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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Author: 빛나냥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간 허설아는 조용히 씻고 작은 방으로 가서 허민정과 깊이 잠들어 있는 연희를 확인했다.

허민정이 얼굴을 찡그린 채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왜 이렇게 늦게 돌아왔어? 배고프지? 내가 라면 끊여줄게."

허설아는 바로 일어나려는 허민정을 눌러 앉혔다.

"밥 먹었어요. 더 자요."

허민정은 그제야 다시 잠자리에 들었다.

일하는 허설아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 허민정은 평소에 연희를 데리고 다른 방에서 잠을 잤다.

허씨 가문이 파산한 뒤, 허설아는 허민정과 연희를 데리고 회사와 꽤 멀리 떨어진 곳에 오래되고 작은 집을 하나 세 맡아 지내고 있었다.

허설아는 주방에 가서 컵라면에 물을 붓고 불도 켜지 않은 채 휴대폰 메시지를 보고 있었다.

회사 게시판에는 온통 권지헌 얘기뿐이었다.

허설아의 휴대폰도 이미 권지헌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낙하산으로 부임한 상사가 잘생기기까지 했다며 게시판에는 동료들이 찍은 권지헌의 사진으로 가득했다.

밝혀진 과거 자료들은 번지르르한 것이었다.

허설아의 눈길을 사로잡은 문장이 있었다.

대학 시절엔 스스로 학비를 벌어가며 공부했고 졸업 후에는 집안의 어떠한 지원도 없이 신성 금융을 창업해 아시아 최연소 부호 명단에 이름을 올리며 권율 그룹에서 유일하게 공개한 후계자가 되었다……

스스로 학비를 벌어가며 공부했다?

몇 년 동안 허설아는 권지헌이 가난한 남자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권지헌에게 돈을 쓸 때도 자존심을 상하게 하거나 예민하게 생각할까 봐 조심스러웠다.

그런데 결국 다 도련님의 장난에 불과했던 거였다.

허설아는 권지헌이 전에 했던 말이 떠올랐다.

"나도 사실 허설아 별로 신경 쓰지 않아."

틀린 말은 아니었다.

전에도 두 사람은 다른 세상 사람이었다.

기품 넘치고 우아한 권지헌은 성적도 우수해서 전국 최고 점수로 건영대에 입학해서 건영대 명문학과에 진학했다.

제멋대로에 세속적인 허설아는 공부에도 관심이 없어서 건영대가 모집 정원을 늘린 덕분에 점수 커트라인이 제일 낮은 예술대생으로 입학한 것이었다.

지금도 똑같았다.

같은 회사 상하급 관계라 해도 권지헌은 피라미드 꼭대기에 있어 허설아 같은 일개 직원이 감히 손 닿을 수 없는 고고한 존재였다.

심장이 누군가 움켜쥔 것처럼 욱신거렸다.

컵라면의 뜨거운 수증기가 차오르며 허설아의 마음도 왠지 서글퍼졌다.

허설아는 게시판을 끄고 면을 후루룩 먹기 시작했다.

-

다음날, 조민규는 회사 단톡방에서 야근 수당 공지를 배포했다.

제한 시간이 12시 이후였기에 영향받은 직원은 많지 않았다

12시가 넘어서까지 야근하는 직원은 몇 없었다.

허설아의 표정이 굳어졌다.

옆에 있던 동료 안초희가 돌아보며 나지막하게 물었다.

"그러면 설아 씨 야근 수당 많이 적어지는 거 아냐?"

안초희는 허설아의 사정을 아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처음엔 나이도 어린 허설아가 악착같이 야근하는 모습을 보며 일부터 상사에게 잘 보이기 위한 것이라 생각해서 반감도 들었다.

하지만 나중에야 허설아가 한 달 월급으로 두 사람의 약값, 월세, 생활비에 빚까지 모두 감당해야 하고 남는 돈이 거의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심야 야근 수당도 적지 않은 금액이었다.

앞으로 심야 야근을 못 하게 되면 허설아는 경제적 수입 일부가 줄어드는 셈이었다.

안초희가 허설아를 툭 치며 말했다.

"대표님한테 가서 신청해 보는 건 어때? 어려운 상황 얘기하면 이번 달까지만 예외로 야근하게 할 수도 있잖아?"

'권지헌을 찾아가라고?'

'무슨 말을 할 수 있는데?'

야근 수당 몇십만 원 때문에 발을 동동 구르는 신세여서 제발 봐달라고 사정해야 될 지경이라고?

백번 양보해서 권지헌이 들어줄 의향이 있다 해도 허설아는 감히 입밖에 뱉을 자신이 없었다.

허설아는 한숨을 쉬었다.

"괜찮아, 알바라도 알아보면 돼. 앞으로는 일찍 퇴근해서 연희랑 같이 시간 보내면 돼."

허설아의 딸 얘기에 안초희가 바로 화제를 돌렸다.

"우리 애 옷 몇 벌 좀 작은 게 있는데 연희한테 줄까? 다 한 번밖에 안 입은 거니까 너무 꺼리진 마."

예전 같았으면 부잣집 따님인 허설아가 언제 남이 입던 옷을 받았을까.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허설아가 입고 있는 옷은 다 허씨 가문이 파산하기 전에 산 것이었다.

새 옷을 살 여유 따윈 없었다.

허설아가 웃으며 말했다.

"그럼 고맙지. 애들 옷은 한 번 입었던 게 부드럽고 깨끗해서 좋아. 고마워, 초희 씨."

안초희도 집안 형편이 좋아서 포르쉐를 몰고 출근했다.

안초희가 한 번밖에 입지 않았다는 옷들은 거의 다 새것이나 다름없는 명품들이었다.

허설아는 한 번 씻어서 연희에게 입히는 것도 좋다고 생각했다.

허설아가 기꺼이 받아주자 안초희도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허설아가 싫어할까 봐 걱정되면서도 도와주고 싶었던 안초희였다.

새 옷을 사주려니 오히려 무례하거나 허설아가 답례를 고민하느라 부담이 될 것 같았기에 작아서 입지 못하는 새 옷을 주는 게 딱 좋을 듯했다.

같은 회사에 다니는 이상 허설아가 아무리 권지헌을 마주치지 않으려 해도 피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전날 밤 잠을 설친 허설아가 커피 한 잔 타려고 탕비실에 들어서 고개를 든 순간, 그곳엔 이미 카리스마 넘치는 권지헌이 이미 서 있었다.

탕비실이 작은 편은 아니었지만 키가 크고 근육질인 권지헌은 존재 자체만으로 숨이 턱 막히는 압박감이 느껴졌다.

지금 나간다는 건 말도 안 되었기에 허설아는 울며 겨자 먹기로 시선을 떨군 채 입을 열었다.

"대표님, 좋은 아침입니다."

"네."

권지헌은 무덤덤하게 허설아를 쓱 훑어볼 뿐 다른 말을 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자리를 비켜줄 기색도 전혀 없었다.

커피 한 잔을 내린 허설아가 얼음을 추가하고 탕비실을 나가려는데 권지헌이 차갑게 말했다.

"기획안 수정은 끝났어요?"

허설아는 컵을 꽉 움켜쥔 채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네, 조금 있다가 가져다드릴게요."

권지헌이 무슨 괴물이라도 되는 것 같은 반응이었다.

권지헌이 차갑게 말했다.

"괜찮으니 메일로 보내요. 너무 많이 엮이고 싶지 않네요."

얼음장처럼 차가운 목소리였다.

뒤로 살짝 기대가 늘씬한 다리가 드러나고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은 모습은 여유로운 품격까지 느껴졌다.

권지헌의 바짓단과 구두를 쳐다보던 허설아가 위로 시선을 옮겼다. 맞춤으로 제작된 수트 바지와 수백만 원짜리 금속 벨트는 권지헌을 더 기품 넘치게 했다.

아무리 허씨 가문이 파산했어도 허설아는 권지헌이 온몸에 걸친 것들을 더하면 수천만 원은 족히 된다는 걸 알아볼 수 있었다.

권지헌의 움직임 때문일까, 허설아의 시선이 저도 모르게 권지헌의 벨트 아래쪽으로 향했다……

무시할 수 없는 크기였다.

시선 한 번에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허설아는 빠르게 시선을 거두었다.

연애하던 시절 두 사람은 그야말로 당돌했고 절제도 없었다. 허설아는 온갖 취향을 다 시도해 봤고 그러다 뜻밖에 연희가 생긴 것이었다.

뜻밖에 찾아온 거라 해도 하늘이 내려준 선물이라며 허설아는 소중히 여겼다.

더 위로 시선을 옮기자 권지헌의 목덜미에 남은 붉은 자국이 눈에 들어왔다.

어른이라면 누구나 다 알 수 있는 흔적이었다.

전에 권지헌은 허설아가 목에 흔적을 남기는 걸 싫어했다. 다른 사람이 보는 게 싫다는 이유였다.

그런데 지금은 저런 흔적을 남긴 채 당당하게 출근하다니.

하긴, 권지헌 같은 남자 주변에 여자가 없을 리 없었다.

학생 때도 그랬는데 권율 그룹 후계자라는 타이틀까지 붙은 지금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권지헌에게 몰려드는 뛰어난 여자들이 줄을 설 것이다.

허설아는 속으로 조용히 한숨을 삼켰다.

권지헌이 많이 엮이고 싶지 않듯이 허설아 역시 그렇게 생각했다.

허설아는 가슴을 찌르듯 숨 막히게 아픈 통증을 꾹 누르며 싱긋 웃었다.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일 외에는 대표님과 엮일 이유가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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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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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 Jo
아무리 소설이라지만 대표가 돈이 많아도그렇지 무슨 온몸에 수천만원어치를 걸치고 다니냐?? 어이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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