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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Author: 밤풀잎
말은 한 마디도 나오지 않으면서 가슴은 답답했다.

곧 유하린은 분노를 가득 안은 채 밖으로 뛰쳐나갔다.

구경하러 몰려 있던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고, 그저 서택연이 경호원 몇 명을 데리고 주변을 정리하고 있었다.

진연호는 검은 벤틀리 옆에 서서 눈매를 내리깐 채 무심한 표정이었다.

유하린은 있는 힘을 다해 소리치느라 목에는 핏대마저 설 정도였다.

“진연호, 밖에서 뭐 해! 이혼하러 오기로 했잖아? 들어가!”

“유하린, 나한테 결혼해 달라고 매달린 건 너야. 기억 안 나?”

눈을 뜨는 순간 진연호의 시선이 깊고 날카로웠다.

“네가 나를 껴안고 말했지. 내가 널 사랑하지 않아도 곁에만 있을 수 있으면, 나를 보면서 평생 기다려도 기꺼이 그러겠다고.”

“이제는 상관없어!”

유하린의 가슴이 격렬하게 오르내렸고 목은 쉬어 있었다.

“전부 없던 일로 해!”

마음이 흔들리면서 둔하게 아파왔다.

가슴에 칼이 꽂히고 그 사이로 피가 멋대로 흐르는 것 같았다.

기억이 시작될 때부터 유하린은 진연호의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진연호는 유하린보다 여섯 살이 많았기에 집안 어른들은 오빠라고 부르라고 했다.

유하린은 한 번도 오빠라고 부르지 않고 늘 반말을 일삼았다.

늘 진연호라고 불렀고, 장난기가 발동하면 연호나, 연호야라고 불렀다.

진연호는 진씨 집안 후계자이기에 공부할 것이 많았다.

어린 나이에도 성숙하고 진중했으며 조숙한 천재였다.

어른들 입에 늘 오르내리는 엄친아였다.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거나 부모와 싸워도, 돈이 모자라거나 아무리 큰 사고를 쳐도 모두 진연호를 찾았다.

사춘기에 접어든 유하린은 반항심에 집안과 싸운 뒤 혼자 집을 나가서 해외로 갔다.

그때 진연호가 유하린을 찾아내서, 자극적인 것이라면 뭐든 데리고 다니며 다 놀아 주었다.

해외에서 지내던 그때, 두 사람은 자주 요트 갑판에 누워서 드넓은 하늘을 마주하고 바닷바람을 맞으며 파도 소리를 들었다.

유하린은 유치하고 이상하면서 어두운 질문을 수도 없이 던졌고, 이제는 자신도 지겨울 정도였다.

그런데 진연호는 끈기 있고 세심하게 유하린이 하고 싶은 모든 이야기를 나눴다.

낮은 목소리는 바다처럼 부드러웠고 포옹은 유하린을 감쌌다.

유하린은 진연호가 어른들 말처럼 몸도 마음도 학업에만 쏟는 모범생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 시절 진연호는 유하린과 함께 노는 데 미쳐 있었다.

요트와 레이싱, 야외 탐험, 스카이다이빙과 사격. 전부 진연호가 가르쳐 준 것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초등학교 시절에도, 그리고 사춘기 때에도 진연호는 유하린이 가장 우러러보던 사람이었다.

유하린은 남들이 못 본 진연호를 자신만 보았다고 여겼고, 서로가 서로에게 유일한 존재라고 여겼다.

그래서 평생 기다리더라도 기꺼이 그러겠다고 말한 것이다.

하지만 지금 진연호는 변했다. 이미 변한 사람과의 약속을 지켜야 할 이유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연호.”

유하린은 진지하게 그 이름을 부르고 중얼거리듯 물었다.

“어젯밤에 나 찾았어? 날 걱정했어?”

진연호는 눈을 내리깔고 유하린을 보았다. 눈빛에 사나운 기색은 전혀 없었고 오직 차갑게 가라앉은 평온뿐이었다.

“네가 송지윤을 밀어 놓고 사과 한마디 없이 도망갔고, 전화도 안 받았어. 그런데 내가 널 찾아와 주길 바라는 거야? 유하린, 넌 스물넷이야. 네 살이 아니라고.”

“내가 송지윤을 밀었다고 생각해? 내가 장애인을 밀 사람이라고? 네 마음속에서 나는 그런 사람이야?”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을 만큼 작아지면서 무력감이 온몸을 휩쓸었다.

“그럼 내가 어떻게 생각하길 바라는 거야? 송지윤처럼 자존심 센 사람이 사람 많은 곳에서 일부러 넘어진 척하면서 의족까지 떨어뜨렸다고? 그게 말이 돼?”

진연호는 최대한 화를 누르며 말했다.

“네가 일부러 민 게 아니라는 건 알아. 그냥 화가 나서 앞뒤 안 가리고 풀고 싶었던 것뿐이겠지.”

유하린은 입술을 달싹이다 숨을 내쉬었다.

이미 설명할 기운이 없었고 굳이 설명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 나 그렇게 악독하고 이기적인 사람이야. 그러니까 빨리 이혼해. 이제 얼마 안 지나서 오후 업무 시작이니까 오늘 여기서 기다릴 거야.”

“오늘 반드시 이 악독하고 이기적인 나랑 이혼하게 해 줄게!”

진연호는 유하린을 노려보았다. 극한까지 치달은 분노가 완전히 터져버렸다.

하지만 겨우 남은 이성이 지금은 입을 열면 안 된다고 말하고 있었다.

곧 진연호는 유하린의 손목을 움켜쥐고 차 안으로 끌어당겼다.

“놔!”

진연호 앞에서 유하린은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 양과도 같았다.

문이 쾅 닫히자, 유하린은 차 안에서 조용히 숙제를 하는 아이를 보았다.

그 순간 마지막 남은 이성이 완전히 무너졌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면서 두 눈이 진연호를 노려보았다.

“당신이 사람이야? 저 애를 감히 내 눈앞에 데려다 놓는다고? 내가 지금 저 애를 죽여 버릴 수도 있는데?”

아이는 어른의 분노를 알아채지 못하는 듯, 분노가 가득한 말도 이해하지 못하는 듯 조용히 숙제만 했다.

숨이 막힌 진연호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가만히 떴다.

“이혼하고 싶으면 해. 하지만 이런 꼴로는 절대 안 돼. 남들이 뭐라고 하겠어? 진씨 집안이 너를 학대했다고 하겠지?”

유하린은 고개를 떨궜다.

하늘을 찌르던 분노가 얼음물에 뒤집어쓴 것 같았고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 사람으로 변해 버린 것 같았다.

이 지경이 되어서도 진연호가 더 신경 쓰는 것은 진씨 집안의 체면이었다.

진연호가 침착하게 기사에게 출발하라고 하고, 서택연에게 가사도우미에게 전화해서 소독약과 유하린의 옷을 준비하게 하라고 지시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도우미가 머뭇거렸다.

[그런데, 집에 사모님 옷이 하나도 없어요.]

진연호의 시선이 멈칫하더니 유하린에게 떨어졌다.

“친구한테 부탁해서 내 짐 다 빼냈어.”

유하린은 기사에게 차를 세우라고 한 뒤 메마른 입술로 옅게 웃으며 진연호를 보았다.

“진씨 집안 신분에 어울리는 옷을 입고 이혼해 줄게.”

예전에는 아무리 소란을 피워도 이런 일은 없었다.

뭔가 확실하게 변하고 있는 것 같았다.

“마음대로 해.”

진연호의 말투는 담담하고 그 어떤 흔들림도 없었다.

곧 진연호의 눈에는 옅은 조소가 스쳤다.

“지금 내리면 내일 연예 뉴스 헤드라인이 뭐가 될 것 같아?”

유하린은 눈을 들어 백미러로 바짝 따라붙는 차를 보았다.

언론은 온갖 방법으로 없는 일도 만들어내서 사람을 여론의 폭풍 속으로 밀어 넣었다.

물론 진연호가 신경 쓰는 것은 진씨 집안의 체면이지 유하린이 아니었다.

30분 뒤, 유하린은 진연호를 따라 두 사람이 오래 살아온 집으로 돌아왔다.

두 사람의 신혼집은 A시 외곽 전원주택 단지에 있었다.

결혼 첫날밤만 묵었고, 이튿날 진연호는 혼자 도심 번화가의 고급 아파트로 옮겼다.

진연호와 떨어져 사는 게 싫었던 유하린은 껌딱지처럼 따라왔다.

전원주택의 고요함과 자유가 더 좋았는데도.

이곳으로 옮긴 뒤 진연호는 늘 야근으로 늦게 들어왔고, 아예 안 들어오는 날도 있었다.

그리고 잠자리조차 매번 유하린이 먼저 요청을 한 것이었다.

내성적이고 이성적인 진연호의 성격에 유하린은 이미 익숙해져 있었다.

가끔 새어 나오는 아주 작은 다정함만으로도 정신을 못 차릴 만큼 충분했다.

“옷은 이따 비서가 가져올 거야.”

진연호는 말을 마치고 서재로 들어갔다.

그 뒤로 송이안이 따라 들어갔다. 그 모습은 진짜 부자지간처럼 보였다.

두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유하린은 갑자기 눈시울이 시큰해졌다.

곧 비서가 옷을 가져왔고 곁에는 송지윤이 있었다.

이에 송지윤이 먼저 설명했다.

“이안이 데리러 왔어요.”

유하린은 옷을 받아 들고 안주인으로서 마지막 권리를 행사했다.

“낯선 여자가 들어오는 거 안 좋아해요.”

송지윤의 얼굴이 굳었지만 그것도 잠시, 곧 표정을 되찾았다.

“장 비서님, 아이 좀 데리고 나와 주세요.”

송지윤은 사진 몇 장을 건넸다.

“사진 인화했어요. 그 사람한테도 좀 전해주세요. 고마워요.”

사진을 건네받던 장석형이 그만 사진 한 뭉치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그중 몇 장이 유하린의 발치에 떨어졌다.

사진 속에는 몇 살 어린 진연호가 흰 셔츠를 입고 눈을 내리깐 채 보자기에 싸인 갓난아기를 다정하고 애틋한 눈길로 바라보고 있었다.

내성적이고 냉담하다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고, 눈동자에는 억누르지 못한 다정함이 가득했다.

냉담할 정도로 이성적인 사람이 자신과 피 한 방울 안 섞인 아이를, 단지 사랑하는 여자가 낳았다는 이유만으로 친자식처럼 여길 수 있을까?

그럴 리 없었다.

이 사진이 유하린에게 답을 주었다.

송이안은 6살이었고 유하린과 진연호가 결혼한 지는 겨우 4년이었다.

곧 날카로운 이명 소리가 들려오면서 갑자기 온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리기 시작했다.

울고 싶은데 울음은 나오지 않았고 반사적으로 헛구역질까지 치밀었다.

질식할 것 같은 느낌이 유하린을 집어삼킬 듯했다.

수많은 조각이 기억 속으로 밀려들었다.

4년 동안 진연호가 왜 그렇게 늦게 들어왔는지, 왜 늘 그렇게 바빴는지, 왜 아이를 원하지 않았는지 모든 퍼즐이 맞춰지는 것 같았다.

조금 전 거드름을 피우며 송지윤의 출입을 막은 것을 떠올렸다.

송지윤은 아마 속으로 비웃었을 것이다.

‘내가 정말 바보였네. 껍데기뿐인 결혼을 지키면서 기대까지 품었다니.’

세상에 자신보다 더 바보 같은 사람은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다행인 건 곧 해방될 것이라는 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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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가 떠난 뒤의 우리   제2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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