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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Penulis: 월야
last update Tanggal publikasi: 2026-09-19 19:14:28

잘못 본 줄 알았다.

다시 읽었다.

한 번 더.

하지만 숫자는 달라지지 않았다.

현우가 내게 말했던 금액의 열 배였다.

그는 회사가 당장 망한다고 했다. 직원들 월급도 줄 수 없고 거래처까지 무너지면 자신도 끝이라고 했다.

그래서 나 하나만 참으면 된다고.

그 말을 믿었다.

그런데 눈앞에 적힌 금액은 10억이 아니었다.

나는 계약서를 움켜쥔 채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이건은 내가 충격받을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 태연하게 와인잔을 내려놓았다.

“처음 백현우가 요구한 건 회사 정상화에 필요한 10억이었어.”

그가 내 앞의 계약서를 손끝으로 돌렸다.

“그래서 내가 물었지. 100억이면 당신까지 조건에 넣을 수 있겠냐고.”

그 손끝이 계약서 한가운데에서 멈췄다.

내 이름이었다.

“나예요?”

“당신이야.”

너무 태연해서 오히려 더 무서웠다.

“왜…… 왜 하필 저예요?”

이건의 눈이 가늘어졌다.

시선이 내 눈에서 입술로, 다시 목선을 따라 천천히 내려갔다. 숨기려는 기색조차 없었다.

갖고 싶은 것을 바라보는 남자의 눈이었다.

“하필이라.”

낮은 웃음이 흘렀다.

그가 상체를 앞으로 기울였다.

“내가 원한 건 처음부터 한지아 씨였는데.”

손끝이 굳었다.

“우린 오늘 처음 만났어요.”

이건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한 미소였다.

그는 설명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 더 불길했다.

나는 계약서를 움켜쥐었다.

“그럼…… 나는 얼마에 팔린 건가요?”

웃음기가 사라졌다.

“100억.”

숨이 멎었다.

백억.

사람에게 붙어서는 안 되는 숫자가 내 이름 옆에 붙어 있었다.

“남편이…… 그 돈을 받기로 한 거예요?”

“당신을 조건에 넣고 직접 서명했어.”

속이 뒤집혔다.

“그리고 당신은 그 돈을 주고 나를…….”

말끝이 나오지 않았다.

이건이 대신 끝냈다.

“갖기로 했어.”

소름이 팔을 타고 올라왔다.

사람을 돈으로 살 수 없다는 말도, 오해라는 변명도 없었다.

“미쳤군요.”

이건은 부정하지 않았다.

나는 의자를 밀치고 일어나 가방을 움켜쥐었다.

“당신은 백현우보다 더 무서운 사람이네요.”

돌아서는 순간 묵직한 발소리가 가까워졌다.

반사적으로 몸을 돌리자 이건은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에서 멈춰 있었다.

하지만 닿지는 않았다.

고개를 조금 숙여 내 눈을 바라봤다.

“그건 제대로 봤네.”

낮은 목소리가 떨어졌다.

“백현우처럼 가진 걸 함부로 버리는 취미도 없고, 원하는 걸 남한테 양보하는 성격은 더더욱 아니야.”

그가 한 걸음 가까워졌다.

나는 즉시 물러섰다.

“오지 마세요.”

이건의 발이 정확히 그 자리에서 멈췄다.

“아까 말했지. 허락 없이 당신 몸에는 손대지 않아.”

시선이 잠시 내 입술에 머물렀다가 다시 올라왔다.

“그렇다고 당신을 포기한다는 뜻은 아니고.”

그제야 알았다.

이 남자는 배려해서 물러나는 게 아니었다.

서두를 필요가 없는 사람이었다.

나는 가방을 들고 문으로 향했다.

뒤에서 발소리가 따라왔다.

문손잡이를 잡는 순간 커다란 그림자가 등을 덮었다. 이건의 팔이 내 몸 옆으로 뻗었지만 나를 잡는 대신 문 위쪽을 짚었다.

“비켜주세요.”

이건은 나를 붙잡지 않았다.

대신 다른 손에 들고 있던 계약서 한 장을 내 눈앞으로 내밀었다.

“갈 거면 가. 다만 백현우한테 돌아가기 전에 이것부터 보고.”

종이 아래쪽에는 분명 현우의 서명이 있었다.

그 위로 내가 보지 못했던 조항들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첫 줄을 읽는 순간 손끝이 얼어붙었다.

“백현우가 100억에 넘긴 건 오늘 밤 한 번이 아니야.”

천천히 이건을 올려다봤다.

그의 눈은 처음부터 나만 보고 있었다.

“읽어봐.”

긴 손가락이 현우의 서명 위를 짚었다.

“당신 남편이 당신을 어디까지 내게 넘겼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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