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사를 한 후 어르신은 이경혜와 잠시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다가 전윤하를 데리고 성씨 일가를 떠났다.모두가 떠나가는 어르신과 전윤하를 직접 집 밖으로 배웅했다. 전윤하가 할머니를 모시고 떠나는 걸 지켜본 후, 몸을 돌린 이경혜는 뒤에 서 있는 예준하를 보고는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유청하는 식사 후에 휴식하는 습관이 있어 방으로 들어갔고, 성문철은 아내를 따라 들어갔다.곧 마당에는 성소현과 예준하만 남았다.“같이 좀 산책하지 않을래?”성소현이 먼저 예준하에게 물었다.그에 예준하는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좋아. 식후에 걸으면 아흔아홉까지 살 수 있다던데.”성소현은 예준하의 웃는 얼굴을 보며 생각했다. 예준하는 언제나 미소를 지으며 온화한 태도로 그녀를 대했다. 그의 미소는 마치 3월의 봄바람처럼 부드럽고 따뜻했다.두 사람은 함께 성씨 집을 나섰다.2층의 한 룸에서 밖을 내다보고 있던 이경혜는 보배 딸이 예준하와 함께 밖으로 나가는 것을 보았다.그녀는 정색하며 남편에게 말했다.“준하 그 녀석이 또 우리 소현이를 달래서 산책하러 갔어요.”그 말에 성문철이 다가와 밖을 내다보았는데, 과연 딸이 예준하와 나란히 걷고 있는 것을 보았다.두 사람은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지 걸으면서 웃고 있었다.성문철은 시선을 돌려 아내의 굳은 얼굴을 보고는 웃으며 말했다.“둘이 왕래하는 게 그렇게 싫으면 직접 말하지 그래. 이렇게 내 앞에서만 굳은 얼굴을 하고 있으면, 소현이든 예준하든 누가 볼 수 있겠어.”“분명히 눈이 먼 거예요. 늘 밥때가 되면 찾아오는데, 아무리 눈치를 줘도 못 본척한다고요. 그리고 소현이가 말이 잘 통하는 보통 친구 사이라는데, 소현이 앞에서 내가 뭐라 할 수 있겠어요.”젊었을 때 남편과 함께 상업계를 주름잡았던 이경혜도, 딸에게 접근하고 있는 예준하에 대해 속수무책이었다.또한 성소현은 예준하를 보통 친구로만 생각하고 있다.성소현을 바라보는 예준하의 온화하고 열정적인 눈빛을 보면 깊이 좋아하고 있
성소현은 가족들이 그녀가 예준하에게 속아서 울까 봐 걱정하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 별장을 나온 후 콘크리트 도로를 따라 천천히 걸었다.평소 차를 몰고 다녔기에 주위의 풍경을 감상할 틈이 없었는데 이렇게 산책하니 기분이 좋았다.“여기서 산 지도 오래되었는데, 이제야 이곳의 풍경이 매우 아름답고, 녹화가 잘 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됐어. 길가에 피곤할 때 쉴 수 있는 벤치도 있고, 드문드문 정자도 있고.”빌라 구역에 들어서면 작은 공원이 있는데, 공원에는 녹음이 우거져 있고, 어른들을 위한 신체 단련 시설도 있고, 어린이 놀이터도 있다.성씨네 별장은 작은 별장 몇 채를 사서 하나의 큰 별장으로 만든 것으로, 자신만의 운동 시설과 놀이기구를 갖추고 있다.그래서 성소현은 빌라 구역의 작은 공원에 발을 들여놓은 적이 거의 없었다. 그녀의 말에 의하면, 평소 차를 몰고 드나들면서 창밖의 경치를 힐금 보는 것이 다란다.“나도 여기 환경이 좋은 걸 보고 너희 옆집이 팔린다고 할 때 서둘러 손에 넣은 거야. 이곳은 환경도 좋고 안전하기도 하고, 또 면적도 넓어 비록 중고 집이라고는 해도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거든.”예준하는 걸으며 마치 자기가 중고 별장을 사들인 게 보물을 건지기라도 했다는 듯 자랑했다.다만 그의 마음을 이해할 수도 있다.처음부터 그의 목표는 성소현이었으니까.“응, 우리 집 옆에 있는 별장을 산 것은 보물을 주운 것과 다름없어. 그 별장은 면적이 넓어서 우리 집에서도 사려고 했는데, 네가 너무 빨리 손을 써서 빼앗겼지 뭐야.”성소현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그때 형도 이 일을 알고 누가 그렇게 빨리 손을 썼나 궁금해했거든. 그게 너일 줄이야. 너 안목 있는데? 정말이야, 그 별장은 손에 넣어도 손해 볼 일이 없거든. 그리고 또 사람을 불러 풍수도 봤겠다, 이제 이사해서 살면 일이 더욱 순조롭게 진행될 거야. 어쩌면 여기에다 예진 그룹의 지사를 크게 설립할 수 있을지도 몰라. 그리고 네가 사랑하는 사람도 분명 네가 특별히 준비한 이
성소현은 벤치에 앉은 후 말했다.“그럼 됐어. 나 요즘 커플이나 부부가 내 앞에서 알콩달콩하는 걸 보면 배가 아프단 말이야. 예진이와 효진이를 볼 때마다 너무 부러워.”“부러워할 것 없어. 너도 앞으로 그렇게 행복할 거니까.”“앞으로의 일을 누가 알겠어? 만약 결혼해서 행복하지 않으면 난 절대 참지 않을 거야. 내 미래의 남편이 나에게 잘해주지 않으면 아예 이혼하고 친정에 돌아가 살려고. 어쨌든 오빠들은 날 평생 먹여 살리겠다고 했거든.”좋은 친청은 든든한 뒷배가 되어줄 수 있다.성소현은 본인이 아주 훌륭한 친정 식구를 두었다고 생각하고 있다.“그럴 일 없어. 네 시댁 식구들은 분명 너한테 잘 대해줄 거야.”예준하는 자기 집 어른들은 모두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시집온 며느리에게 눈치를 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내 얘기는 그만하고, 너 대체 누구를 좋아하는 거야? 관성 사람이지? 네가 이곳에 집을 산 것도 그 여자를 위해서지?”예준하는 고개를 끄덕이며 솔직히 인정했다. “맞어. 나 조금이라도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서, 자주 보며 얘기라도 많이 하고 싶어서 여기에다 집을 산 거야. 이 별장의 리모델링 방안도 좋아하는 사람이랑 함께 논의해서 짠 거고.”“...준하야, 너 지금 그게 나라는 거야?”예준하는 진지한 표정으로 성소현을 바라보며 말했다.“그래, 소현아.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바로 너야. 이 별장을 산 이유는 너희 집과 가장 가깝기 때문이야. 이렇게 우리가 이웃이 되면, 나도 너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잖아. 만약 우리 둘이 사귀게 된다면 이 별장에 살면서 넌 아무때든 친정에 가볼수 있어.”“...”비록 의외였지만, 너무 놀랍지는 않았다.아까 식사할 때 전씨네 할머니가 귀띔을 해주셨고, 처음 들었을 땐 꽤 놀랐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할머니의 말이 맞는 것 같았다.예준하는 비록 여태 고백하지는 않았지만, 곳곳에서 행동으로 자신의 마음을 보였었다.그가 직접 고백하지 않았기에 성소현도 감히 그의 마음을 추측하지 못했다. 자신이
“준하야, 나 한번 생각해 보고.”성소현은 거절하지도, 받아들이지도 않고 그저 한번 생각해 보겠다고 했다.“그래 알았어. 천천히 생각해 봐. 급하지 않으니까. 당장은 내 마음을 받아줄 생각이 없다고 해도 괜찮아. 네가 날 받아줄 날을 기다릴 테니까.”성소현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냥 좀 갑작스러워서 그래.”“미안. 갑자기 이런 말 해서.”예준하는 미안하다는 듯이 말했다.그는 주위의 사람들이 모두 그가 성소현을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고 생각하여, 더 이상 고백을 미루는 것도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그러다 마침 성소현이 묻자 바로 고백했다.사랑하는 성소현에게 자신의 뜨거운 마음을 알리고 싶었다.어떤 사람들은 감정에 아주 무뎌 주동적으로 감정을 드러내 보여주지 않으면 죽어도 눈치채지 못한다.두 사람 사이에 갑자기 침묵이 흘렀다.잠시 앉아 있다가 성소현이 먼저 일어섰다.“이제 그만 돌아갈까?”“그래, 그러자.”산책하러 나갈 때, 두 사람은 웃고 떠들었지만 돌아갈 때 두 사람은 별로 말하지 않았다. 주요하게는 성소현이 말을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성씨 집에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예준하는 인사를 하고 아직 인테리어 중인 옆 별장으로 돌아갔다.그리고 5분도 안 되어 성소현이 스포츠카를 몰고 집을 나서 곧장 관성 중학교로 향했다.두 친구를 찾아간 것이다.성소현이 서점에 도착했을 때, 가게에는 심효진의 모습만 보였고 하예정은 어데 갔는지 없었다.“예정이는 어데 갔나요?”성소현이 가게에 들어서며 심효진에게 물었다.“꽃필무렵에 갔는데 곧 돌아올 거예요. 예정이를 찾아온 거예요? ”심효진은 배즙을 짜며 말을 이었다. “배즙 짜고 있는데 한잔할래요? 짜는 김에 같이 짜면 돼요.”“그럼 한 잔 줘요. 올 때마다 밍밍한 물이어서 맛없었거든요.”“물이야 원래 아무 맛도 없죠. 맹물이 싫다면 진작에 말하지 그랬어요, 설탕이라도 좀 넣어드리게요. 단맛이 나고 좋잖아요. 여기는 서점이라 책 말고는 문구밖에 없거든요.”성소현은
심효진의 말에 성소현은 웃음이 나왔다.“하하, 효진 씨 입에서나 이런 말을 듣죠, 다른 사람들이 날 뭐라 하는지 알아요? 야만인 아가씨래요. 재벌 집 사모님들도 결코 날 며느릿감으로 고려하지 않는대요. 아무래도 나와 같은 며느리는 억누를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성소현은 성격이 호락호락하지 않은 데다 강한 친정 식구가 뒷받침을 해주고 있다.따라서 웬만한 부잣집 사람들은 정말 그녀를 며느릿감으로 고려하지 않는다.비슷한 레벨의 가문 도련님들은 이미 결혼을 하였거나 그녀보다 어리다.성소현은 자신보다 어린 남자는 고려하고 싶지 않았다.“그건 다 안목이 없어서예요. 소현 언니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헛소문을 믿었기 때문이죠. 나와 예정이는 언니를 처음 봤을 때, 진실하고 솔직한 성격이라고 생각했어요.”심효진은 다시 주방에 가서 주스를 짜며 말했다.“소현 언니는 정말 좋은 사람이에요. 이건 우리가 언니랑 친해서 하는 말이 아니에요.”성소현도 주방에 따라 들어와 심효진이 주스를 짜는 것을 지켜보았다.“누가 고백했는지 말해봐요. 혹시 예씨 가문의 다섯째 도련님인가요?”심효진이 물었다.“...어떻게 알았어요”예준하가 성소현에 대한 마음을 성소현 본인 외에 모두가 알고 있는 것 같았다.그에 심효진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준하 씨가 소현 언니한테 너무 잘해줘서요. 언니랑 만날 기회를 더 만들고자 거금을 들여 언니 집 옆의 별장을 샀잖아요, 예씨 집안 도련님이 집이 부족한 것도 아니고요. 관성에는 좋은 별장이 많은데, 하필이면 중고 집을 사겠어요? 다 그 목적이 있어서죠.”“...그러니까 준하가 그 별장을 샀을 때부터 그 마음을 짐작한 거였네요. 나는 그때 전혀 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거든요. 단지 그 별장은 우리 집에서도 사고 싶어 하는 건데, 다른 사람이 사들이는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리모델링 시안에 대해서도 나에게 조언을 구했는데, 그것도 별생각 없이 의견을 말해줬거든요.”“그거야 소현 언니랑 가까운 데서 살려고 바로 옆집을
성소현은 웃으며 말했다.“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효진 씨가 네가 곧 돌아올 거라고 배 주스를 한 잔 준비해 줘야겠다고 하자마자 네가 들어왔어. 우리 둘이 몰래 네 험담을 한 게 아니라서 다행이네.”하예정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효진이가 내 발소리를 들은 게 분명해요.”심효진은 주스를 그녀들에게 건넸다.하예정은 주스를 들고 카운터 쪽으로 가서 내려놓고는 평소에 심효진과 밥을 먹을 때 쓰던 작은 테이블을 옮겨와 세워놓았다.세 사람은 각자 주스를 들고 테이블에 앉았다.“예정아, 꽃필무렵에 운초 씨를 찾아간 거야?”성소현은 물었다. “어땠어? 운초 씨도 참 대단해, 눈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도 계부와 친어머니를 고소할 수 있다니.”“꽃다발을 사서 태윤 씨에게 보냈는데 운초 씨는 못 봤어요. 하루 종일 어디 갔는지도 모르고, 점원이 운초 씨가 돌아오면 전화할 거라고 하던데 지금까지도 연락이 없네요. 전화번호까지 바꿨고요.”하예정은 주스를 한 모금 마신 후 한숨을 쉬며 말했다.“큰형수 노릇 하기 어렵네요.”그녀가 여운초를 찾아간 것은 전이진의 부탁을 받았기 때문이였다.전이진은 자신이 실수한 것 때문에 대신 한번 가봐달라고 부탁했다. 성소현은 웃으며 말했다.“어쩔 수 없지 뭐. 할머니가 여운초 씨를 아내감으로 선택한걸. 그나저나 구애하는 건 이진 씨의 일인데 왜 네가 갔어?”“이진 도련님이 운초 씨에게 진실을 말한 후부터 온초 씨가 계속 피해 다녀서 나에게 도움을 청한 거예요. 그저 몇 마디 설득하면 될 거로 생각하고 승낙했죠.”하예정은 또 주스를 한 모금 마셨다.“운초 씨는 눈이 보이지 않으니 카톡으로 연락할 수도 없고, 전화번호가 바뀌어 찾을 수도 없어요. 언니는 오늘 어쩌다가 여기에 올 시간이 생겼어요?”성소현은 갑자기 얼굴이 빨개졌다.하예정은 그 모습을 보고 매우 놀랐다.성소현이 얼굴을 붉히다니.“무슨 일 있어요? 얼굴이 빨개요.”하예정은 곧 성소현에게 다가가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좋아하는 사람이 생긴 거예요?
성소현이 하루라도 시집가지 않으면 하예정은 자신이 그녀의 행복을 빼앗은 것만 같은 죄책감이 들었다. 성소현이 그렇게 좋아한 전태윤에게 시집간 사람은 하예정이었으니.그래서 하예정은 성소현이 빨리 자신의 짝을 찾기를 바랐다. 그녀가 행복한 모습을 보아야 하예정의 마음도 조금이라도 편해질 수 있을 테니까.비록 성소현은 한 번도 하예정을 탓한 적이 없었고 하예정이 전태윤을 빼앗아 간 것으로 생각한 적도 없었지만 말이다.그래서 성소현도 이건 둘 사이에 인연이 없는 것일 뿐, 하예정과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말했었다.전태윤은 자신을 한 번도 사랑한 적이 없었고, 하예정이 아니라도 또 다른 여자가 나타났을 것이라고 했다.다른 사람이 아닌 하예정이 전태윤의 아내가 된 것이 다행이었다.오히려 도도하고 차갑던 전태윤이 하예정과 결혼한 후로부터 고개를 숙이고 자신을 처형이라고 부르는 모습을 보며 즐거울 따름이라고 말한 적도 있다. “예정아.”성소현은 하예정의 손을 잡았다.“나한테 미안하다는 생각 마. 넌 나한테 미안한 일을 한 적이 없으니까.”그녀는 하예정의 마음을 잘 알고 있다.“나 꼭 행복할 거야. 난 결혼에 관해서는 절대 소홀하지 않아. 꼭 좋은 남자에게 시집갈 거야. 그러니 걱정 마.”하예정은 고개를 끄덕였다.성소현은 주스를 마시고 속마음을 털어놓은 후 자신의 선택에 대한 확신이 생겼다.저녁 무렵, 그녀는 떠났다.같은 시각, 전씨 그룹.퇴근 시간이 되자 전태윤은 큰 꽃다발을 안고 사무실을 나섰다.이건 아내가 오후에 보내온 꽃다발이었다.비록 남자로서 꽃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사랑하는 아내가 선물한 거라면 풀 한 포기라도 보배처럼 여겼다.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가려 할 때 마침 다른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소정남을 만났다.소정남을 보고 전태윤은 일부러 꽃다발을 꼭 끌어안았다. 그가 빼앗을까 봐 그런 것이 아니라 일부러 주의를 끌려고 한 것이다.“예정 씨가 보낸 거지? 참 이쁘네.”전태윤은 도도함을 유지하며 말했다.“맞아, 예정이
소정남이 말했다. 그는 전태윤이 계속 꽃다발에 대해 언급하지 못하도록 화제를 바꾸었다.“...저녁에 약속 있는 거 잊지는 않았지?”친구가 자랑하는 모습이 마치 꽃다발을 처음 받아보는 듯싶었다.“지금 와이프 마중 갈 거야. 오늘 밤 나랑 함께 가기로 했거든.”소정남은 가볍게 응했다.“한 주만 더 근무하면 난 휴가야.”소정남과 심효진의 결혼식이 다가오고 있다.“결혼식 날까지 보름이나 남지 않았어?”소정남은 친구와 함께 밖으로 나가면서 말했다. 그는 결혼식 전날까지 출근하고 싶지 않았다.“보름이라고는 하지만 다시 말하면 두 주일밖에 안 되잖아. 미리 휴가 내면 안 돼?”이에 전태윤은 따로 할 말이 없었다.“전 대표님, 소 이사님.”두 사람이 나란히 걸어 나가자 모두 그들을 보고 공손히 인사를 했다.“같이 갈까?”전태윤은 자신의 차 앞에서 소정남을 향해 눈짓하며 한마디 물었다.“좋아. 나도 마침 내 와이프를 데리고 집에 돌아가 밥을 먹을 생각이야. 결혼 후 함께 살 집도 구경시켜 줄 겸.” 소정남은 결혼 후 부모님과 함께 살 계획이 아니었다.심효진과 둘만의 생활을 즐길 생각이었다.다행히 부모님도 그의 결정을 존중했다.그가 결혼하고 아이를 낳을 생각만 있다면 부모님은 다른 어떤 일도 상관하고 싶지 않았다.“너 피크 별장을 신혼집으로 하려고?”두 사람은 함께 전태윤의 롤스로이스에 올라탔다. 소정남이 몰고 온 포르쉐는 전태윤의 경호원 한 명에게 부탁해 운전하게 했다.“응. 피크 별장은 네 집에서도 멀지 않잖아. 효진이와 예정 씨는 친한 친구니까 피크 별장에서 살면 둘이 만나기도 편리할 거야.”소정남은 집을 살 때면 언제든지 전태윤을 따라 샀다.전태윤이 어디에 집을 사면 그도 따라서 한 채를 사곤 했다. 가까이에서 살면 밥을 얻어먹기도 편리하니까.“난 네가 다른 집을 신혼집으로 정하면 너랑 같은 곳에 사 놓은 집을 리모델링해서 신혼집으로 삼을 생각이었어. 네가 피크 별장에서 살겠다고 하니 잘됐네. 나 그 집에서 거의 10년이나 살
“할머니, 제가 뭐가 똑똑해요, 전 진짜 멍청해요. 할머니야말로 대단하신 분이죠.”전이혁은 할머니께 아부하는 멘트를 던졌다.하지만 그것이 단순히 아부라고 할 수 없는 게, 할머니는 정말 대단한 인물이었다. 남들이 보기엔 전씨 가문 자손들은 이미 충분히 뛰어난 사람이었지만 그래도 할머니의 손바닥 안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할머니는 마치 삼장법사였고 자손들은 손오공 같은 존재로 손오공이 아무리 강해도 삼장법사 앞에선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할머니, 저 진짜 꼼수 같은 거 부리지 않아요.”“그건 네 사정이고. 어떻게 하든 네 마음대로 해. 할머니는 이미 너에게 신붓감을 골라줬고, 대시하든 포기하든 그것 역시 너에게 달린 일이야. 1년이면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줬다고 생각한다.”“하지만 한 가지 경고할게. 지금까지 우리 전씨 가문에는 일편단심인 남자만 있었을 뿐 양다리를 걸치는 남자는 없었어. 네가 전씨 가문의 가풍을 망가뜨리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전이혁은 최대한 얼굴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알겠어요, 할머니. 저 이제 운전해야 해요. 도착해서 또 이야기 나눠요.”“그래, 운전 조심하고.”할머니는 전이혁에게 안전을 당부하고 전화를 끊었다.전화를 끊은 뒤, 할머니는 곧장 양씨 아저씨에게 전화를 걸었다.“양 집사, 내 생선은?”할머니는 자신이 잡은 생선을 혹시 다른 사람이 먹을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양씨 아저씨는 웃으며 대답했다.“어르신께서 구운 생선은 냄새가 정말 좋아요. 아무도 어르신의 생선을 뺏어 먹으려 하지 않으니 안심하세요.”그들 몇몇 자식들 따라 직원 숙소에서 지내는 할머니들은 전씨 할머니가 좋은 분인 걸 알고 함께 수다도 떨고 낚시도 하지만 전씨 가문의 중심인 전씨 할머니의 권위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그들은 전씨 할머니의 물건을 건드리는 일은 없었다. 혹시나 건드렸다가 이곳에서 일하는 자식들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었으니까.서원 리조트의 모든 직원은 훌륭한 대우와 복지를 받고 있었다. 산기슭에 지어진 숙소는 혼자인
두 사람은 함께 아침을 먹은 후, 방을 나섰다.그러자 집사는 전태윤이 다음에 올 때 묵을 수 있도록 스위트룸을 원래 상태로 정리하기 시작했다.도아영은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서 다시 잠을 청했다.전이혁은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었고, 할머니가 전화를 받자 물었다.“할머니, 지금 어디 계세요?”“리조트에 있어. 무슨 일이야? 할머니 보고 싶어? 그렇다면 와서 할머니랑 같이 밥 한 끼 먹자.”그러더니 할머니는 한 마디 덧붙였다.“지금 생선이 막 익었어. 냄새 진짜 좋다.”전이혁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침부터 생선 구워 드세요?”“너한테 말한 거 아니야. 친구들이랑 얘기 중이었어. 아침부터 생선 구우면 안 돼? 그리고 지금 아침도 아니잖아. 아홉 시도 넘었네, 해가 중천에 뜨려고 하고 있어.”“오늘 날씨도 풀렸고, 할머니는 친구들이랑 낚시 갔다가 지금은 잡은 생선 구워 먹고 있어. 소풍하는 느낌이라 꽤 괜찮아.”전이혁은 그 모습이 쉽게 그려졌다. 산 아래에는 맑은 시냇물이 흐르고 있었고 물 아래에는 물고기와 새우들이 헤엄치고 있었다.할머니는 가끔 몇몇 직원들의 어머니들과 함께 낚시하곤 했었다. 냇가에는 큰 나무 한 그루 있었는데 그 아래에는 돌로 된 테이블이 몇 개 있어 할머니의 한마디면 집사는 바비큐 그릴을 가져와 그들이 직접 구워 먹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할머니가 말하길, 그들은 먹는 것보다는 굽는 과정을 더 즐겼다. 비록 직원이 구워줄 수도 있었지만, 그들은 다른 사람이 구워주는 건 맛이 없다며 투덜대기도 했었다. 그리고 그들은 다 먹지 못할 때면 남은 건 직원들에게 나눠주기도 했었다.서원 리조트의 직원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할머니는 권위를 내세우며 직원들에게 막 대하지 않고 옆집 할머니처럼 따뜻하게 대해준다는 사실을.“할머니, 생선 더 잡아서 구워주세요. 저 지금 갈게요.”전이혁은 결심한 듯 할머니에게 진실을 털어놓으러 갈 생각이었다.“네가 와서 직접 잡아. 손질까지 하면 할머니가 구워줄게.”그러더니 할머니는 전이혁에게 물었다.“
“여긴 호텔 맞고, 당연히 아영 씨가 묵던 방일 수가 없죠. 어제 아영 씨가 취해서 방에 데려다줬는데 눕자마자 토하더라고요. 침대랑 바닥까지 모두 엉망이 돼서 어쩔 수 없이 다른 방으로 옮겼어요.”전이혁은 다시 자리에 앉더니 도아영에게 말했다.“아영 씨 술 취하면 정말 감당하기 힘들어요. 앞으로 술 좀 줄이는 게 좋을 것 같네요.”도아영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입을 뗐다.“제가 전이혁 씨랑 함께 많이 마신 건 알겠는데 그 뒤로는 기억이 하나도 안 나네요. 그런데 그 술 진짜 맛있었어요. 제가 해주시로 돌아갈 때 한 박스만 챙겨줘요. 기분 안 좋을 때 집에서 한두 잔 마시려고요.”“아영 씨가 그 정도로 술이 부족하진 않을 텐데요?”전이혁은 도아영의 집에 좋은 술이 부족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그는 도아영의 말이 전혀 믿기지 않았다.“맞아요. 술이 부족한 건 아니에요. 하지만 전이혁 씨가 준 술은 부족하죠.”전이혁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그래요. 아영 씨가 돌아갈 때 한 박스 챙겨줄게요. 그리고 관성 특산물도 좀 챙길 테니 같이 가져가요. 어찌 되었든 먼 길 왔는데 헛걸음하게 하면 안 되니까요.”도아영은 웃으며 대답했다.“맞아요. 헛걸음하게 만들면 안 되죠.”그러더니 그녀는 전이혁의 옆으로 다가가 소파에 기대어 앉았다.“전이혁 씨, 여기 꿀 있어요? 머리가 아파서 그러는데 저 꿀물 좀 타 주면 안 돼요?”“아까는 참을 만하다면서요?”전이혁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일단 세수 좀 하고요. 그리고 타 줄게요. 아영 씨도 세수해요.”“목욕할 거면 아영 씨 방에 가서 해요. 여긴 우리 형이 자주 묵는 스위트룸인데, 아영 씨니까 형이 허락한 거지, 다른 사람이었으면 형수님이 부탁해도 절대 안 된다고 했을 거예요.”전이혁의 큰형과 형수님은 도아영이 할머니께서 정해준 자신의 신붓감이라는 걸 알고,이미 도아영을 가족이나 다름없이 생각하고 있었다.어젯밤, 전이혁이 그런 말을 했을 때 도아영은 살짝 기분이 상했었다. 하지만
전이혁은 얼른 도아영을 부축하더니 살짝 귀찮다는 듯이 물었다.“아영 씨, 또 왜 그래요?”“저... 화장실... ”도아영은 눈이 풀린 채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화장실 가고 싶어요?”도아영은 비틀거리며 제대로 걷기도 힘든 상태였고 전이혁의 표정은 점점 굳어지기 시작했다. 도아영을 혼자 화장실에 가게 둘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남자인 자신이 부축해서 데려가는 것도 난감한 일이었다.도아영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비틀거리며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전이혁은 급히 그녀를 부축하며 다시 한번 물었다.“혼자 괜찮겠어요?”도아영은 묵묵부답이었다. 그녀는 이미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이 누군지도 모를 정도로 심하게 취해 있었다.도아영의 상태를 보아하니 전이혁은 어쩔 수 없이 그녀를 부축해 화장실로 데려가야 했다. 전이혁은 가면서도 입으로는 끊임없이 투덜거렸다.그는 도아영을 화장실로 들여보내고 도망치듯 밖으로 뛰어나왔다.전이혁은 도아영이 나올 때까지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10분이 넘도록 나오지 않았고, 노크를 해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 결국, 전이혁은 걱정된 마음에 문을 살짝 열어 안을 들여다봤지만 무슨 일인지 도아영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어? 어디 간 거야?’전이혁은 의심스러운 마음에 문을 활짝 열고 들어가 보았다. 그 결과, 도아영은 화장실 문 옆 벽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그러니 문틈 사이로 도아영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었다.“이 여자 진짜!”도아영의 모습을 보자, 전이혁은 앞으로 절대 그녀에게 술을 많이 마시게 하지 않으리라고 결심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전이혁은 앞으로 자신이 도아영과 함께 밥을 먹게 된다면 그녀에게 술을 마시지 못하게 할 생각이었다. 자신 말고는 도아영이 다른 누구와 함께 얼마나 마시든, 그건 전이혁이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전이혁은 안으로 들어가 도아영을 안고 나온 뒤, 그녀를 침대에 눕혔다.그는 원래 방으로 돌아가 쉴 예정이었지만, 도아영의 상태를 보아하니 도저히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결국 그날 저녁,
한편 호텔에서 도아영을 돌보던 전이혁은 전창빈의 메시지를 확인하더니 단독으로 그에게 음성 메시지로 물었다.[너 그 먼 곳까지 가서 가정 요리사를 하려고?]전창빈은 소파에 앉아 답장을 보냈다.[안 될 건 없지? 선우씨 가문의 가정 요리사 자리는 도전적이잖아. 내가 합격할 수 있을지 시험해 보고 싶었어. 다행히도 형 동생이 모든 경쟁자를 물리쳤지 뭐야. 난관을 하나둘씩 돌파했어.]전이혁이 회답했다.[요리사 하나 뽑는 걸 대통령 선거처럼 하는구먼. 얼마나 있을 계획이야? 설날도 얼마 안 남았는데 명절에는 안 오려고?]전창빈이 답장했다.[설날에는 아마 못 갈 것 같아. 여기 주인이 날 해고하면 그때나 갈 수는 있겠는지.]전이혁이 피식 웃었다.[네 실력으로는 해고당할 리가 없잖아. 네가 주인을 해고하는 게 더 말이 되겠다. 이해가 안 가. 왜 그 먼 곳까지 가려고 한 거야? 넌 사업도 있는데... 어디서 요리하든 다 마찬가지일 텐데 굳이 몇천 리나 떨어진 곳까지 갈 필요가 있나? 거기 추울 텐데 너 괜찮겠어?]전창빈이 대답했다.[우리 추위를 못 타본 것도 아니고. 형도 할머니에 의해 눈이 수북이 쌓인 산으로 버려지지 않았어? 내 얘긴 그만하고... 형은 어때? 우리 미래의 형수님께 구애하기 시작했어?]‘난 벌써 움직이고 있는데 형이 아직도 움직이지 않는다면... 내가 나중에 민아 씨와 함께 할머니께 인사를 드리러 갈 때 형은 대체 어쩌려고?’전창빈은 속으로 생각했다.전씨 할머니의 지팡이가 전창빈의 등짝을 때리지 않는다면 해가 서쪽에 뜨는 거나 다름없을 것이다.[말도 마라. 정말 귀찮아. 큰형수님이 오늘 저녁에 우리한테 밥 사주셨어.]전창빈이 웃으며 회답했다.[하하! 괴로웠겠네.][내 말이. 할머니께서 나에게 정해주신 그 여자분이 큰형수님을 찾아가 하소연했더니 큰형수님이 우리 두 사람에게 밥을 사주신 거 있지.][형이 우리 형수님한테 무슨 짓이라도 했어?][아직 너의 형수님이 아니거든!]전이혁은 전창빈의 호칭을 정정했다. 그는 도아영과
“저는 앞으로 큰아가씨의 평가에 근거해서 요리 방법을 조정해 나갈 거예요. 그렇게 해야만 실력을 키울 수 있을 테니까요. 제가 만드는 모든 요리를 큰아가씨께서 만족해하시면 제가 여기에서 졸업할 수 있겠네요.”강진은 웃으며 대답했다.“그렇게 되면 큰아가씨께서 당신을 놓아주지 않을걸요.”‘평생 선우민아 씨를 위해 요리해 드리는 건 기쁜 일이지.'이 말을 입 밖으로 내뱉고 싶었지만 전창빈은 꾹 참았다. 이런 말은 입 밖에 내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내면 오해를 살 수 있으니까. 설령 전창빈이 선우민아에게 애정 공세를 하는 것이 두 번째 목표라고 해도 이런 생각을 드러내서는 절대로 안 된다.선우민아가 가업을 운영한다는 건 그녀가 매우 유능한 인물이라는 증거다. 이렇게 강한 강한 여성은 쉽게 넘볼 수 없는 상대이다.전호영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는 너무 힘들어서 하예정의 도움을 받은 끝에야 지름길을 택할 수 있었고 고현의 마음을 얻었다.강진은 그 말이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걸 깨닫고는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전창빈 씨, 오늘 오후 내내 바쁘셨는데 일찍 쉬세요. 내일 아침 큰아가씨를 위해 아침식사를 준비해야 합니다. 가장 일찍 아침을 드시는 분은 큰아가씨와 민기 도련님입니다. 민기 도련님은 학교에 가야 해서 일찍 식사하시고 큰아가씨는 매일 민기 도련님을 학교에 데려다주신 후 회사에 가시니까 두 분은 늘 함께 식사하시는 편이에요. 하여 아침 7시쯤이면 큰아가씨와 민기 도련님의 아침을 준비하시면 됩니다. 다른 분들의 아침은 9시 이후에 준비하시면 돼요.”전창빈이 말을 건넸다.“그 시간대면 아침과 점심을 함께 드시는 거네요.”“어르신과 사모님은 그렇죠. 점심 무렵에 일어나셨다가 식사 후에는 외출하셔서 저녁에야 돌아오세요. 때로는 안 오시기도 하는데, 그럴 땐 제가 미리 알려드릴게요. 안 오시는 날은 창빈 씨가 쉬는 거나 마찬가지죠. 그냥 자신의 배만 채우시면 돼요.”여기에서는 사실상 선우민아 자매만 아침을 먹는 셈이다.“큰아
동생 선우정아가 어이없어하는 모습을 보며 선우민아는 미소를 지었다.“알았어. 지금은 네가 전창빈 씨를 좋아하지 않는다 치더라도 앞으로 어떻게 될진 모르는 일이니까. 앞으로 매일 여기 와서 식사해. 전창빈 씨와 접촉할 기회도 많아져야 그에 대해 더 잘 알게 될 거 아니야. 만약 그가 정말 괜찮은 사람이라면 거리가 멀어도 너희 부모님께서도 어쩔 수 없이 동의하실 거야. 혹은 전창빈 씨에게 우리 지역에서 사업을 하게 하고 여기서 집을 사도록 하든가.”선우정아는 또 벙어리가 되어버렸다.선우민아가 이렇게 말하는 걸 보니 선우정아는 앞으로는 감히 그 집에 밥 먹으러 가기도 어려울 것 같다고 여겼다.선우민아가 자꾸 자신이 전창빈을 좋아한다고 오해하고 있지 않는가.전창빈은 미래의 아내는 지금 미래 처제가 자기를 좋아한다고 오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전이혁은 강진을 따라 숙소로 돌아갔다. 강진은 웃으며 축하의 말을 전했다.“전창빈 씨, 이제 우리는 동료가 되었군요. 오래 함께 일했으면 좋겠습니다.”선우씨 가문의 여러 집안이 같은 대저택 안에서 함께 살고 있었지만 집안마다 독립된 공간이 있었다.선우민아의 요리사는 자주 교체되는 편이었기에 강진 역시 1년 정도는 함께 일할 사람을 원했다.요리사와 친해지기도 전에 퇴직하는 경우가 너무 많았다.전창빈도 웃으며 말을 이었다.“저도 집사님과 오래 함께 일하고 싶습니다. 앞으로 제가 요리들을 더 연구해서 큰아가씨께서 제 요리만 먹고 싶어 하도록 해야겠네요.”“큰아가씨께서 창빈 씨 요리만 고집하게 만들면 정말 대단한 거예요. 요리 대회에 나가면 ‘요리의 신'이라는 칭호를 받을 수 있을 만큼요.”선우민아의 입맛을 사로잡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전창빈은 웃으며 말했다.“‘요리의 신' 같은 건 관심 없어요. 저는 단지 제 요리 실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서 손님들을 만족시키고 싶을 뿐이죠.”전창빈은 그가 고용한 요리사들에게는 항상 조언을 해주곤 한다. 본인이 잘 배워야 현재 이끌고 있는 요리사들도
선우민아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저런 사업을 가진 사람을 네가 정말 좋아한다면 작은아버지와 숙모도 반대하지 않으실 거야. 다만 전창빈 씨가 관성 사람이라 우리랑 거리가 너무 멀어. 작은아버지와 숙모는 네가 먼 곳으로 시집가는 걸 아쉬워할 수도 있을 거야.”선우정아는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언니! 제가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어요? 저는 정말 그런 마음 없단 말이에요. 오히려 저는 그분이 언니랑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우리 자매 일곱 명 중 언니가 맏이라 당연히 언니가 먼저 시집가야죠. 제가 언니를 앞지를 순 없잖아요.”착각인지 정말 본 건지, 선우정아는 전창빈이 선우민아를 바라보는 눈빛에서 특별한 시선이 느껴졌다.그리고 전창빈은 사실 정말로 선우민아를 위해 온 거였다.아니, 정확히는 선우민아의 까다로운 입맛을 만족시켜주기 위해 온 것이다. 그녀를 만족시킬 수 있다면 다른 손님들도 분명히 만족시킬 수 있을 테니까.선우정아는 생각했다. 선우민아처럼 입맛이 까다로운 사람은 많지 않을 거라고.선우민아는 손을 뻗어 동생의 볼을 살짝 꼬집으며 말했다.“우리 나이 차이도 얼마 안 나잖아. 게다가 사촌 자매이기도 하기 때문에 네가 나보다 먼저 시집간다고 해도 전혀 문제가 안 되거든. 나는 당분간 시집갈 생각 없어. 만약 고려한다 해도 이 지역의 사람일 거야. 생각해봐, 민기와 민수는 아직 몇 살밖에 안 됐는데 애들이 커서 사업을 이어받을 수 있을 때까지 적어도 20년은 더 기다려야 되잖아. 이 20년 동안 우리 자매는 계속 회사를 떠받쳐야 해. 만약 우리가 먼 곳으로 시집가면, 누가 회사를 이끌겠어? 셋째와 넷째에게 그런 능력이 있는지 지켜봐야 할 거야 아니야.”셋째 동생과 넷째 동생도 이제 성인이 되어 사업을 배우기 시작했지만 아직은 거대한 가업을 떠받칠 능력이 되지 못했다.하여 선우민아는 자연스레 먼 곳으로 시집갈 생각이 없었다. 시집을 간다 해도 A시의 남자에게 시집갈 것이다. 그래야 시집가서도 친정 회사를 계속 관리할 수 있으니까.앞으로 선우민기
전창빈이 말했다.“행동으로 보여드리죠.”선우정아는 눈썹을 치켜들며 웃었다.“전이혁 씨는 정말 자신만만하신가 봐요.”선우민아는 선우정아를 한 번 흘겨보더니 전창빈에게 물었다.“그럼 언제부터 출근 가능하세요?”“이 자리를 위해 온 만큼 언제든지 가능합니다.”선우민아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럼 내일부터 정식으로 출근하세요. 강 집사님께서 이미 숙소를 준비해 뒀을 테고 월급은 내일부터 계산됩니다. 한 달의 수습 기간이 있고 수습 기간 중 급여는 일당으로 지급됩니다. 공짜로 일을 시키진 않을 거예요.“누구든 마찬가지로 하루 일하면 하루 급여를 계산해 주었다.“집사님께서 어제 이미 숙소를 준비해 주셨습니다. 급여는 어떻게 계산되든 상관없습니다. 전 도전을 위해 온 거지 월급을 위해 온 게 아니니까요.”전이혁은 돈이 부족한 게 아니었다. 아내만 부족할 뿐...“좋아요. 지금은 숙소로 가서 쉬세요. 우리 집에서의 하루 세끼 준비 시간은 집사님께서 알려주실 거예요. 아침을 제외한 점심과 저녁 식사 준비 시간은 변함없어요.”선우씨 가문의 사람들 아침 식사는 각자 일어나는 시간이 다르기 때문에 딱히 정해진 시간이 없었다.전창빈이 대답했다.“알겠습니다. 집사님께 여쭤보겠습니다.”그는 다시 모두에게 고개를 끄덕인 뒤 자리를 떠났다.전창빈이 떠나자 선우민아도 일어서서 가족들에게 말했다.“저는 아직 처리할 일이 있어서 나가봐야 할 것 같아요. 민기한테는 주말에 데리고 나가주겠다고 전해주세요.”선우민기는 그녀보다 스무 살이나 어렸기 때문에 남동생을 아들처럼 키웠다.선우민기는 선우민아를 무서워하면서도 잘 따랐다.선우정아도 그녀의 언니를 따라 일어섰다.“저도 일 보러 갈게요.”한경주가 딸에게 당부했다.“접대할 때 술 너무 많이 마시지 마. 몸에 해로워.”“엄마,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5년 전의 제가 아닌걸요.”선우민아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회사를 막 이어받았을 때 그녀는 많은 사람에게 괴롭힘을 당했다. 그땐 위엄도, 경험도 없었고 회사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