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노현우가 휴대폰을 보며 말했다."데리러 온 사람 왔으니 저는 먼저 가볼게요. 나중에 건영시에서 봬요."양준우가 노현우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이곳에서 헤어진 뒤, 양준우는 시안 작업 중인 권서진 곁을 지켰고 김지유는 혼자 관광을 떠났다.팔보 골목 구경을 마친 그때, 김지유 휴대폰에 친구 신청 알림이 도착했다. 검은색 프로필 사진에 닉네임은 X, 메모란에는 노현우라고 적혀 있었다.이름은 "현우"인데 프로필 사진은 검은색 사진이었다. 김지유는 친구 신청을 수락했다.-며칠이 지난 뒤, 권서진이 짐을 잔뜩 짊어지고 돌아왔다.권서진은 허설아 책상 위에 두툼한 새 디자인 시안을 툭 던져놓았다. 허설아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수확이 꽤 많았나 보네요.""당연하죠, 이번에 다녀오면서 2.5키로나 빠졌어요! 노 대표님은 아직 거기서 계약 얘기 중이고 준우 씨는 옛 전우 만나러 가서 나와 지유 씨가 먼저 돌아왔어요.""왜 준우 씨와 같이 안 갔어요?"권서진이 씩 웃으며 말했다."허 대표님 보고 싶어서 먼저 돌아온 거 아니겠어요?"허설아가 눈썹을 치켜올리며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권서진이 맞은편 소파에 털썩 앉더니 사무실 고양이를 끌어안고 이리저리 쓰다듬었다."저도 갔죠, 밥도 한 끼 먹었고요. 그런데 해발이 너무 높아서 도저히 못 견디겠더라고요."노현우는 그룹 관련 업무가 많이 남아 있어서 천마시에 도착한 뒤로는 동행하지 않았다.천마시에서 이틀을 지낸 뒤, 권서진과 김지유는 먼저 돌아왔다.디자인 시안에는 천마 지역 스타일 요소가 잔뜩 담겨 있었다.터키석, 마노, 마니차, 나침반 등이었다. 허설아가 시안을 넘겨보니 한 장 한 장 디자인이 하나같이 정교하고 뛰어났다.권서진은 타고난 재능뿐만 아니라 실력도 계속 늘고 있었다.뒤에는 권서진이 천마 지역에서 찍은 사진 한 장이 있었다.천마족 전통 복장을 입은 몇몇 아이들이 손목에 권서진이 디자인한 팔찌를 세 겹으로 하고 있었다. 허설아는 놀랍게도 사진에서 신앙의 힘을 보아냈다.
밖에 잠깐 더 앉아 있으니 밤이라 기온이 확 낮아졌다. 노현우가 일어나 불을 끄러 가며 말했다."먼저 들어가 있어요."밤에는 네 사람이 텐트 하나에서 지내기로 했다. 각자 이불을 따로 덮어 방해되지도 않고 서로 챙겨주기도 편했다.김지유는 제 자리에 서서 손을 비비며 몸을 녹였다."기다릴게요."지금 들어가 봐야 권서진과 양준우 애정 행각이나 보겠지. 김지유는 두 사람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눈치 없는 사람이 되고 싶지도 않았다.노현우가 빠르게 불을 끄고 화로를 돌려주고 돌아오자 김지유는 그 자리에서 계속 기다리고 있었다.숄을 두르고 있었지만 바깥 기온이 워낙 낮아서인지 손을 비비고 발을 굴러도 여전히 추위를 견디기 힘든 눈치였다.노현우가 김지유 앞으로 다가가 물었다."안 들어가요?"김지유가 손을 뻗어 양쪽 엄지손가락을 맞대며 눈썹을 치켜올렸다."애정 행각하는 거 보러 들어가라고요?"하지만 화로는 이미 돌려준 뒤라 두 사람 다 밖에서 발만 동동 구를 뿐 몸을 녹일 방법이 없었다.노현우가 몸을 돌리며 말했다."안고 있을까요? 오해는 하지 말아요, 그냥 체온 나누자는 뜻이에요."노현우가 입은 검은색 롱패딩은 확실히 김지유의 코트보다는 훨씬 따뜻해 보였다.김지유는 거절하고 싶었지만 추위에 몸이 덜덜 떨렸다.노현우한테서는 시원한 우디 향이 났는데 향수 냄새인지 아니면 천마족 텐트 안에서 배어든 냄새인지 알 수 없었다."못하겠어요?""누가 못한대요!"김지유는 마음을 굳게 먹고 노현우를 끌어안았다.두 사람이 서로 맞붙자 확실히 훨씬 따뜻해졌다.다만 이렇게 서로 안고 있으려니, 두 사람 다 순간 멍해지고 말았다.노현우가 김지유의 숄을 다시 정리해 거의 누에고치처럼 온몸을 감싸주고 나서야 조심스레 김지유를 안았다.남자 체온은 원래 여자보다 높은 편이었다.노현우를 안고 있으니 마치 난로를 끌어안은 것 같아서, 얼어붙었던 김지유의 손에도 감각이 돌아왔다.노현우가 김지유를 반쯤 감싸안았다.두 사람 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워낙 큰 쇼핑몰 대형 스크린 덕분에 고아현의 얼굴도 한없이 크게 확대되어 있었다.사진을 보던 허설아는 눈시울이 뜨거워졌다.임신 막달이라 그런지 눈물이 헤퍼진 허설아는 눈앞의 광경에 눈물이 왈칵 쏟아질 뻔했다.송원영도 고개를 들어 사진을 보았다."저 사람 전에 광고 부탁하러 왔던 신인 배우 아니에요?""맞아요. 연예계 은퇴하고 지금은 아프리카 가서 동물 보호 일을 하는 것 같네요."송원영이 핸들을 돌려 쇼핑몰 구역 밖으로 차를 몰았다."오히려 지금 우리 브랜드 광고 모델로 더 잘 맞을 것 같은데요. 이번에 서진 씨가 천마 지역에서 영감을 얻은 주얼리 만들고 싶어 하지 않았어요? 고아현 씨가 딱이겠어요."상큼하고 귀여운 이미지로 마케팅했던 예전의 고아현보다는 지금 모습이 봄날 주얼리 광고에 훨씬 더 잘 어울렸다."제가 나중에 연락해서 홍보 대사 할 생각이 있는지 물어볼게요. 광고 모델은 아마 안 하려고 할 것 같아요."고아현은 이제 광고 같은 허울뿐인 명성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게 있을 듯했다.고아현의 삶은 어느새 무대와 스포트라이트 대신 초원과 자유를 좇고 있었다. -같은 시각, 천마 지역.차는 계속 달려 마침내 옥경호에 도착했다.미리 예약해둔 호텔에 갑작스럽게 착오가 생겨 남은 방이 없게 되었다. 여기저기 민박집을 찾아다녔지만 그마저도 허탕이었고 결국 천마족 주민의 텐트를 빌려 하룻밤 간단히 묵어야만 했다.양준우가 천마족 주민한테서 불을 쬘 수 있는 화로를 얻어다 공터에 놓고 모닥불을 피웠다. 머리 위로는 찬란한 은하수가 펼쳐져 있었다.고원에서는 이따금 은하수처럼 하늘 가득 퍼진 외로움이 밀려오곤 했다.권서진은 양준우한테 기대어 결혼식 준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두 사람 결혼식은 건영시에서 치를 예정이었는데 이건 양씨 집안 뜻이었다. 양현성과 이윤화 모두 건영시로 올 예정이었다.권서진은 양준우와 결혼하는 거지 양씨 집안에 시집가는 게 아니었다.결혼이란 두 집안을 끈끈히 이어주는 동시에 서로 사랑하는 두 사람의 관
노준서는 사람들 앞에서는 늘 반듯하고 당당했다.됨됨이도 시원시원했고 과격한 언행도 없었다. 그런데 돌아서는 순간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송수정한테 손찌검을 한 것도 모자라 그대로 길가에 내동댕이치고는 뒤도 안 돌아보고 가버렸다.얼굴을 감싸쥔 채 처참한 몰골로 길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송수정을 보던 송원영은 길가에 차를 세우고 창문을 내렸다.송원영은 송수정을 내려다보며 지갑에서 지폐 몇 장을 꺼내 건넸다."받아. 자존심 세우고 싶으면 안 받아도 되고."아랫입술을 꽉 깨문 송수정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했다.자신의 가장 초라한 모습을 송원영한테 들키고 나니 속이 뒤집어졌다. 마치 수만 마리 개미 떼가 온몸을 기어 다니는 것처럼 견디기 힘들었다.하지만 돈까지 마다할 처지는 아니었다.송원영이 건넨 돈을 받아 든 송수정은 고개를 돌리고 손으로 눈물을 훔쳤다. 지금 초라한 꼴을 감추고 싶어서였다.참 이상한 일이었다.àl'aube에서 소란을 피울 때는 오히려 창피한 줄도 모르고 송원영 얼굴에 먹칠해서 망신 줄 생각뿐이었다.본인은 이렇게 힘든데 송원영만 잘 사는 게 너무 억울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송원영한테 모든 걸 들키고 나니 얼굴이 화끈거렸다.송원영이 다시 물었다."저 사람, 너한테 원래 저래?""……신경 꺼. 내 웃음거리 보고 싶은 거면 꿈도 꾸지 마." 송원영이 혀를 찼다.'여전히 입만 살았네.' 송수정을 딱하게 여길 마음까지는 없었지만 지갑에 있던 남은 현금 몇 장을 모조리 쥐여준 송원영이었다. 앞쪽 신호등이 바뀌고 퇴근 차량이 밀려들자 송원영은 다시 액셀을 밟아 차량 행렬 속으로 합류했다.허설아가 백미러로 확인해 보니 송수정은 바닥에서 일어나 택시를 잡고는 반대 방향으로 멀어지고 있었다.송원영의 휴대폰에 서은석의 전화가 걸려왔다.퇴근했는지, 저녁은 뭘 먹을 건지 묻던 서은석은 송원영이 허설아와 밥을 먹으러 간다는 말을 듣고는 다정하게 말했다."내가 데리러 갈까? 가서 계산도 해줄 겸?""그럴 기회 줄게요."서은석
천마 지역에 가 있는 노현우한테 연락해 노준서의 전화번호를 알아내 바로 전화를 걸었다."노준서 씨? 저 송원영이에요. 송수정이 자기 아이가 노준서 씨 애라고 하던데 와서 좀 데려가서 해결하세요."전화기 너머 노준서가 잠시 멈칫하더니 바로 알겠다며 답했다. 서둘러 달려온 노준서는 송수정을 보는 순간 얼굴이 새까맣게 굳은 채 앞으로 다가와 말했다."죄송합니다, 송 대표님. 제가 제대로 단속하지 못했네요. 그리고 송수정 배 속 아이가 제 아이인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습니다." 송수정이 눈을 부릅떴다."노준서! 네가 어떻게 나를 의심할 수 있어! 나 너 말고 다른 사람과 잔 적 없어!"노준서는 차분하면서도 차가웠다. "도저히 갈 데가 없어서 나를 찾아온 거 아냐? 나랑 자는 걸로 월세 대신하겠다고 네 입으로 말했잖아. 지금 입고 있는 옷도 내가 사준 게 아닌데 어디서 났는지 누가 알아."송수정이 입고 있는 옷은 확실히 노준서가 사준 게 아니었다.예전에 쫓아다니던 남자한테 연락해 한바탕 신세 한탄을 하고 얻어낸 것이었다. 노준서가 보고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기에 눈치채지 못한 거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이렇게 말할 줄이야. 송수정을 바라보는 노준서의 눈빛에는 노골적인 혐오감이 드러났다. "딱한 마음에 널 거둬준 것도 언니한테 쫓겨났다고 거짓말한 것 때문이야. 그래도 동창인데 어려움에 처한 걸 모른 척할 수는 없었으니까. 그런데 네가 이럴 줄은……"현장에 있던 기자들 앞에서 노준서는 딱 적당히 쓸쓸한 표정을 짓더니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송 대표님,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선천성 심장병이 있어요. 그것 때문에 학창 시절 송수정을 좋아했는데도 계속 무시당했었죠. 의사도 저는 병 때문에 평생 아이를 못 가질 수도 있다고 했고요."남자로서 이런 아픈 과거를 스스로 들추고 싶은 사람은 없었다.현장에 있던 사람들이 송수정을 바라보는 시선이 순식간에 달라졌다.'애먼 총각 잡아서 애아빠 만들려는 거잖아.' 송원영이 손을 흔들며 말했다."일단
송수정의 얼굴에는 놀란 기색이 가득했다.송원영이 이미 경찰에 신고했고 경비원 여러 명이 다가가 송수정을 떼어놓으려고 대기하고 있었다.송수정이 비틀거리며 달려가 송원영의 다리를 붙잡고 눈물 콧물을 쏟았다."언니, 잘못했어. 진짜 내가 잘못했어! 내 배 속에 있는 언니 조카 봐서라도 화내지 마."발밑에 엎드린 송수정을 내려다보던 송원영은 이미 말을 섞을 마음조차 없었다."요즘은 세상이 좋아져서 임산부도 감옥 갈 수 있대."그 한마디에 송수정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아니, 아니야. 이러면 안 돼, 나…… 나 임신했어. 그런데… 그런데 노준서… 노준서가 낳지 말래……"노준서는 어젯밤 집에 돌아오자마자 바로 아이를 지우라고 했다.두 사람이 관계를 가질 때면 송수정은 즐거운 기억은커녕 도마 위의 생선 신세나 다름없었다.노준서는 잠자리 취향도 상당히 변태적이었다.어쩔 수 없이 맞춰줘야 했던 송수정은 매번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되어 견디기 힘들었다.그렇게 갖은 수모를 견뎌가며 겨우 임신해서 아이가 생기면 노준서가 결혼해줄 테니 앞으로는 더 확실히 잡아둘 수 있을 거라고 여겼다.그런데 노준서는 단 두 마디로 상황을 종료해 버렸다. "내 애 맞아?""지워."송수정은 그 순간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 같았다. 송원영이 송수정을 내려다보며 말했다."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 네 애를 낳든 말든 그건 네 자유야. 네가 어떤 사람과 만나는지도 나랑 상관없어.""언니, 이러면 안 되지. 언니가 나 모른 척하면 나 어떻게 살아…… 고향 집으로 돌아가면 부모님이 나를 더 모질게 대할 거야……""언니는 친딸인 데도 그렇게 이용해 먹었는데 나는…… 나는 더 비참할 수밖에 없어……"어릴 적 송수정은 송원영한테 잘 보이고 싶을 때마다 이런 식으로 말하곤 했다.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김수진과 송동건은 송원영에 비해 송수정을 충분히 예뻐한 편이었다.적어도 송원영한테는 한 번도 준 적 없는 편애와 관심을 송수정한테는 다 쏟아부었다. 반면 송원영은 아무것도 받아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