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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화

Author: 양순이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3-21 06:49:13

유람선 최상층의 프라이빗 다이닝 룸.

최상급 얼그레이의 은은한 향이 감도는 고요한 공간이었지만, 테이블 맞은편에 앉은 이 회장의 얼굴은 사색이 되어 있었다.

그의 덜덜 떨리는 손에 들린 태블릿 피씨 화면에는, 새벽 6시를 기점으로 포털 사이트를 도배한 기사들이 쉴 새 없이 갱신되고 있었다.

[단독] Y물산 외동딸 이채영, 은밀한 사생활 논란… 다수의 남성과 부적절한 만남?

[속보] 재벌가 약혼 앞둔 이채영, 파티 전후로 만난 남자들 실체 충격.

평소 파티를 즐기며 가볍게 어울리던 남자들과의 실제 사진에, 언론의 자극적인 추측과 소문을 교묘하게 덧칠한 결과물이었다. 채영이 스스로 뿌리고 다녔던 불씨였기에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는 팩트였고, 권도윤은 그저 그것들이 가장 치명적인 불길로 번지도록 완벽한 타이밍을 맞춰 판을 깐 것뿐이었다.

딸의 난잡한 스캔들에 뒷목을 잡고 있는 이 회장은, 자신의 딸이 간밤에 무슨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는지 꿈에도 모르는 눈치였다. 그저 눈앞에서 느긋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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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게 오는 남자들   59화

    별채로 돌아온 해인은 녹초가 된 몸을 침대에 뉘었다. 네 번째 손가락을 감싼 다이아몬드 반지의 무게가 유독 무겁게 느껴졌다. 억지로 밀어내듯 반지를 빼 화장대 위에 내려놓자, 챙그랑- 하는 서늘한 금속음이 정적을 깼다.그때, 거울 옆에 놓인 낯선 쇼핑백이 시야에 걸렸다.“어……? 뭐지?”사그락거리는 종이봉투 안에서 묵직한 유리병을 꺼냈다. 낮에 백화점에서 서우와 함께 구경했던 바로 그 니치 향수였다. 리본을 풀자 은은하고도 매혹적인 향기가 해인의 방 안으로 툭, 떨어졌다.만 원짜리 한 장을 서우의 손에 쥐여주고 도망치듯 돌아섰던 제 뒷모습이 떠올라 입술을 깨물었다. 해인은 잠시 향수병을 매만지다 휴대폰을 들었다.[서우야, 혹시 이거 네가 사다 놓은 거야?]메시지를 보낸 지 채 1분도 되지 않았을 때였다.똑, 똑-.유리창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란 해인이 고개를 돌리자, 닫힌 창문 너머로 삐죽 솟은 머리카락과 장난스러운 눈동자가 보였다.“악! 강서우, 너 미쳤어? 여기가 몇 층인데!”급히 창문을 열자, 난간을 타고 올라온 서우가 위험천만하게 매달린 채 해맑게 웃고 있었다.“악! 강서우, 너 미쳤어? 여기가 어디라고 올라와!”“아, 좀 비켜봐. 나 팔 빠질 것 같아.”서우는 익숙한 동작으로 창턱을 넘어 방 안으로 훌쩍 뛰어 들어왔다.긴 다리는 가볍게 바닥에 닿았다. 해인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서우를 타박했다.“미쳤지, 진짜. 계단 놔두고 왜 이래? 떨어지면 어쩌려고!”“그냥, 이게 내 로망이었거든.”서우가 헝클어진 머리를 털며 장난스럽게 웃었다.“좋아하는 여자애 방 창문 두드리는 거. 만화 같고 좋잖아.”“그, 그럼 좋아하는 여자애한테 가서 해야지, 왜 여기 와서 난리야. 간 떨어질 뻔 했네.”“그러니까 여기 왔지. 누나 좋아하니까.”순간 해인의 숨이 툭 멎었다.너무나 해맑게 웃고 있는 저 얼굴에 대고 진지하게 ‘선 넘지 마’ 같은 말을 내뱉는 게 오히려 과민반응처럼 느껴질 정도였다.‘……또 장난이겠지. 얘 원래

  • 내게 오는 남자들   58화

    반투명한 미러 유리문이 스르르 열렸다.햇빛과는 또다른 찬란한 조명이 쏟아지며, 진열대 안의 보석들이 각자의 빛을 내뿜으며 반짝였다.차가운 대리석 바닥 위로 깔린 카페트 위로 발을 내딛자, 푹신한 촉감이 발을 덮었다.“기다리고 있었습니다.”미리 연락을 받은 듯 점장이 직접 나와 도윤과 해인을 룸으로 안내했다.소파에 마주 앉자, 검은 벨벳 트레이 위로, 정교하게 세공된 반지들이 각기 다른 광채를 뿜어내며 줄지어 나타났다. 메인 다이아몬드를 수십 개의 서브 스톤이 촘촘하게 감싸 안은 화려한 헤일로 디자인부터, 투명한 얼음 조각을 깎아 만든 듯 날카로운 에메랄드 컷의 대담한 솔리테어 링까지. 플래티넘 밴드를 따라 빈틈없이 박힌 보석들이 조명을 받을 때마다 날카로운 파편 같은 빛을 흩뿌리며 시야를 어지럽혔다.‘무슨……, 결혼반지도 아니고 커플링 그것도 6개월짜리를 이렇게나…….’“고를 수 있겠어, 아니면 내가 골라줄까.”도윤이 소파에 깊숙이 기대앉으며 물었다. 해인은 눈앞의 화려한 보석들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이내 다시 생각을 다졌다.‘확인해 보고 싶어. 오빠에게 내가 어떤 의미인지.’해인은 떨리는 손끝을 감추려 주먹을 꽉 쥐었다가, 이내 트레이 위에서 가장 크고 화려한, 존재감만으로도 주변을 압도하는 다이아몬드 반지를 콕 집어 가리켰다.“이거.”점장의 눈이 휘둥그레졌고, 도윤의 미간이 미세하게 들썩였다. 평소의 해인이라면 절대 고르지 않았을, 과하다 싶을 정도의 화려함이었다.“……생각보다 취향이 많이 화려해졌네.”“어설픈 실반지 끼고 나갔다가 비웃음 사면 안 되니까.”해인은 생긋 미소 지으며 도윤을 똑바로 바라보았다.“설마…… 아까워?”도발적인 해인의 물음에 도윤은 대답 대신 피식, 서늘한 웃음을 흘렸다. 그는 점장에게 눈짓을 보내 결제를 지시하더니, 돌연 옆자리에 앉은 해인의 손을 낚아채듯 끌어당겼다.“앗……!”해인이 당황할 새도 없이, 도윤은 그녀의 손을 제 무릎 위로 가져와 아주 자연스럽게 손가락 사이사이로 자신의 손가락을 얽

  • 내게 오는 남자들   57화

    “기꺼이 그렇게 해 주지.”닿을 듯 말 듯 아슬아슬한 거리.도윤은 해인의 붉어진 뺨 언저리로 손을 뻗었다.하지만 그의 긴 손가락은 해인의 살갗에 닿기 직전, 허공에서 멈칫하더니 이내 방향을 틀어 책상 위 인터폰 버튼을 꾹 눌렀다.[네, 전무님.]“오후 스케줄 전부 뒤로 미뤄. 오늘 퇴근 전까지 보고 안 받습니다.”[네? 아, 알겠습니다.]해인의 두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완벽주의자에 일 중독자라 평이 나 있는 오빠가 평일 오후 일정을 통째로 비우다니,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기행이었다.“오빠, 지금 뭐 하는…….”“완벽하게 하자며.”도윤이 넥타이를 살짝 느슨하게 풀며 나른하게 받아쳤다.“차민영 성격에 조만간 그 가드 놈을 대동하고 더블데이트라도 하자고 들러붙을 텐데. 그 앞에서 6개월짜리 애인 노릇을 완벽하게 하려면, 미리 연습 정도는 해둬야 하지 않겠어?”해인의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연습? 대체 무슨 연습을?단 한 번도 상상해 본 적 없는 단어의 조합, 그리고 맨살에 닿을 듯 밀착해 온 도윤의 뜨거운 체온에 머릿속이 새하얗게 날아가 버렸다.해인은 저도 모르게 반걸음 뒤로 물러섰다.설마…… 오빠랑 그런 연습까지 해야 하는 거야?스킨십…… 키…스?상상만으로도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한 채, 커다란 눈동자를 굴려 도윤을 멍하니 올려다보았다.당황해서 얼굴이 토마토처럼 새빨개진 해인을 내려다보던 도윤의 입가에서, 작은 웃음이 새어나왔다.“무슨 생각해?”도윤이 다시 몸을 숙여 다가오며 귓가에 낮게 속삭였다.해인의 응큼한 상상을 다 꿰뚫어 본 듯한, 지독하게 능글맞고도 매혹적인 목소리였다.“밥 먹으러 나가자고. 에스코트, 에티켓…… 사람들 눈앞에서 연인끼리 당연한 매너들. 연습 안 하면 차민영이 눈치챌 테니까.”매너 연습이라는 도윤의 해명에 해인의 얼굴이 아까와는 전혀 다른 의미로 새빨갛게 달아올랐다.자신의 착각과 응큼한 상상이 도윤에게 완벽하게 들켜버린 기분이었다.“……아, 알았어. 나가.”해인은 뜨거워진 뺨을

  • 내게 오는 남자들   56화

    안으로 들어선 해인의 시선은 곧장 책상 앞의 도윤을 향해 있었다.갑작스러운 호출에 조금 상기된 얼굴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입을 열기도 전에, 옆쪽 소파에서 여유롭고도 나른한 목소리가 먼저 끼어들었다.“안녕하세요. 태성그룹 차민영입니다.”해인의 고개가 흠칫 놀라며 옆으로 돌아갔다.슈트를 입은 화려한 여자. 그리고 그 뒤를 그림자처럼 지키고 선 남자.순간, 해인의 머릿속에 어제저녁 권 회장이 식사 자리에서 흘리듯 뱉었던 말이 날아와 박혔다.오빠의 맞선 상대.‘나한테 소개해 준다던 사람이 저 여자……, 아니 저 사람이었어?’해인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왜인지 모를 수치심과 원망이 발끝에서부터 치밀어 올랐다.자신을 굳이 이 자리에 부른 이유가 고작, 앞으로 새언니가 될 저 화려하고 완벽한 여자를 보여주며 자신의 처지를 확인시키기 위함이었단 말인가.핏기가 가셨던 해인의 뺨이 이내 모멸감과 배신감으로 붉게 달아올랐다.그녀는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요동치는 감정을 누르고서, 우아한 미소를 얼굴에 덧씌웠다.“아, 오빠랑 맞선 보신 분이시군요. 이야기 들었어요.”해인은 도윤을 향했던 원망 어린 시선을 거두고 민영을 향해 깍듯이 고개를 숙였다.“안녕하세요, 동생 윤해인입니다. 진작 새언니 되실 분인 줄 알았으면 빈손으로 오지 않았을 텐데요. 결례를 범했네요.”철저하게 가족이자 동생으로 선을 긋는 완벽한 방어였다.도윤의 미간이 불쾌감으로 미세하게 좁혀졌다. 그러나 소파에 기대어 있던 차민영은 오히려 흥미롭다는 듯 눈을 반짝이더니, 픽 소리 내어 웃어버렸다.“그런 얼굴 할 필요 없어요.”민영은 제 뒤에 선 태건의 손을 만지작거리며 덤덤하게 덧붙였다.“난 그쪽 남자한테 관심 없으니까.”그쪽 남자라는 노골적인 단어에 해인의 사고 회로가 일순간 정지했다.방금 전까지 완벽하게 둘러썼던 동생이라는 가면이, 자신의 진짜 마음을 꿰뚫어 본 민영의 돌직구 한 방에 와장창 깨져버린 기분이었다.그 아슬아슬한 정적을 깬 건 도윤이었다.자리에서 천천히

  • 내게 오는 남자들   55화

    주머니 속에서 울리는 진동이 마치 경고음처럼 느껴졌다.액정에 뜬 ‘오빠’이라는 두 글자를 확인하는 순간, 조금 전까지 강서우의 머리칼을 쓰다듬으며 부렸던 여우 같은 여유는 신기루처럼 사라졌다.해인은 주위 눈치를 살피며 쫓기듯 비상구 근처의 한적한 복도로 걸음을 옮겼다.[…어, 오빠.]최대한 평소와 다름없는 목소리를 내려 애썼지만, 가파른 호흡까지는 숨길 수가 없었따.[전화를 왜 이렇게 안 받아. 한참 기다렸잖아.]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도윤의 목소리는 평온했다. 하지만 그 뒤에 깔린 묘한 압박감이 해인의 뒷목을 서늘하게 훑었다.[주변이 시끄럽네. 어디야?][그냥, 백화점. 구경 좀 할 게 있어서 나왔어.][설마…… 아니지?][응? 뭐가 아니…… 풋]도윤의 의도를 알아차린 해인이 웃음을 터트렸다.보나 마나 자신이 밖으로 나돌며 또 몰래 아르바이트라도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염려였을 것이다.어제 보았던 차갑고 계산적인 낯선 모습은 그저 한순간의 예민함이었기를.해인은 핸드폰 너머의 그가 여전히 자신을 걱정해 주는 다정한 오빠이기를 간절히 바랐다.[그런 거 아니야, 진짜 구경하고 싶은 게 있어서. 그런데 오빠야 말로 어쩐 일이야?][잘됐네. 마침 네게 소개해 줄 사람이 있어.]‘소개해 줄 사람?’해인의 두 눈이 살짝 커졌다.생각해 보면 오빠의 주변 지인이나 일상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나를 소개해 줄 사람이 누구일까.묘한 호기심과 기대감이 피어올랐다.도윤의 낮은 목소리가 이어졌다.[지금 사무실로 와. 기다릴게.][지금? 나 아직 구경할 게 남았는데…….]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끊긴 전화기 너머로 정적이 찾아왔다.해인은 한숨을 내쉬며 핸드폰을 가방에 집어넣었다.갑작스러운 호출이 당황스럽긴 했지만, 오빠의 지인을 만난다는 사실이 어쩐지 가슴 한구석을 들뜨게 만들었다.해인이 다시 카페 쪽 복도로 돌아가자, 서우가 안절부절못하며 서성이고 있었다.“누나! 누구 전화인데 그렇게 급하게 받아?”“서우야, 나 갑자기 가봐야

  • 내게 오는 남자들   54화

    도윤의 집무실 문이 예고도 없이 열렸다.“점심이나 먹죠, 파트너.”서류를 검토하던 도윤이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들었다.칼같이 재단된 크림 화이트 컬러의 슈트를 입은 차민영이 들어서고 있었다. 헐렁한 재킷 소매 아래로 언뜻 보이는 볼드한 골드 뱅글이 바깥세상의 빛을 반사했다.“하아…, 비서실을 갈아치워야 하나.”“또 뭘 그렇게까지. 난 프리패스거든요. 물론 권한은 권 회장님께서 주셨고.”도윤의 시선이 민영을 지나쳐, 그녀의 등 뒤에서 그림자처럼 태건에게로 꽂혔다.무표정한 가드의 얼굴 너머로, 어젯밤 그가 꿰뚫어 보았던 맹목적인 불장난의 냄새가 어른거렸다.도윤은 들고 있던 만년필을 책상 위에 툭 소리 나게 내려놓았다.“저놈이랑 같이? 말했던 것보다 날 너무 알뜰하게 이용하는 거 아닌가.”자신의 사무실 안까지 버젓이 제 진짜 애인을 대동하고 나타난 차민영의 뻔뻔함에 도윤이 서늘하게 일갈했다. 하지만 민영은 기죽기는커녕 픽 웃으며 도윤의 책상 앞 의자에 우아하게 다리를 꼬고 앉았다.“손해 보는 것 같으면 당신도 좀 써먹어요. 이렇게 삭막하게 일만 하지 말고.”민영은 텅 빈 전무실 안을 턱끝으로 가리키며 도발적으로 속삭였다.“아니면 마음에 드는 여자 하나 비서로도 곁에 못 둘 정도로, 우리 파트너가 능력 부족인가?”정곡을 찌르는 민영의 말에 도윤의 턱관절에 찰나의 힘이 들어갔다.문득 윤해인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거슬리기 시작했다.“……무슨.”도윤은 감정을 갈무리하며 서늘하게 비웃었다.“굳이 곁에 둘 필요가 없으니까. 내가 부르면 언제든 오는 위치에 잘 있으니.”그는 보란 듯이 책상 위의 스마트폰을 집어 들었다.단축 번호를 누르자, 핸드폰 너머로 일정한 통화 연결음이 새어 나왔다.차민영은 흥미롭다는 듯 턱을 괴었고, 도윤은 여유로운 표정으로 그녀를 응시했다.하지만 그의 확신과 달리, 연결음은 한참이 지나도록 끊어지지 않았다.**“뭐야? 오빠가 이런 구석진 데서 커피를 다 마셔?”조금 전까지만 해도 평화로웠던 팝업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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