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나는 샤워를 마치고 나오면서 머리를 수건으로 감싸고, 또 다른 수건을 몸에 둘렀다. 나는 늘 수건을 몸에 완벽하게 두른 채 손을 자유롭게 사용하며 돌아다니는 기술이 무척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좀처럼 그 방법을 터득하지 못했다. 대신 수건으로 감싼 끝부분을 겨드랑이 아래에 단단히 끼워 잡고 있었다. 한쪽 팔을 사실상 못 쓰게 만드는 셈이었다.
나는 작은 아파트의 거실로 향했다. 한쪽 팔로 몸에 두른 수건을 붙잡고, 다른 손으로 작은 수건을 사용해 머리를 말렸다. “안녕, 레이야.” 거실에서 들려온 누군가의 목소리에 나는 화들짝 놀랐다. 급히 고개를 들자 데이비드 씨가 내 앞에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그의 눈이 나를 바라보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나는 그의 시선을 따라갔고, 그제야 내가 무의식적으로 수건을 놓쳐버렸고 수건이 바닥에 떨어져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완전히 벌거벗은 내 몸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죄송해요.” 나는 황급히 수건을 집어 다시 몸에 둘렀다. 발을 내려다보자 눈물이 차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아니야, 레이야. 내가 미안해.” 그가 즉시 대답했다. “몇 번 노크했는데 아무런 대답이 없었어. 문이 잠겨 있지 않은 걸 보고 그냥 들어왔어.” 나는 그를 바라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땅이 갈라져 나를 삼켜버리기라도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괜찮…… 괜찮아요.” 나는 말을 더듬었다. 괜찮지 않았다. 눈을 감고 사라져버리고 싶었다. “정말 괜찮아? 정말 미안해.” 나는 용기를 내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정말 미안해하는 표정이었다. 그 모습을 보니 조금은 마음이 나아졌다. “네.”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차에서 기다릴게. 바로 아래에 있어.” 나는 다시 고개를 끄덕였고 그는 천천히 밖으로 나갔다. 나는 즉시 엉덩방아를 찧듯 바닥에 주저앉았다.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싼 채 바닥에 앉았다. 큰 소리로 비명을 지르고 싶었다. 내 머릿속에서는 방금 상황이 계속해서 반복됐다. 그러다 갑자기 두 손을 얼굴에서 떼었다. 왜 그는 시선을 돌리지 않았을까? 내가 몸을 가릴 때까지 계속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사실을 깨닫자 등골이 오싹해졌다. --- 병원으로 가는 차 안은 내게 매우 불편했다. 그는 리무진 안에서 내 맞은편에 앉아 다리 위에 올려놓은 맥북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내 눈은 가끔씩 그에게 향했지만 왜 그러는지는 나도 확신할 수 없었다. 차 안에 우리 둘만 있는 것이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가 내 동생을 찾아가겠다고 했을 때, 나는 그가 진심으로 그렇게 하겠다는 뜻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의 좌석 가장 오른쪽에 식료품 봉투가 놓여 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그것이 안나를 위한 것이라는 것을 알았고, 그 행동이 정말 세심하다고 생각했다. 마침내 병원에 도착하자 나는 깊게 숨을 내쉬었다. 안도의 한숨이었다. 그는 이동하는 내내 맥북에 몰두해 있었다. 단 한 번도 나를 바라보거나 말을 걸지 않았다. 나는 내 아파트에서 있었던 일이 그것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안나의 병실로 가기 위해 복도를 걸어가는 동안, 나는 그가 받는 시선을 알아차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패션 감각도 뛰어난 아주 매력적인 남자였다. 아들처럼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당기는 매력의 소유자였다. 마침내 안나의 병실에 도착하자 그는 간호사에게 의사를 불러달라고 속삭였다. “레이야!” 안나는 내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 눈을 반짝였다. “안녕, 안나.” 나는 그녀의 침대로 다가가 천천히 몸을 낮춰 그녀의 품에 안겼다. 곁눈질로 데이비드가 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내 뒤에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안나, 데이비드 씨야.” 나는 그녀의 품에서 빠져나오며 말했다. 그녀는 그를 잠깐 바라본 뒤 나를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나는 그 표정이 무슨 뜻인지 알았다. “내가 새로 구한 직장 이야기했던 거 기억하지?” 그녀는 내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분은 우리 상사의 남편이야. 정말 좋은 분이고, 네 상태에 대해 들으시고는 꼭 너를 만나보고 싶다고 하셨어.” 이상하게 들린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녀가 이해하기를 바랐다. “안녕, 안나.” 그는 그녀에게 다가가 천천히 몸을 낮춰 그녀를 안아주었다. “만나서 반가워요, 데이비드 씨. 찾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두 사람이 떨어지자 그녀가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데이비드 씨.” 바로 그때 의사가 들어왔다. 그는 데이비드가 누구인지 알고 있다는 듯 얼굴에 커다란 미소를 띠고 있었다. “샘 박사.” 데이비드의 대답은 내 추측이 맞았음을 확인해주었다. 두 사람은 서로 알고 있었다. 그들은 짧게 악수하고 서로 어깨를 두드리며 친근하게 인사를 나눈 뒤 떨어졌다. “여긴 웬일이야?” 나는 의자를 안나 가까이 끌어당겨 두 남자가 대화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두 사람은 서로 만나서 정말 반가워 보였다. 안나 역시 흥미롭게 그들을 바라보았다. 우리 둘 다 두 남자의 관계가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안나를 만나러 왔어.” 데이비드는 내 동생 쪽으로 빠르게 시선을 보내며 대답했다. 마치 그녀를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처럼 들렸다. “그리고 너는…… 여기서 뭐 하고 있어?” 그는 장난스럽게 의사의 어깨를 두드리며 물었다. “나 여기서 일하잖아. 우리 졸업한 뒤부터 계속 여기서 일했어.” 이제 모든 것이 이해됐다. 두 사람은 대학을 함께 다녔던 것이다. “정말? 대단하네. 언제 한번 맥주나 한잔하자.” 데이비드가 제안했다. 의사는 즉시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그동안 못다 한 이야기가 많아.” 두 남자는 자신들만의 세상에 있는 것 같았다. 방 안에 있는 다른 두 사람, 안나와 나를 완전히 잊은 듯했다. “안나는 우리에게 정말 소중한 아이야. 잘 돌봐주게. 필요한 게 있으면 내게 말하고.” 그가 말하는 것을 듣고 나는 놀란 표정을 숨기려고 애썼다. 나는 그녀에 대해 단 한 번 이야기했을 뿐이고, 이것은 그가 그녀를 처음 만나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왜 몇 년 동안 그녀를 알고 지낸 사람처럼 그렇게 진심을 담아 말하는 걸까? “안나는 좋은 손에 맡겨져 있어, 데이브. 내가 약속할게.” 두 사람은 다시 악수를 했고, 나와 동생은 경외감에 가까운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안나 역시 나만큼이나 놀란 것 같았다. --- 병원에서 돌아오는 차 안은 또다시 조용했다. 의사와 짧게 재회한 뒤, 두 사람은 안나의 상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믿을 수 없게도 그는 안나의 병원비를 위해 10만 달러를 선불로 입금했다.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안나는 너무나 기뻐했다. 나는 그렇게 행복해하는 안나를 오랫동안 본 적이 없었다. 그는 초콜릿과 사탕, 그리고 온갖 간식이 들어 있는 가죽 가방을 안나에게 건넸다. 안나는 그것들을 한꺼번에 다 먹고 싶어 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 모든 보험금은 안나의 치료비로 들어갔다. 우리는 먹을 것조차 겨우 구했고, 여분의 간식을 살 여유는 없었다. 안나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니 나도 무척 행복했다. 우리는 마침내 내 아파트에 도착했다. 그는 문을 열고 차에서 내렸다. 나도 그의 뒤를 따라 내렸다. “굳이 저를 집까지 데려다주지 않으셔도 돼요.” 나는 그가 그냥 차로 돌아가 떠나기를 조용히 기도했다. 나는 간절히 오늘이 끝나서 침대에 쓰러져 눈을 감고 싶었다. 하루 동안 이렇게 많은 감정을 경험하는 것은 정신적으로 너무 지치는 일이었다. “내가 그렇게 하고 싶어.” 그가 대신 말했다. 나는 속으로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는 말없이 건물 안으로 들어갔고, 그는 내 뒤를 따라왔다. 계단을 올라가는 동안 심장이 더 빠르게 뛰는 것이 느껴졌다. 왜 이러는 걸까? 왜 안나에게 이렇게 친절한 걸까? 우리는 내 층에 도착했고 마침내 내 집 문 앞에 섰다. 여전히 내 뒤에 그의 보호하는 듯한 존재감이 느껴졌다. 나는 천천히 몸을 돌려 그의 눈과 마주쳤다. 그의 눈은 아들의 눈만큼이나 푸르렀다. “오늘 정말 감사했어요. 안나에게 해주신 일도요. 제가 얼마나 감사한지 표현할 수가 없어요.” 나는 중얼거리면서도 진심으로 그 말을 했다. 안나의 병원비를 책임지고 있는 사람은 나뿐이었고, 그가 입금해준 돈을 모으려면 몇 달은 걸렸을 것이다. “별거 아니야. 너희 자매는 이미 많은 일을 겪었잖아.” 그가 속삭였다. 나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그저 조용히 서 있었다. 손에 땀이 나기 시작했고 심장 뛰는 소리가 귓가에서 더욱 크게 울렸다. “레이야.” 그가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 천천히 고개를 들어 그의 날카로운 눈과 마주쳤다. “누가 네게 몸매가 정말 아름답다고 말해준 적 있나?” 내 심장이 즉시 멈춘 것 같았고, 갑자기 숨을 쉴 수 없었다.내 눈은 거실 전체를 훑었다. 그곳은 내가 예전에 살던 아파트 전체 크기와 같았고, 아니, 아주 조금 더 큰 것 같기도 했다. 둘러보던 중 내 눈에 예전 집에 있던 안락의자가 들어왔다. 내가 알아볼 수 있는 유일한 물건이었다. 그 외의 모든 것은 새것이었다. 안락의자가 연한 갈색이었기 때문에 다른 소파들도 같은 색을 사용하고 있었다. 커다란 TV 앞에는 긴 소파가 놓여 있었고, 두 개의 1인용 소파는 내 예전 소파를 포함해 서로 마주 보고 있었다. 나는 또한 거실 끝부분에 유리창으로 된 벽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 창들은 자연광을 안으로 들여보내 미색으로 칠해진 벽의 아름다움을 한층 돋보이게 했다. 정말 아름다웠다.오른쪽을 보니 주방이 있었다. 한눈에 봐도 흰색을 테마로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거실의 페인트와도 잘 어울렸다. 위쪽 벽에 걸려 있는 손잡이 없는 수납장과 바닥에 붙어 있는 하부장들은 모두 흰색이었다. 바닥 수납장 위에 놓인 대리석 상판은 회색빛을 띠고 있었다. 그 색은 양문형 냉장고부터 전자레인지, 식기세척기, 오븐을 비롯한 수많은 주방 가전과도 어울렸다. 완벽하게 기능하는 주방이었다. 나는 그저 마음에 쏙 들었다.“그럼 네가 아파트에 익숙해지도록 나는 자리를 비켜줄게.”데이비드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그가 아직 그곳에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했다. 나는 옆에 있는 그를 돌아보았다.“나 약속된 미팅이 있어서, 한…”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왼쪽 손목에 차고 있는 롤렉스를 바라보았다. 1초 후, 다시 내 눈을 바라보았다.“한 시간 후에.”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눈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이 아파트 정말 멋져요.”나는 마지막 단어에 힘을 주며 속삭였다. 그는 소리를 죽여 웃었다.“정말 고마워요, 데이비드.”나는 몸을 기울여
“걸어서 갈 수 있겠어요, 아니면 휠체어를 요청할까요?”“휠체어로 부탁해요.”나는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는 멀쩡하게 걸을 수 있었지만, 그냥 휠체어에 실려 나가기로 했다. 그러지 말아야 할 이유가 대체 뭐가 있겠는가?“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나는 짧게 고개를 끄덕였고, 데이비드는 방에서 급히 나갔다. 그는 나를 병원에서 데려가기 위해 왔다. 내 새 집은 마침내 모든 준비가 끝나 있었다. 내 옷과 다른 소지품들을 예전 아파트에서 옮기는 것까지,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었다.데이비드는 내가 예전 아파트가 있는 지역에 가까이 가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겠다는 입장이 아주 확고했다. 내 물건을 가지러 가는 것조차 안 된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집을 알아봐 주던 남자에게 내 모든 물건을 새 집으로 옮기라고 지시했다. 물론 그것들을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정리할 예정이었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나’는 데이비드가 나와 함께 살도록 고용한 새 가정부를 의미했다.“자, 갑니다.”데이비드는 두 명의 간호사와 의사를 뒤에 데리고 방으로 들어왔다. 간호사 중 한 명이 자신의 앞에서 휠체어를 밀고 있었다. 나는 입술에 미소를 지으며 그들이 내게 건넨 미소에 답했다.“제가 도와드릴까요?”내가 일어나려고 하자 간호사 중 한 명이 물었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곧바로 내 곁으로 달려왔다. 공중에 늘어뜨려져 있던 내 팔을 잡은 그녀는 아주 조심스럽게 내가 일어설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나는 비행기에서 ‘취급주의’라고 적힌 상자라도 된 기분이었다.내 팔을 단단히 잡은 간호사는 뒤에서 다른 간호사가 잡고 있던 휠체어에 나를 천천히 앉혔다. 나는 다리를 발판 위에 올려놓고 밀려나기를 기다렸다. 예상대로 오래 기다리지 않았다. 독특한 병원 냄새를 머금은 바람이 머리카락 사이를 스쳐 지나갔
아버지와 아들이 같은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하면서도 서로 독립적으로 움직이게 만드는 것은 내 평생 해본 일 중 단연코 가장 어려운 일이었지만, 나는 해냈다. 내 미친 천재 같은 두뇌가 결국 해냈다.내가 직접 집을 보러 다닐 수 없었기 때문에, 데이비드는 누군가에게 내가 새 아파트에서 원하는 것들을 물어보게 한 뒤, 내 취향에 맞는 집을 찾도록 했다. 내가 언급한 몇 가지는 아름다운 주방, 침실 두 개와 그중 적어도 하나에는 욕조가 있는 것, 안나의 새 병원과 가까운 위치였고, 나는 여전히 아파트를 원했다. 계단을 오르거나 엘리베이터를 이용해야 하는 것이 좋았기 때문이다. 나는 몇 가지 세부 사항을 더 나열했지만, 그것들이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주요 조건들이었다.데이비드 역시 내가 예전 아파트로 돌아가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새 집이 준비될 때까지 병원에 머물라고 고집했다. 그것은 곧 나를 위해 집을 알아보고 있는 불쌍한 젊은 남자에게 가해지는 압박이 커졌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는 꽤 귀여웠다. 나는 우리가 단둘이 있을 때 그가 나에게 추파를 던졌다고 확신할 수 있었고, 물론 나도 망설임 없이 그에게 똑같이 추파를 던졌다.그 일이 진행되는 동안, 레인은 케이티의 일을 처리하고 있었다. 집을 알아보기 시작한 지 하루 후, 다행히도 아버지가 병원을 떠난 직후에 그는 내게 찾아와 그녀를 잡기 위한 우리의 계획을 어떻게 진행할지 지시를 받았다.“그러니까 잘 들어.”나는 그의 집중한 눈을 바라보며 흥분을 숨기려고 애쓰면서 말을 시작했다.“케이티는 너를 사랑해. 그것도 희망이 없을 정도로, 위험할 정도로 너를 사랑하고 있어.”“그 정보가 정말 중요한 거야, 레이야?”“아니, 그냥 너 약 올리고 싶어서.”나는 낄낄거리다가 결국 크게 웃음을 터뜨렸고, 그는 눈을 굴렸다. 내가 스스로 만족하고 나자 진정했다
데이비드는 나를 담당하는 의사를 찾겠다며 자리를 비웠다. 그가 자리를 비운 사이, 몇 분 후 그의 아들이 우아하게 내 방으로 들어왔다. 그 순간, 내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이렇게 빨리 그를 보게 될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지만, 그가 나를 향해 미소를 짓자 나도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안녕, 아름다운 사람.”그는 내게 가까이 다가와 속삭이더니 몸을 기울여 내 이마에 입을 맞췄다.내 눈은 문으로 재빨리 향했다. 그의 아버지가 언제라도 들어올까 봐 두려웠다.“머리는 어때?”그가 묻는 동시에 내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쓰다듬기 시작했다. 손길이 이어질 때마다 내 불안은 커졌다. 속이 뒤틀렸고, 동시에 배 속 깊은 곳에서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데이비드가 곧 들어올 것이라고 알려주는 듯한 느낌이었다.“무슨 일이야, 레이야?”걱정스러운 그의 말투에 내 눈이 다시 그에게 향했다.“불안해 보이는데.”“아무것도 아니야.”나는 희미하게 미소를 지으며 억지로 대답했다.“그냥…”나는 헛기침을 하며 다시 문을 힐끗 바라봤다.“머리를 쓰다듬는 게 조금 불편해서.”“아, 물론이지.”그는 쑥스러운 웃음을 흘리며 곧바로 손을 거두었다.“미안해.”그는 방 안에 있는 유일한 의자에 앉아 내 침대 옆으로 가까이 끌어당겼다. 그는 내 손을 잡아 침대 위에 올려놓은 채 눈을 들어 내 눈을 바라보았다. 내 눈은 문을 바라보고 싶어 안달이 났지만, 레인의 눈이 내 눈에서 떨어지지 않았고 나는 어떤 식으로든 의심을 살 만한 행동을 하고 싶지 않았다.바로 그때,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쪽을 바라보지도 않았다. 곧바로 기침하는 척하며, 누가 들어오는지에 정신이 팔린 레
레인은 내가 퇴원해도 된다는 허가를 받을 때까지 내 곁에 있겠다고 고집했지만, 내가 가장 안도했던 것은 우주가 그에게 긴급 수업을 보내주었다는 것이었다. 그 일 때문에 그는 마지못해하면서도 결국 자리를 떠나야 했다.그가 떠나기 전에 나는 안나에게 연락하고 싶다고 거짓말했고, 내 휴대전화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공격자에게 빼앗겼기 때문에 새 휴대전화를 얻을 완벽한 핑계가 되었다. 레인이 돌아오기까지 몇 시간밖에 없었고, 그 전에 데이비드와 이야기해야 했기 때문에 기다리는 시간이 고통스러울 정도로 길게 느껴졌다. 결국 새 휴대전화가 도착했다. 아이폰 15 프로였다. 부모님이 사고로 돌아가신 후부터 사용해오던 7+보다 훨씬 좋은 기종이었다.나는 망설이지 않고 새 휴대전화의 포장을 뜯었고, 잠시 그 아름다움을 감상했다. 아마도 내가 손가락을 대본 기기 중 가장 세련된 기기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내 것이었다. 나는 전원을 켜자마자 곧장 카메라 앱으로 들어갔다. 셀카 카메라를 켰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내 머리를 감싸고 있는 흰 천이었다.내 앞의 화면에 시선을 둔 채, 손가락을 머리로 가져갔다. 하얀 천의 작고 보이지 않는 섬유가 내 손가락 끝을 스쳤다. 솜처럼 느껴졌다. 부드럽고 편안한 느낌이었다. 내 눈에 붕대의 오른쪽 끝부분에 희미한 붉은 얼룩이 들어왔다.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그것이 내 피 때문에 생긴 것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내 손가락으로 그 얼룩을 따라가며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누군가 내가 이렇게까지 미쳐버릴 거라고 말했다면, 나는 터무니없는 소리라며 단칼에 부정했을 것이다. 내 생각들은 나 자신을 무섭게 했다. 가끔은 내가 어떻게 그런 생각들을 떠올릴 수 있었는지 의문이 들기도 했다. 그것은 내 정신이 온전한지 의심하게 만들었지만, 나는 이미 너무 멀리 와버려서 돌아갈 수 없었다.바로 그때 나는 애초에 왜 휴대전화를 부탁했는지 떠올랐다. 나는 병원
나는 레인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과 약간의 분노를 띤 채 벌떡 일어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나는 충격적인 반응을 예상했지만, 이렇게까지 과장된 반응일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레이야,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어?!”나는 그의 목소리에서 애써 감정을 억누르려는 것이 느껴졌지만, 결국 그의 입에서 나온 목소리는 정말 크게 울려 퍼졌다. 그의 반응은 이 배를 그녀가 원하는 방향으로 몰고 가는 일이 얼마나 어려울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나는 최대한 조심스럽게 움직여야 했다.“케이티가 너를 정확히 좋아하는 건 아니라는 건 알아…”“그녀는 나를 싫어하는 정도가 아니야. 날 미워하고, 나를 협박했어.”그는 짧게 숨을 내쉰 뒤 눈을 굴렸다.“마치 그녀가 흉악범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하네.”“그날 그녀가 내 아파트에 왔을 때 네가 봤어야 해.”나는 반박하며 목소리를 차분하게 유지하려 애썼다.“그날 그녀가 나한테 했던 말을 전부 진심으로 했다는 걸 알 수 있었어.”레인은 고개를 저으며 시작했다. 자신의 머릿속이 내 제안에 단 한순간이라도 생각할 기회를 주는 것조차 거부하는 듯했다. 나는 천천히 내 안에서 차오르는 짜증을 억누르려고 했다. 한편으로는 그가 아직도 그녀에게 약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닌지 의문이 들기까지 했다.“봐, 나 케이티를 알아.”그의 목소리의 속도가 속삭임으로 줄어들었다.“너한테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나 그녀와 사귀었어.”짧은 분노가 파도처럼 나를 휩쓸고 지나갔다.“1년 동안.”그가 계속했다.나는 무례하게 말을 끊을 뻔했지만 꾹 참았다.“그녀에게 약간 극단적인 면이 있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그게 그녀를 지배하게 내버려두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