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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첫 방송이 나간 밤

Penulis: YuIm
last update Tanggal publikasi: 2026-11-01 23:09:43

“그런데 제가 하고 싶은 일은 왜 잘랐어요?”

도윤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모니터에 멈춘 서하의 얼굴이 편집실을 채웠다. 원본 영상 속 그녀는 질문을 듣고 잠깐 생각한 뒤 대답했지만, 검토본에서는 그 침묵만 길게 남아 있었다.

“제가 놓친 부분입니다.” 도윤이 말했다.

“회사 관련 내용을 확인하는 동안 주변 문장까지 같이 잘렸습니다. 수정하겠습니다.”

“수정하면 끝나는 문제인가요?”

“아니요. 같은 일이 다시 생기지 않게 확인 절차를 바꾸겠습니다.”

서하는 그 말이 마음에 들었다기보다, 적어도 사과를 대신할 설명으로 포장하지 않는 점을 눈여겨봤다. 그는 편집표를 열어 문제가 된 구간을 표시했다. 가연은 회사 업무와 직접 연결된 문장, 개인적인 경험에 관한 문장을 서로 다른 색으로 구분했다.

“업무 자료는 공개 범위를 더 확인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혼을 결심한 이유와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는 회사의 검토 대상이 아니에요.” 가연이 말했다.

“다만 실제로 말한 맥락을 바꾸지 않았는지, 최종본을 확인할 수 있게 하겠습니다.”

서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원하는 것은 모든 말을 무조건 내보내는 권리가 아니라, 자신이 말하지 않은 뜻을 대신 만들어 붙이지 말라는 것이었다.

수정 작업은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인터뷰의 질문을 원래 순서대로 돌리고, 서하가 작업실을 떠나기 아쉬워하는 이유와 이혼을 선택한 이유를 분리했다. 회사에서 맡았던 구체적인 업무는 아직 공개하지 못했지만, 그 자리에 돈이나 거처를 걱정하는 듯한 자막을 넣지 않기로 했다.

“이렇게 보면 너무 담담하지 않습니까?” 편집자가 물었다.

“감정이 더 드러나는 컷이 있는데요.”

“담담한 게 감정이 없는 건 아니죠.” 서하가 말했다.

“제가 울지 않았다고 해서 아쉬워하지 않는 건 아니에요.”

도윤이 편집표에 적었다. 감정 컷은 유지하되, 같은 표정을 반복해 다른 의미를 만들지 말 것.

서하는 그가 자신을 위해 문장을 적었다고 생각하지 않으려 했다. 이건 자신이 요구한 조건을 지키는 일이고, 제작진이 해야 할 일이었다.

수정본이 나오기까지는 하루가 더 걸렸다. 그사이 서하는 집 안에 쌓인 종이를 정리했다.

방송에 제출한 자료와 회사에 돌려줘야 할 자료를 나누고, 자기 이름이 적힌 계약서 사본을 별도 파일에 넣었다. 정리할수록 결혼 후 자신이 한 일이 얼마나 많은지보다, 그중 무엇이 자기 이름으로 남아 있는지가 먼저 보였다.

첫 방송이 나가는 날, 제작진은 서하에게 시청을 함께하자고 제안했다. 방송사에서 제공하는 대기실에서 볼 수도 있고, 집에서 혼자 볼 수도 있다고 했다.

서하는 혼자 보겠다고 답했다. 방송을 보는 순간까지 누군가의 표정을 살피고 싶지는 않았다.

밤 9시, 화면에 프로그램 로고가 떴다. 제목 아래에는 ‘결혼의 끝에서, 다시 나를 찾는 사람들’이라는 소개 문구가 붙었다.

서하는 그 문구가 마음에 들지도 싫지도 않았다. 적어도 자신의 사연을 비극으로만 팔겠다는 말은 아니었다.

첫 장면은 작업실이었다. 넓은 책상과 창가, 정리된 책장이 화면을 채웠다.

실제로는 서류 상자와 촬영 장비를 치우느라 한쪽에 쌓인 책들이 화면 밖으로 밀려나 있었다. 화면 속 공간은 자신이 살던 곳보다 단정하고 넓어 보였다.

인터뷰 장면에서 진행자가 물었다.

“이혼하고 나면 지금 생활과는 달라질 수도 있잖아요. 가장 걱정되는 게 뭡니까?”

화면 속 서하는 잠시 책상을 보았다. 이어서 자신의 목소리가 들렸다.

“다시 글을 쓸 수 있을지가 걱정이에요.”

서하는 리모컨을 쥔 손에 힘을 줬다. 그 답은 남았다.

뒤이어 작업실을 떠나는 게 아쉽지 않으냐는 질문과, 그곳에서 글을 쓸 수 있게 해 주겠다는 약속을 더는 믿지 않는다는 대답이 차례로 나왔다. 회사 업무에 관한 부분은 여전히 빠져 있었지만, 적어도 서로 다른 질문의 답을 이어 붙여 그녀가 돈을 걱정하는 사람처럼 보이게 하지는 않았다.

화면 속 자신은 생각보다 단단해 보였다. 서하는 그 모습이 낯설었다.

실제 촬영이 끝난 뒤에는 욕실 문을 닫고 한참 동안 세면대에 기대 서 있었다. 그때의 떨림은 화면에 나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 떨림이 없었던 일이 되는 것도 아니었다.

방송이 끝나기 전 행사장 예고편이 이어졌다. 준혁의 익숙한 웃음이 화면에 들어오자, 서하는 다음 말을 기다렸다.

“저는 아내가 편하게 글만 쓰길 바랐습니다. 회사 일은 맡긴 적이 없고요.”

서하는 손에 든 리모컨을 내려놓았다. 같은 말이었다.

행사장에서 들었던 말이었다. 회사가 계약을 인정한 뒤에도 예고편에는 정정 전 발언이 실렸다. 본편에서 빠진 업무 이야기가 어떻게 이어질지, 서하는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휴대전화에 알림이 쌓였다. 프로그램 공식 계정의 게시물에는 응원도 있었고, 가진 게 많은 사람이 이혼을 무기로 삼는 것 아니냐는 댓글도 있었다. 아직 방송 한 회가 나갔을 뿐인데, 사람들은 이미 자신을 안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댓글 창을 닫기 전, 답글 입력창에 손가락이 잠시 머물렀다. 서하는 끝내 답을 쓰지 않은 채 창을 닫고 수정된 질문지를 꺼냈다.

방송에서 빠진 업무 항목 옆에는 아직 검토 표시가 남아 있었다. 다음 촬영 전에 그 부분부터 물어볼 생각이었다.

방송 중간의 결혼사진 장면으로 재생 막대를 되돌리자, 준혁의 팔에 손을 얹고 카메라를 향해 웃는 자신의 모습이 나왔다.

그 사진을 찍은 날, 서하는 촬영이 끝나자마자 호텔 방으로 돌아와 준혁의 발표 자료를 고쳤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출국하는 일정이 있었고, 그는 문장을 확인하다 잠든 서하의 어깨에 재킷을 덮어 줬다.

그때는 그런 행동이 고마웠다. 지금 생각해도 그 순간의 고마움까지 거짓이었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았다. 다만 그 작은 다정함이 이후의 모든 일을 대신 설명해 주지는 못했다.

진행자의 목소리가 사진 위로 흘렀다.

“두 분은 오래 함께하셨는데요. 지금도 남편분과 대화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대화는 할 수 있겠죠. 다만 제가 말한 뜻을 다른 뜻으로 바꾸지 않는 대화였으면 좋겠습니다.”

서하는 화면을 보며 손가락을 접었다 폈다. 그 답은 촬영 당시에도 쉽게 나오지 않았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것과 더는 함께 살 수 없다는 건 다른 문제였다.

자신은 준혁을 미워하지 않으려고 오래 애썼다. 이해하면 지나갈 일이라고, 바쁜 시기라 그럴 수 있다고, 자신이 한 번 더 도와주면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설명을 덧붙일수록 자기 마음은 문장 끝에서 지워졌다.

방송이 끝난 뒤 공식 계정에는 짧은 인터뷰 영상이 올라왔다. ‘이혼을 앞둔 아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라는 제목이었다. 영상에는 서하가 다시 글을 쓸 수 있을지 걱정된다고 말하는 장면이 담겼다.

댓글에서 글을 쓰는 사람이 왜 자기 글을 쓰지 못했느냐는 질문을 발견한 서하는, 한 번 읽고 화면을 닫았다. 아직 답을 다 말할 수는 없어도 그 질문마저 지우고 싶지는 않았다.

잠시 뒤 편집팀이 보내온 공개본 대조용 확인 기록에는, 서하가 요청한 세 군데의 연결을 수정했다는 표시가 있었다. 회사 관련 업무 내용은 여전히 검토 중. 서하는 확인 완료 버튼을 누르기 전에 영상을 다시 재생했다.

자신의 대답이 질문과 맞는 위치에 놓였는지, 침묵이 필요 이상으로 길어지지 않았는지, 자막이 원래 발언을 넘어가지 않았는지 확인했다. 누군가의 편집을 의심하는 데 익숙해지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다시는 확인하지 않고 맡겨 두지도 않을 생각이었다.

그녀는 확인 완료를 누른 뒤, 회사 업무 항목만 미완료로 남겼다. 수정된 질문과 답에는 확인 표시를 붙이고, 아직 답을 받지 못한 자료명은 다음 검토 목록으로 옮겼다.

노트를 덮으려다 맨 위에 날짜를 적었다. 같은 설명을 처음부터 다시 하지 않으려면 어디까지 확인했는지 남겨 둬야 했다.

방송이 끝난 뒤에도 화면은 한동안 공식 계정의 댓글을 보여 줬다. 누군가는 서하가 다시 글을 쓸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고, 누군가는 결혼생활에서 받은 지원을 먼저 설명하라고 했다.

그녀는 두 반응 모두에 답하지 않았다. 응원하는 사람에게 빚진 듯 굴고 싶지 않았고, 자신을 의심하는 사람을 단 한 번의 댓글로 설득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서하는 노트에 질문을 하나 적었다. ‘내가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사람들이 이해할까.’ 한참 뒤 그 아래에 선을 그었다.

모두가 이해할 때까지 기다리다가는 첫마디조차 꺼낼 수 없을 것 같았다. 노트의 질문 아래 그어 놓은 선을 다시 보며, 지금 말할 수 있는 사실부터 떠올렸다. 나머지는 다음 방송에서 보여 주면 됐다. 카메라가 빨리 돌아간다고 자신까지 결론을 서두를 필요는 없었다.

준혁에게서 전화가 왔다. 서하는 잠시 화면을 내려다보다 받았다.

“잘 봤어?”

“방송을 봤다는 얘기를 하려고 전화했어?”

“네가 원하는 대로 나왔잖아. 불쌍한 아내, 나쁜 남편. 시청자들이 좋아하겠네.”

“내가 원한 건 내 말을 자르지 말라는 거였어.”

“그래서 회사 일은 하나도 못 했잖아. 네가 그걸 증명할 수 있을 것 같아?”

서하는 대답하기 전에 숨을 한 번 골랐다. 그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묻고 싶지 않았다. 그건 지금 자신이 해야 할 질문이 아니었다.

“오늘 방송에서 다 말하지 않았다고 해서, 없었던 일이 되지는 않아.”

“그만해. 이제 와서 돈 더 받겠다는 거잖아.”

“당신은 모든 일을 돈으로 설명하네.”

준혁의 비웃음이 들려도 서하는 예전처럼 설명부터 꺼내지 않았다. 왜 밤새 원고를 고쳤는지, 그 일이 회사에 어떤 도움이 됐는지, 어째서 자기 이름을 말하고 싶은지 하나씩 납득시키려 들지 않았다.

“방송 관련 연락은 제작진이나 변호사를 통해 해 줘.”

“서하야.”

“잘 자.”

통화를 끊은 뒤 서하는 휴대전화를 뒤집어 놓았다. 가슴이 뛰었지만, 이번에는 무엇을 잘못 말했는지 되짚지 않았다.

대신 책상 위에 남은 원고를 펼쳤다. 첫 방송에서 말하지 못한 내용들을 적어 둘 생각이었다. 누군가에게 당장 보여 주기 위한 글이 아니라, 자신이 잊지 않기 위한 기록이었다.

노트 첫 줄에 ‘내가 한 일’이라고 썼다가 지웠다. 아직은 너무 넓은 말이었다. 서하는 새 줄에 적었다.

‘내가 직접 말한 것과, 다른 사람이 대신 설명한 것.’

그 아래로 문장을 이어 가려는데, 다음 회 편집 방향을 논의하자는 제작진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제작사 본사가 한성 측 의견을 반영해 달라는 추가 요청을 보냈다는 내용도 함께였다.

서하는 노트를 덮지 않았다. 답장을 쓰기 전에 자신이 확인하고 싶은 항목부터 적었다. 어떤 요청이 왔는지, 누구의 말이 들어가는지, 최종본은 언제 확인할 수 있는지.

노트 옆에는 결혼 초에 쓰다 만 단편 원고가 놓여 있었다. 서하는 파일을 열었다가 첫 문장만 읽고 닫았다.

오늘 당장 다시 쓸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대신 파일명을 ‘미완성’에서 ‘다시 읽을 것’으로 바꿨다. 저장 버튼을 누른 뒤, 화면에 남은 자기 이름을 잠시 바라봤다.

그때 제작진에게서 새 메시지가 도착했다. 제목은 ‘정규 2회 추가 편집 요청’이었다.

첨부된 문서에는 한성 측의 의견을 반영하라는 제작사 본사의 요청이 정리돼 있었다. 서하는 파일을 열기 전에 노트 맨 위에 한 줄을 적었다.

‘먼저 원문을 확인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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