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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남편의 아내
내 남편의 아내
고성하

제1화

고성하
“심하온 씨, 확인 결과 이 혼인신고서는 사실 위조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혼인신고서 위조는 불법 행위이므로 수사에 협조해주시기 바랍니다.”

“요즘 세상에 가짜 혼인신고서도 있어?”

“저 여자 사기당했나 봐. 불쌍해 진짜...”

직원들과 몇몇 커플들의 의아한 시선 속에서 심하온은 멍하니 가정법원을 나섰다.

뜨거운 햇살 아래, 그녀는 뼛속까지 시려왔다.

어제 강선우는 갑자기 그녀와 혼인신고를 하겠다며 5년간의 연애에 종지부를 찍었다.

깊은 밤, 침실은 애틋한 분위기로 가득 찼다.

이제 곧 불타오를 무렵, 전화 한 통이 모든 걸 산산조각 내버렸다.

강선우는 평소와 달리 제스처를 멈추고 전화를 받았다.

“됐어, 그만해. 얘랑 나, 그 서류는 가짜야. 2년 전에 너랑 혼인 신고했잖아.”

그가 아주 드문 외국어로 말했지만 심하온은 알아들었다.

강선우의 친구들 모두 이 외국어를 구사했고 그들에게 동화되기 위해 심하온은 몰래 외국어 수업을 들었다.

“그래도 질투 난단 말이에요. 심하온이 사라졌으면 좋겠어요.”

“적당히 해. 하온이는 아무 죄 없어. 지난번 교통사고면 분이 풀릴 법도 하잖아. 하온이는 이제 다리를 다쳐서 평생 춤도 못 춰. 너랑 댄싱퀸 자리를 놓고 경쟁할 사람은 더 이상 없을 거야. 또 말썽 피우면 그땐 나도 뒷수습 못 해. 그런 줄 알아.”

“그럼... 아이는요?”

“얘 임신하고 애 낳거든 방법을 찾아서 아기를 우리 둘 호적으로 올릴게. 됐어, 우리 자기 착하지. 얘는 네 머리카락 한 올과도 비교가 안 돼. 내가 왜 이런 애한테 마음이 흔들리겠니?”

심하온은 충격에 휩싸였지만 남아있는 이성으로 간신히 버텼다.

그러니까 2년 전 교통사고가 인위적인 거라고?

그때 대형 트럭이 갑자기 통제 불능 상태로 그녀를 들이받았고, 심하온은 하마터면 다리가 부러질 뻔했다.

병원에 보름 넘게 입원한 후에야 겨우 한쪽 다리를 지켜냈지만 다시는 춤을 출 수 없게 되었다.

그녀는 어머니로부터 춤에 대한 재능을 물려받았고 장래가 촉망받는 무용수였다.

나중에 강선우는 그것이 단순한 사고였다고 말했다.

그는 심하온의 다리 부상을 전혀 개의치 않았고 그녀는 그런 강선우에게 몹시 감격스러워하며 사랑이 더욱 짙어졌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결국 한 차례 음모였다. 강선우는 그녀를 속였고 심지어 범인과 혼인신고까지 했으며 심하온을 대리모로 이용해서 둘만의 아이를 가지려 했다.

밤새 한숨도 못 잔 심하온은 이른 아침 가정법원으로 달려가 사실을 확인했다.

결국 그녀는 잔혹한 현실에 ‘싸대기’를 맞았다.

심하온은 애써 웃으며 농담한 것뿐이라고 수습했고 그제야 직원들도 더 추궁하지 않았다. 단지 그녀에게 몇 마디 훈계를 준 후 바로 내보냈다.

휴대폰 벨 소리가 한참 동안 울렸다. 심하온은 마침내 정신을 차리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회사 나갔어?”

잠에서 덜 깬 듯한 나른한 목소리가 평소보다 더욱 매력적인 느낌을 주었다.

심하온은 평상시처럼 보이려고 애써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아니요. 잠깐 볼일 보러 나왔어요.”

“어딘데? 데리러 갈게.”

순간 그녀의 눈시울이 빨개졌다.

예전에 강선우가 했던 말이 예고도 없이 머릿속에 차올랐다. 그녀가 어딜 가든, 언제가 됐든 무조건 데리러 와주겠다고, 함께 둘만의 집으로 돌아갈 거라던 그 말...

하지만 지금 이들에게 집이 있기는 할까?

강선우는 2년 전에 이미 딴 여자의 남편이 되었다. 이건 엄연히 육체와 정신, 이중적인 배신이다.

“하온아?”

“아니요, 괜찮아요.”

심하온은 눈물을 흘리면서도 애써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볼일 다 보고 내가 알아서 갈게요.”

그녀가 고집을 부리자 강선우는 결국 양보했다.

전화를 끊고 심하온은 뒤엉켜버린 생각을 정리했다.

강선우와 5년간 사귀는 동안, 그는 늘 순결하고 자기관리가 투철했다.

대학 시절에는 잘생긴 학생회장이었고 졸업 후에는 돈 많고 멋진 강 대표가 되었다. 그에게 대시하는 여자들이 줄을 지었지만 이 남자는 늘 심하온 외의 다른 여자들에게 차갑고 매정했다.

2년 전, 그와 혼인신고 한 여자는 과연 누구일까?

그리고 그 교통사고는...

점심 무렵, 심하온은 회사에 도착했다.

“오셨어요, 심 비서님.”

비서실 직원들이 그녀에게 인사를 건넸다. 심하온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책상 위에는 이미 많은 서류가 쌓여 있었다. 그녀는 일일이 검토한 후 몇 개를 골라 강선우에게 결재를 받기 위해 대표실 안으로 들어갔다.

준수하고 귀족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남자가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그의 위풍당당한 기세는 어디에 앉아 있든 숨 막히는 위압감을 주었다.

그녀가 안으로 들어오자 강선우의 기세가 한결 누그러졌다.

보내온 서류에 하나하나 결재를 하더니 이 남자가 고개를 들어 관심 조로 말했다.

“안색이 안 좋아 보이네.”

“그냥 좀 피곤하네요. 별일 없어요.”

“요즘 그 프로젝트 때문에 고생 많았지.”

강선우는 손을 들어 그녀의 볼을 살짝 쓰다듬다가 요술을 부리듯 긴 상자를 꺼냈다.

“깜짝 선물.”

심하온은 멍하니 상자를 받아 열었다.

안에는 매우 아름다운 다이아몬드 목걸이가 들어 있었다.

그건 바로 Solara의 최신 한정판 목걸이였다.

강선우는 그녀를 일으켜 안으며 이마에 키스하려 했다. 이때 심하온이 고개를 돌려 그의 키스를 피했다.

너무 더러우니까.

“하온아?”

강선우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그는 몇 년 동안 심하온에게 많은 선물을 주었고 그녀는 선물을 받을 때마다 놀라면서 기뻐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고마워요. 너무 예쁘네요.”

심하온은 시선을 내리고 상자를 닫았다.

“여기 사무실이잖아요. 조심해야죠.”

강선우는 웃으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우리 하온이는 늘 이렇게 사려 깊다니까.”

제자리로 돌아온 그녀는 목걸이가 든 상자를 옆에 대충 놓아두었다.

강선우 이 남자는 그녀의 취향을 너무 잘 알고 있다. 이점만은 심하온도 인정해야 했다.

그의 배신을 몰랐다면 이 목걸이를 받고 분명 예전처럼 기뻐했을 것이다.

점심시간, 심하온은 강선우의 모든 SNS를 샅샅이 뒤졌지만 아무런 단서도 찾지 못했다.

그가 올린 피드는 회사 관련 내용 외에 전부 그녀뿐이었다.

그녀와의 러브스토리를 피드에 자주 올려서 친구들의 불평을 한몸에 받았다.

이때 어떤 피드에서 [좋아요]를 누른 프로필 사진이 그녀의 눈길을 끌었다.

프로필 사진은 하얗고 가느다란 손이었고 손목에 착용한 팔찌는 강선우가 예전에 그녀에게 선물했던 팔찌와 매우 비슷했다.

심하온은 싸한 느낌에 이 사람의 인스타그램으로 들어갔다.

가장 최근에 올린 피드가 하루 전이었다.

[먼 길을 마다않고 내게 보내준 목걸이, 너무 마음에 드네요.]

멘트와 함께 사진도 한 장 첨부되었는데 사진 속 목걸이는 강선우가 방금 심하온에게 준 목걸이와 똑같았다.

Solara의 최신 한정판, 단 두 개뿐인 목걸이였다.

심하온은 순간 웃음을 터뜨렸다.

하나는 그녀에게, 하나는 다른 여자에게. 강선우는 이딴 식으로 골고루 신경 써주고 있었던 걸까?

SNS에서 나온 그녀는 한 달 뒤 항공권을 예약했다.

최근 그녀가 팀원들과 함께 진행하는 프로젝트가 있는데 한 달 후에야 끝날 예정이다. 이 프로젝트에는 모두의 노고가 담겨 있기에 심하온도 제멋대로 손을 떼고 물러날 수 없다.

한 달 뒤, 그녀는 이곳을, 그리고 강선우를 완전히 벗어날 것이다.

항공권 예약을 마치고 그녀는 다른 대화창을 열었다.

[아빠, 저 이제 집에 돌아가서 아빠를 도와 가업을 이어받을게요. 그리고 정략결혼도 바로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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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정
2025. 12. 12. AM.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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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 남편의 아내   제919화

    하지만 나현아에게는 달랐다.그날 이후, 공민규는 그녀의 마음속에 깊이 새겨졌다.물론 처음부터 그와 어떤 특별한 인연이 생길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그저 조금이라도 가까워지고 싶었을 뿐이었다.그래서 인턴을 구할 때 윤조 그룹에 이력서를 넣었지만 면접에서 탈락했다.인턴조차 되지 못했으니, 공민규에게 가까이 갈 수 있을 리 없었다.그래도 나현아는 포기하지 않았다.윤조 그룹에 인턴으로 들어간 친구를 통해 회사 직원 몇 명을 알게 되었고, 온갖 방법을 써서 그들과 친해진 뒤 공민규에 관한 이야기를 캐내기 시작했다.직원들이 아는 건 많지 않았지만 오늘 회사에 출근했는지 같은 사소한 정보조차 그녀에게는 충분히 행복한 일이었다.그러다 어느 날, 누군가가 이 일을 공석훈에게 전했다.공석훈은 한동안 그녀를 지켜봤던 것 같았고, 결국 사람을 보내 그녀를 불러냈다.“공 회장님은 제가 일을 도와 송서준에게 접근해서 곁에 남고, 필요한 정보를 빼내기만 하면 많은 돈을 주고, 대표님 곁에서 일할 수 있게 해주겠다고 했어요.”나현아는 조심스럽게 공민규를 힐끗 보며 말했다.“저에게 돈은 중요한 게 아니었어요. 중요한 건... 대표님이었으니까요.”사실 공석훈은 그녀 말고도 여러 여자를 준비해 두었다.그녀는 가장 아름답지도, 가장 매력적이지도 않았고, 가장 똑똑하거나 눈치가 빠른 것도 아니었다.그런데 결국 송서준의 마음에 들어, 그의 곁에 남게 되었다.그 순간, 나현아의 가슴이 갑자기 찌릿하게 아파왔다.이유는 자신도 알 수 없었다.그녀의 이야기를 다 들은 뒤, 공민규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한마디도 하지 않고, 그저 앞을 바라보며 가만히 앉아 있었다.나현아는 용기를 내어 다시 입을 열었다.“공 대표님, 이번 일 정말 감사드려요. 제가 폐를 많이 끼친 건 알지만... 제발 저를 쫓아내지 말아 주세요.”공민규는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그녀를 바라봤다.그의 눈빛은 복잡했다.“쫓아낼 생각 없으니 안심해요.”공민규가 말했다.“다른 일은 제가 알아서 처리할

  • 내 남편의 아내   제918화

    확실한 건 아니었지만 만일의 상황을 대비한 것이다.공민규의 입에서 송서준의 이름이 나오자, 나현아는 잠시 멈칫했다. 마음속에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 일었다.“아... 그 사람...”“제가 공재범이랑 나눈 대화를 들었어요. 나현아 씨가 저를 좋아한다는 것도 알게 됐고요.”공민규가 그녀를 바라보았다.그 눈빛에는, 그녀가 읽어낼 수 없는 감정이 담겨 있었다.하지만 지금 나현아는 그의 감정을 읽을 여유가 없었다.머릿속에는 오직, 송서준이 이미 그녀가 공민규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생각뿐이었다.‘그렇다면 이제 전부 이해했겠지. 왜 내가 끝까지 서준 씨를 배신할 수밖에 없었는지도. 그럼 서준 씨는 어떤 반응이었을까? 분명 몹시 화가 났겠지...’나현아는 속이 타들어 가는 듯했지만 아직 공민규와 그렇게 가까운 사이가 아니었기에 감히 더 묻지는 못했다.지금 그녀가 신경 써야 할 일도 아니고, 신경 쓸 필요도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어차피 그는 이미 그녀를 뼛속까지 증오하고 있을 테니 말이다.그런데도 자꾸만 신경이 쓰였다.“정말 저를 좋아해요?”공민규가 그렇게 물었을 때, 나현아는 여전히 멍한 상태였다.한참이 지나서야 방금 질문을 알아차리고 멍하니 고개를 들었다.“공 대표님, 저는...”공민규는 아무 말 없이 그녀를 바라봤다.이런 상황에서는 당연히 솔직하게 말해야 했다.나현아는 복잡한 심경으로 고개를 끄덕였다.“네, 좋아해요. 몇 년이나 됐어요.”말을 마치자 귀가 자기도 모르게 붉어졌다.예전에는, 언젠가 이렇게 공민규의 앞에 앉아 직접 마음을 고백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그래서, 저 때문에 우리 아버지를 도운 거였어요?”“네...”나현아는 귀가 더 빨개졌다. 부끄럽고 난처했다.“하지만 저는... 대표님과 어떻게 되겠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한 적 없어요. 그냥 일이 끝난 뒤에, 대표님 곁에서 일할 수 있게만 된다면, 매일 한 번씩이라도 뵐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어요.”나현아는 말을 마치고, 공민규

  • 내 남편의 아내   제917화

    그래서 나현아와 공씨 가문 사이에는 더는 연결이 없다고 생각했다.하지만 지금, 새로운 가능성이 떠올랐다.‘공석훈이 아니라 공민규라면?’그녀가 좋아하는 사람이 공민규였다면, 막다른 상황에서 그를 찾는 건 충분히 있을 법한 일이었다.그리고 그렇게까지 그를 위해 헌신했던 만큼, 공민규가 마음이 약해져 그녀를 도와줬을 가능성도 있다.지금의 송서준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도 알 수 없었다.다만, 이성을 유지하는 것조차 버거울 뿐이었다.만약 나현아가 정말 공민규에게 숨겨져 있다면 그는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생각이었다.이미 모든 걸 자연스럽게 흘려보내고, 천천히 잊어가려 했었다.하지만 오늘 들은 모든 것은 마치 머리를 강하게 내리치는 충격과 같았다.놓아주고 미워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렇게 쉬울 리가 없다....나현아는 한가롭게 과일을 먹던 중, 자신을 돌보던 여자가 급히 다가와 심각한 표정으로 말하는 것을 들었다.“지금 당장 이동해야 해요.”“네?”먹던 과일이 목에 걸릴 뻔한 나현아는 놀란 눈으로 물었다.“무슨 말이에요? 설마... 공 대표님이 저를 내쫓는 건가요?”“아니에요. 단지 장소를 옮기는 거예요.”여자는 빠르게 짐을 챙기며 말했다.“시간이 없어요. 빨리 움직여야 해요.”그 말을 듣고 나현아는 조금 안심했다.며칠 동안 공민규를 한 번도 보지 못해, 혹시 마음이 바뀐 건 아닌지 걱정했었다.하지만 단순히 장소를 옮기는 것뿐이라면 괜찮았다.이유는 모르겠지만 어디든 상관없었다.공민규의 보호 아래에만 있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했다.그녀는 곧 여자를 따라 밖으로 나가 차에 올랐고, 경호원 두 명의 호위를 받으며 더 외진 곳에 있는 집으로 이동했다.그 집은 이전 별장보다 훨씬 열악했지만 지금의 그녀에게 선택권은 없었다.그리고 무엇보다도 놀라운 건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공민규가 직접 찾아왔다는 것이었다.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공민규를 보며, 나현아는 놀람과 긴장에 입을 벌린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공민규는 담담한

  • 내 남편의 아내   제916화

    그제야 알 것 같았다.나현아가 왜 자신이 준 부귀영화를 버리고, 송씨 가문의 며느리 자리조차 마다하며, 끝까지 공씨 가문을 위해 일했는지.그녀는 공민규를 좋아했다.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사실들이 머릿속에서 하나둘 또렷해졌다.예전에 한 번, 자신과 나현아가 승마장에서 공민규를 마주친 뒤, 그녀의 태도가 이상하게 변했던 일이 있었다.그건 좋아하는 사람을 마주했기 때문이었다.그런데 그 앞에서, 그녀는 어쩔 수 없이 다른 남자의 여자친구 신분으로 서 있어야 했다.그래서 그때 그렇게 괴로워했고, 감정을 억누르지 못했다.그리고 그 ‘다른 남자’가 바로 송서준 자신이었다.그는 자신의 진심을 모두 바쳤지만, 그녀는 다른 남자를 생각하고 있었다.자신을 발판 삼아, 그 남자를 위해 공을 세울 생각까지 하면서 말이다.얼마나 우스운 일인가.“여기서 뭐하고 있어?”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고개를 들어 보니, 정윤재가 눈앞에 서 있었다.그는 그냥 송서준이 서 있는 걸 보고 다가와 한마디 건넨 것이었는데, 송서준의 얼굴을 보자마자 미간을 찌푸렸다.“몸 안 좋아?”지금 송서준의 안색은 너무나 나빠, 마치 크게 앓고 난 사람 같았다.“윤재야.”송서준이 씁쓸하게 웃었다.“알겠어.”“뭘?”“나현아가 왜 끝까지 나를 배신해야 했는지.”그는 거의 한 글자씩 힘겹게 말했다.“공민규를 좋아했기 때문이야.”정윤재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사실에 눈빛이 흔들렸다.“방금 공씨 가문 형제들 대화를 직접 들었어.”송서준은 자조적인 미소를 지었다.“나는 그냥 웃음거리였던 거지.”정윤재는 복잡한 표정으로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이미 이렇게 된 이상, 그 여자 때문에 더 괴로워할 필요 없어.”“괴로움일까...”송서준이 중얼거렸다.‘아니면 증오일까?’하지만 사랑이 없었다면 증오가 생겼을 리도 없다.“일단 휴게실 가서 좀 쉬어.”정윤재가 말했다.송서준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조금씩 진정했다.오늘은 정윤재 외할아버지의 장례식이다. 정윤재도 힘든 상황인데, 자신

  • 내 남편의 아내   제915화

    공민규는 표정이 없었지만 공재범은 계속 말했다.“그 여자 얘기 나도 들었어. 형 때문에 그렇게 위험한 짓까지 하면서 송서준 옆에 스파이로 들어가고, 송서준이 준 부귀영화도 다 버렸잖아. 참 대단한 사랑이지.”“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야?”공민규의 얼굴에 짜증이 드러났다.“내 말은, 이미 그렇게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는데 굳이 심하온 씨한테까지 마음 쏟을 필요 있냐는 거지. 들으니까 나현아 도망쳤다며? 아직 안 잡혔다던데.”“그런 쓸데없는 일 신경 쓸 시간에 네가 배워야 할 거나 제대로 배워. 그래야 종일 아버지 화나게 하지 않을 거 아니야.”공재범이 피식 웃었다.“그 사람이 화나는 건 자기 문제지. 나는...”말을 하다 갑자기 멈췄다.멀지 않은 곳에 한 사람이 서 있는 걸 발견했기 때문이다.송서준이었다.언제부터 거기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방금 대화를 들었다는 건 분명했다.그의 얼굴에 드러난 분노가 그것을 말해주고 있었다.공민규 역시 그를 발견했다. 순간 멈칫했지만 마음속의 동요와 달리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인사를 건넸다.“송 대표님.”송서준은 대답하지 않고 그저 공민규를 똑바로 노려보고 있었다. 눈빛 속의 분노는 마치 그를 태워버릴 듯했다.옆에 있던 공재범조차 왠지 모르게 서늘함을 느꼈다.생각해보면 당연했다.그렇게 배신당했으니 화가 나지 않을 리 없었다.더군다나 자신이 사랑했던 여자가 사실은 공민규를 좋아했고, 그를 위해 모든 걸 버릴 수 있었던 사람이었다.자신이 송서준이라면 지금 당장 공민규를 죽이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지도 모른다.처음에는 구경거리를 보려 했던 공재범도 이제는 더는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그저 송서준이 안쓰럽게 느껴질 뿐이었다.그가 정신을 차렸을 때, 송서준의 표정이 변해 있었다.분노는 사라지고, 오히려 희미한 미소까지 띠고 있었다.“공 대표님.”그가 웃으며 말했다.“오랜만입니다.”“그러게요. 한동안 못 뵈었네요.”두 사람은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예의 바르게 대화를 나누기

  • 내 남편의 아내   제914화

    공민규의 눈빛이 살짝 어두워졌다.곧이어 심하온이 덧붙였다.“그래도 우리가 굳이 만날 필요는 없었겠죠.”공민규는 그녀의 냉담함에 놀라지 않았다.잠시 후, 그는 다시 말했다.“아직 약혼 축하를 못 했네요.”“마음 써주셔서 감사합니다.”심하온은 그제야 아주 옅은 미소를 지었다.공민규는 씁쓸함을 느꼈다.‘그녀와 정윤재의 약혼 이야기를 꺼낼 때야 겨우 이런 미소를 볼 수 있다니...’문득 그의 머릿속에 별장에 숨겨둔 나현아가 떠올랐다.두 사람의 처지가 참으로 닮아 있었다.그가 너무 오래 침묵하자 심하온이 입을 열었다.“공 대표님, 다른 용건이 없으시면 나가주실래요? 쉬어야 해서요.”공민규는 이제 가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오늘 이렇게 기회를 얻어 그녀를 보고 몇 마디 나눈 것만으로도 묘하게 만족감이 들었다.하지만 작별 인사를 하기도 전에, 갑자기 비꼬는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형이 안 보이길래 어디 있나 했더니 여기 있었네. 찾느라 고생했어.”그 목소리를 듣자 심하온의 미간이 더 깊어졌다.공민규는 뒤를 돌아봤다.문밖에는 공재범이 서서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겉으로는 점잖은 척하지만 기회만 생기면 심하온의 앞에 나타나 존재감을 드러내는 형이었다.“둘이 얘기할 거면 밖에 나가서 하세요.”심하온의 표정이 차가워졌다.“안 나가시면 경호원을 불러서 모실 수밖에 없어요.”공재범의 손가락이 천천히 굳어졌다.방금 막 왔는데 심하온과 말 한마디도 못 하고 쫓겨나게 생겼다.‘형은 언제 온 거지? 대체 무슨 얘기를 했던 거지? 왜 하필 한발 늦은 거야...’“빨리 가지?”공민규의 냉담한 재촉에 그의 생각이 끊겼다.공재범은 반박하려다가 심하온의 짜증 섞인 표정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공민규에게 미움받는 건 상관없지만 심하온에게 더 밉보이고 싶지는 않았다.두 사람은 휴게실을 나왔다.공재범은 돌아서서 심하온을 한 번 더 보려 했지만 공민규가 문을 바로 닫아버려 시야가 완전히 차단되었다.“형, 참 빠르네.”공재범이 다시 비꼬았다.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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