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미가 입을 열었다.“삼촌들의 삶은 여전히 행복하게 살고 계세요.”이윤미는 정군호가 정씨 집안의 미래를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정씨 집안의 미래를 위해서, 그리고 이은화의 복수 수단을 두려워했던 정군호는 스스로 그 부분을 잘라 혼인 생활을 지키기로 했다. 앞으로 같은 침대에 있더라도 아무 짓도 못 하는 점에 대해 정군호도 받아들였다.조심했어야 했는데.“그럼 됐어. 윤미야, 비록 넌 네 엄마의 이씨 성을 따르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 정씨 집안의 피가 흐르고 있거든. 앞으로 정씨 집안에 무슨 일이 생기면 절대로 수수방관해서는 안 돼. 네 삼촌과 고모들도 너에게 잘 대해 주시잖아.”이윤미가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그분들도 지금 그들만의 일자리가 있잖아요. 그분들이 열심히 일하고 안전하게 지내시기만 한다면 생활이 나쁘지 않을 거예요. 만약 급한 일이 생기면 제가 도울 수 있는 부분은 도와드려야죠.”만약 이윤미가 도울 수 없는 일이라면 예외가 없을 것이다.정군호도 이윤미의 말뜻을 알아챘다.이윤미는 이은화처럼 매우 냉정하고 정씨 집안 사람들과 감정이 없다는 점도 잘 알고 있었다.정씨 집안에 가장 정이 깊은 사람이 바로 이윤정이였다.이윤정은 지금 어떻게 지내는지...정군호는 부드럽게 웃었다.“성실하게 생활을 꾸려나가는 사람들이셔. 그리고 저의 사촌 형제들도 전부 성실한 사람들이지.”성실하거나 말거나 이윤미가 관여할 바는 아니지만, 그들이 이씨 가문의 명목으로 함부로 행동하면 절대로 가만 놔두지 않을 것이다.이윤미는 남들이 그녀를 바둑판의 바둑알로 이용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아버지, 저도 알아요.”정군호는 이윤미를 한참 바라보다가 다시 방윤림을 힐끗 쳐다보았다. 정군호는 말을 할까 말까 망설였고 그의 모습을 본 이윤미가 먼저 입을 열었다.“아버지, 하시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하세요. 우리가 친부녀 사이인데 못할 말이 어디 있겠어요?”“윤미야, 사실 네 엄마 마음속에도 한 남자가 들어있어. 다만 그 남자가 자취를 감췄
정군호는 이윤미가 자신과 얘기하고 싶지 않다는 걸 눈치채고는 자연스럽게 그녀의 말을 이었다.“영화도 좀 보고 쉬어야겠어.”이윤미는 아버지를 눕히고 싶어 했고 방윤림이 그녀의 뜻을 알아듣고 대신 정군호를 눕혀 주었다.“아버지, 저와 방 비서는 거실에 있을게요. 무슨 일이 있으면 불러주세요. 이따가 큰오빠도 오실 거에요.”정군호가 의아해하며 물었다.“네 오빠가 왜 와? 네가 날 이틀 동안 돌보겠다고 하지 않았어? 왜 돌보기 싫어서 그래?”“큰오빠도 아버지 아들인데 아버지께서 입원하셨는데 오빠가 와서 돌보는 게 당연한 거 아니에요? 제가 돌보기 싫은 것과 상관없는 것 같은데요. 아버지는 저 혼자만의 아버지가 아니잖아요.”정군호는 목이 메어 잠시 할 말을 잃었다.“네 오빠는 출근하시잖아.”“저도 출근해야죠. 제가 큰오빠보다 더 바빠요.”정군호가 또 무슨 말을 하려 하자 이윤미는 이은화를 내세우며 계속해서 말했다.“엄마가 저 보고 병원으로 와서 아빠와 좀 이야기도 나누라고 했어요. 한 시간 뒤에 오빠가 오신다고 하셨고요.”정군호는 이은화의 계획이라는 말을 듣고는 감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정군호는 이윤정의 정황을 묻고 싶었지만 감히 이윤미에게 묻지 못했다.이윤정은 지금 무얼 하고 있을까?그녀는 지금 입원 병동 입구 근처에 숨어 대문을 바라보며 이은화를 기다리고 있었다.드디어 이은화가 나타났다!이은화가 경호원들과 함께 입원 병동을 나서자 이윤정은 재빨리 나타나 쏜살같이 달려갔다.이은화 곁의 경호원들도 만만한 실력이 아니었기에 이윤정이 다가오기도 전에 먼저 발을 내밀었다.다행히 이윤정은 반응이 빨라 경호원이 날린 발차기를 재빨리 피했다.“엄마, 나야. 윤정이.”이윤정은 큰소리로 외쳤다.이윤정이라는 말을 들은 경호원들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지만, 여전히 이윤정을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게 했다.“엄마, 엄마!”이은화의 발걸음은 여전히 멈추지 않고 계속 걸어가자 이윤정은 소리를 지르며 따라갔다.“엄마, 제 말 좀 들어주세요. 엄마,
“엄마, 누가 저와 아버지를 해쳤는지 알아요. 세 형수님이에요. 그 술은 큰오빠가 방에서 아버지께 가져다드린 술인데 큰오빠가 그렇게 할 이유가 없잖아요. 분명 형수님들일 거예요. 엄마!”이은화가 차에 올랐다.이윤정이 앞으로 덤벼들었지만 차 문도 만질 수 없었다.운전기사가 차를 몰기 전에 이은화는 창문을 눌러 경호원들에게 이윤정을 풀어주고 이윤정이 가까이 오도록 지시했다.이윤정은 웃음 지으며 경호원을 물리치고 얼른 앞으로 다가갔다.“엄마, 저 믿으시는 거죠? 제가 말한 것은 모두 사실이에요. 엄마는 계속 병원에서 아버지를 돌보느라 아직 조사할 시간이 없으셨겠지만, 집으로 돌아가셔서 조사하기만 하면 금방 진실이 밝혀질 거예요.”이은화는 이윤정을 바라보며 대답했다.“너와 군호 씨가 남의 계략에 빠졌다는 사실을 나도 알아.”이윤정이 더욱 기뻐했다.이은화의 아이큐로 모를 리가 없었으니까.“하지만 뭐? 너희 두 사람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으로 될 수는 없잖아.”이윤정의 희망이 갑자기 사라져버렸다.“엄마.”이윤정의 눈시울이 바로 붉어졌다.그녀는 누구보다도 고통스러웠다.이윤정의 처음은 한 영감탱이에게 빼앗겨버리고 말았다.“넌 내 딸이 아니야. 네 몸에는 우리 이씨 가문의 피가 흐르지도 않고 정씨 집안의 피도 없어. 넌 나와 군호 씨 딸이 아니거든.”“하지만, 저는 엄마와 아빠가 키운 딸인걸요. 한때 저를 소중한 보물로 여기면서 저를 아끼고 사랑해 주셨잖아요.”이은화는 피식 웃었다.“그건 우리가 네 친아버지한테 속았기 때문이야. 원망하려면 네 친아버지를 원망해. 날 원망하면 안 되지. 넌 시종 우리 가문의 딸이 아니었다. 일범이는 내 친아들이고 일범의 아내도 내 며느리야. 너의 형수님들이 널 모함했는데, 그래서 뭐? 나에게는 핏줄이 가장 중요해.”이은화는 이윤정의 창백한 얼굴을 무시하고 경호원에게 분부했다.“얘한테 돈 40만 원 줘서 보내. 얼른 가자!”이은화도 속으로 화가 났지만, 조윤과 이윤정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그
한참을 울다가 이윤정은 그제야 울음을 그치고 일어섰다. 그녀는 40만 원을 세어보더니 더도 말고 딱 40만 원이었다.과거에는 40만 원은 그녀의 눈에는 돈에 속하지도 않았다.그러나 지금 40만 원이라는 돈은 이윤미의 한 달 숙박비와 식비일 수도 있다.지금의 이윤정은 관성의 여운별도 더 못한 삶을 살고 있었다.여운별은 비록 용태호에게 이용당하고 있었지만 적어도 친동생 여천우가 매달 그녀에게 생활비를 주기 때문에 굶지는 않았다.그러나 이윤정이 더 이상 의지할 곳이 없었다.하지만 그녀는 강성을 떠나는 것이 달갑지 않았다.이윤정은 돌아가서 그녀의 세 형수에게 복수하리라 다짐했다.정군호 형제는 정군호의 유전자를 이어받아 밖에서 내연녀를 두기 좋아했다.이윤정은 그들의 취향을 잘 알고 있었고 그들의 성질도 잘 알고 있었다. 정일범 형제 또한 이윤정에 대한 정도 깊었기 때문에 그녀가 조금만 꼬드겨도 금세 넘어올 것이다.그들 형제가 전부 이윤정에게 빠져들게 해서 세 형수님이 죽도록 화나게 하고 싶었다.어차피 이윤정의 몸은 이제 깨끗하지 않으니까.이윤정은 이씨 가문의 친자식이 아니기 때문에 정일범 형제와도 혈연관계가 없었다.그들이 이윤정에게 돈을 주고 그녀를 내연녀로 삼기만 하면 그뿐이었다. 그러면 조윤 일행도 기가 막혀 죽을 지경일 것이다.이윤정은 될 대로 되라고 중얼거리면서 병원을 떠났다.고급 병실의 거실 창문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는 이윤미는 이윤정이 이은화를 쫓아다니며 해명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이윤정은 큰 소리로 울며 “엄마”라고 부르는 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이은화가 경호원에게 이윤정 손에 돈을 좀 쥐여주라고 하고 자리를 떠난 모습을 본 이윤미는 차가운 웃음을 지었다.“저 모습을 보니 아마 포기하지 않은 모양이에요. 무슨 일을 저지를지도 몰라요.”이윤미 옆에 서 있는 방윤림이 이윤미의 반응을 살피며 조용히 말했다.이윤미는 그를 쳐다보지 않았지만, 그의 말에 동의했다.“윤정이는 지금 유일하게 잡을 수 있는 건 바로 세 오빠일 거
이윤미는 갑자기 고개를 돌려 방윤림을 쳐다보며, 작은 소리로 방윤림에게 물었다“방 비서, 혹시 좋아하는 사람 있으세요?”방윤림은 이은화가 이윤미에게 배정해준 사람이었다. 이은화는 이윤미에게 방윤림이 그녀의 곁에 머문 순간부터 방윤림을 믿을 수 있고 그 또한 절대로 배신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이윤미가 앞으로 이씨 가문의 가주가 되지 못하더라도 방윤림은 그녀와 평생 함께할 것이며 다시는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이다.이윤미는 여러 번 방윤림을 시험한 뒤에야 방윤림을 믿기로 했다.역시 방윤림은 특별 비서직을 맡기 위해 특별히 양성된 사람답게 정말 못 하는 것이 없었다.아주 유능한 사람이었다.이윤미는 이씨 그룹이 점점 못해지고 있지만, 선조들이 세운 훈련 기지는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훈련 기지의 책임자가 어디서 이렇게 대단한 아이를 찾아 기지로 데려와서 조금씩 유능한 비서로 양성했는지 모른다.문무를 겸비했을 뿐만 아니라 비주얼도 아주 훌륭했다.방윤림은 비록 전씨 가문의 도련님들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잘생긴 남자라고 칭찬받을 만큼 멋지다.이윤미가 이씨 가문에 돌아온 지 2년이나 되었지만, 이씨 가문의 비서를 양성하는 훈련 기지가 어디에 있는지 아직도 알아내지 못했다.그녀는 이은화에게 물었지만, 이은화는 그녀에게 훈련 기지가 어디인지 알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다만 그 훈련 기지를 담당하는 사람은 이씨 가문에 절대적으로 충성하는 사람들이고 가문의 사람들과 사적으로 교류하지 않지만, 누구에게도 치우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만 알면 된다고 했다.전심전력으로 역대 가주들을 위해 최고의 특별 비서를 양성했다.이윤미는 이씨 가문의 재무 보고서를 보았지만, 교육 기지에 돈을 썼다는 증거를 찾을 수 없었다.하지만 매년 이씨 가문에서는 큰돈이 어디론가 흘러가고 있었지만, 돈의 행방을 밝히지 않았다. 그러나 누군가가 단 한 번도 의문을 제기한 적 없었다.이윤미는 그 돈이 바로 훈련 기지에서 인재를 양성하는 데 지급되리라 추측했다.훈련 기지도 자급
이윤미에 대한 방윤림의 마음을 이윤미는 전혀 몰랐다.알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이윤미가 그를 사랑한다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내야만 방윤림도 그의 마음을 드러낼 것이다.어릴 때부터 받은 교육 덕분에 방윤림은 어떻게 사랑을 표현해야 할지 몰라서 그저 묵묵히 이윤미를 돌보고 지켜줄 수밖에 없었다.만약 이윤미가 나중에 다른 남자랑 결혼한다고 해도, 방윤림은 진심으로 그들의 행복을 축복할 것이고 여전히 이윤미의 가장 강력하고 신뢰할 수 있는 특별 비서로 일할 것이다.앞으로 이윤미가 한 아이의 어머니로 되면 방윤림은 그 작은 주인마저 돌봐줄 준비가 되어 있었다.이번 생에 그는 이윤미의 사람이었다.그의 생명이 끝날 때까지 이윤미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네.”이윤미는 정일범일 것으로 추측했지만 가서 문을 열어주지 않고 그가 직접 들어오게 했다.문을 밀고 들어온 사람은 역시 정일범이었다.그는 한 손에 꽃다발을 들고 다른 손에 과일 바구니를 들고 들어왔는데 이윤미와 방윤림이 병실 안방이 아닌 거실에 있는 모습을 보더니 그녀에게 물었다.“윤미야, 아빠는?”이윤미는 담담하게 대답했다.“침대에서 누워 계시는 데 주무셨을 거예요.”정일범은 방윤림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정중하게 인사를 건네고는 꽃다발과 과일 바구니를 든 채로 안으로 걸어갔다.이윤미도 따라 들어갔다.정군호는 침대에 누워 휴대전화로 영상을 보고 있었다. 소리가 꽤 크게 켜 놓은 것으로 보면 이윤미와 방윤림의 대화를 듣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렇다고 들리지도 않았다.이윤미와 방윤림이 말하는 소리가 크지 않았다. 정군호는 결국 70대 노인이었기에 청력에 다소 문제가 있어서 조금 전에 이윤미와 방윤림이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들을 수 없었다. 들리지 않을 거면 차라리 동영상 볼륨을 크게 틀어놓고 재미있게 보는 것이 낫겠다 싶었다.정일범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나서야 정군호는 휴대전화 볼륨을 조금 낮추며 아들에게 말했다.“일범아, 진짜로 왔구나.”정일범은 과일 바
정군호는 이윤미를 바라보며 말했다.“윤미야, 일범도 왔으니 얼른 가봐. 요즘 네 엄마가 기분이 안 좋으셔서 회사에 돌아가지도 않으시고 집안일도 신경 쓰지 않으셨어. 너도 힘들 테니 얼른 가서 쉬어.”정일범도 맞장구쳤다.“그래, 윤미야. 내가 여기서 아빠랑 같이 있으면 돼.”이윤미도 더는 이곳에 머물고 싶지 않았다.그녀는 정군호와 부녀간의 정이 없었다.이윤미가 만약 정군호의 친딸이 아니었다면 그녀는 이 늙은 영감을 만나기도 싫었을 것이다.“오빠, 그럼 난 가볼게. 무슨 일 있으면 다시 전화 줘.”“알았어. 차 조심하고.”정일범은 한 마디 당부하면서 이윤미와 방윤림을 배웅했다.두 사람이 멀리 떠난 뒤에야 정일범은 몸을 돌려 정군호에게 말했다.“아빠, 윤미와 방 비서가 돌아갔어요.”정군호가 다시 말을 건넸다.“2분 후에 다시 한번 둘러봐.”정일범은 정군호가 이윤정에 관해 묻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아채고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몇 분 후, 정일범은 밖으로 나가 병실 근처를 모두 둘러본 후, 이윤미와 방윤림이 모두 떠났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병실로 돌아왔다.“아빠, 정말 갔어요. 몸은 좀 어때요? 엄마가 뭘 하셨는데요?”정일범은 문을 열고 병실로 들어가면서 정군호에게 말했다.정일범은 병상 앞에 앉으며 계속해서 말했다.“엄마가 아빠에 관해 아무것도 묻지 말라고 해서 우리는 아빠가 다친 것 외 얼마나 심하게 다치셨는지 몰랐어요.”정일범은 정구호를 위아래로 훑어보았지만 어디가 아픈지 전혀 찾지 못했다.팔다리는 멀쩡하고, 얼굴의 손바닥 자국은 이미 보이지 않았다. 다만 정신 상태가 조금 나빴을 뿐이다.정군호는 정일범에 자신이 내시가 되었다는 것을 알리지 않고 가벼운 말만 꺼냈다.“내 몸이 좀 불편해서 며칠 입원했는데 회복도 잘 되어서 며칠 후면 퇴원할 수 있을 거야. 네 엄마가 그 당시 너무 화가 나서 나에게 잔인한 행동을 하신 것뿐이야. 내가 다치자 네 엄마도 무척 가슴 아파하셨어. 날 병원에 데려다주고 직접 밥도 먹여 주면서 잘
비록 하예진과 고현이 위층에 올라가지 않았다고 해도 전호영이 위층에 올라갔기 때문에 분명 그 일을 그녀들에게 알려주었을 것이다.정군호가 입을 열었다.“하예진은 네 큰이모의 후손이야. 분명 가주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돌아온 사람이지. 하예진은 반드시 우리 이씨 가문의 이런 일들을 남에게 알려줄 거야. 우리 가문을 망신시켜 경쟁자를 하나라도 줄이려고. 윤정은 비록 내 친딸은 아니지만, 어릴 때부터 우리 집에서 자라온 아이야. 2년 전, 윤정이가 우리 가문의 친딸이 아니라는 것을 몰랐을 때만 해도 20여 년 동안의 감정도 있고 하니 네 엄마가 윤정이를 가주 자리에 앉혀 놓을 기회가 있었을 텐데. 지금 와서 보니 그런 기회가 이제 없을 것 같아.”정일범이 말을 건넸다.“아빠, 우리 형제들에게도 기회가 있을까요? 우리가 바람을 피우다 발견된 후로 엄마는 윤미를 더욱 중히 여기세요. 이제 윤미 곁에 방 비서가 배정되었으니 방 비서의 도움으로 윤미가 이씨 가문에서 자리를 잘 잡고 있어요. 하여 우리도 중심 세력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고요. 윤미는 우리에게 잘해주지 않거든요. 윤미의 마음속에서 저의 지위는 아마 매우 낮을걸요. 저도 윤미를 동생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점을 인정해요. 윤미가 정말로 가주 자리에 앉게 된다면 우리는 더 잘 지내지 못할 거예요.”정군호가 말을 이었다.“윤미가 가주 자리에 앉게 되는 것이 하예진이 그룹을 이어받는 것보다는 나아. 하예진은 네 큰이모의 후손이야. 사람들이 네 엄마가 큰이모를 죽였다고 말하고 있어. 하예진이 이번에 강성으로 온 이유도 가주 자리를 빼앗으려는 것 외에도 진실을 조사하고 복수하려고 왔을 거야. 그런데 윤미는 너의 친동생이잖아. 너희들이 큰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 한 여기에서 무사히 살아갈 수는 있을걸.”정군호는 한숨을 쉬며 계속해서 말했다.“이씨 가문의 규정이라 어쩔 수도 없어. 이씨 가문을 아들에게 물려주는 것이 아닌 딸에게 물려주는 규정이 대대로 지켜왔거든. 너희들이 엄마 뱃속에서 이씨 가문의 아들로 태어났으니
“할머니, 제가 뭐가 똑똑해요, 전 진짜 멍청해요. 할머니야말로 대단하신 분이죠.”전이혁은 할머니께 아부하는 멘트를 던졌다.하지만 그것이 단순히 아부라고 할 수 없는 게, 할머니는 정말 대단한 인물이었다. 남들이 보기엔 전씨 가문 자손들은 이미 충분히 뛰어난 사람이었지만 그래도 할머니의 손바닥 안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할머니는 마치 삼장법사였고 자손들은 손오공 같은 존재로 손오공이 아무리 강해도 삼장법사 앞에선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할머니, 저 진짜 꼼수 같은 거 부리지 않아요.”“그건 네 사정이고. 어떻게 하든 네 마음대로 해. 할머니는 이미 너에게 신붓감을 골라줬고, 대시하든 포기하든 그것 역시 너에게 달린 일이야. 1년이면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줬다고 생각한다.”“하지만 한 가지 경고할게. 지금까지 우리 전씨 가문에는 일편단심인 남자만 있었을 뿐 양다리를 걸치는 남자는 없었어. 네가 전씨 가문의 가풍을 망가뜨리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전이혁은 최대한 얼굴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알겠어요, 할머니. 저 이제 운전해야 해요. 도착해서 또 이야기 나눠요.”“그래, 운전 조심하고.”할머니는 전이혁에게 안전을 당부하고 전화를 끊었다.전화를 끊은 뒤, 할머니는 곧장 양씨 아저씨에게 전화를 걸었다.“양 집사, 내 생선은?”할머니는 자신이 잡은 생선을 혹시 다른 사람이 먹을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양씨 아저씨는 웃으며 대답했다.“어르신께서 구운 생선은 냄새가 정말 좋아요. 아무도 어르신의 생선을 뺏어 먹으려 하지 않으니 안심하세요.”그들 몇몇 자식들 따라 직원 숙소에서 지내는 할머니들은 전씨 할머니가 좋은 분인 걸 알고 함께 수다도 떨고 낚시도 하지만 전씨 가문의 중심인 전씨 할머니의 권위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그들은 전씨 할머니의 물건을 건드리는 일은 없었다. 혹시나 건드렸다가 이곳에서 일하는 자식들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었으니까.서원 리조트의 모든 직원은 훌륭한 대우와 복지를 받고 있었다. 산기슭에 지어진 숙소는 혼자인
두 사람은 함께 아침을 먹은 후, 방을 나섰다.그러자 집사는 전태윤이 다음에 올 때 묵을 수 있도록 스위트룸을 원래 상태로 정리하기 시작했다.도아영은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서 다시 잠을 청했다.전이혁은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었고, 할머니가 전화를 받자 물었다.“할머니, 지금 어디 계세요?”“리조트에 있어. 무슨 일이야? 할머니 보고 싶어? 그렇다면 와서 할머니랑 같이 밥 한 끼 먹자.”그러더니 할머니는 한 마디 덧붙였다.“지금 생선이 막 익었어. 냄새 진짜 좋다.”전이혁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침부터 생선 구워 드세요?”“너한테 말한 거 아니야. 친구들이랑 얘기 중이었어. 아침부터 생선 구우면 안 돼? 그리고 지금 아침도 아니잖아. 아홉 시도 넘었네, 해가 중천에 뜨려고 하고 있어.”“오늘 날씨도 풀렸고, 할머니는 친구들이랑 낚시 갔다가 지금은 잡은 생선 구워 먹고 있어. 소풍하는 느낌이라 꽤 괜찮아.”전이혁은 그 모습이 쉽게 그려졌다. 산 아래에는 맑은 시냇물이 흐르고 있었고 물 아래에는 물고기와 새우들이 헤엄치고 있었다.할머니는 가끔 몇몇 직원들의 어머니들과 함께 낚시하곤 했었다. 냇가에는 큰 나무 한 그루 있었는데 그 아래에는 돌로 된 테이블이 몇 개 있어 할머니의 한마디면 집사는 바비큐 그릴을 가져와 그들이 직접 구워 먹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할머니가 말하길, 그들은 먹는 것보다는 굽는 과정을 더 즐겼다. 비록 직원이 구워줄 수도 있었지만, 그들은 다른 사람이 구워주는 건 맛이 없다며 투덜대기도 했었다. 그리고 그들은 다 먹지 못할 때면 남은 건 직원들에게 나눠주기도 했었다.서원 리조트의 직원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할머니는 권위를 내세우며 직원들에게 막 대하지 않고 옆집 할머니처럼 따뜻하게 대해준다는 사실을.“할머니, 생선 더 잡아서 구워주세요. 저 지금 갈게요.”전이혁은 결심한 듯 할머니에게 진실을 털어놓으러 갈 생각이었다.“네가 와서 직접 잡아. 손질까지 하면 할머니가 구워줄게.”그러더니 할머니는 전이혁에게 물었다.“
“여긴 호텔 맞고, 당연히 아영 씨가 묵던 방일 수가 없죠. 어제 아영 씨가 취해서 방에 데려다줬는데 눕자마자 토하더라고요. 침대랑 바닥까지 모두 엉망이 돼서 어쩔 수 없이 다른 방으로 옮겼어요.”전이혁은 다시 자리에 앉더니 도아영에게 말했다.“아영 씨 술 취하면 정말 감당하기 힘들어요. 앞으로 술 좀 줄이는 게 좋을 것 같네요.”도아영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입을 뗐다.“제가 전이혁 씨랑 함께 많이 마신 건 알겠는데 그 뒤로는 기억이 하나도 안 나네요. 그런데 그 술 진짜 맛있었어요. 제가 해주시로 돌아갈 때 한 박스만 챙겨줘요. 기분 안 좋을 때 집에서 한두 잔 마시려고요.”“아영 씨가 그 정도로 술이 부족하진 않을 텐데요?”전이혁은 도아영의 집에 좋은 술이 부족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그는 도아영의 말이 전혀 믿기지 않았다.“맞아요. 술이 부족한 건 아니에요. 하지만 전이혁 씨가 준 술은 부족하죠.”전이혁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그래요. 아영 씨가 돌아갈 때 한 박스 챙겨줄게요. 그리고 관성 특산물도 좀 챙길 테니 같이 가져가요. 어찌 되었든 먼 길 왔는데 헛걸음하게 하면 안 되니까요.”도아영은 웃으며 대답했다.“맞아요. 헛걸음하게 만들면 안 되죠.”그러더니 그녀는 전이혁의 옆으로 다가가 소파에 기대어 앉았다.“전이혁 씨, 여기 꿀 있어요? 머리가 아파서 그러는데 저 꿀물 좀 타 주면 안 돼요?”“아까는 참을 만하다면서요?”전이혁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일단 세수 좀 하고요. 그리고 타 줄게요. 아영 씨도 세수해요.”“목욕할 거면 아영 씨 방에 가서 해요. 여긴 우리 형이 자주 묵는 스위트룸인데, 아영 씨니까 형이 허락한 거지, 다른 사람이었으면 형수님이 부탁해도 절대 안 된다고 했을 거예요.”전이혁의 큰형과 형수님은 도아영이 할머니께서 정해준 자신의 신붓감이라는 걸 알고,이미 도아영을 가족이나 다름없이 생각하고 있었다.어젯밤, 전이혁이 그런 말을 했을 때 도아영은 살짝 기분이 상했었다. 하지만
전이혁은 얼른 도아영을 부축하더니 살짝 귀찮다는 듯이 물었다.“아영 씨, 또 왜 그래요?”“저... 화장실... ”도아영은 눈이 풀린 채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화장실 가고 싶어요?”도아영은 비틀거리며 제대로 걷기도 힘든 상태였고 전이혁의 표정은 점점 굳어지기 시작했다. 도아영을 혼자 화장실에 가게 둘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남자인 자신이 부축해서 데려가는 것도 난감한 일이었다.도아영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비틀거리며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전이혁은 급히 그녀를 부축하며 다시 한번 물었다.“혼자 괜찮겠어요?”도아영은 묵묵부답이었다. 그녀는 이미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이 누군지도 모를 정도로 심하게 취해 있었다.도아영의 상태를 보아하니 전이혁은 어쩔 수 없이 그녀를 부축해 화장실로 데려가야 했다. 전이혁은 가면서도 입으로는 끊임없이 투덜거렸다.그는 도아영을 화장실로 들여보내고 도망치듯 밖으로 뛰어나왔다.전이혁은 도아영이 나올 때까지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10분이 넘도록 나오지 않았고, 노크를 해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 결국, 전이혁은 걱정된 마음에 문을 살짝 열어 안을 들여다봤지만 무슨 일인지 도아영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어? 어디 간 거야?’전이혁은 의심스러운 마음에 문을 활짝 열고 들어가 보았다. 그 결과, 도아영은 화장실 문 옆 벽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그러니 문틈 사이로 도아영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었다.“이 여자 진짜!”도아영의 모습을 보자, 전이혁은 앞으로 절대 그녀에게 술을 많이 마시게 하지 않으리라고 결심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전이혁은 앞으로 자신이 도아영과 함께 밥을 먹게 된다면 그녀에게 술을 마시지 못하게 할 생각이었다. 자신 말고는 도아영이 다른 누구와 함께 얼마나 마시든, 그건 전이혁이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전이혁은 안으로 들어가 도아영을 안고 나온 뒤, 그녀를 침대에 눕혔다.그는 원래 방으로 돌아가 쉴 예정이었지만, 도아영의 상태를 보아하니 도저히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결국 그날 저녁,
한편 호텔에서 도아영을 돌보던 전이혁은 전창빈의 메시지를 확인하더니 단독으로 그에게 음성 메시지로 물었다.[너 그 먼 곳까지 가서 가정 요리사를 하려고?]전창빈은 소파에 앉아 답장을 보냈다.[안 될 건 없지? 선우씨 가문의 가정 요리사 자리는 도전적이잖아. 내가 합격할 수 있을지 시험해 보고 싶었어. 다행히도 형 동생이 모든 경쟁자를 물리쳤지 뭐야. 난관을 하나둘씩 돌파했어.]전이혁이 회답했다.[요리사 하나 뽑는 걸 대통령 선거처럼 하는구먼. 얼마나 있을 계획이야? 설날도 얼마 안 남았는데 명절에는 안 오려고?]전창빈이 답장했다.[설날에는 아마 못 갈 것 같아. 여기 주인이 날 해고하면 그때나 갈 수는 있겠는지.]전이혁이 피식 웃었다.[네 실력으로는 해고당할 리가 없잖아. 네가 주인을 해고하는 게 더 말이 되겠다. 이해가 안 가. 왜 그 먼 곳까지 가려고 한 거야? 넌 사업도 있는데... 어디서 요리하든 다 마찬가지일 텐데 굳이 몇천 리나 떨어진 곳까지 갈 필요가 있나? 거기 추울 텐데 너 괜찮겠어?]전창빈이 대답했다.[우리 추위를 못 타본 것도 아니고. 형도 할머니에 의해 눈이 수북이 쌓인 산으로 버려지지 않았어? 내 얘긴 그만하고... 형은 어때? 우리 미래의 형수님께 구애하기 시작했어?]‘난 벌써 움직이고 있는데 형이 아직도 움직이지 않는다면... 내가 나중에 민아 씨와 함께 할머니께 인사를 드리러 갈 때 형은 대체 어쩌려고?’전창빈은 속으로 생각했다.전씨 할머니의 지팡이가 전창빈의 등짝을 때리지 않는다면 해가 서쪽에 뜨는 거나 다름없을 것이다.[말도 마라. 정말 귀찮아. 큰형수님이 오늘 저녁에 우리한테 밥 사주셨어.]전창빈이 웃으며 회답했다.[하하! 괴로웠겠네.][내 말이. 할머니께서 나에게 정해주신 그 여자분이 큰형수님을 찾아가 하소연했더니 큰형수님이 우리 두 사람에게 밥을 사주신 거 있지.][형이 우리 형수님한테 무슨 짓이라도 했어?][아직 너의 형수님이 아니거든!]전이혁은 전창빈의 호칭을 정정했다. 그는 도아영과
“저는 앞으로 큰아가씨의 평가에 근거해서 요리 방법을 조정해 나갈 거예요. 그렇게 해야만 실력을 키울 수 있을 테니까요. 제가 만드는 모든 요리를 큰아가씨께서 만족해하시면 제가 여기에서 졸업할 수 있겠네요.”강진은 웃으며 대답했다.“그렇게 되면 큰아가씨께서 당신을 놓아주지 않을걸요.”‘평생 선우민아 씨를 위해 요리해 드리는 건 기쁜 일이지.'이 말을 입 밖으로 내뱉고 싶었지만 전창빈은 꾹 참았다. 이런 말은 입 밖에 내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내면 오해를 살 수 있으니까. 설령 전창빈이 선우민아에게 애정 공세를 하는 것이 두 번째 목표라고 해도 이런 생각을 드러내서는 절대로 안 된다.선우민아가 가업을 운영한다는 건 그녀가 매우 유능한 인물이라는 증거다. 이렇게 강한 강한 여성은 쉽게 넘볼 수 없는 상대이다.전호영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는 너무 힘들어서 하예정의 도움을 받은 끝에야 지름길을 택할 수 있었고 고현의 마음을 얻었다.강진은 그 말이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걸 깨닫고는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전창빈 씨, 오늘 오후 내내 바쁘셨는데 일찍 쉬세요. 내일 아침 큰아가씨를 위해 아침식사를 준비해야 합니다. 가장 일찍 아침을 드시는 분은 큰아가씨와 민기 도련님입니다. 민기 도련님은 학교에 가야 해서 일찍 식사하시고 큰아가씨는 매일 민기 도련님을 학교에 데려다주신 후 회사에 가시니까 두 분은 늘 함께 식사하시는 편이에요. 하여 아침 7시쯤이면 큰아가씨와 민기 도련님의 아침을 준비하시면 됩니다. 다른 분들의 아침은 9시 이후에 준비하시면 돼요.”전창빈이 말을 건넸다.“그 시간대면 아침과 점심을 함께 드시는 거네요.”“어르신과 사모님은 그렇죠. 점심 무렵에 일어나셨다가 식사 후에는 외출하셔서 저녁에야 돌아오세요. 때로는 안 오시기도 하는데, 그럴 땐 제가 미리 알려드릴게요. 안 오시는 날은 창빈 씨가 쉬는 거나 마찬가지죠. 그냥 자신의 배만 채우시면 돼요.”여기에서는 사실상 선우민아 자매만 아침을 먹는 셈이다.“큰아
동생 선우정아가 어이없어하는 모습을 보며 선우민아는 미소를 지었다.“알았어. 지금은 네가 전창빈 씨를 좋아하지 않는다 치더라도 앞으로 어떻게 될진 모르는 일이니까. 앞으로 매일 여기 와서 식사해. 전창빈 씨와 접촉할 기회도 많아져야 그에 대해 더 잘 알게 될 거 아니야. 만약 그가 정말 괜찮은 사람이라면 거리가 멀어도 너희 부모님께서도 어쩔 수 없이 동의하실 거야. 혹은 전창빈 씨에게 우리 지역에서 사업을 하게 하고 여기서 집을 사도록 하든가.”선우정아는 또 벙어리가 되어버렸다.선우민아가 이렇게 말하는 걸 보니 선우정아는 앞으로는 감히 그 집에 밥 먹으러 가기도 어려울 것 같다고 여겼다.선우민아가 자꾸 자신이 전창빈을 좋아한다고 오해하고 있지 않는가.전창빈은 미래의 아내는 지금 미래 처제가 자기를 좋아한다고 오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전이혁은 강진을 따라 숙소로 돌아갔다. 강진은 웃으며 축하의 말을 전했다.“전창빈 씨, 이제 우리는 동료가 되었군요. 오래 함께 일했으면 좋겠습니다.”선우씨 가문의 여러 집안이 같은 대저택 안에서 함께 살고 있었지만 집안마다 독립된 공간이 있었다.선우민아의 요리사는 자주 교체되는 편이었기에 강진 역시 1년 정도는 함께 일할 사람을 원했다.요리사와 친해지기도 전에 퇴직하는 경우가 너무 많았다.전창빈도 웃으며 말을 이었다.“저도 집사님과 오래 함께 일하고 싶습니다. 앞으로 제가 요리들을 더 연구해서 큰아가씨께서 제 요리만 먹고 싶어 하도록 해야겠네요.”“큰아가씨께서 창빈 씨 요리만 고집하게 만들면 정말 대단한 거예요. 요리 대회에 나가면 ‘요리의 신'이라는 칭호를 받을 수 있을 만큼요.”선우민아의 입맛을 사로잡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전창빈은 웃으며 말했다.“‘요리의 신' 같은 건 관심 없어요. 저는 단지 제 요리 실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서 손님들을 만족시키고 싶을 뿐이죠.”전창빈은 그가 고용한 요리사들에게는 항상 조언을 해주곤 한다. 본인이 잘 배워야 현재 이끌고 있는 요리사들도
선우민아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저런 사업을 가진 사람을 네가 정말 좋아한다면 작은아버지와 숙모도 반대하지 않으실 거야. 다만 전창빈 씨가 관성 사람이라 우리랑 거리가 너무 멀어. 작은아버지와 숙모는 네가 먼 곳으로 시집가는 걸 아쉬워할 수도 있을 거야.”선우정아는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언니! 제가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어요? 저는 정말 그런 마음 없단 말이에요. 오히려 저는 그분이 언니랑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우리 자매 일곱 명 중 언니가 맏이라 당연히 언니가 먼저 시집가야죠. 제가 언니를 앞지를 순 없잖아요.”착각인지 정말 본 건지, 선우정아는 전창빈이 선우민아를 바라보는 눈빛에서 특별한 시선이 느껴졌다.그리고 전창빈은 사실 정말로 선우민아를 위해 온 거였다.아니, 정확히는 선우민아의 까다로운 입맛을 만족시켜주기 위해 온 것이다. 그녀를 만족시킬 수 있다면 다른 손님들도 분명히 만족시킬 수 있을 테니까.선우정아는 생각했다. 선우민아처럼 입맛이 까다로운 사람은 많지 않을 거라고.선우민아는 손을 뻗어 동생의 볼을 살짝 꼬집으며 말했다.“우리 나이 차이도 얼마 안 나잖아. 게다가 사촌 자매이기도 하기 때문에 네가 나보다 먼저 시집간다고 해도 전혀 문제가 안 되거든. 나는 당분간 시집갈 생각 없어. 만약 고려한다 해도 이 지역의 사람일 거야. 생각해봐, 민기와 민수는 아직 몇 살밖에 안 됐는데 애들이 커서 사업을 이어받을 수 있을 때까지 적어도 20년은 더 기다려야 되잖아. 이 20년 동안 우리 자매는 계속 회사를 떠받쳐야 해. 만약 우리가 먼 곳으로 시집가면, 누가 회사를 이끌겠어? 셋째와 넷째에게 그런 능력이 있는지 지켜봐야 할 거야 아니야.”셋째 동생과 넷째 동생도 이제 성인이 되어 사업을 배우기 시작했지만 아직은 거대한 가업을 떠받칠 능력이 되지 못했다.하여 선우민아는 자연스레 먼 곳으로 시집갈 생각이 없었다. 시집을 간다 해도 A시의 남자에게 시집갈 것이다. 그래야 시집가서도 친정 회사를 계속 관리할 수 있으니까.앞으로 선우민기
전창빈이 말했다.“행동으로 보여드리죠.”선우정아는 눈썹을 치켜들며 웃었다.“전이혁 씨는 정말 자신만만하신가 봐요.”선우민아는 선우정아를 한 번 흘겨보더니 전창빈에게 물었다.“그럼 언제부터 출근 가능하세요?”“이 자리를 위해 온 만큼 언제든지 가능합니다.”선우민아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럼 내일부터 정식으로 출근하세요. 강 집사님께서 이미 숙소를 준비해 뒀을 테고 월급은 내일부터 계산됩니다. 한 달의 수습 기간이 있고 수습 기간 중 급여는 일당으로 지급됩니다. 공짜로 일을 시키진 않을 거예요.“누구든 마찬가지로 하루 일하면 하루 급여를 계산해 주었다.“집사님께서 어제 이미 숙소를 준비해 주셨습니다. 급여는 어떻게 계산되든 상관없습니다. 전 도전을 위해 온 거지 월급을 위해 온 게 아니니까요.”전이혁은 돈이 부족한 게 아니었다. 아내만 부족할 뿐...“좋아요. 지금은 숙소로 가서 쉬세요. 우리 집에서의 하루 세끼 준비 시간은 집사님께서 알려주실 거예요. 아침을 제외한 점심과 저녁 식사 준비 시간은 변함없어요.”선우씨 가문의 사람들 아침 식사는 각자 일어나는 시간이 다르기 때문에 딱히 정해진 시간이 없었다.전창빈이 대답했다.“알겠습니다. 집사님께 여쭤보겠습니다.”그는 다시 모두에게 고개를 끄덕인 뒤 자리를 떠났다.전창빈이 떠나자 선우민아도 일어서서 가족들에게 말했다.“저는 아직 처리할 일이 있어서 나가봐야 할 것 같아요. 민기한테는 주말에 데리고 나가주겠다고 전해주세요.”선우민기는 그녀보다 스무 살이나 어렸기 때문에 남동생을 아들처럼 키웠다.선우민기는 선우민아를 무서워하면서도 잘 따랐다.선우정아도 그녀의 언니를 따라 일어섰다.“저도 일 보러 갈게요.”한경주가 딸에게 당부했다.“접대할 때 술 너무 많이 마시지 마. 몸에 해로워.”“엄마,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5년 전의 제가 아닌걸요.”선우민아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회사를 막 이어받았을 때 그녀는 많은 사람에게 괴롭힘을 당했다. 그땐 위엄도, 경험도 없었고 회사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