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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앞두고 나는 돌아서 버렸다

결혼을 앞두고 나는 돌아서 버렸다

By:  서늘한 바람결Completed
Language: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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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이야기를 하기 위해 부모님이 먼 길을 달려오신 날, 김주현 가족은 약속 시간에 늦었다. 세 번째 걸었던 전화마저 끊기자, 어머니가 애써 웃으며 나를 달랬다. “아마 차가 막히나 보다. 괜찮으니까 조금만 더 기다리자.” 그렇게 우리는 세 시간을 더 기다렸다. 부모님의 표정은 처음의 기대와 환희에서, 서글픔과 슬픔으로 바뀌어 갔다. 아버지는 몇 번째인지 모를 정도로 어색한 양복 자락을 매만지시다가, 결국 참지 못하고 눈시울을 붉히셨다. 그리고는 떨리는 목소리로 내게 물으셨다. “딸, 정말... 그 사람이 아니면 안 되겠니?” “너희 사이를 갈라놓으려는 게 아니야. 그저 걱정이 돼서 그래. 여기는 집에서 몇천 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이잖니.” “혹시라도 나중에 네가 마음고생을 해도, 우리가 당장 달려와 네 눈물을 닦아줄 수가 없잖아.” 손톱이 살을 파고들도록 주먹을 쥔 채, 나는 애써 웃으며 부모님을 부축해 일으켰다. “우리 집에 가요. 이 결혼, 저 안 할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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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

제1화

부모님을 집에 모셔다드리고 이것저것 정리를 마친 후에야 김주현에게서 전화가 왔다.

김주현은 입을 열자마자 따지듯 물었고, 말투가 좀 거칠었다.

[우리 식당에 도착했는데, 왜 예약한 룸에 아무도 없는 거야?]

[결혼이 얼마나 큰일인데, 네 부모님은 그렇게 중요시하지도 않아? 늦을 거면 미리 말이라도 하든가.]

나는 잠시 침묵한 뒤, 담담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우리 부모님은 세 시간이나 기다렸어. 당신들이 안 온 거야.”

“우리 부모님이 결혼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게 아니야. 당신들이 처음부터 우리 부모님을 안중에도 두지 않았던 거지.”

수화기 너머 잠깐 정적이 흐르더니, 상대방이 말투를 누그러뜨렸다.

“소유가 대학원 합격해서, 부모님이 오늘 고향에서 올라오셨어.”

“두 분 다 여기 지리를 전혀 모르시고, 학생인 소유 혼자서는 감당이 안 돼서 내가 역으로 마중 나간 거야.”

“너도 알잖아. 우리 집에서 13년 동안이나 후원해 온 아이라서 나는 이미 친동생처럼 생각해. 부모님이 오시는데 내가 모르는 척할 수가 없었어.”

김주현은 평소에는 잘 하지도 않는 설명을 늘어놓았다.

하지만 듣고 있자니 속이 더 쓰라렸다.

부모님이 어제 올라오셨을 때, 나는 회사에서 큰 회의가 잡혀 있어서 도저히 자리를 비울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김주현에게 전화해 잠시 마중을 부탁했다.

그때 김주현이 말했다.

[두 분 다 나이 많은 어른들인데, 애들도 아니고 택시 타고 오시면 되잖아. 길이라도 잃어버리겠어?]

나는 차근차근 설명했다.

“우리 부모님은 먼 길 잘 안 나가 보셨고, 앱으로 택시 부르는 것도 익숙하지 않으셔. 오는 KTX 표도 내가 사 드린 거야.”

“역이랑 우리 집도 그리 먼 거리 아니니까, 네가 차로 모시러...”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상대방이 짜증스럽게 끊었다.

[나 하루 종일 회사에서 일하느라 피곤해. 퇴근해서까지 네 심부름이나 해야 돼?]

[네 부모님은 네가 알아서 해. 난 상관 안 할 테니까.]

김주현은 그렇게 내 말을 끊고 전화를 끊어 버렸다.

결국 나는 친구에게 전화했고, 친구는 묻지도 않고 바로 차를 몰고 마중을 나갔다.

내 남편이 될 사람이, 친구만큼도 믿음직스럽지 못하다니.

생각할수록 어이가 없어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

전화기 너머에서 김주현의 목소리가 완전히 느긋해졌다.

[웃었네. 그럼 이제 화 풀린 거지?]

[다음부터는 이렇게 괜히 삐치지 마. 우리 집이 너희 집이랑 형편 차이가 큰 것도 알잖아. 우리 부모님도 원래 우리 결혼식을 썩 내켜 하지 않으셨고.]

[내가 다시 날짜 잡을 테니까 그때 너희 부모님이 우리 부모님께 정식으로 사과드리게 해. 그다음에 우리 결혼 얘기 다시 하자.]

상대방의 말투는 여전히 거만했고, 그 모든 걸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다.

나는 휴대폰을 꼭 쥐고 대답했다.

“됐어.”

“우리 부모님은 곧 고향으로 돌아가실 거야.”

김주현이 잠시 뜸을 들이더니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그래. 어차피 결혼식도 우리 부모님 뜻대로 할 거잖아. 네 부모님이 우리 결혼에 특별히 의견을 보탤 것도 없을 테고.]

그때 전화기 너머에서 익숙한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리 부모님이 음식 다 시켰어요. 오늘 정말 오빠한테 신세 많이 졌네요. 얼른 들어와서 같이 먹죠.]

그리고 이번에도 김주현은 아무 말 없이 전화를 끊었다.

거실에서는 어머니가 조심스럽게 다가와 내 손을 잡으며 말씀하셨다.

“엄마 아빠는 괜찮아. 우리 때문에 괜히 주현이한테 화내면서 그런 말 하지 마.”

“주현이만 너한테 잘하면 그만이야. 우리는 결혼식 끝나면 바로 내려갈게. 너희한테 폐 끼치고 싶지 않아.”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저릿하게 아파졌다.

나는 엄마의 팔을 끌어안으며 말했다.

“회사 본사가 우리 고향 쪽에 새 지점을 열었거든요. 나 거기로 발령 신청했어요.”

“사흘 뒤에 엄마 아빠랑 같이 내려갈 거예요.”

어머니는 내심 기쁜 듯 목소리를 높여 되물었다.

“정말이야?”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틀림없어요.”

부모님은 다시 짐을 싸기 시작하셨다.

본래 내 결혼 후에 쓰라며 싸 오셨던 물건들을, 이제 다시 고스란히 챙겨 가시는 거였다.

김주현이 집에 돌아온 건 자정이 훨씬 넘어서였다.

흐릿한 정신 속에서 누군가 뒤에서 나를 끌어안았다.

“자기야, 왜 오늘은 나 기다리지 않고 먼저 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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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부모님을 집에 모셔다드리고 이것저것 정리를 마친 후에야 김주현에게서 전화가 왔다.김주현은 입을 열자마자 따지듯 물었고, 말투가 좀 거칠었다.[우리 식당에 도착했는데, 왜 예약한 룸에 아무도 없는 거야?][결혼이 얼마나 큰일인데, 네 부모님은 그렇게 중요시하지도 않아? 늦을 거면 미리 말이라도 하든가.]나는 잠시 침묵한 뒤, 담담한 목소리로 대답했다.“우리 부모님은 세 시간이나 기다렸어. 당신들이 안 온 거야.”“우리 부모님이 결혼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게 아니야. 당신들이 처음부터 우리 부모님을 안중에도 두지 않았던 거지.”수화기 너머 잠깐 정적이 흐르더니, 상대방이 말투를 누그러뜨렸다.“소유가 대학원 합격해서, 부모님이 오늘 고향에서 올라오셨어.”“두 분 다 여기 지리를 전혀 모르시고, 학생인 소유 혼자서는 감당이 안 돼서 내가 역으로 마중 나간 거야.”“너도 알잖아. 우리 집에서 13년 동안이나 후원해 온 아이라서 나는 이미 친동생처럼 생각해. 부모님이 오시는데 내가 모르는 척할 수가 없었어.”김주현은 평소에는 잘 하지도 않는 설명을 늘어놓았다.하지만 듣고 있자니 속이 더 쓰라렸다.부모님이 어제 올라오셨을 때, 나는 회사에서 큰 회의가 잡혀 있어서 도저히 자리를 비울 수 없었다.어쩔 수 없이 김주현에게 전화해 잠시 마중을 부탁했다.그때 김주현이 말했다.[두 분 다 나이 많은 어른들인데, 애들도 아니고 택시 타고 오시면 되잖아. 길이라도 잃어버리겠어?]나는 차근차근 설명했다.“우리 부모님은 먼 길 잘 안 나가 보셨고, 앱으로 택시 부르는 것도 익숙하지 않으셔. 오는 KTX 표도 내가 사 드린 거야.”“역이랑 우리 집도 그리 먼 거리 아니니까, 네가 차로 모시러...”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상대방이 짜증스럽게 끊었다.[나 하루 종일 회사에서 일하느라 피곤해. 퇴근해서까지 네 심부름이나 해야 돼?][네 부모님은 네가 알아서 해. 난 상관 안 할 테니까.]김주현은 그렇게 내 말을 끊고 전화를 끊어 버렸다.결국 나는 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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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나는 몸을 뒤척여 김주현의 손길을 피했다.“당신 오늘 밤은 황소유랑 같이 있는 줄 알았어.”“아직 학생이라며. 당신 없으면 안 된다면서.”그 말이 떨어지자 침실 불이 켜졌다.눈이 부셔서 나는 눈을 찡그렸다.김주현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불쾌한 얼굴로 말했다.“너 꼭 그렇게 비꼬아서 말해야겠어?”“내가 몇 번이나 설명했잖아. 난 소유를 그냥 동생으로 생각해. 나랑 소유 사이에는 아무것도 없어.”나는 말 대신 휴대폰을 꺼내 김주현에게 황소유의 SNS를 보여주었다.사진 속 장소는 원래 우리가 양가 상견례를 하기로 했던 바로 그 식당이었다.그런데 그 자리에는 김주현의 부모님과 황소유의 부모님이 함께 앉아 있었다.마치 한 가족처럼 화기애애한 모습이었다.사진 속에서 김주현은 고개를 숙여 황소유에게 새우를 까주고 있었고, 황소유는 손을 내밀어 김주현의 얼굴을 쓰다듬고 있었다.두 사람의 얼굴은 금방이라도 맞닿을 것처럼 가까웠다.그리고 사진 아래에는 글이 적혀 있었다.[양가 부모님 상견례. 오랫동안 나를 후원해 준 오빠가 곧 내 남편이 된대요!]나는 휴대폰을 든 채 김주현을 똑바로 보았다.“참 잘도 갖다 썼네. 내가 일주일 내내 찾아보고 고른 식당이었는데, 순식간에 두 사람 상견례 자리가 돼버렸네.”김주현의 얼굴빛이 살짝 변하더니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나는 소유가 이런 글 올린 줄 몰랐어. 당장 전화해서 지우라고 할게.”“그리고 소유는 아마 우리가 혼처 얘기한다는 말 듣고 그냥 장난으로 올렸을 수도 있어. 그냥 호기심에 해본 소리라고.”“아직 어린애잖아. 뭘 알겠어? 그래도 네가 언니잖아. 이 정도는 그냥 넘어가 줄 수 있는데, 왜 매번 그렇게 사소한 일까지 따지고 들어?”나는 헛웃음을 지었다.“23살이 무슨 어린애야? 그럴 거면 그냥 갓난아기라고 하지 그래.”김주현은 성가신 듯 머리를 긁적였다.“우리 곧 결혼하는데, 너랑 싸우고 싶지 않아.”“나 오늘 밤 서재에서 잘게. 네가 언제쯤 정신 차리고 그만하면 그때 돌아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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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병원에 도착했을 때, 어머니는 복도에 놓인 간이침대에 엎드려 조용히 눈물을 흘리고 계셨다.나는 급히 달려갔다.그리고 아버지의 머리를 보는 순간, 숨이 턱 막혔다.머리에 크게 찢어진 상처가 나 있었다.응급처치를 받기는 했지만, 아직도 피가 흐르고 있었다.“의사 선생님은요? 의사 선생님 어디 계세요? 아직 피가 나고 있는데 왜 아무도 치료를 안 해요?”어머니는 한참 동안 머뭇거리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응급실에 의사가 한 분밖에 없대. 임시로 쓸 수 있는 병실도 하나밖에 안 남았는데... 주현이가 그 의사 선생님한테 다른 사람부터 치료해 달라고 했어.”머릿속이 멍해지며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바로 그때, 뒤쪽 병실 문이 열렸다.황소유가 눈시울을 붉힌 채 김주현을 끌어안고 나왔다.황소유는 가녀린 목소리로 말했다.“고마워요. 오빠가 언니 부모님을 두고 나를 찾아와 주지 않았으면, 나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을 거예요.”김주현은 황소유의 등을 토닥이며 조용히 위로했다.“네 부모님이 곧 내 부모님이잖아. 고마워할 필요 없어. 그만 울어. 눈 다 부었잖아.”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달려들어 온 힘을 다해 김주현의 뺨을 후려쳤다.몸은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덜덜 떨렸다.“부모님을 잘 돌보겠다며. 이게 잘 돌보는 거야?”따귀를 맞은 사람은 아무 반응도 없었는데, 오히려 황소유가 비명을 지르며 황급히 김주현의 상처를 살폈다.그러고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우리 엄마가 발목을 삐었어요. 주현 오빠는 엄마 발목에 후유증이라도 남을까 봐 걱정해서 의사 선생님한테 먼저 봐 달라고 한 거예요.”“때리려면 차라리 나를 때리세요! 주현 오빠는 탓하지 마세요.”“주현 오빠도 우리 엄마를 너무 걱정한 나머지, 차에 아저씨 옷이 끼어 있는 걸 미처 못 봤던 것뿐이에요. 그래서 아저씨가 질질 끌려가면서 다치신 거고...”김주현은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황소유를 뒤로 감싸 보호했다.그리고 차가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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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나를 발견한 김주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잠시 아무 말이 없던 김주현은 이내 입을 열었다.“소유 부모님이 당분간 우리 집에서 지내기로 했어.”“네 부모님은 곧 내려가실 거니까... 내가 사람 시켜서 미리 네 부모님 짐을 밖으로 빼 놓은 거야.”나는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비웃었다.“예전에는 몰랐는데, 당신 정말 좋은 사위네.”나는 거실에 있던 세 사람의 경계하는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혼자 침실로 돌아왔다.김주현이 따라 들어오더니, 평소처럼 나를 달래기 시작했다.“화내지 마. 내가 이미 네 부모님이 묵을 호텔도 예약해 놨어. 이따가 내가 직접 차 몰고 가서 짐도 옮겨 드릴게.”“소유네 가족은 어디까지나 손님이잖아. 우리가 체면을 잃으면 안 되지.”나는 아무 말 없이 계속 짐을 챙겼다.그러자 김주현이 내 옆으로 다가와 옷을 정리하는 것까지 도왔다.“요즘 나한테 너무 차가워진 것 같아.”“소유도 이제 대학원 합격했고, 네가 정말 그렇게 신경 쓰인다면 앞으로는 그 애랑 만나는 것도 줄일게.”김주현은 자랑이라도 하듯 서랍에서 목걸이 하나를 꺼냈다.“봐, 네가 장바구니에 오랫동안 담아 뒀던 목걸이야. 내가 샀어. 미안하다는 의미로 주는 거야.”“그리고 요 며칠 동안 약혼식 장소도 정했고, 이것저것 다 준비해 놨어. 하객들도 이미 초대했고.”“내일 너는 그냥 예쁘게 차려입고 참석만 하면 돼.”나는 멍하니 서 있다가 김주현을 돌아보며 물었다.“다 정했다고? 언제? 왜 나한테 한 마디도 상의하지 않았어?”김주현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대답했다.“네가 요즘 바쁘잖아. 그리고 여자들이 좋아하는 건 다 비슷할 거라 생각해서, 소유한테 의견을 물었어.”나는 김주현의 마지막 말을 천천히 되뇌었다.“소유한테 의견을 물어봤다고?”“그러니까 장소 알아보는 것부터 콘셉트 정하고, 답례품 고르고, 하객 초대하는 것까지... 전부 너희 둘이 한 거야?”“당신은 이게 웃기지 않아?”김주현의 얼굴에는 늘 보이던 불쾌한 기색이 스쳤지만, 이내 꾹 참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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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나는 상대방의 말을 끊으며 입을 열었다.“어머님, 저 이미 주현이랑 헤어졌어요.”“무슨 일 있으시면 황소유한테 연락하세요. 이제 저한테 연락하지 마세요.”“어차피 어머님은 줄곧 우리 집안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으셨잖아요.”수화기 너머에서 분노에 찬 날카로운 질책이 터져 나왔다.[지금 무슨 뜻이야?][내 아들이 너 때문에 얼마나 많은 걸 희생했는지 알아?][너랑 결혼하겠다고 고집 부리느라 집안이랑 거의 의절할 뻔했어. 그런데 지금 주현이한테 일이 생기니까 네 태도가 고작 이거야?]나는 침묵하며 김주현과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그때는 그저 집안 형편이 좀 나은 정도인 줄 알았지, 재벌가 아들인 줄은 몰랐다.연애 석 달째 되던 날, 김주현의 어머니가 나를 찾아왔다.드라마나 소설에서 흔히 나오는 것처럼 수표를 내밀지는 않았다.그저 맞은편에 앉아 나를 위아래로 천천히 훑어봤다.그리고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는 우아하게 말했다.“듣자 하니 그쪽은 지방 시골 출신이라면서?”“그럼 우리 쪽에서 결혼 얘기할 때 쓰는 표현 중에 문벌이 맞아야 한다는 말, 들어나 봤는지 모르겠네.”“네가 예쁜 건 인정해. 그러니 주현이가 집안에서 정해 준 결혼을 거절하면서까지 너를 만나겠다고 한 것도 이해는 가네.”“하지만 결혼이란 건 외모만 가지고 되는 게 아니야. 꽃병처럼 장식용에 불과한 건 세상에서 제일 쓸모없는 물건이지.”당시 나는 김주현에 대한 감정이 그리 깊지 않았고, 당연히 그런 모욕을 참을 수 없었다.이복희가 보는 앞에서 김주현에게 이별 문자를 보냈다.자리를 떠나기 전, 나는 이복희를 똑바로 바라보며 침착하게 말했다.“어머님, 저는 제 능력으로 S대 컴퓨터공학과에 입학한 사람입니다.”“아마 어머님이 말씀하신 그 꽃병과는 비교할 수 없을 거예요.”그때만 해도 나는 정말로 김주현과 헤어지려는 마음이었다.그런데 김주현이 그날 오후 집안과 완전히 등을 돌렸다.내 기숙사 앞에서 하룻밤 내내 비를 맞으며 서 있었다.김주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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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아득했던 과거에서 현실로 돌아오자, 휴대폰 너머로 이복희의 분노 섞인 고함은 어느새 간절한 애원으로 바뀌어 있었다.[내가 잘못했어. 전부 내 잘못이야.][약혼식 날 네가 오지 않았잖아. 그래서 반지랑 드레스까지 전부 소유에게 줬어.][주현이는 네가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고, 소유가 네 물건까지 가져간 걸 보고 화가 나서 약혼식장을 전부 때려 부쉈어.][소유는 네가 떠났다고 하니까 주현이는 믿을 수 없다며 계속 아니라고 했어.][그러더니 행사장을 뛰쳐나갔어. 너를 찾으러 가겠다고 했는데... 교통사고가 났어.][의식을 잃기 전까지도 네 이름을 불렀어.][내가 이렇게 부탁할게. 제발 주현이 한 번만 보러 와 주면 안 되겠니?][이번에는 정말 버티지 못할 수도 있어.]수화기 너머에서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고통스러운 흐느낌만 새어 나왔다.나는 휴대폰을 꼭 쥐었다.손가락 끝이 하얗게 질릴 정도로 힘을 줬다.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기 직전, 누군가 살며시 내 손을 감싸 쥐었다.고개를 돌리자 부모님의 걱정 가득한 눈빛이 보였다.어머니가 내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엄마 아빠 걱정은 하지 마. 주현이가 예전에 네 목숨을 구해 준 건 사실이잖아. 마음에 걸리면 다음 역에서 내려.”아버지도 나를 보며 말했다.“괜찮아. 사실 엄마랑 아빠도 몰래 얘기해 봤어.”“네가 정말 그 집 아들을 좋아한다면... 우리도 너 따라 이쪽으로 이사 와서 살면 되지.”“우리가 곁에 있으면, 나중에 네가 혹시라도 억울한 일을 당해도 돌아올 집 하나는 있잖아.”나는 나를 키워 준 두 사람을 바라봤다.두 사람의 등은 더 이상 꼿꼿하지 않았고, 하루가 다르게 굽어 있었다.두 사람의 눈도 더 이상 젊었을 때처럼 맑게 빛나지 않았고, 어느새 탁해져 있었다.내가 입을 열어 조용히 물었다.“그런데 아빠가 허리를 다쳐서 날씨만 조금 추워져도 아프다고 했잖아요.”“북부 지방은 겨울이 너무 추워요. 거기 가면 많이 힘들 거예요.”아버지는 손을 내저으며 대수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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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한편, 이복희는 자신이 끊어 버린 휴대폰을 내려다보며 멍하니 넋을 놓고 있었다.귓가에는 황소유의 날카로운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이복희가 고개를 들어 황소유를 바라보더니, 차갑게 쏘아붙였다.“주현이가 수술 중이니까 네 그 가증스러운 연기 볼 사람 없어. 그만 연기해.”황소유의 얼굴이 굳었고, 이내 금방이라도 눈물이 떨어질 듯 이복희를 돌아보았다.“어머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저는 그냥 주현 오빠가 걱정돼서 그러는 것뿐이에요.”이복희는 황소유를 보며 차갑게 웃었다.“네 그 서툰 연기를 내가 정말 모를 줄 알았어?”“예전에는 내가 연지윤이 눈엣가시 같아서 일부러 네 편을 들어줬고, 그 애 속을 긁었지.”“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니 정말 득보다 실이 컸어.”황소유가 무슨 말을 하려는 순간, 수술실 문이 안쪽에서 열렸다.그러자 이복희는 더 이상 황소유에게 신경 쓸 겨를도 없이 의사에게 달려갔다.“의사 선생님, 우리 아들은 어떻게 됐어요?”의사가 마스크를 벗고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현재 생명 징후는 안정됐습니다. 하지만...”두 사람의 긴장 어린 시선 앞에서 의사는 무겁게 입을 열었다.“하지만 오른쪽 다리는 평생 장애가 남을 것 같습니다.”이복희는 뒤로 주저앉으며 의자에 쓰러졌다.“괜찮아, 괜찮아. 목숨만 건졌으면 됐어.”병실 안에서 김주현이 깨어나 잠시 멍한 기색을 보이다가, 황급히 주변을 두리번거렸다.“지윤아, 지윤아...”옆을 지키고 있던 황소유의 눈에 질투가 스쳤다.황소유는 여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지윤 언니는 부모님이랑 같이 내려갔어요.”“오빠가 이렇게 크게 다쳤다는 말을 들었는데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어요.”“언니 마음에는 이제 오빠가 없는 거예요. 이제 한 번쯤은 나를 봐 주면 안 돼요? 사실 나도 오빠를 좋아한 지 벌써 10년이나 됐어요.”김주현의 표정이 그대로 얼어붙었다.김주현은 고개를 돌려, 지금껏 그저 순수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동생인 줄만 알았던 이 여자애를 바라보았다.그러자 문득 예전에 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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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김주현을 다시 보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더군다나 김주현이 저런 모습으로 나타날 줄은 더더욱 몰랐다.상대는 지팡이를 짚고 있었고, 트렌치코트를 걸치고 있었지만 더 이상 예전의 그 멋지고 늘씬한 풍채는 없었다.김주현은 너무 말랐다.광대뼈가 툭 튀어나와서 그 잘생겼던 얼굴을 묘하게 음침하게 만들었다.나를 발견한 김주현은 지팡이를 짚고 다급하게 두어 걸음 다가왔다.눈가에는 물기가 반짝이고 있었고, 입을 열자 목소리는 쉰 듯 갈라져 있었다.“그때 약혼식은 황소유가 손댄 거 하나도 없었어.”“장미꽃 999송이, 전부 내가 한 송이 한 송이 직접 고른 거야.”“돌린 청첩장도, 밤새워 가며 내가 한 장 한 장 직접 쓴 거였어.”“장소도 내가 여기저기 직접 알아보고 또 알아봐서 고른, 네가 제일 좋아하는 별빛 테마였어.”“난 네가 돌아올 줄 알았어.”나는 그 자리에 서서 잠시 침묵했다가 말했다.“우리 부모님이 삼천 킬로를 넘게 달려 J시까지 올라오셔서 혼담을 나누려 했을 때...”“나도 당신이 올 거라고 생각했어.”순간 김주현의 얼굴이 새하얗게 변했다.나는 고개를 돌려 김주현을 더 이상 보지 않고 앞으로 걸어갔다.“돌아가.”“북부 지방의 건조하고 추운 날씨보다 나는 이곳의 따뜻한 바람과 촉촉한 비가 더 좋아.”등 뒤에서 지팡이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김주현이 절뚝이는 다리로 애타게 나를 뒤쫓았다.“나 여기 남을게. 네가 여기가 좋다면 나도 여기서 살게.”“그러니까 나 버리지 마.”소매를 붙잡혀 뒤돌아보니 김주현의 붉게 충혈된 눈시울이 눈에 들어왔다.나는 순간 멍해졌다.옛날에도 김주현은 병상에 누워 나에게 애원했었다.“지윤아, 떠나지 마. 나 버리지 마.”나는 마음이 약해져서, 그렇게 늪에 빠져 몇 번이고 발버둥 치며 몇 번이고 스스로에게 물었다.내가 부족해서일까, 내가 너그럽지 못해서일까.하지만 김주현을 떠난 지난 일 년 동안,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나는 원래 이런 걸로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는 걸.나는 힘껏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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