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그 밖에 있는 여자들...”“할머니, 저 여자 없어요. 안이나 밖이나 저한테는 오직 예정이 하나뿐이에요. 밖에 여자들이 아무리 젊고 예뻐도 제 눈엔 오직 예정이라고요.”할머니는 고개를 끄덕였다.“나는 나를 믿어. 내가 직접 키워온 손자이니 매정하고 정의가 없는 인간은 아닐 거야. 물론 예정이도 믿지. 그 아이가 너를 사랑하니 한사코 너를 잘 지키고 밖에 있는 라이벌들을 상대하는 거란다.”“만약 너를 다툴 마음도 없고 신경 쓰고 지켜줄 마음도 없다면 아예 단념한 걸 거야.”전태윤은 안색이 어두워졌지만 할머니가 하신 말씀이 전부 사실이란 걸 알고 있다.하예정은 사랑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단연코 아니다. 무릇 전태윤이 바람을 피울 생각이 조금만 있어도 그녀는 단호하게 연을 끊을 것이다. 전태윤이 어쩔 새도 없이 그녀가 먼저 제삼자에게 자리를 내주며 번거로운 쟁탈을 피할 것이다.하예정은 남에게 뺏기는 사랑은 진짜 사랑이 아니라고 했다. 진짜 사랑도 아닌데 그녀가 왜 굳이 남겨둘까? 몸뚱어리를 붙잡고 있다고 마음마저 잡힐까? 차라리 깔끔하게 끝내는 게 상책이다. 더 험상궂게 사이가 틀어지기 전에...“할머니, 저는 도차연 씨한테 진짜 아무 느낌 없어요. 제대로 마주 본 적도 없다고요. 그 여자가 먼저 들러붙은 거고 예정이도 기어코 혼자 나서겠다고 한 거예요. 그래도 저는 항상 예정의 뒤에 있었어요. 도차연 씨가 감히 손만 대면 평생 후회하게 해줄 거라고요.”전태윤은 결국 할머니께 도차연에 관한 일을 해명했다.그가 돌아오기 전에 할머니는 일찌감치 박 집사를 통해 그 사건을 전해 듣게 되었을 것이다.도차연의 일방적인 사랑은 전태윤에게 있어서 불의의 재난과도 같았다.할머니가 웃으며 답했다.“도차연 그 계집애가 감히 우리 예정이한테 손을 대면 네가 나설 새도 없이 아마 예정이가 먼저 죽도록 패버릴 거다. 걔 이젠 주먹을 휘두른 지가 꽤 돼서 마침 몸이 근질근질할 거야.”전태윤도 웃었다.그의 아내는 정말 할머니가 말씀하신 그대로니까.“너희
할머니는 썩 내키지 않는 듯 말했다.“뭘 신경 써? 걔는 이미 초조해하고 있어. 나 여기 오기 전부터 호영의 전화 받고 다 도와줬어. 배추를 찾아줬으면 됐지 잘근잘근 썰어서 너희들한테 먹여주기까지 해야 해?”전태윤은 안색이 확 어두워졌다.할머니는 늘 배추를 언급하며 이 손자들을 돼지에 비유하고 있다.이렇게 잘생긴 돼지가 또 있을까?할머니는 왜 항상 그들을 돼지 취급하는 걸까?할머니는 하품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나 졸려. 가서 잘래. 너도 일찍 자.”“네, 주무세요 할머니.”어르신은 쉬시려고 위층에 올라가다가 대뜸 걸음을 멈추고 돌아서서 물었다.“동명이 퇴원 후에도 예진이가 가서 챙겨줘야 해? 그 녀석도 꽉 막힌 녀석이야. 분명 죽을 만큼 사랑하면서 왜 또 일부러 내려놓은 척하는 건데?”“그 자식 계속 아닌 척 시치미 떼면 제가 아예 처형한테 남자 소개해줄 거예요. 확 안달 나게 해야겠어요!”전태윤은 재빨리 친구를 구해줬다. 안 그러면 할머니가 잠시 여유가 생겨 노동명한테 신경이 쏠릴 테니까.“동명이 금방 퇴원해서 집에 갔어요. 걔 챙겨줄 가족들이 많을 테니 처형이 노씨 일가로 가서 챙겨줄 필요는 없을 거예요.”“동명이는 처형이 힘들어할까 봐 그런 거예요. 사실 걔가 제일 힘들어요. 처형은 이제 막 호텔을 경영하느라 사업 때문에 바쁠 테고 동명이도 처형이 힘들까 봐 마음 쓰는 거예요. 개는 아무리 힘들어도 당분간은 쭉 참을걸요.”만약 오랜 시간 재활 치료를 받았는데 전혀 진전이 없다면 노동명도 분명 또 화를 낼 것이다. 그때 가서 하예진이 계속 그를 자극하면 된다.“우빈의 아빠도 사고 났어요. 그 인간 현 와이프한테 칼로 수차례 찔려서 지금도 응급실에 누워있어요. 고비를 넘길지 모르겠네요. 처형도 가끔 우빈이 데리고 병원에 가봐야 해요.”할머니는 고개를 끄덕였다.“예진이는 정말 의리를 다했어. 우빈이 위해서 단 한 번도 애 앞에서 전남편 험담하지 않았잖아.”할머니는 하예진을 매우 아끼신다. 만약 노동명 그 녀석이 하예진을 아끼
하예정은 이제 막 전태윤에게 문자를 보내려던 참인데 마침 휴대폰이 진동했고 화면을 보니 ‘라이벌 1호 도차연’이라는 문구가 떴다.도차연이 제 발로 찾아와 그녀의 연락처까지 요구했었다. 하예정도 라이벌과 맞설 준비를 다 하고 전혀 기죽지 않으며 그녀에게 전화번호를 알려줬다. 도차연은 그 당시 가짜 번호일까 봐 하예정의 앞에서 전화까지 걸었다.하예정은 도차연의 번호를 저장할 때 나중에 더 많은 라이벌이 나타날 걸 고려하여 일부러 그녀를 ‘1호’라고 메모했다.라이벌 번호표가 과연 몇 번까지 이어질지 하예정은 내심 궁금했다.그녀는 도차연의 전화를 받았다.“예정 씨.”“네, 차연 씨. 저랑 함께 커피 마시려고요?”하예정이 먼저 그녀에게 직설적으로 물었다.도차연은 침을 꼴깍 삼킨 후 웃으며 답했다.“걱정 마세요. 예정 씨한테 빚진 커피는 나중에 꼭 시간 내서 사드릴 겁니다.”“네, 그럼 기다릴게요.”“금방 깨나셨나 보네요 예정 씨?”하예정은 두 눈을 반짝이며 담담하게 말했다.“할 말 있으면 바로 하시죠.”“별일은 아니고 예정 씨한테 해명하려고요. 저 실은 어젯밤에 급한 일이 생겨 집에 돌아가는 바람에 약속 어겼어요.”하예정이 알겠다며 답했다.두 사람은 라이벌 관계라 서로 다투지 않으면 진짜 딱히 할 말이 없다.잠시 침묵이 흐른 후 도차연이 먼저 정적을 깨트리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예정 씨, 저 태윤 씨 좋아해요. 첫눈에 반했거든요.”“지금 이건 태윤 씨한테 고백하는 건가요? 그럼 태윤 씨 찾아가서 말해야죠.”도차연은 감히 전태윤을 찾아가 고백할 엄두가 안 났다. 적어도 지금은 그럴 수가 없다. 두 가문의 회사가 협력을 마치거든, 더 이상 아빠가 내민 조건에 구속받지 않거든, 그때 가서 마음껏 전태윤에게 대시할 것이다.다른 여자에게 한눈팔지 않는 남자는 없다.전태윤은 하예정과 결혼한 지도 1년이 됐으니 어쩌면 진작 하예정에게 질렸을지 모른다.두 사람은 결혼식도 안 올렸고 하예정도 줄곧 임신하지 않았으니 많은 사람들이 사석에서 그
하예정은 차갑게 웃었다.“어쩌죠? 저도 태윤 씨를 딴 여자랑 공유하기 싫거든요. 차연 씨, 제가 자리 비켜주길 원하는 거라면 태윤 씨한테 가서 말하세요. 태윤 씨가 나가라고 하면 바로 전씨 일가 사모님 자리를 넘겨드릴게요.”도차연이 말했다.“예정 씨는 태윤 씨한테 안 어울려요...”“태윤 씨랑 결혼한 사람도 저고, 태윤 씨 합법적인 아내도 저예요. 어울리는지 아닌지는 우리 부부가 판단할 일이지 차연 씨 같은 외부인들이 왈가왈부할 일은 아니지 않나요?”작정하고 내연녀가 되어 누군가의 결혼생활에 끼어들겠다는 것은 도덕과 윤리를 다 버리고 파렴치함의 끝을 달리겠다는 뜻이다.“차연 씨가 대체 무슨 자격으로 나랑 태윤 씨가 어울리냐 마냐 판단하는 거죠? 차연 씨랑 태윤 씨가 무슨 사이인데요? 주제 파악 좀 해줄래요? 태윤 씨 할머니, 태윤 씨 부모님, 그 아무도 나랑 이런 말을 한 적이 없는데 차연 씨가 뭐라고 그딴 말을 내뱉는 거냐고요?”“...”도차연은 하예정의 반박에 할 말을 잃고 전화를 꺼버렸다.하예정은 통화가 끊긴 후 욕설을 퍼부었다.“집안도 좋겠다, 여러모로 참 괜찮은데 머리가 이상하단 말이지. 미친 거 아니야? 아니 왜 내연녀가 되겠다는 건데?”도차연과 비교하니 하예정은 사촌 언니 성소현이야말로 진정한 명문가의 딸이고 완벽한 조건에 건강한 마인드를 가진 사람이란 걸 느꼈다.“내가 알고 있는 전형적인 내연녀는 서현주야. 물론 지금은 감방에서 허우적대고 있지.”하예정은 혼잣말로 구시렁댔다. 대체 그런 여자들은 왜 내연녀가 되고 싶어 하는 걸까?떳떳하게 살면 얼마나 좋아?기어코 남 보이기 부끄러운 짓을 하고 평생 내연녀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닐뿐더러 본인들이 낳은 아이가 내연녀의 아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 사람들에게 차별대우를 받게 될 텐데.하예정은 뻐근한 허리를 문지르며 가서 세안을 마친 후 옷을 갈아입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그녀가 늦게 일어나다 보니 할머니는 어느덧 식사를 마치고 1층 거실에서 TV를 시청하고 계셨다.발걸음 소리를
그녀는 문득 깨달았다.어젯밤에 아마도 누군가의 계략에 빠졌고 전태윤은 그녀의 해독약이 되어준 것이다. 어쩐지 아침에 깨나니 허리가 뻐근하더라니.하예정은 더는 할머니와 이 화제를 이어갈 수 없어 마지못해 아침을 먹었다. 전태윤이 돌아오거든 다시 따져 물을 생각이었다.그 시각 전씨 그룹.대표이사 사무실에 귀한 손님 장연준이 찾아왔다.전태윤은 사인펜을 내려놓고 책상 위의 커피잔을 들고서 한 손으로 바지 주머니의 휴대폰을 꺼내 사랑하는 아내에게 전화를 걸려던 참이었는데 장연준이 노크하고 안으로 들어왔다.그를 본 전태윤은 잠시 전화를 내려놓고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형.”장연준은 그에게 인사한 후 제멋대로 맞은 편에 앉았다.“뭐 마실래?”전태윤이 사촌 동생에게 물었다.“괜찮아. 목마르면 알아서 물 마실게.”전태윤도 더는 동생에게 격식을 차리지 않았다. 목이 안 마르다니 전태윤은 정말 온수 한 잔도 따르지 않았다.“어쩐 일로 여기까지 찾아온 거야? 또 뭔데 그래?”장씨 집안 사람들은 늘 겸손한 편이다. 장연준 일행이 전태윤과 가깝게 지낸다 해도 지금처럼 전씨 그룹 사무실까지 찾아오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오늘 이리로 걸음한 걸 보니 도움을 청할 일이 있는 게 분명했다.“뭐겠어? 성소현 씨 때문이지.”전태윤은 커피잔을 내려놓고 장연준을 빤히 쳐다봤다.“왜? 그간 못 본 사이로 성소현 씨 좋아하게 된 거야?”장연준은 재빨리 부인했다.“아니야 그런 거. 실은 이경혜 사모님이 날 찾아와서 도와달라고 하셨어. 나더러 소현 씨를 좋아하는 척하며 대시하라는 거야. 뭐 그렇게 해야 예준하 씨가 알아서 물러간다나 뭐라나.”“사모님은 여전히 예준하 씨가 못마땅하신가 봐. 딸을 너무 멀리 시집보내기 싫으신 거지. 내가 볼 때 예준하 씨가 소현 씨를 좋아하고 결혼하고 싶어 하는 건 그 집안에서 좋아해도 모자랄 판이겠는데. 성소현 씨는 관성에서 평판이 그다지 안 좋아. 게다가 형을 짝사랑해서 대부분 사람들이 아예 생각조차 안 한단 말이야.”성소현은 한때
“그 사모님뿐만 아니라 성기현 그 녀석까지 강온양면책으로 안간힘을 쓴다니까. 두 모자가 아주 날 잡아먹을 기세야. 내가 그렇게 만만해?”장연준은 이해되지 않았다. 성씨 집안에서 저토록 끈질기게 나오다가 성소현과 예준하를 정말 갈라놓거든 그녀가 평생 혼자 살까 봐 걱정되지는 않는 걸까?성소현은 절대 부모님과 가족에게 휘둘려 결혼을 정할 사람이 아니다.애초에 전태윤에게 대시할 때도 모두가 반대했었다! 다만 그녀는 끝까지 견지하며 본인이 직접 부딪혀보고 나서야 마음을 접었다.성소현의 고집불통도 아마 가족 유전일 듯싶다. 온 가족이 똑같은 성격이다.고집과 집착이 심하고 아무도 양보하려 하지 않는다.전태윤도 속절없긴 마찬가지였다.“나도 이모님 설득 못 해. 네 형수도 수없이 설득해봤지만 아무 소용 없었어. 넌 어떻게 생각하는데? 이모님 도와주겠다고 대답했어?”장연준이 답했다.“아직이야. 이 일 때문에 골치 아파서 형한테 하소연하러 온 거잖아. 난 지금... 자제하지 못하고 성소현 씨를 좋아하게 될까 봐 걱정이야.”성소현은 감정에 대해 집착이 매우 강하다. 예전에 전태윤을 짝사랑할 때만 봐도 충분히 알 수 있다.그녀는 지금 예준하를 좋아한다. 온 가족이 반대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예준하와 연애 중이다. 시간이 길어지면 가족들이 동의해줄 거라고 믿는 바였다.장연준은 그런 그녀가 자신에게 마음이 돌아설 거란 걱정은 없다. 그저 본인이 마음 단속을 못 하고 성소현을 좋아할까 봐 두려운 것이다. 결국 상처받을 사람은 본인일 테니까.이경혜는 과연 장연준이 마음이 단호한 사람이라고 믿는 걸까?그가 본 성소현은 소문처럼 엉망이긴커녕 솔직하고 털털한 모습이 딱 장연준 스타일이었다.전태윤은 멍하니 넋 놓고 있다가 장연준을 빤히 쳐다보며 실소를 터트렸다. 그는 장난 조로 말했다.“연준아, 너 이렇게 불안해하는 거 처음 보네. 성소현 씨를 좋아하게 될까 봐 두렵다고?”장연준의 얼굴이 살짝 빨개졌다.“지금은 아니야. 그러니까 내 말은 만약 사모님 요구를 들어주고
예준하가 들었다면 혀를 내둘렀을 것이다.“이봐요, 태윤 씨. 나 당신 섭섭하게 한 적 없잖아요. 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건데요?”그 말에 전태윤이 또다시 맞받아칠 것이다.“경쟁을 해야 압력도 받고 우리 처형도 더 잘 보살펴줄 거 아니에요. 저는 지금 소현 씨 친정 쪽 신분으로 당신 시험하는 거예요.”“요즘 세월에 장가가기 참 힘드네요!”예준하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것이다.“소지훈 씨 어디 아파?”장연준은 빅이슈라도 캐낸 듯 흥미진진하게 물었다.“형, 소지훈 씨 어디 아프냐고? 그 방면으로 잘 안 되는 거야? 어쩐지 동명 형이랑 비슷한 나이대에 아직도 싱글이라더니. 난 또 좋아하는 사람 못 만나서 그런 줄 알았는데 몸이 아픈 거였네.”늘 제일 먼저 가십 정보를 얻었던 소지훈에게도 이런 날이 오다니. 그도 드디어 누군가의 입에 오르는 스캔들의 주인공이 되었다.“그 방면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감정이 없는 병에 걸렸어. 본인과 인연이 닿는 여자를 만나야 진짜 남자가 될 수 있대. 만약 못 만난다면 평생 환관이나 다름없어. 소씨 집안에서 소지훈 씨 결혼을 다그칠 때 본인이 일부러 우리 앞에서 얘기한 거야. 진짜인지는 나도 잘 몰라.”전태윤이 다 말한 후 장연준은 머리만 끄덕일 뿐 감흥을 잃은 눈치였다.“분명 가짜일 거야. 소지훈 씨 나이도 있으니 집안에서 결혼 다그치는 건 너무 정상이야. 결혼하기 싫으니까 마땅한 이유를 둘러대서 부모님 마음 접게 하는 거지.”“그런데 소지훈 씨 우리 할머니 찾아왔을 때 할머니가 대단한 역술인 한 분 알고 계시잖아. 바로 그분이 나랑 네 형수가 부부의 연이 있다고 해서 할머니가 나더러 은혜에 보답해야 한다며 네 형수랑 결혼을 강요한 거야. 그 역술인이 소지훈 씨한테 뭐라고 말했는지 그 뒤로 소씨 집안에서 더는 소지훈 씨한테 결혼을 다그치지 않았어.”장영준이 두 눈을 깜빡였다.“설마 소지훈 씨가 한 말이 진짜라고? 그건 대체 무슨 병인데? 왜 난 들어본 적이 없지?”“나도 의사가 아니라서 잘 몰라. 소지훈
“지금 바로 소지훈 씨 찾아가서 얘기해봐야겠어.”전태윤이 바쁜 걸 알고 장연준도 하소연을 마치고는 자리를 떠났다.“뭐가 이렇게 급해? 소지훈 씨 집에 없으면 어떡하려고? 일단 정남이한테 여쭤보고 찾아가. 괜히 헛걸음하지 말고.”소지훈은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는 스타일이다. 여기까지 생각한 장연준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나도 서두르고 싶지 않은데 이경혜 씨가 부추기는 게 정말 너무 두렵단 말이야. 그분은 누군가를 모험할 때 늘 소리 없이 진행해서 다 파놓은 함정에 뛰어든 후에야 알아채게 된다고. 그땐 이미 빠져나오기가 힘들어.”전태윤이 가볍게 웃었다.“이모의 계략을 당했다는 건 네가 그만큼 훌륭하단 뜻이야. 이모네 가족들이 소현 씨를 얼마나 아끼는지는 관성에 모르는 사람이 없어. 아주 완벽한 남자가 아니고서야 그분들 성에 안 차.”“형, 이거 칭찬이야 깨고소하게 놀리는 거야?”“둘 다.”장연준은 안색이 어두워졌다.“정남 형 좀 찾아가야겠어. 이경혜 사모님 일로 나 요즘 일도 손에 안 잡혀. 이 손해는 반드시 성기현 씨한테 돌려받아야 해. 요즘 프로젝트가 하나 있는데 성기현 씨한테 맡겨서 돈을 좀 벌어볼 생각이야!”“좋은 아이템 있으면 나도 꼭 불러. 적극적으로 투자해줄게. 서로 협력하고 이익 창출하는 거지, 아니야?”“당연한 소릴.”장연준은 웃으며 계속 밖으로 걸어 나갔다.전태윤도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그를 배웅한 게 아니라 사무실 안을 서성이다가 창가 앞에 서서 창밖의 하늘을 바라봤다. 그는 문득 휴대폰을 꺼내 하예정에게 전화를 걸었다.하예정은 곧바로 전화를 받았다.“깼어 여보?”하예정이 웃으며 답했다.“아직이요. 꿈에서 당신 전화 받고 있어요.”전태윤도 가볍게 웃었다.“밥은 먹었어?”그는 관심 조로 아내에게 물었다.“그 국 꼭 마셔야 해. 몸보신해야지.”“마셨어요. 여보, 나 어젯밤에 누구한테 당했죠? 술 마신 뒤로 아무 기억이 안 나요. 아침에 깨나니 허리가 또 뻐근하고요. 밤새 꿈을 꿨는데 꿈속에서 태윤 씨랑
“할머니, 제가 뭐가 똑똑해요, 전 진짜 멍청해요. 할머니야말로 대단하신 분이죠.”전이혁은 할머니께 아부하는 멘트를 던졌다.하지만 그것이 단순히 아부라고 할 수 없는 게, 할머니는 정말 대단한 인물이었다. 남들이 보기엔 전씨 가문 자손들은 이미 충분히 뛰어난 사람이었지만 그래도 할머니의 손바닥 안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할머니는 마치 삼장법사였고 자손들은 손오공 같은 존재로 손오공이 아무리 강해도 삼장법사 앞에선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할머니, 저 진짜 꼼수 같은 거 부리지 않아요.”“그건 네 사정이고. 어떻게 하든 네 마음대로 해. 할머니는 이미 너에게 신붓감을 골라줬고, 대시하든 포기하든 그것 역시 너에게 달린 일이야. 1년이면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줬다고 생각한다.”“하지만 한 가지 경고할게. 지금까지 우리 전씨 가문에는 일편단심인 남자만 있었을 뿐 양다리를 걸치는 남자는 없었어. 네가 전씨 가문의 가풍을 망가뜨리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전이혁은 최대한 얼굴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알겠어요, 할머니. 저 이제 운전해야 해요. 도착해서 또 이야기 나눠요.”“그래, 운전 조심하고.”할머니는 전이혁에게 안전을 당부하고 전화를 끊었다.전화를 끊은 뒤, 할머니는 곧장 양씨 아저씨에게 전화를 걸었다.“양 집사, 내 생선은?”할머니는 자신이 잡은 생선을 혹시 다른 사람이 먹을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양씨 아저씨는 웃으며 대답했다.“어르신께서 구운 생선은 냄새가 정말 좋아요. 아무도 어르신의 생선을 뺏어 먹으려 하지 않으니 안심하세요.”그들 몇몇 자식들 따라 직원 숙소에서 지내는 할머니들은 전씨 할머니가 좋은 분인 걸 알고 함께 수다도 떨고 낚시도 하지만 전씨 가문의 중심인 전씨 할머니의 권위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그들은 전씨 할머니의 물건을 건드리는 일은 없었다. 혹시나 건드렸다가 이곳에서 일하는 자식들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었으니까.서원 리조트의 모든 직원은 훌륭한 대우와 복지를 받고 있었다. 산기슭에 지어진 숙소는 혼자인
두 사람은 함께 아침을 먹은 후, 방을 나섰다.그러자 집사는 전태윤이 다음에 올 때 묵을 수 있도록 스위트룸을 원래 상태로 정리하기 시작했다.도아영은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서 다시 잠을 청했다.전이혁은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었고, 할머니가 전화를 받자 물었다.“할머니, 지금 어디 계세요?”“리조트에 있어. 무슨 일이야? 할머니 보고 싶어? 그렇다면 와서 할머니랑 같이 밥 한 끼 먹자.”그러더니 할머니는 한 마디 덧붙였다.“지금 생선이 막 익었어. 냄새 진짜 좋다.”전이혁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침부터 생선 구워 드세요?”“너한테 말한 거 아니야. 친구들이랑 얘기 중이었어. 아침부터 생선 구우면 안 돼? 그리고 지금 아침도 아니잖아. 아홉 시도 넘었네, 해가 중천에 뜨려고 하고 있어.”“오늘 날씨도 풀렸고, 할머니는 친구들이랑 낚시 갔다가 지금은 잡은 생선 구워 먹고 있어. 소풍하는 느낌이라 꽤 괜찮아.”전이혁은 그 모습이 쉽게 그려졌다. 산 아래에는 맑은 시냇물이 흐르고 있었고 물 아래에는 물고기와 새우들이 헤엄치고 있었다.할머니는 가끔 몇몇 직원들의 어머니들과 함께 낚시하곤 했었다. 냇가에는 큰 나무 한 그루 있었는데 그 아래에는 돌로 된 테이블이 몇 개 있어 할머니의 한마디면 집사는 바비큐 그릴을 가져와 그들이 직접 구워 먹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할머니가 말하길, 그들은 먹는 것보다는 굽는 과정을 더 즐겼다. 비록 직원이 구워줄 수도 있었지만, 그들은 다른 사람이 구워주는 건 맛이 없다며 투덜대기도 했었다. 그리고 그들은 다 먹지 못할 때면 남은 건 직원들에게 나눠주기도 했었다.서원 리조트의 직원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할머니는 권위를 내세우며 직원들에게 막 대하지 않고 옆집 할머니처럼 따뜻하게 대해준다는 사실을.“할머니, 생선 더 잡아서 구워주세요. 저 지금 갈게요.”전이혁은 결심한 듯 할머니에게 진실을 털어놓으러 갈 생각이었다.“네가 와서 직접 잡아. 손질까지 하면 할머니가 구워줄게.”그러더니 할머니는 전이혁에게 물었다.“
“여긴 호텔 맞고, 당연히 아영 씨가 묵던 방일 수가 없죠. 어제 아영 씨가 취해서 방에 데려다줬는데 눕자마자 토하더라고요. 침대랑 바닥까지 모두 엉망이 돼서 어쩔 수 없이 다른 방으로 옮겼어요.”전이혁은 다시 자리에 앉더니 도아영에게 말했다.“아영 씨 술 취하면 정말 감당하기 힘들어요. 앞으로 술 좀 줄이는 게 좋을 것 같네요.”도아영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입을 뗐다.“제가 전이혁 씨랑 함께 많이 마신 건 알겠는데 그 뒤로는 기억이 하나도 안 나네요. 그런데 그 술 진짜 맛있었어요. 제가 해주시로 돌아갈 때 한 박스만 챙겨줘요. 기분 안 좋을 때 집에서 한두 잔 마시려고요.”“아영 씨가 그 정도로 술이 부족하진 않을 텐데요?”전이혁은 도아영의 집에 좋은 술이 부족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그는 도아영의 말이 전혀 믿기지 않았다.“맞아요. 술이 부족한 건 아니에요. 하지만 전이혁 씨가 준 술은 부족하죠.”전이혁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그래요. 아영 씨가 돌아갈 때 한 박스 챙겨줄게요. 그리고 관성 특산물도 좀 챙길 테니 같이 가져가요. 어찌 되었든 먼 길 왔는데 헛걸음하게 하면 안 되니까요.”도아영은 웃으며 대답했다.“맞아요. 헛걸음하게 만들면 안 되죠.”그러더니 그녀는 전이혁의 옆으로 다가가 소파에 기대어 앉았다.“전이혁 씨, 여기 꿀 있어요? 머리가 아파서 그러는데 저 꿀물 좀 타 주면 안 돼요?”“아까는 참을 만하다면서요?”전이혁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일단 세수 좀 하고요. 그리고 타 줄게요. 아영 씨도 세수해요.”“목욕할 거면 아영 씨 방에 가서 해요. 여긴 우리 형이 자주 묵는 스위트룸인데, 아영 씨니까 형이 허락한 거지, 다른 사람이었으면 형수님이 부탁해도 절대 안 된다고 했을 거예요.”전이혁의 큰형과 형수님은 도아영이 할머니께서 정해준 자신의 신붓감이라는 걸 알고,이미 도아영을 가족이나 다름없이 생각하고 있었다.어젯밤, 전이혁이 그런 말을 했을 때 도아영은 살짝 기분이 상했었다. 하지만
전이혁은 얼른 도아영을 부축하더니 살짝 귀찮다는 듯이 물었다.“아영 씨, 또 왜 그래요?”“저... 화장실... ”도아영은 눈이 풀린 채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화장실 가고 싶어요?”도아영은 비틀거리며 제대로 걷기도 힘든 상태였고 전이혁의 표정은 점점 굳어지기 시작했다. 도아영을 혼자 화장실에 가게 둘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남자인 자신이 부축해서 데려가는 것도 난감한 일이었다.도아영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비틀거리며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전이혁은 급히 그녀를 부축하며 다시 한번 물었다.“혼자 괜찮겠어요?”도아영은 묵묵부답이었다. 그녀는 이미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이 누군지도 모를 정도로 심하게 취해 있었다.도아영의 상태를 보아하니 전이혁은 어쩔 수 없이 그녀를 부축해 화장실로 데려가야 했다. 전이혁은 가면서도 입으로는 끊임없이 투덜거렸다.그는 도아영을 화장실로 들여보내고 도망치듯 밖으로 뛰어나왔다.전이혁은 도아영이 나올 때까지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10분이 넘도록 나오지 않았고, 노크를 해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 결국, 전이혁은 걱정된 마음에 문을 살짝 열어 안을 들여다봤지만 무슨 일인지 도아영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어? 어디 간 거야?’전이혁은 의심스러운 마음에 문을 활짝 열고 들어가 보았다. 그 결과, 도아영은 화장실 문 옆 벽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그러니 문틈 사이로 도아영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었다.“이 여자 진짜!”도아영의 모습을 보자, 전이혁은 앞으로 절대 그녀에게 술을 많이 마시게 하지 않으리라고 결심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전이혁은 앞으로 자신이 도아영과 함께 밥을 먹게 된다면 그녀에게 술을 마시지 못하게 할 생각이었다. 자신 말고는 도아영이 다른 누구와 함께 얼마나 마시든, 그건 전이혁이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전이혁은 안으로 들어가 도아영을 안고 나온 뒤, 그녀를 침대에 눕혔다.그는 원래 방으로 돌아가 쉴 예정이었지만, 도아영의 상태를 보아하니 도저히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결국 그날 저녁,
한편 호텔에서 도아영을 돌보던 전이혁은 전창빈의 메시지를 확인하더니 단독으로 그에게 음성 메시지로 물었다.[너 그 먼 곳까지 가서 가정 요리사를 하려고?]전창빈은 소파에 앉아 답장을 보냈다.[안 될 건 없지? 선우씨 가문의 가정 요리사 자리는 도전적이잖아. 내가 합격할 수 있을지 시험해 보고 싶었어. 다행히도 형 동생이 모든 경쟁자를 물리쳤지 뭐야. 난관을 하나둘씩 돌파했어.]전이혁이 회답했다.[요리사 하나 뽑는 걸 대통령 선거처럼 하는구먼. 얼마나 있을 계획이야? 설날도 얼마 안 남았는데 명절에는 안 오려고?]전창빈이 답장했다.[설날에는 아마 못 갈 것 같아. 여기 주인이 날 해고하면 그때나 갈 수는 있겠는지.]전이혁이 피식 웃었다.[네 실력으로는 해고당할 리가 없잖아. 네가 주인을 해고하는 게 더 말이 되겠다. 이해가 안 가. 왜 그 먼 곳까지 가려고 한 거야? 넌 사업도 있는데... 어디서 요리하든 다 마찬가지일 텐데 굳이 몇천 리나 떨어진 곳까지 갈 필요가 있나? 거기 추울 텐데 너 괜찮겠어?]전창빈이 대답했다.[우리 추위를 못 타본 것도 아니고. 형도 할머니에 의해 눈이 수북이 쌓인 산으로 버려지지 않았어? 내 얘긴 그만하고... 형은 어때? 우리 미래의 형수님께 구애하기 시작했어?]‘난 벌써 움직이고 있는데 형이 아직도 움직이지 않는다면... 내가 나중에 민아 씨와 함께 할머니께 인사를 드리러 갈 때 형은 대체 어쩌려고?’전창빈은 속으로 생각했다.전씨 할머니의 지팡이가 전창빈의 등짝을 때리지 않는다면 해가 서쪽에 뜨는 거나 다름없을 것이다.[말도 마라. 정말 귀찮아. 큰형수님이 오늘 저녁에 우리한테 밥 사주셨어.]전창빈이 웃으며 회답했다.[하하! 괴로웠겠네.][내 말이. 할머니께서 나에게 정해주신 그 여자분이 큰형수님을 찾아가 하소연했더니 큰형수님이 우리 두 사람에게 밥을 사주신 거 있지.][형이 우리 형수님한테 무슨 짓이라도 했어?][아직 너의 형수님이 아니거든!]전이혁은 전창빈의 호칭을 정정했다. 그는 도아영과
“저는 앞으로 큰아가씨의 평가에 근거해서 요리 방법을 조정해 나갈 거예요. 그렇게 해야만 실력을 키울 수 있을 테니까요. 제가 만드는 모든 요리를 큰아가씨께서 만족해하시면 제가 여기에서 졸업할 수 있겠네요.”강진은 웃으며 대답했다.“그렇게 되면 큰아가씨께서 당신을 놓아주지 않을걸요.”‘평생 선우민아 씨를 위해 요리해 드리는 건 기쁜 일이지.'이 말을 입 밖으로 내뱉고 싶었지만 전창빈은 꾹 참았다. 이런 말은 입 밖에 내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내면 오해를 살 수 있으니까. 설령 전창빈이 선우민아에게 애정 공세를 하는 것이 두 번째 목표라고 해도 이런 생각을 드러내서는 절대로 안 된다.선우민아가 가업을 운영한다는 건 그녀가 매우 유능한 인물이라는 증거다. 이렇게 강한 강한 여성은 쉽게 넘볼 수 없는 상대이다.전호영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는 너무 힘들어서 하예정의 도움을 받은 끝에야 지름길을 택할 수 있었고 고현의 마음을 얻었다.강진은 그 말이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걸 깨닫고는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전창빈 씨, 오늘 오후 내내 바쁘셨는데 일찍 쉬세요. 내일 아침 큰아가씨를 위해 아침식사를 준비해야 합니다. 가장 일찍 아침을 드시는 분은 큰아가씨와 민기 도련님입니다. 민기 도련님은 학교에 가야 해서 일찍 식사하시고 큰아가씨는 매일 민기 도련님을 학교에 데려다주신 후 회사에 가시니까 두 분은 늘 함께 식사하시는 편이에요. 하여 아침 7시쯤이면 큰아가씨와 민기 도련님의 아침을 준비하시면 됩니다. 다른 분들의 아침은 9시 이후에 준비하시면 돼요.”전창빈이 말을 건넸다.“그 시간대면 아침과 점심을 함께 드시는 거네요.”“어르신과 사모님은 그렇죠. 점심 무렵에 일어나셨다가 식사 후에는 외출하셔서 저녁에야 돌아오세요. 때로는 안 오시기도 하는데, 그럴 땐 제가 미리 알려드릴게요. 안 오시는 날은 창빈 씨가 쉬는 거나 마찬가지죠. 그냥 자신의 배만 채우시면 돼요.”여기에서는 사실상 선우민아 자매만 아침을 먹는 셈이다.“큰아
동생 선우정아가 어이없어하는 모습을 보며 선우민아는 미소를 지었다.“알았어. 지금은 네가 전창빈 씨를 좋아하지 않는다 치더라도 앞으로 어떻게 될진 모르는 일이니까. 앞으로 매일 여기 와서 식사해. 전창빈 씨와 접촉할 기회도 많아져야 그에 대해 더 잘 알게 될 거 아니야. 만약 그가 정말 괜찮은 사람이라면 거리가 멀어도 너희 부모님께서도 어쩔 수 없이 동의하실 거야. 혹은 전창빈 씨에게 우리 지역에서 사업을 하게 하고 여기서 집을 사도록 하든가.”선우정아는 또 벙어리가 되어버렸다.선우민아가 이렇게 말하는 걸 보니 선우정아는 앞으로는 감히 그 집에 밥 먹으러 가기도 어려울 것 같다고 여겼다.선우민아가 자꾸 자신이 전창빈을 좋아한다고 오해하고 있지 않는가.전창빈은 미래의 아내는 지금 미래 처제가 자기를 좋아한다고 오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전이혁은 강진을 따라 숙소로 돌아갔다. 강진은 웃으며 축하의 말을 전했다.“전창빈 씨, 이제 우리는 동료가 되었군요. 오래 함께 일했으면 좋겠습니다.”선우씨 가문의 여러 집안이 같은 대저택 안에서 함께 살고 있었지만 집안마다 독립된 공간이 있었다.선우민아의 요리사는 자주 교체되는 편이었기에 강진 역시 1년 정도는 함께 일할 사람을 원했다.요리사와 친해지기도 전에 퇴직하는 경우가 너무 많았다.전창빈도 웃으며 말을 이었다.“저도 집사님과 오래 함께 일하고 싶습니다. 앞으로 제가 요리들을 더 연구해서 큰아가씨께서 제 요리만 먹고 싶어 하도록 해야겠네요.”“큰아가씨께서 창빈 씨 요리만 고집하게 만들면 정말 대단한 거예요. 요리 대회에 나가면 ‘요리의 신'이라는 칭호를 받을 수 있을 만큼요.”선우민아의 입맛을 사로잡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전창빈은 웃으며 말했다.“‘요리의 신' 같은 건 관심 없어요. 저는 단지 제 요리 실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서 손님들을 만족시키고 싶을 뿐이죠.”전창빈은 그가 고용한 요리사들에게는 항상 조언을 해주곤 한다. 본인이 잘 배워야 현재 이끌고 있는 요리사들도
선우민아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저런 사업을 가진 사람을 네가 정말 좋아한다면 작은아버지와 숙모도 반대하지 않으실 거야. 다만 전창빈 씨가 관성 사람이라 우리랑 거리가 너무 멀어. 작은아버지와 숙모는 네가 먼 곳으로 시집가는 걸 아쉬워할 수도 있을 거야.”선우정아는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언니! 제가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어요? 저는 정말 그런 마음 없단 말이에요. 오히려 저는 그분이 언니랑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우리 자매 일곱 명 중 언니가 맏이라 당연히 언니가 먼저 시집가야죠. 제가 언니를 앞지를 순 없잖아요.”착각인지 정말 본 건지, 선우정아는 전창빈이 선우민아를 바라보는 눈빛에서 특별한 시선이 느껴졌다.그리고 전창빈은 사실 정말로 선우민아를 위해 온 거였다.아니, 정확히는 선우민아의 까다로운 입맛을 만족시켜주기 위해 온 것이다. 그녀를 만족시킬 수 있다면 다른 손님들도 분명히 만족시킬 수 있을 테니까.선우정아는 생각했다. 선우민아처럼 입맛이 까다로운 사람은 많지 않을 거라고.선우민아는 손을 뻗어 동생의 볼을 살짝 꼬집으며 말했다.“우리 나이 차이도 얼마 안 나잖아. 게다가 사촌 자매이기도 하기 때문에 네가 나보다 먼저 시집간다고 해도 전혀 문제가 안 되거든. 나는 당분간 시집갈 생각 없어. 만약 고려한다 해도 이 지역의 사람일 거야. 생각해봐, 민기와 민수는 아직 몇 살밖에 안 됐는데 애들이 커서 사업을 이어받을 수 있을 때까지 적어도 20년은 더 기다려야 되잖아. 이 20년 동안 우리 자매는 계속 회사를 떠받쳐야 해. 만약 우리가 먼 곳으로 시집가면, 누가 회사를 이끌겠어? 셋째와 넷째에게 그런 능력이 있는지 지켜봐야 할 거야 아니야.”셋째 동생과 넷째 동생도 이제 성인이 되어 사업을 배우기 시작했지만 아직은 거대한 가업을 떠받칠 능력이 되지 못했다.하여 선우민아는 자연스레 먼 곳으로 시집갈 생각이 없었다. 시집을 간다 해도 A시의 남자에게 시집갈 것이다. 그래야 시집가서도 친정 회사를 계속 관리할 수 있으니까.앞으로 선우민기
전창빈이 말했다.“행동으로 보여드리죠.”선우정아는 눈썹을 치켜들며 웃었다.“전이혁 씨는 정말 자신만만하신가 봐요.”선우민아는 선우정아를 한 번 흘겨보더니 전창빈에게 물었다.“그럼 언제부터 출근 가능하세요?”“이 자리를 위해 온 만큼 언제든지 가능합니다.”선우민아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럼 내일부터 정식으로 출근하세요. 강 집사님께서 이미 숙소를 준비해 뒀을 테고 월급은 내일부터 계산됩니다. 한 달의 수습 기간이 있고 수습 기간 중 급여는 일당으로 지급됩니다. 공짜로 일을 시키진 않을 거예요.“누구든 마찬가지로 하루 일하면 하루 급여를 계산해 주었다.“집사님께서 어제 이미 숙소를 준비해 주셨습니다. 급여는 어떻게 계산되든 상관없습니다. 전 도전을 위해 온 거지 월급을 위해 온 게 아니니까요.”전이혁은 돈이 부족한 게 아니었다. 아내만 부족할 뿐...“좋아요. 지금은 숙소로 가서 쉬세요. 우리 집에서의 하루 세끼 준비 시간은 집사님께서 알려주실 거예요. 아침을 제외한 점심과 저녁 식사 준비 시간은 변함없어요.”선우씨 가문의 사람들 아침 식사는 각자 일어나는 시간이 다르기 때문에 딱히 정해진 시간이 없었다.전창빈이 대답했다.“알겠습니다. 집사님께 여쭤보겠습니다.”그는 다시 모두에게 고개를 끄덕인 뒤 자리를 떠났다.전창빈이 떠나자 선우민아도 일어서서 가족들에게 말했다.“저는 아직 처리할 일이 있어서 나가봐야 할 것 같아요. 민기한테는 주말에 데리고 나가주겠다고 전해주세요.”선우민기는 그녀보다 스무 살이나 어렸기 때문에 남동생을 아들처럼 키웠다.선우민기는 선우민아를 무서워하면서도 잘 따랐다.선우정아도 그녀의 언니를 따라 일어섰다.“저도 일 보러 갈게요.”한경주가 딸에게 당부했다.“접대할 때 술 너무 많이 마시지 마. 몸에 해로워.”“엄마,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5년 전의 제가 아닌걸요.”선우민아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회사를 막 이어받았을 때 그녀는 많은 사람에게 괴롭힘을 당했다. 그땐 위엄도, 경험도 없었고 회사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