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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아빠까지 오열하기 시작했다

Author: cashflow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9-17 20:59:39

정원의 소동이 지나간 다음 날 아침.

대공저 침실로 내리쬐는 아침 햇살을 받으며 눈을 뜬 나는, 제자리에서 가볍게 손가락을 쥐었다 펴 보았다. 몸 상태는 그야말로 인생 최고조를 갱신하고 있었다.

마나 코어가 완전히 자리를 잡으며 체내의 모든 불순물이 빠져나간 덕분인지, 피부에서는 윤기가 흘렀고 눈을 뜨자마자 사막을 가로질러 달릴 수 있을 만큼 온몸에 힘이 넘쳐났다. 마음만 먹는다면 지금 당장 이 방의 무거운 쇳덩이 가구들을 가볍게 들었다 놓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후아암."

나는 푹신한 구스다운 이불 속에서 기지개를 크게 켜려 했다. 사흘 내내 억대의 영약과 전설의 디저트만 받아먹었더니, 아주 몸이 펄펄 날아다니다 못해 사자후라도 지를 수 있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내 손가락 마디가 다 펴지기도 전에, 침실 문이 부서져라 열리며 벼락같은 고함이 귓가를 때렸다.

"내 딸!! 내 귀한 딸 세르리아아아아─!"

쾅─!

얼마나 거세게 문을 열었는지 고급 마호가니 문짝에 쩍 하고 긴 금이 갔다.

나는 놀라 이불을 턱 밑까지 끌어올리며 문가를 바라보았다.

대공저 침실 복도를 삼엄하게 경비하던 기사들을 당당히 뚫고 들어온 남자는, 핏발 선 눈에 옷매무새가 엉망으로 흐트러진 중년 신사였다.

은빛이 섞인 흑발에 날카로운 턱선, 그리고 제국 최고의 부를 쥐고 있는 남자. 원작 소설 속 세르리아의 친부이자, 사교계의 냉혈한으로 유명한 발렌티 공작이었다.

'어? 아빠가 왜 여기서 나와?'

원작 속 발렌티 공작은 딸에게 극도로 무관심한 인물이었다.

사치와 악행을 일삼는 세르리아를 그저 '가문의 오점' 취급하며 방치하고, 오직 가문의 명예와 재산 증식에만 관심이 있던 서늘한 위선자.

그랬던 남자가 지금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된 얼굴을 한 채, 마치 세상을 잃은 사람처럼 내 침대를 향해 몸을 던지고 있었다.

"세르리아! 이게 무슨 일이야! 네가 시한부라니! 하루에도 피를 한 바가지씩 토하며 죽어가고 있다니 그게 무슨 소리냐!"

"……예?"

하루에 피를 한 바가지씩 토해? 소문이 대체 어디까지 와전된 거야?!

발렌티 공작은 내 침대 옆 바닥에 털썩 무릎을 꿇더니, 파르르 떨리는 큰 손으로 내 손을 꼭 감싸 쥐었다. 그의 손바닥에서 느껴지는 지독한 떨림에 나는 얼이 빠져버렸다.

"이 못난 아비를 용서해라, 세르리아! 네가 사교계를 끊고 파업을 선언했을 때 진작 눈치챘어야 했는데! 가진 재산을 탕진하듯 쓰기 시작했을 때…… 너는 이미 남은 생을 정리하려는 깊은 뜻이 있었던 거였어!"

아니, 진짜로 그냥 돈 펑펑 쓰며 놀고먹으려고 했던 건데요!

"그동안 혼자 얼마나 외롭고 아팠을꼬! 네가 저지른 그 모든 악행도…… 사실은 네가 떠난 뒤 내가 슬퍼하지 않게 하려고, 일부러 미움받으려 악다구니를 썼던 거였지?!"

……저기요, 공작님?

그건 진짜 원작 세르리아 인성이 쓰레기라 그랬던 건데요.

어째서 대공이나 아빠나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똑같이 미친 오해를 하는 건데?!

"공작."

침실 구석의 그늘진 곳에서 서늘하기 짝이 없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언제 들어왔는지, 카일락이 팔짱을 낀 채 발렌티 공작을 차갑게 노려보고 있었다.

"내 허락도 없이 세르리아의 침실에 들이닥친 무례는 묻지 않겠다. 하지만 목소리를 낮춰라. 세르리아의 기력이 쇠해진다."

"뭐라? 내 딸의 얼굴을 보러 온 아비에게 무례라니! 슬오언 대공, 그동안 내 딸을 네 저택에 감금해두고 뭘 한 거냐!"

발렌티 공작이 벌떡 일어나 카일락과 팽팽하게 대립했다.

제국 최고의 재력을 가진 공작과, 제국 최고의 무력을 가진 대공의 눈싸움. 방 안의 온도가 순식간에 영하로 뚝 떨어지며 공기가 찢어질 듯 팽팽해졌다.

"나는 세르리아를 살리기 위해 대륙의 모든 의원과 사제를 긁어모으고 있다."

"고작 의원 따위로 내 딸을 살릴 수 있을 것 같으냐! 나는 이미 신성 제국의 교황에게 가문의 보물 절반을 바치고 '전설의 치유 성물'을 받아오라 명했다!"

"나는 오늘 경매장을 통째로 사들여 세르리아에게 바쳤다."

"나는 서부의 다이아몬드 광산 5개와 남부의 휴양지 영지 전체를 세르리아 명의로 이전했다!"

"나는 대공가의 전용 영지인 옥석 정원을 갈아엎어 세르리아의 호흡을 돕고 있다."

"나는 제국 전역의 희귀 마법 약초밭을 통째로 사들여 매일 아침 생즙을 짜 오게 했다!"

……어라?

두 남자의 살벌하고 막강한 기싸움을 가만히 듣고 있던 나는, 조용히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다이아몬드 광산 5개?

남부 휴양지 영지 전체?

희귀 마법 약초밭과 전설의 성물?

거기에 카일락이 사준 황실 경매장의 보석들과 공간 확장 반지까지?

'미쳤다. 나 지금 제국에서 제일 부자 아닌가?'

원래 내 목표는 그저 소소하게(백억 골드 정도) 돈을 쓰며 가문 구석에서 쉬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두 미친 남자들이 "내 딸/내 여자의 마지막 길을 화려하게 해주겠다"며 경쟁적으로 제국 전체의 재산을 퍼붓고 있었다.

발렌티 공작이 다급하게 내 손을 다시 쥐며 애원하듯 소리쳤다.

"세르리아! 당장 나와 함께 공작가로 돌아가자! 네가 원하는 건 뭐든 해주마! 네가 원한다면 황실을 사서 네 놀이터로 만들어주마!"

카일락이 성큼 다가와 발렌티 공작의 손을 거칠게 쳐내고, 나를 제 넓은 품으로 안아 들었다.

"세르리아는 어디에도 가지 않는다. 이 대공저야말로 대륙에서 가장 안전하고 성스러운 장소다."

"이놈이 마침내 본색을 드러내는구나! 내 딸을 빼앗아 가려느냐!"

"세르리아의 숨이 멎는 그 순간까지 곁을 지키는 것은 나다!"

"아니다! 아비인 나다!"

제국을 움직이는 두 거구가 내 침대 위에서 으르렁거리며 쟁탈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내가 조금만 움직여도 "세르리아! 뼈 부러진다!" 하며 사색이 되는 꼴이라니.

옆에서 지켜보던 내전 의원들과 기사들은 이미 넋이 나간 채 바닥에 납작 엎드려 기도문을 외우고 있었다.

나는 두 남자의 정수리를 번갈아 바라보며 나직하게 숨을 내쉬었다.

'아니, 나 진짜 안 죽는다고 몇 번을 말해…….'

하지만 지금 "저 아픈 거 아니고 3대 500 치는 헬창급으로 튼튼한데요?"라고 사실대로 고백한다면 어떻게 될까?

카일락: (감금 및 사기죄로 대공저 지하 감옥행)

발렌티 공작: (가문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며 멍석말이)

덤으로 실시간으로 쏟아지던 다이아몬드 광산과 남부 영지, 보석 선물 전액 환수.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나는 눈을 살포시 감으며, 세상에서 가장 가련하고 지친 목소리로 아련하게 중얼거렸다.

"아빠…… 대공님…… 두 분이 싸우시니까…… 가슴이…… 너무 답답해요…… 쿨럭!"

"세르리아!"

"딸아!"

두 남자가 동시에 경악에 찬 비명을 지르며 제자리에 석상처럼 굳어버렸다.

"내, 내가 잘못했다! 싸우지 않으마! 숨을 쉬어라, 세르리아!"

발렌티 공작이 허겁지겁 내 손을 잡고 부채질을 해주기 시작했다.

"기 기사단장! 당장 공작가의 수레를 치우고, 세르리아가 요청한 남부 영지 서류에 내 직인을 찍어라!"

카일락 역시 핏발 선 눈으로 지시를 내리며, 내 입에 억대 가치의 최고급 원기 회복 포션을 정성껏 흘려 넣어주었다.

순식간에 침실에 평화가 찾아왔다.

발렌티 공작은 죄인처럼 고개를 숙인 채 내 발치에 앉아 조심스럽게 마사지를 해주었고, 카일락은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품으로 내 등을 받쳐주었다.

'역시. 시한부(착각) 연기는 최고의 치트키다.'

나는 포션을 달콤하게 받아먹으며 푹신한 구스다운 이불 속으로 몸을 파묻었다.

가진 건 돈과 건강뿐인 악녀의 호화로운 파업 라이프는, 친정아빠의 합류로 인해 더욱더 완벽하고 풍족해지고 있었다.

cashflow

발렌티 공작: (후회 마일리지 폭발 중) "내 딸이 죽어가는데 돈이 무슨 소용이냐! 다 가져라!" 카일락: (남주 지분 위협받고 눈 뒤집힘) "재력 배틀 신청인가. 받아주지." 세르리아: (얼결에 제국 제일의 갑부가 됨) 8화도 재미있게 읽으셨나요? 딸바보로 변신한 공작님과 흑막 대공의 재력 배틀이 시작되었습니다! 오늘 하루도 행복하게 보내시고, [선호작 추가]와 [코멘트] 부탁드립니다! 독자님들의 응원이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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