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다음 날.
오전 10시 35분.
나는 평소보다 훨씬 늦게 잠에서 깼다.
"으... 머리가 왜 이렇게 아프지?"
잠에서 깬 나는 천천히 일어나 물을 마시기 위해 냉장고를 열었다.
"...! 아, 소연이!"
냉장고를 열자, 갑자기 떠오른 기억에 나는 황급히 냉장고를 닫고, 침대 위에 놓여 있던 핸드폰을 들었다.
"제발... 모든 게 꿈이었길..."
나는 핸드폰 잠금 화면을 풀자마자 카톡에 들어갔다.
'소연이에게 연락이 와 있을까...?'
하지만 내 간절함이 무색하게, 카톡에는 어제 읽지 못한 생일 축하 메시지와 광고만 있었고, 소연이와의 채팅방은 한참을 내려야 겨우 보였다.
"..."
나는 순간 온몸이 굳었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어제의 모든 일들을 부정했다.
"아니야... 소연이가 아직 안 일어났나?"
하지만 현실을 끝까지 부정하던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소연이의 프로필에는 나와의 흔적이 전부 사라져 있었다.
"아니야... 아니잖아... 이거 꿈이지?"
지이잉. 지이잉.
그 순간, 여사친 임지윤에게 전화가 왔다.
"연우, 나 3천 원만 빌려줘."
"지윤아..."
"응?"
"혹시 너도 소연이 프로필에 아무것도 없어...?"
"김소연? 원래 아무것도 없었을걸...? 아닌가?"
지윤이와의 대화 도중, 나는 어제 소연이에게 걸었던 전화들과 소연이가 보낸 문자가 떠올랐다.
"나 확인할 게 있어서 끊을게. 미안해."
"잠깐, 3천..."
뚝.
곧바로 어제의 통화 기록을 확인했고, 더 이상 어제의 일을 외면할 수 없었다.
"그럼 문자는..."
나는 겁이 났다. 내가 기억하는 모든 게 현실일까 봐 문자를 들어가기 주저했다.
"못 보겠어..."
결국 끝까지 문자를 보지 못했다.
다시 보면 내가 기억하는 모든 게 현실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으니까...
지이잉. 지이잉. 지이잉.
그때 걸려온 건 지효의 전화였고, 나는 잠시 전화 받는 것을 망설였지만, 물어볼 것이 많았기에 결국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어제 잘 들어갔냐?"
'어제... 그렇구나... 다 진짜였어...'
지효의 첫마디에 묻고 싶었던 말은 전부 꺼낼 수 없게 되었고, 어떤 말도,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야! 듣고 있냐?"
"..."
"우리 집에 와. 니 뭐 두고 감."
"12시까지 와라. 안 오면 이거 버림."
"...?"
뚝.
지효는 자기 할 말만 하고 바로 끊었다.
'뭘 두고 왔지...?'
핸드폰을 보니 시간은 11시였고, 나는 생각을 정리할 틈도 없이 서둘러 나갈 준비를 했다.
씻고 옷을 갈아입으니, 어느덧 시간은 12시가 거의 다 되어 갔다.
"하... 택시 타야겠네..."
서둘러 택시를 불렀고, 신발을 신고 집을 나서니 택시가 집 앞에 도착해 있었다.
"안녕하세요, 기사님."
택시는 내가 미리 설정해 놓은 목적지로 학교를 가로질러 갔고, 나는 밖을 보며 소연이와의 추억을 떠올렸다.
'저 건물 학식... 소연이가 많이 좋아했는데...'
'저기서 소연이 사진 찍어 줬었는데...'
끊임없이 떠오르는 추억에 나는 눈을 감았지만, 머릿속에는 여전히 소연이와의 추억이 그려졌다.
5분... 10분...
그렇게 시간이 흘러, 택시는 지효의 아파트 앞에 도착했다.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시간은 12시가 넘어 있었고,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8층으로 올라갔다.
8층에 도착해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고, 지효의 집 문 앞으로 가 보니 밖에서 들릴 정도로 안이 소란스러웠다.
"뭐야...? 누가 있나?"
띵동.
지효가 문을 열어 주었고, 안에는 내 중·고등학교 때 친구 두 명이 와 있었다.
"???"
"야, 늦었으니까 니가 저거 옮겨라."
"연우 하이."
"연우 오랜만."
나와 같은 대학의 경영학부에 재학 중인 정시영, 공시생 김윤석 이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집 내부는 어제 내가 본 모습과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박스에 그대로 있던 이삿짐들은 대부분 정리되어 빈 박스만 남아 있었고, 쌓여 있던 설거지도 전부 사라졌다.
"야, 니가 저 상자 좀 방에 옮겨 줘."
"뭔데?"
"내 옷. 존X 무거워."
지효는 큰 박스를 가리켰고, 나는 상황 파악할 틈도 없이 지효에게 등 떠밀려 박스를 옮기러 갔다.
'옷인데 뭐가 무겁다고...'
"...!!!"
"ㅋㅋ. 무겁지?"
나는 박스를 힘겹게 들고 방으로 옮겼다.
"끝! 이제 나와."
"야, 내 물건은?"
"일단 나와."
나는 거실로 나갔고, 거실 소파에는 친구들이 앉아 있었다.
"너희는 왜 온 거야?"
"아마 너랑 같은 방식으로...?"
"설마..."
내가 설마 하는 마음으로 지효를 쳐다봤고, 지효는 그런 나를 보며 웃었다.
"ㅋㅋㅋㅋ."
"야, 니..."
"야, 니가 혼자 청승 떨고 있을까 봐 불렀지."
"하..."
나는 한숨을 쉬었지만, 내심 지효에게 감사했다. 지효가 아니었으면 집에서 소연이 생각만 했을 게 뻔했으니까.
"너도 앉아. 야, 짜장면 시킨다?"
"구라로 우리 불러서 일 시켜 놓고 고작 짜장면?"
"양심 터졌네."
지효의 말에 친구들은 불만을 표출했다.
"탕수육 추가."
"탕수육 가지고?"
"칠리새우 추가."
"콜."
친구들의 불만은 칠리새우에 졌고, 나는 그 모습에 웃음이 터졌다.
"야, 연우야."
"응?"
"너 헤어졌다며."
앉아있던 시영의 말에 나는 잠시 침묵했고, 그 모습에 아차 싶었는지 나를 위로했다.
"야, 괜찮아. 세상의 반이 여자야."
"근데 닌 왜 여친이 없냐?"
"닌 있냐?"
"난 있는데?"
"개부럽네, 진짜..."
친구들은 서로 티키타카하며 재밌게 대화했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고, 지효는 그런 나를 보고 뭔가 생각났는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야, 이 X끼 어제 신발장에서..."
"야...! 배달 언제 온대?"
나는 지효의 말을 끊었고, 화제를 돌리기 위해 윤석이의 연애 얘기를 꺼냈다.
"윤석아, 여자친구랑 며칠이야?"
"이제 100일 거의 다 됐어."
"100일..."
나는 이 얘기를 꺼내면 안 됐다.
'100일'이라는 말에 내 머릿속에는 소연이와의 100일 때 추억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아니, 이 얘기뿐만이 아니었다.
어떤 얘기를 들어도 그 안에 담긴 단어 하나하나가 소연이와의 추억으로 이어졌다.
대화 주제는 여러 번 바뀌었고, 친구들은 각자 많은 얘기를 했지만, 나는 단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띵동.
"배달 왔나 보네."
시간이 흘러 배달이 도착했고, 나와 친구들은 문 앞에 놓인 음식을 가져와 먹기 좋게 세팅했다.
"잘 먹을게."
"정당한 보상이지, 이건."
"..."
나는 아무 말도 없이 짜장면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입가에 짜장면을 묻히며 먹던 소연이, 그걸 닦아주던 나.
내 머릿속은 고장이라도 난 듯, 떠올리지 않으려 해도 자꾸만 소연이의 모습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그때였다.
퍽.
"...아!"
내 모습을 보다못한 지효가 내 뒤통수를 세게 쳤다.
"청승 그만 떨고 처먹어."
"...잘 먹을게."
우리는 짜장면을 먹으며 서로 약속이라도 한 듯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모든 음식을 다 비웠다.
"아, 배불러."
"칠리새우 진짜... 개맛있네."
"이 집 맛있는데? 어디냐?"
"연우는 맛이 없었나 봄."
"응...? 아니야. 진짜 맛있었는데."
우리는 쓰레기를 치우고 바닥을 닦는 등 뒷정리를 했고, 뒷정리가 끝나자 지효는 방에서 플X를 가져와 TV에 연결했다.
"와, 이거 최신형 아님?"
"이게 공시생?"
친구들은 플X를 보며 많이 좋아했지만, 나는 좋아할 수 없었다. 소연이와의 온갖 추억들이 계속 떠올랐으니까.
나는 친구들에게 자꾸만 떠오르는 추억 탓에 어두워지는 내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괜히 신경 쓰이게 하고 싶지도 않았다.
"나 먼저 갈게."
"아, 정연우 분위기 깨네."
"이걸 안 한다고?"
"야, 어디 가?"
"나 집에 부모님 오신대서..."
"아, 인정."
내 말에 시영이와 윤석이는 큰 의심 없이 알겠다고 했지만, 지효는 아무 말 없이 나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진짜야."
"누가 뭐래?"
"니가 그런 눈으로 쳐다보니까."
"뭐래. 또 택시 불러줘?"
"아니, 어제 택시비나 줘."
"잘 가."
"..."
나는 친구들과 인사한 후 집을 나갔다.
"집 가긴 싫은데..."
미안함에 지효의 집을 나오긴 했지만, 그렇다고 내 자취방에 가기는 싫었다.
나는 엘리베이터에서 한참을 고민했다.
'공원...?'
문득 어제 소연이와 마지막에 갔던 공원이 떠올랐고, 나는 목적지를 그 공원으로 설정해 택시를 불렀다.
5분 뒤, 택시가 도착했고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눈을 감은 채 목적지까지 이동했다.
"손님, 도착했어요."
"아, 네.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택시에서 내려 공원 안으로 들어갔고, 소연이와 앉았던 벤치를 찾아갔다.
"기억엔 이쯤이었던 것 같은데..."
"아, 찾았다!"
벤치에 앉아 주변을 둘러보니, 소연이가 나를 떠나간 그 길이 보였다.
"...다 현실이네."
나는 그 길을 바라보며 소연이의 마지막 말을 떠올렸다.
'너한테 정말 실망했어...'
이 말을 떠올림과 동시에 내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나는 혹시 사람들이 볼까 봐 고개를 푹 숙였다.
그리고 손에 쥐고 있던 핸드폰을 켜 소연이가 보낸 문자를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소연이가 보낸 문자를 다시 하나씩 천천히 읽었고, 다 읽을 즈음에는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을 만큼 흐르고 있었다.
"내가 대체 무슨 짓을..."
지금의 내 옆에는 이 상황을 탓할 사람도, 나를 위로해 줄 사람도 없었다.
오직 나 혼자 견뎌 내야만 했다.
나는 입술을 꽉 깨물며 정말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눈물을 흘렸다.
핸드폰이 내 손에서 떨어진 것도 모른 채...
그렇게 한참 지나서야 정신을 붙들고 공원 화장실로 가 눈물을 닦았다.
"하..."
나는 세수를 한 후 휴지로 얼굴을 닦았고, 화장실을 나와서야 핸드폰이 없어진 것을 알아차렸다.
"벤치에 두고 왔나...?"
나는 다시 돌아가 벤치 위를 확인했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떨어졌나 싶어 벤치 아래를 살피던 그때, 한 여자가 뒤에서 말을 걸었다.
"저기... 이 핸드폰 주인 맞죠?"
그 말에 나는 뒤를 돌아, 그 여자가 들고 있던 내 핸드폰을 봤다.
"네, 맞아요... 감사합니다."
여자는 핸드폰을 나에게 건넸고, 나는 운 것이 들킬까 봐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 감사 인사를 한 후 자리를 벗어났다.
나는 공원 밖으로 나가 택시를 타고 내 자취방으로 향했다.
자취방에 도착해 안에 들어가 곧바로 침대에 누웠다.
미칠 것 같았다. 가만히 있어도 계속 떠오르는 소연이의 마지막 말과 문자 내용에, 내가 했던 의심을 끊임없이 후회하고 나 자신을 원망했다.
'소연이는 나를 위해 많은 걸 해줬는데...'
'나는 고작 그런 걸로 의심하고 몰아붙였다니...'
'나에게 실망하는 건 당연한 거겠지...'
나는 소연이와의 추억을 회상하고, 그날 일을 되새기며 나 자신을 원망할 뿐이었다. 찾아갈 용기도, 다시 연락할 용기도 낼 수 없었다.
나는 그날 이후로 방학 동안 친구들과의 연락, 만남을 피했다.
지효의 전화.
"야, 밥 먹자."
"미안... 오늘 본가에 가야 해."
시영, 윤석, 지윤, 그 외 다른 친구들의 연락은 읽지 않는 등 스스로를 외부와 단절시켰다.
그렇게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 시간을 흘려보내는 날이 반복됐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9월 2일, 개강 날이 다가왔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화 기대해주세요.
내 이름은 한세연.XX대학교 경영학부 1학년이다. 어린 시절 어떤 사건 이후, 내 삶에 누군가 들어올 자리는 없었다. 먼저 다가서지도, 곁을 주지도 않은 채 그렇게 혼자가 익숙해졌다. 단, 그 애를 만나기 전까진... 시작은 1학기가 끝난 여름방학, 7월 15일이었다. 오전 10시 30분. 띠리링. 띠리링. 나는 미리 맞춰 둔 알람 소리에 뒤척이며 눈을 떴다. '아... 더 잘까?' 더 자고 싶은 마음에 살짝 눈을 감았지만, 바로 정신을 차리고 침대에서 일어나 이불을 정리했다. '밥 먹고 학교 도서관이나 가야겠다.' 하지만 부모님과 떨어져 혼자 살다 보니 집에 먹을 거라곤 시리얼뿐이었다. "...이거라도 먹자." 간단히 시리얼로 끼니를 때우고 나갈 준비를 한 후 집을 나서자, 시간은 어느덧 오후 1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게다가 눈앞에서 버스까지 놓치는 바람에 결국 택시를 타고 학교로 향했다. 택시에서 내리고 곧바로 도서관 안에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방학인데 사람이 많네." 나는 자리에 앉아 챙겨 온 전공 책과 텀블러를 꺼냈고, 물을 뜨기 위해 화장실 앞 정수기로 향했다. 정수기에서 물을 뜨려던 그때. 퍽! "아!" 화장실에서 나오던 어떤 여자와 어깨를 부딪쳤다. "아이씨... 뭐야?" 그 여자는 부딪힌 어깨를 잡으며 나를 노려봤다. "사과 안 해요?""그쪽이 와서 부딪힌 거잖아요.""제 잘못이다, 이거예요?""가만히 있는데 부딪혀 놓고, 그럼 이게 제 잘못이에요?" 여자는 점점 언성을 높이기 시작했다. "참나, 나오는 길 막고 있던 게 누군데?""공간이 이렇게 넓은데요?""그러니까 그쪽이 비켰어야죠.""그쪽이 앞을 보고 나왔어야죠." 여자는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다. "진짜 말 안 통하네.""그건 제가 할 말인데요." 그 여자의 억지에 점점 지쳐 갈 때쯤, 소리를 들은 사람들이 하나둘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쟤 심리 김소연 아니야?""제일 예쁘다던 걔? 와...""옆에도 완전 예쁜
"아... 죄송해요. 놀라게 하려던 건 아니었는데."한세연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무덤덤한 표정으로 말했다."아니에요. 뭐 드실래요?""세연님 드시고 싶은 걸로 먹어요.""그럼 파스타 드실래요?""네? 아, 좋아요!"한세연과 파스타. 뭔가 의외의 조합이었지만, 그래서 그녀가 조금 편해지는 느낌이 들었다."빨리 가죠."나는 한세연과 함께 파스타집에 도착했고, 안으로 들어가니 거의 모든 테이블에 연인 분위기의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나와 한세연은 직원의 안내를 받아 빈자리에 앉았다."뭐 드실래요?""저는..."그때, 어디선가 내 얘기를 하는 소리가 들렸다."쟤 정연우 아니야?""정연우가 누군데?""그 게시판에...""진짜?"주변 테이블에서 내 얘기가 들리자 내 표정은 점점 굳어갔고, 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나를 어떻게 알지...?''혹시 게시판 글 때문인가?''어떡하지? 한세연에게 피해가 되지 않을까?'"연우님?"한세연이 나를 톡톡 치며 불렀고, 덕분에 많은 생각 속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죄송해요.""뭐가요? 뭐 드실래요?"주변 사람들의 말이 들리지 않았는지 한세연은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덤덤했다."저는 빠네로 할게요. 세연님은요?""저는 투움바로..."한세연이 주문을 하려던 순간, 주변에서 다시 내 얘기가 들렸다."...가지고 놀았다던데.""근데 같이 온 여자는 누구지? 엄청 예쁘다.""둘이 사귀나?""???"나는 많이 당황했지만, 다행히 아까와 비슷한 크기의 말소리였고 한세연은 못 들었을 거란 생각에 안심했다."저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한세연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핸드폰도 두고 황급히 화장실로 갔고, 스치듯 본 그녀의 얼굴은 조금 붉어진 듯 보였다."뭐지...? 더운가?"한세연이 화장실을 간 사이에도 사람들의 수군거림은 나에게 계속 들려왔다."저 여자도 당하는 거 아니야?""설마? 똑같은 사람끼리 만났겠지."나는 억울하고 화가 났지만 애써 무시하며 아
민재의 말에 당황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그러던 중, 소정이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혹시 소연이랑 사겼어?""어...? 그걸 어떻게 알았어?"내 답에 소정이는 다시 침묵했고, 민재가 한숨을 쉬며 핸드폰을 나에게 건넸다."이거 봐.""뭔데 이게..."민재가 건넨 핸드폰 화면에는 학교 게시판에 익명으로 올라온 글이 있었다."...?"글에는 나와 소연이의 얘기가 담겨 있었고, 글을 읽을수록 내 표정은 점점 어두워졌다.글의 내용은 모두 나를 안 좋게 말하고 있었지만, 그중에서 세 문장 정도가 나에겐 가장 충격적이었다."소연이와 사귀는 3년 동안 온갖 가스라이팅을 하며 가지고 놀았다.""잠깐 다른 남자와 대화하는 것뿐인데, 혼자 의심하며 상처 줬다.""이별을 통보받은 뒤에도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계속해서 괴롭혔다."이 문장을 보고 화도 나고 억울했지만, 제일 먼저 생각나는 건 소연이에 대한 걱정이었다."... 소연이는 괜찮대?""지금 걔 걱정할 때냐?"내 말에 민재는 어이없다는 듯 웃었고, 소정이는 무언가 안심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이거 다 사실 아니지?""나도 잘 모르겠어...""응...?"내 답에 소정이는 당황했지만, 나는 섣불리 말할 수 없었다.소연이를 의심하고 상처 줬다는 말은 도저히 부정할 수가 없었고, 진실과 거짓이 섞여 있는 탓에 머릿속이 혼란스러웠기 때문이다."나도 지금 너무 혼란스러워서...""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줄 수 있어?""..."소정이의 물음에 나는 잠시 고민했다.'말하면 소연이가 또 상처받지 않을까?'나는 결국 소연이와의 일을 말해주지 못했고, 소정이는 이런 내가 답답했는지 한숨을 내쉬었다."아!"그때, 민재가 무언가 떠오른 듯 놀라며 말했다."둘이 사귄 거 아무도 모르는 거 아니야?""그럴 거야. 나 때문에 다 비밀로 했었으니까..."민재는 확신에 찬 듯 큰 소리로 말했다."그럼 김소연이네!""뭐가?""게시
내 말에 주변은 순식간에 조용해졌고, 소연이를 비롯한 모든 사람의 시선이 나에게 향했다. "소연아, 나...""야!!!" 내가 말을 하려던 순간, 소연이의 옆에 앉아 있던 과 동기 조예빈이 크게 소리치며 내 말을 끊었다. 소연이는 자리에서 조용히 일어나 말했다. "따라와." 나는 술기운 탓에 휘청거리는 몸과 정신을 겨우 붙들고 소연이의 뒤를 따라나섰고, 사람들은 그런 우리를 보며 수군거렸다. "뭐야, 쟤는?""소연이랑 무슨 사이야?""설마 쟤랑...?""..." 사람들의 수군거림을 뒤로하고 서둘러 소연이를 따라서 가게 밖으로 나가 아무도 없는 골목으로 들어갔다. "소연아...""미쳤어?""...?" 처음이었다. 소연이에게 그런 말을 듣는 것은. "사람들 다 있는데 뭐 하자는 거야?""그냥... 네가 다른 남자들이랑 있는 게 싫었어.""네가 뭔데?""어...?" 그때, 근처에서 누군가의 발소리가 들렸고, 소연이는 잠시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말했다. "여태 아무 연락 없어 놓고 이제 와서?""아니, 그건...""웃긴다. 네가 나한테 무슨 짓을 했는데." 나는 심호흡을 했고, 그날 일에 대한 사과와 그동안 소연이를 보면 하고 싶었던 말을 하려 했다. "미안해, 그날은...""소연아!" 그때, 누군가 골목 끝에서 애타게 소연이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됐어. 더 이상 안 이랬으면 좋겠어.""잠깐..." 소연이는 잡을 틈도 없이 목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달려갔고, 이번에도 허무하게 놓치기 싫었던 나는 서둘러 소연이의 뒤를 따라갔다. 소연이가 멈춰서자 그 앞에는 과 동기인 조예빈이 있었다. "소연아, 왜 그래?" 조예빈의 말에 소연이의 뒷모습을 보니 희미하게 얼굴에 눈물이 흐르는 것이 보였고, 그 모습에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야, 너 뭔데 소연이한테 그래?""...""괜찮아... 예빈아, 가자..." 나는 소연이가 했던 모진 말들은 다 잊은 채 눈물이 흐르던 모습만을 떠올렸고, 떠나가는 소연이
개강총회 1부는 학생회장, 교수님, 각 동아리 회장의 인사말로 시작되었다. 그 후 스크린을 내려 2학기 행사 일정과 사업 안내, 기타 공지를 공유한 뒤 질의응답으로 1부를 마무리했다"다들 수고 많으셨습니다.""2부 참여자분들은 화면에 보이는 조 편성에 따라 모여 2부 장소로 가주시길 바랍니다." 조원은 각 5명이었고, 나는 혹시 소연이와 같은 조일까 하는 기대감으로 화면을 봤지만, 내 이름 주변에는 모르는 이름들뿐이었다. "하... 다 누구지?" 그때, 어떤 남자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혹시 4조 맞으세요?" 나와 같은 조 사람이었다. "네... 맞아요.""오! 저도 4조예요. 1학년 김민재예요.""저는 1학년 정연우예요.""말 편하게 해도 될까요?""네, 괜찮아요." 민재는 굉장히 외향적인 성격인 것 같았다. "다른 조원들 찾아볼까?""그래." 나는 민재를 따라 같은 조원을 찾아다녔다. "어디 계시지...?" 조원을 찾기 위해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중, 소연이와 눈이 마주쳤다. "...!" 나는 놀라서 황급히 시선을 돌렸지만, 소연이는 아무렇지 않은 듯 사람들과 웃고 있었다. "...못 본 건가?" "연우!" 민재가 내 이름을 부르며 다가왔다. "찾았어. 같이 가자." 나는 민재의 뒤를 따라 조원들과 합류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1학년 김민재이고, 여기는 같은 1학년 정연우예요.""안녕하세요...""저는 1학년 서수빈이에요.""저는 1학년 이소정이에요." 각자 소개를 마치고 대강의실 밖으로 나갔고, 밖에 있는 학생회 선배의 안내에 따라 2부 장소로 향했다. 가는 내내 민재는 나를 포함한 조원들에게 끊임없이 말을 걸었고, 슬슬 지쳐 갈 때쯤 2부 장소인 삼겹살집에 도착했다. "다들 안으로 들어가서 편한 자리에 앉아주세요." 안으로 들어가니 앞서 온 조들이 각 테이블에 앉아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조원들의 뒤를 따라가던 중, 테이블에 앉아 있는 소연이의 모습이 보였다. '어? 소연이.' 나는
간단한 소개를 마친 뒤, 나는 한세연의 핸드폰에 내 번호를 입력했다. "번호 맞는지 한번 전화해볼게요.""네." 지이잉. 내 주머니에서 진동이 울렸고, 핸드폰을 꺼내 걸려온 전화를 확인했다. "맞네요. 끊을게요." 전화가 끊어지자 핸드폰 화면에는 배경화면으로 설정한 소연이의 사진이 떠 있었다. 한세연은 그 사진을 보곤 아주 잠깐, 미묘하게 미간을 좁혔다. "...?" 하지만 이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태연하게 말했다. "공지 올라오면 연락드릴게요.""네? 아, 네." 한세연은 그 말을 끝으로 먼저 강의실을 나갔고, 나는 그녀의 번호를 저장한 뒤 강의실을 나갔다. "3시도 안 됐네." 6시에 시작하는 개강총회까지 시간이 많이 남아있었다. 잠시 그 자리에 멈춰 서서 뭘 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소연이에게 할 말을 정리하기 위해 학교 운동장으로 향했다. "날씨 좋네..." 나는 운동장 중앙의 잔디 위에 앉아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좋은 날씨와 달리, 하늘에는 소연이가 내 손을 뿌리친 그 장면이 그려졌다. '... 내가 다시 다가갈 자격이 있을까?' 나는 고개를 숙인 채 한참 동안 잔디만 만지작거렸다. "정연우!""임지윤...?" 멀리서 지윤이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고, 고개를 들어보니 운동장 끝에서 지윤이가 다가오고 있었다. "... 또 너야?""또라니... 그나저나 2시에 수업 있다며?""첫날이라 일찍 끝났지.""벌써?! 왜 나만 풀강이지...?""너라서?" 우리는 장난 섞인 대화를 몇 마디 주고받았고, 분위기가 편해지자 지윤이는 내 눈치를 보며 소연이와 헤어진 이유를 물었다. "왜 헤어진 거야?""이..." 지윤이의 물음에 소연이가 문자로 했던 말이 내 머릿속을 스쳤다. '우리 일은 더 이상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 지윤이는 나의 대답을 기다렸고, 나는 끝내 대답하지 못했다. "미안... 별로 말하고 싶지 않아.""괜찮아, 말 안 해도 돼.""그냥 내 잘못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