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식사 후, 하예정은 일찍 방에 들어가 샤워를 한 후 언니가 머무는 객실로 향했다.하예진은 방금 아들을 안고 욕실에서 나오는 중이었다.“우빈이도 샤워 했네?”“응, 낮에 정신없이 놀아 졸린지 샤워를 시켜주는데 채 씻지도 못하고 잠들었어.”하예진은 아들을 침대에 눕혔다. 꼬마 녀석은 이미 잠들어 있었다.하예정은 웃으며 우빈이의 작은 얼굴을 살짝 꼬집었다. 깊은 잠이 등 우빈이는 이모가 자기 얼굴을 꼬집어도 깨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오늘 지율 형을 따라 실컷 놀았어. 어쩌다가 이렇게 한번 놀아주는 것도 좋아. 지율이는 공부 스트레스가 심할 거 아니야, 이제 겨우 고1인데... 위에 있는 형들은 다 공부 잘했다며. 노력하지 않으면 발목을 잡을 수도 있는데 형들이 꽉 잡을 수밖에.”“그건 그래. 이렇게 정신없이 놀고 나면 스트레스도 많이 풀릴걸.”하예정은 막내 도련님을 매우 이뻐했다.전지율은 말도 예쁘게 해서 하예정을 볼 때마다 달콤하게 형수님이라고 부르곤 했다.“그런데 넌 무슨 일 있어?”하예진은 동생이 무슨 일로 찾아온 줄 알았다.“응? 그냥 우빈이 보러 온 거야. 자고 있으니 난 작은 서재로 가봐야겠어. 언니도 일찍 쉬어.”“지금이 몇 시인데 잠이 오겠어? 그래도 열 시는 돼야 자지.”이제 겨우 저녁 7시쯤이다.하예진은 웃으며 말을 이었다.“알았어, 넌 네 일 봐. 너무 스트레스 받지 말고. 너 또한 네 시어머니 못지않게 우수하니까. 네 시어머니랑 어르신은 이미 장부에 익숙한 데다 경험도 많잖아. 넌 이제 겨우 시작이야. 경험은 모두 0에서 시작하는 거니 화이팅해!”하예정도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나도 처음에는 스트레스가 심했는데 어머님이 익숙해질 때까지 몇 년의 시간을 주시겠대. 그래서 마음이 훨씬 편해졌어. 언니, 나 정말 열심히 할 거야. 전씨 가문의 사모님 소리 헛듣지 않게 말이야. 이것도 못해내면 내가 너무 쓸모 없어 보이잖아. ”하예진은 달콤히 자는 아들에게 이불을 덮어줬다.“그래, 천천히 해. 가서 네 일
“알겠어요, 할머니.”노동명은 실망했다.하지만 2분도 지나지 않아 곧 다시 회복했다.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포기할 그가 아니었다.“시간도 늦었으니 일찍 들어가 보거라.”할머니는 그를 쫓아내려 했다.노동명은 웃으면서 말했다.“할머니, 절 쫓으시는 거예요? 이제 태윤이랑 한잔할까 하는데요.”“난 오늘 술을 안 마실 건데.”전태윤은 단칼에 거절했다.노동명은 헤헤 웃으며 말했다.“이젠 접대할 때에도 술을 잘 안 마신다고 하던데 마누라님이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서 안 마시는 거야? 담배도, 술도, 도박도 안 하고 모범 남편이 다 됐네.”할머니와 태윤 두 사람은 동시에 입을 열었다.“좀 따라배워.”“...”결국 노동명은 서원 리조트를 떠났다.그가 떠난 후, 전태윤은 계속 할머니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이가 좋아 할 얘기도 많았다. 할머니가 졸려 하품을 해서야 전태윤은 얘기를 멈추고 말했다.“피곤하세요? 방으로 돌아가 쉬세요.”할머니는 또 하품하고는 말했다.“나이는 못 속이겠구나. 시간이 되기만 하면 잠이 오고 날이 밝기도 전에 스스로 깨나니 말이야.”그녀는 일어나서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전태윤은 할머니가 방으로 돌아가 휴식을 취한 후에야 위층으로 올라갔다.하예정이 침대에서 기다리고 있는 줄로만 알았지만 방문을 열자 깜깜한 방안에는 아무도 없었다.그는 불을 켜고 방 안을 다시 한번 훑어보았지만 와이프의 아름다운 모습은 찾지 못했다.하예정이 처형의 방에 있는 줄로 안 전태윤은 서둘러 아내를 찾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그는 목욕한 후 침대에 앉아서 잡지를 보았지만 밤 11시가 될 때까지도 와이프는 방으로 돌아오지 않았다.혼자 방 안에 있는 느낌을 싫어하기도 하고 익숙하지도 않은 그는 어쩔 수 없이 아내를 찾아 나섰다.하예정이 하예진의 방에서 묵고 있는 줄로만 안 그는 문 앞에서 방안의 인기척을 엿들었는대 어무런 말소리도 들리지 않았다.결국 그는 문을 두드렸다.잠이 든 하예진은 어렴풋이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 일어
2분도 안 돼 전태윤을 아내를 안고 침대로 가서 더 많은 것을 요구했다.그렇게 둘은 뜨거운 밤을 보냈다.다음날은 심효진이 친정으로 돌아와 부모님을 뵙는 날이라 하예정 자매는 모두 심씨네 집에 가서 밥을 먹었다.전태윤은 당연히 아내를 따라갔다.심효진은 부모님을 뵌 다음 날 소정남과 신혼여행을 떠났다.짧은 연휴도 끝나 출근할 사람은 출근하고 등교하는 사람은 등교하고 가게들도 다 열기 시작했다.모두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왔다.하예정은 매일 가게를 보는 것 외에도 시간을 내서 성소현과 함께 채소밭의 진행 상황을 살펴야 했다.채소밭은 이미 계획에 따라 제철의 채소를 심었다.푸르고 싱싱한 밭을 지켜보던 성소현은 하예정에게 말했다.“관리원이 일주일만 더 있으면 이 채소들을 팔 수 있게 된다고 했어.”하예정은 밭을 바라보며 말했다.“우리랑 계약을 체결한 호텔과 학교 식당에서 이 채소들을 다 받을 수 있을까요?”“당연히 다는 못 받지. 우리 밭은 면적이 커서 심은 채소의 양도 엄청나. 그 몇 집의 호텔과 학교 식당으로는 아직 다 받아들일 수는 없어. 돌아가서 다시 몇 개의 큰 호텔과 식당과 더 협상해야 해.”“야채 시장의 일부 가게도 고려해요.”하예정도 입을 열었다.“이제 겨우 시작이니 규모가 크든 작든 우리의 채소를 들이겠다고만 하면 모두 협력하도록 해요.”그녀들은 집안의 도움을 받지 않고 되도록 자기 능력에 의지하여 채소들을 팔 생각이었다.하예정은 자신이 앞으로 전씨 일가의 안방마님이 되어 많은 산업을 경영해야 할 것을 생각했다. 그건 장부만 보며 외우기만 하면 될것이 아니라 각 분야의 산업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그녀는 경험을 쌓기 위해 직접 주문을 받는 것부터 시작할 생각이었다.성소현은 하예정의 제안에 동의했다.두 사람은 채소밭을 쭉 둘러본 후 마을의 한 음식점에서 점심을 먹고 나서야 시내로 돌아갔다.현재 채소밭에 심은 채소는 일주일 후면 공급할 수 있기에 둘은 시내로 돌아온 후 더 많은 협력업체를 찾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하예
박씨 아저씨는 속으로 슬쩍 웃었다.큰 도련님은 이제 완전히 아내 바라기이다.이때, 하예정도 웃으며 말했다.“이제 곧 집에 갈 거예요. 당신 집에 돌아왔어요?”“응, 나 방금 집에 도착했어. 지금 어디야? 데리러 갈게.”“괜찮아요. 이미 집에 도착한 거면 데리러 올 필요 없어요. 나절로 운전해서 가면 되니까요. 아직 집에 도착하지 않아서 돌아가는 길에 데리러 오는 것과는 다르잖아요. 집에서 기다려요, 10분 후면 집에 도착할 거예요.”“그럼 조심해서 운전해. 비행기를 모는 것처럼 몰지 말고.”하예정은 웃으며 말했다.“나 비행기 몰 줄도 몰라요.”그녀는 가끔 늦은 밤에 돌아갈 때 차가 적으면 한바탕 돌진하곤 했다. 하지만 곧 그녀를 따라다니며 보호하는 경호원들에게 잡혔다.전태윤에게 들킨 후 한바탕 꾸지람을 들었을 뿐만 아니라 또 언니 하예진에게까지 일러바쳐 혼쭐이 나곤 했다.하예정은 남편이 언니에게 고자질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아챘다.그녀가 자기가 한 말을 마음에 두지 않기만 하면 언니를 찾아가 일러바쳤다.그때부터 그녀는 무슨 일을 하던 남편이 언니에게 일러바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조심스럽게 남편의 기분을 고려해야 했다.이 정도로 고자질하기를 좋아하는 남자를 본 적이 없다.언니에게 이 일로 불평해도 언니는 그저 이건 전태윤이 그녀를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작은 일로 다투기 싫어 자신에게 말해 동생에게 주의를 주게 하는 것이라고 한다.그러니 이건 관심이지, 고자질하는 게 아니라며 전태윤의 편을 들었다.언니까지 이렇게 말하니 또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언니에게 전태윤이라는 제부의 지위는 이미 동생인 그녀를 능가했다.“야식 먹을래? 내가 직접 요리해서 준비해 줄게.”“나랑 같이 먹지도 않잖아요. 나 혼자 먹는 야식은 재미없는걸요. 안 먹을래요. 살이 찔까 봐 두렵네요.”전태윤은 몸매를 잘 유지하고 있었다.그는 야식을 절대 먹지 않는다.저녁에 접대가 있을 때도 음식은 별로 먹지 않았고 술만 가끔 두 모금씩 마셨다. 보통
“여보, 나 돌아왔어요.”하예정은 간식을 들고 방으로 들어가며 소리쳤다.전태윤은 일어나서 아내를 맞이할 때 그녀가 일회용 도시락이 들어 있는 봉지를 들고 있는 것을 보았다.“야식 안 먹는다며? 내가 만든 야식 먹기 싫어서 그렇게 말한 거야?”전태윤은 잔뜩 기분이 좋지 않던 터라 작은 일에도 불만을 토로하며 말했다.“아니에요. 당신의 요리 솜씨는 이미 저를 능가한걸요. 야시장을 지날 때 예전에 자주 먹던 간식이 생각나서 못 참고 포장해서 가져온 거예요.”전태윤은 이런 싸구려 간식을 만들 줄 몰랐다. 예전에 그가 보통 사람들이 자주 먹는 아침을 먹은 것도 가난한 척 연기하기 위해서였다. 하예정은 그런 줄도 모르고 항상 아침을 포장해 와서 먹었고 진짜 신분을 들키고 싶지 않았던 전태윤도 잠자코 먹었다.그 때문에 전에 하예정이 만들어준 음식도 그는 몇 숟가락만 들었을 뿐이었다.“같이 드실래요?”하예정은 소파로 가서 앉아 일회용 도시락을 꺼내 테이블 위에 놓았다.전태윤은 도시락 안에 매운 닭발이랑 구운 닭 날개가 들어 있는 것을 보고 돌아서서 일회용 장갑을 가져다주었다.“먹고 싶으면 박씨 아저씨에게 말해. 집안의 요리사가 만든 것이 밖에서 파는 것보다 맛있을 거야.”“가끔은 바깥에서 파는 그 맛이 생각나서요. 내일은 언니 가게에 가서 토스트도 먹고 싶어요.”그녀는 일반인의 평범한 생활을 좋아했다.전태윤도 아내의 뜻을 알고 있다.그는 아내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았다. 이런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 그는 같이 먹지 않았다.양이 많지 않아 하예정 혼자서 순식간에 해결했다.다 먹은 후에도 여전히 여운이 남아 있었다.“내일 바쁘지만 않더라면 술도 몇 잔 하고 싶네요.”전태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매일 일 생각만 하고. 당신 남편 이름까지 까먹은 건 아니야? 나에게 사랑한다고 말한 지 얼마나 오래됐는지 알아? 꽃을 선물한지도, 새 옷을 사준 지도 얼마나 오래 지났는지 기억나? 하루 종일 일하느라 힘들어 죽을 지경이여도 집에 돌아오면 당
“여보, 사랑해요.”하예정은 또 전태윤이 가장 좋아하는 말을 해주었다.“앞으로 매일 당신에게 꽃을 보내줄게요, 어때요?”꽃을 보내주는 건 쉬운 일이다.이제 여운초에게 매일 꽃다발을 준비해서 전태윤에게 보내달라고 부탁하면 되는 일이었다.“사무실에 꽃병이 한 개밖에 없으니까 하루건너 보내도 돼.”전태윤은 겨우 기분이 조금 좋아진 듯했다.하예진은 계속해 말했다.“아니면 당신 사무실에 꽃병 몇 개 더 보내줄까요?”“꽃병 파는 사람으로 보이겠어.”“누가 당신을 꽃병 파는 사람으로 보겠어요. 그럼 꽃병은 안 보낼게요. 대신 하루 건너씩 꽃다발을 보내줄게요. 내일은 금요일이죠? 토요일에는 우리 같이 쇼핑하러 갈까요? 새 옷 사줄게요.”그의 옷장에는 새 옷으로 가득했다.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패션 디자이너가 그를 위해 새 옷을 맞춤 제작해 주었다.하지만 전태윤은 여전히 아내에게서 옷을 선물 받는 것을 좋아했다.지금 하예정의 지갑은 점점 두꺼워졌다. 전태윤의 신분을 알게 된 후 그에게 옷을 사줄 때에도 도련님의 신분에 맞는 명품을 사주곤 했다.그래서 전태윤의 일상 복장은 다 하예정이 사준 옷이다.전태윤은 또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그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꽃이나 옷 같은 물건이 아니었다.“여보, 당신도 알다시피 내가 투자한 채소밭은 지금 대량으로 수출할 예정이라 더 많은 협력업체를 체결해야 해요. 소현 언니와도 비즈니스에 대해 논의하여야 하고요. 게다가 집안의 작은 비즈니스는 우리 여자들이 책임져야 하잖아요. 나도 가서 보고 배워야죠. 그러다 보니 이렇게 바빠졌네요. 하지만 항상 당신을 마음에 두고 있어요. 언니를 제외하고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바로 당신이에요. 우빈이보다 더 사랑해요.”그녀는 겨우 열흘 동안 바빴을 뿐인데 남편은 이미 참지 못할 지경이였다.갓 혼인신고를 하였을 때 전태윤은 매일 한밤중이 되어서야 집에 돌아왔지만 그녀는 불평 한마디 하지 않았었다.하예정의 생각을 알았다면 전태윤은 이렇게 투덜거렸을지도 모
“몸 주의해. 건강이 제일이야.”하예진은 그런 동생이 마음 아팠다.“언니, 나 괜찮아.”하예정이 어젯밤에 잠을 설친 이유는 남편 때문이었다.부부생활에 대한 얘기는 언니에게 말하기 좀 난처했다.“언니, 서현주가 나왔다며?”하예정이 갑자기 물었다.하예진은 잠시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임신했대. 갓 잡혔을 때 막 임신한 거라 들어간 후 기분도 나쁘고 해서 발견 하지 못했어. 지금 이미 석 달이 됐는데 주형인이 도와 옥외 집행 수속을 밟았어.”하지만 아이를 낳은 후 받아야 할 벌은 받아야 한다.하예정은 그 말을 듣고 입을 열었다.“그 아이 참 때맞춰 왔네.”주형인은 아직 서현주에 대해 감정이 남아있었다.부모님과 누나가 이혼하라고 압력을 줬지만 그에 동의하지 않았다.서현주가 벌을 적게 받도록 하예진을 찾아 양해를 구하기도 했다.주요한 원인으로는 주형인은 자신이 서현주와 이혼해도 하예진이 자기 곁으로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부모님과 누나는 너무 단순하게 생각하고 있다.둘 사이에 아들이 있는 걸 생각해 우빈이를 위해서라도 주형인이 재혼하자고 하면 바로 동의할 줄 알았다.노동명이 지금 하예진에게 구애하고 있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구애하는 사람이 없어도 그녀는 절대 주형인과 재혼하지 않을 것이다.하예진은 전에 자기 입으로 절대 주형인과 재혼 같은 걸 할 일이 없을 거라 분명히 말했다.주형인이 후회하며 재혼하고 싶어도 더 이상 기회가 없을 뿐이다.그는 근본적으로 노동명의 상대가 되지 못하니까.노동명은 우빈이의 마음까지 얻어 꼬마는 지금 동명 아저씨와 아주 잘 지내고 있다.하예진은 절대 돌아오지 않을 것이고 서현주도 자기 때문에 다른사람에게 우빈이를 해치도록 강요당했기에 그는 서현주에게 미안할 따름이었다.서현주가 임신한 것을 알게 된 주형인은 재빨리 그녀를 도와 옥외 집행을 신청하고 집으로 데려갔다.그는 서현주를 데리고 나온 후 셋방을 물리고 새로 인테리어한 신혼집으로 이사했다.어머니 김은희는 고향에 돌아가
노동명은 들어오자마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다시 돌아갔다.하예정은 그런 그를 보고 어리둥절해 났다.‘무슨 뜻이지?’포기한 걸까?아니면 그녀가 있는 것을 보고 감히 들어오지 못하는 걸까?노동명이 왜 다시 돌아서서 갔는지 짐작하고 있을 때 그는 곧 다시 들어왔다.그리고 손에는 꽃다발이 들고 있었다.꽃다발을 가져오는 것을 잊었던 것이다.하예정은 순간 깨달았다.그녀는 언니를 향해 보았다. 언니는 여전히 담담한 표정이었다.아직 이른 시간이라 가게에는 하예정 외의 손님은 없었고 두 점원도 모두 한쪽에 앉아 아침 식사를 하고 있었다.누군가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서야 점원들은 일어나 손님을 맞이하려 했다.들어온 사람이 다시 돌아온 노동명인 것을 보고 두 점원은 다시 앉아 아침을 계속 먹었다.노동명이 하예진에 대한 마음은 뚜렷했다. 점원이 모르는 척하려고 해도 무리였다.“예진아.”노동명이 꽃다발을 안고 걸어왔다.“예정 씨, 일찍 오셨네요.”그는 또 하예정을 향해 인사를 했다.하에정은 인사에 응하고는 말했다.“언니 가게의 토스트를 먹은 지도 오래됐고 먹고 싶기도 하고 해서 일찍 온 거예요. 동명 씨도 일찍 오셨네요.”지금은 겨우 7시였다.전태윤은 그녀가 외출할 때까지도 자고 있었다.그녀는 외출하기 전에 특별히 침대 머리맡에 메모를 한 장 남겨주었다. 그가 깨어날 때까지 기다리지 않았다고 남편을 소홀히 했다고 원망하는 것을 피하고자 말이다.앞으로는 좀 더 시간을 들여 남편에게 관심을 줘야 했다. 그렇지 않았다간 그녀의 허리가 남아나질 않게 된다.“평소에도 거의 이 시간에 와요.”이렇게 답하고는 노동명은 계속하여 물었다.“우빈이는요?”“우빈이는 우리 집에 있어요. 이따가 일구 씨가 수업하러 데려다 줄 거예요.”하예진은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야 했기에 우빈이를 데리고 있기도 불편해서 꼬마는 지금 저녁이면 이모네 집에 묵고 있다.그리고 아침에 다시 강일구가 수업하러 데려다준다.노동명은 알겠다는 듯이 응하고는 그제야 꽃다발을 하예진 앞
“할머니, 제가 뭐가 똑똑해요, 전 진짜 멍청해요. 할머니야말로 대단하신 분이죠.”전이혁은 할머니께 아부하는 멘트를 던졌다.하지만 그것이 단순히 아부라고 할 수 없는 게, 할머니는 정말 대단한 인물이었다. 남들이 보기엔 전씨 가문 자손들은 이미 충분히 뛰어난 사람이었지만 그래도 할머니의 손바닥 안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할머니는 마치 삼장법사였고 자손들은 손오공 같은 존재로 손오공이 아무리 강해도 삼장법사 앞에선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할머니, 저 진짜 꼼수 같은 거 부리지 않아요.”“그건 네 사정이고. 어떻게 하든 네 마음대로 해. 할머니는 이미 너에게 신붓감을 골라줬고, 대시하든 포기하든 그것 역시 너에게 달린 일이야. 1년이면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줬다고 생각한다.”“하지만 한 가지 경고할게. 지금까지 우리 전씨 가문에는 일편단심인 남자만 있었을 뿐 양다리를 걸치는 남자는 없었어. 네가 전씨 가문의 가풍을 망가뜨리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전이혁은 최대한 얼굴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알겠어요, 할머니. 저 이제 운전해야 해요. 도착해서 또 이야기 나눠요.”“그래, 운전 조심하고.”할머니는 전이혁에게 안전을 당부하고 전화를 끊었다.전화를 끊은 뒤, 할머니는 곧장 양씨 아저씨에게 전화를 걸었다.“양 집사, 내 생선은?”할머니는 자신이 잡은 생선을 혹시 다른 사람이 먹을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양씨 아저씨는 웃으며 대답했다.“어르신께서 구운 생선은 냄새가 정말 좋아요. 아무도 어르신의 생선을 뺏어 먹으려 하지 않으니 안심하세요.”그들 몇몇 자식들 따라 직원 숙소에서 지내는 할머니들은 전씨 할머니가 좋은 분인 걸 알고 함께 수다도 떨고 낚시도 하지만 전씨 가문의 중심인 전씨 할머니의 권위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그들은 전씨 할머니의 물건을 건드리는 일은 없었다. 혹시나 건드렸다가 이곳에서 일하는 자식들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었으니까.서원 리조트의 모든 직원은 훌륭한 대우와 복지를 받고 있었다. 산기슭에 지어진 숙소는 혼자인
두 사람은 함께 아침을 먹은 후, 방을 나섰다.그러자 집사는 전태윤이 다음에 올 때 묵을 수 있도록 스위트룸을 원래 상태로 정리하기 시작했다.도아영은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서 다시 잠을 청했다.전이혁은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었고, 할머니가 전화를 받자 물었다.“할머니, 지금 어디 계세요?”“리조트에 있어. 무슨 일이야? 할머니 보고 싶어? 그렇다면 와서 할머니랑 같이 밥 한 끼 먹자.”그러더니 할머니는 한 마디 덧붙였다.“지금 생선이 막 익었어. 냄새 진짜 좋다.”전이혁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침부터 생선 구워 드세요?”“너한테 말한 거 아니야. 친구들이랑 얘기 중이었어. 아침부터 생선 구우면 안 돼? 그리고 지금 아침도 아니잖아. 아홉 시도 넘었네, 해가 중천에 뜨려고 하고 있어.”“오늘 날씨도 풀렸고, 할머니는 친구들이랑 낚시 갔다가 지금은 잡은 생선 구워 먹고 있어. 소풍하는 느낌이라 꽤 괜찮아.”전이혁은 그 모습이 쉽게 그려졌다. 산 아래에는 맑은 시냇물이 흐르고 있었고 물 아래에는 물고기와 새우들이 헤엄치고 있었다.할머니는 가끔 몇몇 직원들의 어머니들과 함께 낚시하곤 했었다. 냇가에는 큰 나무 한 그루 있었는데 그 아래에는 돌로 된 테이블이 몇 개 있어 할머니의 한마디면 집사는 바비큐 그릴을 가져와 그들이 직접 구워 먹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할머니가 말하길, 그들은 먹는 것보다는 굽는 과정을 더 즐겼다. 비록 직원이 구워줄 수도 있었지만, 그들은 다른 사람이 구워주는 건 맛이 없다며 투덜대기도 했었다. 그리고 그들은 다 먹지 못할 때면 남은 건 직원들에게 나눠주기도 했었다.서원 리조트의 직원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할머니는 권위를 내세우며 직원들에게 막 대하지 않고 옆집 할머니처럼 따뜻하게 대해준다는 사실을.“할머니, 생선 더 잡아서 구워주세요. 저 지금 갈게요.”전이혁은 결심한 듯 할머니에게 진실을 털어놓으러 갈 생각이었다.“네가 와서 직접 잡아. 손질까지 하면 할머니가 구워줄게.”그러더니 할머니는 전이혁에게 물었다.“
“여긴 호텔 맞고, 당연히 아영 씨가 묵던 방일 수가 없죠. 어제 아영 씨가 취해서 방에 데려다줬는데 눕자마자 토하더라고요. 침대랑 바닥까지 모두 엉망이 돼서 어쩔 수 없이 다른 방으로 옮겼어요.”전이혁은 다시 자리에 앉더니 도아영에게 말했다.“아영 씨 술 취하면 정말 감당하기 힘들어요. 앞으로 술 좀 줄이는 게 좋을 것 같네요.”도아영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입을 뗐다.“제가 전이혁 씨랑 함께 많이 마신 건 알겠는데 그 뒤로는 기억이 하나도 안 나네요. 그런데 그 술 진짜 맛있었어요. 제가 해주시로 돌아갈 때 한 박스만 챙겨줘요. 기분 안 좋을 때 집에서 한두 잔 마시려고요.”“아영 씨가 그 정도로 술이 부족하진 않을 텐데요?”전이혁은 도아영의 집에 좋은 술이 부족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그는 도아영의 말이 전혀 믿기지 않았다.“맞아요. 술이 부족한 건 아니에요. 하지만 전이혁 씨가 준 술은 부족하죠.”전이혁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그래요. 아영 씨가 돌아갈 때 한 박스 챙겨줄게요. 그리고 관성 특산물도 좀 챙길 테니 같이 가져가요. 어찌 되었든 먼 길 왔는데 헛걸음하게 하면 안 되니까요.”도아영은 웃으며 대답했다.“맞아요. 헛걸음하게 만들면 안 되죠.”그러더니 그녀는 전이혁의 옆으로 다가가 소파에 기대어 앉았다.“전이혁 씨, 여기 꿀 있어요? 머리가 아파서 그러는데 저 꿀물 좀 타 주면 안 돼요?”“아까는 참을 만하다면서요?”전이혁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일단 세수 좀 하고요. 그리고 타 줄게요. 아영 씨도 세수해요.”“목욕할 거면 아영 씨 방에 가서 해요. 여긴 우리 형이 자주 묵는 스위트룸인데, 아영 씨니까 형이 허락한 거지, 다른 사람이었으면 형수님이 부탁해도 절대 안 된다고 했을 거예요.”전이혁의 큰형과 형수님은 도아영이 할머니께서 정해준 자신의 신붓감이라는 걸 알고,이미 도아영을 가족이나 다름없이 생각하고 있었다.어젯밤, 전이혁이 그런 말을 했을 때 도아영은 살짝 기분이 상했었다. 하지만
전이혁은 얼른 도아영을 부축하더니 살짝 귀찮다는 듯이 물었다.“아영 씨, 또 왜 그래요?”“저... 화장실... ”도아영은 눈이 풀린 채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화장실 가고 싶어요?”도아영은 비틀거리며 제대로 걷기도 힘든 상태였고 전이혁의 표정은 점점 굳어지기 시작했다. 도아영을 혼자 화장실에 가게 둘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남자인 자신이 부축해서 데려가는 것도 난감한 일이었다.도아영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비틀거리며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전이혁은 급히 그녀를 부축하며 다시 한번 물었다.“혼자 괜찮겠어요?”도아영은 묵묵부답이었다. 그녀는 이미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이 누군지도 모를 정도로 심하게 취해 있었다.도아영의 상태를 보아하니 전이혁은 어쩔 수 없이 그녀를 부축해 화장실로 데려가야 했다. 전이혁은 가면서도 입으로는 끊임없이 투덜거렸다.그는 도아영을 화장실로 들여보내고 도망치듯 밖으로 뛰어나왔다.전이혁은 도아영이 나올 때까지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10분이 넘도록 나오지 않았고, 노크를 해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 결국, 전이혁은 걱정된 마음에 문을 살짝 열어 안을 들여다봤지만 무슨 일인지 도아영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어? 어디 간 거야?’전이혁은 의심스러운 마음에 문을 활짝 열고 들어가 보았다. 그 결과, 도아영은 화장실 문 옆 벽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그러니 문틈 사이로 도아영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었다.“이 여자 진짜!”도아영의 모습을 보자, 전이혁은 앞으로 절대 그녀에게 술을 많이 마시게 하지 않으리라고 결심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전이혁은 앞으로 자신이 도아영과 함께 밥을 먹게 된다면 그녀에게 술을 마시지 못하게 할 생각이었다. 자신 말고는 도아영이 다른 누구와 함께 얼마나 마시든, 그건 전이혁이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전이혁은 안으로 들어가 도아영을 안고 나온 뒤, 그녀를 침대에 눕혔다.그는 원래 방으로 돌아가 쉴 예정이었지만, 도아영의 상태를 보아하니 도저히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결국 그날 저녁,
한편 호텔에서 도아영을 돌보던 전이혁은 전창빈의 메시지를 확인하더니 단독으로 그에게 음성 메시지로 물었다.[너 그 먼 곳까지 가서 가정 요리사를 하려고?]전창빈은 소파에 앉아 답장을 보냈다.[안 될 건 없지? 선우씨 가문의 가정 요리사 자리는 도전적이잖아. 내가 합격할 수 있을지 시험해 보고 싶었어. 다행히도 형 동생이 모든 경쟁자를 물리쳤지 뭐야. 난관을 하나둘씩 돌파했어.]전이혁이 회답했다.[요리사 하나 뽑는 걸 대통령 선거처럼 하는구먼. 얼마나 있을 계획이야? 설날도 얼마 안 남았는데 명절에는 안 오려고?]전창빈이 답장했다.[설날에는 아마 못 갈 것 같아. 여기 주인이 날 해고하면 그때나 갈 수는 있겠는지.]전이혁이 피식 웃었다.[네 실력으로는 해고당할 리가 없잖아. 네가 주인을 해고하는 게 더 말이 되겠다. 이해가 안 가. 왜 그 먼 곳까지 가려고 한 거야? 넌 사업도 있는데... 어디서 요리하든 다 마찬가지일 텐데 굳이 몇천 리나 떨어진 곳까지 갈 필요가 있나? 거기 추울 텐데 너 괜찮겠어?]전창빈이 대답했다.[우리 추위를 못 타본 것도 아니고. 형도 할머니에 의해 눈이 수북이 쌓인 산으로 버려지지 않았어? 내 얘긴 그만하고... 형은 어때? 우리 미래의 형수님께 구애하기 시작했어?]‘난 벌써 움직이고 있는데 형이 아직도 움직이지 않는다면... 내가 나중에 민아 씨와 함께 할머니께 인사를 드리러 갈 때 형은 대체 어쩌려고?’전창빈은 속으로 생각했다.전씨 할머니의 지팡이가 전창빈의 등짝을 때리지 않는다면 해가 서쪽에 뜨는 거나 다름없을 것이다.[말도 마라. 정말 귀찮아. 큰형수님이 오늘 저녁에 우리한테 밥 사주셨어.]전창빈이 웃으며 회답했다.[하하! 괴로웠겠네.][내 말이. 할머니께서 나에게 정해주신 그 여자분이 큰형수님을 찾아가 하소연했더니 큰형수님이 우리 두 사람에게 밥을 사주신 거 있지.][형이 우리 형수님한테 무슨 짓이라도 했어?][아직 너의 형수님이 아니거든!]전이혁은 전창빈의 호칭을 정정했다. 그는 도아영과
“저는 앞으로 큰아가씨의 평가에 근거해서 요리 방법을 조정해 나갈 거예요. 그렇게 해야만 실력을 키울 수 있을 테니까요. 제가 만드는 모든 요리를 큰아가씨께서 만족해하시면 제가 여기에서 졸업할 수 있겠네요.”강진은 웃으며 대답했다.“그렇게 되면 큰아가씨께서 당신을 놓아주지 않을걸요.”‘평생 선우민아 씨를 위해 요리해 드리는 건 기쁜 일이지.'이 말을 입 밖으로 내뱉고 싶었지만 전창빈은 꾹 참았다. 이런 말은 입 밖에 내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내면 오해를 살 수 있으니까. 설령 전창빈이 선우민아에게 애정 공세를 하는 것이 두 번째 목표라고 해도 이런 생각을 드러내서는 절대로 안 된다.선우민아가 가업을 운영한다는 건 그녀가 매우 유능한 인물이라는 증거다. 이렇게 강한 강한 여성은 쉽게 넘볼 수 없는 상대이다.전호영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는 너무 힘들어서 하예정의 도움을 받은 끝에야 지름길을 택할 수 있었고 고현의 마음을 얻었다.강진은 그 말이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걸 깨닫고는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전창빈 씨, 오늘 오후 내내 바쁘셨는데 일찍 쉬세요. 내일 아침 큰아가씨를 위해 아침식사를 준비해야 합니다. 가장 일찍 아침을 드시는 분은 큰아가씨와 민기 도련님입니다. 민기 도련님은 학교에 가야 해서 일찍 식사하시고 큰아가씨는 매일 민기 도련님을 학교에 데려다주신 후 회사에 가시니까 두 분은 늘 함께 식사하시는 편이에요. 하여 아침 7시쯤이면 큰아가씨와 민기 도련님의 아침을 준비하시면 됩니다. 다른 분들의 아침은 9시 이후에 준비하시면 돼요.”전창빈이 말을 건넸다.“그 시간대면 아침과 점심을 함께 드시는 거네요.”“어르신과 사모님은 그렇죠. 점심 무렵에 일어나셨다가 식사 후에는 외출하셔서 저녁에야 돌아오세요. 때로는 안 오시기도 하는데, 그럴 땐 제가 미리 알려드릴게요. 안 오시는 날은 창빈 씨가 쉬는 거나 마찬가지죠. 그냥 자신의 배만 채우시면 돼요.”여기에서는 사실상 선우민아 자매만 아침을 먹는 셈이다.“큰아
동생 선우정아가 어이없어하는 모습을 보며 선우민아는 미소를 지었다.“알았어. 지금은 네가 전창빈 씨를 좋아하지 않는다 치더라도 앞으로 어떻게 될진 모르는 일이니까. 앞으로 매일 여기 와서 식사해. 전창빈 씨와 접촉할 기회도 많아져야 그에 대해 더 잘 알게 될 거 아니야. 만약 그가 정말 괜찮은 사람이라면 거리가 멀어도 너희 부모님께서도 어쩔 수 없이 동의하실 거야. 혹은 전창빈 씨에게 우리 지역에서 사업을 하게 하고 여기서 집을 사도록 하든가.”선우정아는 또 벙어리가 되어버렸다.선우민아가 이렇게 말하는 걸 보니 선우정아는 앞으로는 감히 그 집에 밥 먹으러 가기도 어려울 것 같다고 여겼다.선우민아가 자꾸 자신이 전창빈을 좋아한다고 오해하고 있지 않는가.전창빈은 미래의 아내는 지금 미래 처제가 자기를 좋아한다고 오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전이혁은 강진을 따라 숙소로 돌아갔다. 강진은 웃으며 축하의 말을 전했다.“전창빈 씨, 이제 우리는 동료가 되었군요. 오래 함께 일했으면 좋겠습니다.”선우씨 가문의 여러 집안이 같은 대저택 안에서 함께 살고 있었지만 집안마다 독립된 공간이 있었다.선우민아의 요리사는 자주 교체되는 편이었기에 강진 역시 1년 정도는 함께 일할 사람을 원했다.요리사와 친해지기도 전에 퇴직하는 경우가 너무 많았다.전창빈도 웃으며 말을 이었다.“저도 집사님과 오래 함께 일하고 싶습니다. 앞으로 제가 요리들을 더 연구해서 큰아가씨께서 제 요리만 먹고 싶어 하도록 해야겠네요.”“큰아가씨께서 창빈 씨 요리만 고집하게 만들면 정말 대단한 거예요. 요리 대회에 나가면 ‘요리의 신'이라는 칭호를 받을 수 있을 만큼요.”선우민아의 입맛을 사로잡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전창빈은 웃으며 말했다.“‘요리의 신' 같은 건 관심 없어요. 저는 단지 제 요리 실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서 손님들을 만족시키고 싶을 뿐이죠.”전창빈은 그가 고용한 요리사들에게는 항상 조언을 해주곤 한다. 본인이 잘 배워야 현재 이끌고 있는 요리사들도
선우민아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저런 사업을 가진 사람을 네가 정말 좋아한다면 작은아버지와 숙모도 반대하지 않으실 거야. 다만 전창빈 씨가 관성 사람이라 우리랑 거리가 너무 멀어. 작은아버지와 숙모는 네가 먼 곳으로 시집가는 걸 아쉬워할 수도 있을 거야.”선우정아는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언니! 제가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어요? 저는 정말 그런 마음 없단 말이에요. 오히려 저는 그분이 언니랑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우리 자매 일곱 명 중 언니가 맏이라 당연히 언니가 먼저 시집가야죠. 제가 언니를 앞지를 순 없잖아요.”착각인지 정말 본 건지, 선우정아는 전창빈이 선우민아를 바라보는 눈빛에서 특별한 시선이 느껴졌다.그리고 전창빈은 사실 정말로 선우민아를 위해 온 거였다.아니, 정확히는 선우민아의 까다로운 입맛을 만족시켜주기 위해 온 것이다. 그녀를 만족시킬 수 있다면 다른 손님들도 분명히 만족시킬 수 있을 테니까.선우정아는 생각했다. 선우민아처럼 입맛이 까다로운 사람은 많지 않을 거라고.선우민아는 손을 뻗어 동생의 볼을 살짝 꼬집으며 말했다.“우리 나이 차이도 얼마 안 나잖아. 게다가 사촌 자매이기도 하기 때문에 네가 나보다 먼저 시집간다고 해도 전혀 문제가 안 되거든. 나는 당분간 시집갈 생각 없어. 만약 고려한다 해도 이 지역의 사람일 거야. 생각해봐, 민기와 민수는 아직 몇 살밖에 안 됐는데 애들이 커서 사업을 이어받을 수 있을 때까지 적어도 20년은 더 기다려야 되잖아. 이 20년 동안 우리 자매는 계속 회사를 떠받쳐야 해. 만약 우리가 먼 곳으로 시집가면, 누가 회사를 이끌겠어? 셋째와 넷째에게 그런 능력이 있는지 지켜봐야 할 거야 아니야.”셋째 동생과 넷째 동생도 이제 성인이 되어 사업을 배우기 시작했지만 아직은 거대한 가업을 떠받칠 능력이 되지 못했다.하여 선우민아는 자연스레 먼 곳으로 시집갈 생각이 없었다. 시집을 간다 해도 A시의 남자에게 시집갈 것이다. 그래야 시집가서도 친정 회사를 계속 관리할 수 있으니까.앞으로 선우민기
전창빈이 말했다.“행동으로 보여드리죠.”선우정아는 눈썹을 치켜들며 웃었다.“전이혁 씨는 정말 자신만만하신가 봐요.”선우민아는 선우정아를 한 번 흘겨보더니 전창빈에게 물었다.“그럼 언제부터 출근 가능하세요?”“이 자리를 위해 온 만큼 언제든지 가능합니다.”선우민아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럼 내일부터 정식으로 출근하세요. 강 집사님께서 이미 숙소를 준비해 뒀을 테고 월급은 내일부터 계산됩니다. 한 달의 수습 기간이 있고 수습 기간 중 급여는 일당으로 지급됩니다. 공짜로 일을 시키진 않을 거예요.“누구든 마찬가지로 하루 일하면 하루 급여를 계산해 주었다.“집사님께서 어제 이미 숙소를 준비해 주셨습니다. 급여는 어떻게 계산되든 상관없습니다. 전 도전을 위해 온 거지 월급을 위해 온 게 아니니까요.”전이혁은 돈이 부족한 게 아니었다. 아내만 부족할 뿐...“좋아요. 지금은 숙소로 가서 쉬세요. 우리 집에서의 하루 세끼 준비 시간은 집사님께서 알려주실 거예요. 아침을 제외한 점심과 저녁 식사 준비 시간은 변함없어요.”선우씨 가문의 사람들 아침 식사는 각자 일어나는 시간이 다르기 때문에 딱히 정해진 시간이 없었다.전창빈이 대답했다.“알겠습니다. 집사님께 여쭤보겠습니다.”그는 다시 모두에게 고개를 끄덕인 뒤 자리를 떠났다.전창빈이 떠나자 선우민아도 일어서서 가족들에게 말했다.“저는 아직 처리할 일이 있어서 나가봐야 할 것 같아요. 민기한테는 주말에 데리고 나가주겠다고 전해주세요.”선우민기는 그녀보다 스무 살이나 어렸기 때문에 남동생을 아들처럼 키웠다.선우민기는 선우민아를 무서워하면서도 잘 따랐다.선우정아도 그녀의 언니를 따라 일어섰다.“저도 일 보러 갈게요.”한경주가 딸에게 당부했다.“접대할 때 술 너무 많이 마시지 마. 몸에 해로워.”“엄마,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5년 전의 제가 아닌걸요.”선우민아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회사를 막 이어받았을 때 그녀는 많은 사람에게 괴롭힘을 당했다. 그땐 위엄도, 경험도 없었고 회사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