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3년 동안 뒷바라지해 톱스타로 만든 남자친구 류태하의 바람을 목격한 윤세아. 배신감에 휩싸인 그녀는 태하의 최대 라이벌 차도겸에게 충동적으로 키스하고, 하루아침에 스캔들의 주인공이 된다. 복수를 위해 시작한 가짜 연애 속에서 세아는 오래전부터 자신을 사랑해 온 도겸의 진심을 깨닫고, 태하에게 빼앗긴 커리어와 이름까지 되찾는다.
View MoreKBN 방송국 별관 4층 대기실 복도는 숨 막힐 듯한 열기와 소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 금요일 오후의 생방송 음악 프로그램 현장.
수십 명의 아이돌과 댄서, 스타일리스트들이 좁은 복도를 분주하게 오가며 옷자락을 스쳤다.
스피커 너머로는 방금 드라이 리허설을 마친 걸그룹의 빠른 비트 음악이 찢어질 듯 울려 퍼지고 있었다. 퍼포먼스 디렉터 윤세아는 손에 쥔 검은색 클립보드를 고쳐 쥐며 깊은 숨을 내쉬었다.
음원 차트 역주행 끝에 마침내 지상파 음악방송 1위 후보에 오른 5인조 보이그룹 이클립스(ECLIPSE).
그리고 그 그룹의 메인 센터이자 지난 3년간 세아의 비밀 연인이었던 남자, 류태하의 컴백 첫 방송 날이었다.
세아는 오늘 무대에서 가장 중요한 태하의 2절 솔로 댄스 브레이크 구간 동선 수정을 마지막으로 확인하기 위해 복도 끝 단독 대기실 문 앞에 섰다.
‘태하야, 조금만 더 힘내자. 오늘 1위 트로피 받으면 우리 3년 동안 고생한 거 다 보상받는 거야.’
가슴 벅찬 기대로 문손잡이를 돌리려던 때였다.
“……흐응, 태하 오빠. 잠깐만요, 밖에서 누가 들으면 어쩌려고 그래요.”
문틈 사이로 나직하고 간드러진 여자의 콧소리가 새어 나왔다. 세아의 손이 허공에서 그대로 굳어버렸다.
생방송을 앞둔 방송국 대기실과는 어울리지 않는, 지나치게 내밀한 음성이었다.
이어 낯익은 남자의 낮은 웃음이 문틈을 넘어왔다. 세아는 숨을 멈췄다.
클립보드 모서리가 손바닥을 눌렀다.
“문 안에서 잠갔어. 스태프들 다 뮤직뱅크 무대 모니터링하러 내려보냈으니까 아무도 안 와.”
류태하였다. 지난 3년간 매일 밤낮으로 전화기 너머에서 들으며 안심했던, 너무도 익숙한 목소리였다.
바스락거리는 무대 의상 스팽글 마찰음과 함께 젖은 숨소리가 뒤섞였다.
“채령아, 오늘 무대 의상 진짜 예쁘다. 아까 오프닝 리허설할 때부터 너만 보이더라.”
“거짓말. 오빠 저번에 뮤직스테이지 때는 다른 걸그룹 센터 애 쳐다봤잖아요.”
“걔랑 널 어떻게 비교해. 네가 백배는 더 예쁜데.”
쪽, 하는 짧은 입맞춤 소리가 문틈을 넘어왔다. 요즘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신인 걸그룹 핑크베리의 인기 센터 멤버 민채령이었다.
세아의 맥박이 한 박자 늦게 떨어졌다. 숨이 막히고 손끝에서 힘이 빠졌다.
문손잡이를 잡은 손만 간신히 제자리에 남아 있었다.
‘내가 지금…… 뭘 들은 거지?’
지난 3년이 순서도 없이 뇌리를 스쳤다.
소속사가 부도 직전까지 몰려 데뷔조차 불투명했던 무명 시절, 세아는 제 청약 적금을 깨 뮤직비디오 촬영 비용 1,500만 원을 보탰다.
밤마다 먼지 날리는 지하 연습실 바닥을 기어 다니며 태하의 뻣뻣한 관절과 단점을 가려줄 시그니처 포인트 안무를 짰다.
그의 날카로운 턱선이 가장 돋보일 수 있는 카메라 조명 각도와 표정 연기까지 하나하나 코칭했다.
2절 16카운트에서 숨이 차는 버릇, 왼쪽 턴을 돌 때 무게중심이 무너지는 순간까지 세아는 누구보다 정확히 알고 있었다.
오늘 들고 온 수정안도 그 약점을 가리기 위해 밤새 다시 짠 것이었다.
하지만 태하의 이름값이 올라갈수록 소속사는 세아의 이름을 안무 크레디트에서 지워버렸다.
‘세아야, 지금은 내 개인 팬덤 형성이 제일 중요하잖아. 회사에서 우리 비밀 연애 들키면 그룹 전체가 다 끝장나. 1위 하고 자리 잡으면 그때 네 이름 제일 앞에 올려줄게.’
그 달콤한 거짓말을 세아는 바보처럼 믿었다. 사랑했기에 그의 성공을 돕는 일이 곧 자신의 꿈을 지키는 일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세아는 묵묵히 그림자로 남았다.
그런데 그 헌신의 대가가 고작 대기실 소파 위에서의 추악한 밀회였단 말인가.
“근데 오빠, 세아 누나는 괜찮아요? 요즘 오빠 안무 수정 때문에 계속 붙어 다니던데.”
민채령의 교태 섞인 물음에 태하의 냉소적인 대답이 이어졌다.
“그 재미없고 융통성 없는 여자 얘기를 왜 여기서 해?”
“그래도 오빠 무명 때부터 엄청 챙겨줬다면서요. 거의 매니저 겸 디렉터였다던데.”
“챙겨주긴 뭘. 걔는 자기가 연습생 데뷔 엎어지고 못다 핀 꿈을 나한테 투사하는 것뿐이야. 솔직히 안무 감각도 이제 올드해서 슬슬 다른 해외 유명 안무가로 바꿀 생각이야.”
태하의 목소리에는 미안함도 고마움도 없었다. 톱스타라는 오만함과 세아를 향한 경멸만 남아 있었다.
“걔는 내가 버리지 않는 이상 평생 내 뒤꽁무니만 쫓아다니게 되어 있어. 그러니까 신경 꺼.”
다시 입맞춤 소리가 이어졌다.
눈물은 나지 않았다. 세아는 손에 든 클립보드만 내려다봤다.
밤새 붙인 메모지 맨 아래, 볼펜으로 눌러 쓴 ‘퍼포먼스 디렉터 윤세아’라는 이름이 유난히 또렷했다.
그 이름까지 태하에게 넘겨줄 생각은 없었다. 얼어붙었던 감각이 분노와 함께 돌아왔다.
세아는 떨리는 손가락을 멈추고 문손잡이를 강하게 움켜쥐었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대기실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쾅-!
그로부터 1년 뒤, 눈발이 흩날리던 12월의 마지막 밤. 서울 서울 스타돔에서 열린 대한민국 최고 권위의 대중음악 시상식, 스타라이트 K-POP 어워즈.수만 명의 관중이 운집한 돔구장 안은 떠나갈 듯한 함성과 응원봉의 푸른 물결로 가득 차 있었다.NOVA의 미니 5집 〈BLACK OUT〉은 발매 직후 국내 주요 음원 차트를 석권했고, 이어 글로벌 앨범 200 차트에서도 1위에 올랐다.앨범과 무대 크레디트 맨 앞에는 총괄 퍼포먼스 디렉터 윤세아의 이름이 올라 있었다.세아는 1년간의 조정과 소송 끝에 류태하에게 빼앗겼던 창작 대가와 부당 수익 4억 8천만 원을 돌려받았다.이후 국내외 아티스트의 의뢰를 받는 톱 퍼포먼스 디렉터로 자리 잡았고, 독립 디렉팅 레이블 LUMEN을 설립했다.LUMEN의 첫해 작업 목록에는 NOVA뿐 아니라 신인 걸그룹과 솔로 가수의 이름도 나란히 올랐다. 세아는 계약서마다 창작자 크레디트와 2차 사용 조건을 가장 먼저 확인했다.민채령은 공개 사과와 자숙을 거쳐 다시 무대에 섰고, 세아에게 더는 변명을 보내지 않았다.LUMEN 사무실 벽에는 세아가 처음 정식 크레디트를 받은 〈BLACK OUT〉 앨범이 걸려 있었다. 그 아래 서류장에는 소속 안무가들의 이름과 지분을 명시한 계약서 사본이 나란히 꽂혀 있었다.반면 류태하는 광고·소속사와의 60억 원대 손해배상 분쟁에 휘말렸고, 무단 계정 접속과 명예훼손 등 일부 혐의로 1심 유죄 판결을 받은 뒤 방송가에서 퇴출됐다.“올해의 아티스트 대상, 수상자는…… NOVA입니다!”MC의 발표와 함께 돔구장 천장으로 축포와 금빛 꽃가루가 쏟아졌다. 블랙 벨벳 턱시도 차림의 도겸과 멤버들이 무대 중앙으로 걸어 나왔다.트로피를 건네받은 도겸이 마이크 앞에 섰다.평소 담담하던 도겸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팬 여러분과 멤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도겸이 숨을 고른 뒤, 정면 메인 카메라 렌즈를 똑바로 응시했다.“그리고 오늘 밤, 이 자리에서 꼭 전하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다
한 달은 컴백 준비와 법적 대응으로 빠르게 지나갔다.세아가 총괄 디렉팅을 맡은 NOVA의 미니 5집 타이틀곡 〈BLACK OUT〉은 최종 마스터를 넘겼고, 이제 컴백 당일만 남아 있었다.티저 영상은 공개 직후 글로벌 SNS 실시간 트렌드 1위에 올랐고, 안무의 독창성과 날카로운 텐션이 화제가 됐다.국내외 평론가들은 “NOVA의 강점을 가장 날카롭게 끌어낸 퍼포먼스”라며 기대를 보였다. 세아의 이름이 단독으로 박힌 앨범 크레디트는 음악계 전체의 뜨거운 주목을 받았다.그리고 세아와 도겸이 약속했던 한 달짜리 공개 계약 연애의 마지막 날이 찾아왔다.월요일 밤 11시, 한남동 도겸의 펜트하우스 서재.창밖으로 쏟아지는 서울 도심의 은은한 불빛 아래, 세아는 핸드백에서 한 달 전 작성했던 합의서 서류를 꺼내 테이블 위에 조심스럽게 올려놓았다.[NOVA 차도겸·퍼포먼스 디렉터 윤세아 상호 협력 및 1개월 한시적 공개 연애 계약서]세아는 계약서를 앞으로 밀어놓고도 손을 거두지 못했다.사옥 로비에서 먼저 손을 내밀던 일, 밤새 원본 파일을 대조하던 일, 모든 자료에서 세아의 이름부터 확인해 주던 일이 차례로 떠올랐다.계약으로 시작했지만 그 한 달을 가짜라고 부르기에는 함께한 순간이 너무 구체적이었다.하지만 계약은 계약이었다.한 달 동안 도겸은 규칙을 놀랄 만큼 성실하게 지켰다. 손을 잡기 전에는 눈으로 묻거나 말로 확인했고, 세아가 증거 정리를 하다 잠들면 담요만 덮어주고 거리를 뒀다.그 절제가 오히려 세아를 더 흔들었다.도겸의 눈부신 커리어에 짐이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약속대로 물러서야 한다고 생각했다. 샤워를 마치고 블랙 실크 로브를 걸친 도겸이 따뜻한 캐모마일 차 두 잔을 들고 서재로 걸어 들어왔다.젖은 머리에서 물방울이 한 번 떨어졌다.도겸이 세아의 맞은편에 앉자, 세아가 차분하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도겸 씨. 오늘로 약속했던 한 달 계약 기간이 끝났어요.”세아가 테이블 위의 계약서를 가볍게 앞으로 밀어냈다.“계약은 오
폭로가 나온 지 10일 뒤, 초가을 장대비가 서울 도심을 적시고 있었다. 활동과 숙소를 잃고 연예 뉴스의 조롱거리가 된 류태하는 우산도 없이 강남 테헤란로를 걷고 있었다.일부 계좌에는 법원의 보전처분이 들어왔고, 활동 중단과 함께 소속사 숙소에서도 퇴거 통보를 받았다.팬덤 상당수가 등을 돌렸고, 동료들과 지인들마저 그의 연락처를 차단했다. 무대용 메이크업도 경호원도 없는 얼굴은 며칠 사이 눈에 띄게 수척해져 있었다.모자를 깊게 눌러썼지만 몇몇 행인이 알아보고 휴대전화를 들었다. 태하는 얼굴을 가린 채 걸음을 재촉했다.“윤세아…… 세아를 만나야 해. 세아만 날 용서해 주면…… 세아만 내 춤을 다시 짜 주면 다 회복될 수 있어.”태하는 현실을 부정한 채 LK 엔터테인먼트 사옥 정문 앞 화단 뒤에 몸을 숨겼다. 세아가 한 번만 말을 들어주면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믿었다.오후 6시, 사옥 회전문이 열리고 검은색 우산을 든 경호원들과 세아가 로비 밖으로 걸어 나왔다.세아는 베이지색 트렌치코트 차림으로, NOVA의 컴백 타이틀곡 최종 안무 마스터 파일이 든 가죽 브리프케이스를 들고 있었다.사옥 현관 전광판에는 방금 승인된 〈BLACK OUT〉 티저가 반복 재생되고 있었다.“윤세아……!”어둠 속에서 빗물에 흠뻑 젖은 류태하가 세아의 이름을 외치며 뛰쳐나왔다. 경호원들이 즉시 태하의 앞을 막았다.세아는 그 뒤에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멈췄다.“접근시키지 마세요. 대화는 여기서 녹음하겠습니다.”세아가 휴대전화를 켜자 경호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는 태하가 만든 상황에 끌려가지 않고, 자신이 끝낼 방식과 거리를 직접 정했다.빗물에 젖은 태하가 경호원 앞에 무릎을 꿇고 울부짖었다.“세아야! 네가 날 만들었잖아! 3년 동안 네가 내 모든 춤을 짜고 날 톱스타로 키웠잖아! 그럼 끝까지 날 책임져야지, 어떻게 날 이렇게 시궁창에 처박을 수가 있어?!”태하는 여전히 자신의 배신과 착취는 외면한 채, 세아가 자신을 구해내야 한다고 우기고 있었다
화요일 오전 9시 정각. 주요 포털과 방송사 연예부 헤드라인에 윤세아와 류태하의 이름이 동시에 올랐다.[공식: 퍼포먼스 디렉터 윤세아, 류태하·제니스 엔터 상대로 4억 8천만 원 창작 대가 반환 청구 및 형사 고소][단독: “3년간 안무를 훔쳤다”… 윤세아 원본 생성 기록·리허설 파일 공개][충격 녹취록 공개: 류태하의 상습 폭언·갑질 현장… “너 따윈 말 한마디면 이 바닥에서 매장이야”][민채령 폭로 인터뷰: “류태하의 다중 연애와 역바이럴 지라시 사주, 전부 사실입니다”]LK 엔터테인먼트 법무팀이 150여 개 언론사와 방송사에 배포한 40페이지 분량의 팩트 시트는 곧바로 주요 기사 상단에 올랐다.자료에는 세아가 지난 3년간 만든 안무 프로젝트의 최초 생성 시각과 모션 캡처 타임스탬프, 류태하가 제대로 정산하지 않았던 4억 8천만 원의 창작 대가와 부당 정산 내역이 담겼다.세아의 스카우트 제안 메일에 무단으로 접속해 숨기거나 삭제한 정황을 담은 디지털 포렌식 자료도 함께 공개됐다. 자료가 공개되자 류태하를 향한 비판이 빠르게 커졌다.[역대급 사기꾼 류태하… 남의 인생과 재능을 4년 동안 통째로 도둑질했네][윤세아 디렉터가 3년간 노예처럼 착취당했던 거였음… 류태하는 사람이 아니다][스태프 갑질에 역바이럴 사주까지, 연예계에서 영구 매장시켜라][차도겸이 왜 4년을 짝사랑하고 지켜줬는지 이제야 100% 이해된다]연예 뉴스와 동영상 플랫폼에는 류태하의 과거 방송 발언을 다시 끌어온 영상들이 줄줄이 올라왔다.“제 춤은 제 영혼에서 나옵니다”라며 거들먹거리던 인터뷰 영상들은 조롱과 야유의 표적이 되었다.음반사와 방송사는 사실관계 확인이 끝날 때까지 류태하의 안무 창작자 표기를 보류하고, 세아가 제기한 권리 분쟁을 크레디트 데이터에 병기하겠다고 밝혔다.일부 무대 영상 설명란에는 제출된 원본 자료를 근거로 ‘안무 원안 윤세아’가 먼저 추가됐다. 완전한 권리 정정 절차는 남아 있었지만, 세아의 이름은 더 이상 지워진 채로 남지 않았다.LK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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