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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장

Autor: Lady-Noir
last update Fecha de publicación: 2026-07-05 19:28:05

카멜리아에게서 아무런 소식도 없이 두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캘빈은 여전히 집무실 의자에 앉아 불이 꺼진 휴대폰 화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부재중 전화도, 문자 메시지도 없었다. 카멜리아가 돌아올 생각이 있다는 기색은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정말로 날 떠나겠다는 건가?” 그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로널드는 캘빈의 책상 앞에 조심스러운 태도로 서 있었다. “대표님, 10분 후에 회의가 있습니다.”

“취소해.” 캘빈이 짧게 답했다.

로널드가 망설였다. “이번 회의는 투자자들과의 중요한 자리—”

“취소하라고 했잖아.” 캘빈이 말을 잘랐다. “그럴 기분 아니야.”

로널드는 고개를 끄덕이고 방을 나갔다.

캘빈은 거칠게 얼굴을 쓸어내렸다. 머릿속에서 한 구절이 끊임없이 맴돌았다. *‘그 여자는 분명 내게 매달릴 거야.’* 하지만 하루하루 날이 갈수록 그 확신은 점점 희미해져 갔다. 현관문이 열릴 때마다 그는 혹시나 하는 기대를 품고 고개를 돌렸고, 휴대폰이 진동할 때마다 심장이 헛되이 뛰었다.

“뭘 기대하는 거야?” 캘빈은 스스로를 비웃었다. “이게 네가 원하던 바잖아?”

하지만 그 분노는 결코 밖으로 표출되지 못했다. 오직 자신에 대한 짜증만이 남았을 뿐이었다. 그는 더 늦게 잠들고, 더 일찍 깨어났으며, 식사도 대충 때웠다. 사만다가 자주 찾아왔지만, 그녀의 존재는 그저 형식적인 것처럼 느껴졌다. 그녀는 굳이 묻지 않았고, 캘빈 역시 설명하려 하지 않았다.

“피곤해 보이네.” 어느 날 오후, 사만다가 말했다.

“괜찮아.” 캘빈은 그녀를 쳐다보지도 않고 대답했다.

“그렇다면 왜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보여?” 사만다가 나지막이 물었다.

캘빈은 말문이 막혔다. “아무도 안 기다려.”

사만다는 엷은 미소를 지을 뿐, 더 이상 추궁하지 않았다. 캘빈이 결국 자신의 소유가 된다는 사실이 중요했으니까.

다른 곳에서, 카멜리아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편의점을 나섰다. 방금 생수 한 병과 빵을 산 참이었다. 하지만 몇 걸음 걷지도 못해 머리가 핑 돌았다.

“왜 갑자기—” 카멜리아는 밀려오는 구역질을 참으며 입을 틀어막았다.

천천히 숨을 쉬어보려 했지만 시야가 흐려졌다. 무릎에 힘이 풀렸다. 그녀는 벽을 짚는 것을 마지막으로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저기요? 저기요, 정신 좀 차려보세요!” 누군가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카멜리아가 눈을 떴을 때, 그녀는 이미 응급실 침대에 누워 있었다. 코를 찌르는 소독약 냄새가 풍겼다. 간호사가 그녀의 혈압을 체크하고 있었고, 의사가 침대 곁에 서 있었다.

“다행히 정신이 드셨군요.” 의사가 친절하게 말했다. “잠시 기절하셨습니다.”

“머리가… 어지러워요.” 카멜리아가 힘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럴 만합니다.” 의사가 말을 이어갔다. “혈압이 많이 떨어졌어요. 그리고 한 가지 더—”

의사는 잠시 말을 멈추고 차트를 내려다보았다. “임신하셨습니다.”

카멜리아는 멍해졌다. “네?”

“임신입니다.” 의사가 차분하게 반복했다. “대략 8주 정도 되셨네요.”

그 단어는 그녀의 머리를 강하게 내리치는 것 같았다. 카멜리아는 고개를 돌려 천장을 바라보았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말도 안 돼.” 그녀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말도 안 돼요.”

“가족분들께 연락을 드릴까요?” 간호사가 물었다.

“아니요.” 카멜리아가 빠르게 대답했다. “필요 없어요.”

추가 검사를 마친 후, 카멜리아는 병실에 홀로 앉아 있었다. 검사 결과를 쥔 그녀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안 돼.” 그녀가 속삭였다. “그러고 싶지 않아.”

그녀는 눈을 감고 깊은 숨을 들이쉬었다. “그 자식의 아이를 가질 수는 없어.”

며칠 후, 카멜리아는 상담을 받기 위해 다시 병원을 찾았다. 다른 의사가 진료 결과를 진지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한 가지 알아두셔야 할 점이 있습니다.” 의사가 말했다. “자궁 상태가 그리 이상적이지 않습니다. 만약 이번 임신을 중단하신다면, 앞으로 다시는 아이를 갖지 못할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카멜리아는 오랫동안 침묵했다.

“위험 부담이 큽니다.” 의사가 이어갔다. “어떤 결정을 내리시든 저희가 막을 수는 없지만, 의무적으로 알려드려야 하는 사항입니다.”

카멜리아는 고개를 숙였다. 그녀의 기억은 10년 동안 가슴에 묻어두었던 사랑으로, 단지 무언가를 증명하고 싶었던 그날 밤으로, 그리고 떠나기로 결심했던 순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그의 첫사랑이 그의 처음을 가졌다고 유세 떨지 못하게, 그냥 한 번 만져보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그녀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내가 원한 건 이런 게 아니었어.”

“네? 뭐라고 하셨나요?” 의사가 물었다.

카멜리아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아무것도.”

그날 밤, 카멜리아는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무릎을 끌어안았다. 그녀는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스스로에게 속삭였다.

“내가 그 사람을 가질 수 없다면,” 그녀가 조용히 말했다. “적어도 그의 피는 남길 수 있겠지.”

그녀는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다. 캘빈이 와주기를 바라서가 아니라, 이 결정이 얼마나 외로운 것인지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너를 지켜낼게.” 그녀가 속삭였다. “어떻게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노력해 볼게.”

몇 주 후, 카멜리아는 임시로 일하고 있는 작은 카페의 TV 화면에서 뉴스를 보게 되었다.

[캘빈 애슈퍼드와 사만다 로즈, 곧 약혼] 두 사람의 사진이 화면에 선명하게 떠올랐다.

카멜리아는 그 화면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아.” 그녀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스스로에게 괜찮다고 다짐했음에도 불구하고, 가슴 한구석이 찌릿하게 아파왔다. 날카로운 통증은 아니었지만, 무언가가 서서히 무너져 내리는 듯한 기분이었다. 예전에 들었던 수많은 말들, 결코 자신을 향하지 않았던 약속들, 그리고 온전히 가져본 적 없던 그의 미소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이제 됐어.” 그녀가 중얼거렸다.

그날 밤, 카멜리아는 짐을 쌌다. 캐리어를 닫은 그녀는 잠시 자리에 앉아 조심스럽게 배를 어루만졌다.

“우리 떠나자.” 그녀가 나지막이 말했다. “주변에 아무도 없는 아주 먼 곳으로.”

“그리고 다신 그 사람에 대한 건 아무것도 알고 싶지 않아.” 그녀가 단호하게 말했다. “지금도, 앞으로도 영원히.”

카멜리아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한때 집이었던 그 도시는 이제 낯설게만 느껴졌다. 그녀는 한숨을 내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거야.” 그녀는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뒤돌아보지 말고. 영원히 잘 가요, 캘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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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가 떠난 후, 그의 후회가 시작됐다   241

    제241장애쉬포드 코퍼레이션 최상층 메인 회의실의 공기는 극도로 팽팽하게 죄어 있었다. 그날 아침, 칼빈은 압도적이고 위엄 넘치는 아우라를 내뿜으며 집무의자에 앉아 있었고, 그의 왼쪽에는 사이버 보안팀장과 디자인팀의 벤이 서 있었다. 그리고 테이블 저편 끝에는 초반의 당당하던 기색은 온데간데없이 점차 얼굴이 하얗게 질려가는 시스카가 서 있었다.반면 카멜리아는 칼빈의 옆자리에 차분하게 앉아, 얼굴에 당황한 기색 하나 없이 완벽하게 우아한 태도로 팔짱을 끼고 있었다."애쉬포드 대표님, 이게 다 무슨 뜻인가요?" 시스카는 초조하게 눈동자를 굴리면서도 목소리가 떨리지 않도록 애쓰며 물었다. "카멜리아 부인과의 개인적인 문제일 뿐인데, 왜 제가 이사진 회의실까지 호출되어야 하는 거죠?""개인적인 문제라니요, 시스카 씨?" 카멜리아가 극도로 차분하면서도 차가운 어조로 개입했다. 그녀는 디지털 태블릿을 테이블 중앙으로 슬며시 밀어 넣었다. "사람들 앞에서 나를 모함한 건 개인적인 문제로 볼 수 있죠. 하지만 애쉬포드 코퍼레이션의 대외비 디자인 컨셉 초안을 외부로 유출한 것도… 여전히 개인적인 문제라고 할 수 있나요?"탁.시스카의 얼굴이 순간 흙빛으로 변했다. 비밀 계정에서 송신된 암호화 이메일 내역이 떠 있는 태블릿 화면을 바라보는 그녀의 턱이 격렬하게 떨렸다."어제 오후부터 당신의 모든 디지털 활동을 추적하고 있었어, 시스카." 칼빈이 억눌렸지만 위험할 정도로 격렬한 분노를 내뿜으며 낮고 묵직한 중저음으로 말했다. "당신은 그저 내 아내의 성과를 질투한 디자이너가 아니야. 애쉬포드의 평판을 내부에서부터 무너뜨리기 위해 우리의 전 대주주이자 라이벌이 정성껏 심어둔 프락치였지.""그, 그거… 사실이 아니에요! 모함이라고요!" 시스카가 벅차오르는 패닉으로 숨을 가쁘고 가파르게 내쉬며, 갑자기 찢어지는 듯한 고성을 질렀다."이 사이버 포렌식 증거는 거짓말을 하지 않아." 칼빈이 책상 위를 손가락으로 딱딱 내리치며 단호하게 말을 잘랐다. "당신은 이번 공모전을

  • 내가 떠난 후, 그의 후회가 시작됐다   240

    제240장애쉬포드 코퍼레이션 디자인팀 복도를 떠도는 소문은 하룻밤 사이에 사라지지 않았지만, 카멜리아는 그 소문들을 완전히 차단하기로 택했다. 그녀에게 있어 몇몇 직원들의 비아냥거리는 속삭임과 의심 어린 눈초리는 지나가는 바람에 불과했으며, 스케치북 위를 움직이는 연필을 멈출 힘 따위는 없었다. 그녀의 집중력은 난이도가 훨씬 높아진 준결승전 준비에 온전히 고정되어 있었다."오늘 아침부터 다들 쳐다보는 시선이 진짜 아무렇지도 않아, 카멜리아?" 벤이 카멜리아의 책상에 팀 일일 보고서를 건네며 걱정스러운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카멜리아는 고개를 들고, 담담하고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손바닥에 남은 흑연 가루를 털어냈다. "내 미학에 아무런 도움도 안 되는 일에 왜 에너지를 낭비하겠어, 벤? 지금 중요한 건 최종 무대에서 증명하는 거지, 탕비실에서 말다툼하는 게 아니잖아."벤은 감탄이 섞인 눈빛으로 앞에 선 여인을 바라보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당신의 단호함은 정말 대단해. 하지만 솔직히 다들 아직도 의아해하고 있어… 시스카가 어떻게 그렇게 대담할 수 있는지 말이야. 겨우 선임 디자이너일 뿐인데, 이 건물 최고 높은 CEO의 아내에게 공개적으로 시비를 거는 건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잖아."카멜리아는 손가락의 움직임을 잠시 멈추고, 그 기묘함을 되새기며 갈색 눈동자를 어둡게 빛냈다. "나도 그 점을 생각해 봤어, 벤. 뒤에서 누군가가 지켜주거나 다른 목적이 있는 게 아니라면, 저렇게 대담하게 구는 건 너무 억지스러우니까.""내 말이 그 말이야." 벤이 몸을 살짝 앞으로 기울이며 진지한 속삭임으로 목소리를 낮추었다. "인사과 쪽에서 소문을 들었는데, 시스카가 이사회 개편 당시 칼빈 대표님과 대립했던 애쉬포드의 전 대주주 중 한 명과 깊은 관계가 있대. 옛 감정의 앙금을 시스카의 입을 통해 터뜨리면서 당신의 마음을 흔들어 놓으려는 것 같아."카멜리아는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메마르지만 우아한 웃음을 내뱉었다. "아, 겨우 그런 옛날 사내 정치 때문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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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39장그날 아침 애쉬포드 코퍼레이션 디자인팀의 분위기는 평소보다 훨씬 활기가 넘쳤다. 거의 모든 디자이너가 2026 국제 그랜드 디자인 공모전 공식 웹사이트가 떠 있는 메인 모니터 앞에 모여 있었다. 오늘은 예선 결과가 발표되는 날로, 전 세계에서 접수된 수천 개의 출품작 중 오직 상위 50개 디자인만이 준결승에 진출할 수 있었다."봐! 진출자 명단이 나왔어!" 선임 디자이너 한 명이 화면을 가리키며 소리쳤고, 명단이 천천히 아래로 스크롤되었다.카멜리아는 인파에서 조금 떨어진 뒤편에 서 있었는데, 손바닥이 순간 얼음처럼 차갑게 식어버렸다. 익명의 닉네임들이 화면에 한 줄 한 줄 나타날 때마다 심장이 미친 듯이 쿵쾅거렸다."역시 파리와 밀라노의 거장들이 쓸어버렸네." 다른 디자이너가 고개를 천천히 저으며 중얼거렸다. "올해 심사위원들 눈높이를 맞추기가 진짜 하늘의 별 따기였나 봐.""잠깐만, 35번 좀 봐!" 한 젊은 디자이너가 눈을 커다랗게 뜨며 비명을 질렀다. "생소한 이름이 있어… 루미나(Lumina)! 미국 뉴욕 대표래!"카멜리아는 순간 숨을 턱 멈추었다. 그녀의 갈색 눈동자가 그 글자들에 고정되었다.루미나.그건 그녀의 익명 필명이었다.벅차오르는 감정과 안도감, 그리고 거대한 기쁨이 가슴속에서 순식간에 휘몰아쳐 오르며 눈시울이 붉어졌다. 잠도 자지 않고 밤늦게까지 작업했던 그 스케치들이 마침내 세계에서 인정을 받은 것이었다."와, 루미나가 누구든 간에 진짜 대단하다." 팀장인 벤이 자랑스럽게 박수를 치며 찬사를 보냈다.하지만 그 소란스러움 속에서 사무실 한구석으로부터 비꼬는 듯한 침 뱉는 소리가 들려왔다. 팀 내에서 오랫동안 카멜리아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이었던 선임 디자이너 시스카가 팔짱을 낀 채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녀의 날카로운 시선은 여전히 제자리에 얼어붙어 있는 카멜리아를 향해 직격했다."루미나가 누구인지 궁금해할 필요도 없어." 시스카가 일부러 모든 사람의 시선을 끌기 위해 목소리를 높여 선언했다. "최근에 복직해서

  • 내가 떠난 후, 그의 후회가 시작됐다   238

    제238장갓 깎아낸 장미 꽃잎의 신선한 향기와 자스민의 달콤한 향이 중국 남부의 어느 거리 모퉁이에 위치한 작은 꽃집 안을 가득 채웠다. 자이는 카운터 뒤에 서서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백합 줄기 몇 개를 유리 화병에 세심하게 꽂아 넣고 있었다. 오후의 금빛 햇살이 창가를 통해 들어오며 그녀의 모습을 비추었다. 비록 눈동자에는 과거 풍파의 흔적이 여전히 아련히 남아 있었지만, 이전보다 훨씬 편안해진 모습이었다.딸랑.문위에 달린 종이 부드러운 소리를 내며 고객이 안으로 발을 들여놓았음을 알렸다."좋은 오후예요, 자이 씨," 따뜻한 남성의 목소리가 인사를 건븸었다.길 건너편에 위치한 현지 찻집의 주인인 한이라는 남자가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자이는 고개를 들고 꽃 가위 놓은 뒤 정중하게 화답했다."안녕하세요, 한 사장님. 뭐 도와드릴 일이라도 있으신가요? 어제 배달해 드린 찻집 카네이션에 무슨 문제라도 있었나요?""아, 아니요, 아닙니다. 어제 가져다주신 꽃들은 정말 신선하고 아름다웠어요," 한이 서둘러 답했다. 그는 민망한 듯 목덜미를 긁적였고, 숨길 수 없는 초조함이 드러났다. 그는 자이의 아름다운 얼굴을 지긋이 바라보았다."저… 사실은 찻집 일 때문에 온 게 아니에요."자이는 대화가 어디로 흘러갈지 이미 예감한 듯 입술을 살짝 말아 올려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럼 무슨 일로 오셨나요, 한 사장님?"한은 자이의 침착하면서도 거리감이 느껴지는 시선 아래에서 용기를 내며 나지막이 목을 가다듬었다."그게… 오늘 밤 강가에서 등불 축제가 열리거든요. 혹시 괜찮으시다면, 오늘 가게 문 닫고 저랑 같이 저녁 식사라도 하시겠어요?"이토록 직설적인 초대를 듣자, 백합 줄기를 잡고 있던 자이의 손가락이 아주 짧은 순간 굳어버렸다. 주나의 날카로운 턱선이 머릿속에 갑자기 스치고 지나갔고, 아무런 논리적인 이유도 없이 가슴이 다시 한번 저릿하게 아파왔다.자이는 짧게 숨을 내쉬고는 미안함이 가득하지만 단호한 눈빛으로 한을 바라보았다."초대해 주셔

  • 내가 떠난 후, 그의 후회가 시작됐다   237

    제237장벽시계 바늘이 한밤중 1시를 훌쩍 지나 있었다. 애시포드 저택의 서재 안에는 탁상등의 따스한 노란 불빛과 함께 고요함만이 감돌고 있었다. 카멜리아는 여전히 제도대 앞에 수그려 앉아 있었다. 기다란 머리카락은 연필 하나를 꽂아 엉성하게 묶어 올린 상태였다. 약간 뻣뻣해진 그녀의 손가락은 숙련되게 움직이며 트레이싱지 위에서 거침없이 선을 그려 나갔고, 화려한 이브닝드레스의 실루엣을 완성해 갔다."어깨 부분만 조금만 더…" 카멜리아는 숨을 죽인 채 종이 모서리의 터치를 다듬으며 겨우 들릴 듯 말 듯 한 소리로 중얼거렸다.노트북 옆에 켜진 디지털 참가 신청서의 참가자 신원란에는 카멜리아 애시포드나 카멜리아 콜린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지 않았다. 대신 '루미나(Lumina)'라는 낯선 가명의 필명만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녀는 정말로 이번 공모전 뒤로 자신의 신분을 완벽히 숨기고 있었다.달칵.문쩌귀가 움직이는 부드러운 소리에 카멜리아가 살짝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조용한 발걸음으로 다가오는 캘빈의 기다란 형체가 보였다. 남자는 얇은 회색 홈 티셔츠 하나만 걸친 차림이었고, 손에는 여전히 따뜻한 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도자기 머그잔을 들고 있었다."아직도 밤에 항복할 생각이 없는 건가, 응?" 캘빈이 막 잠에서 깬 사람 특유의 살짝 쉰 듯한 낮고 묵직한 중저음으로 물었다. 그는 아내의 스케치에 닿지 않도록 책상 구석 멀찍이 따뜻한 우유 머그잔을 놓아주었다.카멜리아는 뻣뻣해진 허리를 펴며 피곤함이 묻어나는 옅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천 원단 접힘 상세 표현만 조금 더 하면 돼요, 캘빈. 지금 자버리면 머릿속에 떠오른 아이디어가 내일 아침이면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고요."캘빈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카멜리아의 의자 뒤로 이동했다. 크고 따뜻한 그의 두 손이 그녀의 어깨에 자리를 잡더니 팽팽하게 굳은 목 근육을 천천히, 부드럽게 마사지하기 시작했다."아… 정말 시원해요," 카멜리아는 남편의 세심한 마사지를 즐기며 천천히 두 눈을 감고 한숨을

  • 내가 떠난 후, 그의 후회가 시작됐다   236

    제236장애시포드 코퍼레이션 디자인팀의 작업대 위에는 커다란 디자인 도면들이 펼쳐져 있었다. 카멜리아는 오랫동안 그리워했던 종이, 연필, 그리고 블랙커피의 익숙한 향기를 깊게 들이마셨다. 방 한구석에 위치한 디지털 게시판의 전자 전단이 밝게 반짝이며 커다란 헤드라인을 띄우고 있었다: '2026 국제 그랜드 디자인 공모전'."이 공모전…" 카멜리아가 중얼거렸고, 그녀의 개성 있는 눈동자가 순식간에 야망으로 반짝였다."참가 신청에 관심 있어, 카멜리아?" 마침 지나가다가 그녀의 책상 옆에 멈춰 선 디자인팀장이 물었다.카멜리아가 고개를 들자 입술에 단호한 미소가 맺혔다. "네, 벤. 올해 제 디자인 콘셉트 중 하나를 출품해보고 싶어요."그날 오후 늦게, 같은 건물 최상층에 위치한 캘빈의 개인 집무실 안 공기가 갑자기 살짝 팽팽해졌다. 캘빈은 고급 만년필을 대리석 책상 위에 살며시 내려놓으며, 자신 앞에 당당히 서 있는 아내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그의 미간이 불만의 기색으로 찌푸려졌다."왜 필명을 써야 한다는 거야, 카멜리아?" 캘빈이 불쾌함을 담은 낮은 중저음으로 물었다. "그 공모전에 참가하고 싶다면 내가 주최 측에 직접 연락할 수 있어. 애시포드 코퍼레이션이 그 대회 가장 큰 스폰서 중 하나야. 아무런 번거로움 없이 곧바로 본선에 올라갈 수 있다고.""바로 그래서 당신이 관여하는 걸 금지하는 거예요, 캘빈!" 카멜리아가 단단한 눈빛으로 한 걸음 다가서며 즉시 받아쳤다. "내 자신의 능력을 시험해보고 싶어서 이 공모전에 참가하는 거라고요. 당신 인맥이나 애시포드라는 이름, 돈을 써서 날 합격시키는 짓은 절대로 금지예요!"캘빈은 고급스러운 의자에서 일어나 카멜리아에게 다가가며 그녀의 어깨에 보호하듯 손을 얹었다. "난 그저 당신을 오냐오냐해주고 싶을 뿐이야, 여보. 타인에게 인정받겠다고 며칠 밤을 지새우며 이렇게 피곤해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아.""이건 단순한 인정을 넘어서는 문제예요, 캘빈. 디자이너로서 내 자존심이 걸린 일이라고요." 카멜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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