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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애 어디 있어? 나 안 한다고 했잖아!”
이연희는 배 위에 덮인 이불을 걷어차다가 비명을 삼켰다. 아랫배가 안쪽부터 찢어지는 듯 욱신거렸고, 손등에는 수액 바늘이 꽂혀 있었다. 천장의 흰 조명이 번져 보이는 사이, 침대 옆 기계가 일정한 소리를 냈다. 연희는 배를 더듬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두 손으로 감싸며 말을 걸던 자리였다. 만지면 알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손끝에 닿는 것은 힘없이 주름진 환자복뿐이었다.
‘우리 애기, 엄마 목소리 들리지? 아빠 닮으면 좀 곤란한데.’
그 말을 하며 웃던 최무겸의 얼굴이 떠올랐다. 임신 사실을 알린 날, 무겸은 바닥에 무릎까지 꿇고 배에 입을 맞췄다. ‘아빠가 돈 많이 벌어 올게. 대신 엄마는 아빠도 좀 사랑해 줘. 벌써 찬밥 신세네.’ 유치하다며 밀어내자 그는 연희의 손가락에 끼워진 약혼반지를 만지작거리며 평생 책임지겠다고 했다.
“연희야. 소리 지르지 마. 회복에 안 좋아.”
그 남자가 지금 침대 곁에 서 있었다. 비싼 코트 소매를 걷어 올린 채 휴대폰을 확인하는 모습이 평소 회의실에서 보던 것과 똑같았다. 연희는 그의 손을 잡으려다 멈췄다. 배를 쓰다듬어 주던 손이 오늘은 주머니 속에 들어 있었다.
“애는? 무겸 씨, 우리 애 어디 있냐고.”
“수술은 끝났어.”
“그건 나도 알아. 내가 하지 말라고 했잖아. 엄마가 돼서 내 애 한번 지켜 보겠다고, 제발 기다려 달라고 했잖아!”
문이 벌컥 열렸다. 한세아가 종이컵과 휴지를 들고 들어왔다. 열다섯 해를 붙어 다닌 친구는 연희의 젖은 뺨부터 닦으려 했다. 연희가 손을 쳐 내자 종이컵 물이 하얀 시트에 엎질러졌다.
“야, 이연희.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수술까지 끝났는데 난리 친다고 애가 돌아와?”
연희는 세아를 올려다봤다. 친구의 손에는 병원 보호자 출입증이 걸려 있었다. 수술 전 세아는 무섭다고 우는 연희의 이마를 쓸어 주며 ‘내가 옆에 있을게, 무조건 네 편이야’라고 했다. 연희는 마지막 순간까지 그 말을 믿었다. 팔을 붙잡고 수술실에 들어가기 싫다고 울부짖을 때도, 세아만은 자신을 데리고 나가 줄 줄 알았다.
세아의 목에는 얼마 전 연희가 생일 선물로 골라 준 목걸이가 걸려 있었다. 작은 하트 장식이 병실 조명 아래서 반짝였다. 연희가 ‘나 결혼하면 네가 부케 받아’라며 놀렸을 때 세아는 ‘야, 네 남친 같은 돈 많은 놈이 또 있겠냐? 차라리 나한테 넘겨’라며 깔깔 웃었다. 연희는 그저 질투 섞인 농담인 줄 알았다. 지금 세아가 목걸이를 만지작거리며 자신을 내려다보는 얼굴에는 그날의 웃음기가 조금도 남아 있지 않았다.
“나 분명히 싫다고 했어. 네가 들었잖아.”
“네가 동의했잖아. 이제 와서 왜 나한테 뒤집어씌워?”
“뭘 동의해? 내가 언제!”
세아는 젖은 시트를 내려다보다가 짜증스럽게 한숨을 쉬었다. 그런 다음 휴지를 구겨 쓰레기통에 던졌다.
“솔직히 말해서, 그 꼴로 애를 어떻게 키워? 애 낳으면 사랑만 먹여 살릴 거야? 정신 좀 차려. 무겸 오빠한테까지 매달려서 셋 다 망할 셈이었어?”
“너…… 지금 내 애 얘기하는 거야?”
“그럼 누구 애겠어. 나도 밤새 병원에서 고생했어. 고맙다는 말은 못 할망정.”
연희는 무겸을 돌아봤다. 그가 지금쯤 세아에게 그만하라고 말해 줄 거라고 믿었다. 한때 자기 발목이 삐었다는 말에 촬영 중이던 재단 홍보 영상을 멈추고 달려와 ‘우리 공주님 발 다치면 이 나라 교통체계가 손해’라며 업어 주던 사람이었다. 그런 남자가 아무 말 없이 두 사람을 번갈아 보고 있었다.
“무겸 씨. 쟤가 무슨 소리 하는지 들려?”
무겸은 길게 숨을 내쉬더니 테이블에 놓인 서류 봉투를 집었다.
“연희야, 감정적으로 굴지 마. 네가 선택한 일이야. 의사 설명도 들었고 절차도 끝났어.”
“내가 선택한 건 애를 낳는 거였어!”
“이러면 서로 더 피곤해져. 이미 끝난 일을 어떻게 되돌려.”
연희는 손등의 수액 줄을 잡아당기지 않으려고 침대 난간부터 움켜쥐었다. 일어나야 했다. 저 남자가 서류 봉투를 들고 나가 버리면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누구에게 물어야 할지조차 모를 것 같았다.
“그 봉투 놔. 내가 직접 볼 거야.”
“내가 정리할게.”
“그 입 닥쳐. 내 몸을 네 결재 서류처럼 정리하지 말라고!”
무겸의 얼굴에서 남아 있던 다정한 기색이 지워졌다. 그는 서류 봉투를 세아에게 건넸다. 세아는 익숙하게 받아 들더니 연희를 보며 입꼬리를 비틀었다.
“야, 내가 너였으면 쪽팔려서 입 닫겠다. 남자 하나 믿고 덜컥 임신한 건 너잖아.”
그때 연희는 처음으로 친구의 손보다 그 손에 들린 종이를 봤다. 세아가 자신 대신 무슨 말을 했는지, 무슨 서류를 건넸는지 알아야 했다.
“서류 내놔. 지금.”
무겸은 시계를 한번 보고 문을 열었다.
“회복하면 연락해. 오늘 얘기는 이쯤 하자.”
“최무겸. 한 발만 더 나가 봐. 네가 내 애한테 한 짓, 내가 죽을 때까지 물을 거야.”
그는 돌아보지 않았다. 복도에서 구두 소리가 멀어졌고 세아는 ‘드라마 찍냐?’며 코웃음을 쳤다. 연희는 침대 옆 호출 버튼을 눌렀다. 달려온 간호사에게 수술 동의서 사본을 요구하자 세아가 성가시다는 듯 봉투에서 종이를 꺼냈다.
“봐. 이래도 네가 동의 안 했다고 우길래?”
연희는 떨리는 손으로 마지막 장을 넘겼다. 환자 본인의 동의란은 비어 있었다. 바로 아래, 보호자 서명란에는 너무나 익숙한 글씨가 눌러 적혀 있었다.
‘한세아.’
[무겸의 친부는 최도현이 아니다.]연희는 한동안 휴대폰 화면을 바라봤다.그리고 천천히 무겸을 돌아봤다.“무겸 씨.”“왜?”“당신 출생기록을 다시 확인해야 할 것 같아요.”무겸은 씁쓸하게 웃었다.“또 시작이네.”“이번이 마지막이에요.”도율이 서류를 펼쳤다.“정애 씨의 기록과 무겸 씨의 출생기록을 대조해보겠습니다.”정애의 얼굴이 굳었다.“하지 마.”무겸이 그녀를 바라봤다.“엄마.”“…….”“이번엔 나한테 말해줘.”정애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네 친부는…….”한참을 망설이던 그녀가 입을 열었다.“최도현이 아니야.”무겸은 고개를 끄덕였다.“그건 이미 알았어.”“네 아버지는 따로 있어.”“누구야?”정애가 말했다.“강재호.”무겸의 얼굴이 굳었다.“강재호?”“그래.”“그 사람이 누구인데?”정애는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내가 사랑했던 사람이야.”연희가 조용히 듣고 있었다.정애는 계속 말했다.“재호는 네가 태어나기 전에 죽었어.”“어떻게?”“네 할아버지에게 협박을 받았어.”무겸이 주먹을 움켜쥐었다.“왜?”“네 아버지가 최도현과 함께 아이들을 빼돌리는 일을 막으려고 했거든.”“그래서 죽였어?”정애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리고 내가 임신했다는 걸 알게 됐어.”무겸의 눈이 붉어졌다.“그래서 나를 숨겼구나.”“그래.”“그런데 왜 나를 다른 사람의 아들로 키웠어?”정애가 울면서 말했다.“살리려고.”무겸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러다 조용히 물었다.“내 친부가 어떤 사람이었어?”정애가 미소를 지었다.“좋은 사람이었어.”“그것뿐이야?”“널 보면 항상 웃었어.”정애의 목소리가 떨렸다.“네가 태어나기도 전에 네 이름을 지었어.”무겸이 눈물을 닦았다.“뭐라고 지었는데?”“강무겸.”“그 이름을…….”“네 아버지가 지었어.”무겸은 고개를 숙였다.그리고 처음으로 울었다.연희는 아무 말 없이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그 순간 도율이 마지막 서류를 내밀었다.“DNA 검사
연희는 한동안 USB를 바라봤다.손에 쥔 것만으로도 심장이 조여왔다.“재생해.”노인의 목소리가 들렸다.연희가 노트북에 USB를 꽂았다.화면이 켜졌다.그리고 낯익은 여자의 얼굴이 나타났다.연희는 숨을 멈췄다.“엄마…….”영상 속 여자는 힘겨운 얼굴로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었다.“연희야.”그 한마디에 연희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네가 이 영상을 보고 있다면 나는 이미 네 곁에 없겠구나.”연희는 입을 틀어막았다.영상 속 여자는 잠시 숨을 고른 뒤 말을 이었다.“먼저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싶어.”“엄마…….”“너를 버린 게 아니야.”연희의 눈물이 쏟아졌다.“살리려고 놓은 거야.”영상 속 여자의 목소리가 떨렸다.“네가 태어난 날, 나는 네 할아버지가 아이들을 이용해 돈과 회사를 지키려 한다는 걸 알게 됐어.”“그래서 아이들을 숨겼어.”화면이 잠시 흔들렸다.“연희는 정애에게 맡겼고, 무겸은 다른 곳으로 보내려고 했어.”연희가 무겸을 바라봤다.무겸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리고 세아는 내가 직접 데리고 있었어.”세아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하지만 네 할아버지가 찾아냈어.”영상 속 여자가 고개를 숙였다.“그래서 마지막 방법을 선택했어.”연희가 화면을 바라봤다.“세아에게 내 딸의 신분을 맡겼어.”세아가 입을 막았다.“사람들이 연희를 찾으면 세아를 연희라고 믿게 만들 생각이었어.”“그리고 진짜 연희는 아무도 찾지 못하는 곳에 숨겼어.”연희는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정애 엄마…….”영상 속 여자가 말했다.“정애가 널 맡아줬어.”정애가 눈물을 흘렸다.“정말 고마운 사람이야.”잠시 화면이 멈췄다가 다시 재생됐다.“하지만 내가 가장 미안한 사람은 서윤이야.”서윤의 얼굴이 굳었다.“서윤이는 내 딸이 아니야.”서윤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혜경이 낳은 아이야.”혜경은 고개를 숙였다.“그 아이까지 이 일에 휘말리게 하고 싶지 않았어.”영상 속 여자는 깊게 숨을 내쉬었다.“그래서 네 명의
“네 엄마가 한 아이의 얼굴을 다른 아이에게 이식했어.”최도현의 말이 끝났지만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연희는 바닥에 떨어진 사진을 바라봤다.사진 속에는 어린 자신과 세아가 나란히 누워 있었다.“그럼 세아가 내 얼굴을 가진 이유가…….”“네 엄마가 마지막으로 선택한 방법이야.”최도현이 말했다.“너를 숨기기 위해서.”연희가 고개를 들었다.“나를?”“네 할아버지는 네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 알면 널 없애려고 했어.”도윤이 이를 악물었다.“그래서 네 엄마는 세아에게 네 신분을 씌운 거야.”연희가 세아를 바라봤다.세아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나는 아무것도 몰랐어.”“알아.”“어릴 때부터 사람들이 나를 다른 이름으로 불렀는데도…….”세아의 목소리가 떨렸다.“그게 내가 살아남기 위한 거였다는 걸 몰랐어.”연희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이제 알았잖아.”그 순간 혜경이 입을 열었다.“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야.”모두가 그녀를 바라봤다.“네 엄마는 세아를 살린 뒤 너를 숨기려고 했어.”“그럼 나는 어디 있었어요?”혜경은 눈물을 닦았다.“정애에게 맡겼어.”연희가 정애를 바라봤다.정애는 고개를 숙였다.“그래.”“왜 나한테 한 번도 말하지 않았어요?”“네가 기억을 되찾으면 다시 위험해질까 봐.”“그래서 평생 속였어요?”정애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연희는 한숨을 내쉬었다.“이제 그만 숨겨요.”정애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네 엄마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내게 한 말이 있어.”“뭔데요?”“아이들을 살려달라고 했어.”연희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아이들?”“너와 세아, 무겸이야.”서윤이 조용히 물었다.“나는?”정애는 서윤을 바라봤다.“너는 그 뒤에 혜경이 데려온 아이야.”서윤의 얼굴이 굳었다.“그럼 나는 누구예요?”혜경이 대답했다.“네 친부는 내가 알아.”서윤이 숨을 삼켰다.“누구예요?”혜경은 한참을 망설이다 말했다.“내 남편의 아이였어.”서윤의 얼굴이 굳었다.“그럼…….”“네 친모
“한서윤이다.”스피커에서 최도현의 목소리가 사라졌다.연희는 세아를 바라봤다.세아 역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서윤?”연희가 떨리는 목소리로 불렀다.세아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미안해.”연희의 얼굴이 굳었다.“왜 미안해?”“나도 몰랐어.”“뭘?”“내 이름이 뭔지.”도윤이 끼어들었다.“연희야, 지금은 여기서 나가야 해.”“잠깐.”연희가 도윤을 막아섰다.“당신은 알고 있었잖아요.”“…….”“세아가 누구인지.”도윤은 시선을 피했다.“처음부터 알고 있었어요?”“정확히는 몰랐어.”“그럼 뭘 알고 있었는데요?”도윤이 한숨을 내쉬었다.“네 엄마가 죽기 직전에 아이 한 명을 내게 맡겼다는 것.”“그게 세아였어요?”“그래.”“왜 숨겼어요?”도윤은 대답하지 못했다.세아가 대신 말했다.“내가 죽은 아이로 기록돼 있었기 때문이야.”연희가 그녀를 바라봤다.“죽은 아이?”“그래.”“그럼 서윤은?”세아의 얼굴이 굳었다.“그 이름도 내 이름이 아니야.”연희는 숨을 삼켰다.“그럼 우리가 알고 있던 서윤은…….”“내 이름을 빌린 사람이야.”순간 연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도율이 서류를 꺼냈다.“잠깐.”그는 출생기록을 펼쳤다.“여기 서윤 씨의 기록이 있습니다.”연희가 다가갔다.출생아 이름.한서윤.하지만 산모 이름은 달랐다.혜경.연희가 굳었다.“혜경이 엄마라고 되어 있어요.”도율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런데 출생시간이 없습니다.”“왜요?”“출생기록이 사후에 작성됐기 때문입니다.”세아가 조용히 말했다.“그러니까 나는 한 번 죽었고…….”그녀가 서류를 바라봤다.“다른 아이가 내 이름으로 살아온 거야.”연희는 혼란스러웠다.“그럼 서윤은 누구야?”세아가 대답하지 않았다.그때 도윤의 휴대폰이 울렸다.최도현이었다.“받지 마.”도율이 말했지만 도윤은 전화를 받았다.“뭡니까.”“내 딸을 데리고 있군.”도윤의 얼굴이 굳었다.“당신 딸은 연희입니다.”전화기 너머에서 웃음이 들
“내가 네 아버지다.”화면 속 남자의 얼굴을 본 순간 도윤은 움직이지 못했다.“……최도현.”무겸이 다급하게 물었다.“저 사람이 진짜 최도현입니까?”도윤은 대답하지 않았다.그저 화면만 바라봤다.연희는 낡은 의자에 묶인 채 남자를 노려보고 있었다.“당신이 진짜 내 아버라면 왜 지금까지 숨어 있었어요?”남자는 씁쓸하게 웃었다.“숨어 있었던 게 아니야.”“그럼요?”“갇혀 있었어.”“누구한테?”남자의 표정이 굳었다.“내 아버지에게.”연희의 눈빛이 흔들렸다.“할아버지?”“그래.”“왜요?”“내가 너희를 데리고 도망가려고 했으니까.”연희는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그런데 기록에는 당신이 죽었다고 되어 있어요.”“죽은 사람으로 만들어진 거야.”“누가?”최도현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네가 믿고 있는 모든 사람이 조금씩 관여했어.”연희의 눈빛이 차가워졌다.“또 그 말이네요.”“하지만 한 사람만은 끝까지 나를 도왔다.”“누구요?”최도현이 말했다.“혜경.”연희가 굳었다.“혜경이 당신을 도왔다고요?”“그래.”“그런데 왜 엄마를 죽인 사람처럼 행동했어요?”최도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그 여자는 네 엄마를 죽이지 않았어.”“그럼?”“네 엄마가 죽은 건 사고였어.”연희가 눈을 크게 떴다.“사고?”“내 아버지가 네 엄마를 죽이려고 했고, 그 과정에서 사고가 났어.”“그런데 왜 혜경이 시체를 옮겼어요?”“내 아버지가 시켰으니까.”연희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그럼 엄마는…….”최도현이 고개를 숙였다.“마지막 순간까지 너를 살리려고 했어.”연희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나를?”“그래.”“뭐라고 했는데요?”“너를 다른 아이로 바꾸라고 했어.”연희가 굳었다.“왜요?”“네가 가장 먼저 죽임을 당할 아이였으니까.”“왜 내가?”“네가 내 딸이라는 걸 모두가 알고 있었어.”그때 화면 밖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최도현이 급하게 고개를 돌렸다.“시간이 없어.”연희가 물었다.“
“네 엄마를 죽인 사람도 나야.”연희는 숨을 쉬는 것조차 잊었다.“……당신이?”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도윤이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이 개자식!”쾅!두 사람이 바닥으로 넘어졌다.도율과 무겸이 동시에 달려들어 도윤을 붙잡았다.“놔!”“아버지!”도윤은 이를 악물고 남자를 노려봤다.“네가…… 그날…….”남자는 피 묻은 입술을 닦으며 웃었다.“이제 기억나?”도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네가 칼을 들고 있었어.”“그래.”“그런데 왜 내가 범인이라고 생각했지?”남자는 천천히 일어났다.“네가 기억하지 못했으니까.”연희가 끼어들었다.“당신 이름이 뭐예요?”남자는 그녀를 바라봤다.“최도현.”연희의 얼굴이 굳었다.“그 이름은 내 아버지 이름이잖아요.”“그래.”“그럼 왜 당신이 그 이름을 써요?”남자는 웃었다.“그게 바로 내가 네 아버지를 죽인 이유야.”연희는 이해할 수 없었다.“무슨 말이에요?”“네 아버지의 이름이 필요했거든.”“왜?”“회사를 물려받으려고.”도율이 차갑게 물었다.“그럼 네 친할아버지와 한패였습니까?”남자의 표정이 굳었다.“한패?”그가 웃었다.“내가 그놈보다 먼저 시작했어.”“무슨 뜻이죠?”“네 할아버지는 아이들을 이용했어.”그가 연희를 바라봤다.“나는 그 아이들을 만들었고.”방 안의 공기가 얼어붙었다.연희가 물었다.“아이들을…… 만들었다고?”“그래.”도윤이 소리쳤다.“닥쳐!”남자는 도윤을 바라봤다.“너도 알고 있었잖아.”“아니야.”“네 기억 속에 전부 남아 있어.”도윤은 머리를 감싸 쥐었다.“그만…….”세강이 그 모습을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연희야.”연희가 돌아봤다.“저 사람 말을 전부 믿으면 안 돼.”“왜?”“저 사람은 거짓말을 너무 많이 했어.”남자가 비웃었다.“그래?”세강은 고개를 끄덕였다.“네가 우리를 만든 게 아니라…….”그가 남자를 노려봤다.“우리 아버지가 만들었잖아.”연희가 굳었다.“아버지?”세강이 말했다.“이 남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