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6화. 지우지 않는 PD

Penulis: YuIm
last update Tanggal publikasi: 2026-11-01 23:09:48

다음 날 오전, 제작사 회의실 화면에는 전날 방송의 반응이 숫자로 정리돼 있었다. 공개 직후 시청 완료율은 예상을 웃돌고 공식 계정의 짧은 인터뷰 영상도 빠르게 공유되는 중이었으나, 모여 앉은 사람들의 표정은 들뜬 숫자와 달랐다.

“화제성은 잡았습니다. 문제는 방향입니다.”

편성 담당자가 자료를 넘겼다. 서하가 이혼을 결심한 이유보다 작업실과 생활이 바뀌는 데 대한 걱정이 더 크게 읽힌다는 반응이 있었다.

일부 댓글은 그녀가 남편의 재산을 더 받으려고 방송에 나왔다는 쪽으로 흘렀다. 제작사 본사에서 보낸 요청서에는 한성 측의 입장과 댓글 반응을 정규 2회에 반영하라는 문장이 적혀 있었다.

“남편이 충분히 지원했는데도 만족하지 못한 아내. 그런 구도가 한눈에 들어오게 만들자는 겁니다.” 담당자가 말했다.

“시청자는 복잡한 설명보다 관계를 빨리 이해하고 싶어 합니다.”

도윤은 요청서를 다시 읽었다. 그 문장에는 ‘지원’이라는 말이 세 번 들어갔다.

한성은 자문 계약 사실을 정정하고도, 서하의 실무 기여는 가족의 도움에 불과하다는 식으로 축소하고 있었다. 제작사 본사는 그 주장을 검증하기보다, 남편이 충분히 지원했는데도 서하가 더 많은 것을 원한다는 인상을 먼저 만들려 했다.

“그렇게 편집하면 안 됩니다.”

“그럼 어떤 구도로 가자는 겁니까? 지금 자료로는 회사 업무를 자세히 보여 줄 수 없잖아요.”

“공개할 수 없는 자료를 쓰지 않는 것과, 다른 뜻으로 보이게 만드는 건 다른 문제입니다.”

편성 담당자가 의자에 기대었다.

“강 PD, 이건 다큐멘터리가 아닙니다. 리얼리티예요. 시청자가 보고 싶은 갈등을 만들어야죠.”

“갈등은 이미 있습니다. 출연자가 한 말을 다른 뜻으로 바꿔야만 생기는 갈등은 아니고요.”

말이 끝나자 회의실에 잠깐 정적이 생겼다. 도윤은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한마디만 거칠어져도 이 자리에서 따질 것은 편집이 아니라 자신의 태도가 될 것 같아, 도윤은 높아지려는 목소리를 눌렀다. 바꾸지 않겠다는 말 옆에 왜 바꿀 수 없는지도 남겨야 했다.

“그럼 수정안은요?”

“서하 씨가 실제로 말한 내용 안에서 구성하겠습니다. 생활이 달라지는 걱정은 그대로 보여 주되, 그걸 돈을 더 받으려는 동기로 연결하지 않겠습니다. 회사 업무는 검증이 끝난 부분만 사용하고요.”

“그렇게 하면 다음 회차가 밋밋해질 수도 있습니다.”

“밋밋한 건 편집으로 보완하겠습니다. 사실을 바꿔서 보완하지는 않겠습니다.”

도윤은 회의가 끝난 뒤 요청서에 의견을 달아 회신했다. 본사의 추가 요구는 검토 중으로 남겨 두고, 제작진이 확인한 수정 기준을 함께 적었다.

그가 보낸 메일은 짧았지만, 수신자 목록에는 제작사 책임자와 현장 법무가 포함돼 있었다. 나중에 누가 어떤 판단을 했는지 확인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가연은 회신을 읽고 말했다.

“이렇게 남기면 본사 쪽에서 다시 문제를 제기할 수 있어요.”

“구두로 거절하면 제가 거절한 게 아닌 것처럼 될 수도 있잖아요.”

“그렇다고 서류가 방패가 되는 건 아닙니다.”

“알고 있습니다.”

도윤은 노트북을 닫았다. 발송함에는 본사의 요청과 자신의 답변이 나란히 남아 있었다.

수신자에게서 읽음 표시가 뜬 것을 확인하자 등받이에 기댔던 몸이 다시 굳었다. 이제 왜 거절했는지 묻는 전화가 올 것이었다.

잠시 뒤 제작사 책임자에게서 전화가 왔다. 목소리는 낮았지만, 회의에서 한 말보다 더 직접적이었다.

“본사 요청을 거절했다는 메일을 남길 필요까지 있었나?”

“요청이 있었고, 수용하지 않은 이유가 있으니 기록한 겁니다.”

“방송이 잘되면 다들 자기 판단이 맞았다고 생각하지. 반응이 떨어지면 그때는 누가 책임질 건데?”

도윤은 창밖을 보았다. 맞는 말이었다.

반응이 떨어지면 자신이 책임져야 했다. 다만 반응을 지키기 위해 출연자가 하지 않은 말을 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시청 완료율이 떨어지면 편집을 다시 보겠습니다. 하지만 사실과 다른 동기를 붙이지는 않겠습니다.”

통화가 끝난 뒤 그는 회의록에 추가 의견을 남겼다. 본사 요청을 전부 무시한 건 아니었다.

공개가 보류된 자료는 쓰지 않고, 확인되지 않은 업무 범위도 단정하지 않겠다고 했다. 거절한 건 그 빈자리를 서하의 탐욕이나 변덕으로 채우는 방식이었다.

편집실 문밖에서 기다리던 스태프가 물었다.

“이 정도까지 해야 해요?” 도윤은 잠깐 생각하다 대답했다.

“나중에 화면만 남았을 때, 누가 어떤 말을 했는지 알아야 하니까요.”

스태프는 더 묻지 않았다. 도윤도 자신이 대단한 선택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런 기준은 특별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 아니라, 일을 계속하려면 매번 지켜야 하는 기본에 가까웠다. 다만 기본을 지키는 쪽이 때로는 더 많은 설명을 요구받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점심 무렵 서하가 제작사에 도착했다. 인터뷰 보충 촬영을 위해서였다.

편집실 앞에서 기다리던 스태프가 회의가 길어져 촬영이 조금 밀릴 거라고 알려 줬다. 괜찮다고 답하며 펼친 노트에는 첫 방송을 보고 떠오른 질문과 바로잡아야 할 문장이 빼곡했다.

회의실에서 나오던 도윤이 그녀를 발견했다.

“오래 기다리셨습니까?”

“아니요. 제가 확인할 걸 정리하고 있었어요.”

서하는 노트를 닫지 않은 채 물었다.

“제작사 본사에서 편집 요청을 더 보냈다고 들었어요. 제 말을 어떻게 보이게 할지 정하는 요청인가요?”

도윤은 잠깐 생각했다. 내부 논의 내용을 그대로 전달할 수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아무 일도 없었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방송 방향에 대한 요청이 있었습니다. 사실과 다른 인상을 만드는 부분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저 때문에요?”

“프로그램 때문입니다.”

대답이 빨랐다. 서하가 그를 바라보자 도윤은 한마디를 더 보탰다.

“그리고 제가 맡은 일을 제대로 하려는 거고요. 서하 씨를 위해서라고 말하면 제가 좋은 사람인 것처럼 들리잖습니까.”

서하는 노트 가장자리를 엄지로 눌렀다. 듣기 좋은 말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자신에게 빚을 지우는 말도 아니었다.

“좋은 사람인지 아닌지는 제가 정할게요.”

도윤이 작게 웃었다.

“그럼 평가를 보류해 주십시오.”

“방송 끝날 때까지요?”

“가능하면 조금 더 길게요.”

웃지 않으려 해도 입꼬리가 움직였다. 그걸 본 도윤은 대화를 더 잇지 않고, 촬영 시간을 확인하러 가는 대신 편집실 문을 열어 안쪽에 변경된 질문지를 가져오라고 요청했다.

첫 방송에서 빠진 내용을 보충하려는 질문지에는 ‘남편이 다시 글을 쓰게 해 준다면 돌아갈 생각이 있습니까?’라는 항목도 있었다. 서하는 읽던 손을 멈추고 그 문장에 펜으로 밑줄을 그었다.

“이 질문은 빼 주세요.”

도윤이 가까이 다가왔다.

“보충 촬영에서 다시 확인하려고 넣었습니다. 같은 질문을 빼고 싶으신 이유를 듣겠습니다.”

“제가 글을 쓰는 걸 허락하는 사람이 남편이라는 전제가 들어가 있잖아요. 그 사람이 다시 허락하면 돌아갈 거냐고 묻는 거니까요.”

“그럼 어떻게 바꾸면 좋겠습니까?”

서하는 질문 아래에 새 문장을 썼다. ‘이혼 후에도 계속 가져가고 싶은 것은 무엇입니까?’ 질문의 주어는 남편이 아니라 서하였고, 답의 방향도 허락을 기다리는 쪽이 아니었다.

“이렇게 물어보면 제가 뭘 원하는지 말할 수 있어요.”

도윤은 수정된 문장을 읽고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질문이 짧아졌네요.”

“원래 질문이 길었어요.”

“답도 길게 하실 생각이셨습니까?”

“질문이 짧으면 생각해 볼게요.”

이번에는 도윤이 웃었다. 웃음은 짧았지만, 업무를 잘 마쳤을 때의 가벼움이 있었다.

서하도 조금 따라 웃으면서, 불쾌해하지 말라고 달래는 웃음이 아니라는 데 마음이 놓였다. 기분 좋으라고 한 말을 덧붙이는 대신 질문에 깔린 전제를 고쳐 주는 도윤의 방식이 좋았다.

보충 촬영은 예정 시간보다 늦게 시작했다. 서하는 같은 질문에 여러 번 답하지 않았다.

답변이 명확하지 않으면 질문을 다시 해 달라고 했고, 촬영이 끝나면 어떤 대목이 사용될 예정인지 확인했다. 제작진은 조금 번거로워했지만, 도윤은 그 과정을 생략하지 않았다.

촬영이 끝난 뒤 가연이 편집 요청서 사본을 건넸다. 본사가 요구한 문구와 제작진이 수용하지 않은 부분이 표시돼 있었다.

서하가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 보니 모든 요청이 거절된 것은 아니었다. 공개할 수 없는 업무 자료를 당장 쓰지 않는다는 판단만큼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이건 제가 원한다고 해서 공개할 수 있는 내용은 아니네요.”

“맞습니다.” 가연이 말했다.

“출연자 확인권은 사실과 다른 편집을 막기 위한 것이지, 검증되지 않은 자료를 자동으로 공개하는 권리는 아닙니다.”

서하가 서류를 돌려줬다. 마음에 들지 않는 제한이라고 기준 자체를 없앨 수는 없었다. 자기 말을 지키려면, 다른 사람이 공개하지 않겠다고 한 정보부터 같은 기준으로 대해야 했다.

편집실을 나서기 전 도윤이 물었다.

“다음 인터뷰에서 더 말하고 싶은 내용이 있습니까?”

“있어요. 다만 지금은 증명할 수 있는 부분과 제 기억을 구분하고 싶어요.”

“그럼 그 순서대로 준비하죠.”

“PD님이 먼저 순서를 정하지 말고요.”

도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서하 씨가 정한 순서를 확인하겠습니다.”

서하는 노트를 가방에 넣었다. 그의 대답을 믿었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자신이 요구한 것을 설명했을 때, 그가 그것을 알아듣고 실제 질문을 바꾸는 모습은 확인했다. 그 정도면 다음 촬영을 이어 갈 이유로 충분했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휴대전화가 울렸다. 준혁에게서 온 메시지였다.

‘회사가 한 말까지 네가 뒤집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

서하는 문장을 한 번 읽고 화면을 껐다. 답장은 쓰지 않았다.

오늘 자신이 할 말은 이미 노트에 적혀 있었다. 남편에게 보내는 반박보다, 다음 질문에 자신의 말로 대답하는 일이 먼저였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서하는 편집 요청서에 적힌 ‘시청자 이해도’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자신도 글을 쓸 때 독자가 따라오기 쉬운 순서를 고민했다.

하지만 이해하기 쉽게 만든다는 이유로 사실을 바꿀 수는 없었다. 도윤이 좋은 사람인지는 아직 몰라도, 적어도 질문을 바꿀 줄 아는 사람이라는 건 알았다.

엘리베이터가 내려가는 동안 서하는 수정된 질문지를 다시 펼쳤다. 도윤이 지운 문장 아래 자기 글씨가 남아 있었다.

다음 편집본에도 이 질문이 그대로 붙어 있을까. 종이를 접어 넣으면서도, 방금 편집실에서 함께 웃던 얼굴이 따라왔다.

Lanjutkan membaca buku ini secara gratis
Pindai kode untuk mengunduh Aplikasi

Bab terbaru

  • 내 이혼을 생중계합니다   29화. 방송에서 말하지 않을 것

    작업실을 다녀온 뒤로 서하는 노트북 앞에 앉는 시간이 길어졌다. 준혁이 보낸 메시지는 변호사에게 전달했고, 작업실에 남아 있던 개인 원고도 챙겼다. 당장 해결된 일은 없었지만, 적어도 무엇을 잃을 수 있고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는 전보다 분명해졌다.다음 날 오전, 제작진은 정규 4회 편집 회의를 열었다. 채미래와 준혁 사이의 관계가 방송에 들어갈 수 있는 시점이 다가오고 있었다.미래가 공개에 동의하지 않은 부속합의는 구성안에서 제외돼 있었지만, 제작진은 공개된 장면만으로도 관계의 균열을 보여 줄 수 있다고 판단했다. 서하가 준혁의 거짓을 어떻게 확인했고, 자신이 어떤 일을 맡았는지 설명하는 장면이 중심이었다.마케팅 담당자가 편집본을 띄웠다. 서하가 준혁의 개인 해명 영상을 바라보는 장면 뒤로, 준혁과 미래가 행사장에서 나란히 걷는 과거 영상이 붙어 있었다.자막은 ‘아내가 몰랐던 남편의 두 얼굴’이라고 적혀 있었다. 서하는 화면을 끝까지 본 뒤 손을 들었다.“이 장면은 빼 주세요.”“어떤 부분이요?” 담당자가 물었다.“행사장에서 같이 걷는 영상이요. 저 영상만으로는 두 사람의 관계를 알 수 없어요. 제가 그때 몰랐다는 사실을 설명할 자료도 아니고요.”“시청자는 두 사람이 가까웠다는 걸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가까웠다는 건 누구와 누구 사이를 말하는 거죠? 준혁 씨와 미래 씨가 같이 걷는 장면이라면 그 사실만 보여 주면 돼요. 제가 그걸 언제 알았는지는 별도로 확인해야 하고요. 화면에

  • 내 이혼을 생중계합니다   28화. 작업실을 내놓겠다는 남자

    준혁이 보낸 메시지는 짧았다. ‘그 작업실, 계속 비워 둘 생각은 없어.’ 설명도 이유도 없었다. 서하는 그 문장을 캡처해 변호사에게 전달하고, 작업실에 남아 있는 자신의 물건부터 확인했다.당장 돌려받을 수 있는 공간은 아니었다. 등기는 준혁의 이름으로 돼 있었고, 두 사람이 나눌 정산도 아직 합의에 이르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곳에 남겨 둔 원고까지 아무것도 아닌 것은 아니었다.그녀는 오래된 메모장을 꺼냈다. 작업실을 마련해 주던 날 준혁이 했던 말이 안쪽 표지에 적혀 있었다.‘이제 여기서 네 글을 써.’ 당시 서하는 그 말을 믿었다. 결혼하고 나서 회사의 원고와 남편의 말을 대신 쓰느라 자기 문장을 뒤로 미뤘지만, 언젠가 다시 쓰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작업실은 그 약속이 실제로 이루어질 장소처럼 보였다.그런데 그곳에서 보낸 시간은 생각과 달랐다. 책상 위에는 회사 브리핑 초안이 쌓였고, 벽면에는 일정표와 행사 동선이 붙었다.서하가 개인적으로 쓰던 노트는 서랍 안으로 들어갔다. 준혁은 급한 일이 생길 때마다 그 공간을 회의실처럼 썼고, 서하는 그가 원하는 문장을 정리했다. ‘네 글을 써’라는 약속은 조금씩 ‘내 일을 도와줘’라는 말에 밀려났다.서하는 노트북을 열어 작업실 관리 메시지를 확인했다. 준혁은 다음 주에 중개인을 불러 내부를 확인하겠다고 했다.그동안 남겨 둔 개인 물품은 날짜를 정해 가져가라는 말도 붙어 있었다. 마치 그 공간이 처음부터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는 듯한 문장이었다.그녀는 변호사에게 연락했다.&ldqu

  • 내 이혼을 생중계합니다   27화. 돈과 침묵의 조건

    한준혁의 연락은 서하의 변호사를 통해 왔다. 공식적인 조정 일정이나 서면 제안이 아니라, 짧은 문장 하나였다.직접 만나 정리할 일이 있으니 시간을 내 달라는 요청이었다. 변호사는 응할 의무는 없지만, 상대가 어떤 조건을 내놓는지 확인하고 싶다면 대리인과 함께 만나면 된다고 했다.서하는 메시지를 한 번 더 읽었다. 준혁은 업무 기록이 공개된 방송 이후 개인 계정에 입장문을 올렸고, 그 뒤로는 서하의 이름을 직접 언급하는 일을 줄였다.그렇다고 물러선 것은 아니었다. 그의 말은 이제 ‘내가 직접 했다’에서 ‘최종 승인권은 내게 있었다’로 좁아졌다. 기록이 확인한 순서를 되돌릴 수 없으니, 다른 방식으로 자신에게 유리한 결론을 만들려는 듯했다.“만나야 할까요?” 서하가 물었다.“만나지 않아도 됩니다. 다만 상대가 정산과 관련된 제안을 하려는 것이라면, 조건을 확인한 뒤 거절할 수도 있습니다. 구두로 합의하지 말고, 어떤 제안이든 문서로 받는 편이 안전합니다.”“방송을 그만두라는 얘기를 할 수도 있겠네요.”“그럴 가능성은 있겠죠. 그 부분은 정산과 분리해서 판단하시면 됩니다.”서하는 잠시 생각한 뒤 만남을 받아들였다. 준혁이 무슨 말을 할지 궁금해서만은 아니었다.무엇을 바라는지 직접 듣고,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은 자기 말로 거절하고 싶었다. 준혁이 정해 놓은 이야기 안에서 답만 고르기보다, 어디서 멈출지를 먼저 확인하려는 만남이었다.외부 사무실의 작

  • 내 이혼을 생중계합니다   26화. 아직 내보내지 마세요

    채미래의 메시지는 다음 날 오전에 도착했다. ‘잠깐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방송과 무관한 자리였으면 합니다. 문서를 보여 드리겠다는 뜻은 아니고, 제가 확인한 사실을 어디까지 말할 수 있는지부터 정하고 싶어요.’서하는 문장을 천천히 읽었다. 미래는 여전히 공개에 동의하지 않았고, 문서도 제공하지 않겠다고 했다.그래도 먼저 대화를 청해 온 점은 전날과 달랐다. 서하는 이 개인적인 만남이 방송 자료 수집으로 바뀌지 않도록, 답장을 쓰기에 앞서 메시지를 가연에게 전달했다.가연은 짧게 답했다.“만나실 수는 있습니다. 다만 촬영이나 녹음은 하지 않는다고 먼저 분명히 하세요. 대화 중 들은 내용을 나중에 방송에 쓰려면 별도 동의와 검토가 필요합니다. 지금은 당사자가 공개하지 않겠다고 했으니까요.”서하는 그 문장을 그대로 미래에게 보냈다. 잠시 뒤 미래가 답했다.‘그 조건이면 괜찮아요. 장소는 제가 정해도 될까요?’ 서하가 동의하자 방송국과 떨어진 작은 카페로 약속이 잡혔다. 창가 대신 출입문이 보이는 안쪽 자리라, 지나는 사람에게 얼굴이 잘 드러나지 않을 곳이었다.약속 시간보다 10분 먼저 도착한 서하는 물 한 잔을 주문했다. 카페에는 점심을 앞둔 손님이 몇 명뿐이었다. 그녀는 휴대전화 녹음 기능이 꺼져 있는지 확인하고, 화면을 아래로 뒤집어 놓았다.미래를 만나러 온 이유는 정보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상대가 직접 말하고 싶은 범위를 듣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정해 놓고도, 혹시 자신이 듣고 싶은 말만 기다리게 되지는 않을지 걱정됐다.미래는 약속 시간에

  • 내 이혼을 생중계합니다   25화. 확정됐다는 말

    채미래는 합의서를 펼쳐 놓고도 한동안 첫 장만 바라봤다. 종이 위에는 자신과 한준혁의 이름이 나란히 적혀 있었다. 서명도 있었다.약속을 처음 들었을 때는 그 두 가지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준혁은 이사회 쪽 정리는 끝났고, 혼인 신고만 마치면 자신에게 약속한 지분과 지원이 집행될 거라고 했다. 그 말을 믿었기에 미래는 계약을 읽으면서도 조건을 따지지 않았다.그때는 따지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준혁이 자신을 선택했다는 사실만으로도 특별하다고 느꼈다.오랫동안 만난 사이라는 말보다, 한성의 다음 자리에 자신이 함께 설 수 있다는 약속이 더 큰 확신을 줬다. 자신은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고 믿고 싶었다. 서하가 아내라는 자리에서 지워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 자리를 자신이 차지할 수 있다는 생각에 눈을 감았다.이제는 같은 문장을 다시 읽어도 뜻이 달랐다.‘주식 양도는 혼인 신고 완료 및 이사회 사전 승인 후 별도 절차에 따라 진행한다.’미래는 손가락으로 ‘사전 승인’이라는 단어를 짚었다. 그 아래에는 지원금과 관련한 항목도 있었다.지급 일정은 혼인 이후 별도 합의로 정하고, 이사회 승인이 완료되지 않을 경우 당사자 간 협의를 통해 조정한다는 문구였다. 준혁이 말한 ‘끝난 일’은 문서 안에서 단 한 번도 확정된 적이 없었다.그녀는 합의서를 덮었다가 다시 펼쳤다. 처음 읽었을 때는 정해진 절차를 형식적으로 적어 둔 것이라고 생각했다.준혁은 우호 지분을 이미 확보했다고 했다. 그 말이 맞다면 서류만 갖추면 되는 일이었다. 미래의 시선이 승인 조건에서 멎었다. 이미 가진 것과, 앞으로 받아야 하는 것. 문서에는 그 둘이 같은 말로 적혀 있지 않았다.미래가 꺼낸 다른 파일은 준혁이 약속을 설명하던 날 보내 준 자료였다. 그 화면에는 분명 ‘이사회 우호 지분 기확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당시에는 그 문구를 의심하지 않았다. 누가, 어떤 방식으로, 어느 시점에 확보했는지 묻는 대신 그가 자신에게 보여 준 계획표를 믿었다. 지금 와서 보니 계획표

  • 내 이혼을 생중계합니다   24화. 또 하나의 약속

    채미래에게서 메시지가 도착한 건 밤 10시가 조금 지난 뒤였다. 서하가 모르는 번호로 받은 문자를 가연에게 전달한 지 한 시간쯤 지났을 때였다.이번에는 발신자 이름이 화면에 떴다. 채미래는 긴 설명 대신 짧은 문장을 보냈다.‘오늘 방송에 나온 리콜 기록과는 별개로, 한준혁 씨와 제가 서명한 부속합의가 있습니다. 그 문서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알아두셨으면 합니다. 다만 지금은 공개에 동의하지 않습니다.’서하는 메시지를 두 번 읽었다. 미래가 무엇을 원하는지, 왜 지금 연락했는지 아직 알 수 없었다.자신에게 유리한 자료를 주려는 것인지, 준혁을 압박하려는 것인지, 아니면 자신이 당한 일을 먼저 알리고 싶었던 것인지도 단정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미래는 공개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분명히 적었다.서하는 곧바로 답장을 보냈다.‘문서가 있다는 사실은 확인했습니다. 공개 동의가 없으므로 방송이나 홍보에 사용하지 않겠습니다. 문서의 성격을 확인하고 싶다면, 공개와 무관한 방식으로 연락할 수 있습니다.’답장을 보내고 나서야 손에 들어간 힘이 조금 풀렸다. 메시지를 받은 순간에는 자료가 더 생겼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준혁이 미래에게는 무엇을 약속했을까. 자신에게 하던 말과 어디가 달랐을까. 궁금증에 메시지로 눈을 돌리고도, 서하는 읽고 싶다는 마음만으로 남의 약속을 펼쳐 보일 수는 없다는 것을 알았다.잠시 뒤 미래에게서 답이 왔다. ‘문서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나요? 서하 씨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이미 알고 있잖아요.’그 문장을 오래 보고 있으려니 미래가 자신에게 공감하는 듯도, 자신이 준혁을 공격하는 데 쓰이길 바라는 듯도 했다. 어느 쪽이든 아직은 서하 혼자 붙인 해석이었다.‘제가 아는 건 제게 일어난 일입니다. 미래 씨와 준혁 씨 사이의 약속은 미래 씨가 공개 여부를 정해야 합니다. 문서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그 내용을 제가 대신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답장을 보낸 뒤로 한동안 소식이 없자 서하는 휴대전화를 뒤집어 놓았다. 그렇다고 이 침

Bab Lainnya
Jelajahi dan baca novel bagus secara gratis
Akses gratis ke berbagai novel bagus di aplikasi GoodNovel. Unduh buku yang kamu suka dan baca di mana saja & kapan saja.
Baca buku gratis di Aplikasi
Pindai kode untuk membaca di Aplikasi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