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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Author: 백은영
“운 귀인 만복을 기원드립니다.”

“귀인마마, 축하드리옵니다!”

운양과 운비가 나란히 앞으로 나서서 절을 올리자 목단원의 궁녀들 역시 기쁨에 찬 얼굴로 일제히 무릎을 꿇었다. 선두에 선 명 영감은 입이 귀에 걸리도록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마마께서는 전하의 총애를 받으셨으니 장래가 창창하실 겁니다. 진심으로 경하 드리옵니다.”

하례가 이어지는 가운데 온갖 찬사가 그녀를 에워쌌다. 그러나 주위의 뜨거운 열기와는 달리 중심에 앉아 있는 소녀는 조용히 고개를 들며 입을 열었다.

“지금 이 자리에 모인 자들은 모두 궁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니 내 몇 마디 해야겠다.”

그녀는 태연하고 단정한 모습으로 말을 이었다.

“나는 본래 권세를 믿고 함부로 날뛰는 자를 가장 싫어한다. 전하께서 총애해 주신 만큼 나는 더욱 말을 삼가고 몸가짐을 조심할 것이다. 만약 누가 궁중에서 제멋대로 행동하는 모습을 들키기라도 한다면 나는 결코 용서치 않을 것이야.”

그녀의 단호한 말에 궁녀들과 내시들의 어깨가 저절로 굳어졌다. 열여섯밖에 안 된 소녀였으나 그녀의 말에는 거역할 수 없는 위엄이 서려 있었다.

“명 영감, 내가 방금 한 말 명심했겠지?”

“예! 절대 귀인마마께 해가 되는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저희도 명심하겠습니다!”

그때 운 귀인이 운양에게 눈짓하자 그녀는 곧장 준비해둔 은전을 내관들과 궁녀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아까까지 잔뜩 긴장했던 이들의 얼굴에는 곧장 안도의 빛이 떠올랐다.

“일만 잘한다면 은전은 얼마든지 주겠다.”

은혜와 위엄, 그 둘을 모두 겸비해야 사람을 다스릴 수 있는 법이다. 전생의 그녀는 막 입궁했을 때 음험한 자들의 지시로 붙여진 교활하고 심술궂은 하인들에게 시달려 많은 손해를 입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죄까지 그녀가 모조리 떠안았고 그러다 결국 후궁들의 미움을 사기도 했다.

과거 그녀를 괴롭히던 하인들은 궁중의 권세 있는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붙여준 자들임이 분명했다. 그들이 누구의 수하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쫓아낼 수도, 내보낼 수도 없는 자들이었다. 만약 하인들을 길들이지 못한다면 결국 화근이 될 것이다. 이번 생에 그녀가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바로 전생에 정체를 밝혀내지 못했던 그 첩자 하나를 낚아내어 제거하는 것이었다.

“됐다. 다들 물러가거라.”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이가 물러나자 운양이 급히 다가와 차를 따랐다.

“마마, 많이 피곤하셨지요? 잠시 쉬세요.”

운 귀인은 찻잔을 들고 입을 적셨다. 방 안은 밝고 아늑했지만 규모가 조금 아쉬웠다.

“운양, 운비. 너희에게 일을 맡기고 싶다.”

두 사람은 얌전히 다가와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운비는 슬쩍 나가 정원에서 나뭇가지를 다듬고 있던 어린 내시 복이를 불러냈다.

“복아, 오늘 운 귀인께서 너를 눈여겨보셨단다. 명 영감보다도 네가 낫다고 칭찬하시더구나. 잘만 한다면 네가 이 목단원의 우두머리 내시가 될지도 몰라.”

기쁨에 눈이 휘둥그레진 복이가 무릎을 꿇으려 하자 운비는 얼른 그를 말렸다.

“지금은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거라. 묵묵히 충성하면 반드시 높은 자리까지 오를 수 있을 것이다.”

“예! 꼭 성심성의껏 모시겠습니다!”

한편 운양도 따로 자리를 잡아 궁녀 숙희를 불러내어 비슷한 말을 전했다. 그날 하루에만 무려 여섯 명에게 같은 말을 건넸다. 밤이 되자, 궁녀와 내시들은 모두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이번 기회에 충성하여 반드시 출세해야지.’

운양과 운비는 임무를 마치고 돌아왔다. 그때 숙희는 운 귀인의 머리를 정성껏 빗겨드리고 있었다.

“숙희야, 물러가 있어라.”

“예, 마마.”

방문이 닫히자마자 운양이 빗을 받아 들었다.

“어떻게 되었느냐?”

운양은 웃음을 터뜨렸다.

“역시 마마는 똑똑하십니다. 정말로 목단원의 상황을 캐묻고 다니는 자가 있더군요. 심지어 은전까지 건넸다고 합니다. 다행히도 저희 쪽에서 먼저 귀띔해둔 덕분에 누구 하나 입을 열지 않았어요.”

운 귀인은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머리카락을 쓸어넘겼다. 전생의 그녀는 끝내 배신자를 밝혀내지 못한 채 그들의 손에 쓰러졌다. 숙희였을까? 아니면 추희였을까?

그 누가 되었든 이번 생에는 절대 그 첩자를 놓치지 않을 것이다.

“운양아, 이틀 동안 숙희와 추희를 유심히 지켜보거라. 누가 더 간절히 올라서고 싶어 하는지 말이다.”

의욕이 없는 자일수록 그 속에는 다른 계산이 숨어 있기 마련이다.

“알겠습니다, 귀인마마.”

이튿날 새벽, 궁 안은 일찍부터 부산스러웠다. 오늘은 궁에 있는 후궁 전원이 봉의궁으로 가 중전에게 알현을 드리는 날이었다. 운 귀인은 평소보다 이른 시각에 일어났고 운양이 백색 자수 옷을 내오며 조심스레 말했다.

“마마, 요 며칠 전하께서 마마를 특별히 눈여겨보신 터라 오늘은 너무 돋보이지 않는 옷이 좋을 듯합니다. 괜한 시기심을 사지 않도록 말이에요.”

운 귀인은 몸종의 시중을 받으며 조용히 세수를 마쳤다. 그녀는 운양이 가져온 옷을 훑어보던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가서 분홍색 치마저고리를 꺼내오너라.”

운양은 잠시 머뭇거렸다.

“그건 조금 눈에 띄는 색상인데 괜찮을까요?”

운 귀인의 시선이 천천히 운양에게 옮겨졌다. 그녀는 본래 신중하고 분별력이 있는 아이였다. 전생에도 끝까지 그녀 곁을 지켰고 피비린내 나는 권력을 함께 이겨내며 여관 자리까지 오른 아이였다. 하지만 지금의 운양은 겨우 열넷, 마음이 곱고 생각이 깊되 경험이 부족했다.

“오늘은 궁중의 모든 여인들이 중전마마를 알현하는 날이야. 전하께서도 조정 일을 마친 뒤 조상 규례에 따라 봉의궁에 들를 것이다. 그러니 모든 후궁들은 너도나도 치장하고 올 테지. 그 속에서 눈에 띄는 건 담백한 난초일까 아니면 기품있게 피어난 모란일까?”

그 말에 운양은 순간 모든 것을 깨달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운 귀인은 진주 귀걸이를 착용하며 다시 입을 열었다.

“너무 수수하게 꾸미면 도리어 역효과를 불러올 것이다. 튀지 않으려 일부러 애썼다며 뒤에서 비난하겠지. 그러니 적당히 화려하되 가장 우아하게 꾸며야 해. 그게 궁에서 살아남는 방법이란다.”

운비가 방 정리를 마치고 돌아와 웃으며 말했다.

“역시 마마께서 제일 지혜로우십니다.”

운양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마마, 제 생각이 너무 짧았던 것 같습니다.”

“아니야, 넌 이미 아주 잘하고 있어. 조급해하지 말고 나를 따라 천천히 배워가렴.”

운 귀인의 눈빛은 따스했다. 그러나 운양은 그녀의 눈빛에서 어딘지 모를 묘한 거리감을 느꼈다. 마치 어머니가 딸을 바라보는 듯한 그런 눈빛.

이런 생각이 들자 운양은 스스로를 질책했다. 그녀는 곧바로 마음을 다잡고 옷매무새를 손질하기 시작했다.

봉의궁 입구에 도착하자 이미 수많은 후궁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색색의 치맛자락이 물결치듯 흩날렸고 진한 향이 사방에 퍼졌다. 눈이 어지러울 만큼 찬란하고 화려한 풍경은 전생과 똑같았다.

“어머, 이게 누구신가요? 우리 운 귀인 아닙니까?”

가느다란 음성과 함께 그녀 곁으로 한 여인이 다가왔다. 혀에 단 꿀을 바른 듯한 말투를 하고 있었지만 눈빛은 날이 서 있었다.

“입궁하던 날부터 듣긴 했습니다. 천하의 미모에 교태 넘치는 절세가인이라기에 몹시 궁금했는데 오늘 직접 뵈니 듣던 것보다 훨씬 아름다우시네요. 저 멀리서 보는데 어찌나 곱던지... 여우가 환생한 줄 알았지 뭡니까?”

그녀는 둥근 얼굴에 어딘지 모르게 반쯤 흐트러진 눈빛을 가졌다. 본래는 천진난만해야 어울릴 얼굴인데 그 속에 감추어진 악의는 오히려 어색함을 더해 주었다.

‘순빈.’

전생에 그녀는 전하에게 무식하고 재능 없고 말귀를 못 알아듣는다고 외면 당했던 후궁이었다.

운 귀인은 고개를 살짝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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