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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Author: 알리사 제이
다음 날 아침, 우진은 의외로 일찍 잠에서 깨어났다.

심한 숙취에 시달리며 신경질적인 모습을 보일 법도 했지만, 이날만큼은 달랐다.

그는 몸을 숙여 내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고, 그 행동에는 뒤늦은 미안함이 묻어나는 듯했다.

“경은아, 어젯밤 일은 미안. 회사 일이 너무 바빴거든. 당신을 너무 신경 못 쓴 것 같네.”

“오늘 마침 주말인데 가족끼리 캠핑장 가서 바비큐라도 할까? 애들도 오래 전부터 가고 싶다고 했잖아.”

몸 상태가 좋지 않다고 말하려던 순간이었다.

우진은 폴로 셔츠 단추를 채우며 마치 별것 아니라는 듯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아, 그리고 지아한테 방금 문자 왔던데, 혼자 있는 집이 너무 외롭다네?”

“그래서 짐 챙겨서 오라고 했어. 알다시피 걔는 다른 가족도 없잖아. 혼자 있게 두면 너무 불쌍하니까”

나는 입술 끝까지 차올랐던 거절의 말을 조용히 삼켜 버렸다.

항상 똑같았다.

무슨 일이든 결국은 ‘불쌍하고 외로운 여동생’이라는 핑계로 귀결되곤 했다.

호숫가 캠핑장에 도착한 뒤 우진은 겉으로 보기에는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남편처럼 행동했다.

하지만 그의 관심과 배려는 단 한 번도 나를 향하지 않았다.

“지아야, 모기 기피제 뿌려. 여기 모기 엄청 많아.”

“여기 햇볕이 너무 강하다. 천막 아래 가서 앉아 있어. 피부 타겠다.”

지아는 배가 드러나는 짧은 크롭톱과 데님 반바지를 입고 있었다.

젊음과 생기가 온몸에서 흘러넘쳤고,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주변 공기마저 밝아지는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우진과 아이들의 손을 잡아끌고 잔디밭으로 뛰어가 놀기 시작했고, 맑고 경쾌한 웃음소리는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처럼 주변에 퍼져 나갔다.

“아빠! 원반 지아 고모한테 던져요!”

주원이 신이 나서 소리쳤다.

“고모 진짜 잘한다! 고모 최고!”

서윤은 지아 주변을 빙글빙글 돌며 환호했다.

그 눈빛에는 단순한 애정이 아니라 거의 숭배에 가까운 동경이 담겨 있었다.

반면 나는 마치 직접 장비를 챙겨 온 고용된 일꾼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혼자 SUV 뒤편의 무거운 아이스박스를 끌어내리고, 숯불 그릴 앞에 쪼그리고 앉아 숯을 정리했다. 그리고 스테이크를 썰고, 햄버거 패티를 뒤집었다.

연기가 얼굴을 향해 몰아쳐 연신 기침이 터져 나왔고, 땀과 재는 이마 위에서 뒤섞인 채 들러붙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는 등산객 몇 명이 걸음을 멈추고 우진 일행을 부러운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저 가족 좀 봐. 진짜 그림 같다.”

“아빠는 잘생겼고 엄마는 젊고 섹시한 데다가 아들 하나 딸 하나까지 있네. 완전 100점짜리 가족이야.”

그중 한 사람이 바비큐 연기 속에 서 있는 나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잠깐, 그럼 저기 그릴 앞에 있는 여자분은 누구야?”

“옷 입은 거 보니까 가정부 아니야? 부자들은 진짜 편하게 사네.”

그들의 대화는 공교롭게도 내 귀에 또렷하게 들릴 만큼 가까운 거리에서 오갔다.

집게를 쥔 내 손이 허공에서 그대로 멈췄다.

심장이 얼음물 속으로 떨어진 것처럼 차갑게 식어 내렸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이제는 상처받는 감각조차 무뎌진 지 오래였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행복해 보이는 ‘네 식구’를 바라보았다.

우진은 단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도와줄까?”

그 짧은 말 한마디조차 건네지 않았다.

오후가 되자 지아는 갑자기 전화를 받더니 달콤하면서도 다급한 목소리로 회사에 긴급한 일이 생겼다고 했다.

그리고는 우진의 오픈카를 몰고 그대로 떠나 버렸다.

그녀가 떠난 지 한 시간쯤 지났을 무렵, 이번에는 우진이 눈에 띄게 안절부절못하기 시작했다.

그는 아이폰을 움켜쥔 채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표정 또한 꽤 심각해 보였다.

“경은아, 이사회 쪽에 문제가 생겼어. 줌 회의에 들어가야 할 것 같아. 숲 안쪽으로 가서 조용한 곳을 찾아볼게. 아이들 좀 봐줘.”

나는 그가 멀어지는 모습을 바라보며 비웃음 섞인 미소를 지었다.

일요일이었다.

대체 어떤 이사회 위기가 일요일에 발생한단 말인가.

나는 음식 접시를 내려놓고 조용히 그의 뒤를 따라갔다.

커다란 참나무 뒤쪽.

우진은 내게 등을 돌린 채 서 있었다.

한 손으로 휴대전화를 들고 있는 그의 얼굴에는 너무도 다정하고 애틋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몇 년째 나를 향해서는 단 한 번도 보여 준 적 없는 표정이었다.

그는 회의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영상통화를 하고 있었다.

휴대전화 화면 속 지아는 이미 자신의 펜트하우스로 돌아가 있었고, 넓은 드레스룸에 앉아 있는 그녀는 한정판 에르메스 버킨백을 품에 안은 채 들뜬 목소리로 외쳤다.

“오빠! 최고야! 이거 정말 나 주는 거야? 나 이 색상 진짜 오래전부터 갖고 싶었단 말이야!”

그 가방은 내가 무려 3년 동안 갖고 싶다고 이야기했던 바로 그 가방이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우진은 늘 같은 말로 내 요구를 일축했다.

“돈 낭비야.”

“장 보러 다니는데 버킨백이 왜 필요해?”

결국 그는 그 가방이 돈 낭비라고 생각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내가 그 정도 돈을 들일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우진은 화면 속 여자를 바라보며 부드럽게 웃었다.

“바보 같긴. 네가 원하는 걸 내가 안 해준 적이 있었어?”

“어젯밤 힘들었잖아. 이건 사과 겸 쇼핑 치료라고 생각해.”

바로 그때였다.

딸 서윤이 수풀 사이를 헤치고 뛰어나왔다.

그녀는 우진의 휴대전화 화면을 보자마자 아버지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리고 카메라를 향해 들뜬 목소리로 외쳤다.

“고모! 고모! 새 가방 진짜 예뻐요!”

영상통화 속 지아가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서윤아, 고모랑 엄마 중에 누가 더 예뻐?”

서윤은 단 한순간도 망설이지 않았다.

아이 특유의 솔직함은 때로 잔인할 만큼 날카로웠다.

“당연히 고모가 더 예쁘죠!”

“엄마는 맨날 오래된 기름 냄새 나. 진짜 별로예요. 같이 다니기 창피할 정도라니까!”

“고모는 향수 냄새 나잖아요. 그런 가방도 고모 같은 사람이 들어야 어울려요!”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우진이 단호하게 아이를 나무랐다.

“엄마는 우리 먹이려고 정말 열심히 요리하잖아. 다음부터는 그런 식으로 엄마 얘기하지 마. 엄마가 들으면 엄청 상처받을 거야.”

참나무 뒤에 숨어 있던 나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그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상처받을 거라는 사실을.

내가 얼마나 오랫동안 외면당해 왔는지도.

그리고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나는 입술을 너무 세게 깨물어 입안 가득 쇠 맛이 번지는 것을 느꼈다.

당장 뛰어나가 그들 모두를 향해 소리치고 싶은 충동이 목 끝까지 차올랐지만, 나는 그것을 억지로 눌러 삼켰다.

그럴 필요는 없었다.

이미 모든 것은 끝나 가고 있었으니까.

남은 시간은 단 14일.

그것이면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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