ログイン“서른다섯이면... 좀 늦은 거 아닌가요?”하예정이 말했다.“형제 중에도 가장 늦은 나이에 결혼한 분이 태윤 씨잖아요. 그때 저랑 결혼하셨을 때 서른이었죠.”전유하도 커피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시려 했다.그때 품에 안겨 있던 전하연이 고개를 들어 그의 커피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는데 마셔 보고 싶은 눈치였다.전유하가 웃으며 말했다.“하연아, 그건 어른들이 마시는 거라 너는 마시면 안 돼. 대신 너랑 오빠는 과일 주스나 따뜻한 물은 마실 수 있어.”전하연은 엄마를 한번 보고 이어 전유하를 힐끗 보더니 알아들었다는 듯 얌전하게 먹던 간식을 계속 먹기 시작했다.먹으면 안 되는 건 어른들이 절대 주지 않는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울거나 떼를 써도 소용없었다.반대로 먹어도 되는 건 굳이 말하지 않아도 눈빛만 보내면 어른들이 알아서 챙겨 주곤 했다.아이치고는 눈치도 빠르고 제법 영리했다.전하연은 일곱째 삼촌 품에 기대앉아 우아하게 간식을 먹고 있었다.그래도 이 간식은 여섯째 삼촌이 만들어 주던 것만큼 맛있지는 않았다.전창빈이 돌아오지 않은 지도 꽤 되었는데 전하연은 그가 해 주던 간식과 음식이 문득 그리워졌다.특히 아이들 입맛에 맞게 만들어 주던 음식들은 정말 맛있었다.전창빈은 집에 돌아오기만 하면 늘 전하연이 먹기 좋게 여러 가지 음식을 정성스럽게 만들어 주곤 했다.“삼촌.”전하연이 전유하를 불렀다.“어? 하연아, 왜 그래?”전유하가 고개를 숙여 품에 안긴 전하연을 다정하게 바라보며 물었다.“보고 싶었어요.”그 한마디에 전유하 마음이 순식간에 녹아내렸다. 그는 전하연 볼에 가볍게 입을 맞추며 웃었다.“나도 우리 하연이가 많이 보고 싶었어. 오빠들도 그렇고. 아무튼 삼촌은 늘 너희가 보고 싶었단다.”전시우가 한마디 했다.“그렇게 보고 싶으면 왜 집에 안 오세요?”전유하는 손을 뻗어 큰조카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일이 너무 바빠서 그래. 일이 좀 정리되면 한번 돌아갈게.”그때였다.“여보!”갑자기 날카로운 소리가 들렸
전유하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요즘 너무 바빠서 할머니를 못 찾아뵈었는데 건강은 좀 어떠세요?”하예정이 답했다.“크게 편찮으신 건 아니에요. 다만 연세가 있으시다 보니 어르신들이 흔히 겪는 잔병치레 정도는 있으세요. 주치의가 정기적으로 오셔서 진찰도 하고 약도 처방해 드리고 있고요. 요즘은 점점 아이 같아지신다니까요. 약도 잘 안 드시려고 해서 매번 달래 가며 챙겨 드려야 하거든요. 제가 양성에 온다고 하니까 할머니도 같이 오시겠다고 하셨는데 태윤 씨가 겨우 말렸어요. 예전 같지 않으셔서 장거리 이동은 무리세요.”하예정은 할머니께서 오래도록 건강해지시길 바라고 있었다.한성근처럼 장수하시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한성근도 백 살까지 사시다 세상을 떠나셨는데 한 세기를 꽉 채우신 만큼 모두가 장수하신 분이라고 부러워했다.하예정이 말을 이었다.“할머니가 요즘 특히 도련님들 결혼 문제를 많이 걱정하세요. 이제는 예전처럼 여기저기 다니며 손주 며느릿감을 알아볼 기운도 없다고 하시더라고요. 여섯 형들의 부인들은 전부 할머니가 마음에 들어 하셨던 분들이라면서 도련님이랑 결혼하지 않은 유림 도련님 그리고 지율 도련님이 가장 큰 걱정이라고 하셨어요. 세 분 다 결혼 안 한 채로 계시면 나중에 할아버지 뵐 때 마음이 편치 않을 것 같으시대요. 그래서 이번에 오면서 할머니랑 둘째 작은아버지와 작은어머니까지 전부 저한테 부탁하셨어요. 꼭 직접 만나서 얘기 좀 해 보라고요. 도련님도 이제 31살인데 슬슬 인생 문제를 생각해 보셔야 할 때 아닌가요? 양성에는 마음에 드는 분 없으세요? 작은어머니 말씀으로는 집안 배경보다 사람 됨됨이가 더 중요하다고 하셨어요. 꼭 우리 가문이랑 조건 맞출 필요는 없다고요.”하예정이 말했다.“우리가 맞선 자리 좀 알아봐 드리겠다고 하면 늘 바쁘다고 하고 막상 내려오라고 하면 시간 없다고 안 왔잖아요.”맏며느리인 하예정도 시동생들 결혼 문제에 많이 신경 쓰고 있었다.지금 전씨 가문 아홉 형제 가운데 미혼은 세 사람뿐이었다. 전유하는
전시우가 대답했다.“저는 엄마 따라갈 거예요. 엄마가 어디 가면 저도 따라갈래요.”전유하가 웃으며 말했다.“그럼 삼촌이 테마파크랑 동물원 데려가 줄게. 너희 또래 애들은 그런 데 좋아하잖아.”놀이공원은 아직 어린아이들이 즐기기 어려운 시설이 많아 가 봐야 제대로 놀기 힘들었다. 그래서 전유하는 굳이 조카들을 놀이공원에 데려갈 생각은 하지 않았다.게다가 전씨 가문 본가에도 규모가 큰 놀이시설이 따로 있었고 전시우가 태어난 뒤로 그 시설도 전부 새로 교체했다.전씨 할머니 말씀으로는 그 시설들이 원래 그들 형제가 어릴 때 쓰라고 마련해 둔 것이었는데 이제 손자들이 다 컸으니 새로 바꿔야 한다고 했다.“네!”전시우가 고개를 끄덕였다.전유하가 말했다.“형수님, 일단 이것 좀 드세요. 먼저 간단하게 요기라도 하시고 이따가 저의 별장으로 모실게요. 미리 형수님 좋아하시는 음식 넉넉히 준비해 두라고 했어요.”하예정이 말을 이었다.“우리는 괜찮아요. 그냥 이 호텔에 묵을게요. 도련님도 매일 일해야 하는데 우리 때문에 시간을 낼 필요 없어요. 우리는 그냥 놀러 온 거니까 너무 신경 쓰지 않아도 돼요. 집사에게 부탁해서 우리랑 같이 다니게 하면 돼요. 굳이 직접 시간을 낼 필요 없어요.”전유하는 고개를 저었다.“안 돼요. 형수님이 처음 양성에 오셨는데 우리 집을 두고 호텔에 묵으시면 형이 가만있지 않을 거예요. 일은 아래 사람들한테 맡기면 되니까 며칠 정도는 제가 모시고 다닐게요. 그리고 우리 하연이랑 좀 놀고 싶어요. 명절 때 집에 갔는데 저를 못 알아보면 서운하잖아요.”전유하는 양성에서 일하고 있는 바람에 평소에는 집으로 거의 가지 못했고 설이나 명절 때가 되어야 관성에 한 번 들르는 정도였다.그래서 집에 있는 조카들은 이 일곱째 삼촌에 대한 기억이 점점 희미해지고 있었다.조카가 워낙 많다 보니 조카들이 자신을 또렷하게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이해가 갔다.그러나 전하연만큼은 달랐다.전씨 가문에서 몇 대만에 태어난 귀한 딸이었고 전유하 역시 친딸
전유하는 어린 조카딸을 유난히 아꼈는데 품에 안고 있으면 좀처럼 내려놓지 않을 만큼 애정이 깊었다.5년 전 그는 홀로 양성으로 내려와 사업을 시작했다. 형제들 가운데 막내 몇 명만 아직 독립적으로 사업을 꾸리지 않은 상황이었는데 전유하는 관성에서 2천 킬로미터 넘게 떨어진 양성을 선택했다.처음에는 전문경영인으로 경력을 쌓았다.그리고 지금의 회사를 넘겨받으며 경영을 안정시키는 데 힘을 쏟았고 이제는 회사 절반의 지분을 가진 실질적인 대표가 되었다.더는 단순한 전문경영인이 아니었다.그동안 그는 일에 몰두하느라 관성에 거의 들르지 못했다. 게다가 양성에서도 조용히 지내는 편이라 그가 관성의 갑부 전씨 가문의 일곱째 도련님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도 많지 않았다.위 형들은 모두 결혼했고 그 덕에 조카들도 여럿 생겼다.다만 조카딸은 아직 하나뿐이었다.전태윤 부부가 1년 반 전에 둘째로 얻은 아이로 지금은 한 살 반이 되어 제법 걸어 다니고 간단한 말도 할 줄 알았다. 인형처럼 예쁜 외모에 애교도 많아 가족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었다.예전에 점쟁이의 점괘대로 전태윤 부부는 아들과 딸을 모두 얻게 되었다.딸 이름은 전하연이었다.전하연은 태어나자마자 온 집안의 사랑을 한 몸에 받으며 자라고 있다.이 꼬마가 태어나기 전까지 전씨 가문의 증손 세대에는 남자아이만 일곱 명 있었는데 모두 하예정과 다섯 동서가 낳은 아이들이었다.딸을 둔 사람은 하예정뿐이었다. 고현이 딸 둘을 낳았고 이미 결혼한 다른 이들은 모두 아들 하나씩 두고 있다.그래서 하예정이 둘째로 딸을 낳았을 때 그 아이에게는 태어나면서부터 사촌 오빠가 일곱이나 생긴 것이다.전씨 가문은 몇 대째 딸이 매우 귀했기에 전하연의 탄생은 집안 전체를 들뜨게 했다.심지어 전씨 그룹에서는 이를 기념해 전 직원에게 넉넉한 보너스를 지급할 정도였다.전씨 할머니 역시 아흔을 앞둔 나이에 드디어 증손녀를 품에 안게 되었고 이제는 더 이상 예씨 할머니를 부러워할 필요도 없었다.6년이라는 시간은 많은 것을 바꾸
용정은 김청산 곁에서 지내고 있었는데 주변에는 그를 지켜 주는 사람들이 많았다.그래서 하예정은 용태호가 우빈을 이용한다고 해서 쉽게 용정을 만날 수 있을 거로 생각하지 않았다.전씨 가문과 예씨 가문 역시 만만한 가문은 아니었다.여러 도시의 유력 가문들까지 얽혀 있는 만큼 아무리 능력 있는 용태호라고 해도 그 많은 가문을 한꺼번에 상대하기는 쉽지 않을 터였다.그가 지금 용씨 가문에서 임시 가주 자리를 맡고 있는 것도 용정이 아직 어려 복수하지 못한 것뿐이었다.여운별의 일 역시 시간이 흐르며 자연스럽게 잦아들었고 하예정과 여운초의 삶에 더 큰 파문을 남기지는 못했다.오히려 주변 사람들의 행복이 하예정에게는 더 중요한 관심사였다.친구들과 가족들이 하나둘 안정된 삶을 찾고 있는 모습을 보는 일이 그녀에게 더 의미 있게 다가왔다.그렇게 특별한 것 없어 보이지만 소소한 행복이 이어지는 나날이 흘러갔다.그리고 6년 뒤.양성.남수지는 양성 호텔에 막 도착하자마자 늘 경쟁해 오던 전유하를 마주쳤다.전유하는 예전과 다름없이 검은 양복을 말끔히 차려입고 있었고 옅은 파란색 넥타이를 매고 있었다.솔직히 말하면 이 남자는 매우 잘생겼다. 남수지가 지금까지 봐 온 남자들 가운데서도 손꼽힐 정도였는데 외모뿐 아니라 능력까지 갖춘 남자였다.불과 3년 만에 파산 직전이던 회사를 다시 일으켜 세웠고 또 2년을 더 들여 결국 양성에서도 이름을 날린 기업으로 키워 냈다.두 회사가 같은 업종이다 보니 자연히 부딪칠 일이 잦았다.하지만 그 만남이라는 게 대부분 거래를 두고 경쟁하는 자리였다.그래서인지 누구도 남수지 앞에서는 전유하 이야기를 꺼내지 못했다. 누가 그의 이름이라도 입에 올렸다 하면 남수지가 곧바로 예민하게 반응했기 때문이다.꿈에서라도 한 번쯤 전유하를 짓밟고 싶었던 그녀는 어떻게든 그의 기세를 꺾어 보려고 늘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그런데 얼마 전, 남수지가 직접 공들여 성사 직전까지 끌고 갔던 계약이 막판에 틀어졌다. 상대 회사가 갑자기 말을 바꿔 협력
전이혁은 또다시 바보처럼 싱글벙글 웃었다.두 사람은 잠시 말하다가 도아영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업무에 집중했다.그녀는 전이혁의 시선이 다른 데로 향한 틈을 타 서류철 아래 숨겨 두었던 휴대폰을 조용히 꺼냈다.아까 일부러 휴대폰을 두고 온 것처럼 행동했다는 사실을 들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도아영은 곧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다시 일에 몰두했다.그 사이 전이혁은 몰래 그녀가 일하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곧바로 SNS에 올리며 이렇게 적었다.[미래에 제 아이 엄마가 될 사람입니다.]게시물이 올라가자마자 전씨 가문의 형제들이 줄줄이 ‘좋아요’를 눌렀고 곧장 정말 연애에 성공한 거냐며 메시지를 보내왔다.전이혁은 의기양양하게 답했다.[당연하지! 이제 내 여잔 친구야.]그러자 형제들은 곧 이런 반응을 보였다.[혼인 신고하기 전까지는 언제든 변수가 있는 거였군!]전이혁은 속으로 피식 웃었다. 아직 연애도 제대로 못 한 형제들이 괜히 샘이 나서 저런 소리를 하는 거로 생각했다.그는 사랑에 있어 한결같은 사람이고 도아영 역시 마찬가지였다.서로 진심으로 사랑하는 이상 평생 함께할 거라는 확신이 있었고 결혼은 그저 시기의 문제일 뿐이라고 믿고 있었다.전이혁은 SNS뿐만 아니라 해성에서도 두 사람의 관계를 공식적으로 알렸다.그리고 평생 한 사람만 사랑하겠다는 약속까지 내걸었다.그는 말만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전이혁은 한번 내뱉은 약속은 반드시 지키는 사람이었다.전이혁이 도아영과의 연애 사실을 공식적으로 밝힌 뒤, 해성 사람들은 전이혁은 외출할 때마다 경호원들을 거느리고 다니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그들은 하나같이 체격이 건장하고 눈빛이 날카로웠으며 태도 역시 빈틈이 없었다. 한눈에 봐도 제대로 단련된 사람들이라는 것이 느껴졌다.경호원들의 역할은 단순한 신변 보호에만 그치지 않았다. 특히 젊은 여성들이 전이혁에게 쉽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철저히 차단하는 모습이었다.사람들은 그제야 이해했다. 괜히 과시하려고 경호원을 붙인 게 아니라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