ログイン일요일 아침.윤하늘은 옷장 문을 열었다가 그대로 멈췄다.옷걸이가 너무 빽빽했다.한 벌을 꺼내려 하면 옆의 두 벌이 따라 나왔다.아래에는 계절 지난 옷을 넣어둔 상자까지 있었다.“이건 좀 심한데.”뒤에서 강단태가 물었다.“뭐가요?”“내 옷.”단태가 옷장 안을 한번 보고 말했다.“많긴 하네요.”“왜 진작 말 안 했어요?”“하늘 씨 옷인데 제가 왜 말합니까.”맞는 말이었다.하늘은 옷장 앞에 앉았다.“오늘 정리해야겠다.”“도와줄까요?”“일단 혼자 해볼게요.”단태는 고개를 끄덕이고 빨래를 들고 나갔다.한 시간 뒤.침대 위에는 옷이 산처럼 쌓였다.하늘은 결국 은빛새에게 영상통화를 걸었다.—왜요?“옷 좀 봐줘요.”—사러 가게요?“반대.”카메라를 돌려 침대를 보여주자 빛새가 웃었다.—저게 다 하늘 씨 거예요?“응.”—평소에 몇 벌만 입으면서 왜 저렇게 많아요?“그러니까.”빛새가 바로 기준을 정해줬다.—상태 좋은데 안 입는 건 기부하거나 중고로 정리하고, 망가진 건 의류수거 쪽 확인하고. 수선하면 입을 건 따로 빼요.“일 년 안 입었으면?”—그 옷을 지금 다시 입고 싶은지부터 봐요.하늘은 고개를 끄덕였다.옷을 하나씩 나누기 시작했다.남길 것.보낼 것.수선할 것.생각보다 빠르게 쌓였다.그러다 한 원피스에서 손이 멈췄다.짙은 남색 원피스였다.몇 년 전 도재욱과 외식하러 갔던 날 입었던 옷.재욱은 그날 유난히 잘 어울린다고 했었다.하늘은 한동안 원피스를 바라봤다.빛새가 화면 너머로 조용히 기다렸다.“이거.”—응.“재욱 씨가 좋아했던 옷이에요.”빛새는 버리라는 말도, 남기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하늘 씨는요?그 질문에 하늘은 원피스를 펼쳐봤다.예전에는 좋아했다.그런데 지금 보니 허리선도, 소매 모양도 이상하게 손이 가지 않았다.하늘은 자리에서 일어났다.“잠깐 입어볼게요.”거울 앞에 선 하늘은 몇 번 몸을 돌려봤다.그리고 피식 웃었다.“이제 내 취향 아니네.”—그럼 답 나왔네요
토요일 오후 네 시.윤하늘은 거실에서 가방을 챙기다가 강단태를 바라봤다.“오늘도 말 안 해줄 거죠?”“네.”“멀어요?”“차 안 타도 됩니다.”하늘이 눈을 가늘게 떴다.“집 근처?”“거기까지.”지난번 식물원보다 범위가 훨씬 좁아졌다.두 사람은 집을 나섰다.그런데 단태가 향한 곳은 식당도, 카페도 아니었다.동네의 작은 전통시장이었다.하늘이 걸음을 멈췄다.“시장?”“네.”“이게 데이트 장소예요?”“아직 아닙니다.”단태는 입구에서 장바구니를 하나 펼쳤다.“오늘 저녁 제가 해보려고요.”“뭘?”“그걸 고르는 게 오늘 일정입니다.”하늘이 웃었다.“요리 수업 이후로 자신감 생겼어요?”“볶음밥도 성공했잖습니까.”“그거 한 번 성공했다고?”“중요한 한 번입니다.”두 사람은 시장 안으로 들어갔다.단태가 가장 먼저 산 것은 감자였다.그다음은 양파와 당근.하늘이 장바구니 안을 내려다봤다.“카레?”“아닙니다.”“닭볶음탕?”“그것도 아닙니다.”단태는 정육점 앞에서 돼지고기를 샀다.하늘이 다시 물었다.“짜글이?”“아닙니다.”“그럼 뭔데?”“맞혀보세요.”조금 더 걸어가더니 단태는 두부와 대파까지 샀다.하늘은 한참 장바구니를 들여다봤다.“진짜 모르겠는데.”“저도 조금 불안합니다.”“본인이 정해놓고?”“레시피로 봤을 때는 가능했습니다.”“그 말이 제일 불안해.”시장 끝쪽에서 단태가 갑자기 멈췄다.작은 반찬가게였다.“왜요?”“보험 하나 들겠습니다.”“무슨 보험?”단태는 멸치볶음과 깻잎무침을 샀다.하늘이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요리 망할 때 먹으려고?”“네.”“준비 철저하네.”“굶을 수는 없으니까요.”집에 돌아오자 단태는 휴대전화를 세워 레시피를 띄웠다.메뉴는 돼지고기 두부조림이었다.하늘이 냉장고에 장 본 것을 넣다가 말했다.“두부조림 전에 했잖아요.”“그건 하늘 씨랑 같이 했고.”단태가 앞치마를 둘렀다.“오늘은 제가 처음부터 끝까지 합니다.”“나는?”“앉아 계세요.”하늘은
다음 토요일.강단태는 현관 앞에서 물었다.“오늘도 목적지는 비밀입니까?”윤하늘은 가방을 챙기며 고개를 끄덕였다.“네.”“힌트는?”“없어요.”“낚싯대는?”“안 가져가요.”“그럼 정말 모르겠네요.”하늘이 웃었다.“지난주에는 내가 아무것도 안 물어보고 식물원 갔잖아요. 오늘은 단태 차례.”“알겠습니다.”이번에는 운전도 하늘이 했다.단태는 조수석에 앉아 내비게이션 화면을 보려다가 하늘이 손으로 가렸다.“보지 마요.”“운전하는데 목적지는 알아야 하지 않습니까?”“내가 운전하잖아요.”“그렇네요.”단태가 순순히 등을 기대었다.도착한 곳은 오래된 골목 안 작은 공방이었다.단태가 간판을 올려다봤다.“도자기?”“응.”“하늘 씨 도자기 좋아했습니까?”“해본 적 없어요.”“그런데 왜 여기예요?”하늘이 가방을 들었다.“한번 해보고 싶어서.”단태가 웃었다.“좋습니다.”“싫으면 근처 카페 가도 돼요.”“아닙니다. 해볼래요.”둘은 나란히 공방으로 들어갔다.오늘 만들 것은 머그컵이었다.모양을 잡은 뒤 손잡이를 붙이고 원하는 무늬나 글자를 새기는 방식이었다.하늘은 설명을 듣자마자 흙을 만졌다.“생각보다 부드럽다.”반면 단태는 한동안 손도 대지 않았다.하늘이 물었다.“왜 안 해요?”“어떤 모양으로 할지 생각 중입니다.”“그냥 해요.”“삐뚤어지면요?”“컵인데 물만 안 새면 되지.”단태가 하늘을 봤다.“하늘 씨가 그런 말을 합니까?”“왜요?”“낚시 도감은 생김새 하나도 틀리면 다시 확인하잖아요.”“그건 물고기 이름 잘못 적으면 안 되니까.”하늘은 흙을 눌렀다.“이건 내가 만드는 거니까 삐뚤어져도 내 거잖아요.”단태는 잠시 생각하더니 흙에 손을 댔다.“그럼 해보죠.”삼십 분 뒤.하늘의 컵은 한쪽이 조금 찌그러져 있었다.단태의 컵은 지나치게 반듯했다.하늘이 두 개를 비교했다.“성격 나온다.”“제 게 더 컵 같습니다.”“내 것도 컵이에요.”“약간 그릇 같기도 하고.”하늘이 흙 묻은 손으로 단
토요일 오후.윤하늘은 현관 앞에서 신발을 신으며 물었다.“진짜 어디 가는지 말 안 해줄 거예요?”강단태는 차 키를 챙겼다.“네.”“낚시는 아니죠?”“낚싯대 없잖습니까.”“수족관?”“아닙니다.”“미니어처 가게?”단태가 웃었다.“오늘은 제가 정했습니다.”하늘은 더 묻지 않았다.“좋아요. 가요.”차로 삼십 분쯤 달려 도착한 곳은 큰 식물원이었다.하늘이 입구를 올려다봤다.“여기?”“네.”“갑자기 식물원은 왜?”단태가 휴대전화를 꺼내 예약 화면을 보여줬다.“미니어처 온실 만들다 보니까 진짜 온실이 궁금해졌습니다.”하늘이 웃음을 터뜨렸다.“취미가 여기까지 왔어요?”“생각보다 재밌습니다.”“난 또 나 데려오려고 찾은 줄 알았네.”단태가 하늘을 봤다.“제가 보고 싶어서 찾았고.”잠시 뒤 덧붙였다.“하늘 씨랑 같이 오고 싶었습니다.”“그 순서 좋네요.”“왜요?”“단태가 가고 싶은 데도 있어야죠.”온실 안은 바깥보다 따뜻했다.커다란 잎들이 머리 위까지 뻗어 있었다.하늘은 이름표를 하나씩 읽었다.단태는 식물보다 구조물을 더 유심히 봤다.“뭘 그렇게 봐요?”“창문.”“식물원에서 식물 안 보고?”“미니어처 온실 창문을 잘못 붙였거든요.”“그걸 지금 발견했어요?”“네.”하늘이 웃었다.“집 가서 다시 뜯게요?”단태는 잠시 고민했다.“아니요.”“왜?”“이미 완성했으니까 그냥 둘 겁니다.”하늘이 의외라는 듯 그를 봤다.“단태답지 않은데.”“취미인데 완벽하게 해야 할 이유는 없잖습니까.”하늘은 그 말이 마음에 들었다.“맞아요.”두 사람은 천천히 걸었다.어느 순간 단태가 멈춰 작은 식물을 바라봤다.둥근 잎이 층층이 붙어 있었다.“저거 예쁘네요.”“키우고 싶어요?”“조금.”하늘이 바로 말했다.“사요.”“집에서 죽이면 어떡합니까?”“그럼 다음에는 안 키우면 되죠.”“하늘 씨가 물 줄 겁니까?”“왜 내가 줘요?”단태가 하늘을 바라봤다.하늘도 그를 봤다.“단태가 키우고 싶은 거잖아
정다은의 첫 월급날.은빛새는 아침부터 휴대전화를 몇 번이나 확인했다.급여 계산은 전날 이미 끝냈다.근무시간도 다시 확인했고, 다은과 조정했던 시험기간 일정도 반영했다.그런데 송금 버튼 앞에서 괜히 긴장됐다.“내가 돈 받는 건 익숙한데.”빛새가 혼잣말했다.“주는 건 왜 이렇게 이상하지.”결국 금액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송금했다.잠시 뒤 다은에게 메시지가 왔다.사장님, 월급 확인했습니다. 감사합니다!빛새는 한동안 화면을 바라보다 답했다.이번 달도 고생했어요. 다음 근무 때 봐요.보내고 나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가게에서 번 돈으로.가게에서 일한 사람에게 제대로 대가를 지급했다.당연한 일이었다.그런데 빛새에게는 그 당연한 일이 꽤 크게 느껴졌다.오후에 윤하늘이 가게에 들렀다.“왜 기분 좋아 보여요?”“티 나요?”“조금.”빛새가 계산대에 기대었다.“오늘 다은 씨 월급 줬어요.”하늘이 웃었다.“첫 월급?”“응.”“어때요?”“이상해요.”“뭐가?”“돈 나갔는데 기분이 좋아.”하늘이 웃었다.“그동안 일 잘해줬잖아요.”“그러니까.”빛새는 매장을 둘러봤다.다은을 채용하기 전에는 사람 한 명을 쓰면 비용부터 늘어난다고 생각했다.실제로 비용은 늘었다.하지만 자신에게 생긴 시간도 있었다.혼자 처리하던 일을 나눌 수 있었고, 쉬는 날도 생겼다.무엇보다 가게를 혼자 붙잡고 있지 않아도 됐다.“다음 달부터는 다은 씨한테 맡길 수 있는 업무를 조금 늘려보려고요.”“뭐까지?”“신상품 들어오면 기본 검수하고 수량 확인하는 거.”하늘이 물었다.“다은 씨한테 말했어요?”“아직.”“먼저 물어보려고?”“응.”빛새가 고개를 끄덕였다.“내가 맡기고 싶다고 무조건 그 사람이 해야 하는 건 아니니까.”하늘은 가볍게 웃었다.“잘하고 있네요.”“뭐가요?”“사장님.”“그 말 좀 그만해요.”“싫은데.”저녁 무렵 다은이 출근했다.가방을 내려놓은 다은이 빛새에게 다가왔다.“사장님.”“네?”“저 오늘 저녁 살까요?
일요일 오후.윤하늘과 강단태가 은빛새의 가게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두 사람을 발견한 건 정다은이었다.“어서 오세요.”익숙한 인사를 건넨 다은이 두 사람을 알아보고 웃었다.“아, 안녕하세요.”하늘도 손을 들었다.“오늘 빛새 씨 있어요?”“네. 안쪽에 계세요.”그때 빛새가 창고에서 나왔다.“왔어요?”“구경하러.”빛새가 하늘의 빈손을 확인했다.“오늘은 뭐 사러 온 거 아니고?”“그냥 손님.”하늘은 단태를 가리켰다.“이 사람 옷이나 하나 볼까 하고.”단태가 처음 듣는다는 얼굴로 하늘을 봤다.“제 옷을요?”“싫어요?”“싫지는 않은데.”빛새가 웃었다.“그럼 오늘은 내가 골라줄게요.”그 순간 다은이 말했다.“사장님.”“네?”“제가 해봐도 돼요?”빛새가 멈췄다.다은은 조금 긴장한 얼굴이었다.“남성 손님 코디는 아직 많이 안 해봤잖아요. 한번 해보고 싶어요.”빛새는 잠시 생각하더니 옆으로 비켜섰다.“좋아요.”그리고 단태에게 물었다.“괜찮죠?”“네.”다은은 먼저 단태에게 평소 어떤 옷을 입는지 물었다.“셔츠를 많이 입으세요?”“네. 무난한 걸 좋아합니다.”“색은요?”“검정이나 회색.”하늘이 옆에서 끼어들었다.“맨날 비슷해요.”단태가 하늘을 봤다.“편해서 그렇습니다.”다은은 웃으며 행거에서 옷을 골랐다.짙은 색 바지에 밝은 셔츠.그 위에 가볍게 걸칠 수 있는 재킷.빛새는 멀찍이 서서 보고 있었다.하늘이 작게 물었다.“안 도와줘요?”“다은 씨가 해본다잖아요.”“입 근질근질한 것 같은데.”“조금.”빛새는 웃었다.“그래도 기다려보려고.”잠시 뒤 단태가 피팅룸에서 나왔다.하늘이 눈을 크게 떴다.“괜찮은데?”단태가 거울을 봤다.“평소보다 밝네요.”다은이 말했다.“셔츠만 밝게 바꾸셔도 분위기가 많이 달라져요. 재킷은 가지고 계신 검정 바지랑 입어도 되고요.”빛새가 그제야 가까이 왔다.옷깃을 한번 확인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좋네요.”다은의 얼굴이 밝아졌다.“진짜요?”“응.