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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4화. 내가 없는 자리

Author: Doong_E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0-27 21:15:43

"왜 당신이어야 하는데요?"

해림은 그 짧고 날카로운 반문 뒤로 더 이상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차 문이 닫히고, 서록의 짙은 회색 세단은 어두운 지하 주차장을 미끄러지듯 빠져나갔다.

서록은 출발하는 내내 백미러 너머로 멀어지는 강유헌을 향해 어떤 불필요한 시선도 던지지 않았다.

해림은 차가 모퉁이를 돌아 완전히 주차장을 빠져나가기 전, 마지막으로 차창 너머의 유헌을 한 번 바라보았다.

그는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서 차가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움직이지 않았다.

"후회하십니까?"

조용한 차 안, 서록이 운전대를 잡은 채 짧게 물었다.

"뭘요?"

"방금 그 사람에게 그렇게 말한 것 말입니다."

"아니요."

해림이 건조하게 대답하자 서록은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그는 방금 두 사람 사이에서 무슨 대화가 오갔는지 묻지 않았고, 자신의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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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 장례식 날, 전남편의 숙적과 결혼했다   제64화. 내가 없는 자리

    "왜 당신이어야 하는데요?"해림은 그 짧고 날카로운 반문 뒤로 더 이상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차 문이 닫히고, 서록의 짙은 회색 세단은 어두운 지하 주차장을 미끄러지듯 빠져나갔다.서록은 출발하는 내내 백미러 너머로 멀어지는 강유헌을 향해 어떤 불필요한 시선도 던지지 않았다.해림은 차가 모퉁이를 돌아 완전히 주차장을 빠져나가기 전, 마지막으로 차창 너머의 유헌을 한 번 바라보았다.그는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서 차가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움직이지 않았다."후회하십니까?"조용한 차 안, 서록이 운전대를 잡은 채 짧게 물었다."뭘요?""방금 그 사람에게 그렇게 말한 것 말입니다.""아니요."해림이 건조하게 대답하자 서록은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그는 방금 두 사람 사이에서 무슨 대화가 오갔는지 묻지 않았고, 자신의 차에 탄 해림에게 어떤 소유권의 언어도 꺼내지 않았다.그 깔끔하고 서늘한 거리가 다시 한번, 두 남자의 명백한 차이를 증명하고 있었다.제로파트너스에 도착한 해림은 언제나처럼 자신의 자리에서 다음 업무로 넘어갔다.방금 전 주차장에서 있었던 팽팽하고 날 선 대치도 그녀의 완벽한 일과를 조금도 멈춰 세우지 못했다.오후 회의가 끝날 무렵, 전략팀 실장이 결재 서류를 들고 대표실로 들어왔다."대표님. 에이온 측에서 공식 협업 요청서가 도착했습니다."해림은 건네받은 서류를 훑어 내렸다.그가 '필요하다면 정식 계약으로 요청하라'고 선을 그었던 바로 그 업무였다.에이온은 정확히 그 절차에 따라, 제로파트너스 측에 과거 전략안에 대한 추가 자문과 협업을 정식으로 요청해 왔다.사업적으로 지극히 정상적이고 타당한 문서였다.단 하나의 항목만 제외한다면."에이온 측에서 대표님의

  • 내 장례식 날, 전남편의 숙적과 결혼했다   제63화. 당신 옆의 남자

    "내가 모르는 건 싫으니까."해림은 서늘한 복도를 울리는 유헌의 그 마지막 대답 앞에서 더 이상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그 불쾌하고 날 선 감정의 정체가 무엇인지 더 파고들어 기다려줄 이유도 없었다.그녀는 이미 업무적, 사적인 접근권을 모두 회수했다는 사실을 재차 못 박듯, 미련 없이 돌아서서 곧장 지하 주차장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전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와 조용한 주차장 기둥을 돌았을 때였다.다음 일정을 위해 이동하려던 해림의 시야에, 기다리고 있던 짙은 회색 세단 한 대와 그 앞에 선 차서록의 모습이 들어왔다."아직 건물 바깥에 기자들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서록은 해림이 다가오자 짧은 목례와 함께 건조하게 상황을 보고했다."출구를 빠져나가기 번거로우실 텐데, 차를 준비해뒀습니다.원하시면 기사만 붙여드리겠습니다."그는 '위험하니 내 차에 타라'고 강제하거나 명령하지 않았다.어디까지나 철저하게 해림의 선택권 아래에 결정 권한을 남겨두는 방식이었다.해림은 잠깐 차를 바라보았다.조금 전, 강유헌은 그녀의 모든 결정과 일정을 자신의 통제 아래에 두려 했다.법적 혼인 관계와 '우리 문제'를 근거로 자신의 관여를 기어코 정당화하려 했다.하지만 정작 곁에 서록이 있을 때는, 그는 그녀의 결정을 통제하는 대신 선택할 수 있는 빈칸을 온전히 비워두고 기다릴 줄 알았다.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해림이 차서록의 그 여백에 전적으로 감동하거나, 지난 화재 사건을 둘러싼 갈등을 전부 지워버린 것은 아니었다.선택을 강요하지 않는 것과, 화재 사건 전의 중요한 추적 정보 일부를 끝내 숨겨두었던 것은 완전히 별개의 문제였다.강유헌보다 나은 선택을 했다고 해서 차서록의 그 치명적인 결함이 지워지지는 않았다."차서록 씨가 태워줄 건가요?""대표님이

  • 내 장례식 날, 전남편의 숙적과 결혼했다   제62화. 우리 문제라는 말

    "또 회사 얘기인가요?"서늘한 복도 위로 해림의 질문이 차갑게 떨어졌다. 유헌은 허공을 맴돌던 굳은 시선을 천천히 거두고, 아주 미세하게 떨리는 입술을 열었다."…아니."회사 일이 아니었다. 조건도, 계약도, 에이온의 위기 상황도 아니었다.그렇다면 왜 불렀을까. 대답 없는 첫 번째 불필요한 호출의 여운만 서늘한 복도 위에 남았다.그 기묘한 정적의 끝에서 유헌이 과연 어떤 대답을 꺼낼지, 해림은 발걸음을 멈춘 채 고요하게 기다렸다.오랜 침묵 끝에, 유헌의 입술 사이로 마침내 그가 가장 익숙하게 다룰 수 있는 언어들이 서늘하게 쏟아져 나왔다."앞으로 오늘 같은 공개적인 결정은, 적어도 나한테 먼저 알려."해림의 눈매가 미세하게 가늘어졌다."어떤 일이요?""ZERO로서 세상에 나타나는 일. 그리고 내 회사와, 내 이름이 엮이는 그 모든 결정들 말이야."그것은 얼핏 들으면 지극히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요구처럼 보였다.하지만 해림에게는 그 요구가 결코 낯설지 않았다. 이유를 설명하는 대신 그는 또다시 자신이 가장 익숙한 방식인 권리와 관여의 언어를 꺼내고 있었다."내가 당신에게 먼저 알려야 할 이유는 없어요."해림이 감정을 배제한 채 차갑게 선을 그었다."이건 더 이상 너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니까."유헌이 한 걸음 더 다가섰다."네가 ZERO라고 대중 앞에 서는 순간, 에이온의 과거와 강유헌이라는 이름도 기사에 같이 오르내려. 네 일이 이제 내 쪽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고. 그러니까 이건, 우리 문제야."우리 문제.정작 한집에 살며 아내로서 그 숱한 위기를 함께 감내할 때는 단 한 번도 내어주지 않던 단어였다. 3년 전 해외 공급망 협상 위기 때도 마찬가지였다

  • 내 장례식 날, 전남편의 숙적과 결혼했다   제61화. 필요한 사람

    제로파트너스 공식 브리핑이 폭발적인 충격과 함께 끝난 직후, 장내는 말 그대로 발칵 뒤집혔다. 쏟아지는 플래시 세례와 고성으로 뒤엉킨 기자들의 질문들을 뒤로한 채, 해림은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된 동선에 따라 빠르고 건조하게 식장을 빠져나왔다.경호 인력이 따라붙는 기자들을 막아세우는 사이, 해림이 VIP 전용 복도에 들어서자 육중한 문이 닫히며 끔찍했던 소음이 단숨에 차단되었다. 대기하고 있던 전략팀 직원이 다가와 다음 일정을 보고하려던 순간이었다."잠깐 얘기해."뒤에서 낮고 다급한 발소리와 함께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평소의 그 오만할 정도로 여유로웠던 톤에서, 아주 미세하게 호흡이 흐트러진 목소리. 강유헌이었다.해림은 직원에게 눈짓을 보내 먼저 자리를 비우게 한 뒤, 천천히 몸을 돌렸다. 서늘하고 텅 빈 복도 한가운데서 두 사람은 다시 마주 섰다.조금 전 브리핑 룸에서의 공개로 한 가지 사실만은 분명해졌다.유헌이 그토록 찾아 헤매며 의존하려 했던 외부의 익명 전략가 ZERO가, 매일 같은 집에서 그의 불평을 묵묵히 들어주던 해림이었다는 것.해림은 그 사실을 알게 된 직후 그가 과연 어떤 첫마디를 꺼낼 것인지 고요한 시선으로 가만히 지켜봤다."ZERO로서, 에이온 프로젝트에 다시 들어올 생각 있어?"사과보다 먼저 튀어나온 것은 에이온이었다.해림의 입가에 아주 짧고 서늘한 미소가 스쳤다. 역시 강유헌다웠다. 그는 모든 사실이 뒤집힌 지금 이 순간조차도, 자신이 가장 익숙한 방식인 업무와 조건을 먼저 꺼내들고 있었다."글쎄요."해림이 감정 없는 목소리로 건조하게 대답하자, 유헌이 한 걸음 더 다가오며 덧붙였다."조건을 정해. 권한도, 지분도, 네가 원하는 의사결정 범위까지 전부 맞출 테니까."권한과 지분, 의

  • 내 장례식 날, 전남편의 숙적과 결혼했다   제60화 내 이름은 ZERO

    제로파트너스 공식 설명 자리는 예상보다 훨씬 무겁고 팽팽하게 가라앉아 있었다.주요 언론사 기자들과 핵심 거래처 관계자들, 그리고 이 사안의 가장 거대한 이해관계자인 에이온의 강유헌까지. 장내를 채운 수많은 시선이 브리핑 룸의 닫힌 문을 향해 쏠려 있었다. 모두가 숨죽여 기다리는 것은 단 한 명, 그동안 철저하게 베일에 싸여 있던 익명의 전략가 'ZERO'였다.그러나 닫혀 있던 문이 열리고 단상 위로 걸어 올라온 것은, 도해림 단 한 사람뿐이었다.해림이 마이크 앞에 서자마자 쉴 새 없이 플래시가 터졌다. 장내의 웅성거림이 커지는 가운데, 맨 앞줄에 앉은 기자가 마이크를 쥐고 다급하게 질문을 던졌다."도해림 대표님! 익명 전략가 ZERO 본인은 언제 참석합니까? 도 대표님 설명이 끝난 뒤에 따로 입장하는 겁니까?"해림은 흔들림 없는 시선으로 장내를 한 번 훑어 내렸다."따로 들어올 사람은 없습니다."기자들의 웅성거림이 일순간 멈칫했다. 누군가 의아한 얼굴로 되묻기도 전에, 해림의 서늘하고 명징한 목소리가 장내를 울렸다."ZERO는 이미 이 자리에 와 있으니까요."해림은 천천히 마이크를 제 앞으로 당겼다."과거 에이온의 해외 공급망 사업을 비롯해 수많은 프로젝트에서, ZERO라는 이름으로 전략을 검토하고 사업을 설계해 온 사람은 바로 저입니다."아주 짧은, 그러나 영원 같은 한 박자의 정적. 해림이 쐐기를 박듯 마지막 문장을 내뱉었다."도해림. 제가 ZERO입니다."순간, 브리핑 룸 전체의 시간이 멈춘 듯했다.미친 듯이 터지던 카메라의 플래시조차 2, 3초간 완전히 얼어붙은 듯한 완벽한 정적. 그리고 직후, 장내가 터져나갈 듯한 굉음과 질문들이 폭포수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방금 하신 말씀, 과거 에이온의 위기

  • 내 장례식 날, 전남편의 숙적과 결혼했다   제59화. 내 이름은 내가 말한다

    "네가 누구였는지가 궁금해졌으니까."전화기 너머에서 쏟아진 유헌의 목소리는 낮고 무거웠다. 최근 이어진 집요한 자료 요청과 질문만 놓고 보아도 방향은 분명히 달라져 있었다. 익명의 전략가 ZERO의 행방을 쫓던 그의 시선은 어느새, 자신이 알지 못했던 도해림의 과거 자체를 정면으로 향하고 있었다.하지만 해림은 그 거대한 의심 앞에서도 흔들림 없이 차갑게 방어벽을 쳤다."그건 당신이 알아낼 문제가 아니에요.""그럼?""내가 말할 문제죠."해림은 그 한마디로 유헌에게 쥐어질 뻔했던 주도권을 다시 완벽하게 자신에게로 빼앗아 왔다."그럼 기다리세요. 내가 내 이름을 직접 말할 때까지."통화는 거기서 끝났다. 수화기 너머에서는 더 이상의 질문이 돌아오지 않았다. 적어도 이번만큼은, 그가 해림이 그어놓은 선을 억지로 넘어 정답을 강요하지 않은 채 서늘한 침묵으로 물러섰다.통화를 마친 해림은 모니터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에이온 측의 공격적인 자료 요청은 멈췄지만, 이미 한 번 외부로 흘러나간 'ZERO'라는 익명의 이름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거대한 파장을 만들어내고 있었다."대표님. 언론과 거래처 쪽에서 추가 문의가 폭주하고 있습니다."전략팀 실장이 긴장된 얼굴로 보고서를 내밀었다."ZERO 관련입니다."질문의 핵심은 세 가지였다.과거 에이온 자료를 검토했던 익명 전략가 ZERO는 현재도 제로파트너스와 관계를 맺고 있는가. 당시 ZERO가 수정하고 검토했던 그 핵심 전략본들의 최종적인 권리와 책임은 ZERO 개인에게 있는가, 아니면 제로파트너스 내부 권한에 귀속되는가. 그리고 도해림 대표와 ZERO는 정확히 어떤 관계인가.이것은 누군가 악의적으로 조작한 새로운 공격이 아니었다. 제로파트너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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