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결혼 이야기를 하기 위해 부모님이 먼 길을 달려오신 날, 김주현 가족은 약속 시간에 늦었다. 세 번째 걸었던 전화마저 끊기자, 어머니가 애써 웃으며 나를 달랬다. “아마 차가 막히나 보다. 괜찮으니까 조금만 더 기다리자.” 그렇게 우리는 세 시간을 더 기다렸다. 부모님의 표정은 처음의 기대와 환희에서, 서글픔과 슬픔으로 바뀌어 갔다. 아버지는 몇 번째인지 모를 정도로 어색한 양복 자락을 매만지시다가, 결국 참지 못하고 눈시울을 붉히셨다. 그리고는 떨리는 목소리로 내게 물으셨다. “딸, 정말... 그 사람이 아니면 안 되겠니?” “너희 사이를 갈라놓으려는 게 아니야. 그저 걱정이 돼서 그래. 여기는 집에서 몇천 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이잖니.” “혹시라도 나중에 네가 마음고생을 해도, 우리가 당장 달려와 네 눈물을 닦아줄 수가 없잖아.” 손톱이 살을 파고들도록 주먹을 쥔 채, 나는 애써 웃으며 부모님을 부축해 일으켰다. “우리 집에 가요. 이 결혼, 저 안 할래요!”
View More김주현을 다시 보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더군다나 김주현이 저런 모습으로 나타날 줄은 더더욱 몰랐다.상대는 지팡이를 짚고 있었고, 트렌치코트를 걸치고 있었지만 더 이상 예전의 그 멋지고 늘씬한 풍채는 없었다.김주현은 너무 말랐다.광대뼈가 툭 튀어나와서 그 잘생겼던 얼굴을 묘하게 음침하게 만들었다.나를 발견한 김주현은 지팡이를 짚고 다급하게 두어 걸음 다가왔다.눈가에는 물기가 반짝이고 있었고, 입을 열자 목소리는 쉰 듯 갈라져 있었다.“그때 약혼식은 황소유가 손댄 거 하나도 없었어.”“장미꽃 999송이, 전부 내가 한 송이 한 송이 직접 고른 거야.”“돌린 청첩장도, 밤새워 가며 내가 한 장 한 장 직접 쓴 거였어.”“장소도 내가 여기저기 직접 알아보고 또 알아봐서 고른, 네가 제일 좋아하는 별빛 테마였어.”“난 네가 돌아올 줄 알았어.”나는 그 자리에 서서 잠시 침묵했다가 말했다.“우리 부모님이 삼천 킬로를 넘게 달려 J시까지 올라오셔서 혼담을 나누려 했을 때...”“나도 당신이 올 거라고 생각했어.”순간 김주현의 얼굴이 새하얗게 변했다.나는 고개를 돌려 김주현을 더 이상 보지 않고 앞으로 걸어갔다.“돌아가.”“북부 지방의 건조하고 추운 날씨보다 나는 이곳의 따뜻한 바람과 촉촉한 비가 더 좋아.”등 뒤에서 지팡이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김주현이 절뚝이는 다리로 애타게 나를 뒤쫓았다.“나 여기 남을게. 네가 여기가 좋다면 나도 여기서 살게.”“그러니까 나 버리지 마.”소매를 붙잡혀 뒤돌아보니 김주현의 붉게 충혈된 눈시울이 눈에 들어왔다.나는 순간 멍해졌다.옛날에도 김주현은 병상에 누워 나에게 애원했었다.“지윤아, 떠나지 마. 나 버리지 마.”나는 마음이 약해져서, 그렇게 늪에 빠져 몇 번이고 발버둥 치며 몇 번이고 스스로에게 물었다.내가 부족해서일까, 내가 너그럽지 못해서일까.하지만 김주현을 떠난 지난 일 년 동안,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나는 원래 이런 걸로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는 걸.나는 힘껏 김
한편, 이복희는 자신이 끊어 버린 휴대폰을 내려다보며 멍하니 넋을 놓고 있었다.귓가에는 황소유의 날카로운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이복희가 고개를 들어 황소유를 바라보더니, 차갑게 쏘아붙였다.“주현이가 수술 중이니까 네 그 가증스러운 연기 볼 사람 없어. 그만 연기해.”황소유의 얼굴이 굳었고, 이내 금방이라도 눈물이 떨어질 듯 이복희를 돌아보았다.“어머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저는 그냥 주현 오빠가 걱정돼서 그러는 것뿐이에요.”이복희는 황소유를 보며 차갑게 웃었다.“네 그 서툰 연기를 내가 정말 모를 줄 알았어?”“예전에는 내가 연지윤이 눈엣가시 같아서 일부러 네 편을 들어줬고, 그 애 속을 긁었지.”“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니 정말 득보다 실이 컸어.”황소유가 무슨 말을 하려는 순간, 수술실 문이 안쪽에서 열렸다.그러자 이복희는 더 이상 황소유에게 신경 쓸 겨를도 없이 의사에게 달려갔다.“의사 선생님, 우리 아들은 어떻게 됐어요?”의사가 마스크를 벗고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현재 생명 징후는 안정됐습니다. 하지만...”두 사람의 긴장 어린 시선 앞에서 의사는 무겁게 입을 열었다.“하지만 오른쪽 다리는 평생 장애가 남을 것 같습니다.”이복희는 뒤로 주저앉으며 의자에 쓰러졌다.“괜찮아, 괜찮아. 목숨만 건졌으면 됐어.”병실 안에서 김주현이 깨어나 잠시 멍한 기색을 보이다가, 황급히 주변을 두리번거렸다.“지윤아, 지윤아...”옆을 지키고 있던 황소유의 눈에 질투가 스쳤다.황소유는 여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지윤 언니는 부모님이랑 같이 내려갔어요.”“오빠가 이렇게 크게 다쳤다는 말을 들었는데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어요.”“언니 마음에는 이제 오빠가 없는 거예요. 이제 한 번쯤은 나를 봐 주면 안 돼요? 사실 나도 오빠를 좋아한 지 벌써 10년이나 됐어요.”김주현의 표정이 그대로 얼어붙었다.김주현은 고개를 돌려, 지금껏 그저 순수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동생인 줄만 알았던 이 여자애를 바라보았다.그러자 문득 예전에 연지
아득했던 과거에서 현실로 돌아오자, 휴대폰 너머로 이복희의 분노 섞인 고함은 어느새 간절한 애원으로 바뀌어 있었다.[내가 잘못했어. 전부 내 잘못이야.][약혼식 날 네가 오지 않았잖아. 그래서 반지랑 드레스까지 전부 소유에게 줬어.][주현이는 네가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고, 소유가 네 물건까지 가져간 걸 보고 화가 나서 약혼식장을 전부 때려 부쉈어.][소유는 네가 떠났다고 하니까 주현이는 믿을 수 없다며 계속 아니라고 했어.][그러더니 행사장을 뛰쳐나갔어. 너를 찾으러 가겠다고 했는데... 교통사고가 났어.][의식을 잃기 전까지도 네 이름을 불렀어.][내가 이렇게 부탁할게. 제발 주현이 한 번만 보러 와 주면 안 되겠니?][이번에는 정말 버티지 못할 수도 있어.]수화기 너머에서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고통스러운 흐느낌만 새어 나왔다.나는 휴대폰을 꼭 쥐었다.손가락 끝이 하얗게 질릴 정도로 힘을 줬다.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기 직전, 누군가 살며시 내 손을 감싸 쥐었다.고개를 돌리자 부모님의 걱정 가득한 눈빛이 보였다.어머니가 내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엄마 아빠 걱정은 하지 마. 주현이가 예전에 네 목숨을 구해 준 건 사실이잖아. 마음에 걸리면 다음 역에서 내려.”아버지도 나를 보며 말했다.“괜찮아. 사실 엄마랑 아빠도 몰래 얘기해 봤어.”“네가 정말 그 집 아들을 좋아한다면... 우리도 너 따라 이쪽으로 이사 와서 살면 되지.”“우리가 곁에 있으면, 나중에 네가 혹시라도 억울한 일을 당해도 돌아올 집 하나는 있잖아.”나는 나를 키워 준 두 사람을 바라봤다.두 사람의 등은 더 이상 꼿꼿하지 않았고, 하루가 다르게 굽어 있었다.두 사람의 눈도 더 이상 젊었을 때처럼 맑게 빛나지 않았고, 어느새 탁해져 있었다.내가 입을 열어 조용히 물었다.“그런데 아빠가 허리를 다쳐서 날씨만 조금 추워져도 아프다고 했잖아요.”“북부 지방은 겨울이 너무 추워요. 거기 가면 많이 힘들 거예요.”아버지는 손을 내저으며 대수롭지 않다
나는 상대방의 말을 끊으며 입을 열었다.“어머님, 저 이미 주현이랑 헤어졌어요.”“무슨 일 있으시면 황소유한테 연락하세요. 이제 저한테 연락하지 마세요.”“어차피 어머님은 줄곧 우리 집안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으셨잖아요.”수화기 너머에서 분노에 찬 날카로운 질책이 터져 나왔다.[지금 무슨 뜻이야?][내 아들이 너 때문에 얼마나 많은 걸 희생했는지 알아?][너랑 결혼하겠다고 고집 부리느라 집안이랑 거의 의절할 뻔했어. 그런데 지금 주현이한테 일이 생기니까 네 태도가 고작 이거야?]나는 침묵하며 김주현과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그때는 그저 집안 형편이 좀 나은 정도인 줄 알았지, 재벌가 아들인 줄은 몰랐다.연애 석 달째 되던 날, 김주현의 어머니가 나를 찾아왔다.드라마나 소설에서 흔히 나오는 것처럼 수표를 내밀지는 않았다.그저 맞은편에 앉아 나를 위아래로 천천히 훑어봤다.그리고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는 우아하게 말했다.“듣자 하니 그쪽은 지방 시골 출신이라면서?”“그럼 우리 쪽에서 결혼 얘기할 때 쓰는 표현 중에 문벌이 맞아야 한다는 말, 들어나 봤는지 모르겠네.”“네가 예쁜 건 인정해. 그러니 주현이가 집안에서 정해 준 결혼을 거절하면서까지 너를 만나겠다고 한 것도 이해는 가네.”“하지만 결혼이란 건 외모만 가지고 되는 게 아니야. 꽃병처럼 장식용에 불과한 건 세상에서 제일 쓸모없는 물건이지.”당시 나는 김주현에 대한 감정이 그리 깊지 않았고, 당연히 그런 모욕을 참을 수 없었다.이복희가 보는 앞에서 김주현에게 이별 문자를 보냈다.자리를 떠나기 전, 나는 이복희를 똑바로 바라보며 침착하게 말했다.“어머님, 저는 제 능력으로 S대 컴퓨터공학과에 입학한 사람입니다.”“아마 어머님이 말씀하신 그 꽃병과는 비교할 수 없을 거예요.”그때만 해도 나는 정말로 김주현과 헤어지려는 마음이었다.그런데 김주현이 그날 오후 집안과 완전히 등을 돌렸다.내 기숙사 앞에서 하룻밤 내내 비를 맞으며 서 있었다.김주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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