 일 보러 갈게요.”한경주가 딸에게 당부했다.“접대할 때 술 너무 많이 마시지 마. 몸에 해로워.”“엄마,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5년 전의 제가 아닌걸요.”선우민아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회사를 막 이어받았을 때 그녀는 많은 사람에게 괴롭힘을 당했다. 그땐 위엄도, 경험도 없었고 회사에
그러나 전창빈은 사업을 확장하거나 삶을 즐길 생각은 하지 않고 먼 길을 떠나 여기까지 와서 선우씨 가문의 가정 요리사로 지원했다.선우민아는 그 이유를 알고 싶었다.전창빈은 솔직하게 대답했다.“도전하려고 왔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요리를 좋아했고 스승을 모셔 요리 실력을 키우기도 했습니다. 저는 우리나라 여러 구역의 다양한 요리를 연구하며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었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창업으로 작은 성공을 거두었지만 산 밖에 산이 있고 사람 위에 사람이 있는 법이라고 여기기에 계속 발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손님들의 입맛이 바로 저를 발전하게 하는 원동력이니까요.”전창빈은 자신의 요리가 손님들이 맛있다고 생각해야만 요리 실력이 검증된 것으로 생각했다.손님들이 그 요리에 대해 조언을 해주면 그것을 개선해 더 높은 수준의 요리 실력을 갖출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선우민아처럼 까다로운 손님을 만났을 때 그녀의 평가는 전창빈을 더욱 발전하게 할 것이다.선우민아는 그가 선우씨 가문의 요리사 자리에 도전하고 싶어서 온 것임을 직감하고는 잠시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자신이 갑이 되는 것과 남의 밑에서 일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에요. 전이혁 씨는 제대로 고려해보셨나요? 만약 우리 가문에서 요리사로 일한다면 우리 가문만의 가정 요리사가 되어 전국의 다양한 손님을 상대할 기회가 없어요. 아마 전이혁 씨에게 큰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죠.”전창빈은 빙그레 웃으며 선우정아와 시선을 마주치며 대답했다.“아마 큰아가씨님처럼 입맛이 까다로운 사람은 몇 명 없을 겁니다. 제가 여기서 일하면 전국의 손님을 상대할 수는 없겠지만 큰아가씨께서 싫증 내지 않을 정도로 1년 정도 일할 수 있다면 제 요리 실력도 크게 향상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실력을 키워 앞으로 관성으로 돌아가면 제가 운영하는 레스토랑에도 손님이 떼구름처럼 몰려들겠죠.”전창빈은 자신의 요리사들을 이끌어 더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전국의 손님들이 고향의 전통 요리와 관성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을 즐길 수 있도록 노
강진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제 경험상으로 보면 전창빈 씨는 합격일 겁니다. 어서 큰아가씨를 뵈러 가세요. 긴장할 필요 없어요. 큰아가씨는 표정이 좀 진지하지만 사실은 매우 좋은 분이십니다.”“감사합니다. 지금 바로 가보겠습니다.”전창빈은 엄격한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선우민아가 아무리 엄격해도 그의 큰형 전태윤보다는 못할 것이다.엄격한 전태윤의 얼굴에 익숙해진 전이혁은 이미 엄격한 사람들에게 면역력이 생겼다.전창빈은 강진을 따라 주방을 나섰다.강진은 전창빈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주방을 나선 후에도 전창빈은 여기저기 둘러보지 않았고 또 선우씨 가문 저택의 호화로움에 놀라지도 않았다.다른 지원자들은 늘 선우씨 저택의 사치스러움에 압도되어 주변을 둘러보지 않을 수 없었던 모양과는 달랐다.강진은 전창빈이 분명 세상 물정을 다 겪어본 사람이거나 굉장한 침착성을 가진 사람일 거로 생각했다.어쨌든 강진은 눈앞의 이 젊은 요리사에게 좋은 인상을 받았다. 아마 내일이면 동료가 될 것 같았다.강진은 전창빈을 데리고 선우민아가 앉은 자리에서 몇 미터 떨어진 곳에 멈추어 섰다. 그는 전창빈에게 잠시 기다리라는 신호를 보낸 후 먼저 나아가 공손히 말했다.“큰아가씨, 전창빈 씨께서 오셨습니다.”선우씨 가족 중 전창빈을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오직 선우정아뿐이었다.다른 사람들은 그때 집에 없어 전창빈을 직접 보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 다들 그를 보더니 모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한경주가 남편 선우진혁에게 소곤거렸다.“정말 젊어 보이네요. 우리 민아랑 비슷한 나이 같아요.”선우진혁도 고개를 끄덕였다.“젊네. 보아하니 매우 침착해 보이고. 조금도 긴장하거나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구먼.”“이 요리사분이 매우 잘생겼다는 생각 안 들어요?”선우씨 가문의 둘째 부인, 즉 선우정아의 어머니가 작은 목소리로 시누이에게 말했다.한경주가 웃으며 대답했다.“정말 잘생겼네요.”선우정아도 말을 이었다.“제 말 이제 믿으시죠? 제가 오늘의 최종 면접자가 매우 젊고 잘
선우민기는 입을 삐죽 내밀며 불만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민기야, 오늘 저녁 요리 맛있었어?”선우민아가 동생에게 물었다.“맛있어요. 엄청 맛있었어요.”사촌 동생도 따라 말했다.“정말 정말 맛있었어요. 누나, 저 앞으로 매일 누나 집에 와서 밥 먹어도 돼요?”선우민아가 웃으며 대답했다.“오고 싶으면 오렴. 하지만 너랑 민기는 밥 잘 먹어야 해. 놀기만 하면 안 된다?”두 꼬마가 함께 모이면 말 그대로 손오공이 천궁을 뒤집어 놓는 수준이었다.가문의 후손에 남자아이가 둘뿐이라 모두가 그들을 귀여워했다. 선우씨 가문의 누나들이 집에 없을 때면 두 꼬마는 진짜로 지붕조차 뒤집을 기세였다.어르신들이 말릴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만약 두 꼬마가 지붕을 뜯으려 하면 오히려 사다리를 대줄 정도니까.“알았어요. 저희 꼭 말을 잘 들을게요.”“그래, 너희 둘 밖에 나갈 땐 외투 꼭 입고 나가야 해. 밖이 너무 추워.”두 꼬마는 기쁜 마음으로 손을 잡고 집에서 뛰쳐나갔다.동생들이 모두 놀러 나가자 선우민아가 집사에게 지시했다.“아저씨, 전창빈 씨를 만나게 해줘요.”강진이 공손하게 대답했다.“네. 바로 전창빈 씨를 불러오겠습니다.”선우민아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고 자리를 떠났다. 그녀가 이동하자 가족들도 모두 따라 일어나 거실 소파에 앉았다.선우민아가 오늘의 최종 면접자를 만나고 싶다고 하자 선우씨 가족들은 바로 그 지원자가 채용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직감했다.확실히 오늘의 저녁 식사는 온 가족을 만족시켰다.선우민아의 입맛이 까다로워 선우씨 가문의 요리사는 자주 교체되는 편이다. 그들은 선우민아 덕분에 항상 최고의 요리사가 준비한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비록 그녀만큼 입맛이 까다롭지는 않았지만 요리의 품질을 가리는 안목은 그래도 꽤 좋은 편이다.강진이 미소를 머금으며 주방으로 들어갔고 전창빈이 의자에 앉아 휴대전화를 보고 있는 모습을 보자 그쪽으로 다가갔다.발소리를 들은 전창빈은 휴대전화에서 시선을 떼었고 고개를 들어
원림성 A시.전창빈은 모든 요리를 다 하고는 주방 한구석에 자리를 잡고 휴대전화를 꺼내 뉴스를 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그는 결과를 기다려야 했다. 온종일을 바쁘게 보냈다.정확히 말하면 오늘 아침 일찍 일어나서 지금까지 준비한 모든 것이 전부 오늘 저녁 식사를 마련하기 위함이었다.그리고 저녁이 되어서야 주인공이 돌아왔다.잠시 기다린 후, 전이진이 오후 내내 준비한 요리들이 하나둘씩 하인들에 의해 운반되어 나갔다. 물론 그는 나갈 필요가 없었다.선우민아가 그의 요리를 맛본 후 만족스럽다면 전창빈을 불러낼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통보도 없이 주방에 머물다가 선우씨 가족들이 모두 식사를 마치고 떠나면 집으로 돌아야 한다.비록 전창빈은 자신의 요리 실력에 대한 확신이 있지만 밖이 완전히 어두워졌는데도 선우민아의 면담 요청이 없었다. 그는 겉으로는 여전히 뉴스를 보며 담담해 보였으나 속으로는 조금 긴장감을 느끼고 있었다.그는 송일우처럼 세 번이나 도전하는 상황은 원치 않았다. 송일우는 몇 년이나 도전했지만 여전히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지 못했다. 그리고 이번에 실패한 뒤로는 다시 오지 않겠다고 말했다. 자신감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나이도 점점 들어가고 있었던 모양이다.한편 선우씨 가족들이 이미 식사를 마치고 있었다.선우민아도 냅킨으로 입가를 닦고 있었다. 그리고 옆에 앉아 있던 선우민아의 어머니 한경주가 관심 있게 물었다.“민아야, 이번 지원자가 만든 음식은 어때?”선우민아가 대답하기도 전에 한경주는 계속해서 말했다.“엄마 생각엔 괜찮은 것 같은데 그냥 채용하는 게 어때?”선우민아의 남동생 선우민기는 의자에 털썩 앉아 배를 만지며 말했다.“누나, 나 너무 많이 먹은 것 같아. 이번 요리는 정말 맛있었어. 오랜만에 이렇게 배불리 먹었어.”선우민아는 손을 뻗어 선우민기의 배를 가볍게 톡 치며 눈가에 미소를 띠면서 말했다.“너는 굶은 적도 없으면서 왜 이렇게까지 많이 먹었어? 이번만 먹고 다음 끼니는 못 먹을 거로 생각한 건 아니지? 좀 앉아 이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