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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Author: 밤풀잎
재빨리 사진을 주워든 장석형은 유하린을 지나쳐서 방으로 들어가 송이안을 데리고 나왔다.

작은 흰 셔츠에 멜빵바지를 입은 송이안은 숙제 공책을 안고 있었다.

젖살이 오른 작은 얼굴은 무심했지만 차분했다.

처음 이 아이를 봤을 때 유하린은 그저 옥으로 빚은 듯 귀엽다고만 생각했다.

담담한 성격이 진연호와 많이 닮아서 저도 모르게 친근함과 애정이 더해졌다.

지금 다시 보니 마음이 싸늘해지면서 온몸에 식은땀이 흘렀다.

큰 충격에 갑자기 참을 수 없는 두통이 밀려오면서 몸이 벽장에 부딪혔다.

쾅!

쨍그랑!

요란한 소리와 함께 꽃병이 바닥으로 떨어져 산산조각 났다.

곧이어 무수한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깨지는 소리가 날카롭게 울려 퍼지면서, 마치 바늘로 온 신경을 사정없이 찌르는 것 같았다.

송이안이 갑자기 몸이 경직되더니 숙제 공책이 툭 바닥에 떨어졌다.

귀를 막고 떨던 아이의 얼굴이 붉어지면서 곧바로 호흡이 가빠지기 시작했다.

“이안아!”

송지윤이 비명을 지르며 달려가서 송이안을 끌어안았다.

“하린 씨, 아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그래요?”

“아, 악...”

송이안은 바닥에 웅크린 채 떨며 목이 터지라 울부짖었다.

“유하린, 소란도 정도껏 피워야지!”

진연호는 서둘러 이안을 안아 들었다.

그리고 목소리는 얼음으로 만든 검처럼 유하린의 가슴에 내리꽂혔다.

“이안이 유리 소리 못 견디는 거 알잖아.”

유하린은 그 자리에서 굳어졌다.

두 발은 못이 박힌 듯했고 온몸이 오싹했다.

모두 아이 주위를 맴돌다 허둥지둥 아이를 안고 병원으로 향했다.

유하린은 진연호의 다급하고 허둥대는 뒷모습을 보면서 낯설다고 느꼈다.

‘진연호에게도 다급해질 때가 있었구나.’

다만 그 이유가 유하린 때문은 아니었다.

발치의 사기 조각에는 피가 묻어 나왔고 종아리 몇 군데에도 상처가 나 있었다.

상처에서 피가 흘러나왔지만 진연호는 유하린의 상처를 보지 못했다.

예전에는 아무리 냉담해도 유하린을 보살폈고 안전을 확인했다.

한때 아버지의 외도를 목격한 유하린이 단식으로 저항했을 때, 진연호는 창문으로 몰래 방에 들어와서 밥을 가져다주었다.

“남이 잘못했는데 자기가 굶어? 바보 아니야?”

진연호가 와 준 덕분에 마음속 슬픔이 잠시 사라졌다.

그때 유하린은 무척 기뻤다.

진연호처럼 이성적인 사람이 자신을 위해 창문을 타고 몰래 밥을 가져다주다니, 정말 자신에게 잘해 준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진연호는 유하린의 상처를 보지 못했다.

그것도 그런대로 괜찮았다.

이렇게 냉담하니 이혼은 쉬울 것 같으니 말이다.

마음속 서러움과 슬픔을 잠시 눌러두고, 유하린은 텅 빈 집을 가로질러 침실로 들어갔다.

조용하고 참을성 있게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머리와 피부를 닦고는 반창고를 붙였다.

정리를 마치니 오후 2시가 가까웠다.

유하린은 택시를 타고 가정법원에 가서 진연호를 기다리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상대가 먼저 전화를 걸어왔고 유하린이 받았다.

“가는 중이야.”

[병원으로 와. 병실 호수는 문자로 보냈어.]

이때 진연호가 한마디 덧붙였다.

[네 외할머니가 병원에 계셔.]

유하린이 다급히 뭔가 더 물으려는데 전화가 끊어졌다.

병원에 도착해 온통 땀에 젖은 채 1202호 병실을 찾았다.

문 앞에 서자 안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하린이한테 전화하면 안 돼! 나는 이 나이까지 살았으니 충분해.”

박서라의 늙은 목소리는 잔뜩 갈라져 있었다.

병마에 얼마나 시달렸는지 알 수 없었다.

이에 유하린의 외할아버지인 서철호가 탄식했다.

“다른 방법이 있으면, 나라고 하린이 걔가 진씨 집안에 굽실거리며 부탁하게 하고 싶겠어?”

“그런데 지금 당신을 살릴 가능성이 가장 큰 사람은 그 오 교수뿐이야. 그 의사를 움직일 수 있는 건 진씨 집안뿐이잖아.”

“그 얘기 다시 꺼내지 마! 하린이 혼자 진씨 집안에서 얼마나 고생하는지 모르는데, 나까지 짐이 될 수는 없어!”

유하린은 손이 떨려서 차마 들어갈 수가 없었다.

주치의를 찾아 상황을 물은 뒤에야 박서라가 한 달 전 말기 폐암 진단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았다.

서철호는 두 분의 노후를 위한 집을 팔아서 한 번에 수백만 원이나 하는 표적치료제 약값을 댔지만, 막대한 치료비는 여전히 밑 빠진 독과도 같았다.

그랬기에 박서라는 집안의 자식들에게 알리지 않고 죽음을 기다릴 작정이었다.

이런 상황에 유하린은 그저 죄책감만 느꼈다.

진연호 주위만 맴도느라 가족이 중병으로 누워 있는 것도 몰랐다.

엄마가 죽은 뒤 유하린은 유씨 집안에서 천덕꾸러기가 되었다.

아들과 연을 끊는 것도 불사하고, 유하린을 집으로 데려와서 직접 돌봐 준 사람들이 바로 박서라와 서철호였다.

그 뒤로 유하린은 자신의 가족은 박서라, 서철호, 그리고 진연호뿐이라고 믿었다.

“외할머님의 병세는 매우 복잡해요. 연세도 있으셔서 일단 3개월간 순한 약물 치료를 하고, 3개월 뒤에 수술을 진행할 거예요.”

“이쪽 수술 성공률이 가장 높은 분이 오재량 교수님이세요. 제가 외할머님을 위해 오 교수님께 연락드렸는데, 이제는 수술을 안 하신다며 정중히 거절하셨어요.”

오재량은 보육원에서 자란 의학 천재로, 성격은 괴팍했지만 유일한 인연은 바로 진연호의 아버지인 진태성이었다.

당시 진연호가 유하린과 결혼하는 것을 가장 반대했던 사람이기도 했다.

결혼 후 4년 동안 유하린은 진태성을 거의 보지 못했다.

“오 교수님 쪽은 제가 알아볼게요.”

유하린은 자기 전화번호를 적었다.

“외할머니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저한테 연락해 주세요. 약값은 앞으로 약값이 줄었다고 말씀해 주시고 나머지는 제가 낼게요. 아, 제가 왔다는 건 말하지 마세요.”

유하린은 문을 밀고 나와서 북적이는 인파를 지나다가 멀리 큰 키의 실루엣을 보았다.

진연호는 차츰 진정된 송이안의 손을 잡고 엘리베이터 앞에 조용히 서 있었다.

흰 셔츠에 검은 바지, 매끈하게 뻗은 어깨선까지.

성숙한 남자 특유의 진중함과 고귀함이 배어 나왔고, 몸을 둘러싼 기운이 주변의 소음을 저절로 차단하는 것만 같았다.

진연호와 두 사람을 바라보는 눈매에서는 날카로움은 온데간데없이 온화하고 고요함만 남아 있었다.

손끝은 송이안의 손목을 가볍게 쥐고 있었는데 꽤 다정해 보였다.

그리고 송지윤은 눈가를 붉힌 채 부드럽게 아이의 땀을 닦아주고 있었다.

새까만 긴 머리를 뒤로 느슨하게 틀어 올리자, 잔머리가 뺨에 드리워져 있었고 온화함 속에 지적인 분위기가 감돌았다.

눈이 붉어졌음에도 투정을 부리는 기색은 조금도 없었고, 오히려 깨끗하고 강인해 보였다.

송지윤의 앞에 감싸인 송이안은 별 표정이 없었다.

도도한 꼬마이지만 어른 같은 모습이 유난히 귀여워 보였다.

세 사람은 그 자체로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모습이었다.

주위의 수많은 부러운 시선이 외모가 빼어나고 분위기가 화목한 세 식구를 향했다.

이때 유하린이 먼저 다가갔다.

병원 복도에는 옅은 소독약 냄새가 진동해서 숨이 막혀왔다.

가까이 가서야 진연호의 셔츠가 평소처럼 완벽하게 다려져 있지 않은 것이 보였다. 아마도 아이를 안다가 눌려서 생긴 주름인 듯했다.

진연호는 결벽증과 강박증이 있었다.

침대 위를 제외하면 유하린은 가까이 다가가기조차 어려웠고, 손을 잡는 것도 안는 것도 안 됐다.

그랬기에 유하린은 당연히 모든 것을 진연호에게 맞췄다.

하지만 지금 이런 모습을 보고 있자니 또다시 가슴 한구석이 아려왔다.

유하린은 길게 숨을 내쉬었다.

“이제 이혼할 시간 있지?”

진연호의 표정이 가라앉으면서 목소리는 담담했다.

“있어.”

차에 오를 때 그 세 식구는 함께 진연호의 차에 탔고, 유하린은 따로 택시를 잡았다.

유하린의 이런 행동을 알아차리고도 진연호는 더 이상 뭐라고 하지 않았다.

그리고 가정법원 앞에 도착하자 진연호 혼자 차에서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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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가 떠난 뒤의 우리   제3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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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가 떠난 뒤의 우리   제2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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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가 떠난 뒤의 우리   제2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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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가 떠난 뒤의 우리   제2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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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가 떠난 뒤의 우리   제26화

    그러자 김송란이 유하린을 보았다.“하린아, 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똑똑히 말해.”진연호의 시선이 유하린을 향했다. 날카로운 눈썹뼈 아래 살짝 꺼진 눈두덩이, 연못처럼 깊은 눈동자까지.그 눈빛이 무슨 뜻인지 유하린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말했다가는 박서라의 수술 일이 순탄치 않을 거라는 암묵적인 협박이었다.이에 유하린은 입꼬리를 올리고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제가 스스로 그만둔 거예요. 지금은 다른 새 무용단에 들어갔으니까 걱정 안 하셔도 돼요.”그렇게 말했음에도 김송란은 이를 악물고 송지윤을 노려보았다.“그래도 이 여자가 우리 진씨 집안이 투자한 곳에서 날뛰는 건 허락 못 해. 연호야, 지금 당장 전화해서 해고해.”송지윤이 눈시울을 붉히면서 진연호를 쳐다보자, 남자의 넓은 등이 그 앞을 막아섰다.“이 사람 일은 이미 정해졌어요. 곧 공연이고 명단도 올라갔어요. 사람을 바꿀 수 없어요.”어이가 없는 말에 유하린은 갑자기 냉소가 나왔다.그때 유하린의 명단도 올라가 있었는데, 유하린은 바꿔도 되고 송지윤은 바꾸면 안 되는 것이 참으로 우습기 짝이 없었다.하지만 이런 사소한 일은 조금도 신경 쓰이지 않았다. 또한 집안싸움도 보고 싶지 않았다.“저는 무용단에 일이 있어서 먼저 갈게요.”그러자 김송란은 미간을 찌푸리면서 걱정스럽게 유하린을 보았다.“그래, 먼저 가. 여기는 내가 처리할게.”그저 아무렇게나 댄 핑계였다. 한기준의 말대로 무용단에는 아직 아무 활동도 없었다.유하린은 곧장 연구소로 갔다.과학기술 전시회가 코앞이었다. 이번 전시회에서 출품작 투표 1위를 차지하고 싶어서 아침부터 밤까지 연구소에서 바쁘게 지냈다.원래 저녁은 에드 교수와 함께 먹으며 오후의 성과를 이야기할 생각이었다.그런데 김송란에게서 전화가 걸려와서 받았더니, 건너편에서 진연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할머니가 집에 계셔. 밥 다 됐는데 언제 와?]유하린은 잠시 멈칫하고서야 진연호의 말뜻을 알아차렸다.김송란이 리버골드에 간 것이다.순간 온몸에

  • 내가 떠난 뒤의 우리   제2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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