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내가 떠난 뒤에야 후회하는 CEO 남편
내가 떠난 뒤에야 후회하는 CEO 남편
Author: 알리사 제이

1장

Author: 알리사 제이
“이경은 님, 합의서 내용은 모두 검토하셨나요?”

“이제 서명만 하시면 20년간 이어진 이 결혼 생활은 법적으로 완전히 끝나게 됩니다. 양육권 관련 사항까지 포함해서, 정말 이 모든 것을 내려놓을 준비가 되신 건가요?”

나는 어깨와 귀 사이에 휴대전화를 끼운 채, 한 손으로 화강암 아일랜드 식탁에 눌어붙은 기름 얼룩을 박박 문지르며 담담하게 대답했다.

놀랍도록 차분한 목소리였다.

“네. 접수해주세요. 이제 끝낼 거예요.”

변호사는 잠시 말을 멈췄다.

목소리에 스친 짧은 망설임 속에는 어렴풋한 동정이 묻어 있었지만, 그는 곧 다시 업무적인 태도로 돌아왔다.

“알겠습니다. 이제 심우진 씨의 서명만 받으면 됩니다. 그 다음에는 법원에서 정한 의무 숙려기간만 지나면 이혼 판결이 최종 확정될 거예요.”

통화를 마친 나는 천천히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비눗물이 잔뜩 묻은 수세미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20년이나 이어진 결혼 생활이 주방 조리대를 닦던 와중에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사실이 어쩐지 우스꽝스럽게 느껴졌다.

그때 거실에 놓인 85인치 대형 평면 TV에서는 황금 시간대 경제 채널이 올해의 기업가 인터뷰를 내보내고 있었다.

화면 속 우진은 맞춤 제작 정장을 완벽하게 차려입은 채 압도적인 존재감을 발산하고 있었다. 그에게서는 권위와 카리스마가 자연스럽게 흘러넘쳤고, 성공한 사업가 특유의 여유까지 느껴졌다.

그리고 그의 바로 옆에는 입양된 여동생이자 개인 비서인 지아가 앉아 있었다.

지아는 흠잡을 데 없이 아름다웠다.

화장은 과하지 않으면서도 사람의 시선을 사로잡을 만큼 매혹적이었고, 우진을 바라보는 눈빛에는 순수하면서도 노골적인 동경이 가득 담겨 있었다.

진행자가 미소를 띤 채 질문을 던졌다.

“심우진 대표님, 지금의 놀라운 성공을 누구의 공으로 돌리고 싶으신가요?”

우진은 단 한순간도 망설이지 않았다.

그는 자연스럽게 지아 쪽으로 몸을 돌렸고, 차갑던 눈빛은 순식간에 부드럽게 풀어졌다.

“심지아 씨죠. 제 비서이자 제 여동생입니다. 지난 10년 동안 지아의 도움이 없었다면 지금의 저는 존재하지 못했을 겁니다.”

그는 사업 파트너들에게 감사를 전했다.

직원들에게도 감사를 전했다.

함께 회사를 성장시킨 사람들에게도 아낌없이 공을 돌렸다.

하지만 그의 집을 돌보고, 아이들을 키우고, 무려 20년 동안 그림자처럼 뒤에서 그를 떠받쳐 온 아내에게는 단 한마디의 감사조차 없었다.

나라는 존재는 그에게 유령과도 같았다.

보이지 않는 사람.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

그 순간 현관문이 열리며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왔다.

아들 주원은 집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코를 찡그리더니 과장스럽게 손으로 코를 막았다.

“엄마, 또 뭐 만들었어? 집 전체에서 기름 냄새가 진동하잖아. 진짜 역겨워.”

딸 서윤은 명품 운동화를 벗자마자 곧장 TV 앞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화면을 가리키며 흥분한 목소리로 외쳤다.

“세상에! 저것 좀 봐! 아빠랑 지아 고모 나왔어! 오늘 지아 고모 진짜 섹시하다. 저 촌스러운 옷 입은 엄마보다 훨씬 낫네.”

“완전 인정.”

주원도 기다렸다는 듯 즉시 맞장구를 쳤다.

그의 눈에는 어린아이다운 장난기가 아니라 노골적인 경멸이 담겨 있었다.

“지아 고모는 완전 능력 있는 커리어 우먼이잖아. 엄마는 그냥 맨날 부엌 주변에서 어슬렁거리면서 요리만 하고 있고.”

나는 음식을 담은 접시를 들고 주방에서 걸어 나왔다.

남편과 아이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말들을 듣는 동안, 가슴 한구석은 이미 재가 되어 바스러지고 있었다.

우진은 어린 시절 부모를 일찍 여의었다.

그래서 그는 입양된 여동생인 지아를 언제나 자신의 곁에 두고 살아왔다.

그가 늘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 있었다.

“지아는 힘든 삶을 살아왔어. 나는 오빠잖아. 내가 아니면 누가 저 애를 챙겨주겠어?”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그 둘은 고등학생 시절 뜨거운 관계를 가졌었다는 사실을.

그리고 지금의 지아는 그의 그림자처럼 붙어 다니는 전속 비서가 되어 있었다.

내가 지아의 지나치게 가까운 행동이나 선을 넘는 태도에 불편함을 드러낼 때마다 우진은 언제나 같은 말로 나를 몰아세웠다.

“왜 그렇게 생각이 더러워? 지아는 그냥 내 여동생이야! 쓸데없는 의심 좀 그만해. 진짜 한심하다니까.”

겉으로 보기에는 우진과 아이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처럼 보일지도 몰랐지만, 그들이 보여 주는 모든 행동은 정반대의 진실을 말해 주고 있었다.

그들의 충성심과 애정은 언제나 지아에게 향해 있었고, 나는 그들 가족의 주변을 맴도는 이방인에 불과했다.

나는 말없이 오븐에서 훈제치킨을 꺼내 식탁 위에 내려놓은 뒤 TV 속의 ‘완벽한 커플’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마치 스스로를 조롱하듯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당신들 네 사람이 진짜 가족이라면, 나는 기꺼이 비켜주겠어.’

나는 몸을 돌려 2층 안방으로 올라갔다.

며칠 전 미리 출력해 두었던 이혼 서류를 서랍 깊숙한 곳에서 꺼냈다.

그리고 ‘청구인’이라고 적힌 칸 아래에 흔들림 없는 손으로 내 이름을 또박또박 적어 내려갔다.

무급 가정부처럼 살아온 20년.

그 길고도 지긋지긋한 시간이 이제 정말 끝나고 있었다.

나는 서류를 정성스럽게 접은 뒤 두꺼운 생명보험 갱신 서류 뭉치 사이에 끼워 넣고, 아무 의심도 사지 않도록 거실 커피 테이블 한가운데에 가지런히 올려두었다.

자정을 훌쩍 넘긴 늦은 시각이 되어서야 우진이 집으로 돌아왔다.

차가운 밤공기가 그의 뒤를 따라 현관 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그는 실내화조차 신지 않은 채 집 안으로 들어섰다.

이내 가죽 소파에 비틀거리듯 몸을 던지며 실크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어헤쳤다.

나는 조용히 그에게 다가갔다.

비싼 스카치위스키 향이 그의 숨결에서 진하게 풍겨왔고, 그 짙은 술 냄새 사이로 지아가 늘 뿌리던 상탈 33 향수가 선명하게 섞여 있었다.

게다가 셔츠 칼라에는 붉은 립스틱 자국까지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왜 이렇게 많이 마셨어?”

이미 답을 알고 있었지만, 나는 끝내 그 질문을 입 밖으로 꺼냈다.

우진은 짜증스럽게 손을 휘저으며 시선을 피했다.

“지아랑 네트워킹 행사에 갔는데 칵테일을 너무 많이 마셨어. 난 그냥 좀 도와준 것뿐이고.”

그는 말을 이어가다가 바닥에 놓여 있던 종이 상자를 발끝으로 툭 밀어 내 쪽으로 보냈다.

“이거 당신 주려고 사 왔어.”

나는 시선을 내려 상자를 바라보았다.

그 안에는 최신형 고급 로봇 청소기가 들어 있었다.

우진은 셔츠 단추를 하나씩 풀어헤치며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말했다.

“지아 새 펜트하우스로 이사하는 거 도와주다가 산 거야. 당신은 하루 종일 쓸고 닦고 하니까 이게 딱 어울릴 것 같더라고.”

어울린다고?

그러니까 그의 눈에 나는 바닥이나 닦는 사람일 뿐이었고, 지아는 그가 직접 고급 펜트하우스 이사까지 도와줄 가치가 있는 여자라는 뜻이었다.

나는 화를 내지 않았다.

화를 낼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저 차갑고 짧은 웃음만 입술 사이로 새어 나왔을 뿐이었다.

나는 커피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서류철을 집어 들고 그의 손에 건넸다.

“여기.”

우진이 미간을 찌푸렸다.

“이게 뭔데? 서류? 이 시간에?”

“생명보험 갱신 서류야.”

나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은 채 태연하게 거짓말했다.

“보험 설계사가 오늘 안에 서명해야 아이들 보장이 계속 유지된다고 하더라고.”

아이들을 위한 것이라는 말을 듣자 그의 눈에 어려 있던 짜증이 조금 누그러졌다.

그는 서류를 단 한 장도 읽어 보지 않은 채 곧바로 마지막 페이지를 펼쳤다.

“알았다, 알았어. 서명하면 되잖아.”

그는 휘갈기듯 서명을 남기고는 펜을 아무렇게나 던져 버리고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주방으로 향했다.

“지아가 술 때문에 속이 안 좋대. 따뜻한 국물 좀 끓여서 갖다줘야겠어.”

나는 주방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그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올리브유 병 하나 넘어져도 손 하나 까딱하지 않던 남자가, 이제는 다른 여자를 위해 소매를 걷어붙이고 직접 요리를 하고 있었다.

나는 손에 들린 ‘보험 서류’를 내려다보았다.

이미 양측의 서명이 모두 완료된 정식 이혼 합의서가 되어 있는 그 서류의 가장자리를 손가락으로 가볍게 튕겼다.

심우진.

2주 뒤 법원에서 이혼 판결문이 송달될 때에도.

부디 지금처럼 그렇게 세심하고 다정한 사람이기를.

지금과 같은 여유로운 표정을 지을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Latest chapter

  • 내가 떠난 뒤에야 후회하는 CEO 남편   27장

    20년이라는 세월은 눈 깜짝할 사이에 흘러가 버렸다.우진은 자신의 약속을 끝까지 지켰다. 그는 20년 동안 단 한 번도 나를 찾아와 괴롭히지 않았고, 다시 결혼하는 일도 없었다.대신 그는 스스로를 감정 없는 기계처럼 만들어 버렸다. 끝없는 업무 속으로 자신을 내던지며, 영혼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공허함과 침묵을 애써 마비시키려 했던 것이다.주원과 서윤 역시 어느새 완연한 어른이 되어 있었다.엄마 없이 살아온 긴 세월 동안, 그리고 날마다 후회에 잠식되어 무너져 가는 아빠의 모습을 지켜보며 자란 두 아이는 또래들보다 훨씬 이른 나이에 철이 들어야만 했다.그들은 마침내 감사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주원은 여성을 존중할 줄 아는 헌신적인 남편이 되었다.그는 매일 저녁 직접 아내를 위해 식사를 준비했고, 아내가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세심하게 살피며 늘 먼저 손을 내밀었다.자신이 언젠가 아빠와 같은 실수를 반복하게 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서윤은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는 강인하고 독립적인 여성이 되었다. 그녀는 자신의 힘으로 삶을 개척하며, 내가 한때 꿈꾸었던 것처럼 자유롭고 찬란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었다.두 사람은 아빠가 여전히 고통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이 그가 평생 짊어져야 할 속죄라는 사실 또한 잘 알고 있었다.우진이 60살이 되었을 때, 그는 마침내 은퇴를 결심했다.심신 그룹의 경영권을 주원에게 넘겨준 뒤, 그는 프랑스로 향하는 편도 항공권 한 장을 예약했다.20년이 지난 지금, 그는 죽기 전에 단 한 번만이라도 나를 보고 싶었다.니스의 햇살은 여전히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우진은 내 민박집 맞은편에 서 있는 올리브나무 그늘 아래 몸을 숨긴 채, 마치 도둑처럼 조용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그리고 멀리서 나를 바라보았다.내 작은 뜰은 노란 해바라기로 가득 차 있었고, 그곳에는 내가 있었다.은빛 머리카락을 지닌 노인이 된 채, 이젤 앞에 앉아 동네 아이들에게 그림 그리는 법을 가르치고

  • 내가 떠난 뒤에야 후회하는 CEO 남편   26장

    우진의 악몽은 할아버지를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다.한때 여의도 금융지구의 늑대라 불리며 누구보다 냉철하고 강인했던 그의 손자는, 이제 마치 세상에 홀로 버려진 아이처럼 보였다. 식은땀에 온몸이 흠뻑 젖은 채 의식도 없는 상태에서 헛소리를 중얼거리며, 끊임없이 내 이름을 부르고 있었기 때문이다.할아버지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그는 비서에게 지시해 프랑스에 있는 내 민박집의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게 했다. 그 번호는 그들이 막대한 돈과 시간을 들여 겨우 찾아낸 것이었다."경은아, 얘야. 나 우진이 할애비다."전화기 너머에서 나는 막 손님 몇 명을 배웅하고 돌아온 참이었다. 익숙한 노인의 목소리를 들은 나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부드럽게 입을 열었다."할아버님. 건강은 좀 어떠세요?"그 다정한 한마디를 듣는 순간, 노인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나는 정말 좋은 여자였다. 그런데 그의 어리석은 손자는 그런 나를 제 손으로 밀어내고 말았다."난 이제 늙었단다. 몸도 점점 예전 같지 않고 말이야. 경은아... 우진이 지금 아주 위독한 상태란다. 의식을 잃은 채 계속 네 이름만 부르고 있어…”“내가 이런 부탁을 할 자격이 없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돌아와 줄 수 없겠니? 잠깐이라도 좋다. 단 한 번만 얼굴을 보여 주렴. 그래야 그 아이도 마침내 너를 놓아줄 수 있을 것 같구나."전화선 너머로 긴 침묵이 흘렀다.너무 오랫동안 아무 말도 들리지 않자, 할아버지는 내가 전화를 끊어 버린 줄 알았다.하지만 한참이 지난 뒤, 내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차분하면서도 조금의 흔들림조차 없는 목소리였다."할아버님, 부디 건강 잘 챙기세요. 하지만 저는 그 집으로 돌아갈 수 없어요.""아이들이 저를 보고 싶어 한다면 여름방학에 니스로 오면 돼요. 제가 직접 요리도 해 주고 바다에도 데려가 줄게요. 하지만 저는 다시는 심 씨 가문 저택의 문턱을 넘지 않을 거예요."나는 잠시 숨을 고른 뒤, 담담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그리고 저는 다시는 우진 씨를 만

  • 내가 떠난 뒤에야 후회하는 CEO 남편   25장

    내가 떠난 뒤의 몇 달은 우진 인생에서 가장 어둡고 처참한 시간이었다.회사에서는 지아가 살아남기 위해 검찰 측 증인으로 돌아섰다.그녀는 자신의 죄를 조금이라도 덜어 내기 위해 미친개처럼 우진을 물어뜯었고, 한때 누구보다 가까운 거리에서 그의 비밀과 업무를 공유하던 사람이었던 만큼 그녀가 쏟아 내는 증언은 더욱 치명적일 수밖에 없었다.회사 밖의 상황도 다르지 않았다.국세청은 그의 세무 자료를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고, 증권거래위원회 역시 심신 그룹의 회계 장부와 자금 흐름을 하나하나 조사하며 압박의 수위를 계속해서 높여 갔다.우진은 매일같이 변호사들과 회의를 해야 했고, 수사 기관의 질문에 답해야 했으며, 언론의 집요한 추적까지 감당해야 했다.하지만 그런 문제들보다도 그를 더욱 지치게 만드는 곳이 따로 있었다.바로 집이었다.집으로 돌아가면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세상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으로 가득 찬 두 아이였고, 우진은 매일 그들의 무너진 모습을 마주해야 했다.주원과 서윤은 지금껏 지나치게 보호받으며 자라 왔다.누군가가 항상 가장 앞에 서서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었고, 누군가가 언제나 상처를 대신 막아 주었으며, 세상이 주는 차가운 현실이 아이들에게 닿지 못하도록 끊임없이 가로막아 주었다.그리고 그 누군가는 언제나 나였다.하지만 이제 나는 없었다.스캔들이 터진 이후 주원과 서윤은 명문 사립학교에서 사실상 왕따 신세가 되어 있었다.아이들은 잔인했다. 특히 상대가 약해졌다고 판단했을 때는 더욱 그랬다.“네 아빠는 쓰레기야!”“너희 엄마는 너희 버리고 도망갔잖아!”“너희 가족 완전 망했다며!”날카로운 조롱과 비웃음은 매일같이 아이들을 따라다녔고, 학교에 가는 것 자체가 견디기 힘든 고통이 되어 버렸다.집으로 돌아온 두 아이는 분노에 가득 찬 얼굴로 고급 디자이너 백팩을 바닥에 내던졌고, 우진을 향해 울분을 터뜨리듯 소리를 질렀다. “이게 다 아빠 때문이야!”"엄마가 여기 있었으면 우리를 괴롭히게 절대 내버려 두지 않았을 거야!"

  • 내가 떠난 뒤에야 후회하는 CEO 남편   24장

    내가 전화를 끊은 뒤, 우진은 거의 이성을 잃은 사람처럼 굴기 시작했다.그는 쉴 새 없이 문자 메시지를 보내며 용서를 구했다.‘경은아, 내가 잘못했어. 제발 용서해 줘.’‘당신만 돌아와 준다면 뭐든지 하겠어. 당신이 원하는 건 전부 들어줄게.’‘한 번만 기회를 줘. 제발.’수많은 메시지가 이어졌지만 나는 오랫동안 아무런 답장도 하지 않았다.그러다 한참이 지난 뒤에야 단 한 줄의 답장을 보냈다.‘좋아. 용서할게.’그 문장을 확인한 순간 우진은 거의 환호성을 지를 뻔했다. 손에 들고 있던 휴대전화가 떨릴 정도였다. 그는 이것이 모든 것을 되돌릴 전환점이라고 믿었다. 마침 답장을 보내기 위해 떨리는 손가락을 움직이던 그때, 내 두 번째 메시지가 도착했다.‘하지만 돌아가지는 않을 거야. 우리 사이는 끝났어.’그리고 그 직후, 그는 자신의 번호가 차단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점점 더 절박해진 그는 결국 가장 비열한 방법을 선택했다.아이들의 고통을 무기로 이용하기로 한 것이다.그날 서윤은 심한 고열에 시달리고 있었다. 작은 얼굴은 열로 인해 붉게 달아올라 있었고, 몸은 축 늘어진 채 기운조차 제대로 내지 못하고 있었다.우진은 새로 개통한 번호로 영상통화를 걸어왔다. 화면에 낯선 번호가 뜨는 것을 본 순간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나는 통화를 받았다.화면이 연결되자마자 아픈 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그 모습을 보는 순간 내 눈빛에 아주 잠깐 흔들림이 스쳐 지나갔고, 가슴 한구석이 아릿하게 조여 오는 감각도 느껴졌다.하지만 그것은 정말 찰나에 불과했다. 나는 곧 평정을 되찾았고, 마치 남의 아이를 바라보듯 차분한 표정으로 화면을 응시했다.“경은아…”우진은 식은땀을 흘리며 휴대전화를 아이 쪽으로 비췄다.“서윤이 열 나. 계속 엄마를 찾으면서 울고 있어…”그의 목소리에는 절박함이 가득 담겨 있었다.“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제발 한 번만 와줘. 부탁이야…”하지만 나는 흔들리지 않았다

  • 내가 떠난 뒤에야 후회하는 CEO 남편   23장

    지역 예술 센터의 책임자는 끝없이 이어지는 우진의 애원과 간청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었다.며칠 동안 찾아와 사정하고, 부탁하고, 거의 매달리다시피 하는 모습을 지켜본 끝에 결국 마음이 무너진 그는 내가 임시로 사용하고 있던 선불 휴대전화 번호를 건네주었다.우진은 떨리는 손으로 작은 종이쪽지를 받아 들었다.손끝의 떨림이 너무 심해 숫자가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였고, 그는 몇 번이나 심호흡을 한 뒤에야 겨우 전화를 걸 수 있었다.그러고는 곧바로 휴대전화를 주원과 서윤에게 내밀었다.“주원아, 서윤아.”그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어서 엄마한테 전화해.”마침내 나와 연락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아이들은 거의 동시에 휴대전화로 달려들었다.가장 먼저 서윤이 먼저 전화기를 붙잡았다.그리고 신호음이 울리는 동안 억눌러 왔던 눈물이 순식간에 터져 나왔고, 전화가 연결되자마자 그녀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다급하게 외쳤다.“엄마! 엄마! 나야! 서윤이야!”아이의 울음 섞인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쏟아져 나왔다.“엄마, 나 엄마가 해 주던 불고기 먹고 싶어…”서윤은 흐느낌 때문에 제대로 말을 잇지도 못했다.“지아 고모가 해 주는 음식은 맛이 없어… 아니, 맛없는 정도가 아니라 쓰레기보다 더 맛없어…”평소 같았으면 웃음이 나왔을 아이의 투정이었지만, 지금 그 목소리에는 절박함과 그리움만이 가득 담겨 있었다.“엄마, 제발 돌아와…”서윤은 울음을 삼키며 필사적으로 말했다.“오빠랑 나 이제 말 잘 들을게. 정말 착한 아이가 될게. 우리 빨래도 스스로 하고, 방 청소도 스스로 하고, 엄마가 잔소리한다고 짜증 난다고도 안 할게…”말을 할수록 서윤의 울음은 더욱 커졌고, 목소리는 점점 흐트러졌다. 옆에서 기다리던 주원도 더는 참지 못하고 스피커폰 쪽으로 얼굴을 들이밀었다.“엄마!”“나 이번에 우등생 명단에 올랐어! 중간고사도 전부 A 받았어!”주원은 마치 놓치면 안 되는 무언가를 필사적으로 붙잡으려는 사람처럼 급하게 말을 쏟아 냈다. 마치 인정받고

  • 내가 떠난 뒤에야 후회하는 CEO 남편   22장

    이탈리아에서 단서를 찾아 헤맨 끝에 결국 아무런 성과도 얻지 못했지만, 우진은 포기하지 않았다. 인터넷에는 여전히 나에 대한 제보와 목격담이 끝없이 쏟아지고 있었고, 그중에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꾸며 낸 거짓 정보도 있었지만, 그는 어느 것 하나 허투루 넘기지 않았다.주원과 서윤 역시 각자의 아이패드를 들고 아버지 곁에 앉아 들어오는 정보들을 하나하나 확인하며, 그것이 사실인지 거짓인지 가려 내는 일을 함께 돕고 있었다.그러던 중이었다.주원이 갑자기 화면을 가리키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아빠! 이것 좀 봐! 엄마야! 엄마 사진이라고!”흥분과 충격이 뒤섞인 목소리가 방 안에 울려 퍼졌다.주원이 발견한 것은 프랑스 니스의 한 지역 예술 센터에서 촬영된 사진이었다.사진 속의 나는 흰색 리넨 셔츠와 청바지를 편안하게 차려입은 채 손에 붓을 들고 있었고, 다양한 인종의 아이들에게 그림을 가르치고 있었다.그리고 내 얼굴에는 환하고 눈부신 미소가 어려 있었다.그 웃음은 진심으로 행복한 사람만이 지을 수 있는 순수한 미소였고, 우진과 아이들이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모습이기도 했다.그 안에는 지친 기색도, 누군가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애쓰는 절박함도 없었다.오직 있는 그대로의 삶을 즐기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자유롭고 순수한 기쁨만이 그 미소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주원은 사진을 멍하니 바라보았다.그러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눈에서 굵은 눈물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엄마는 예전에 나한테 그림을 가르쳐 주려고 했었어…”아이의 목소리는 금세 울먹임으로 흐려졌다.“좋은 아크릴 물감도 사 주고, 비싼 캔버스도 사 줬어. 그런데 나는… 엄마가 귀찮다고 했어.”주원은 손등으로 눈물을 닦으며 힘겹게 말을 이어 갔다.“엄마는 진짜 예술도 모르는 지루한 주부라고 했어. 엄마가 내 그림에 대해 말하려고 하면 짜증부터 냈고… 결국에는 엄마 붓을 부러뜨려서 쓰레기통에 버리기까지 했어…”마지막 말이 끝나자 아이의 어깨가 크게 떨렸고, 애써 억

More Chapters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