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용정은 예지연에게 음성 메시지로 회답했다.[주방에서 나오긴 했는데 먹는 속도가 너무 빨라. 2, 3분 만에 해치우더라고. 나는 말하는 데만 집중했는데 벌써 먹고 설거지까지 끝내고 나갔어. 나는 아직 한 술도 못 떴는데.]예지연은 할 말을 잃었다.밖에서는 그 누구 앞에서도 기죽지 않던 용정이지만 유독 용설희 앞에서는 꼬리를 내렸다.사랑하고 아끼니까.결국 예지연은 네 글자로 답했다.[자업자득!]영상 통화로 도움을 청한 것도 결국 시간 낭비였고 형제의 정으로 나섰건만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용정은 손바닥으로 얼굴을 문질렀다.정말 자초한 일이었다.예지연은 더는 회답하지 않았다.출근 준비를 하려던 중 모연정이 물었다.“오빠랑 설희는 어떻게 됐대?”“제자리걸음이죠.”모연정이 한숨을 내쉬었다.“설희가 아직도 고집이 세구나. 용정도 참 속이 털렸겠다.”“엄마, 오빠와 언니 일은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오빠는 지금 그럴 상황이 아니라서 감히 생각을 못 하는 거지 원한을 갚고 나면 언니가 오빠 손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아요? 게다가 언니가 오빠 곁을 떠날 리가 없잖아요. 언니는 오빠의 사람이에요. 엄마 며느리는 도망가지 않아요. 걱정 붙들어 매고 오빠가 일을 마무리하고 언니와 결혼하는 날만 기다리세요.”모연정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말은 쉽지, 그걸 해내는 건 쉽지 않아. 그동안 그쪽에서 고생도 많았고. 사업상으로도 우리 가문들과의 연락을 피하고 있어. 원수에게 정체가 들킬까 봐. 그런데도 몇 년 동안 수없이 암살당했고 설희도 몇 번이나 다쳤잖아.”모연정의 목소리에는 양자와 설희에 대한 안타까움이 배어 있었다.“오빠는 어릴 때부터 원한을 안고 살아서 길이 험할 수밖에 없었어요. 처음엔 힘들었지만 지금은 나아졌잖아요. 엄마, 오빠와 언니는 실력이 강해서 괜찮을 거예요. 오빠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우리 가만히 있을 건가요? 넷째 작은어머니 제자분들이 가만히 있을까요? 근데 이건 오빠의 원한이라 직접 갚겠다고 하셔서 우리가 끼어들지 못하는 거지
곧 예지연이 전화를 끊었다.용정의 얼굴이 자기도 모르게 붉어졌다. 여동생의 말이 마치 바로 앞에서 따끔하게 한 방을 날린 듯했다.자신이 너무 무능하다는 걸 들킨 기분이었다.그는 용설희를 정말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다. 그녀를 굴복시킬 수 있는 사람은 세 여동생뿐이라는 걸 알기에 부끄럽지만 어쩔 수 없이 예지연에게 손을 내밀 수밖에 없었다.전창빈 집에서는 전하연에게 도움을 받았지만 평소에는 양부모가 나서도 용설희를 설득하지 못하는 판이었다.용설희는 아무 말 없이 다시 주방으로 들어가 남은 아침 식사를 들고나와 식탁 한쪽에 자리를 잡았다.용정과 일부러 거리를 두었다.“도련님께서는 제 아침이 너무 싱겁다고 하셔서 도련님 아침은 저와 다른 거로 준비했습니다.”용설희는 한마디를 던지고는 더는 입을 열지 않았다.식사를 마치면 혹시 누군가 차에 손을 댔을까 싶어 차를 점검하러 나가야 했다.그녀는 자동차 정비도 할 줄 알았는데 용정뿐 아니라 그의 경호원들 모두 마찬가지였다.누군가 감히 용정의 차에 손을 댄다 해도 바로 들통이 났다. 차를 사용하기 전에 항상 점검하고 있으니까.이런 긴장된 생활은 이미 몇 년째 이어지고 있었다.모두가 용정이 하루빨리 원수를 갚길 바라며 나쁜 놈들이 법의 심판을 받는 그날만을 기다렸다.용정의 경호원들은 매년 염천매가 교체해 주었다.지나친 긴장감을 견디지 못하고 오히려 용정에게 해가 될까 봐 걱정하면서 말이다.그러나 용설희만은 한 번도 교체된 적이 없었다. 그녀는 다른 경호원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인내심이 강했고 무엇보다 용정과 운명을 함께하는 사이였다.“네가 좋아하는 걸로 해. 나랑 같을 필요 없어.”용정이 그녀가 먹는 모습을 바라보며 계속해서 말했다.“지연이가 앞으로는 나랑 같이 밥 먹으라고 했잖아. 혼자 먹으니까 확실히 맛이 없더라.”용설희는 고개를 들지도 않고 짧게 답했다.“네.”한참의 침묵 끝에 용정이 다시 물었다.“설희야, 혹시 내가 지연이를 이용해서 너를 압박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전하연이 방학을 맞아 이곳으로 온 것도, 이 시원한 날씨 때문이었다.용설희는 결국 용정을 도와 약초를 정리하고 나서 본채로 걸어 들어갔다.십여 분 뒤, 식탁 위에는 용정의 아침 식사만 놓여 있었다.용설희는 언제나 주방에서 식사했다.용정이 몇 번이고 같이 먹자고 했지만 그녀는 끝내 같은 식탁에 앉지 않았다.“용설희!”용정이 식탁 앞에 서서 굳은 표정으로 불렀다. 막 아침을 먹으려던 그녀가 소리에 놀라 얼른 나왔다.“너 아침밥은?”“저는 주방에서 먹으면 됩니다.”주방은 넓고 작은 식탁도 있어서 거기서 먹어도 충분했다.다만 조금 더 더울 뿐이었다.용정은 휴대폰을 꺼내 예지연에게 영상 통화를 걸었다.이 시간이면 그녀는 아직 출근 전이라 아마 아침을 먹고 있을 터였다.곧 연결되었다.“오빠.”예지연이 이내 받았다. 그녀는 영상 통화에서도 좀처럼 웃지 않았지만 평소보다는 훨씬 부드러운 말투였다.“지연아, 너 오빠 좀 봐. 혼자 밥 먹으니까 도저히 입맛이 없어.”용정이 카메라를 돌려 주위를 한 바퀴 비춘 뒤 하소연하기 시작했다.“네 언니가 자꾸 숨어서 먹어서 나 혼자 먹게 하잖아. 입맛이 없으니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거의 매일 빈 속으로 출근해. 혼자 먹으니까, 밥맛도 없어.”강제로 식탁에 앉히는 것도 가능하겠지만 그러면 둘 다 기분이 상하고 식욕도 떨어질 게 뻔했다.용정은 세 여동생이 용설희를 잘 달랜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자신이 말해도 소용없을 때 여동생들에게 도움을 청하면 용설희가 어쩔 수 없이 한 끼 정도는 같이 먹어 주곤 했으니까.그는 가끔 여동생들이 부러울 때도 있었다.용설희가 누구보다 용정을 신경 쓰는 건 분명했지만 어떤 일은 그가 직접 말해도 통하지 않아서 여동생들에게 손을 빌려야 할 때가 많았다.예지연이 오빠 뒤에 서 있는 용설희를 보며 말했다.“언니도 같이 드세요. 언니, 뭐 그렇게 맛있는 걸 숨어서 드시는 거예요? 우리 오빠가 알면 안 되는 거예요?”“그런 거 아닙니다.”용설희가 머뭇거렸다. 그녀가 먹는 건
용설희가 용정의 방을 샅샅이 살펴보는 동안 용정은 몇 번이나 입을 열려고 했지만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냥 그녀가 확인을 마치고 조용히 나갈 때까지 가만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두 사람은 같은 지붕 아래, 바로 옆방에 살고 있었지만 때때로 용정은 그녀와의 거리가 지구 끝처럼 멀게만 느껴졌다.용설희가 자신에게 마음이 있다는 사실을 용정도 알고 있었다.마치 용정이 그녀에게 마음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하지만 그 누구도 그 사실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그는 아직 원한을 풀지 못했기에 감정을 논할 처지가 아니라고 생각했다.용설희는 스승이 남긴 말을 평생 잊지 않았다.그녀는 용정을 깊이 사랑하면서도 자신을 경호원, 하인, 조수로만 생각하며 한 번도 그의 연인이나 아내가 될 생각을 단 번도 한 적 없었다.두려웠고, 자신을 스스로 용정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여겼기 때문이다.어떤 부분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건가.둘 다 가족을 잃은 고아였고 용정은 용설희보다 조금 나을 뿐이었다.그는 양부모와 스승이 있었지만 용설희에게는 용정 외에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용정은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원한을 갚은 뒤에는 반드시 그녀에게 고백하겠다고, 그리고 그녀의 고집 센 성격을 바로 고치겠다고 말이다.아니면 두 사람이 함께해도 용설희는 지금과 같은 자세를 유지할 것이고 용정은 그런 그녀 때문에 속이 터질 게 뻔했다.여러모로 그는 ‘도련님’이라는 체면을 내세워야만 그녀를 따르게 할 수 있었다.잠시 가만히 앉아 있던 용정은 그제야 몸을 일으켜 샤워하러 갔다.그날 밤은 조용히 흘러갔다.다음 날 아침, 용정이 일어났을 때 용설희는 이미 주방에서 아침을 준비하고 있었다.운동복으로 갈아입은 용정은 평소처럼 운동하러 나가려 했다.주방에 들어가니 그녀가 스테이크를 굽는 모습을 보았다.“도련님, 좋은 아침입니다.”용설희가 고개를 돌려 인사를 건넸다.“어젯밤 늦게 잤으면서 또 이렇게 일찍 일어났네. 좀 더 자지 그래. 잠이 부족하면 피부에 안 좋아.”“아닙니
용정이 대답했다.“내가 별로 안 좋아하는 거 알면서 왜 나한테 주려고 그래? 너한테 주는 거니까 네가 먹어. 이 영양제는 여자들이 먹어야 피부에 좋대.”그는 고개를 들어 용설희를 바라보았다.그녀는 늘 용정의 곁을 지키며 바람과 햇살을 맞으며 자랐지만 피부는 여전히 좋았다.좋은 화장품을 쓰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용정의 작은어머니의 친정이 화장품 사업을 하기 때문이었다.용정의 둘째 작은어머니가 직접 개발한 화장품은 품질이 뛰어나기로 소문이 자자했다.덕분에 귀부인과 숙녀들 사이에서는 그녀에게서 직접 제품을 구매하는 것이 하나의 유행처럼 자리 잡았다.용정도 예진 리조트에 돌아갈 때마다 작은어머니에게 화장품을 받곤 했는데 자신이 쓸 것과 용설희가 쓸 것을 따로 챙겼다.사실 용정도 외모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었다.어릴 적부터 잘생기고 귀여웠던 그는 서른이 넘어서 못생겨지고 싶지 않아 스스로 잘 관리했고 필요한 화장품은 하나도 빠짐없이 사용했다.그리고 본가나 서원 리조트에 갈 때마다 항상 미용 영양제를 많이 받아왔다.용정은 그런 걸 좋아하지 않았기에 전부 용설희에게 줬다.사실 어른들도 그의 손을 통해 용설희에게 전해주려는 것이었다.어른들의 눈에 용정과 용설희는 이미 한 몸이나 다름없었다.“저는 이미 많이 먹었어요.”용설희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그래도 그녀는 물건을 다시 가방에 넣었다.용정이 말한 대로 이 선물은 이미 그녀에게 주어진 것이었다.선우씨 가문에서 받은 이상 끝까지 간직하는 것이 도리였다.도로 내버리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늦었어. 가서 쉬어.”그러나 용설희는 움직이지 않았다.“도련님이 아직 안 주무셨어요.”용정이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집에 돌아왔으니까 안전해. 긴장 좀 풀어.”용설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집이 안전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녀는 쭉 그렇게 살아왔다.그녀는 용정이 잠든 후에야 방으로 돌아갔다.그리고 바로 자지 않고 먼저 집 안을 한 바퀴 돌며 잠재적인 위험이 없는지 확인하고 그제야 방으
하예정과 딸은 한참 동안 통화를 이어갔다. 옆에서 지켜보던 전태윤이 살짝 질투심이 났는지 한마디 던졌다.“여보, 당신이 딸이랑 얘기한 시간이 나보다 길어. 딸만 너무 편애하는 거 아니야?”하예정이 남편을 살짝 밀쳐내며 딸에게 말했다.“하연아, 너도 이제 쉬어. 엄마가 끊을게. 네 아빠는 나이가 들수록 애가 되는 것 같아.”“아빠는 엄마가 우리랑 있는 걸 못마땅해하시는 것 같아요. 하루 종일 엄마가 아빠만 생각하길 바라는 거죠.”전태윤은 딸의 말에 당당하게 받아쳤다.“네 엄마는 평생 나랑 함께 살 사람이니까 당연히 하루 종일 나만 생각해야지. 됐어. 그만 말하고 너도 이제 쉬어.”전하연은 아직 시간이 이르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아쉽게 전화를 끊었다.한편 용정은 예상대로 밤 10시가 되어서야 H시의 저택에 도착했다.그의 별장은 넓고 정원은 전통적인 정원 스타일로 꾸며져 있었다.용정은 예진 리조트의 풍경에 반해, 자기 집도 그 분위기를 그대로 옮겨 놓았다.물론 정원을 유지하는 데에도 적지 않은 손길이 필요했다.그의 경호팀은 두 조로 나뉘어 호위하고 있었다.함께 외출하지 않은 팀은 별장 안에서 청소와 정원 가꾸기, 연못 관리 등을 맡았다.용정이 입주한 뒤로 저택의 담장은 더 높아졌고 곳곳에 CCTV가 설치되어 사각지대가 없었다.정원의 나무 등은 담장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어 누군가 담을 넘어 숨더라도 나무에 숨을 수 없도록 했다.심지어 담장 아래에는 뾰족한 못이 빼곡히 박혀 있었고 그 위로는 독초가 심겨 있어 잘못 건드리거나 먹으면 중독될 위험이 있었다.용정은 김청산과 함께 십여 년간 수련하며 이 모든 것을 익혔다.김청산이 세상을 떠난 뒤에는 졍겨울이 모든 것을 그에게 전수했다.그와 함께 수련한 이는 용설희와 예훈이었다.예씨 가문의 젊은이들도 어느 정도 의학과 독에 대한 지식을 갖추고 있었는데 정겨울이 이 분야에 능했기 때문이다.정겨울은 아들과 조카들에게 큰 기대를 걸지 않았다. 자신을 지킬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용정이 용진
소지훈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그래서 저는 결혼을 아직 하지 못했어요. 제가 다른 여자들에게 반응하지 않았기 때문이죠. 저의 병 때문에 상대방을 평생 과부로 살게 할 수는 없잖아요? 저의 부모님도 너무 조급하신 나머지 저에게 수많은 맞선 자리를 주선해 주셨는데 저는 정말 나가기 싫더라고요. 그 여자들의 사진들을 가져오면서 제가 그중 한 명에게 반응이 있기를 바라셨어요. 제가 어느 여자를 한 번만 더 쳐다봐도 우리 부모님께서는 제가 그 여인을 좋아하는 줄로만 아세요. 저도 어쩔 수 없어서 부모님이 오해하지 않도록 그 여자들을 피하
하예정은 잠시 생각해 보더니, 언니의 말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하예정은 정말 바빴다. 자신의 사업에 몰두해야 하고, 전태윤의 사유재산을 관리하는 데도 도움을 주어야 하며, 시어머니로부터 맡은 소소한 일들까지 처리해야 했다. 능숙한 큰 사모님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큰 노력이 필요했다. 특히 하예정은 평범한 가정에서 자랐기 때문에, 만약 하씨 가문과 전씨 가문이 동등한 가문이었다면, 이렇게 고생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고, 부담도 크지 않았을 것이다. 하예정은 이모가 계획적으로 언니를 이씨 가문의 대표 자리에 올리려 하고
하예진은 한참을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지금은 그렇게 하지 못할 거야. 하지만 앞으로의 일을 누가 알겠어. 우리가 우빈이를 잘 가르치고 나중에 우빈이가 결정하게 할 거야. 형인 씨가 양육비도 주고 있어서 난 우빈이가 주씨 집안과 연락하는 것을 반대하진 않아.”“그래. 오늘 같은 좋은 날 이런 말 하지 말자. 언니 가게가 오픈 첫날인데 우리가 좋은 생각만 하자. 그래야 장사도 잘되고 돈도 많이 벌 수 있어.”하예진이 웃었다.“고마워. 네 말대로 우리 가게가 정말 잘 될 거야.”하예진은 자신의 경영 이념과 요리 솜씨에 대해 자신감이
“우리 엄마께서 그러셨어. 우리 집 둘째 며느리는 아무 능력이 필요 없고 그저 돈만 쓸 줄 알면 된다고 하셨어. 일이 바쁘지만 돈은 많이 벌어서 돈 쓸 시간이 없으니 장가들면 아내가 열심히 돈을 써줘야 해.”여운초가 웃었다.“지금이라면 나도 돈 많아.”현재 그녀는 여씨의 사업을 단단히 장악하고 있어 지갑은 이미 두둑해졌다. 이제 그녀는 예전의 여운초가 아니었다고 더 이상 능력을 숨길 필요가 없었다.“네가 돈이 부족하지 않은 건 알지만, 나는 네가 내 돈을 쓰길 바래. 내가 돈을 버는 이유는 아내에게 쓰기 위해서야. 나중에 아이가 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