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칼테인 왕국
헬리온 “여기까지 오면서 경치를 감상하느라 시간이 좀 걸렸어. 정말 큰 집이네. 정원은 그보다 더 크고, 뒤쪽에는 수영장까지 있어. 데이비드 씨는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일까 하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대문을 지나 초인종을 눌렀다. 처음 왔을 때와는 달리, 이번에는 시간을 세지 않았다. 누군가 나올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다행히 오래 기다릴 필요는 없었다. “레이아, 일찍 왔네.” 레인은 당연하다는 듯 잘생긴 모습으로 문을 잡고 서서 나를 보며 활짝 웃고 있었다. 얼굴이 화끈거렸고, 부끄럽기까지 했다. “어머니가 여기 있으라고 하셔서요. 그래서 왔어요.” 나는 수줍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그가 나와 함께 킥킥 웃는 소리를 듣자 눈이 커졌다. “그럼 들어와. 기다릴 거지?” 나는 조용히 그의 뒤를 따라갔고, 거실에 도착했다. 그의 코코넛 향이 코끝에 스치자, 그 향을 음미하려고 잠시 눈을 감았다. “기다리는 동안 내가 같이 있어 줄까?” 그의 제안에 내 눈이 번쩍 뜨였다. 내가 하고 싶은 건 목청껏 ‘네!’라고 소리치는 것뿐이었다. “그러면 좋겠어요.” 대신 나는 침착하게 대답했다. 그렇게까지 나를 망신시킬 생각은 없었다. “좋아, 따라와.” 이미 그러고 있었지만, 나는 그를 따라 계단을 올라 긴 복도로 들어갔다. 양쪽 벽에는 더 많은 이국적인 그림들이 장식되어 있었다. “보니까 가족분들이 예술을 좋아하시는 것 같네요.” 내가 그 말을 소리 내어 했다는 사실은 그 말을 듣고 나서야 깨달았다. “아, 이것들? 이건 다 내 거야. 심심할 때 그림을 그려.” 그가 아무렇지도 않게 중얼거렸다. 나는 입을 벌린 채 그림들을 더욱 자세히 바라보았다. 절대로 심심해서 그린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만든 것처럼 보였다. “정말 멋져요.” 나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말했다. 여전히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는데 그가 몸을 돌리는 것이 보였다. “정말?” 설마 농담하는 건가? 그는 이 그림들을 보고 있는 게 아닌가? 어떻게 이 그림들이 멋지다는 걸 모를 수 있지? “정말 훌륭한 미술관에 와 있는 기분이에요.” 나는 중얼거렸다. 그의 눈에서 시선을 떼려고 했지만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우리는 1분 동안 아무 말 없이 서로를 바라보며 서 있었다. “고마워, 레이아.” 그가 마침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내 몸 안의 모든 기관이 춤을 추는 것 같았다. 우리 사이에 순간이 있었고, 그 느낌은 정말 좋았다. “피아노 치는 것 말고, 또 좋아하는 일이 있어?” 그의 질문에 나는 놀랐다. 내가 그의 아버지에게 피아노를 칠 줄 안다고 말했을 때 그가 그 자리에 있었던 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머리를 굴려 생각했다. “그림이나 음악 같은 재능은 없어요. 피아노를 치는 게 제가 할 수 있는 전부인 것 같아요.” 나는 내가 느끼는 것만큼 한심하게 들리지 않으려고 애썼다.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 남자가 그린 놀라운 그림들로 가득한 복도를 걷고 있으니, 나는 너무나 한심하게 느껴졌다. “모든 사람이 피아노를 칠 수 있는 건 아니야, 레이아. 자랑스러워해도 돼.” 그가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그가 옳다는 건 알았지만, 자랑스럽지는 않았다. 그래도 살짝 미소를 지었다. 내가 아까 그를 칭찬했고, 이제 그가 나를 칭찬하고 있었다. 그는 나를 또 다른 거실로 데려갔다. 거실이 두 개나 있는 집이라니? 나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조용히 그의 말에 집중했다. “내 방을 보고 싶어?” 또다시 나는 당장 ‘네’라고 소리쳐야 할 것 같은 부탁이었다. “폐가 되지 않는다면요.” 나는 침착하게 대답했다. 감정을 여기저기 흘리지 않고 억누르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었다. 그는 복도를 몇 미터 걸어가 왼쪽에 있는 유일한 문 앞에서 멈췄다. 문을 열고 내가 들어갈 수 있도록 옆으로 비켜섰다. 정말 신사다웠다. 나는 천천히 안으로 들어갔다. 그의 방은 엄청나게 컸다. 아마 내 아파트 전체만 한 크기였을 것이다. 벽과 바닥은 모두 흰색이었다. 가구는 차분한 색들이 섞여 있었고, 흰색 배경과 완벽하게 어우러져 아름다운 색 조합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색의 조화가 정말 아름다워요.” 나는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속삭였다. “이 방의 색을 알아봐 준 사람은 네가 처음이야.” 그가 작게 웃으며 말했다. 그가 재미있어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나 역시 기분이 좋았다. “눈에 안 띄기가 더 힘들 정도인걸요.” 나는 방 끝에 있는 유리문을 향해 걸어가며 숨을 내쉬듯 말했다. 그의 방에는 테라스가 있었다. 그곳으로 나가는 순간 차가운 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나는 눈을 감고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정말 기분이 좋았다. “자연을 좋아하는 것 같네.” 뒤에서 그의 목소리가 들려 나는 눈을 떴다. “아버지가 자연을 좋아하셨어요. 그래서 저도 자연을 사랑하는 법을 배웠어요.” 나는 그를 바라보지 않으려고 애썼지만, 그가 나를 보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이킹 가본 적 있어?” 그가 발코니로 걸어가 난간에 팔을 기대었다. “몇 번요. 아버지와 함께.” 나 역시 발코니로 걸어가 그에게 불과 몇 센티미터 떨어진 곳에 섰다. “언젠가 같이 가자.”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내 눈은 그의 눈을 향했다. 그의 푸른 눈은 뒤에 펼쳐진 하늘과 하나가 된 것 같았다. 아무리 내 이성이 그러지 말라고 해도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눈이… 초록색이네요. 헤이즐빛 초록색.” 몇 분 동안 그저 서로를 바라본 뒤, 그가 속삭였다. 엄마의 눈도 같은 색이었다. 아빠는 내가 엄마의 눈을 물려받았고, 그 눈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항상 말씀하셨다. “아름다워.” 그가 말을 이었다. 나는 거의 녹아내릴 것 같았다. 머리가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고 꿈을 꾸는 것 같았다. 이번에는 깨어나고 싶지 않았다. “고마워요.” 나는 속삭였다. 너무 당황해서 말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평생 이런 매력적인 남자가 나를 바라볼 시간조차 있을 거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하물며 내 눈동자의 색을 알아봐 줄 거라고는 더더욱. “거기 있었구나, 너희 둘.” 방 안에서 들려온 목소리가 우리를 방해했다. 내 심장이 내려앉았다. 배 속의 나비들이 모두 죽어버린 것 같았다. 머리가 돌던 것도 멈췄고, 미소도 사라졌다. “안녕하세요, 엄마.” 그는 그녀에게 다가가 뺨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나는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지을 수 있는 가장 자연스러운 가짜 미소를 지으려고 애썼다. 역시 좋은 순간은 정말 오래가지 않는 모양이었다.내 눈은 거실 전체를 훑었다. 그곳은 내가 예전에 살던 아파트 전체 크기와 같았고, 아니, 아주 조금 더 큰 것 같기도 했다. 둘러보던 중 내 눈에 예전 집에 있던 안락의자가 들어왔다. 내가 알아볼 수 있는 유일한 물건이었다. 그 외의 모든 것은 새것이었다. 안락의자가 연한 갈색이었기 때문에 다른 소파들도 같은 색을 사용하고 있었다. 커다란 TV 앞에는 긴 소파가 놓여 있었고, 두 개의 1인용 소파는 내 예전 소파를 포함해 서로 마주 보고 있었다. 나는 또한 거실 끝부분에 유리창으로 된 벽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 창들은 자연광을 안으로 들여보내 미색으로 칠해진 벽의 아름다움을 한층 돋보이게 했다. 정말 아름다웠다.오른쪽을 보니 주방이 있었다. 한눈에 봐도 흰색을 테마로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거실의 페인트와도 잘 어울렸다. 위쪽 벽에 걸려 있는 손잡이 없는 수납장과 바닥에 붙어 있는 하부장들은 모두 흰색이었다. 바닥 수납장 위에 놓인 대리석 상판은 회색빛을 띠고 있었다. 그 색은 양문형 냉장고부터 전자레인지, 식기세척기, 오븐을 비롯한 수많은 주방 가전과도 어울렸다. 완벽하게 기능하는 주방이었다. 나는 그저 마음에 쏙 들었다.“그럼 네가 아파트에 익숙해지도록 나는 자리를 비켜줄게.”데이비드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그가 아직 그곳에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했다. 나는 옆에 있는 그를 돌아보았다.“나 약속된 미팅이 있어서, 한…”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왼쪽 손목에 차고 있는 롤렉스를 바라보았다. 1초 후, 다시 내 눈을 바라보았다.“한 시간 후에.”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눈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이 아파트 정말 멋져요.”나는 마지막 단어에 힘을 주며 속삭였다. 그는 소리를 죽여 웃었다.“정말 고마워요, 데이비드.”나는 몸을 기울여
“걸어서 갈 수 있겠어요, 아니면 휠체어를 요청할까요?”“휠체어로 부탁해요.”나는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는 멀쩡하게 걸을 수 있었지만, 그냥 휠체어에 실려 나가기로 했다. 그러지 말아야 할 이유가 대체 뭐가 있겠는가?“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나는 짧게 고개를 끄덕였고, 데이비드는 방에서 급히 나갔다. 그는 나를 병원에서 데려가기 위해 왔다. 내 새 집은 마침내 모든 준비가 끝나 있었다. 내 옷과 다른 소지품들을 예전 아파트에서 옮기는 것까지,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었다.데이비드는 내가 예전 아파트가 있는 지역에 가까이 가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겠다는 입장이 아주 확고했다. 내 물건을 가지러 가는 것조차 안 된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집을 알아봐 주던 남자에게 내 모든 물건을 새 집으로 옮기라고 지시했다. 물론 그것들을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정리할 예정이었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나’는 데이비드가 나와 함께 살도록 고용한 새 가정부를 의미했다.“자, 갑니다.”데이비드는 두 명의 간호사와 의사를 뒤에 데리고 방으로 들어왔다. 간호사 중 한 명이 자신의 앞에서 휠체어를 밀고 있었다. 나는 입술에 미소를 지으며 그들이 내게 건넨 미소에 답했다.“제가 도와드릴까요?”내가 일어나려고 하자 간호사 중 한 명이 물었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곧바로 내 곁으로 달려왔다. 공중에 늘어뜨려져 있던 내 팔을 잡은 그녀는 아주 조심스럽게 내가 일어설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나는 비행기에서 ‘취급주의’라고 적힌 상자라도 된 기분이었다.내 팔을 단단히 잡은 간호사는 뒤에서 다른 간호사가 잡고 있던 휠체어에 나를 천천히 앉혔다. 나는 다리를 발판 위에 올려놓고 밀려나기를 기다렸다. 예상대로 오래 기다리지 않았다. 독특한 병원 냄새를 머금은 바람이 머리카락 사이를 스쳐 지나갔
아버지와 아들이 같은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하면서도 서로 독립적으로 움직이게 만드는 것은 내 평생 해본 일 중 단연코 가장 어려운 일이었지만, 나는 해냈다. 내 미친 천재 같은 두뇌가 결국 해냈다.내가 직접 집을 보러 다닐 수 없었기 때문에, 데이비드는 누군가에게 내가 새 아파트에서 원하는 것들을 물어보게 한 뒤, 내 취향에 맞는 집을 찾도록 했다. 내가 언급한 몇 가지는 아름다운 주방, 침실 두 개와 그중 적어도 하나에는 욕조가 있는 것, 안나의 새 병원과 가까운 위치였고, 나는 여전히 아파트를 원했다. 계단을 오르거나 엘리베이터를 이용해야 하는 것이 좋았기 때문이다. 나는 몇 가지 세부 사항을 더 나열했지만, 그것들이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주요 조건들이었다.데이비드 역시 내가 예전 아파트로 돌아가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새 집이 준비될 때까지 병원에 머물라고 고집했다. 그것은 곧 나를 위해 집을 알아보고 있는 불쌍한 젊은 남자에게 가해지는 압박이 커졌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는 꽤 귀여웠다. 나는 우리가 단둘이 있을 때 그가 나에게 추파를 던졌다고 확신할 수 있었고, 물론 나도 망설임 없이 그에게 똑같이 추파를 던졌다.그 일이 진행되는 동안, 레인은 케이티의 일을 처리하고 있었다. 집을 알아보기 시작한 지 하루 후, 다행히도 아버지가 병원을 떠난 직후에 그는 내게 찾아와 그녀를 잡기 위한 우리의 계획을 어떻게 진행할지 지시를 받았다.“그러니까 잘 들어.”나는 그의 집중한 눈을 바라보며 흥분을 숨기려고 애쓰면서 말을 시작했다.“케이티는 너를 사랑해. 그것도 희망이 없을 정도로, 위험할 정도로 너를 사랑하고 있어.”“그 정보가 정말 중요한 거야, 레이야?”“아니, 그냥 너 약 올리고 싶어서.”나는 낄낄거리다가 결국 크게 웃음을 터뜨렸고, 그는 눈을 굴렸다. 내가 스스로 만족하고 나자 진정했다
데이비드는 나를 담당하는 의사를 찾겠다며 자리를 비웠다. 그가 자리를 비운 사이, 몇 분 후 그의 아들이 우아하게 내 방으로 들어왔다. 그 순간, 내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이렇게 빨리 그를 보게 될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지만, 그가 나를 향해 미소를 짓자 나도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안녕, 아름다운 사람.”그는 내게 가까이 다가와 속삭이더니 몸을 기울여 내 이마에 입을 맞췄다.내 눈은 문으로 재빨리 향했다. 그의 아버지가 언제라도 들어올까 봐 두려웠다.“머리는 어때?”그가 묻는 동시에 내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쓰다듬기 시작했다. 손길이 이어질 때마다 내 불안은 커졌다. 속이 뒤틀렸고, 동시에 배 속 깊은 곳에서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데이비드가 곧 들어올 것이라고 알려주는 듯한 느낌이었다.“무슨 일이야, 레이야?”걱정스러운 그의 말투에 내 눈이 다시 그에게 향했다.“불안해 보이는데.”“아무것도 아니야.”나는 희미하게 미소를 지으며 억지로 대답했다.“그냥…”나는 헛기침을 하며 다시 문을 힐끗 바라봤다.“머리를 쓰다듬는 게 조금 불편해서.”“아, 물론이지.”그는 쑥스러운 웃음을 흘리며 곧바로 손을 거두었다.“미안해.”그는 방 안에 있는 유일한 의자에 앉아 내 침대 옆으로 가까이 끌어당겼다. 그는 내 손을 잡아 침대 위에 올려놓은 채 눈을 들어 내 눈을 바라보았다. 내 눈은 문을 바라보고 싶어 안달이 났지만, 레인의 눈이 내 눈에서 떨어지지 않았고 나는 어떤 식으로든 의심을 살 만한 행동을 하고 싶지 않았다.바로 그때,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쪽을 바라보지도 않았다. 곧바로 기침하는 척하며, 누가 들어오는지에 정신이 팔린 레
레인은 내가 퇴원해도 된다는 허가를 받을 때까지 내 곁에 있겠다고 고집했지만, 내가 가장 안도했던 것은 우주가 그에게 긴급 수업을 보내주었다는 것이었다. 그 일 때문에 그는 마지못해하면서도 결국 자리를 떠나야 했다.그가 떠나기 전에 나는 안나에게 연락하고 싶다고 거짓말했고, 내 휴대전화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공격자에게 빼앗겼기 때문에 새 휴대전화를 얻을 완벽한 핑계가 되었다. 레인이 돌아오기까지 몇 시간밖에 없었고, 그 전에 데이비드와 이야기해야 했기 때문에 기다리는 시간이 고통스러울 정도로 길게 느껴졌다. 결국 새 휴대전화가 도착했다. 아이폰 15 프로였다. 부모님이 사고로 돌아가신 후부터 사용해오던 7+보다 훨씬 좋은 기종이었다.나는 망설이지 않고 새 휴대전화의 포장을 뜯었고, 잠시 그 아름다움을 감상했다. 아마도 내가 손가락을 대본 기기 중 가장 세련된 기기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내 것이었다. 나는 전원을 켜자마자 곧장 카메라 앱으로 들어갔다. 셀카 카메라를 켰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내 머리를 감싸고 있는 흰 천이었다.내 앞의 화면에 시선을 둔 채, 손가락을 머리로 가져갔다. 하얀 천의 작고 보이지 않는 섬유가 내 손가락 끝을 스쳤다. 솜처럼 느껴졌다. 부드럽고 편안한 느낌이었다. 내 눈에 붕대의 오른쪽 끝부분에 희미한 붉은 얼룩이 들어왔다.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그것이 내 피 때문에 생긴 것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내 손가락으로 그 얼룩을 따라가며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누군가 내가 이렇게까지 미쳐버릴 거라고 말했다면, 나는 터무니없는 소리라며 단칼에 부정했을 것이다. 내 생각들은 나 자신을 무섭게 했다. 가끔은 내가 어떻게 그런 생각들을 떠올릴 수 있었는지 의문이 들기도 했다. 그것은 내 정신이 온전한지 의심하게 만들었지만, 나는 이미 너무 멀리 와버려서 돌아갈 수 없었다.바로 그때 나는 애초에 왜 휴대전화를 부탁했는지 떠올랐다. 나는 병원
나는 레인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과 약간의 분노를 띤 채 벌떡 일어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나는 충격적인 반응을 예상했지만, 이렇게까지 과장된 반응일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레이야,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어?!”나는 그의 목소리에서 애써 감정을 억누르려는 것이 느껴졌지만, 결국 그의 입에서 나온 목소리는 정말 크게 울려 퍼졌다. 그의 반응은 이 배를 그녀가 원하는 방향으로 몰고 가는 일이 얼마나 어려울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나는 최대한 조심스럽게 움직여야 했다.“케이티가 너를 정확히 좋아하는 건 아니라는 건 알아…”“그녀는 나를 싫어하는 정도가 아니야. 날 미워하고, 나를 협박했어.”그는 짧게 숨을 내쉰 뒤 눈을 굴렸다.“마치 그녀가 흉악범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하네.”“그날 그녀가 내 아파트에 왔을 때 네가 봤어야 해.”나는 반박하며 목소리를 차분하게 유지하려 애썼다.“그날 그녀가 나한테 했던 말을 전부 진심으로 했다는 걸 알 수 있었어.”레인은 고개를 저으며 시작했다. 자신의 머릿속이 내 제안에 단 한순간이라도 생각할 기회를 주는 것조차 거부하는 듯했다. 나는 천천히 내 안에서 차오르는 짜증을 억누르려고 했다. 한편으로는 그가 아직도 그녀에게 약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닌지 의문이 들기까지 했다.“봐, 나 케이티를 알아.”그의 목소리의 속도가 속삭임으로 줄어들었다.“너한테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나 그녀와 사귀었어.”짧은 분노가 파도처럼 나를 휩쓸고 지나갔다.“1년 동안.”그가 계속했다.나는 무례하게 말을 끊을 뻔했지만 꾹 참았다.“그녀에게 약간 극단적인 면이 있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그게 그녀를 지배하게 내버려두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